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ic Hoffer. 2002(1951). The True Believer: Thoughts on the Nature of Mass Movement. Harper Perennial. 168pages.
저자는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않고 막노동자로 일생을 지내면서 독학으로 책을 읽고 글을 써서 명성을 얻은 특이한 사람이다. 이 책은 그의 첫번째 책으로, 기존의 질서를 전복시키는 혁명적인 대중운동에 대한 그의 생각을 서술한다. 왜 혁명적인 대중운동이 발생하고, 어떤 사람이 참가하고,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대중운동이 시작되고 종결되는지 서술한다. 경험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한 객관적 설명이 아니라 저자의 주관적 생각을 제시한다.
기존의 질서를 전복시키는 급진적인 사회운동은 궁핍과 좌절과 억압이 극에 달하는 저점에서 발생하지는 않는다. 프랑스 혁명,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 등이 발생하기 이전 한동안 사람들의 삶의 수준이 향상되고 있었다. 사람들의 기대수준이 올라가는데, 현실이 그에 미치지 못할 때 기존 질서를 뒤없는 사회혁명이 발생한다. 전제주의 정권의 억압이 굳건할 때에는 체제를 전복할 사회운동이 일어나지 않는다. 전제주의 정권의 장악력이 떨어지는 시점, 즉 국민을 조금 풀어주는 시점에 급진적인 사회운동이 발생한다. 사람들이 먹고 살게 없다고 하여 혁명을 하지는 않는다. 극빈하면 일상의 생계를 확보하는 데 심리적 육체적 에너지가 모두 소진되기 때문에 혁명에 참여할 여유가 없다. 소련의 스탈린 시절, 중국의 모택동 시절, 정책 실패로 수백만이 굶어 죽었지만, 정권의 장악력이 확고하였기 때문에 체제에 대한 반발이 유의미하게 형성되지 않았다.
급진적인 사회운동은 혁명의 이념과 목표에 자신을 완전히 헌신하는 사람에 의해 추진된다. 이들은 자신의 삶에 실망하고, 좌절하고, 의미를 찾지 못하여, 자신의 인생을 걸 대안을 찾는 사람들이다. 혁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또 다른 부류는 현재의 질서에서 잘 맞지 않는 주변적인 사람이다. 자신의 삶에 실망하거나 현재의 질서에서 주변적인 사람은 현재의 질서를 뒤업고,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데 엄청난 열성을 보인다. 이들은 혁명을 방해할 어떠한 장애물도 부숴버리는 에너지를 발휘하는 광신도 fanetics 들이다. 자신의 삶에서 미래를 보지 못하고, 현재의 삶에 무료해 하고 암담해 할 때, 사회를 뒤집어 업고 새 세상을 만든다는 이념과 목표에 쉽게 빠져든다. 이들은 혁명이 가져오는 혼란과 변화 그 자체에 희열을 느끼며, 막상 목표를 현실적으로 실현하는 데에는 큰 관심이 없다. 광신도들이 없다면 기존 질서를 뒤업는 작업이 수반하는 혼란과 폭력과 저항을 이겨내고 계속 나아가는 추진력이 충분히 공급되지 못하기 때문에 혁명은 실패한다.
광신도들은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위해서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혁명적 이념에 엄청난 열정을 투입하면서 자신을 희생할 수 있다. 반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현재의 질서를 바꾸려는 사람은 계산적이기 때문에 추진력이 약하며 기득권의 저항과 역경을 이겨낼 수 없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사람은 기존의 질서를 완전히 전복시키고 새로 시작하려 하기보다 기존의 질서와 적절한 선에서 타협하는 선택을 한다. 자신의 일이 어느 정도 의미가 있는 사람들, 예컨대 지식인, 예술인이나, 자신의 가진 것 있는 사람들은, 외부의 이념에 자신을 희생하는 헌신을 하지 않는다. 극단적으로 가난한 사람들 또한 혁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
혁명은 기존 체제에 대해 사람들의 불만이 어느 정도 무르익어야 발화가 된다. 이러한 환경에서 지식인들은 새로운 이념과 대안을 제시하여, 사람들에게 희망을 제공한다. 기존의 질서에 대한 불만만으로는 부족하며 대안에 대한 희망이 있어야만 혁명의 동력이 작동한다. 혁명의 시작은 지식인의 말에서부터 시작된다. 기독교의 시작은 예수의 말이며, 볼셰비키 혁명의 시작은 맑스와 레닌의 말이며, 종교개혁의 시작은 루터의 말이다. 사람들은 혁명적 이념이 제시하는 환상, 현실을 대치하는 대안에 대한 희망에 끌려서 혁명에 참여한다. 혁명에 참여하는 사람은 개인이 아니라 사회전체를 바꾼다는 희망, 자신을 일개 개인이 아니라 사회전체와 동일시하는 환상에 빠져서 자신을 희생한다. 이러한 희망과 환상에 모두 설득당하고 동조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혁명은 필연적으로 폭력을 수반한다. 광신자들은 사회전체의 이름으로 혁명의 이념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을 적으로 몰아 증오하며, 폭력적 수단을 동원하여 반대자를 억압하고 처단한다.
