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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4. 17. 18:03

Edward O. Wilson. 2014. The Meaning of Human Existence. Liveright. 187 pages.

저자는 저명한 생물학자이며, 이 책은 생물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인류의 존재에 대해 생각한 바를 서술한 에세이 모음이다.

인류가 존재하는 이유는 철학자들이 주장하듯이 그리 복잡하지 않다. 인류는 생물계의 진화의 산물이다. 생물체가 존재하기에 적절한 환경을 지구는 타고 났으며, 그러한 환경에서 오랜 동안 전개된 생물체의 진화 과정에서 우연이 중첩되면서 현재의 인간이 만들어졌다. 물론 그러한 진화의 과정에서 마주친 수많은 대안들이  출현하지 못했거나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으며, 인간이 되는 길이 아닌 다른 길로 접어들어 다른 생물체로 발전하였다. 인간과 가장 근접한 유인원인 침팬지와 인간의 길이 갈라진 이후에도, 수십종의 인간의 조상이 절멸된 끝에, 현재의 인간 Homo Sapiens 가 탄생하였다. 인간이 되는 진화의 과정은 매우 매우 작은 확률의 소산이다. 그 많은 조합(permutation)의 과정에서 하나라도 다르게 선택되었다면 현재의 인간이 출현하지 못했다. 진화는 방향을 정하지 않고 전개되는 것이므로, 인간이 되는 길에 필연이란 없다.

지구상에 지금까지 존재한 사회적 동물이 총 20가지 있는데, 인류는 그중 하나이다. 사회적 동물이란 군집하여 생활하며, 군집 생활에 삶을 의존하며, 집단의 생존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동물을 의미한다. 개미나 벌이 속하는 사회적 동물은 지구 전체 생물계의 4분의 3을 차지할 정도로 진화의 과정에서 크게 성공하였다. 인간은 다른 사회적 동물과 마찬가지로 분업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다른 사회적 동물과 달리 본능에 따라 프로그램된 분업 생활을 하지 않는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기본적으로 모순적이다. 개인간의 생존 경쟁에서는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기 위해 이기적으로 행동한다. 그러나 집단간의 생존경쟁에서는 집단의 생존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는 이타적 행동을 한다. 즉 인간은 이기적이면서 동시에 이타적인 동물이다. 자신의 집단 구성원을 위해서는 이타적이지만, 타집단에 대해서는 냉혹하게 배타적이며, 타집단에게 행하는 아무리 나쁜 행동도 자신의 집단에 도움이 된다면 미덕으로 정당화된다. 문제는 자신이 속한 집단의 범위가 맥락에 따라 가장 작은 규모의 가족에서부터 크게는 국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수시로 바뀐다는 점이다. 자신의 가족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자신의 마을에는 해가 될 수 있으며, 자신이 속한 작은 클럽에 이익이 되는 것이 자신의 사회에는 해가 될 수 있다. 종교 또한 이러한 부족주의 (tribalism)의 발로이다.

지구의 생물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박테리아와 같은 미생물이다. 미생물은 종의 다양성이나 규모에서 다른 모든 생물체를 훨씬 능가한다. 인간은 인간 중심으로 세계를 인식하기 때문에, 근래까지 지구상에서 미생물의 중요성에 대해 거의 무지하였다. 인간이 인식하는 세계는, 인간의 매우 제한된 감각 범위 때문에 지구상의 다른 동물과 비교해서도 매우 좁다. 지구상에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생물계가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한편, 지구 밖에 외계의 생물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은데, 외계 미생물의 존재는 조만간 밝혀질 것이다. 인간과 같은 지능을 가진 외계의 생물체가 존재할 가능성은 매우 작으며, 설사 존재한다고 해도 지구상의 인류와 접촉할 가능성은 더더욱 작다.

인간은 과거 수렵채취 시절에 발달시킨 본성을 가지고 현대 도시 산업사회를 살고 있으므로 많은 문제에 봉착한다. 인간의 본성은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환경에 적합하지 않으며, 인류의 과학 기술은 불과 200년 남짓에 불과하기 때문에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기에  미흡하다. 현재 인류는 자연계의 진화의 과정을 중단한채 살고 있는데, 앞으로 과학기술이 계속 발달한다면, 인류는 조만간 인간 유전자 자체를 조작 변형하는 단계에 도달할 것이다.  질병을 예방 치료하는 부수적인 조작을 넘어서서, 본질적으로 인간의 성질을 바꾸는 방향으로 나가지 않기를 바란다.  

이 책은 저자가 다양한 잡지에 쓴 에세이를 모아 놓은 것이므로 중복이 많고 논의에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다. 인간의 존재 의미에 대한 저자의 견해는 맨 처음에 제시된다. 사실 이는 너무나도 투명하므로 '왜' 라는 질문이 성립하지 않는다. 인간은 우연의 산물이다. 인간을 포함한 세상은 우연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기에, 인간은 이야기를 꾸며내었다. 창조 신화, 하나님의 은총, 선과 악, 내세와 구원 등이 '우연'이라는 사실이 담고 있는 허무함을 잊기 위한 노력이다.  이러한 이야기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왜 존재하는지, 왜 이러한 일을 당해야 하는지, 견디기 힘들 것이다. 현대 서구의 과학기술 문명이 500년을 넘지 않으므로, 앞으로 1천년이 지나면 어떻게 될지 상상하기 어렵다.  저자의 희망과 달리, 앞으로 인간은 다른 생물체로 유전자 변형되면서, 현재의 인간은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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