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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에 해당되는 글 17건
2020. 5. 29. 21:40

 

Paul Seabright. 2010. The Company of Strangers: a natural history of economic life.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0. 315 pages.

프랑스의 정치경제학자인 저자는 인간의 경제생활을 인간의 본능과 연결시켜 설명한다. 동물의 세계에서 인간은 가장 공격적인 동물이다. 인간의 과거는 폭력으로 점철되어 있다. 자연 상태의 인간은 모르는 사람(strangers)을 마주쳤을 때, 상대에게 친절하게 손을 내밀기보다는 상대를 위협하고 공격한다. 그런 인간이 어떻게 서로에게 의지하는 경제 활동을 하게 되었을까?

서로 협력하는 유전자를 지닌 사람들의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생존 가능성이 높기에 진화를 통해 서로 협력하는 유전자를 지닌 사람들이 선택되었다. 어떻게 좁은 범위의 가족과 친족의 범위를 넘어서는 타집단의 사람에 대해, 두려워하고 피하거나 공격하기보다 서로 다가가 평화롭게 접촉을 유지하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게 되었는가? 이에 대한 답은, 상대에게 받은 호의를 되값으려 하는 인간의 본능에 있다. 인간은 거래의 본능이 있는데, 유사한 가치의 것을 교환하므로서 서로에게 모두 이익을 가져온다. 인간은 다시 만날 가능성이 희박한 상대에게도 받은 것에 상응하는 것을 되주려는 성향을 보인다. 즉 인간의 호혜적 교환은 계산의 결과이기보다는 유전자에 각인된 본능이다.

이방인을 공격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손을 내밀어 서로 거래하는 관계로 발전시킨 것은, 한편은 이러한 성향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사람들이 선택된 결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대등한 거래관계를 안정적으로 보장하는 제도를 정착시킨 덕분이다. 시장기구와 사유재산 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거래 당사자가 계약을 존중하지 못하면 국가의 권력을 동원해 계약을 강제하고 사유재산을 보호하는 것은 안정적인 거래관계를 위해서 필수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는 깨어지기 쉽기 때문에 항시 세심히 관리해야 한다. 안정적인 거래를 위협하는 요인을 방치하면, 금방 이방인을 두려워하고, 위협하고,  공격하고 지배하려하는 인간의 본능이 고개를 든다. 

한편 상대가 나의 호의를 이용하기만 하고 상응하는 것을 나에게 제공하지 않으면 그러한 행위를 처벌하려는 강력한 본능을 발전시켰다. 거래의 공정성은 인간의 유전자에 깊숙이 박힌 본능이다. 바로 이러한 본능이 서로가 잘하는 것을 각자 수행하면서, 각자가 생산한 것을 서로 교환함으로서 모두가 이익을 더하게 된다. 데이비드 리카르도의 '비교우위 이론'이 바로 그것이다.

각자는 각자의 이익을 위하여 최선을 다할 때, 분업을 통해 서로 의존하는 관계를 형성하게 되고, 분업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부유해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저자는 이를 터널 비젼, 즉 자신의 좁은 이익만을 돌보는 방식인데, 놀라운 것은 모든 사람이 터널 비젼을 가지고 살고 있음에도 전체의 이익이 높아진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이 전체의 선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각자의 선을 위해 일할 때 부의 총량이 높아진다는 사실은 바로 아담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이론이 주장하는 바이다. 이는 전체의 선을 위해 중앙집중적으로 계획하는 공산주의 체제보다 개인 각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하고 결정하는 분권적인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가 더 효율적인 이유이다. 명령과 복종에 의해, 혹은 이념에 추종하기 때문에 맺어진 정치적 관계보다는, 상호의 이익을 가져오는 상업적인 거래관계, 모두가 시장 가격의 신호에 따라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관계가 더 효율적이고 안정적이다.

분업의 효율은 다른 한편으로, 분업에 참여하는 구성 부분간에 조율이 어그러질 때 문제를 발생시킨다. 경제 불황은 바로 이 분업이 어그러진 결과이다. 2008년에 금융위기를 발생시킨 주체는, 지나치게 위험한 투자를 한 은행뿐만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넘어 빚을 내어 집을 산 개인들이다. 위험한 투자에 참여한 투자자들은 이것이 매우 위험한 행위임을 알고 있음에도 자신에게는 그 위험이 실현되지 않으리라는 막연한 기대에서 폭탄 돌리기를 한 것이다. 

개인 각자의 결정으로 할 수있는 범위를 넘어선 일을 도모하는 것, 즉 긍정적인 외부효과가 나타나는 일을 수행하기 위해 국가가 존재한다. 개인은 국가의 조정을 통해 이러한 집합적인 일에 참여함으로서 개인 각자가 할 수있는 범위를 넘어선 일의 이익을 누리게 된다. 즉 공공재를 생산해내는 것이다. 농업을 시작하면서 관개사업을 하는 것이나, 외적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하여 군대와 성벽을 쌓는 것이 그것이다.

국가간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호혜적인 거래관계이다. 거래관계의 당사자 국가 간에 규모의 차이가 클 때, 그들간의 관계는 실용적인 대등한 거래관계로부터, 권력을 추구하는 지배와 종속의 관계로 변질하는 경우가 많다. 제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초강대국이면서 다른 나라와 호혜적인 거래관계를 맺으려고 하였는 데, 이는 자유주의 이념에 따른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미국의 이익에 이것이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힘이 상대적으로 약해지면서, 미국은 자유주의 이념을 계속 지키는 것이 자신의 이익에 도움이 될지 의문을 품게 되었다.  근래에 미국이 자국이익 우선주의로 나아가는 것은, 보통의 나라들 사이에 맺어지는 자연적인 관계로 복귀하는 것이다.

