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ra Klein. 2020. Why We're Polarized. Avid Reader Press. 282 pages.
저자는 저널리스트이며, 근래 미국 정치가 심하게 양극화된 원인을 다양한 기존 연구를 인용하여 검토한다.
현재 미국의 정치 지형은 민주당 지지자와 공화당 지지자들이 서로 극단적으로 양극화되어 있으며, 중간층 혹은 부동층이 매우 엷다. 미국의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자신이 동일시하는 집단 정체성에 따라 이 두 진영 중 하나에 속한다. 미국인에게 중요한 집단 정체성은 다양한 범주에 걸쳐 있는데, 대체로 다음과 같다. 백인 대 유색인, 남성 대 여성, 복음주의 개신교도 대 이들 이외의 사람, 보수주의자 대 자유주의자, 교외/ 농촌지역 주민 대 대도시 주민, 고등학교 졸업자 대 대학교 졸업 이상 학력을 가진자, 등이다. 각각의 집단 구분에서, 전자에 속하는 사람은 공화당을 지지하고, 후자에 속하는 사람은 민주당을 지지한다. 이렇게 다양한 정체성 범주가 공화당과 민주당이라는 두 개의 집단으로 일관되게 정렬해 있다. 이 다양한 정체성 기준간에는 역사적 혹은 사회문화 및 경제적으로 서로간 약간의 연관성은 있지만 필연성은 없다. 예컨대 백인과 남성이 아니라 백인과 여성이 한 집단으로 묶인 정체성을 형성할 수도 있다.
미국인의 정치적 지지는, 논리적 혹은 실용적으로 일관된 이유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집단이 상대의 집단과의 다툼에서 이기는 것 자체를 목표로 한다. 예컨대 오바마가 제안한 의료 개혁은, 예전에 미트 롬니를 비롯한 공화당 의원들이 제안한 정책과 유사한 것인데, 오바마의 집권에 반대하는 공화당 지지자들은 오바마가 제안했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정책을 극렬하게 반대한다. 정체성 정치의 또 다른 예로, 최근 선거에서 공화당 지지자들은 도날드 트럼프가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신뢰할 수 없는 사람임을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의 상대인 힐러리 클린턴이 승리하는 것을 더 참을 수 없어 했기 때문에 트럼프를 지지했다. 요컨대 근래의 미국 정치는 실용적인 정책 대결이 아니라, "우리 대 그들" (us versus them) 이라는 정체성에 토대를 둔 진영 싸움이다. 미국인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우리편이 이기고 상대편이 지기를 원하기 때문에, 혹은 설사 나에게 실제적으로 불이익이 돌아간다고 해도, 상대편이 이기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하기 때문에, 정치가 심하게 양극화되어 있다. 집단 정체성을 중심으로 한 진영 싸움이 정치판을 지배하면, 상대를 합리적으로 설득하면서 실용적인 접근으로 타협을 도출하는 정치가 가능하지 않다. 이유를 불문하고 상대를 미워하고, 상대와 어울리고 싶어하지 않고, 상대가 이기는 상황을 두려워하는, 요컨대, 양자간 접근과 타협이 불가능한 정치만이 남았다.
미국의 정치 지형이 과거에도 이렇게 극단적으로 양분되었던 것은 아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민주당과 공화당은 각 정당 내에 다양한 이념과 의견을 가진 정치인들이 섞여 있어서, 정책 사안에 따라 소속 정당의 경계선을 넘어 지지하고 서로간에 타협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특히 민주당의 경우 서로 정반대의 이념을 가진 두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즉 남부의 민주당원은 흑인을 억압하는 인종주의를 극렬하게 옹호하는 반면, 북부의 민주당원은 진보적인 자유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당시 민주당은 남부 흑인의 인권에 눈을 감는 것을 조건으로 하여서만, 민주당의 정강을 추진할 수 있었다. 그당시 공화당에 보수주의자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며, 인종 문제와 관련해서는 남부의 민주당원보다 훨씬 더 진보적인 의견을 가진 공화당원이 적지 않았다. 요컨대 과거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립이 심하지 않았던 때는, 흑인의 희생을 토대로 하여 타협의 정치가 전개되었다. 따라서 흑인을 포함한 미국인 전체로 볼 때, 과거 양극화되지 않았던 정치가 지금의 양극화된 정치보다 더 건강하다고 볼 수 없다.
