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향. 1997. 영국사: 보수와 개혁의 드라마. 까치글방. 496쪽.
저자는 영국사를 전공한 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영국의 역사서이다. 주요 주제에 따른 서술을 먼저 하고, 이어서 시대에 따른 서술을 한다. 주요 주제로는 영국인의 정체성, 통치제도, 영제국, 지성사, 지주와 중간계급과 자본주의, 노동계급, 영국의 현안과제(북아일랜드, 유럽통합, 경제적 쇠퇴)를 다루고 있다.
영국은 섬나라이기에 유럽 대륙의 정치 군사적 갈등으로부터 독립되어 있다. 1060년대 노르만의 침공 이래 20세기까지 일천년 동안 외세로부터 침입을 전혀 받지 않았다. 덕분에 정치가 안정되었으며, 유럽인과 구분되는 정체성을 형성하게 되었다.
영국은 중세시대부터 왕권에 대한 지주 귀족들의 견제가 컸으며, 이는 1200년대의 마그나카르타에서 명문화되었다.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는 자유주의 전통이 1600년대에 이미 정착되었으며, 1688년의 명예혁명에서 의회의 승인없는 세금의 부과를 금하고, 국가의 자의적 권력 행사로 개인의 생명과 자유와 재산이 침해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명확히했다. 대륙과 달리 영국에서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넘어 왕과 국가가 개인과 사회 위에 군림하는 절대 왕정의 시대가 존재하지 않는다. 왕은 의회의 승인을 얻어 세금을 징수하였는데, 이는 대륙 국가의 왕들이 자의적으로 세금을 거두는 것보다 효율적으로 세수를 확보할 수 있으므로, 프랑스 및 스페인 등과의 전쟁에서 영국이 승리를 거두는 결정적 원인이다.
영국의 지주계급은 상공업 자본으로 전화함으로서 경제 변화의 흐름을 잘 탔다. 17세기 인클로저 운동을 통해 소규모 농민을 몰아내고 농업의 대형화, 효율화를 이끌었으며, 이들은 이후 상업자본가, 금융자본가로 성장하였다. 이는 영국의 장자상속제에 힘입었다. 장자는 토지를 통째로 상속받아 지주로 남지만, 차남 이하는 상업과 금융 부분에 진출하거나 성직자로 성장하였다. 따라서 지주계급과 상공업 자본가 계급은 밀접하게 연결되었다.
영국은 세습적 신분 못지 않게, 근대 초기부터 부의 축적에 의한 지위 상승이 가능했다. 상업, 금융, 전문직, 등을 통해 부를 획득한 부르주아들은 토지 귀족 못지 않은 존경을 얻을 수 있었다. 상공인은 대지주 귀족과 함께 의회에 참여하였다. 성공한 부르주아들이 토지를 획득하여 지주계급으로 신분을 바꾸려는 욕구는 강하지 않았기에 산업 자본은 재투자되었다. 경제발전을 향한 자본의 선순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영국은 대륙과 달리 어느 정도 신분 상승의 길이 열려있는 개방된 사회였다. 이것이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먼저 시작된 이유 중 하나이다. 영국은 개인의 자유와 성취 동기가 다른 어느 유럽 국가들보다 강하였기 때문이다. 프랑스인은 영국을 상인의 나라라고 경멸했으나, 상공업의 부에 대한 긍정적 태도가 영국의 발전을 이끈 동력이다.
1750년대에 영국과 프랑스의 7년 전쟁에서 영국이 승리함으로서 독보적 강국으로 부상하였다. 이후 미국 식민지를 잃기는 했으나, 인도, 캐나다, 호주, 등 전세계에 식민지를 건설하여 19세기 말에는 전세계의 5분의 1을 식민지로 거느리는 제국이 되었다. 18세기 후반 가장 먼저 산업혁명에 착수하여 19세기 중반 영국은 세계의 어느나라보다 생활수준이 높았으며, 세계 상공업의 생산과 수출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19세기 후반이 되면 영국의 경쟁력은 후발 산업국인 미국과 독일에 의해 추월당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선발 산업국의 이점은 사라지고, 기득이권이 버티면서 새로운 파괴적 혁신을 추진할 능력을 상실하여, 후발 산업국보다 산업의 효율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20세기에 들어 영국은 경쟁국가에 뒤지고, 두차례의 전쟁을 겪으면서 제국을 유지할 능력을 상실하여, 인도의 독립을 시작으로 1960년대에 제국의 대부분을 상실하였다.