저자는 인간이 이방인을 두려워하고 공격하던 본능을 극복하고 서로 거래를 하고 분업을 하면서 의존하는 경제관계로 발전시킨 것을 '위대한 실험'(Great Experiment)이라고 한다. 인간은 여전히 낯선 사람을 배척하고 자신들의 좁은 집단 범위에만 이익을 나누려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족주의(tribalism)적 성향이 강하기에 이러한 위대한 실험은 깨어질 위험성이 높다. 우리 가족, 우리 친족, 우리 지역, 우리 동창, 우리 나라, 우리 민족, 우리 인종에 우선권을 주고 외부인에게 차별적인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여전히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행하는 방식이다. 인류 문명의 성과는 이러한 본능을 자제하고 낮선 사람과 함께 일하고 낮선 사람에게도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려고 한 결과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실험은 취약하며, 실제로 무너지는 경우를 인류 역사에서 무수히 많이 본다. 인간은 앞으로 진화해야 할 길이 멀다.

이 책은 경제 철학이다. 경험과학적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인간의 사회적 삶의 방식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기술하고 설명한다. 프랑스 학자의 책 답게 주절이 주절이 말이 많다. 잡다하게 관계된 논의를 모두 망라한 에세이들을 모아 놓았다. 자신의 주장을 명료히 하면서 직설적으로 쓰는 영미권의 학술 풍토와는 많이 다르다. 이를 모두 읽어내느라고 고생했다. 저자의 설명이 장황하여 따라가다보면 지치기에, 과연 이러한 서술방식이 효과적인지 의심스럽다. 프랑스의 사회과학은 생각이 자유분방하고 통찰력을 준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영미권의 그것에 비해 각광을 받지 못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독자에게 친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2020. 2. 26. 21:03

W. Brian Arthur. 2009. The Nature of Technology: What it is and How it evolves. Free Press. 216 pages.

저자는 기술과 경제의 관계를 연구한 경제학자로 기술은 무엇인지 어떻게 기술이 발전하는지 설명한다. 기술은 인간의 필요에 부응하는 수단으로서, 자연 현상을 인간의 필요에 맞도록 조작하는 방법과 그러도록 만들어진 장치를 통칭한다. 기술은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기존에 있던 기술들을 조합하는 과정을 통해 발전한다. 단순한 기술들은 조합을 거듭하면서 복잡한 기술로 거듭난다. 기술은 자연현상, 예컨대 물리적 인력, 유체현상, 광학현상, 자기현상, 전자현상, 화학현상 등을 당면 목적에 맞게끔 끌어다 쓴다. 만일 자연현상이 다른 세계로 가면, 우리가 만들어낸 기술은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복잡한 기술은 모듈(module)이라 부르는 기술 뭉치들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모듈은 다시 조금더 단순한 구성 모듈로 구성되며, 이러한 과정은 거듭된다(recursive). 저자는 전투기의 제트엔진을 예로 들어 이것이 어떻게 모듈로 구성되는지 설명한다. 

기존의 기술이 안은 문제를 해결하는, 혹은 개선하는 과정을 통해 기술은 발전한다. 때로는 기존의 기술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것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예컨대 프로펠라 비행기에서 제트 비행기로 바뀌는 과정은 기존의 것의 문제를 개선하는 식으로 탄생되지 않았다. 자연 현상을 새로이 가져다 쓰는 원리를 생각해 내면서 새로운 기술이 만들어진다. 이 경우에도 새로운 원리는 다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용된 원리를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용해본다든가 하는 식으로 발전한다. 기존에 가용한 기술이나 원리가 많을 수록 새로운 기술을 개발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왜냐하면 가용한 기술들이 많으면 새로이 조합하는 경우의 수가 비약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전문가는 기존의 기술과 원리에 통달한 상태에서, 새로운 문제를 풀 방법을 궁리하면서 기존의 것을 선택적으로 가져다가 새로이 조합한다. 많은 실험과 시행착오를 거쳐서 문제를 해결하는 조합을 만들어 내면, 이러한 새로운 조합이 안고 있는 문제를 개선하는 후속 과정을 통해 기술이 정교화된다.

기술이 정교화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늘어나지만, 기존의 기술로는 도저히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에 부닫쳤을 때, 전혀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기술이 나타난다. 이렇게 새로운 기술로 바뀌는 과정은 토마스쿤의 패러다임의 변화와 비슷하다.

기술은 기술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발전의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기술이 정형화되기 이전 단계에서는 잡다한 장인적인 지식이 많은데, 이는 이 기술에 통달한 전문가들의 경험과 지식 속에 체화되어 있다. 전문가들은 당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서로 경험과 지식을 교환하고 공유하는데, 이러한 전문가 사이에 교환과 공유는 가용 기술을 조합하여 새로운 기술로 만들어 내는 효율성을 높인다. 다른 지역에서보다 실리콘 밸리에서 기술의 발전이 빠른 이유이다.

중요한 기술은 그 기술을 활용하여 생산하고 삶의 방식을 조직하는 경제를 낳는다. 19세기가 스팀 엔진의 시기였으며, 20세기는 내연기관과 전기의 시기, 1980년대 이후는 컴퓨터의 시기이다. 근래에는 인터넷과 컴퓨터가 결합하면서 정보산업의 시기가 시작되고 있다. 시대 전반을 관통하는 기술은 해당 기술이 도입되는 초기에는 이것이 앞으로 어떻게 생산과 생활에 적용될지 알 수없다. 

