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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0. 1. 10:50

Richard Wrangham and Dale Peterson. 1996. Demonic Males: Apes and the Origins of Human Violence. Houghton Mifflin Company. 258 pages.

저자는 생물자이자 인류학자이며, 이 책은 침팬지에 대한 연구를 배경으로 하여, 인간의 폭력성은 문화가 아니라 생물학적 요인에 기초를 두고 있다고 주장한다.  

침팬지는 위계적인 사회를 형성하고 있다. 수컷 침팬지들 사이에 지위 경쟁은 매우 치열하다. 힘으로 다른 수컷을 제압하여 최고의 지위에 올라선 알파메일은, 다른 동료를 마주칠 때마다 매번 그들로부터 굴종적 인사를 강요한다. 다른 수컷이 알파 메일의 권력에 도전하여 그를 권좌에서 몰아낼 위험은 항시 존재한다. 하위의 침팬지가 알파 메일에 본격적으로 도전하여 그를 권좌에서 몰아내는 권력의 전환기에는 침팬지 사회 전반에 폭력적 분위기가 흐른다. 침팬지의 권력 투쟁은 침팬지 사회 구성원 다수가 참여하는 집단적 게임이다. 알파 메일은 자신의 권좌를 지키기 위해 다른 동료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며, 알파 메일에 도전하는 하위의 침팬지들은 그에 대항해 연합 전선을 형성하여 싸운다. 침팬지 사회의 권력 투쟁은 폭력적이며, 종종 살상을 동반한다. 권력을 차지하기 위하여 계산적으로 행동하며 동족을 살해하는 행위는 인간에만 한정된 일이 아니다.

침팬지는 자신들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수컷들이 무리를 지어 이삼일에 한번씩 경계를 시찰한다. 그들은 종종 자신의 영역을 넘어 이웃 침팬지 집단에 원정 공격을 나선다. 이웃 침팬지 집단의 영역에서 홀로 돌아다니는 취약한 상대를 발견하면 집단적으로 공격하여 죽인다. 이러한 집단 공격에 참여하는 침팬지들은 집단적으로 흥분에 들떠, 크게 소리를 지르며 잔인하게 상대를 때리고, 물어뜯고, 살과 뼈를 찢고 부러뜨린다. 이들은 폭력을 행사하는 행위 자체를 즐기는 듯하다. 이러한 원정 공격의 목적은 복합적이다. 이웃 침팬지 집단을 약화시켜 자신의 집단의 영역을 확장하고, 때로는 살상한 침팬지 고기를 먹는다. 자신의 집단의 영역이 확장되면, 더 넓은 지역에서 더 많은 먹이를 구할 수 있고, 더 많은 자신의 후손을 길러낼 수 있다. 때로는 이웃 침팬지 집단의 수컷을 수차례의 원정 공격을 통해 차례로 제거한 다음, 그들의 아이를 모두 죽이고, 암컷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이웃 집단의 영역을 포함하여 자신의 사회를 확장한다. 

침팬지가 자신의 집단 내에서 및, 이웃 집단과 벌이는 폭력 투쟁은 전적으로 수컷의 몫이다. 암컷은 수컷들의 권력 투쟁에 소극적으로만 관여하며, 이웃 집단과 벌이는 원정 공격에 참여하지 않는다. 침팬지 수컷에게 지위 추구는 삶의 유일한 목적이다. 권력을 쥔 수컷은 많은 암컷들을 차지하여 많은 후손을 낳는 반면, 권력이 없는 수컷은 자신의 후손을 만들 가능성이 제한된다. 침팬지 수컷이 권력 투쟁에 몰두하는 이유는, 침팬지 암컷이 권력을 쥔 수컷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알파 메일이 기존의 알파 메일을 대체하면, 그는 기존의 알파 메일의 자식을 모두 죽이고, 기존의 알파메일의 암컷을 자신의 것으로 취한다. 침팬지 암컷에게, 권력을 가진 수컷은 다른 수컷으로부터 자신과 아이를 보호하는 존재이므로, 그들은 자신의 전남편의 자식들이 살해당하더라도 항시 권력을 가진 수컷을 선호한다. 침팬지 암컷은, 수컷보다 체구가 작고 힘이 약하며, 아이를 낳고 길러야 하는 역할 때문에 수컷과의 힘의 경쟁에서 열위에 있으므로, 수컷의 권위에 따를 수 밖에 없다. 수컷은 자신의 의도에 저항하는 암컷을 겁박하여 힘으로 굴복하게 한다.

침팬지와 매우 유사한 종으로 침팬지보다 체구가 작으며 힘이 약한 보노보가 있다. 보노보는 침팬지와 달리 수컷과 암컷의 체구가 대등하며, 수컷 또한 폭력적 행태를 거의 보이지 않고 온순하다. 보노보 사회에는 수컷들 사이에 권력 투쟁이 없으며, 알파 메일이 존재하지 않는 비교적 평등한 사회이다. 보노보는 자신이 속한 집단 내에서는 물론, 이웃 집단과 폭력적으로 충돌하는 일도 없다. 침팬지와 보노보가 상이한 행태를 보이는 이유는 그들의 먹이의 차이에 있다. 침팬지는 과일과 육식에 의존함에 비해, 보노보는 과일과 잎사귀를 주식으로 한다. 과일은 드물기 때문에 소수의 작은 집단으로 이동하며 살아가는 반면, 잎사귀는 풍부하기 때문에 큰 무리를 형성하며 산다. 큰 무리를 짓고 사는 보노보 사회에서 암컷들은 서로 친밀한 연대를 형성하면서 수컷의 도발을 집단적으로 제어한다. 폭력적 성향을 보이는 수컷은 암컷들이 연대하여 벌을 가하거나 집단에서 쫒아내버리기 때문에, 침팬지 사회에서 보는 수컷의 폭력성은 보노보 사회에서는 행사될 수 없다.

인간과 침팬지는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분화되었다. 침팬지의 행태는 인간과 매우 흡사하다. 인간은 공통 조상으로부터 분화된 이후 빠르게 변한 반면, 침팬지의 행태는 오랜 세월 동안 크게 변하지 않았다. 현재 침팬지들이 보이는 폭력성은 공통조상의 행태에 가깝다.  인간은 침팬지보다 체구가 작으며 힘이 약한 반면 두뇌가 발달하였다. 과거 수렵채취 시대에 인류의 집단 사회에서 알파 메일의 존재를 허용하지 않았다. 어떤 남성이 권위적으로 행동하여 타인을 지배하려 들거나, 폭력을 행사하여 남의 것을 탈취하려 하면, 집단적으로 그를 제재하며, 최악의 경우 그를 집단에서 축출하였다. 이러한 인간의 행태는 보노보와 닮은 점이 있다. 그러나 인간은 보노보와 달리 남자가 여자보다 체구가 크고 힘이 세며, 남성중심의 가부장제 사회 patriarchy 를 형성해 왔다. 이런 면에서 인간은 보노보보다 침팬지에 가깝다.

인간의 폭력성이 침팬지와 마찬가지로 생물학적 요인, 즉 유전자에 기인한다고 하여, 인간의 폭력성을 제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사하는 폭력성을 집단적 연대를 통해 제어할 수 있음을, 수렵채취 시대의 인류 사회에서, 또한 보노보 사회에서 확인한다. 집단적 접근으로 개인의 폭력성을 제어하는 것은 사회 제도를 통해 구성원의 폭력성을 규제하는 것이다. 이렇게 구성원의 폭력성을 집단적으로 제어하려는 인류의 노력은 결국 민주주의 제도로 발전하였다. 즉 인간은 조상으로부터 수컷의 폭력성의 유전자를 물려받았으나, 인간 사회가 만들어낸 제도를 통해 이를 부분적으로 극복한 것이다.