근래 미국 정치의 극단적 양극화의 시발점은, 1960년대 중반 민주당이 집권하던 시절에 흑인에게 실질적으로 투표권을 주는 개혁을 실시한 후에, 1970년대에 들어 남부의 민주당원들이 공화당으로 갈아타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공화당은 백인을 중심으로 한 정당, 즉 백인의 집단 정체성을 최우선에 두는 정당으로 변모하였다. 공화당원에게 백인의 인종 정체성이 그렇게 크게 부상한 원인은, 1970년대 이래 미국인의 인종 구성이 변했기 때문이다. 1960년대 중반 이민법 개정 이래, 미국인의 인종 구성에서 아시아인과 중남미인의 비중은 갈수록 커진 반면, 유럽계 백인의 비중은 갈수록 줄어들었다. 2040년경이 되면 백인이 미국 인구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 것이 확실하다. 미국은 과거 노예제에 뿌리를 두고 오랫동안 유색인을 차별하고 억압하는 사회였으며, 백인들은 백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삶의 모든 분야에서 유색인보다 우월한 특권을 누렸다. 백인은 숫적으로 자신들의 비중이 줄어드는 것을 일상에서 체감하면서 위기감을 느끼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에 반발하는 행태, 즉 정치적으로 자신들의 집단 정체성을 강화하면서, 사사건건 반대 진영과 대립하는 태도를 취한다. 공화당은 백인의 인종 정체성을 중심에 두고, 역사 문화 사회적으로 백인 인종과 연관된 특성인, 남성, 복음주의 기독교 신앙, 도덕적 보수주의, 교외/농촌지역 거주자, 교육수준이 높지 않음, 등이 일관되게 결합된 모습을 띤다.
미국의 정치가 심하게 양극화된데는 미디어의 역할도 한 몫 한다. 케이블 티브와 인터넷이 출현하기 이전인 1970년대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자신과 의견이 다른, 혹은 자신이 속하지 않은 정치 집단의 의견도 일상적으로 접해야 했다. 자신의 구미에 맞게 미디어를 취사선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제한된 숫자의 신문 방송은 가급적 넓은 범위의 고객을 확보하는 것이 회사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에, 심하게 편파적인 의견을 피했으며, 가급적 다양한 의견을 폭넓게 제시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케이블 티브가 보급되고, 1990년대 중반 인터넷이 출현하면서, 사람들의 미디어 선택의 폭은 엄청나게 넓어졌다. 미디어 회사들은 모든 범위의 고객을 고루 상대하는 것보다, 편파적인 생각을 가진 충성스런 고객을 확보하는 것이, 회사의 이익에 부합했다. 그결과 FOX 채널과 같이 지극히 편파적인 미디어가 공화당 지지자를 파고 들었으며, 그보다는 덜 편파적이지만, CNN, MSNBC 등의 채널은 민주당 지지자들의 선호를 따르는 미디어로 자리매김하였다. 인터넷은 알고리즘을 이용하여 이용자의 성향에 맞는 내용만을 편향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미디어의 편파성 효과가 케이블 티브이보다 훨씬 심하다. 사람들은 이렇게 편파적인 미디어만을 접하면서 상대편의 의견을 들을 기회가 없어지며,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의견을 내재화하고 더욱 더 굳건하게 사실이라고 믿게 되었다.