기술이 발전하는 과정은 생물체의 진화와 유사하다. 적자생존이라는 원칙이 기술의 선택에도 적용된다. 기술은 경로의존적으로 복잡성을 더하면서 진화한다. 먼 미래에 어떤 기술이 나타날지 미리 알 수 없다. 생물체의 진화와 다른 점은 생물체의 진화는 서로 다른 종간에 유전자의 조합이 이루어지기 매우 어려우나, 기술의 진화는 다양한 기술의 조합을 통해 새로운 기술로 탄생한다는 점이다. 

어떤 기술이건 항시 풀어야 할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며, 이를 문제를 푸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기술이 발전한다. 외적인 충격에 의해서가 아니라 기술 자체가 새로운 기술을 낳는 것이다.  물론 인간이 제시하는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색하면서 새로운 기술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기술이, 새로이 발생하는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책을 스스로 모색하는 과정을 아직은 인간의 개입 없이는 못하지만, 어떤 기술이나 해결해야 할 새로운 문제를 안고 있으므로 기술은 정체되지 않고 계속 발전할 수밖에 없다. 과거에 간단한 기술밖에 없을 때에는 조합할 수있는 가용 기술이 많지 않았으므로 기술의 변화 속도가 느렸지만, 가용 기술의 가짓수가 많아 조합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엄청나게 늘어난 요즈음, 기술 변화의 속도는 무척 빠르며 앞으로 더욱 빨라질 것이다.

이 책은 기술의 변화에 대해 풍부한 예를 곁들여 이론적인 설명을 제시한다. 저자의 강연에 근거하여 책을 썼으므로 글이 술술 넘어간다. 기술 발전과 관련하여 특별히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

2020. 1. 16. 21:10

Richard Dawkins. 2015(1986). The Blind Watchmaker: Why the evidence of evolution reveals a universe without design. W.W.Norton. 451 pages.

진화론의 창시자인 찰스 다윈 다음으로 이 분야에서 유명한 저자가 진화의 원리를 이론과 예로 설명하며, 진화론에 비판적인 입장을 체계적으로 반박한 책. 저자의 대표작인 The Selfish Gene 과 함께 이 분야의 고전이다.

정교한 디자인의 생물체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저자는 두가지 예를 가지고 생물체의 디자인의 정교함을 설명한다. 하나는 인간의 눈이며, 다른 하나는 박쥐와 같이 소리의 반향으로 주위를 인지하는 지각장치이다. 창조론자는 이렇게 정교한 장치는 우연히 생겨날 수 없으므로 신이 창조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진화의 원리는 오랜 기간 미세하게 작은 변화가 축적되어 정교한 디자인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돌연변이는 작은 변화를 만들어 내고 이러한 변화들 중 생존에 유리한 형질만 경쟁에서 살아남아 후손에 전해진다. 돌연변이 자체는 랜덤한 방향으로 이루어지지만, 랜덤한 변화들 중 경쟁을 통해 살아남은 것은 결국 생존에 유리하게 복잡성이 높아지는 방향으로 변화한 것이다. 저자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랜덤하지만 점진적인 변화를 통해 복잡성이 높아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진화의 길은 미리 정해져 있지 않다. 랜덤한 돌연변이가 일어날때마다 선택이 이루어지는데, 변이 자체는 랜덤하므로 어떤 변이가 일어나서 후손에 전해질지는 미리 알 수없다. 복잡성이 높은 생물이 단번에 만들어질 확률은 제로에 가까우며, 미세한 변화의 점진적 축적만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이다.

생명의 핵심은 DNA 즉 정보이다. 이 정보는 세대를 거듭하며 자기 복제되며, 복제 과정에서 약간의 오류 즉 돌연변이가 발생하고, 이러한 변이가 축적되는 과정이 진화이다. 생물체의 몸은 정보를 담고 다음 세대로 복제하기 위한 도구이다. 그렇다면 맨 처음 생명체, 즉 최초의 자기복제 물질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저자는 원시 상태의 유기물 영양 성분 스프에 번개가 치면서 자기복제 물질이 생겨났다는 기존의 이론에 추가하여, 무기물 결정체를 통한 자기복제 물질의 생성 이론을 소개한다. 실리콘이나 진흙 등은 결정체를 만드는 성질이 있는데, 특정 결정체를 더 잘 생성시키는 정보가 우연히 추가되어 이후에 지속적으로 그러한 정보를 가진 결정체가 더 많이 생성되게 된다면, 이는 자기복제 유기물이 출현하기 전단계에 출현한 것일 수있다. 자기 복제 유기물이 정보를 훨씬 효과적으로 복제하므로, 자기복제 무기물은 점차 자기 복제 유기물로 대체되었을 것이다. 

진화는 생존 경쟁에서 패배한 형질과 그 유전자을 도태시키는 부정적인 선택도 있지만, 서로 함께할 때 생존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긍정적인 선택도 있다. 서로 다른 성격의 세포가 결합하여 전체의 생존 가능성을 높인면 결합체가 형성될 것이다. 이 결합체의 구성 세포와 세포들의 뭉치는 서로 함께 결합하여 서로 다른 기능을 하면서 전체의 생존을 높인다. 기능이 서로 다른 세포로 구성된 다세포 생물은 긍정적인 진화적 선택이 만들어 낸 것이다. 예컨대 인간의 세포내에서 미토콘드리아는 세포핵의 DNA와는 별도의 DNA를 가지고 있으며 난자를 통해 후손에 유전되는데, 이는 오랜 옛날에 서로 다른 세포가 결합한 것임을 말해준다.