저자는 침팬지 연구자인 제인 구달을 도와 아프리카 밀림에서 침팬지를 오랜동안 관찰하며, 인간과 침팬지의 놀라운 유사성에 눈뜨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은 저자의 첫 작품으로, 자신이 필드워크를 통해 관찰한 것, 평소의 생각, 다양한 독서 경험 등을 망라하여 뒤섞었다. 논리의 비약이 눈에 띠고,  때로는 논의가 직접 연결되지 않고, 반복이 많은 흠이 있지만,  저자의 모든 것을 쏟아 놓은 느낌이 들었다.

2023. 9. 27. 17:50

Spyros Makridakis, Robin Hogarth, and Anil Gaba. 2009. Dance with Chance: Making Luck Work for You. Oneworld Publications. 333 pages.

저자는 경영학자와 심리학자이며, 이 책은 인생의 중요한 네가지 영역, 즉 건강, 부, 성공, 행복과 관련하여 불확실성을 줄이려는 기존 시도들을 검토하고, 어떻게 예측의 정확성을 높일지에 대해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인간은 실제보다 세상을 더 잘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 속에서 살아간다 (illusion of control). 인간은 주위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서 규칙적인 패턴을 찾아내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우연히 발생하는 사건들에게서까지 의미있는 패턴을 추정하는 오류를 낳는다. 인간이 예측하지 못하고 통제하지 못하는 우연의 세계에서 사는 것은 두렵기때문에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이를 피하려 한다. 세상의 많은 일은 우연히 일어나는데, 사람들은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의료, 투자, 기업 경영 분야에서 우연이 크게 작용한다. 객관적 자료를 이용해 검증한 결과, 이러한 분야에서 전문가의 의견이나 개입은 실제로 위험을 줄이는데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 분야를 예로 들면, 정기적으로 신체 검사를 하면 병의 위험에 대비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실제 검사에 들이는 노력과 비용 대비 실질적인 효과는 별로 없다. 검사를 통해 심각한 질병의 조짐을 미리 발견할 가능성은 매우 작으며, 설사 심각한 질병의 조짐을 미리 발견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궁극적으로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결정적 원인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투자 분야를 예로 들면, 주식시장의 움직임은 단기 및 중기로 볼 때 랜덤 워크에 가깝다. 헤지 펀드와 같이 펀드 매니져가 적극적으로 종목을 선택하여 투자하는 펀드의 수익율은 랜덤하게 종목을 선택한 가상의 경우의 수익율과 비교해 결코 높지 않다. 주식 투자에서 확실한 것은 장기적으로 투자하면 결국 수익을 얻는다는 사실뿐이다. 기업 경영 분야를 예로 들면, 장기적으로 계속 성공하는 기업은 거의 없다. 새로운 혁신이 계속 나오면서 과거에 성공하던 기업은 새로 부상하는 기업에 의해 대체된다.

미래를 예측하려는 시도는, 그분야에서 과거에 일어난 일로부터 패턴을 추출하여, 이 패턴을 미래에 확장해 적용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extrapolate). 전문가들은 과거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됬는지 자세히 설명하지만, 미래에 일어날 일을 예측하는데는 무력하다. 미래에 일어날 일에 영향을 미칠 다양한 요인들을, 과거에 일어난 사건으로부터 유추하는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은 크게 두가지 특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사건이 비교적 자주 발생하며, 위험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고, 변화의 범위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는 경우이다. 집에서 직장까지 걸리는 통근시간, 특정 시간대에 어느 지역의 전기 사용량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러한 사건의 불확실성, 즉 예측치의 분포의 변이 variation 는 정규분포를 보이기 때문에, 불확실성을 어느 정도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다. 둘째는, 드물게 발생하지만 피해의 규모가 매우 큰 사건이다. 이러한 사건은 언제 어디에서 일어날지 미리 예측할 수 없으므로 대비하기 어렵다. 대규모 지진, 금융 버블의 붕괴,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러한 사건도 집합적으로 보면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대규모 지진이 일어나고, 금융 버블이 발생하는 것은 과거의 경험에 의해 앞으로도 발생하리라 예측할 수 있는데, 문제는 구체적으로 언제 어디에서 일어날지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현실에서 대부분의 사건은 이 두가지 성격의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뒤섞여 있다.

예측의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하여 몇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첫째는,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예측한 예측치들의 평균을 취하는 방법이다. 전문가의 의견, 수리적인 예측 모델, 직관적인 예측, 등 다양한 출처로부터 의견을 모아 평균을 취하면 개별 출처에 의존할 때보다 예측의 정확도가 높아진다. 중요한 것이 걸린 결정의 경우, 한 사람의 전문가의 견해에 따르기보다, 여러 전문가의 이차 의견을 구해야 한다. 둘째는, 과거의 유사한 사건들로부터 패턴을 추출하여 미래에 확장해 적용하는 방법을 사용할 경우, 과거의 사건들로부터 가급적 단순한 패턴을 추출하여야 한다. 많은 변수의 복잡한 모델을 구축할 경우, 과거의 사건은 잘 설명할 수 있겠지만, 이러한 모델을 미래에 확장해 적용하면 크게 빗나가게 된다. 이는 머신 러닝에서 "overfitting"의 오류라고 지칭한다. 몇개의 주요 변수만 포함한 단순 모델을 구축할 경우, 이것이 과거를 만족스럽게 설명하지는 못하겠지만, 이 모델을 미래에 확장해 적용했을 때 크게 빗나갈 위험 또한 줄어든다. 이렇게 객관적인 자료로 부터 몇개의 변수를 사용하여 구축한 단순 모델을 적용하여 예측하는 것이, 사람의 직관을 이용해 예측한 것보다 더 정확하다. 사람들은 인간의 직관이 객관적인 모델보다 더 정확하게 대상을 파악한다고 느끼지만, 이러한 막연한 느낌은 사람들이 가진 통제의 환상 illusion of control 에 불과하다. 인간의 주관적 평가와 직관은 상황에 쉽게 좌우되기때문에 객관적인 지표를 사용할 때보다 불확실성을 줄이기 어렵다.

예측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세번째 방법은, 관련 사건이 속하는 포괄적 범주의 평균을 추출한 다음, 이것에다 개별 사건의 추가적인 위험 요소를 고려하여 수치를 조정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위험의 확율을 과소평가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으므로, 관련 사건이 포함된 포괄적 범주의 변이에 두배를 곱하여 개별 사건에 적용할 것을 권고한다. 이 방법은 예측 전문가들이 쓰는 방법으로, 관련 범주의 기본 수치 base statistics 를 바탕으로 하여 ,개별 상황이나 추가적 정보에 맞게 약간씩 수정을 가하는 것이다.

아무리 불확실성을 줄이려 해도 세상과 인간의 삶은 기본적으로 불확실성이 많이 내포되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드물게 발생하지만 위험이 큰 사안은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대비할 수는 있다. 큰 지진은 드물게 발생하지만 지진 발생 가능성이 높은 지역에서는 내진 설계 등으로 피해를 줄일 수 있다. 대기업이 기존의 관행에 안주하면 파괴적 혁신을 들고 등장하는 새로운 기업에 의해 망한다는 것을 깨닫고, 끊임없이 혁신을 추구하면 이러한 위험을 어느 정도는 예방할 수 있다. 계속 노력하고 위험에 대비하는 사람에게 운이 따라온다는 것은 엄연한 진리이다. 드물게 발생하지만 큰 규모의 위험에 대해 미리 대비하는 사람만이 이러한 위험에 휩쓸려도 망하지 않는다.  

이 책의 처음에 우연의 힘을 막는 뾰족한 방법은 없다고 선언한다.  이책에서 제공하는 지식이 불확실성을 완전히 제거하지는 않는다고 경고한다. 그럼에도 체계적으로 불확실성을 줄여나가는 방법은 있다. 이 책은 특별히 새로운 지식을 제공하지는 않지만, 기존에 막연하게 알고 있던 것을 체계적인 분석으로 검증하고, 현실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지혜롭게 의사결정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논의에 반복이 많은 것이 흠이다. 

2023. 9. 22. 15:58

Robin Dunbar. 2021. Friends: Understanding the Power of Our Most Important Relationships. Little, Brown. 359 pages. 

