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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1. 20. 17:11

임홍택. 2018. 90년생이 온다. 웨일북. 336쪽.

저자는 기업체에서 인사관리 업무에 종사했으며, 경영관련 작가로 활동한다. 이 책은 1990년대에 출생하고 2000년대에 들어 사회에 진출한 젊은이들의 성향을 구세대와 대비하면서 다양한 에피소드를 곁들여 서술한다.

한국에서 1990년대에 출생한 사람들은 이전 세대와 다른 경험을 하면서 성장하였다. 한국이 어느 정도 소득 수준이 높아진 시기에 성장했으며, 민주화된 이후에 성장했으며, 출생율이 급격히 떨어져 한명 내지 두명의 아이를 가진 가정에서 성장했으며, 인터넷과 모바일이 보편화된 환경에서 성장하였다.

권위주의적 가치관이 지배하는 구세대와 달리, 이들은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고, 실질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우선시하는 태도를 보인다. 1997년의 IMF 경제위기 이후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평생고용의 관행이 사라지면서, 조직에 충성하고 과거의 관습을 수동적으로 따르기보다, 개인의 역량 개발과 개인의 가치를 우선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들은 복잡한 것보다 간단하고 실용적인 것을 선호하며, 재미 없는 것을 참지 않으며, 위선적이고 형식적인 것보다 솔직함을 선호한다. 과거 세대와 구별되는 이들의 개인주의적이고 합리적인 성향은, 직장에서는 물론 소비 행동에서도 변화를 가져왔다. 이들의 상이한 가치관은 온라인 문화와 결합하여, 과거 세대와 다른 사고와 행동 특성을 만들어 냈다. 

이 책은 저자의 기업체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독서과 주변 관찰을 활용하여 이야기를 전개한다. 마켓팅 업계에서 시작된 세대 담론이 그렇듯이, 깊이있는 설명은 없지만 가볍게 세상 변화에 대한 감을 제공한다.

 

2025. 1. 20. 16:39

시어도어 그래이 (꿈꾸는 과학 옮김). 2015. 세상을 만드는 분자. 다른 출판사. 231쪽.

저자는 과학 저술가이며, 이 책은 사람들의 일상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물건의 화학적 특성을 분자식과 사진을 곁들여 흥미롭게 설명한 도감이다. 산과 염기, 유기화합물과 무기물의 차이, 물과 기름, 극성과 무극성, 비누, 섬유, 광석, 진통제와 마약, 당류, 인공감미료, 방향제, 염료, 독성 물질, 식품첨가제, DNA, 등을 다룬다. 저자의 풍부한 화학 지식을 종횡무진으로 구사하면서, 세상을 화학이라는 관점에서 들여다본 재미있는 그림 책이다.

2025. 1. 19. 14:41

Edmund Russell. 2011. Evolutionary History: Uniting History and Biology to understand life on earth. Cambridge Univ. Press. 165 pages.

저자는 환경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인간이 자연 세계에 영향을 미쳐 자연세계가 진화해왔으며, 거꾸로 자연 세계가 인간의 진화를 이끌었다는 주장을 다양한 예를 들어 설명한다. 인간이 유발시킨 진화는 anthropogenic evolution 은 인간이 아닌 자연세계는 물론 인간 자신의 역사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인간은 의도적으로 intentionally, 혹은 인간이 의도하지 않는 와중에 자연세계에 영향을 미치면서 동물과 식물의 진화를 가져왔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동물을 길들이고, 인간을 위해서 유용한 형질의 식물을 발전시킨 것이다. 또한 인간은 많은 동식물을 멸종시켰다. 인간이 길들인 동식물은 거꾸로 인간사에 영향을 미쳤다. 식물을 길들임으로서 가능해진 농업은 이후 인류 문명의 발전을 이끌었다.

어업과 수렵은 주로 몸집이 큰 규모의 생물체를 잡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작은 몸체의 생물들만이 선택적으로 살아남아 후손을 남겼다. 그 결과 시간이 흐르면서 같은 종 내에서도 몸체의 규모가 점점 작아지는 진화를 가져왔다. 아프리카에서 상아채취를 위해 코끼리를 대량으로 살육한 결과, 현존 코끼리 중에는 상아가 없는 형질이 지배종으로 자리잡았다.

인간과 병충해간 영향을 서로 주고 받으면서 함께 진화하는 과정 coevolution 이 전개되었다. 인간이 만든 항생제와 농약에 대응하여 병원균과 해충은 이것에 저항성을 갖는 새로운 형질을 진화시켰으며, 인간은 이것들의 출현에 대응하여 새로운 약품을 개발하고 새로운 면역 형질을 발전시켰다. 병원균 및 해충과 인간 사이의 상호적인 진화의 과정은 앞으로도 계속 전개될 것이다.