변화의 과정은 매우 더디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빠른 속도로 전개되기도 한다. 숫공작의 화려한 날개는 암공작의 화려한 날개에 대한 선호와 결합하면서, 화려함이 더하는 방향으로 폭발적으로 진화되었다. 이러한 공작의 날개의 변화는 기능적인 불이익을 가중시킴으로 결국에는 언젠가 실용성의 제약과 타협하여 변화가 중단된 안정 상태에 들어가게 된다.

생물의 분류학은 진화의 계보를 따라 생물을 구분하는 작업이다. 진화의 나무는 일단 가지가 갈라지면 다시 합치지 않는다. DNA 정보의 유사한 정도에 따라 생물체의 근소관계를 판별해낼 수있게 되면서, 과거에 형상이나 기능의 유사성에 따라 구분하던 분류 체계에 큰 변화가 왔다.  생물체의 분류 결과는 위계 관계를 보여준다. 현대의 생물체간에 상하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원초에 하나의 생명체로부터 가지치기를 계속하여 현대의 생물체들이 모두 생겨난 것이다. 현대의 생물체들간에 유전적인 근소관계를 가릴 수있지만, 어느 생물이 어느 생물의 조상이라는 것은 말이 안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복잡한 생명체가 신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면, 그렇게 복잡한 일을 한 존재인 신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밝혀야 한다. 진화의 원리를 신이 만들었다고 주장한다면, 그러한 원리를 만든 신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밝혀야 한다. 진화론은 단순한 것으로부터 진화의 과정을 통해 복잡성이 더하게 되는 과정을 밝힌 것에 요점이 있다. 처음에 가장 단순한 것, 즉 최초에 자기복제 물질이 생성된 것은 우연한 과정이지만, 이후에 복잡성이 더해지는 과정은 모두 설명이 가능하다. 진화론을 제외한 다른 모든 이론들은 복잡한 것이 왜 그렇게 만들어졌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복잡한 것이 우연에 의해 만들어질 확률은, 단순한 것이 우연에 의해 만들어질 확률보다 훨씬 작다. 복잡성이 더해질 수록 우연에 의해 만들어질 확률은 불가능에 가깝다.

대단한 이론서이며 논쟁서이다. 진화론을 반박하는 입장을 논리적으로 그야말로 여지없이 몰아세우며 반박한다. 이 책을 읽으면 창조론을 철저히 부정할 수밖에 없다. 진화론에 대한 저자의 열정, 사명감, 철저함에 설득당하게 된다.  진화의 원리는 단순하면서도 경외를 느끼게 하는 무엇이 있다.

2019. 11. 9. 22:28

Richard Dawkins. 1995. River out of Eden: A Darwinian vies of life. Basic Books. 161 pages.

'이기적인 유전자'로 유명한 저자가 유전자를 중심으로 한 진화론을 보다 흥미있게 해설한 책이다. 생명의 진화란 유전자의 증식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우리의 육체는 유전자를 담는 그릇에 불과하며, 유전자의 생존과 후대에 증식이 생명 활동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유전자의 입장에서 볼 때 생물체가 고통을 느끼는지, 도덕적으로 올바른지, 공정한지, 건강하고 오래사는지 여부는 중요치 않다. 생물체의 어떤 기관의 목적이 무엇일까를 탐구할 때 고려해야 할 것은 한가지, 그 생물체가 담고 있는 유전자의 생존과 증식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유전자는 오로지 자신의 생존과 증식의 가능성을 높이는 쪽으로만 진화의 방향을 몰고간다. 생명이란 정보의 덩어리 즉, 유전자 혹은 알고리즘이외에 다른 어떤 것도 아니다. 육체는 이 정보를 담는 수단에 불과하다.

유전자는 세대를 거쳐 복제 되며, 지리적인 격리 등 환경적 요인으로 유전자가 서로 다른 종으로 갈리는 과정을 거친다. 우리와 유전자가 근접할수록 보다 최근에 이 갈리는 과정에서 나누어졌다. 미토콘드리아의 유전자는 성염색체와 달리 어머니의 계통을 통해서만 다음 세대로 복제되는 특성을 가진다. 인간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거슬러 추적한 결과 소위 African Eve 라고 부르는 아프리카에 살던 한 여성이 현대인 모두의 여자쪽 조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녀와 동시대에 살았던 여성들의 후손은 현재 살고 있는 사람에게까지 유전자가 이어지지 않은 것이다. 그녀가 현생 인류의 최초의 조상은 아니다. 최초의 조상은 아마도 남성일 가능성이 크다. 동물의 세계에서 보면 수컷이 암컷보다 자신의 유전자를 더 많은 후손 속으로 증식시키기 때문이다. 현재 살고 있는 사람의 유전자는 오랜 세월 동안 진화적 선택에서 가장 생존가능성이 높은 것이 살아남은 결과이다. 우리의 유전자보다 생존 가능성이 낮은 것은 그간의 생존 경쟁에서 패배하여 후손을 남기지 못했다.

