BLOG main image
분류 전체보기 (369)
미국 사정 (22)
세계의 창 (25)
잡동사니 (26)
과일나무 (285)
배나무 (10)
Visitors up to today!
Today hit, Yesterday hit
daisy rss
tistory 티스토리 가입하기!
2024. 2. 14. 18:07

Sheldon Solomon, Jeff Greenberg, and Tom Pyszczynski. 2015. The Worm at the Core: On the Role of Death in Life. Penguin Books. 225 pages.

저자는 심리학자이며, 이 책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어떻게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며, 사람들은 이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심리학 실험, 인류학적 탐구, 철학적 사색, 문학적 표현 등 가용한 수단을 모두 동원하여 논의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모든 인간이 공유하며, 이 문제는 인간의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인간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두가지 방식으로 극복하려 한다. 하나는 '문화' culture 이며, 다른 하나는 '자존감' self-esteem 이다. 문화는 인간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죽은 후에도 의미있는 무엇이 있다는 '이야기'를 제공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위무한다. 종교는 인간의 실존적 질문에 대응하는 대표적인 방책이다. 문화는 내가 태어나기 이전으로부터 와서 내가 죽은 이후로 이어지는 의미있는 무엇이 있다는 믿음을 사람들에게 제공한다. 조상, 혈통, 후손, 민족, 예술, 지식, 위인, 역사, 등의 문화적 메시지와 상징은 나의 죽음이 '끝', 즉 '진정한 죽음'이 아니라고 사람들을 설득한다.

자존감이란 문화적 사회적 맥락에서 볼 때 자신의 위치와 역할이 중요하며 의미가 있다는 자의식 self-consciousness 이다. 자신이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큰 집단과 큰 프로젝트의 일부에 속하며, 이런 집단과 프로젝트에 내가 기여하고 있다고 확신한다면, 자신의 죽음이 모든 것의 끝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자신이 죽은 이후에도, 자신이 이 땅에 살면서 행한 것을 후손이 이어받아 계속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삶이 외롭거나 허무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자신은 자신보다 더 큰 것의 일부이기 때문에, 나의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문화적 확신이나 자신의 삶의 중요성에 대한 믿음은 결코 확고하지 않다. 종교적 신념은 불안정한 기반 위에 있으며, 자신이 더 큰 것의 일부에 속하며 이것에 기여하고 있다는 믿음 역시 확실하지 않다. 신이나 내세에 대한 아이디어는 인간이 만든 허구이며, 자신이 이룬 것은 별볼일이 없으며 자신이 죽으면 모두 잊혀질 것이라는 생각이 수시로 떠오른다. 따라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은 이땅에 사는 한 완전히 떨쳐버릴 수 없다. 권력이나 돈이 많은 사람들은 죽음을 없애는 작업, 즉 영생을 추구하는 데 엄청나게 몰두했다. 그러나 생물학적 존재인 인간은 물리적으로 죽음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다. 상징적인 영생을 추구할 수 있을 뿐. 그래서 사람들은 자식, 명예, 예술 등에 몰두하며, 이것이 잘 안되면 술, 마약, 섹스, 도박, 등으로 방종한 삶에 자신을 내던지며 인생의 근본적인 외로움과 허무를 잊으려 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속한 집단과 기존의 질서를 옹호하는 쪽, 즉 보수적인 방향으로 움직이게 만든다. 내가 속하지 않은 집단이나 내가 따르지 않는 믿음과 규범의 존재는, 내가 속한 집단과 내가 따르는 질서와 가치를 위협하는 존재이며, 이는 내가 죽음을 극복하려 하는 길을 방해하는 장애물이다.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생각이 들수록 타집단에 대해 더 파괴적이고 극단적인 주장을 옹호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적절하게 관리하지 못하면, 극단적으로 정신병과 우울증에 시달리게 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어떻게 적절하게 관리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 저자는 두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하나는 죽음과 친숙해지는 것이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고,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사실을 가급적 감추고 피하려 할 것이 아니라, 기회가 닿을 때마다 이런 냉엄한 사실을 자주 인식하고 감정적으로 친숙해지라고 조언한다. 둘째는 의미있는 삶을 살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완전한 의미는 자연 세계에서 찾을 수 없다. 우주와 자연 법칙에서 볼 때, 인간의 삶은 궁극적으로 무의미하다. 생물계에서 인간은 벌레나 개와 마찬가지로 특별한 존재가 아니며, 지구는 수많은 별 중 하나에 불과하다. 벌레와 개가 영혼을 가지고 있지 않듯이, 인간의 영혼 또한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이다. 인간의 삶은 궁극적으로 무의미하지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곳, 이 시점에서,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나의 존재와 행위는 유의미하다. 아이들과 놀기, 예술 창작에 몰두하기, 신의 은총에 감복하기, 자연의 아름다움을 음미하기, 등을 할 때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잠시나마 내려놓는다.

저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인간 모두에게 공통된 것이며, 본인이 인지하건 하지 않건 간에 모든 사람의 삶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고 책의 첫머리에서 선언한다. 그러나 이 명제를 경험적으로 충분히 검증했는지 의심이 든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예시와 설명은 서구 기독교 문명권의 사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죽음이 수반하는 육체적 고통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이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만, 죽음이 끝이라는 사실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범신론적 세계관이나, 다른 생물과 인간을 대등하게 보는 불교의 세계관이나, 현세의 삶에 대해서만 관심을 둘 뿐 죽은 다음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은 유교의 세계관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고통이 아닌 죽음 자체를 크게 두려워할 것 같지 않다. 비서구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면 조금 다른 결론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