서구에서 18세기에 시작된 산업혁명에는, 그 이전 오랫동안 아메리카 대륙에서 원주민들이 선택적 교배 selective breeding 를 통해 만들어낸 장섬유 면화종이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그전까지 구대륙에는 인도와 이집트에서 재배된 단섬유의 면화종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생산되는 단섬유는 기계화에 적합치 않았다. 요컨대 아메리카 대륙에서 수입된 장섬유는 산업혁명을 가능케 한 필요조건이었다.

이 책은 다양한 사례를 통해 인간과 인간 이외의 자연세계 사이에 공진화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주장한다. 진화역사학 evolutionary history 이라는 환경 역사학의 한 하위 영역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인간이 아닌 자연세계에 미친 인간의 진화적인 영향은 사례가 많으나, 거꾸로 자연세계에 의해 인간이 진화한 부분에서는 근래에 전개된 사례가 적다. 특정 형질을 가진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이 후손을 남겨야 인간의 진화가 전개될 텐데, 근대에 들어 집단간 출생율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인간의 진화는 어떻게 전개될지 의문이다.

2025. 1. 13. 16:34

Ray Fishman and Tim Sullivan. 2016. The Inner Lives of Markets: How people shape them -and they shape us. Public Affairs. 182 pages. 

저자들은 경제학자와 저널리스트이며, 이 책은 시장과 관련된 경제학계의 주요 아이디어들을 그것이 만들어진 배경과 적용된 사례들을 통해 설명한다.

아담스미스가 시장에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여 한정된 자원의 생산과 배분을 조정한다고 지적한 이래, 20세기에 들어와 구체적으로 시장의 작동원리에 대해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1950년대에 케네스 애로우 Arrow 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수리적으로 증명하여 노벨상을 받았다.

이후 애컬로프 Akerlof 는 판매자와 구매자간의 정보의 비대칭 문제로 시장이 붕괴되는 현상을, 중고차 거래 시장의 예를 들어 제시하였다. 정보의 비대칭이 존재하는 시장에서는 질이 떨어지는 상품(lemons)이 질이 좋은 상품을 시장에서 몰아내기 때문에 결국 시장이 붕한다. 시장을 디자인하는 사람은 이러한 정보의 비대칭 문제에 대응하여, 구매자에게 추가적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장치를 덧붙임으로서 시장이 작동할 수 있게 한다.

노동시장에는 '신호 이론' signal theory 이 작동한다. 고용주는 구직자의 진실한 노동 가치를 파악하기 위해, 다양한 대리 지표를 사용하여 구직자의 노동 가치를 평가한다. 학력과 같은 자격증 credentials 은 바로 이런 대리적인 가치 지표로 활용된다. 광고주가 자사의 상품 광고에 비싼 비용을 지불하는 이유 역시 비슷하다. 광고주는 광고의 비싼 비용이라는 대리적 신호를 통해 상품의 고급성을 잠재 소비자를 설득한다.

'경매 시장' auction market 과 관련하여 경제학자 Vickery 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경매에서 최고가를 써서 경매를 따낸 사람에게 차점자가 쓴 가격을 지불하도록 하는 디자인이다. 이렇게 하면, 경매에 참여한 사람 모두가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경매 대상의 가치를 주저없이 써내도록 하는 장점이 있다. 문제는 경매 참가자들 사이에 공모 collusion 가 있을 때, 이런 경매 방식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플랫폼 시장 platform market 은 서비스의 구매자와 공급자 사이에 자연 상태에서는 매칭이 이루어지기 어려운 환경일 때 조성되는 시장이다. 시장에 참여하는 공급자와 구매자가 많을수록 시장의 가치가 높아지지만, 닭과 달걀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공급자가 적으면 구매자가 참여하려하지 않고, 구매자가 적으면 공급자가 참여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둘을 동시에 만족시키면서 일정 규모 이상 시장에 참여하도록 시장 디자인을 하기는 쉽지 않다.