생물체가 놀랍도록 정교하게 짜여진 것을 보고, 이렇게 정교하고 완벽한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신뿐이라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오류이다. 진화의 과정은 유전자의 증식의 가능성을 높이도록 생물체의 시스템을 정교화시키는데, 현재 관찰되는 어떤 생물체의 정교함에 못미치는 전 단계를 다양한 생물체에서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벌꿀이 자신의 동료에게 먹이의 위치를 알리는 특징적인 춤은 처음부터 완벽하게 설계되어 만들어진 듯이 보이지만, 진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조금씩 신호 체계의 복잡성을 더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특정 생물체의 유전자 증식의 목적에만 부합하도록 정교화된 경우를 흔히 본다. 특정 곤충의 감각 능력은 그들의 생존 욕구에 맞도록 진화되면서, 인간의 감각과 지능으로 볼 때에는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유전자의 효용함수, utility function 이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개별 생물체의 유전자의 입장에서 볼 때 생존과 증식의 가능성을 가장 높이는 선택을 말한다. 개별 생물체의 유전자에게 이익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그 종 전체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물개는 소수의 수컷이 많은 암컷을 거느리기 때문에, 많은 수컷은 교미할 기회가 없이 죽는다. 종 전체의 유전자의 증식으로 볼 때 가장 효율적인 방안은 수컷대 암컷의 비율을 1:9로 하여 낭비되는 수컷이 없도록 하는 것이 다. 그러나 개별 생물체의 유전자의 입장에서 볼 때, 수컷대 암컷의 비율이 5:5로 될 때에만 진화적 평형상태를 유지한다. 만일 성비가 1:9라면 모든 부모는 자식이 수컷이되도록 할 때 자신의 유전자의 증식이 최대화되므로, 암컷대비 수컷이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화가 전개될 것이다. 5:5가 되면 자식이 수컷이건 암컷이건 유전자의 후대 증식 가능성이 동일하므로 평형상태에 도달한다.  이 경우 만일 수컷을 낳으면 다수의 수컷은 교미를 하지 못하여 유전자의 증식이 제로이지만, 소수의 수컷은 많은 암컷을 거느리므로 유전자의 증식 비율이 크다. 따라서 수컷을 낳을 때 유전자 증식의 기대값은 암컷을 나을 때와 동일하게 된다. 

태평양의 연어는 강 상류에서 태어나 바다로 나가 성장하여 원래 태어난 강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 생식을 하고 나서는 바로 죽는 것으로 일생을 마감한다. 반면 대서양의 언어는 이러한 생식 과정을 한 생애 동안 여러번 반복한다. 왜 이렇게 다르게 진화하였을까? 태평양 연어의 서식지인 강은 험하여 이를 거슬러 오르는데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마지막 에너지를 다하여 강을 거슬러 오르고 생식을 한 다음 바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 에너지를 아끼면서 강을 오르고 생식 이후에도 다시 살아가도록 하는 선택보다 유전자의 후대 증식의 관점에서 보다 합리적인 선택이다. 반면 대서양의 연어가 서식하는 유럽의 강은 그리 험하지 않으므로 한 생애 동안 여러차례 강을 오르고 생식을 하도록 하는 것이 유전자의 증식에 합리적이다. 유전자의 입장에서 볼 때 생물체가 어떻게 고통을 받고 얼마나 살고 어떻게 죽는가 하는 것은 고려사항이 아니다. 고통없이 오래 사는 것보다 고통을 받으면서 짧게 살다 다음 세대를 낳고 죽는 것이 제한된 자원을 사용하면서 유전자의 증식에 더효율적이라면 당연히 후자 쪽으로 진화한다.

우주에서 신성 supernova 은 몇 주라는 짧은 시간 동안 에너지를 폭발적으로 방출하고 재로 변하는 별을 이른다. 에너지의 폭발과 유사하게 우주에서 정보의 폭발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한 정보의 폭발은 지구에서만 발견된다. 지구에서 일어난 정보의 폭발의 시작은 미미하다. 정보를 자기복제하는 기제, 즉 생명체가 시작되면서부터이다. 정보의 자기 복제는 광물질의 결정이 만들어지는 것과 유사하게, 화학적 결합체인 분자가 자신을 복제틀로 하여 자신과 대칭적인 동일한 존재를 생성하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이것을 저자는 복제 폭탄 replicator bomb라고 부른다. 우리의 DNA를 구성하는 네가지 종류의 분자 A,T,C,G는 A가 T에 대칭적인 존재이며, C가 G에 대칭적인 존재이다. 이 네 종류의 분자가 무수히 엮어지면서 정보의 복잡성을 높여갔다. 이 분자들은 복제를 기하급수적으로, 즉 2, 4, 8, 16, 이런 식으로 하면서 수를 늘렸으며 분자들이 덩어리를 구성하여 세포가 되고, 세포가 덩어리를 구성하여 개별 생물체가 된다. 이 분자들은 복제를 하면서 ATCG의 조합을 조금씩 달리하게 되는 데, 이것이 종의 다양성을 확대하는 기제이다. 다양한 종들은 서로 경쟁을 하면서 복제의 효율성을 높여간다.

정보의 복제 속도가 높아지고 복잡성이 증가하는 과정은 인간에 이르러, 지난 이삼백년간에 걸쳐 가속화되며 마침내 지구 행성 밖으로 정보를 보내는 단계에 도달하였다. 이렇게 정보의 절대 규모가 커지고 복잡성이 증가하는 끝은 어딘지 알지 못한다. 슈퍼노바의 경우처럼 지수적인 팽창을 하다가 결국 가용 자원의 극에 도달하여 폭발로 끝날 수있다. 혹은 정보가 행성 밖으로 이동하면서 우주의 다른 곳에서 새로운 복제의 사이클을 만들 수도 있다. 우주로 나간 정보가 지구의 인간과 교신이 끊어진다면, 환경이 바뀌면서 생물체가 다른 종으로 정보의 강이 갈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주의 다른 곳에서 새로운 종으로 만들어 질 수도 있다.