저자는 진화심리학자이며, 이 책은 사람들의 친밀한 관계의 다양한 측면을 검토한다. 친밀한 관계를 형성 유지시키는 요인은 무엇인지, 최대 몇명까지 친구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 친구관계 맺기에서 남녀의 차이는 무엇인지, 등의 의문에 대해 저자의 연구결과를 중심으로 설명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은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 맺기는 도구적 목적에 한정되지 않는다. 타인과 정서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은 건강한 삶을 위해 필수적이다.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없으면 정신적으로 문제가 발생하며 병에 쉽게 걸리고 일찍 죽는다. 

침팬지는 깨어있는 시간의 거의 5분의 1을 다른 침팬지의 털을 골라주는 일 grooming 에 사용한다. 다른 침팬지의 털을 골라주는 일은, 단순히 위생적인 목적을 넘어, 그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수단이다. 인간 역시 타인과 관계 맺는 일과 연관된 활동에 깨어있는 시간의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일은, 진화적 관점에서 볼 때, 협동을 통해 생존의 경쟁력 fitness 를 높이는 것이다. 자신이 위험에 처하거나 도움을 필요로 할 때, 평소 친밀한 관계를 맺은 타인은 기꺼이 자신을 도와주는 반면, 친밀하지 않은 타인은 도와주려 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자신과 친밀한 관계의 사람, 즉 친구와 함께 할 때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바로 이러한 진화적 필요에 뿌리를 두고 있다. 사람들은 즐거움을 주는 행위를 적극적으로 추구하기 때문에, 친밀한 사람과 관계 맺기에 그렇게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이다.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일은 인지적으로 매우 복잡한 작업이다. 다른 인간을 상대하는 것은 인간이 아닌 사물을 상대할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인지 능력이 필요하며 높은 자원 소모를 수반한다. 타인과 적절히 상호작용을 하려면 상대의 생각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theory of mind). 상대가 나에게 왜 저렇게 하는지, 상대의 행위에 대해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이 적절한지,나의 행위에 대해 상대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반응할지, 이 상황에서 상대에게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등등을 모두 추론하는 일은 고도의 인지 활동이다. 인간은 최대 다섯명까지 타인의 마음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다.셰익스피어의 희곡이나 유명한 소설에서 동시에 다섯명의 생각이 함께 다루어지는 것을 종종 본다.

타인의 마음을 읽는 기술은 5살 때부터 시작해 20대 초반까지 서서히 발달한다.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은 사람의 생각을 동시에 읽을 수 있으며, 타인의 생각를 복잡하게 추론하는 능력과, 자신의 충동적 사고와 행위를 제어하는 능력도 발달한다. 20대 중반을 넘으면 타인의 마음을 읽는 기술이 더 이상 크게 진전되지 않으며, 타인과 상호작용을 할 때 크게 머리를 쓰지 않고도 어느 정도 타인의 마음을 읽으면서 사회활동을 영위한다. 성장기에 또래들과 학교 혹은 놀이를 통해 집단 활동을 하면서, 타인의 마음을 읽는 기술과 자신의 충동적 반응을 제어하는 기술을 익힌다. 이러한 기술을 웬만큼 익히지 못하면 사회생활이 어렵다. 사이코 패스나 자폐증 환자는 타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추측하지 못하거나 타인의 생각에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에 원만한 사회관계를 영위하지 못한다.

인간의 인지적 능력의 한계 때문에, 사람들이 타인과 관계를 맺는 수는 제한되어 있다. 상대와 공감 simpathy을 주고 받는 최대 숫자는 15 명이며, 최대 150명까지의 사람들과 비익명적인 관계, 즉 상대가 누구인지를 인지하는 관계를 형성한다. 사람들의 전화통화 기록을 분석한 결과, 전체 사회관계에 쏟는 시간의 40%를 5명과 하며, 15명의 사람들과 전체 시간의 60%를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들이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범위가 좁은 이유는 인간의 인지적 자원 및 시간의 한계 때문이다.

친밀한 관계는 크게 두 종류, 즉 가족과 친구 관계로 나뉘는데, 두 관계는 성격이 다르다. 대체로 가족 관계가 친구 관계보다 더 친밀하다. 가족 관계의 유지를 위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투입하여 관리하지 않아도 되며, 갈등이 발생하여 일시적으로 소원해져도 다시 복원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친구 관계는 지속적으로 시간과 관심을 투입하여 관리하지 않으면 금방 소원해지며, 일단 멀어지면 다시 가까워지기 어렵다.

유사한 특성의 사람들은 우연히 만났을 때 서로 친구 관계를 맺기 쉽다. 다음 일곱가지의 차원 각각이 관계의 친밀도를 높이는 데 기여한다. 유사한 언어/방언을 구사하는가, 같은 지역에서 성장했는가, 같은 교육과 직업 경험을 가지고 있는가(특히 의사와 변호사는 각각 그들끼리 노는 성향이 강하다), 유사한 취미와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유사한 세계관(도덕적 가치관, 종교, 정치적 견해)를 가지고 있는가, 유사한 음악적 취향을 가지고 있는가, 유사한 유머감각을 가지고 있는가. 이 일곱가지 차원 중 유사한 부분이 많을 수록 친구를 맺을 가능성이 높다. 

여성은 남성보다 친밀한 친구를 가진 경우가 더 많으며 관계가 더 깊다. 여성이나 남성이나 친밀한 관계의 70~80%는 동성 친구이다. 친밀한 관계의 성격에 남녀간 차이가 있다. 여성은 주로 대화와 잦은 접촉이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기제인 반면, 남성은 함께 참여하는 활동이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기제이다. 즉 남성은 같이 운동을 하고, 같이 술을 마시고,  같이 일을 하고, 등 활동을 함께하면서 친구 관계를 유지하는 반면, 여성은 함께 참여하는 활동에 더하여 서로 대화를 많이 하는 것이 친구관계를 유지하는 데 핵심이다. 반면 친한 남성들간에는 함께 활동을 하는 동안 서로 대화를 하지 않아도 문제가 없다. 여성은 친한 친구와 헤어지면 다른 사람이 그를 대체하지 못하는 반면, 남성은 친한 친구와 헤어져도 집단활동에 참여하는 다른 사람이 그를 대치할 수 있다.

친밀한 관계는 직접 만나서 감정을 교환하는 것이 관계 유지의 핵심이기 때문에, 온라인 접촉이 대면 접촉을 대치하지 못한다. 전화나 SNS 등의 온라인 접촉은 오프라인 관계를 관리하는 보조적인 수단일 뿐이다. 상대의 눈을 보며, 상대와 함께 웅직이는 것에서 사람들은 감정적 만족을 느낀다. 서로 큰 소리로 웃고, 함께 노래하고, 함께 춤을 추고, 단체로 행진을 하고, 등등 리듬을 맞추어 함께 행위를 하는 가운데 공감, 상호 신뢰, 집단 결속감을 느낀다. 전통적으로 모든 사회가 이러한 함께 하는 활동을 주기적으로 갖는 것은 집단의 생존을 위하여 필수적이다.

저자는 전문 연구자이며, 책 내용의 대부분을 구체적인 연구 결과의 인용으로 채우고 있다. 전반적인 이야기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수많은 연구 결과에 대한 설명을 세세히 따라가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그가 제시하는 사회적 두뇌 가설 (social brain hypothesis), 즉 인간의 두뇌가 발달하게 된 결정적 원인은 집단생활에 소요되는 고도의 인지 활동 때문이라는 설명은 설득력이 크다.

2023. 9. 16. 17:19

Paul Ormerod. 2005. Why Most Things Fail: Evolution, Extinction and Economics. Pantheon Books. 245 pages.

저자는 경제학자이며, 이 책은 대부분의 회사가 망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이는 생물계에서 지구상에 존재했던 대부분의 종이 소멸한 것과 비슷한 이유이다. 행위자들의 네트워크 속에서 나타나는 합리적으로 예측하고 대응할 수 없는 수준의 복잡성이 궁극적 원인이다.

