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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발전'에 해당되는 글 12건
2020. 11. 3. 21:55

Deirdre McCloskey. 2010. Bourgeois Dignity: Why Economics can't explain the modern world. University of Chicago Press. 450 pages.

 

저자는 영국의 산업혁명을 연구한 경제사학자로, 이 책은 어떤 요인이 영국의 산업혁명을 낳고 이후 200년간 16배 이상의 실질 소득 상승을 이끌었는지 설명하는 저자의 삼부작 중 두번째 책이다. 저자는 부르주와(bourgeois), 즉 상공업자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생각, 태도, 윤리, 아이디어, 담화의 변화가 이러한 비약적인 경제 발전을 가져온 핵심 요인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일반적으로 경제학에서 경제발전을 설명하는 데 동원하는 물질주의적 인과론을 배격한다. 물질적 조건이 생산성의 비약적 향상을 이끈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신선한 아이디어와 그것을 실제에 적용한 파괴적 혁신이 비약적 발전의 사이클을 돌게 하였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상공업(business)을 존중하는 태도가 출현했다. 과거 동서양의 모든 사회는 지주, 귀족, 관료, 무인, 문필가, 예술인을 숭상한 반면, 물건을 만들고 팔고 사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천대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용적 목적에 활용하여 돈을 벌며, 기존의 방법을 개혁하여 효율을 높이는 상공인들은 기존의 지배질서를 어지럽힐 위험이 있는 사람으로 경원시하였다. 이러한 구질서에서는 기존의 방법을 답습하여 비즈니스에서 부를 축적하면 어떻게든 이를 벗어나 지주, 관료, 귀족 계층으로 올라서려고 할 뿐, 더 좋은 방법을 고안하여 생산성과 효율을 높이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유럽의 봉건체제에서 지주 계층을 우대하고 상공업을 천시한 것이나, 중국의 유교 질서, 인도의 카스트제도, 이슬람 세계에서 상공업을 천시한 것은 같은 맥락이다.

상공인들이 자신의 일에 대해 자긍심(dignity)을 갖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현할 자유(Liberty)를 갖게 됨으로서, 그들은 새로운 방법을 개발하여 파괴적 혁신(distruptive innovation), 파괴적 창조(distruptive creation)을 계속해 나갔으며, 그 결과 엄청난 생산성의 향상을 가져왔다. 일반인이 상공업을 비하하지 않고 존중하는 태도로 변화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16세기 계몽주의(Enlighment), 과학혁명(Scientific Revolution), 종교혁명(Reformation), 인쇄술의 발전, 17세기에 부르주아로 구성된 의회가 왕을 견제하게 된 명예혁명(Glorious Revolution), 도시의 발전, 무역의 발전, 등 여러 요인이 오랜 시간 동안 중첩되어 작용하면서 네덜란드에서 점차로 비즈니스를 존중하는 태도가 출현하였으며, 이것이 영국으로 바로 이전되었다.

저자는 기존에 경제학자들이 산업혁명과 경제발전의 원인으로 주장한 것들을 각개격파 방식으로 반박하면서 왜 그것이 진정한 원인이 될 수 없는지 설명한다. 40여개 장에 걸쳐 기존의 주장을 반박하는 학술 논쟁을 계속 전개한다. 물적 자본이나 인적 자본이 축적되어 산업혁명이 출현하고 이후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며, 투자를 더 많이 한다고 하여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증가하는 것도 아니다. 노예제, 식민지, 제삼세계의 착취나 노동자가 생산한 잉여의 착취로 부터 얻은 이익 덕분에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은 아니다. 식민지와 제삼세계의 착취는 그들에게 큰 고통과 피해를 안겨 주었지만, 그로부터 얻은 이익은 대단치 않으며 결코 비약적 생산성 증가를 이끌 수없다. 지리적 이점이나 풍부한 자연자원이 산업혁명과 경제발전을 이끌지도 않았다. 경제학자들이 흔히 주장하는 경제적 탐욕의 동기나 절제와 합리적인 생활태도, 막스베버가 주장하는 개신교 윤리 또한 비약적인 생산성 증가를 가져온 원인이 아니다. 무역의 증대가 생산성의 비약적 향상을 이끌지 않았으며, 노벨경제학자 올리버 노스가 주장하듯 사유재산을 보호하는 제도 및 법에 따른 지배(rule of law)와 같이 인센티브를 보장하고 부정과 부패를 막는 합리적 제도가 생산성의 비약적 향상을 가져오지 않았다. 그의 주장은 이러한 요인들이 과거 로마제국, 중국, 인도, 이슬람세계에서 한때 존재했으나 산업혁명과 비약적인 생산성 향상을 이끌지 않았던 사실에서 입증된다. 