초중고생들의 학교를 배정하는 문제는, 구매자와 공급자 각각의 선호를 만족시키면서 어느 누구도 더 나은 선택이 발생하지 않도록 구매자와 공급자를 매칭하는 문제이다. 이는 의사 수련생과 수련 병원을 매칭하는 문제, 법률서기 지원자를 판사와 매칭하는 문제, 졸업 무도회에서 남학생과 여학생 참가자를 매칭하는 문제, 등과  유사하다. 이러한 문제는 "defferred acceptance algorithm"을 적용하여, 각자 선호의 우선순위에 맞추어 순차적으로 순연하여 선택하게 하는 방식으로 하여 집단적으로 최선의 매칭에 도달할 수 있다. 

시장은 희소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만들어 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가격기구가 적용되지 않는 분야도 있다. 인간의 장기를 원하는 사람과 장기를 제공하는 사람을 매칭하는 문제가 그것이다. 장기의 수요공급을 시장 원리에 맡긴다면 희소 자원의 배분이 가장 효율적으로 되겠지만, 사람들의 윤리 관념이 인간의 장기에 가격을 매기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실현되지 않는다.

자본주의적 이익, 착취, 불평등 현상을 낳지 않으면서, 시장기구에 의해 효율적으로 희소자원의 배분이 이루어질 수있다. 무료로 식량을 기증하는 기관과 푸드 뱅크를 연결시키는 일을 시장 기구를 통해 수행되게 하는 것이다. 시장기구와 점수 credit 시스템을 적용하여, 각 푸드 뱅크가 각자에게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필요한 기증 식량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한다. 시장 기구가 반드시 불평등과 부정의을 낳는 것은 아니다.

시장은 사람들의 성향을 바꾸어 놓는다. 시장에 참가하는 사람은 공동체 관계의 참가자에 비해 이기적으로 행동한다.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 보듯이, 시장 참가자 각각이 최대로 자신의 이익만을 돌보면, 전체의 복리가 감소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또한 시장은 참여자들 사이에 불평등을 낳는다. 시장은 적절하게 규율될 때에만 제대로 돌아간다. 부작용은 있지만, 그럼에도 시장은 희소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수행하는 데 다른 어느 시스템보다 낫다.

이 책은 경제학계의 혁신적 아이디어를 일반인이 알기 쉽게 설명한다. 이 책에서 언급한 경제학 이론은 대부분 많이 알려진 것인데,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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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rdan Ellenberg. 2014. How not to be wrong: the power of mathmatical thinking. Penguin books. 437 pages.

저자는 수학자이며, 이 책은 세상사를 이해하는 데 수학적 사고가 도움이 된다는 것을 다양한 예를 통해 입증한다.

사람들은 세상을 선형적인 관계로 인식하는 데 익숙하다. 즉  가 증가 혹은 감소하면 B가 비례적으로 증가 혹은 감소한다는 식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세상에는 선형적이지 않은 관계가 적지 않다. 예컨대 세율과 세수의 관계는 곡선의 관계이다. 국지적으로 보면 선형관계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곡선의 관계인 경우도 있다.  집합적으로는 선형관계이지만, 그 집합의 부분 범주에 한정하면, 선형관계가 아닌 경우도 있다. 상관도는 선형 관계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여러 변수들 간의 관계가 복잡할 경우, A와 B가 선형 관계이고, B와 C가 선형관계이나, A와 C가 관계가 없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는 우리의 상식에 맞지 않지만, 의학 분야에서는 자주 발생한다.

매우 드물게 일어나는 확률의 사건이라도, 언젠가 어디에서 누구에겐가는 일어날 수 있다. 따라서 매우 드물게 일어난 사건으로부터 그러한 사건이 일어날 확률이 높다고 추론하는 것은 오류이다. 통계 추정(inference)의 원리는 다음과 같다.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사건을 귀무가설(null hypothesis)로 설정하고, 현실에서 그 귀무가설과 반대되는 사건, 즉 대립 가설(alternative hypothesis)을 접하게 될 때, 그 귀무가설을 기각하고 대립 가설을 채택한다. 이때 이러한 판단이 오류일 가능성을 유의도(p-value)라 하는데, 유의도를 낮게 잡으면 잡을수록, 다시말하면 귀무가설이 옮음에도 이것을 기각하고 대립 가설을 채택할 가능성은 줄어든다. 문제는 매우 드물게 일어나는 확률의 사건이라도 일어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아무리 유의도를 낮게 잡더라도, 오류를 범할 가능성을 0으로 만들 수는 없다. 따라서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작은 사건(예컨대 테러리스트)를 찾아내기 위해, 샘플 표집을 통해 통계적 추정을 하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다.  