회사들이 망하는 것은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다. 미국에서 창업한 회사 중 10%가 첫 1년을 넘기지 못하고 망한다. 창업한지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초기의 혼란과 시행착오를 극복하면, 이후에는 창업 이래 흐른 시간과 망할 위험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없다. 그러나 여하간 대부분의 회사는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망한다. 미국에서 100년전에 상위 100대 회사 중 현재까지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은 회사는 절반에 불과하며, 여전히 상위 100대 기업에 든 경우는 겨우 19개이다.

회사가 망하는 주된 이유는 회사 자체의 결함 때문이기보다는, 회사들 사이에 상호작용 속에서 경쟁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회사들은 서로 연결된 네트워크 속에서 활동하는데, 상대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전략을 수시로 조정한다. 문제는 나의 행위에 대해 상대가 취할 선택지가 다양하고, 여러 상대를 동시에 다루어야 하기 때문에, 합리적으로 계획하고 대응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네트워크 속에서 특정 행위자가 추진하는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고 어그러질 가능성은 무척 크며, 회를 거듭하며 상호작용하다 보면 결국 이러한 위험이 회사를 망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주어진 상황에 아무리 합리적으로 대응한다고 해도 예기치 못한 충격으로 인해 망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행위자들 사이에 상호작용은 매우 복잡한 상황을 만들어 낸다. 게임 이론에 따르면, 행위자들 사이의 상호작용에서 발생하는 복잡한 상황에 합리적으로 대응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예컨대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 각 참가자에게 최선의 전략이 참가자 전체에게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현실에서 행위자들은 게임의 규칙을 수시로 바꾸면서 자신에게 최선의 전략을 추구하기 때문에, 상대의 행위를 예측하고 합리적으로 대응하는 일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사람들은 대체로 주어진 상황에서 주위를 돌아보고 다른 사람들이 한 행위를 모방하는 방식으로 행동한다. 이러한 행위 방식은 사람들 사이에 선호가 연결되는 preference attachment 효과를 가져오며, 이는 선호 대상의 객관적인 질과는 관계없이 열악한 선택을 가져오기도 한다.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행위자들이 최선을 다해서 선택한 결과는 랜덤하게 선택한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다.

행위자들은 상호작용을 통해 생존 적응력 fitness에서 상호간 긍정적 혹은 부정적 영향을 주고 받는다. 외생적인 충격과 내생적인 요인 때문에, 생물 종이나 회사의 생존 가능성에 굴곡 fluctuation 이 발생한다. 어떤 종에서 우연히 약간의 변이가 발생하고, 이것이 다른 종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영향이 파급되고, 그것이 다시 원래의 종에게 영향을 미치는 과정이 반복되면, 그 와중에 일부 종이 멸종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약간의 종 혹은 회사가 멸종하는 일은 항시 일어나는 반면, 많은 종 혹은 회사들이 한꺼번에 멸종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지만 가끔씩 발생한다. 그 당시 생존하는 종 중 20% 이상이 멸종하는 대규모 멸종이 지구의 역사에서 지금까지 다섯 번이나 발생하였다. 종이 멸종하는 규모와 빈도 간의 관계를 보면 지수의 법칙 power law 이 작용한다.

행위자들이 네트워크 속에서 상호작용하면서 일부가 멸종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라면, 멸종을 피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기존의 네트워크에 속한 행위자들에게 익숙한 것, 익숙한 방식이 아닌 새로운 것, 새로운 방식을 들고나오는 것이 생존 가능성을 높인다. 즉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기존에 상대의 대응을 넘어서는 새로운 충격파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여러 상대의 다양한 대응이 초래하는 불확실성과 충격을 넘어서는 길은, 내 쪽에서부터 적극적으로 충격파를 만들어 내어 복잡한 상황이 초래하는 부정적인 요소를 상쇄하는 것이다.

이 책은 자연의 복잡계 complex system 현상을 회사라는 경제행위에 적용한 흥미로운 글이다. 책 자체는 산만하게 쓰여서 저자의 서술이 그리 명확하게 이해되지 않는데, 이는 아마도 이 주제에 관한 논의가 아직 거친 수준에 머물러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2023. 9. 8. 12:15

Avi Tuschman. 2019(2013). Our Political Nature: The Evolutionary Origins of What Divides US. Prometheus Books. 413 pages.

저자는 인류학 배경의 정치컨설턴트이며, 이 책은 사람들의 정치적 성향의 배경에는 성격 특성이 있으며, 사람들의 성격 특성은 진화적 적응의 결과라고 설명한다. 어떤 사람이 보수적 혹은 진보적인 이유는 그의 성격과 연관되는데, 사람들 사이에 다양한 성격의 분포는 인류의 오랜 진화적 적응의 결과이다. 모든 사회에서 보수와 진보가 균형을 이루는 이유는, 이 두가지 상반된 성향이 함께 하여 인류의 진화적 적응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여러 사회에서 사람들의 정치 성향을 측정한 결과, 보수에서 진보까지의 연속선에서 정규분포의 모습을 그린다. 사람들의 정치 성향은 그들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반영하기는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부자 중 진보적인 성향을 보이는 사람이 적지 않으며, 가난한 사람 중에는 자신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보수 정책을 지지하는 경우가 흔하다. 소득과 재산의 분포는 하위로 심하게 편향된 분포이며, 이는 정치적 성향의 분포와 매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도, 경제적 이익과 정치 성향은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사람들의 정치 성향은 성격 특성을 반영한다. 성격을 구성하는 다섯가지 차원 중, 개방성(openess)과 성실성(conscienciousness) 의 두가지가 정치성향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참고로 성격을 구성하는 나머지 세 차원은 외향성(extraversion), 상냥함(Agreeableness), 신경질적임(Neuroticism)이다. 성격이 개방적일수록 진보적 정치성향을 보이며, 성실할수록 보수적 정치성향을 보인다. 사람들의 성격 특성은 일생동안 크게 바뀌지 않으므로, 사람들의 정치 성향 역시 일생동안 크게 바뀌지 않는다. 한 사회의 정치 경제 상황에 따라 정치 성향의 분포가 전체적으로 왼쪽 혹은 오른쪽으로 약간 이동하기는 하지만, 외적 상황에 관계없이 사람들의 정치성향은 여전히 정규분포를 유지한다. 사람들의 성격 특성은 많은 부분 부모로부터 물려받는다. 일란성 쌍둥이의 성격과 정치 성향은 서로 매우 흡사한 반면, 태어나서 떨어져 성장한 이란성 쌍둥이의 성격과 정치 성향은 서로 매우 다르다는 사실에서, 성격 특성과 정치 성향은 유전자에 의해 좌우된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사람들의 정치적 성향을 결정하는 세가지 차원이 있다. 부족주의(tribalism), 불평등을 허용하는 정도(tolerance of inequality), 인간 본성에 대한 인식(perceptions of human nature)이 그것이다. 이 각각의 차원은 생물학적인 진화적 적응(evolutionary fitness)과 연관되어 있다.

먼저 부족주의를 보자면, 이는 자민족 중심주의(ethnocentrism), 종교성(religiosity), 성에 대한 개방성(sexuality)으로 구성된다. 자신이 속한 집단을 우선시하고 타 집단을 배격하는 태도를 가진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자신의 유전자를 후세에 퍼뜨리는데 유리하다. 친족선택이론 (kin selection)이 이러한 사실을 입증한다. 자신과 유전적으로 연관된 사람을 중시할수록 자신의 유전자가 후세에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이론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자신의 집단 내에서만 폐쇄적으로 살아간다면,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떨어짐으로, 어느 정도의 개방성이 필요하다. 새로운 기회를 찾아 타집단과 새로운 환경에 도전하는 태도가 유전자를 퍼뜨리는데 도움이 된다. 따라서 모든 사회는 부족주의에 편향된 보수적 정치성향과 새로운 환경에 개방적인 진보적 정치성향이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고 있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신과 유사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선호하지만, 호기심이 많고 약간은 자신과 다른 사람을 선호한다. 어는 사회에서나 지나치게 보수적이지도 지나치게 진보적이지도 않은 중도 성향의 사람이 대다수인 반면, 극단적으로 보수적이거나 진보적인 사람이 소수를 이루는 이유이다.