영국의 노동자들은 18세기 후반 유럽을 휩쓴 사회주의 물결 속에서 급진 노선보다는 자본가와의 타협을 선택한다. 영국의 노동자들이 유럽보다 상대적으로 부유하였으며, 19세기 말 이래 노동자의 요구를 정치 과정에 흡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 노동조합의 후원을 등에 없은 노동당이 집권하였으며, 노동자의 요구의 상당 부분이 복지국가의 확대로 반영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 경제위기에 더하여 노동자들의 파업이 격렬했을 때, 보수당의 대처 수상이 집권하여 시장경쟁을 중시하는 신보수주의 정책을 밀어붙였다. 그러나 영국은 금융부문을 제하고는, 낮은 생산성 때문에 산업 경쟁력이 낮은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이 책은 저자의 연구와 강의 경력을 잘 배합하여 쓴 책이다. 저자의 전공 분야인 계급과 노동 분야를 깊이있게 잘 썼다. 영국인은 세계의 가장 선진적인 모범국민으로서의 자부심을 한 때 가졌지만, 지금은 선진 산업국들 중 상대적으로 뒤쳐진 나라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대단한 폭력적 갈등이나 혁명 없이 헌정이 계속 이어진다는 점이 특이하다. 영국은 사회 청산의 경험을 갖지 않은 유일한 나라이다. 이것을 긍정적으로 보아야 할지, 부정적으로 보아야 할지 불확실하지만, 한국과 비교할 때 한 수 위의 나라인 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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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cur Olson. 1982. The Rise and decline of nations: Economic growth, stagflation, and social rigidities. Yale University Press. 237 pages.
저자는 정치경제학자이며, 이 책은 세계의 나라들이 오랫동안 안정되고 흥성하면 반드시 쇠퇴한다는 명제를 제시하면서 현재와 과거의 다양한 사례를 통해 이유를 설명한다. 그의 이론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오랫동안 안정된 사회에는 소수의 기득권 집단이 형성되면서, 이들이 새로운 변화를 거부하고, 생산성 향상에 실패하면서 경쟁국들에게 뒤지는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사회가 안정될수록 소수의 사람들이 집단을 형성하여 전체의 이익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공모를 한다. 사회의 다수는 이들 소수들의 이익집단에 대항해 전체의 이익을 위해 집단 행동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다수는 조직하기 힘들며, 공짜 편승(free rider)의 문제로 인하여 전체의 이익을 위한 집단행동은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소수들의 집단은 경제의 효율성을 갉아먹으며, 정치를 분열적으로 만든다. 소수들의 이익 집단들 내에서 의견을 조정하려면 많은 노력을 요함으로, 결국 소수들의 이익집단들이 조정하는 정치는 의사결정을 더디게 만든다. 평화가 오래 지속되면 소수의 집단들이 공모하여 전체의 생산성에 반하는 행위를 하는 경향은 필연적이므로,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오래 번성하던 국가는 거의 모두가 결국 정체하고 외세의 침략에 무너졌다.
소수들의 이익집단이 지배하는 정치는, 기술과 환경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여 자원의 배분을 변경하는 방식의 적응을 어렵게 만든다. 왜냐하면 자원의 배분을 변경하면, 소수들의 집단의 이익이 훼손될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변화를 거부하는 힘은 생산성의 향상을 어렵게 만들며 성장을 둔화시킨다. 소수들의 집단은 사회를 배타적으로 만들며 다양성을 제한한다. 이익집단의 수가 늘고 힘이 커지면, 정부의 규제가 복잡해지고, 정부의 규모가 커지고, 결국 사회와 경제의 활력이 떨어지며 정체된다.