민주당과 공화당을 비교해 보면, 공화당이 민주당보다 훨씬 더 편파적이며, 극단적인 벼랑끝 전략까지 구사하면서 자신의 진영의 우위를 지키려 한다. 민주당은 이념 지형에서 진보에서 중도보수까지를 넓은 범위를 포괄하며,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반면 공화당은 이념 지형에서 보수쪽에 훨씬 치우쳐 있으며, 백인이라는 인종 정체성이 다른 모든 정체성을 압도한다. 이러한 차이는, 백인이 자신들의 인구 수가 줄어 들고 인종적 특권이 축소되고 있다는 위기감 때문에 나타난 결과이다. 현재 공화당과 민주당은 대통령 선거나 상하원 의원 선거에서 표면적으로는 거의 대등한 점유율을 보이고 있지만, 이는 미국의 정치 제도가 심하게 외곡되어 있어서 유권자의 대표성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상원 선거에서 민주당은 전국민의 60% 이상의 표를 획득하지만, 각 주 당 2명의 상원의원이 할당된 제도 때문에, 주들 사이에 인구 규모의 차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하원 역시 선거구를 공화당의 득표에 유리하도록 일방적으로 조정하여 (gerrymandering), 실제로는 민주당이 훨씬 더 많은 표를 획득하지만, 하원의원 수에서는 절반밖에 획득하지 못한다. 대통령 선거에서 역시 2000년 앨고어와 부시의 선거나, 최근의 클린턴과 트럼프의 선거에서 모두 민주당 후보가 국민의 다수의 표를 획득하였지만, 선거인단이라는 외곡된 제도 때문에 국민의 소수의 표를 획득한 공화당 후보가 당선되었다. 백인의 인구 비율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이런 외곡 현상은 더 빈번하게 발생할 것이다. 공화당은 자신의 지지자가 상대적으로 소수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극단적인 주장과 벼랑끝 전략을 구사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한다. 또한 가급적 투표하기 어렵게 만들어 민주당 지지자들의 투표를 방해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저자는 현재 극단적으로 양극화된 미국 정치를 어떻게 개선할지에 대해 뾰족한 해결책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고백한다. 저자는 양극화된 정치 지형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념적으로 정당이 양극화되어 있으면 유권자들은 자신의 의견에 근접한 정당을 더 잘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이념적으로 구분되지 않는 모호한 정강의 정당이 난립하는 정치 지형보다는, 이념적으로 양극화된 정당 구도가 더 낫다고 본다. 양극화 그 자체보다는, 현재 미국의 정치가 국민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즉 국민 주권이 제대로 정치 과정에 반영되지 않는 외곡된 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공화당이 저렇게 극단적인 전략을 쓰는 것은, 소수의 지지를 받으면서 정권을 장악하고 있어서, 상대와 합리적인 타협이 불가능한 형국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화당이 기존 제도가 제공하는 기득권을 포기하도록 제도를 개선하기는 매우 어렵다. 저자는 대신, 미국인들이 중앙 정치에 대한 관심을 줄이고,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정치에 더 관심을 쏟을 것을 제안한다. 사실 지역의 정치가 주민의 이익에 더 가까이 있고, 극단적인 진영 싸움보다는 실용적 타협점을 찾기에 더 용이하다. 사람들이 지역 정치를 통해 실용적인 접근을 하는 습관이 든다면, 중앙 정치도 실용적이 되도록 사람들의 행동 패턴이 바뀔 것이다.
이 책은 저널리스트가 쓴 정치 분석서로는 드물게, 많은 학술 연구를 참고하여 주제를 체계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미국 정치의 양극화와 관련된 논의를 폭넓게 섭렵하는 기회를 얻는다. 다만, 저자가 민주당 지지자이기 때문에, 공화당 지지자라면 혹시 미국 정치의 양극화를 다른 시각에서 보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그렇게 양극단으로 쪼개져 있다면, 분명 저자와 반대편에 서있는 공화당 지지자는 민주당 지지자와는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미국 정치를 볼 것이다. 문제는 학계와 미디어는 대부분 민주당 지지자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데 있다. 체계적인 분석은 지식인의 소관인데, 미국에서 지식인은 거의 대부분이 민주당 지지자이므로, 공화당 지지자이면서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이 책을 다 읽으면서, 저자의 분석 역시 편파적인 접근의 산물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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