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rles Tilly. 1990. Coercion, Capital, and European States. Blackwell. 227 pages.
저자는 역사사회학자이며, 이 책은 서기 990년 부터 1990년까지 유럽의 역사를 훑으면서 유럽의 국가들이 탄생된 과정을 체계적으로 비교 분석한다. 유럽의 국가(state)들은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만들어지고 변화하였다.
"전쟁은 왜 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전쟁은 효과가 있기 때문에" (wars work) 라고 답한다. 전쟁을 통해 다른 나라의 것을 빼앗아 이익을 취하고, 다른 나라의 위협을 격퇴하고, 다른 나라를 지배하에 두고 착취할 수있다. 한 나라가 어떤 이유로건 약해지거나 변화가 있으면, 이웃 나라가 침략하였으며, 국가간의 제휴관계를 통해 집단적으로 전쟁에 간여하였다. 로마 제국의 붕괴 이래 유럽은 많은 작은 나라들로 분열되었다. 전쟁을 치르지 않은 해나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나라가 없을 정도로, 전쟁은 유럽 국가들 사이에 일상적인 것이었다.
전쟁을 하려면 자원이 필요하다. 전쟁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인력, 물자, 무기, 기술, 조직을 어떻게 마련하는가 하는 문제는 유럽의 왕들의 가장 주요한 일상 관심사였다. 왕은 전쟁 자원의 조달을 둘러싸고 영토 내에 자원을 가진 세력과 끊임없이 갈등하고 타협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국가가 형성되었다. 국가 형성의 길은 지역의 상황에 따라 크게 세가지로 나누어 진다.
영토내에 상공업이 발달한 도시가 있는 네덜란드나 베니스 등에서는, 대규모 자본을 소유한 도시의 상공인 세력이 왕과의 협상을 주도한다. 왕에게 전쟁에 필요한 자원을 제공하는 대가로, 상공인 세력은 왕과 국가의 권력을 나누어 갖는다. 도시의 상공인 세력은 왕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이 국가들의 전쟁은 상공인 세력의 대외적 이익을 보호하고 확장하는 목적에 기여한다. 상업이 발달한 지역에서는 국가가 전쟁 자원을 조달하는데 별도의 큰 인력과 조직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국가의 조직은 대외적인 힘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다. 이 국가에서는 상공인으로부터 조달한 돈으로 해외로부터 용병을 고용하여 전쟁을 수행하였다. 이는 17세기에 조그만 나라였던 네덜란드가 어떻게 세계적인 상업망을 구축할 수 있었는지 설명한다.
국민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고 대지주가 지역을 전적으로 지배하는 폴란드, 러시아, 등 동유럽 국가에서, 지역의 대지주 권력자는 왕의 통제로부터 독립된 존재였다. 왕은 명목적인 통치자일 뿐, 지역의 농민에 대한 실질적 지배는 대지주 권력자가 행사하였다. 왕은 전쟁에 필요한 물자와 인력을 지역의 대지주 권력자로부터 얻어 내기 위해 다양한 방식의 강압(coercion)을 행사했다. 왕의 강압은 지나치게 착취된 농민의 반발을 등에 업은 대지주의 반란을 종종 불러일으켰다. 왕의 권력은 언제라도 대지주 권력자들에 의해 찬탈될 위협에 놓여 있어 불안정했으며, 이러한 방식으로 많은 전쟁 자원을 빠른 시일내에 조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이 나라들은 보다 효과적으로 전쟁 자원조달을 하는 국가에 비해 국제 경쟁에서 열세에 처하게 되었다.
영토 내에 상공업이 발달한 도시가 있고, 또한 농업에 종사하는 광범위한 지역과, 지역의 농민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대지주 권력자가 있는 영국, 프랑스, 독일의 경우, 왕은 한편으로 도시의 대자본가 상공인 집단과 타협을 통해 전쟁 자원을 조달하며, 다른 한편으로 지역의 대지주 권력자에 대한 강압을 통해 그들을 제어하였다. 이 나라들에서는 시간이 지나면서 왕의 권력이 지역의 대지주 권력자를 건너뛰어 농민들에게 직접 미치는 방향으로 발전하였다. 왕의 권력이 농민들에게 까지 확장되는 과정에서 국가의 조직이 커졌다.
18세기 말 프랑스에서는, 왕의 전쟁 자원조달 노력이 도시의 자본가나 지역의 농민들이 허용하는 범위를 넘어섰을 때,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다. 프랑스 혁명은 농민과 노동자들의 착취에 대한 반발을 등에 업고 전문직 집단이 주도하여 왕의 지나친 전쟁자원 조달에 반기를 든 것이다. 혁명의 주도세력과 나폴레온 정부는 중간 매개자를 거치지 않고 노동자와 농민으로부터 직접적으로 국가의 전쟁 자원을 조달하는 길을 택했다. 주위 유럽 국가의 공격에 맞서 프랑스의 농민들은 국가에 대한 충성에서 국가에 세금을 납부했으며 전쟁에 병사로서 참가했다. 혁명 주도세력은 지역 권력자들의 반발을 꺽고 국민을 직접 통치하는 국가 조직을 만들어냈다. 프랑스 혁명을 계기로 하여, 국가가 국민을 실질적으로 통치하고, 국민이 국가의 통치에 직접 간여하는 '국민국가'(national state) 가 탄생한 것이다. 국민국가는, 도시의 대자본가 상공인과의 타협을 통해 전쟁자원을 조달하는 방식이나, 지역의 대지주 실력자에 대한 강압을 통해 전쟁자원을 조달하는 모델보다, 훨씬 효과적이며 신속하게 전쟁에 소요되는 대규모의 인력과 자원을 조달할 수 있었으므로, 국제 전쟁에서 다른 모델의 국가를 모두 패퇴시켰다. 나폴레온의 유럽 정복을 거치면서 국민국가 모델은 전 유럽 국가들에 전파되었으며, 국제경쟁 속에서 이 모델만이 유일한 국가의 전형으로 살아 남았다.
영국은 프랑스와 달리 유혈 혁명을 거치지 않고 국민국가 모델로 이전하였다. 대의제를 통해 대자본가와 상업화된 대지주에게 국가의 권력을 점진적으로 이양하면서, 그들의 동의를 거쳐 전쟁 자원을 효과적으로 조달하였다. 영국은 프랑스보다 훨씬 상공업이 발달하였으므로, 네덜란드와 비슷하게 대자본가와의 타협을 통해 대규모의 전쟁자원을 효과적으로 조달하였다. 프랑스가 영국에 패한 주원인은 영국이 프랑스보다 전쟁자원을 훨씬 효과적으로 조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국가가 자신의 국민으로부터 전쟁자원을 조달하려면, 국민의 다양한 요구에 응해야 한다. 국민의 참정권을 보장하는 입헌 민주주의가 확대되었으며, 국가의 전쟁에 필요한 군사와 재정의 기능 이외에, 치안, 복지, 교육, 노동, 경제 개발, 교통, 주택 등 다양한 기능이 국민의 요구에 응해 더해졌다. 급기야 20세기에 들어 국가의 주요 기능이 복지를 제공하는 데 맞추어진 복지국가가 출현하였다.
국가의 핵심 기능은 국제 경쟁 체제에서 전쟁 수행에 있으며, 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국가가 형성되고 국가의 기능이 변화하여 왔다는 저자의 분석은 명쾌하다. 유럽의 지난 천년간의 역사를 꿰뚫으면서 설명을 하기에 논의가 복잡하다. 정말 대단한 연구 성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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