폭력이 성공적으로 추진되려면, 혁명의 진행 단계에 따라 다양한 역할의 사람들이 등장하여 제 몫을 하여야 한다. 혁명의 이념과 대안과 희망을 제시하는 지식인, 자신을 희생하면서 기존의 질서를 부수고 혁명의 행동강령을 실천하는 광신도, 혁명 사업을 실행하고 조직을 관리하는 현실적인 실행인, 광신도와 실행인을 아우르고 이끌어가는 지도자, 혁명이 성공했을 때 뒤정리를 담당하며 혁명의 이념과 목표를 제도로 구체화시키는 관료, 등이 모두 갖추어져야 한다. 실행인의 뒷받침을 받지 않고 광신도만으로는 혁명이 성공할 수 없다. 지도자가 없는 광신도들은 오합지졸에 불과하다. 기존의 질서를 전복했을 때 현실적으로 처리해야 할 문제들이 많은데, 이를 새로운 질서, 새로운 제도로 정착시키는 일을 할 인재들이 필요하다. 이들이 없다면 혁명은 혼란으로 끝나게 된다. 혁명의 초기에는 광신도들이 중추적 역할을 하지만, 이들은 혁명 후반 제도화의 단계에는 오히려 정착을 반대하는 걸림돌이 된다. 이들은 안정을 원치 않고, 비현실적인 새로운 세상을 구축할 것을 계속 부르짖으며, 질서를 만들기보다 질서를 파괴하는 데 더 관심을 두기 때문이다.
혁명은 오래 끌면 실패한다.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변화를 기피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변화보다 안정을 선호하기 때문에, 아무리 기존 질서에 문제가 많다고 하여도, 사람들은 웬만하면 참고 그대로 지내려 한다. 혁명적 변화란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변화라는 충격에 짧게 노출되어야만 견딜 수 있다. 기존의 혁명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근본적으로 변한 부분도 있지만, 기존 질서의 대부분은 혁명 이후에도 계속 이어진다. 단기간의 혁명을 통해 기존의 질서에 균열이 가고 변화의 방향이 설정되면, 시간을 두고 충격의 여파가 퍼지면서 서서히 변화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기독교의 탄생에서 로마의 국교가 되기까지 300년의 세월이 걸렸으며, 16세기의 종교개혁이나, 18세기 후반의 프랑스 혁명과 미국의 독립혁명, 등도 혁명의 충격이 가시고 오랜 시간에 걸쳐 변화가 전개되었다.
저자는 특이한 이력답게, 글쓰기 방식이나 논지의 전개에서도 파격적이다. 다르다. 객관적 증거를 제시하거나, 기존의 논의 위에 자신의 주장을 덧붙이는 방식이 아니라, 자신의 오랜 경험과 반추의 결과물을 일방적으로 토해낸다. 주관적이고 선택적으로 추출하는 과장이 엿보이지만, 독창적인 신선함이 엿보인다. 다만 이 책에서는 혁명의 중요한 요소를 누락시키고 있다. 저자는 주로 개인의 심리적인 측면에서 혁명 참가자에 촛점을 맞추는데, 혁명은 사회구조적인 현상이다. 혁명의 원인은 혁명 참가자의 심리에 있기보다, 사회구조적 모순에 있다. 저자는 이부분을 처음에 약간 언급한다. 여하간 재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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