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dley Bull. 2012(1977). The Anarchical Society: a study of order in world politics. 4th ed. Palgrave. 308 pages.
저자는 국제정치학자이며, 이 책은 국제 정치와 "국제 질서"(international order)의 성격을 규명한다. 국제정치란 국가들 사이의 관계이다. 국제관계에는 국가간에 폭력을 통제하는 단일한 중앙 기구가 없기 때문에, 한 영토와 국민에 대하여 폭력을 독점하는 기구인 국가 내에서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질서가 유지된다. 국가들 사이에는 상호관계로 엮여진 국가들의 체제(states system)가 존재한다. 국가들의 체제에서 질서를 추구하는 것과 정의를 추구하는 것은 별개이며, 현실에서는 두개의 가치가 상충된다. 국가들의 체제는 기본적으로 정의롭지 않으며, 국제정치는 정의를 기준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국제사회(international society)에는 국가들 사이에 암묵적으로 지키는 규범이 있다. 그러나 이 규범은 법과는 달리 정치적인 것으로, 이를 위반해도 강제하기 어렵기 때문에 모호하고 유동적이다. 이 규범은 국가들 사이에 전개되는 사건들을 통해 뒷받침되고 상황에 따라 변한다. 국제정치에서 폭력 사용을 가급적 꺼리는 규범이 존재하지만, 질서 유지를 위해 폭력 사용이 용인되기도 한다. 국가들은 가급적 국제적 규범을 지키려고 하지만, 자신의 이익에 따라 규범을 위반하거나 바꾸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국제정치에서 질서를 만들어내는 가장 중요한 기제는 국가들 간에 힘의 균형(balance of power) 이다. 상황이 변화하여 힘의 균형이 깨지면 새로운 연합이나 분열, 전쟁 등을 통해 힘의 균형을 회복하게 된다. 국가들 사이에 전쟁은 질서를 유지하는 중요한 기제이다.
강대국은 국제질서를 유지하는데 관심이 크다. 국제질서를 교란시키는 요인 혹은 국가에 대해 통제력을 행사한다. 냉전시절에 미국과 소련은 서로 간에 직접적인 폭력 행사를 자제하였으며, 세계의 구석에서 벌어지는 폭력에 대해 확대되지 않도록 관리하였다. 현재의 국제질서는 강대국을 중심으로 만들어 진 것이며, 그들의 이익에 기여한다. 국제질서에서 중소국가의 견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국제질서가 서구의 선진국에 유리하도록 자원과 권력의 불평등 분배를 용인하므로, 제삼세계 국가들은 정의가 바로세워지도록 바꾸는데 관심이 크다.
핵무기는 국제질서에 새로운 변수로 등장하였다. 국가간 폭력이 발생했을 때 폭력 행위의 대상은 물론 폭력 행위를 시작한 당사자까지 존립이 위협받게 되었다. 핵무기는 폭력의 발생을 합리적으로 제한하는 (deterrance) 역할을 한다. 그러나 핵무기가 확산되면 폭력이 줄어들 것이라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핵무기를 동원하는 비합리적 폭력 사용 상황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핵전쟁이 두려운만큼 핵무기 사용을 상호간 자제하겠지만,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하여 전통적 무기를 사용하여 제한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를 배제할 수 없다.
현재의 국가들의 체제에서 국가들 사이에 종종 폭력이 행사되고, 국제정치가 정의롭게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국가 중심의 국제질서를 바꾸어야 한다는 요구가 많다. 그러나 그 대안으로 거론되는, 전세계를 관장하는 권력의 중앙집중, 지역단위의 결합체 형성, 국가이외에 다른 행위자, 예컨대 다국적 기업, 국제단체, 등을 포함한 새로운 국제체제, 등은 현실적이지 않거나 각자 나름의 한계를 안고 있다. 저자가 보기에 국가들의 체제는 20세기 이전에 비해 20세기 후반으로 가면서 서로 간에 규범을 지키는 정도가 약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 중심의 현재의 국제체제는 질서를 확보하는 최선의 방안이다.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 국제 정치 세계에서 질서, 법, 폭력, 갈등, 등의 개념을 국내 정치에서 아이디어를 끌어와 이해하려고 하는데, 이것은 분명한 오류이다 라고 단언한다. 질서를 확보하기 위해 전쟁이 벌어지고, 질서와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 정의를 추구하는 것과 충돌한다는 지적에서 저자의 통찰력이 번득인다. 이 책은 1970년대에 쓰여져서 냉전 종식 이후의 상황과 맞지 않는 지적이 곳곳에 있다. 이 책의 또다른 단점은 문장이 복잡하여, 마치 법률 문구를 읽는 느낌이다. 논리적으로는 정치하지만, 독자에게 친절하게 쉽게 쓰여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통찰력이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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