확율적인 사건에 대해 기대값을 계산하여 판단하는 것은 효과적이다. 문제는, 이론적 확율에 근사한 값을 얻으려면 많은 수의 사례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예컨대 주사위를 던지면, 연달아 6이 여러번 나오는 경우가 있다. 이전 시도에서 6이 여러번 나왔다고 하여, 그 다음 시도에서 6이외 다른 숫자가 나올 확율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대수의 법칙(law of large number)에 따라, 시도를 많이 할 수록 이전에 한쪽으로 쏠렸던 결과가 점차 희석되어(diluted) 이론적 확률에 근접한다. 복권은 가격 대비 기대값이 적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복권의 설계를 잘 못하여 6년 동안이나 기대값이 복권 가격보다 높은 상황이 지속되었다. MIT 학생들은 이러한 상황을 파악하고 복권을 대량 매집하여 큰 돈을 벌었다.

평균에 회귀하는 (regression to the mean) 현상은 종종 나타난다. 예컨대 부모가 우수해도 그 자식들이 우수하지 않은 경우이다. 이는 사건이 발생하는 근본적 원인에 우연적 요인이 추가될 때 나타난다. 지적인 능력을 결정하는 유전자와 환경적 요인이 결합하여 지적인 능력을 만들어 내는데, 환경적인 요인에는 우연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세대가 지날수록 부모 세대의 예외적 특성은 점차 희석되어 전체의 평균으로 회귀한다. 같은 논리로, 예외적으로 우수한 기업도 시간이 지나면 평균적인 기업으로 변화한다. 사업의 성과는 우수한 기술이나 기업가 정신이라는 본원적인 요인과 운이 함께 하여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외적으로 우수한 실적의 펀드 역시 시간이 지나면 시장 평균 성적에 근접한다. 예외적인 실적을 기록한 다음 해에는 예외적이 아닌 실적을 기록할 가능성이 크다.

이 책에는 수학을 활용한 많은 사례들이 등장한다. 일부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수치를 이용한 설명이 복잡하여 이해하지 못한 부분도 많았다. 수학적 논리를 설명하는 서술을 따라가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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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iel Levitin. 2006. This is your brain on music: the science of a human obsession. Plume. 267 pages.

저자는 뇌과학자이자 음악가이며, 이 책은 인간의 뇌가 음악을 수용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음악과 언어는 인간의 뇌에서 수용되는 방식이 흡사하다. 귀에서 보내오는 음악 신호는 뇌의 소리 중추에서 접수한 후, 뇌의 다양한 부위에서 음, 멜로디, 리듬, 박자, 등을 각각 별도로 처리하고 다시 종합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과거에, 음악은 오른편 뇌에서 전적으로 처리된다고 알려졌으나, 근래의 연구에 따르면 음악은 뇌의 좌우 반구에 분포된 다양한 영역에서 처리된다. 인간은 음악을 인식하는 데에서 놀라운 능력을 보인다. 태어난지 몇달 안되는 아기도 음악을 구별할 수 있으며, 성인은 처음 몇 음만 들으면 바로 음악을 판별해낸다. 조를 바꾸고 음색을 바꾸고 박자를 바꾸어도 멜로디를 인식하는 능력은 대단하다.

사람들은 자신의 문화의 음악 규칙을 내면화하고 있다. 서구인은 서구의 음계와 화성을 내면화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규칙에 어긋나는 음이나 음의 전개을 들으면 바로 이상함을 감지한다. 좋은 곡은, 이러한 규칙을 교묘하게 우회하고 변형하여 긴장을 유발하지만, 그러면서도 청자의 예상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는 곡예를 한다. 음악의 청자는 예상에서 벗어난 상황에 흥미를 느끼고, 그러한 약간의 파격이 다시 예상으로 돌아오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낀다. 전적으로 예상에 따라 움직이는 음악은 단조롭고 흥미를 유발하며, 반면 규칙으로부터 매우 크게 벗어나 예상을 할 수 없게 하는 음악 또한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청소년기, 16~18세 때 듣던 음악을 평생 좋아한다. 인간의 음악에 대한 취향은 이때 고정된 이후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이는 이 청소년기에 우리의 두뇌 속 신경망이 완전히 틀을 잡기 때문이다. 음악 전문가는 일반인보다 음악을 이해하는 정도가 깊기는 하지만, 일반인 또한 음악을 듣는 부분에서는 전문가와 다름이 없을 정도로 놀라운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음악 전문가는 체스 전문가와 마찬가지로 음악의 규칙과 패턴을 잘 꿰고 있기 때문에 음악을 잘 이해하는 것이다. 작곡이나 연주를 능숙하게 하는 전문가가 되려면, 10,000 시간 정도의 훈련이 필요하고, 이는 다른 분야에 전문가의 내공과 비슷한 분량이다. 이정도 훈련을 거쳐야만 인간의 뇌는 전문가 수준의 신경망을 형성하게 된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모든 인간 사회에 음악과 춤이 함께 하는 것으로 보아, 음악은 진화의 산물이다. 음악과 춤은 외부의 행동에서는 물론, 우리의 뇌 안에서도 함께 작동한다. 음악은 이성의 짝을 유혹하는 기술로서 진화하였으며, 공동체의 통합에 기여하는 도구로서도 진화하였다.