이 책을 두번째 읽었다. 과거에 이해되지 않던 부분이 조금더 이해되는 듯하다. 리차드 도킨스는 엄청난 사람이다. 냉정한 학자이면서 천재적인 명석함이 번득인다. 그의 책을 읽으면 경외감이 슬금슬금 올라온다. 그가 서술하는 것의 요지는 일견 단순한 듯 하면서 우주의 진리를 관통한다는 느낌이 든다. 도킨스는 진화론에서도 특히 삶의 중심을 유전자에 두는 정말로 냉혹한 골수 진화론자이다. 그의 확신이 존경스럽다. 

2019. 11. 3. 21:13

Neil Shubin. 2008. Your inner fish: a journey into the 3.5 billion-year history of the human body. Vintage books.

시카고 대학의 고고생물학자인 저자가 우리 몸의 각 기관이 어떤 진화 과정을 거쳤는지 연원을 거슬러 올라면서 일반 독자들이 알기 쉽게 설명한다. 진화의 연결고리에 관한 설명이 주를 이루지만, 동시에 어떻게 그런 발견에 이르게 됬는지 연구 과정을 상세히 이야기 한다.

물 속에서 살던 동물이 육지로 올라오는 진화의 중간 단계 생물의 화석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구성한다. 북극의 한 섬에서 저자가 찾는 대상의 화석을 찾는 작업을 생생히 묘사한다. 전 세계에서 저자가 찾는 생물군의 화석을 찾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을 추적하여 마침내 그것을 찾아내는 작업은 과학과 우연이 결합된 서사이다.

인간의 팔과 물고기의 지느러미의 구조를 해부학적으로 비교하고, 배아의 발달과정에서 인간의 팔과 물고기의 지느러미가 발달하는 과정의 유사점을 보여준다. 이빨과 머리 털과 새의 깃털과 유방은 동일한 원시 피부조직으로부터 변이되어 나타난 형질이다. 배아의 초기 발달 과정에서 보이는 네 개의 아치 형상의 구조가 인간에게는 두개골과 목과 귀로 발달하고 물고기는 지느러미로 발달한다.  인간과 근접할수록 유전자에서도 유사점이 발견되며, 물고기의 것으로부터 인간의 것으로 기관이 진화해온 과정은 유전자에서도 변화의 궤적을 읽을 수있다. 

물고기에서 진화의 시원을 한 단계 더 올라가 다세포 박테리아와 인간의 기관을 비교한다. 인간의 몸의 조직은 다세포 박테리아와 동일한 물질로 구성되어 있으며, 세포와 세포를 결합하여 조직하는 방식 역시 박테리아 동일하다. 다세포 박테리아는 세포들 사이에 기능의 분화를 이루면서 전체의 생존을 돕는데 이는 인간의 다양한 기관과 유사한 원리이다. 지구의 생물계가 어떻게 단세포 박테리아에서 다세포 박테리아로 진화했는지에 대해, 지구의 대기중에 산소 농도가 증가하여 생물체들이 에너지를 더 생산할 수 있게 되었고, 콜라겐이라는 세포를 구성하는 복잡한 물질을 만들 수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후각기관, 시각 기관, 청각 기관, 각각에 대해 물고기와 인간을 비교하면서 단순한 구조에서 복잡한 구조로 진화해 가는 과정을 설명한다. 인간의 후각 기관은 물고기보다 훨씬 더 많은 냄세를 판별하는데, 이는 서로 다른 종류의 냄세 분자 각각을 판별하는 수천개의 유전자를 통해 냄세 판별기관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 이 냄세 판별기관을 제어하는 유전자의 상당수가 비활성화되어 있는데, 이는 인간의 감각의 70%를 시각에 의존하는데, 이는 육지에 사는 동물인 인간의 생존에서 냄세의 중요성은 쇠퇴한 반면 시각의 중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인간은 동물 중에서도 칼라를 구별하는 시각 능력을 발전시켰는데, 이는 지구 식물의 변화에서 단순한 색의 나무만 존재하다가 다양한 칼라의 식물, 예컨대 꽃과 열매 등이 많이 출현하게 되면서 칼라를 구별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각 기관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던 동물의 기관이 돌연변이를 통해 조금씩 변화하는 긴 연결고리의 맨 끝에 있다. 이것은 문제를 발생시키기도 한다. 원래 물에서 사는 데 적합하도록 만들어진 기관이 변이를 통해 뭍에서 사는 환경에 적응되도록 변화되었다는 것은, 처음부터 뭍에서 사는 환경에 적합하도록 만들었다면 그렇게 만들지 않았을 비효율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인간의 머리와 목과 척추를 연결하는 신경 섬유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 이는 원래 물고기의 머리와 아가미를 근처에서 연결하던 신경 조직이 변화되면서 복잡해진 것이다. 