저자의 이론은 영국이 산업혁명 이래 역동적이었던 경제가 19세기 후반으로 들면서 왜 정체하게 되었는지를 잘 설명해준다. 한편, 일본과 독일은 두차례의 전쟁에 패한 이후에 빠른 성장을 보였는데, 이는 기존의 소수들의 이익집단들이 전쟁을 통해 모두 사라지면서, 새로이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한국이나 대만도, 식민지 시기를 거치면서 과거의 기득권 집단이 사라지고 판을 새롭게 하여 시작하였기에 빠른 성장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다.
반드시 전쟁이 아니라도, 국가 통합이 이루어지거나 자유무역이 확대되는 경우, 소수들의 기득권집단이 지배하는 지형은 크게 변화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얻게 된다. 유럽 통합이 전자의 대표적 예이며, 2차대전 후 미국의 주도로 세계적으로 자유무역이 확대된 것이 후자의 예이다. 기존에 보호무역의 장벽 뒤에서 기득권을 누리던 세력들은 자유무역이 확대되면서 해외로부터의 경쟁에 노출되고, 이들은 변화할 수 밖에 없었고, 경제 전체의 생산성 향상을 가져왔다. 남미의 국가들이 수입대체 산업화를 표방하면서 보호무역의 장벽을 높이한 결과 경제가 정체한 반면,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는 해외 무역에 집중하여 경제를 개방하였기에 생산성이 빠르게 향상되고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중세의 길드 조직, 인도의 카스트, 제삼세계의 인종과 민족 갈등와 같은 극도의 불평등, 편견, 차별을 포함하는 사회구조는 생산성 향상을 막는다. 이러한 불평등하고 차별적인 사회구조의 지배층들이 새로운 변화와 효율적인 자원의 재분배를 반대하기 때문이다. 기득권을 누리는 소수들의 집단은, 전체의 이익을 위해 생산성을 향상하려는 노력이나,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변화를 거부한다. 이것이 제삼세계가 가난한 주요 이유이다.
소수의 이익집단은 보편적인 법의 적용을 막는다. 대신 법을 뒤틀어, 즉 예외 조항을 덧붙이고 규제를 복잡하게 하여,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법이 집행되게 만든다. 사회가 오래 안정될수록 법 조항이 복잡해 지고, 소수들의 이익집단이 빠져나갈 구멍이 많이 만들어지고, 이들에 봉사하는 전문직 집단들이 두텁게 형성된다. 세무사, 변호사, 금융 종사자, 등이 그들이다.
저자의 집단행동 이론 (logic of collective actions)은 사회과학계에 대단한 통찰력을 제공했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정치경제 이론 역시 대단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평이한 서술이지만, 그의 설명은 대단한 설득력을 지닌다. 미국에서 왜 정치가 교착상태에 빠져 있는지, 많은 사회에서 왜 혁신적인 기술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지 설명하는데 유용하다. 그의 이론을 따른다면, 역사는 일종의 사이클을 그릴 것이다. 오랫동안 흥성하면, 결국 정체하다, 다른 나라에 따라잡혀서 뒤지게 되고, 전쟁을 통해서 판이 뒤업어지면, 다시 새판에서 역동적으로 발전한다는 논리이다. 사회가 오랫동안 안정되면 점차로 불평등이 확대되게 되고, 결국 전쟁이나 엄청난 갈등을 통해 뒤집어지면서 불평등이 완화고, 다시 점차 불평등이 확대되는 사이클을 그린다는 논리와 유사하다. 이 책의 저자는 이러한 논리를 집단행동 이론으로부터 유추해내었다. 즉 마이크로 이론으로부터 매크로 이론을 도출해낸 것이다. 대단한 독창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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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njamin Friedman. 2005. The Moral Consequences of economic growth. Vintage books. 436 pages.