모든 사회는 사회 구성원, 특히 여성의 성생활을 엄격히 관리한다. 남성의 분방한 성생활에는 비교적 관대한 반면, 여성의 성행위는 엄격히 제한을 한다. 여성은 후손을 낳는 주체임으로 이들의 성생활을 엄격히 관리하는 것이 자신의 유전자를 퍼트리는데 핵심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모든 사회는 남성이 여성의 활동을 제한하고 여성을 지배하는 가부장적인 위계를 형성하고 있다. 부족주의적이며 보수적 정치성향을 가진 사람은 여성의 성을 엄격히 제한하고 가부장적 권위를 지지한다. 그러나 여성의 경제활동은 가족의 생존에 큰  도움을 줌으로 여성의 활동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은 진화적 적응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여성의 자유를 허용하고 남성과 여성의 권위 격차를 줄이는 진보적 정치 성향 또한 진화적 적응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도시화와 산업화로 여성의 경제활동 기여도가 높아지고, 여성이 폐쇄적이며 권위적 가족관계을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이 높아지면서 남녀간의 권력 격차는 줄고 있으며, 그에 따라 정치성향은 전체적으로 진보적인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람들이 각자 능력에 따라 공정하게 보상받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가난이나 성공의 책임은 구조적 환경의 탓인지, 가족 내에서 부모가 권위를 가지고 자식을 양육하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부모가 자식을 자신과 대등하게 대우하는 것이 좋은지,  등에 대해 보수와 진보는 의견이 서로 엇갈린다. 사회와 가족이 원활하게 돌아가려면 이렇게 서로 상반된 태도의 사람들이 모두 필요하다. 어느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울게 되면, 사회와 가족은 원활하게 돌아갈 수 없다.

사람의 본성이 상호 협조적 (cooperative)인지 아니면 경쟁적(competitive)인지에 관해, 철학자에서부터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었다. 이 두가지 상반된 생각은 인간의 생존, 유전자의 확산에 필수적이다. 보수주의자는 인간의 본성을 경쟁적으로 보고, 진보주의자는 협조적으로 본다. 인간의 본성을 맹목적으로 협조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으면 반칙을 저지르는 (cheating)사람에 의해 망하며, 지나치게 경쟁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으면 협동을 통한 시너지를 거두지 못함으로,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자연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모든 사회에는 협조적이면서 경쟁적인 요소를 동시에 품고 있으며, 인간의 본성에 대해 중도적인 정치 지향의 사람이 다수를 차지한다.

저자는 사람들의 정치지향의 결정 요인을 성격 특성 및 진화적 적응에서 찾는 과정에서,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거의 모든 논의를 인용하고 있다. 그 결과 이 책은 모든 다양한 잡다한 지식이 뒤범벅되어 있다. 저자의 박학다식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듯하다. 논의를 좀더 체계화하고, 핵심적인 증거 위주로 설명을 집약했다면 더 좋은 책이 되었을 것이다.

2023. 8. 29. 16:38

John Mearsheimer. 2018. The Great Delusion: Liberal Dreams and International Realities. Yale University Press. 234 pages.

저자는 국제정치학자이며, 이 책은 미국의 외교정책의 실패 원인을 자유주의적 패권 (liberal hegemony) 추구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자유주의 liberalism, 민족주의 nationalism, 현실주의 realism 원칙을 대비하여 설명한다.

미국은 대표적인 자유주의 국가이다. 자유주의는 개인을 중심에 두고, 개인의 천부적 인권 inalianable rights, 개인의 자유 individual freedom, 및 재산의 사유 private ownership 을 축으로 하는 이념이다. 개인의 선호에 차이를 허용하며 tolerance, 의견 차이와 이익 충돌을 조정하기 위해, 개인보다 상위에 있는 권위체인 국가를 필요로 한다.  존 로크의 천부인권과 계약 이론이 이를 대표한다. 이러한 자유주의 이념은 민주주의와 결합하여, 인류 역사상 가장 살기좋은 자유민주주의 liberal democracy 정치 체제를 탄생시켰다. 서구의 선진 산업국가들은 모두 이러한 이념을 따르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다.

민족주의란 자신이 속한 민족 nation의 생존과 번영을 개인의 자유와 권리보다 우선시 하는 이념이다. 개인의 권리와 민족의 생존이 충돌할 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개인보다는 민족을 우선시한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자신이 속한 집단의 생존을 보편적인 인권보다 감정적으로 더 가깝게 느낀다. 다른 나라 사람들의 인권보다는 내 국가의 생존에 더 목숨을 건다. 민족주의는 민족의 생존과 자주적 결정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주권을 보유한 민족 국가 nation-state를 탄생시켰다.  민족과 국가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 즉 다민족 국가나 국가가 없는 민족은 모두 갈등의 위험을 안고 있다.

국가간의 관계, 즉 국제정치는 국내 정치와는 다른 역학이 작용한다. 국제정치에서는 국가 간에 갈등이 발생할 때 이를 강제적으로 조정할 권위적 존재가 없다. 쉽게 말해 무정부상태 anarchy 이다.  국가들이 자신의 이익에 따라 마음대로 행동해도 유효하게 제제할 수 없다.  소위 정글이라 표현하는, 힘의 원리만이 작용하는 장이다. 국제기구나 국제법이란 국가들간에 자발적 합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므, 힘있는 국가가 이를 위반해도 강제할 수 없다.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국제정치에서 모든 국가들은 자신의 안전을 스스로 확보 self-help 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합종연횡, 즉 힘이 약한 국가들이 연합하여 힘있는 국가와 힘의 균형을 이루는 방식 balance of power 으로 각 국가들은 안보 위험을 해결한다.

미국은 1991년 소련이 무너진 이후 세계에 경쟁자가 없는 일극체제 unipolar system의 정점에 올라섰다. 일극체제의 정상에 올라선 이후, 전보다 더 미국의 자유주의 원칙을 세계 각국에 전파, 강요하였다. 문제는 미국의 개입을 받은 나라 사람들이 미국의 간섭을 환영하지 않고 저항한다는 점이다. 미국이 침입하여 그 나라의 정치와 사회를 미국식, 즉 자유민주주의로 바꾸어 놓으려 하면, 민족주의적 감정을 자극하여 반발을 초래한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리비아, 시리아, 조지아, 우크라이나, 등 미국이 개입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엄청난 살상과 혼란이 발생하여, 미국이 개입하기 이전보다 상황이 훨씬 더 나빠졌다.

미국의 외교 엘리트들은 미국의 힘을 과신하고,  미국의 이념과 체제를 세계에 전파하는 것이 세계를 평화롭게 하는 길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러나 다른 나라를 개조할 수 있는 미국의 능력은 제한적이며, 자유주의를 전파하겠다고 남의 나라 일에 개입하는 것은 전쟁과 혼란을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미국의 국익이 직접적으로 연관된 나라에 최소한으로 개입하는 정도에서 멈추어야 한다. 미국이 자유주의를 전파하려는 외교정책을 포기할 때, 세계는 더 평화로워질 것이다. 