인간은 유인원이 된 이후에도 진화 과정의 대부분을 수렵채취의 단계에서 생활했으므로 현대의 생활에 부적합한 몸을 갖고 있다. 저자는 우리가 겪는 질병이나 문제를 바로 이러한 진화의 긴 연결고리를 통해 설명한다. 비만, 심장질환, 고혈압은 현대인의 생활 환경이 수렵 채취에 적합하게 빚어진 몸에 맞지 않아서 일어나는 질병이다. 인간의 딸꾹질은 인간이 물고기와 올챙이로부터 진화해 온 과거로 부터 물려받은 잔재이다. 올챙이는 물속에서 아가미로 호흡하면서 동시에 폐로 공기호흡을 한다. 물을 흡입하여 아가미로 보내면서 동시에 폐를 막는 동작을 하는 데, 바로 이것이 인간의 딸국질과 동일한 동작이다. 딸꾹질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이 책에서 처음보았다. 저자는 인간의 몸은 생물의 역사를 온전히 그 안에 담고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일반인의 흥미를 돋우도록 설명을 하지만, 인용하는 설명은 체계적인 연구 성과에 근거한 것들이다. 왜 그런지하는 의문을 해명하는 데 주력한다. 과학을 한다는 것이 실제 이런 것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는다. 실제 논의하는 것은 매우 세세한 것들이다. 그런데 생물의 진화 과정을 밝히는 데에 이 세세한 것들이 핵심적인 증거가 된다. 책을 읽어가면서 과학활동에 대한 저자의 열정과 흥분을 읽는다.

2019. 9. 16. 21:14

Yuval Noah Harari. 2017. Homo Deus: a brief history of tomorrow. HarperCollins. 402 pages.

인간은 진화의 과정을 통해 지구상에서 가장 지능이 높은 동물의 위치에 올라섰다. 인간은 개체로 보면 어느 동물보다  뛰어난 존재가 아니지만, 협동과 조직을 통해 집단으로서 개체의 능력을 뛰어 넘는 문명을 이룩하였으며, 생물계를 지배하고 급기에 자연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존재가 되었다.

인간은 자연 그대로의 세계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부여한 세계에서 살아간다. 인간이 만들어낸 종교는 바로 세계에 의미를 부여한다. 사실의 세계는 인간이 왜 그리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답을 하지 않는다. 반면 종교는 무엇이 옳은 것이고 무엇이 나쁜 것인지, 왜 해야 하는지, 혹은 하지 말아야 하는지, 무엇을 목표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제공한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능력이 확장되면서 신의 존재는 과거와 같은 중요성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 과학 기술 문명이 발전하고 인간의 권능이 높아지면서 신에 의지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대신 인간 자신을 모든 가치의 중심으로 놓는 인본주의 Humanism 가 지배하게 되었다. 인본주의는 모든 옳고 그름, 좋고 나쁨, 해야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 판단의 중심에 인간의 생존과 감정과 체험과 행복을 두는 세계관이다.

인간의 능력이 점점 더 발전하면서 영생과 행복과 자연과 세계에 대해 더 큰 영향력 혹은 권력을 추구한다. 저자는 유전자 조작 기술이 발전하고 기계적 능력과 생물학적 기능을 결합하는 기술이 발전하면, 결국 인간의 능력이 업그레이드된 초능력 인간이 나타날 것이라고 예측한다. 더 에너지 넘치고, 더 건강하고, 더 오래살고, 더 지능이 높고, 더 집중을 잘하고, 환경으로부터 새로운 종류의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더 많은 복잡한 정보를 신속히 처리하고, 더 추상화된 생각을 할 수있는 사람이 나타나는 것이다.

유기체란 진화의 과정을 통해 점차 고도화된 알고리즘의 덩어리이며, 삶이란 정보처리 과정이다. 우리의 삶이란 정보를 처리하고 판단하는 과정이다. 더 많은 정보를 더 효율적으로 처리할수록 고등동물이 되는 것이고, 인간의 두뇌는 생물계에서 정보처리를 가장 잘 하는, 다른 말로 하면 지능이 높은 존재이다. 생물체의 감정이란 것은 매우 효율적인 알고리즘이다. 예컨대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은 생존에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반응하도록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이다.

컴퓨터와 인공지능이 발달하면서 정보처리에서 컴퓨터가 인간을 능가하는 분야가 확대되고 있다. 컴퓨터가 더 많은 정보를 더 정확히 처리하게 된다면 인간은 자신의 의사결정을 컴퓨터에게 점점 더 맡기게 될 것이다. 인간의 정보처리 능력에는 한계가 있고, 인간은 모순된 욕구와 그릇된 판단을 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컴퓨터로 구축된 정보처리 시스템이 더 정확히 나에 대해 알고 나의 복리를 위해 판단을 하는 경향이 높아질 것이다.

엄청난 양과 복잡한 정보를 처리하는 컴퓨더 시스템이 인간의 삶을 지배하게 되면 인본주의는 붕괴하게 된다. 그 시스템이 여전히 인간의 복리를 위해 일한다는 점에서 인본주의 이념에 따르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은 모순된 존재이므로 컴퓨터의 판단이 인간의 어떤 부분에 봉사하는가가 불분명할 것이고, 시스템의 판단과 결정과 실행이 개별 인간의 복리에 반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컴퓨터에 기반한 정보처리 시스템은 알고리즘이라는 점에서  유기체보다 한단계 앞서 나간 존재로 등극할 수있다. 인간을 포함한 생물체는 결국 알고리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생물체가 가진 의식(consciousness)은 없지만 지능(intelligence)은 있는 무생물체의 알고리즘이 생물체의 알고리즘을 능가하는 세상이 올 수있다.