이책은 저자의 뇌과학 연구와 음악 활동을 잘 결합하여 서술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많은 예들이 대부분 미국의 대중음악이기 때문에, 이것에 익숙치 못한 독자에게는 덜 실감나게 여겨지는 한계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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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Tuckett. 2011. Minding the Markets: An Emotional Finance View of Financial Instability. Palgrave Macmillan. 206 pages.

저자는 정신분석학자이며, 이 책은 펀드매니저들에 대한 심층 인터뷰 자료를 배경으로 금융 버블이 일어나는 기제를 설명한다.

금융자산은 기본적으로 미래의 가치가 불확실하다. 금융자산 이론에 따르면, 현재까지의 모든 정보와 지식은 현재의 가치에 반영되어 있다. 따라서 자산에 대한 과거의 지식을 근거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금융자산의 불확실한 미래 가치는 어떤 확율 함수에 의해서도 파악할 수 없다. 이러한 이론은 완전하게 작동하는 시장을 전제로 하는 것인데, 실제 시장의 움직임에는 틈이 있으므로, 이 틈을 이용하여 시장 평균 수익율을 상회하는 이익을 실현하는 것이 펀드매니저의 목적이다.

펀드 매니져는 자신의 투자 행위를 뒷받침하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예컨대, 기업의 펀더맨탈을 남보다 정확히 파악하여 펀더맨탈에 기초한 가치와 시장 가격 간의 차이를 이용하는 가치투자를 한다거나, 시장의 단기 출렁임에 흔들리지 않고 펀더맨탈에 기초한 장기 투자를 한다거나, 남들이 못보는 부분, 남들이 가지지 않은 정보를 이용하여 특정 기업의 진실한 가치를 파악하여 예외적인 투자를 한다는 등이다. 펀드 매니져와 금융회사들은 이러한 이야기를 고객에게 제시하여 투자금을 끌어들이며,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삼는다. 

펀드 매니져는 자신이 선택한 기업에 대해 감정적인 애착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제시하는 이야기에서 이러한 감정적인 애착을 읽을 수 있다. 자신이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엄청난 물건' fantastic object 를 포착했다거나, 주식이 자신의 기대와 달리 움직이면 '배반' betrayed 을 당했다고 느낀다. 금융 자산이란 기본적으로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이러한 감정적 애착 없이 냉정하게 결정을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감정"이 그들의 행위를 이끄는 안내자이고 동력이다. 펀드 매니저는 자신이 투자한 자산의 상승과 하락을 항시 감시하고, 업계에서 수익에 따라 펀드매니저에 대한 등수를 매기는 것을 확인하지 않을 수 없다. 펀드 매니져는 엄청난 감정적 스트레스 속에서 매일을 살며, 이것이 그들의 일의 기본적인 속성이라고 받아들인다.

금융자산의 미래는 근본적으로 불확실하므로, 그들의 이야기가 투자 성공으로 뒷받침될 때도 있지만, 그못지 않게 투자 실패를 낳는 경우도 많다. 그들은 투자 결과에 따라 큰 감정적인 기복을 경험한다. 주식이 자신의 예상과 달리 움직일 때, 펀드 매니져는 자신이 제시한 이야기에 유리한 쪽으로 데이터를 일방적으로 해석하는 '감정적으로 나누어진 상태' (divided state)로 자신을 방어한다. 즉 시장의 위험을 통합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투자한 주식에 유리한 방향으로 시장의 데이터를 일방적으로 해석하고, 펀드 매니저 본인 및 투자자에게 그렇게 설명한다. 손실이 지속되면 그들은 결국 직장을 잃기 때문에, 자신이 투자한 주식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감정적으로 반응한다. 장기투자를 추구한다고 하지만, 단기에라도 손실이 나면 투자자로부터 압력이 높아지기 때문에,  주가 하락에 대한 펀드 매니져의 감정적 개입과 자기 방어는 심할 수 밖에 없다. 