국제정치는 힘의 원칙에 따라 움직이지만, 미국이 지배하는 세계는 예외적으로 평화로울 것이라는 주장도 한계가 있다. 미국은 평화와 번영과 인권을 사랑하는 자비로운 국가 benign country 이므로, 미국의 자유주의 패권 추구를 긍정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미국 또한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자국의 이익에 따라 행동하며, 자국의 이익에 반할 때에는 언제고 상대를 공격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미국이 보편적인 이념인 자유주의를 숭배하지만, 미국인들이 외국인의 목숨과 권리와 자유를 미국인의 목숨과 권리와 자유만큼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미국의 자유주의는 제한적이며,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개입을 받은 외국인들은 미국의 간섭을 환영하지 않는다. 미국 역시 자신의 민족을 우선시하는 민족주의 원칙에 따라 행동하므로, 다른 나라 사람들도 민족주의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저자는 현실주의 국제정치를 강력히 옹호하는 사람이다. 미국의 이상주의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이를 포기할 때 세계는 물론 미국 국내사정도 더 나아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트럼프가 들어선 이후 미국 우선주의 America First 를 미국의 외교 무역정책에 노골적으로 추진하는 것을 옹호한다. 그러나 미국이 실패하고 잘못한 부분도 많지만, 무어라고 해도 한국은 미국의 자유주의 외교정책의 최대 성공작이다. 넉넉한 형님같이 한국에 베풀어준 미국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한국은 생각하기 어렵다. 물론 한국은 냉전체제에 공산주의에 대적하는 미국의 쇼윈도에 걸린 모델이 된 덕분에 운좋게 잘 풀렸지만 말이다.

2023. 8. 25. 21:14

Brian Greene. 2020. Until The End of Time: Mind, Matter, and Our Search for Meaning in an Evoluving Universe. Vintage. 326 pages.

저자는 물리학자이며, 이 책은 우주의 시작에서부터 소멸까지 서술하면서, 그 속에서 생명체와 인류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인류의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저자 나름의 견해를 제시한다. 진화, 엔트로피, 중력이 전과정을 지배한다.

우주는 시간이 지나면서 엔트로피가 높아지는데 (열역학 제2법칙), 엔트로피가 높아진다는 것은 무질서의 증가, 혹은  가능한 경우의 수가 증가하는 현상이다. 우주는 엔트로피가 낮은 단계인 빅뱅에서부터 시작하여, 우주 공간으로 물질이 확산되면서 엔트로피가 증가한다. 전반적으로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속에서, 부분적으로 엔트로피가 낮은, 즉 질서있게 조직된 것들이 출현한다. 별이나 생명체가 바로 그것이다. 별은 우주 공간에 떠다니는 물질들이 중력에 의해 서로 끌려 뭉쳐서 만들어진다.

생명체란, 자기복제를 하는 분자들이, 변이를 하고, 그들 간의 경쟁 속에서 더 복제를 잘하는 놈이 생겨나고, 그런 것들이 서로 합쳐져서 자기복제를 더 잘하게 되면서 생성됐다. 생명체는 환경으로부터 에너지를 공급받고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 (metabolism)을 통해 질서를 유지한다. 생명체가 활동하면 엔트로피가 높아지는데, 생명체는 이러한 높아진 엔트로피를 환경으로 배출함으로서, 내적으로 낮은 수준의 엔트로피, 즉 질서를 유지한다.

사고와 의식을 포함한 인간의 모든 활동은 물리적 법칙을 따르며, 물리적 입자들의 상호작용에 다름이 아니다. 그러나 물리적 입자의 집합체의 활동을 적절히 설명하기 위해서는, 물리적 입자의 수준을 넘어서는 다른 수준의 설명이 효과적이다. 물리적 최소 입자, 분자, 세포, 생명체, 인간과 같이, 집합적으로(aggregate) 상위 수준에 적합한 설명을 하기 위하여, 물리학, 화학, 생물학, 심리학의 이론이 동원된다. 예컨대 인간의 자유의지는 인간의 수준에서는 적합한 설명이지만, 인간을 구성하는 물리 입자의 수준에서는 타당하지 않다. 모든 설명을 물리적 입자의 수준으로 환원한다면, 집합적인 상위 수준의 활동을 설명하는 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질문에 적합한 수준의 설명을 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생존을 위한 진화의 과정에서, 인간은 언어와 이야기(story)를 발전시켰다. 인간의 언어는 집단적 사회활동을 돕기 위해 발달했으며, 이야기 역시 자연과 인간사에 대응하는 활동 능력을 향상시키기 때문에 발달하였다. 진화의 목적은 생존과 후손의 번영 (survive and thrive) 에 있지, 진리 (truth)를 추구하는 데 있지 않다. 생존과 진리 추구는 서로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의 진화의 과정에서 발달시킨 행동과 지식은 생존에는 도움이 되지만, 반드시 객관적으로 진실일 필요는 없다. 특히 인간이 감각으로 인식할 수 없는 분야에서는, 인간의 감정과 지식은 객관적 진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것이 인간의 믿음이다.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왜 세상이 그렇게 전개되는지에 대해, 인간은 생존을 위하여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 냈는데, 이는 객관적 진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신화나 종교와 같이 과거에 믿었던 것들이 그릇되다고 밝혀졌다.

먼 미래에 우주는 종말을 맞을 것이다. 태양은 미래에 팽창하여 수성과 금성을 삼켜버리고, 그 후에는 수소와 헬륨이 다 소진되어, 탄소와 산소의 재 덩어리가 될 것이다. 지구는 이러한 태양에 끌려서 함몰할 것이며, 태양은 다시 은하수 속에 함몰할 것이다. 이러한 함몰 과정이 우주에서 계속 진행되다가, 마지막에는 물질의 최소단위인 중성자까지 부서져 버리고, 결국 어떤 것도 아무런 움직임도 없는 절대 0도에 근접한 차가운 종말을 맞을 것이다. 이러한 모든 과정은 물질간 중력의 힘이 작용하여 전개된다. 

이렇게 인류의 종말, 생명체의 종말, 우주의 종말이 예정되어 있는 데, 그 속에서 인간의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모든 인간이 궁극적으로 소멸된다고 하면, 사실 현재 바쁘게 돌아가는 모든 인간 활동은 의미가 없다. 기여할 대상이 없고, 봐줄 사람이 없고, 물려받을 후손이 없는, 인간의 노력이란 헛될뿐이다. 사실 냉정하게 따지면, 인간의 활동이란, 물리적 법칙을 따라 움직이는 물리 입자의 상호작용일 뿐이므로, 의미를 묻는 것이 적절치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존재를 물리학의 관점에서 달리 볼 수도 있다. 인간의 존재란 빅뱅에서부터 시작한 우주의 전개과정 속에서 매우 매우 가능성이 희박하게 출현한 물리 입자들의 조직이다. 다르게 전개될 가능성이 훨씬 더 컸지만, 인간은 이러한 가능성을 거스르고 출현하였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가능성 속에서 출현한 존재와 활동, 즉 인간의 삶은 매우 소중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러한 소중한 가치는 인간의 수준에서만 그러하다. 물리 입자의 수준에서는 단순히 하나의 확률적 가능성이 실현된 것에 불과하다. 저자는 이러한 것을 생각하면서 현재를 소중하게 충실하게 살 것을 제안한다.

저자는 전문적인 물리 학자이면서 훌륭한 이야기 꾼이다. 많은 비유와 재미있는 사례를 곁들이면서 전문적인 이야기를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과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살면서 느낀 것들을 곳곳에서 소개하면서, 자신의 연구와, 자신이 읽은 것과, 자신의 생각과, 지나온 자신의 삶의 정리가 결합된 글을 썼다. 그의 전문 분야가 아닌 진화, 언어, 종교, 창조성, 등에 관한 서술은, 그의 독서를 통해 얻은 각 분야의 논의를 빌려와 서술하기 때문에 쉽게 이해가 됬다. 그러나 후반으로 가면서 물리학 이론을 총동원하여 우주의 종말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삶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야말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것은 욕심이 좀 지나친 것 같다. 자신의 분야가 아닌 부분은 뺐으면 더 좋은 책이 되었을 것이다.

2023. 8. 15. 11:51

Erez Aiden and Jean-Baptiste Michel. 2013. Uncharted: Big data as a lens on human culture. Riverhead Books. 212 pages.

저자들은 데이터 과학자들이며, 이 책은 구글의 Ngram Viewer 프로그램을 이용해 언어, 명성, 검열, 기억 등의 주제에 관해 분석한 결과를 소개한다. 