인간 사이에서 초능력을 가진 인간과 그렇지 못한 보통 인간으로 구분된 위계가 형성된다면, 보통 인간은 가치를 잃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정보처리 시스템이 과거에 보통 인간이 하던 일을 모두 맡아서 처리할 것이고, 소수의 초능력 인간들만이 시스템에 의해 대체 되지 않는 존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산업사회에서는 생산과 전쟁에 보통 사람들의 기여가 중요하였기에 보통사람의 가치를 존중하는 민주주의나 인간중심의 자유주의 이념이 자리잡았다. 그런데 생산과 전쟁를 정보처리 시스템이 관장하게 되고 보통사람들은 쓸모없는 존재가 된다면 이들을 존중하는 자유주의 이념은 더이상 정당성을 확보할 수없다. 생산에는 기여하지 않고 단순히 소비만 하는 존재라면 그들이 있어야 할 이유를 설득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인권, 자유라는 개념이 내동댕이 쳐질 것이다. 초능력을 가진 인간은 보통 인간을 자신과 같은 존재로 취급하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젊은 나이임에도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준다.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책, Sapiens 를 읽고 감탄했던 만큼 이 책이 놀라운 책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마음껏 상상력을 동원하여 생각의 끝까지 가보고, 이를 용감하게 쓸 수있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 내용만이 아니라 문체 또한 부드럽게 그러나 논리적으로 명징하게 전개하는 솜씨가 돋보이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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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5. 18. 22:24

Jonah Lehrer. 2009. How We Decide. Houghton Mifflin Harcourt. 265 Pages

사람들이 어떤 것에 대해 결정하기란 어렵다. 특히 문제가 복잡해 질 수록 결정하기가 어렵다. 선택지가 많거나 관련되어 고려해야할 변수들이 많을 수록 어려워진다. 당면 문제에 대해 이성적으로 많이 생각할수록 현명한 결정을 내린다는 주장이 과거에는 지배했다. 플라톤이나 칸트와 같은 이성주의자들의 견해가 그것이다. 그러나 장고끝에 악수둔다는 격언이 있지 않은가? 저자는 과거의 철학자들이 이성을 우선시하고 감정을 비이성적인 것으로 치부한 전통에 반기를 든다. 근래에 심리학이나 행동경제학에서 인간의 행위에서 이성보다 감정이 더 중요하다는 주장을 옹호한다.

저자는 그 분야에 오랜 훈련을 쌓은 전문가들의 경우 많은 변수가 연관된 복잡한 문제를 대했을 때 이성보다는 느낌 혹은 직관이 더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전문가들이 자신의 전문 영역에서 오래도록 경험을 축적했을 때, 그들이 문제를 접하여 받는 느낌이란 다름 아니라 복잡한 정보를 처리한 결과 나온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이성은 동시에 다양한 정보를 처리하는데 한계가 있으므로 문제가 복잡해질 경우 처리 능력에 제한에 부닥쳐 오류를 만들어 내는 부실한 컴퓨터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의 감정은 오랜 경험과 지식이 축적된 고도의 컴퓨터이기 때문에 이성의 정보처리 한계를 뛰어 넘을 수있다. 우리의 감정이 이렇게 고도의 정보처리 컴퓨터가 된 것은 진화의 산물이다. 감정은 우리의 생존에 근접한 문제일수록 더 효율적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능력을 발휘하도록 진화의 과정을 통해 발달해 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감정이 항상 올바른 결정으로 유도하지는 않는다. 문제가 복잡하지 않을수록 이성적으로 따지는 것이 효과적이며, 과거에 접해보지 않은 새로운 문제일수록 이성적으로 깊이 파고드는 것이 창의적인 접근방법을 찾아내는 데 효율적이다.  반면 문제가 복잡해 질수록 전문가의 느낌이나 직관이 큰 통찰력을 발휘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전문가의 오랜 경험과 축적된 지혜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인간은 자신이 범한 오류를 반추하여 개선할 점을 생각해 내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지혜를 축적하게 된다. 저자는 오류를 분석하여 무엇을 잘못했는지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있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생각하고 분석하는 능력이 인간을 동물보다 앞서게 하는 비결이다. 

이 책의 장점은 무수한 예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있게 쉽게 이해할 수있도록 제시하는 것이다. 엄청나게 다양한 예가 나오는데 이러한 예들은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친숙한 것들이다. 이 책에서 거론되는 대표적인 예로는 비행기 조종사의 결정, 풋볼 선수가 필드에서 벌이는 결정, 포커 선수가 포커판에서 전개하는 결정, 일반 사람들이 마트에서 쇼핑할 때 하는 결정, 자동차나 집을 구입하는 결정, 화재현장에서 소방관의 결정, 등이다. 이러한 예들은 거의 모두가 학술적인 연구결과와 함께 엮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최근의 심리학, 신경과학, 행동경제학의 연구 결과를 종횡무진하게 인용한다.  

근래에 연구의 조류가 감정의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쪽으로 흐르고 있는 것은 흥미롭다. 사실 감정이란 이성과 달리 그 과정을 분석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신경과학과 진화론을 결합하여 인간의 감정도 이성 못지 않게 충분히 효과적이고 유력한 문제해결 능력을 품고 있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것이 이 책의 묘미이다. 그러나 무모한 감정적인 대처는 그야말로 무모함일 뿐이다. 오랜 경험과 반추를 통해 쌓여서 만들어진 능력은 감정의 영역일까 이성의 영역일까? 이 책은 이성과 감정을 양분하는 지적 전통은 틀렸다고 말한다.   

저자의 직업이 과학 기자라는 점이 백퍼센트 발휘된 결과물이다. 그 많은 연구들을 들여다보고 주변의 예들을 수집한 저자의 부지런함에 놀라지 않을 수없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로 오랫동안 자리매김한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흥미있는 한편으로 다양한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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