펀드 매니저가 선택한 주식의 가치가 상승하면 그가 만들어낸 이야기가 맞다고 확신하며, 반대로 가치가 하락할 때에도 그가 만들어 낸 이야기가 맞다고 믿고, 그 이야기로부터 하락한 이유를 도출하여 자신과 고객을 설득한다. 하락이 지속되어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자신이 만들어 낸 이야기에 오류가 있다고 인정하고, 그 주식을 손해를 보고 팔고 손 뗄 수 밖에 없다. 금융자산의 미래 가치는 예측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함에도, 펀드 매니저는 자신이 만들어 낸 이야기를 믿으며 그러한 이야기를 통해 미래의 불확실성을 통제하고 있다는 믿음 속에서 생활한다. 그러한 믿음이 냉정한 현실과 부딛쳐 깨지면 배반당했다고 느끼고 좌절하는 등 엄청나게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인다. 이것이 바로 펀드 매니저로 오랫동안 일하는 사람이 드문 이유이다. 어느 펀드 매니져이든 자신이 만든 이야기에 대한 믿음 없이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객이 펀드매니져에게 기대하는 역할은 단순히 손실을 입지 않는 수준을 넘어, 시장 평균 수익율을 상회하는 것이다. 다른 펀드매니져나 금융 회사보다 우월한 수익율을 기록하지않으면 고객은 떠난다. 펀드 매니져는 기업의 펀더맨털에 기초해 독립적으로 투자한다고 하지만, 다른 펀드 매니져들이 어떻게 하는지를 항시 염두에 두면서 그들과 보조를 맞추어야 한다. 다른 펀드 매니져들이 높은 수익을 올리는 기회를 자신만 놓친다면, 그 또한 부정적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혼자서만 동떨어지게 행위할 때 감당해야 할 위험이 크기 때문에, 펀드 매니져는 대체로 업계의 집단적인 감정 group feel 에 휩쓸려 움직인다.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전에, 일부 펀드 매니져들은 금융기관이 진 과도한 리스크를 염려했지만, 그들 역시 다른 펀드 매니져와 마찬가지로 투자하였다. 펀드 매니저는 업계의 평균을 상회하는 예외적인 존재여야 하며, 동시에 업계의 공통된 투자 성향에서 크게 벗어나서는 안되는 모순된 처지에 놓여 있다.

금융시장에 참여자는 각자가 감정적으로 깊이 개입되어 있으며, 집단적인 감정에 쏠려서 움직이므로, 이러한 환경에서 금융시장의 버블이 발생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특정 금융자산의 위험도가 높아졌다고 해도, 큰 수익을 올리려는 개별적인 욕구와 집단적인 감정이 결합하며, 해당 자산의 위험을 통합적으로 보기보다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일방적으로 데이터를 해석하는 '감정적으로 나누어진 상태'를 보일 때, 해당 자산의 위험이 과도하게 상승하는 것을 제어할 수 없다. 요컨대 위험도의 가파른 상승 다이나믹은 금융시장의 참여자가 엄청나게 큰 감정적 개입을 하는데 기인한다.

물론 큰 돈을 벌고 잃는 일에 감정적으로 크게 개입하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금융 버블을 막으려면 금융 시장의 참여자가 감정적으로 크게 개입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금융 투자가 '따분한' boring 일이 되도록 해야 한다. 금융 투자를 통해 큰 돈을 벌 기회가 존재한다는 환상을 버리도록 해야 한다. 펀드 매니져와 금융회사의 장기적인 투자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한다면, 사람들은 이러한 환상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일시적으로 예외적인 성과를 거둘 수는 있지만, 오랜기간 지속적으로 예외적인 성과를 거둘 수는 없기 때문이다. 금융자산의 미래 가치가 정말 불확실하다면, 합리적인 방식의 투자 수익은 결국 시장 평균에 수렴할 수 밖에 없다. 펀드 매니징 업계는 그들이 만들어낸 환상적인 이야기의 산물에 불과하다. 고객이 그들이 제시하는 환상을 사는 순간, 금융 버블은 만들어지고 언젠가 폭발하는 길로 나아갈 수 밖에 없다.