구글은 2000년대 중반부터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책을 스캔해 디지털 아카이브를 만드는 Google Books 프로젝트를 진행해서, 이 책이 쓰일 당시 3천만권의 책을 아카이브하였다. 저자들은 MIT 연구소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구글의 책 아카이브에서 특정 단어가 사용된 빈도를 추적하여 사회문화의 변화를 파악하는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였다. 그들의 노력이 결실을 거두어, 이후 일반인이 웹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Ngram Viewer 프로그램이 구글의 무료 프로그램으로 도입되었다.

 그들의 첫번째 분석은 언어의 진화과정을 추적하는 것이다. 영어에 일반동사와 불규칙 동사의 차이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인도유러피안 어족에 속하는 언어들은 모두 원래 동사들이 불규칙하게 시제 변환을 하였다. 그러나 기원전 500년경부터 -ed 를 붙여서 시제변환을 하는 방식이 도입되었는데, 이후 이러한 변환 방식이 주류로 자리잡았고, 기존의 불규칙 동사는 점차 규칙 동사로 전환되었다. 현재까지 불규칙 동사로 남아있는 것은 사람들이 아주 많이 사용하는 170개 남짓에 불과하다. 이들은 일상에서 자주 사용되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계속 새로이 상기되기 때문에, 규칙동사로 바뀌는 운명을 피할 수 있었다. Ngram Viewer를 통해 언제부터 사람들이 불규칙 동사를 점차 규칙 동사의 방식으로 사용하게 되었는지 추적할 수 있다. 또한 이 프로그램을 통해 특정 단어가 탄생하고 소멸하는 과정을 추적함으로서, 유행과 생활방식의 변화를 간접적으로 추정할 수 있다.

두번째 분석은 '명성' fame 의 발전과정을 추적하는 것이다. 명성은 데뷔, 도약, 정점 도달, 쇠퇴 라는 생애주기를 보인다. 매년 최고의 명성을 기록한 사람에 대하여, 그들의 명성이 전개된 과정을 분석한 결과, 명성은 데뷔에서부터 정점까지 매우 가파른 성장 곡선을 그리며, 정점을 지나게 되면 서서히 감소한다. 근래로 올수록 데뷔에서 정점에 도달하는 기간이 짧아지며, 과거보다 더 이른 나이에 정점에 도달한다. 분야에 따라 곡선의 모습이 다른데, 정치인이 가장 높은 정점에 도달하며, 가장 늦은 나이에 유명해진다. 반면 연예인은 젊은 나이에 정점에 도달하며 정점이 높지 않다. 한편, 유명했던 사람이나 사건에 대해 Ngram에서 갑자기 빈도가 줄어드는 모습을 통해, 검열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세번째 분석은 역사적 사건이나 사람에 대한 집단 기억의 궤적을 확인하는 것이다. 특정 사건에 대한 집단 기억은 사건 초기에 강도가 높으며, 일단 고점을 지나면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감소하는 곡선을 그린다. 문명의 이기나 새로운 아이디어가 받아들여지는 과정의 경우, 대체로 개발된지 상당한 시간이 흘러서야 인식이 확산된다. '진화' 와 같은 단어는 20세기 초반에 정점을 지나 쇠퇴하는 듯이 보이다가, 근래에 들어 더욱 활성화되었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달로 인간의 행위에 대한 디지털 기억이 넘쳐나고 있다. 사생활이나 저작권의 침해의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엄청난 양의 인간 행위에 대한 기록을 잘 이용한다면, 인간에 대한 이해를 깊이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구글의 Ngram Viewer 프로그램은 그러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책은 컴퓨터 기술에 밝은 젊은 학도들이 번득이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적용해 본 결과를 가볍게 서술한다. 컴퓨터와 인터넷을 통해 엄청난 양의 데이터가 쌓이고 있지만, 이를 이용하는 것은 넘어야 할 산이 많고, 아직 시작 단계이다. 

2023. 7. 25. 11:31

Daniel Lieberman. 2013. The Story of the Human Body: Evolution, Health, and Disease. Vintage Books. 367 pages.

저자는 진화 생물학자이며, 이 책은 인간의 진화 과정을 통해 인간의 신체가 만들어진 과정을 설명하고, 현대 사회가 인간의 신체에 어떤 문제를 야기했으며, 이러한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논의한다.

유인원의 진화과정에서 현대 인류의 가지가 갈라진 두가지의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하나는 두발로 일어서서 다니는 직립보행이며, 두번째는 신체의 다른 내장기관에 비해 두뇌가 지나치게 커진 것이다. 기후 환경의 변화가 이러한 진화를 촉발시켰다. 지구의 기온이 떨어지면서 아프리카의 숲이 줄어들자, 일부 유인원들이 나무에서 내려와 숲을 벗어나 초원 지대에서 활동하게 되면서 직립보행이 발달하였다. 수렵 채취를 하여 다양한 먹거리 자원을 확보하고, 불을 이용해 음식을 소화하기 쉽게 익혀먹게 되면서, 인류의 내장 기관은 줄어든 대신, 집단적 활동을 위해 요구되는 두뇌 활동이 발달하게 되었다.

농업과 뒤이은 산업혁명은 인류의 생활환경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농업으로 생산량이 증가하면서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였다. 그러나 농업 사회에서는, 음식의 다양성이 줄어들고, 홍수나 가뭄과 같은 자연재해에 취약해졌으며, 밀집 거주로 인해 질병이 빈발하고, 장시간의 고된 노동 등으로, 삶의 질은 이전 수렵채취 시대보다 열악해졌다. 19세기 산업화로 인구 증가는 지속되었지만, 도시의 삶은 매우 비위생적이고 열악했다. 20세기 중반 이후에야 비로서 선진 산업국에서 보통 사람들의 삶의 질이 수렵채취 시대 사람의 수준을 넘어서게 되었다. 이는 사람들의 키의 변화를 통해 확인된다.

인간의 몸은 오랜 기간 동안 수렵채취 단계를 거치면서 그러한 삶의 방식에 맞추어 만들어져 있다. 이러한 인간의 몸은 현대 선진 산업사회의 삶의 방식과 맞지 않는 문제를 발생시키기 때문에, 현대인은 과거에는 보기 어렵던 다양한 새로운 질병으로 고생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병을 "부정합 질병" mismatch disease 라고 통칭한다. 당뇨병, 순환기 질환, 암, 허리 통증, 골다공증, 평발, 근시, 치통, 등등. 인간의 내장 기관은 나이가 들면 고장날 가능성이 높아지지만, 수렵채취인들에게는 볼 수 없었던 현대인의 새로운 질환은 단순히 노화 때문은 아니다.

수렵채취 시대의 사람과 비교할 때 현대인이 새로이 고생하는 질병의 원인은 크게 세가지이다. 첫째는, 너무 많이 사용하여 문제가 발생한 경우 too much, 둘째는, 사용하지 않아서 문제가 발생한 경우 disuse, 셋째는, 예전에는 없던 새로운 삶의 방식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 경우 novelty 이다. 각각에 대해 간단히 요약하자면, 첫째로 너무 많이 사용하는 대표적인 예는 과도한 영양 섭취이다. 수렵채취 시대에 만들어진 우리의 몸은 당분과 지방에 대한 갈망이 크다. 현대 선진 사회의 사람들은 당분과 지방을 제한없이 쉽게 획득할 수 있으므로, 그결과 미국인의 절반 이상이 비만 상태이다. 이는 인간의 대사작용에 무리를 초래하여, 당뇨병, 고지혈증, 고혈압을 유발한다. 둘째로, 사용하지 않아서 문제가 되는 대표적인 예는 사람들의 빈약한 운동양이다. 땀을 흘릴 기회가 적고, 하루종일 앉아서 생활하고, 거의 걷거나 뛰지 않는 현대인의 생활 방식은, 먹고 살기위해 항시 걷고 뛰어야 했던 수렵채취 시대 사람들의 몸에 문제를 발생시킨다. 우리 몸이 섭취하는 에너지가 기초대사와 운동을 통해 소모하는 에너지보다 항시 많기 때문에 다양한 대사증후군을 유발하며, 근육과 골밀도가 적어 고통을 겪는다. 우리의 몸은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하기 때문에 적정한 운동을 하지 않는다면 몸이 망가질 수밖에 없다. 과거보다 적게 사용하는 또다른 예는 현대인들이 애를 적게 낳는 것이다. 그 결과 여성들의 일생동안 월경횟수가 크게 증가하여 유방암의 위험이 높아졌다. 세번째 새로운 삶의 방식의 예는 다양한 문명의 이기가 제공하는 지나치게 편안한 생활이다. 실내의 조명에서 문자를 읽는 생활은 근시를 초래했으며, 부드럽게 가공된 음식을 탐닉하는 식생활은 턱과 치아구조를 변화시켜 사랑니 통증을 초래했고, 당분이 많은 음식은 충치를 유발했으며, 의자 생활은 허리 통증을 가져왔으며, 푹신한 신발은 평발의 위험을 높였다.