저자는 산업혁명과 이후의 비약적 생산성 향상을 가져온 경제발전은 오로지 파괴적 혁신에 의해서만 가능했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아이디어로 기존의 방식을 개혁한 사람들(tinkerer)은 이윤동기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노력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혁신 자체에서 삶의 목적과 의미를 찾았으며, 이는 상공인의 자긍심(dignity)과 자유롭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펼칠 수있는 환경(liberty)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일반인들이 비즈니스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고 사회가 이들의 자유를 구속한다면 새로운 아이디어와 파괴적 혁신은 만들어질 수없으며, 산업혁명과 이후의 비약적 생산성 향상은 인류 사회에 도래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도 서구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회에서는 상공인을 낮추어보는 경향이 있다. 비즈니스를 장사꾼과 공돌이가 하는 것이라고 천시하면서 인문학, 예술을 숭상한다. 그들은 돈버는 비즈니스에 종사하기보다는 학자나 관료가 되거나 비영리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고상하게 생각한다. 동서양의 지식인들은 시장의 효율성에 맡기기보다는 중앙에서 조정하고 통제하는 것이 더 큰 선을 가져온다고 믿는다. 사회주의 체제가 비효율로 인해 붕괴했음에도 여전히 시장보다 규제를 문제해결의 방식으로 선호한다. 갖은 수단을 동원하여 비즈니스를 통제하려 한다. 근래에 사회주의가 붕괴한 자리에 환경주의(environmentalism)가 들어서 규제를 좌지우지한다. 그러나 부를 창출하고, 가난을 척결하고, 자연파괴와 환경오염을 줄이는 데에는 시장과 파괴적 혁신을 통한 생산성 향상이 답이다. 섯불리 가난한 사람을 위하는 규제 정책이나 비영리 활동은 오히려 정체와 후퇴를 낳을 뿐이다. 의도가 선하다고 해서 무능한 결과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지난 200년 동안 엄청난 부의 창출과 빈곤으로부터의 탈출은, 인문학이나 관료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파괴적 창조를 지속한 상공업, 비즈니스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

저자는 경제역사학자로서 학술적으로 뛰어나며,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수술을 한 특이한 지식인이다. 그는 시장 규제에 반대하는 자유방임주의(libertarian)의 입장에서 기존의 학계와 지성계를 통렬히 비판한다. 이 책은 그의 박식한 배경을 종횡무진 발휘하여 기존의 연구들을 샅샅이 꿰뚫으면서 비판하기에 논의를 제대로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그의 학술적으로 엄격하면서 탈권위주의적인 태도에서 나온 돈키호테식의 솔직함은 기존의 권위적인 사고의 틀을 파괴하면서 새로운 관점과 통찰력을 제공한다.

2012. 3. 11. 21:44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계인들이 우리를 모범으로 여기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실업문제, 빈곤문제, 재벌문제 등으로 우리 주위에서 경제적으로 고통 받는 사람을 숫하게 보며, 국회에서는 기득권을 챙기려고 억지를 쓰고  파렴치한 행동을 하는 정치인을 흔히 본다. 우리사회에는 부정이 판을 치며 술과 도박에 빠지거나 몸을 팔아 생계를 꾸리는 향락산업 종사자가 얼마나 많은지 가늠할 수 조차 없다. 불안정한 가정환경과 냉혹한 경쟁에 내몰린 학생들이 폭력을 일삼거나 삐뚤어지게 자라나는 것을 주위에서 얼마나 많이 보는가? 이런 나라가 세계의 모범이 될 수 있다니.


 

  그런데 외신에서는 세계의 개발도상국 사람들이 한국을 본받아야 할 나라로 보고 열심히 배우려고 노력한단다. 한국의 경제발전은 물론 한국의 문화가 각광을 받으며 한국에 와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무척 많다. 요즈음 한국의 대학교에는 중국, 동남아, 중앙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등 전 세계의 개발도상국에서 온 유학생이 급증하고 있다. 외국의 공무원에게 한국에 관해 교육시키는 대학원 프로그램에 입학하려면 엄청난 경쟁을 뚫고 선발되어야 한다. 마치 수 십 년 전에 한국인이 서구 나라에 가서 배우는 것을 동경했듯이 이들은 한국에 와서 배우고 싶어 한다. 한국의 소프트 파워가 커진 것이다.

  우리 사회가 문제가 많기는 하지만 세계에서 독보적인 사례로 언급될 만하다. 1960년대 초까지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나라였던 것이 이제 다른 나라에 원조를 제공하는 나라로 성장한 것은 한국이 유일하다. 그렇다고 한국이 다른 개발도상국들의 모델이 될 수 있을까? 나는 회의적이다. 한국이 발전해 왔던 과정을 다른 나라가 따라 한다고 해서 성공할 것 같지는 않다. 국제적인 환경이 달라졌으며, 한국의 역사적인 맥락에서 나온 것은 다른 토양에 정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가 모범적인 사례라고 외국에서 칭찬한다지만 우리는 문제가 많음을 잘 안다. 불평등은 확대되고 있으며, 학교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며, 젊은이들은 실업과 좌절에 신음하고 있으며, 부정의와 부패가 도처에 널려있다. 그래도 뒤를 돌아보면 우리가 많은 진전을 이루었다는 것을 깨닫고 앞날에 대해 낙관적인 생각을 갖는다. 우리의 정치가 혼탁하지만 불과 20년 전에는 무자비한 독재가 판치지 않았던가? 현재 시리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군대의 무자비한 민간인 살상이 1980년에 한국에서도 있었다. 연줄이 없으면 취직을 하기 어렵고 급행료를 내지 않으면 관공서에서 일이 돌아가지 않던 때가 그리 멀지 않았다. 여전히 후진적인 시스템이 곳곳에 있지만 점차 바뀌는 것을 보면서, 또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흔히 보면서 앞으로 일이십년 후에는 우리도 선진국과 같이 풍요롭고 투명한 사회가 되리라는 희망을 품는다. 내가 열심히 사는 이유 또한 이러한 사회를 앞당기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기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왜 이 블로그를 정성을 기울여서 쓰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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