이 책은 금융 시장의 참여자들의 인터뷰를 기초로 금융 투자 업계를 분석한 흥미로운 책이다. 인터뷰 자료를 읽다보면 펀드 매니저들이 마치 경마판의 말인 듯한 생각이 들며, 그들에 대해 동정심이 느껴진다. 근래에 인덱스 펀드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데, 시장의 평균을 추구하는 인덱스 펀드에는 감정이 개입하지 않기 때문에 금융 버블이 생기지 않아야 한다. 물론 알고리즘 투자에 따른 시장 쏠림은 또다른 문제이지만. 이 책이 다루는 주제 자체는 흥미롭지만 저자의 서술은 매우 읽기 어렵다. 내용의 반복이 심하며, 중언부언 필요 없이 덧붙여 말하는 식으로 글을 복잡하게 구성하여, 그만 읽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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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1. 15. 16:59

시어도어 그레이. 2010. 세상의 모든 원소 118. 영림카디널. 235쪽.

저자는 대중과학 저술가이며, 이 책은 주기율표에 있는 총 118개의 원소 각각에 대해 샘플 사진을 곁들여 설명한다. 과학 원리에 대한 약간의 배경 설명과 함께, 일상에서 각 원소가 사용되는 예들을 제시한다. 원자번호 1번 수소 H에서부터 그당시까지 발견 혹은 합성된 118번의 '우눈옥튬'까지 각각의 원소에 대해 설명한다.

저자는 원소 샘플 수집가이며, 자신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곳곳에 삽입하면서 캐쥬얼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가볍게 서술 부분을 읽고 사진을 보면서 눈요기하는 도감책이다.

2024. 10. 23. 15:26

키트 예이츠. 2019. 수학으로 생각하는 힘. 웅진 지식하우스. 356쪽.

저자는 수학자이며, 이 책은 일상생활에서 수학적으로 생각할 때 잘 못된 경우를 여러 사례들을 인용하면서 풀어낸다.몇개의 독립적인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기하급수적 증가와 감소, 통계적 판단의 오류, 우연의 확율에 대한 이해, 사실을 의도적으로 외곡하는 수치 표현, 전염병에 대응하는 수학적 모델, 등이다.

인구 전체로 볼 때 특정 질병의 발생 확율이 매우 낮다면, 선별 검사에서 양성으로 판정됐다고 해도, 실제 질병에 걸렸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양성 판정자 중에 false positive 경우가 true positive 경우보다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만일 진짜로 그 질병에 걸렸다면, 두번 연속 false positive 를 받을 확율은 크게 낮아지므로, 처음 진료한 곳과 다른 의료기관에서 독립적 검사를 통해 이차 의견을 받는 것이 좋다.

어떤 집단에서 두 사람의 생일이 일치할 확율은 생각보다 높다. 예컨대 23명이 모인 집단에서 생일이 일치할 확율은 50%를 넘어선다. 이는 사람수가 증가하면 구성원 사이에 랜덤한 두사람의 조합의 경우의 수가 매우 빨리 증가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두 사건간의 관계에 대해 흔히 인과적 연관을 상상하는데, 실제는 우연히 두 사건의 특징이 일치할 가능성이 크다. 사건이 우연히 발생할 가능성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수준보다 훨씬 높다.

사람들은 자신이 강조하고 싶은 드물게 일어나는 특질의 변화에 대해서는 비율로 표기하여 변화의 크기를 과장하는 반면,  자신이 숨기고 싶은 드물게 일어나는 특질의 변화에 대해서는 절대수치의 차이로 표기하여 변화의 크기를 축소하려 한다. 의도적으로 한쪽편은 비율로 표기하고, 다른 쪽 편은 절대 수치로 표기한다면, 이는 거짓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독자를 속이는 행위이다. 숫자를 제시하면 주장에 권위가 더해지는 듯 하지만, 이렇게 숫자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외곡되게 표현하는 행위는 미디어나 정치권은 물론 학계에서 흔히 저지르는 잘못이다.

최적화를 행할 때, 모든 가능한 사안을 검토한 후 최선을 선택하는 것은 비용대비 수익이 적다. 첫 세 사건에서는 기준을 정한 후, 이후에 마주치는 사건 중, 이 기준보다 더 좋은 것이 나타나면 더이상의 탐색을 중단하는 것이 수학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최적화 전략이다. 식당을 고르거나, 상품을 고르거나, 등, 다수의 사건 중에서 결정을 하려할 때, 이 수학적 지혜를 활용할 수 있다. 

이 책은 수학이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오용될 수 있는지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이야기로 풀어낸다. 이러한 종류의 책은 문제가 복잡해지면 수학이 어떻게 우리의 생각을 도와주는지 설득력있게 제시한다. 수학적 논증에 합당한 다양한 사례를 찿아내고 이야기로 풀어내는 저자의 능력이 돋보인다. 다만, 법적인 다툼에서 수치를 해석하는 부분에서는 번역에 문제가 있는지 여러번을 읽어도 이해하지 못했다. 여하간 흥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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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근. 2023. 한반도 국제정치의 비극: 동북아 패권경쟁과 한국의 선택. 박영사.444쪽.