저자는 경제학자이며, 이 책은 경제성장이 사회에 미친 영향을 18세기 이래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의 역사 전개를 사례로 하여 설명한다. 경제가 성장하면 사회가 개방적이고, 이민자와 다양성을 포용하고, 사회이동이 높으며, 공정성과 민주주의가 향상되는 방향으로 전개되는 반면, 경제가 침체 혹은 후퇴하면 사회적으로 리버럴한 가치로부터 멀어진다. 절대적인 경제 수준보다는 경제가 성장하는가 여부가 사회적으로 리버럴한 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요인이다. 즉 상대적으로 가난한 나라라도 경제가 성장하면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변화가 관찰되는 반면, 아무리 소득이 높은 나라라도 경제가 침체하거나 후퇴하면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변화가 나타난다.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현재의 상황을 먼저 자신의 과거의 상황과 비교하며, 그 다음으로 주변의 다른 사람의 상황과 비교한다. 경제가 전반적으로 성장하면 자신의 과거와 비교하여 자신의 현재가 나을 가능성이 크다. 설사 그렇지 않다고 해도 자신의 상황도 조만간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경제가 성장하면 비록 자신의 상황의 개선 속도가 주변 사람의 개선속도보다 느리더라도, 최소한 자신의 과거와 비교해 개선되고 있기 때문에 사회 문제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게 된다. 사람들이 자신의 경제 상황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내리게 되면, 사회적으로 개방성과 포용성이 높아지며, 사회이동의 가능성이 높아지며, 공정성과 민주주의도 향상되게 된다(movements toward openess, tolerance, mobility, fairness, democracy). 반면 경제가 침체하면 자신의 상황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리버럴한 가치에 대해 등을 돌린다.
미국이 1960년대에 민권운동으로 흑인의 지위가 크게 향상되고, 이후 여성운동으로 여성의 지위가 크게 향상된데에는 이차대전 이후 1970년대 초반까지 꾸준한 경제성장이 배경 요인이다. 1970년대 중반이래 경제가 어려워지고, 1980년대 구조조정의 기간에 노동자의 소득이 정체되고 일자리가 불안정해지면서, 흑인의 지위 향상은 중단되었으며, 이민을 통제하는 조치가 등장하고, 대중영합주의 정치가 득세하게 되었다. 1870년대에 큰 불황을 겪으면서 일시적으로 농민을 중심으로 대중영합주의가 세력을 얻고 인종차별이 심해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19세기 말에 미국 사회의 전반적 개혁을 추진한 진보주의 progressivism 사회운동이 발흥할 수 있었던 것은, 크게 볼 때 19세기의 경제성장과 중류층의 부상 덕분이다.
영국은 18세기 후반 산업혁명이래 19세기 전기간 동안 경제가 꾸준히 팽창하는 것을 배경으로 하여 1880년대 이래 자유무역 정책을 추진했으며, 투표권을 꾸준히 확대하였다. 영국과 프랑스는 1930년대의 대공황 기간 동안 배타적인 민족주의 세력이 활개를 쳤으며, 독일은 1차대전 이후의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을 배경으로 나찌의 파시즘이 득세하였다.
근래에 선진국에서 경제가 침체하면서 사회적 불만이 높아지고 정치가 불안정해지는 모습을 보인다. 자신의 자식이 자신보다 나은 삶을 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되면, 사람들이 리버럴한 가치에 등을 돌리게 된다. 약자에게 권리와 혜택을 나누어주는 것에 인색해지며,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데 더 신경을 곤두세운다.
이 책은 지난 200년 동안의 서구의 경제 사회의 변화를 주마간산으로 훑으면서 사회과학에서 논의하는 주요 주제들을 거의다 건드린다. 저자는 소득의 높고 낮음을 떠나서 정치 사회적 안정을 위해서 꾸준한 경제성장이 필수라고 주장한다. 경제성장과 사회적 리버럴리즘 사이에 인과적 관계가 있다는 저자의 주장은 전반적으로 당연한듯 보이지만, 엄밀하게 따지고 들어가면 예외를 많이 발견한다.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시대에 뉴딜 정책을 통해 리버럴한 정책이 많이 도입된 것이 대표적인 예외이다. 이는 사회 현상이 하나의 법칙으로 포괄할 수 없이 복잡하다는 의미이거나, 혹은 저자의 명제가 맞지 않다는 의미일 수 있다. 후반으로 갈수록 같은 이야기를 여러번 반복하고, 문장이 장황하여 읽기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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