섬유질이 많고 당분과 지방이 적은 음식을 먹으며, 운동을 많이하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것은 이제 모든 사람들이 아는 상식이다. 문제는 현대 산업사회의 생활환경은 이러한 방식의 생활을 어렵게 한다는 점이다. 현대인의 생활방식이 가져온 대사증후군 등에 대해, 현대 의학은 대체로 증상을 완화시키는 데 치료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을 뿐, 원인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대응하지 않는다. 이러한 질병은 수렵채취시절에 만들어진 인간의 유전자와 현대의 생활환경의 상호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인간의 유전자를 바꾸는 것은 가능하지 않으므로, 생활환경을 바꾸는 길밖에는 없다. 과학 연구를 통해 치료 기술을 높이거나 교육을 통해 생활방식을 바꾸는 것의 효과는 제한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해결책은 어떻게 생활환경과 생활방식을 바꾸도록 할 것인가로 모아진다. 저자는 정부의 개입에 의해 간접적으로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바꾸도록 유도하는 '너지' nudge 방식을 광범위하게 도입할 것을 제안한다. 성인들이 어린이에게 건전한 삶의 방식을 유도하듯이, 성인에 대해서도 그러한 집단적 노력이 필요하며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세금이나 규제를 통해서 생활환경을 바꾸면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바뀌고 부정합 질병의 위험이 줄어들 것이다. 선진 사회의 인구 고령화가 되면서 부정합 질병의 빈도가 높아지고 의료비가 크게 증가하기 때문에, 이렇게 하여 질병의 원인에 대응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다.

이 책은 저자의 연구에 기반을 두고 어떻게 건강하게 살 것인지에 대해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저자의 주 연구분야인 인류의 진화와 관련된 이야기와 농업사회 이후 인간의 부정합 질병에 대한 이야기로 크게 나누어진다. 두가지 이야기의 내용이나 서술 방식이 매우 달라서 두권의 책을 읽는 느낌이다. 후반을 별도의 책으로 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2023. 6. 19. 11:32

Renee Engeln. 2017. Beauty Sick: How the cultural obsession with appearance hurts girls and women. Harper. 356 pages.

저자는 심리학자이며, 이 책은 그녀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미국 여성들이 외모에 집착하는 관행의 원인과 문제점, 그리고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

미국에서 10~30대 연령에 속한 거의 대부분의 여성은 외모에 대해 강박적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간다. 특히 체중에 대한 강박은 심각한 수준으로, 다이어트로 인한 부작용이나 심지어 거식증에 시달리고 있다. 대부분의 젊은 여성들은 자신의 몸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며, 자존감이 약하고, 우울증 등으로 고생한다. 여성들이 자신의 몸에 과도하게 신경쓰고 투자하는 것은 다른 생산적 분야에 써야 할 정신적 물질적 에너지를 빼앗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는 여성이 남성과 사회활동을 하면서 상대적으로 성과를 덜 내는 원인이다. 

여성이 자신의 몸에 집착하는 것은 여성을 성적인 대상으로 인식하는 문화 때문이다. 여성은 자신의 몸이 항시 관찰되고 평가되는 환경 속에서 살면서, 이러한 시각을 내면화한다. 미국의 상업적인 대중문화와 광고는 여성의 몸을 대상화(objectification)하는 극단적인 무대이다. 이러한 무대에 등장하는 여성 모델과 연예인은 통계적으로 예외적 범주에 속하며, 포토샵등으로 조작한 비현실적 몸매을 이상화시킴으로서, 일반 여성들이 자신의 몸에 불만족하게 만들어, 화장품이나 다이어트 등의 미용 헬스 용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도록 자극한다.

여성들이 자신의 외모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것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  모든 여성은 각자 자기만의 아름다움이 있다고 설득하는 것은 도움이 안된다. 왜냐하면 외모에 대한 문화적 기준을 개인의 의지로 거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광고나 티브이에 나오는 미모의 여성들은 예외적이고, 비현실적이고, 상업적 목적을 위해 시청자의 인식을 외곡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고 해도 역시 도움이 안된다. 미디어의 메시지를 의식적으로 부정한다고 해도, 그러한 미디어의 이미지에 자극받아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몸에 관심이 끌리고,  비교하는 것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몸에 대한 관심을 줄이기 위해서는, 그들의 일상에서 몸에 대한 논의를 의식적으로 줄여야 한다. 여성의 몸을 강조하는 광고나 티브이 프로그램을 피하고, 자신이나 남들의 몸에 대한 언급을 삼가고, 대신 다른 주제에 관심을 높이면 몸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 수 있다. 인간의 심리적 에너지는 제한된 자원이므로, 다른 주제에 관심을 늘이면, 몸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 수 있다.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몸에 대한 관심을 완전히 꺼버릴 수는 없다. 그러나 몸을 남에게 보이는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인식을 전환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는 여성도 남성과 같은 몸에 대한 시각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몸에 대한 집착에서 상대적으로 벗어나 있는 여성들을 조사한 결과, 그녀들은 어렸을 때 부모 특히 어머니의 영향이 크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부모 자신이 여성의 몸에 집착하지 않고, 자녀들에게 사회에서 중요한 일을 하도록 격려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여성들은 자신의 몸에 대한 집착이 덜했다. 외모의 사회적 가치는 다른 능력의 가치보다 못하다. 왜냐하면 외모는 일시적이고 관찰자의 시각에 의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는 해야 할 중요한 일이 많은데, 외모는 이러한 중요한 일을 성취하는 데 그리 도움이 되지 못한다.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을 하는 데 관심을 쏟도록 부모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힘을 모아야 한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과 인터뷰 결과를 많이 인용하면서 여성의 외모에 대한 집착을 생생하게 서술한다. 사실 여성의 외모에 대한 집착은 여성이 남성과 비교하여 사회적 권력의 위계에서 약자에 속하는 데에 근본적 원인이 있다. 여러 권력 자원 중 외모는 하나의 권력 자원에 불과하다. 여성이 사회적 위계에서 남성과 대등해 질 때, 여성의 외모에 대한 집착은 사라질 것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은 자신의 외모에 신경쓰기는 하지만, 다른 자원에 신경쓰는 것보다 외모에 더 신경을 쓰지는 않는다. 이는 남성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의 여성이 체중에 강박관념을 가지는 것은, 부분적으로 미국의 음식에 지방과 설탕이 과도하게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미국 음식을 먹으면 살이 찌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마른 몸을 우월하게 여기는 사회적 인식이 형성된 것이다. 필요한 영양을 충분히 섭취할 수 없는 가난한 나라에서는 마른 몸이 아니라 뚱뚱한 몸을 이상화하는 가치관이 존재한다. 미국인의 3분의 2가 비만이고, 중상층에서만 마른 몸의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은, 마른 몸을 유지하는 것이 도달하기 매우 어려운 목표이기 때문에, 사회적 지위의 상징으로 차용되고 있다. 요컨대 여성의 외모에 대한 집착은 불평등 사회에서 보이는 지위에 대한 강박증의 일종이다. 이책에서 많은 여성들의 생생한 경험을 읽는 장점이 있지만, 중복이 많은 것이 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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