저자는 국제정치 학자이며, 이 책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 상황을 분석하고, 한국이 어떤 외교 전략을 취해야 할 것인가에 관해 논의한다.

한국의 외교 전략을 고민하기 위해서는 먼저 한국의 정체성과 국익을 확실히 해야 한다. 한국은 크게 네가지의 정체성을 가진다. 첫째, 한국은 미국,중국, 일본, 소련이라는 강대국에 둘러싸여 중간에 끼인 국가이다. 둘째 한국은 경제적으로 대외의존도가 높은 통상 국가이다. 셋째, 한국은 북한의 위협이 상존하는 분단 국가이다. 넷째, 한국은 인구과 경제규모에서 세계에서 강대국은 아니나 그렇다고 약소국도 아닌 중간의 위치의 국가이다. 한국의 존립과 번영을 위해 이 네가지 중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한국은 외교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의 안보는 원칙적으로 부단한 자강 노력과 함께 한미동맹을 근간으로 해야 한다. 한국은 경제적으로 중국에 많이 의존하고 있으므로, 중국을 자극하는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 미국의 요구를 따르되 중국의 심기를 크게 거슬릴 행동은 삼가야 한다.  중국에 대해서는, 국제사회가 합의한 원칙 내에서,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전적으로 미국에 의존하여 중국의 대척점에 서거나 혹은, 중국에 따르면서 미국과 척을 지는 행동은 피해야 한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 어느 쪽도 잃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가 중국이 밀어붙이는 국제질서보다는 우리의 안보를 위해 더 의지할만 하기 때문에, 미국에 우선을 두어야 한다.

한국은 우리와 비슷한 입장의 나라들과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호주, 터키, 인도, 유럽연합, 캐나다, 멕시코, 브라질 등의 나라들과 연대를 맺으면서,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공동의 힘을 구축해야 한다. 물론 이 나라들은 각자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통일된 대오를 형성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미중의 갈등 속에서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부분이 있으므로, 함께 목소리를 낸다면 중간자로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북한의 핵무장에 대해 한국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 저자는 한국이 핵무장하는 것은 어렵다고 주장한다. 한국이 핵무장을 시도한다면,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사회의 엄청난 압박과 제제를 받을 것인데, 한국 경제는 대외의존도가 높으므로 이를 감당할 수 없다.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해, 한국의 압도적 재래식 전력과 미국의 도움으로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 한국은 미국의 핵우산 하에 있으므로, 비록 이것의 신뢰성은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겠지만, 북한이 핵을 사용하면 미국 또한 핵을 사용하여 응징하리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북한이 핵을 사용하기는 어렵다. 북한 정권의 붕괴를 각오하지 않는 한, 핵무기는 사용하지 못한다. 북한은 한국과 미국의 위협에 대응하여 정권의 생존을 위해 핵을 보유하는 것이지, 남한을 침공할 의도로 핵을 보유하는 것은 아니다. 즉, 북한의 핵 위협은 그렇게 생각만큼 현실적인 위협은 아니다. 한국이 핵재처리 능력을 확보하여, 핵무기는 보유하지 않아도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는 방안, 즉 일본의 현재 지위와 같은 수준에 도달하는 목표 또한, 미국의 반대로 추진이 쉽지 않다.

저자는 한국의 지정학적 위상 때문에, 선진국들의 눈치를 보면서 그들 모두와 잘 지내야 할 운명은 어쩔 수 없다고 본다. 주변 강대국들이 쉽게 잡아먹을 수 없는 능력을 키우고, 국내적으로 통일된 대오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외교 정책의 방향을 크게 바꾸고,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임기응변적으로 대응하는 한국의 외교는 개선해야 한다. 한국의 정체성과 국익을 명백히하고, 국제사회의 원칙에 따르면서, 지혜롭게 처신해야 한다.

이 책은 저자가 정부와 국책연구소에서 오랜 외교 정책연구 활동을 한 결과를 집약한 것이다. 분석과 주장은 현실적합성이 높으며 설득력이 크다. 다만 저자의 여러 보고서와 논문들을 짜깁기하여 단행본을 만들었기 때문에, 중복이 매우 많다. 저자가 자신의 생각과 지식을 집약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호흡으로 새로 책을 썼다면 훌륭한 작품이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