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mes Scott. 2017. Against the Grain: A deep hostory of the early states. Yale University Press. 256 pages.
저자는 인류학자이자 정치학자이며, 이 책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예로하여 국가가 생성된 과정을 설명한다. 국가는 인류가 한곳에 정착하여 곡물을 재배하게 되면서 생겨났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국가란 국민들을 보호해주는 명목으로 금품을 갈취하는 깡패짓(protection racket)과 비슷하다. 한곳에 정착하여 곡물을 재배해야만 이러한 깡패짓이 가능하다. 수시로 이동하면서 살아가는 유목민이나 화전민 등이나, 곡물을 재배하지 않고 주변에 다양한 자원으로부터 수렵채취를 통해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산간지역 혹은 소택지와 같이 외부의 세력이 쉽게 지배하기 어려운 곳에서는 국가가 출현하지 않았다. 역사는 국가의 틀에서 사는 사람들에 의해서 쓰였으므로, 국가 밖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무지한 '야만인'(barbarian)으로 비하하고, 자신들을 문명화된 사람, 역사 발전의 주역으로 그리고 있다. 그러나 실제 삶의 질 면에서 보면, 국가의 틀 내에서 사는 사람보다 국가의 영역 밖에서 사는 야만인의 삶이 훨씬 양호하다.
인류는 신석시 시대 이래 오랫동안 수렵채취의 생활을 이어왔다. 농경생활이 시작된 것은 서기전 4,000년 경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이다. 이곳은 매년 규칙적으로 강물이 범람하여 비옥한 농경지를 만들었기에, 큰 노력없이 곡물을 파종하고 수확할 수 있었다. 이집트의 나일강 하구, 중국의 양쯔강 하구, 인도의 인더스강 하구, 북미의 미시시피강 하구, 등에서도 비슷한 이유로 처음 농경이 시작되었다. 농경이 특정 시점에 시작된 것은 아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수렵채취와 농경을 함께 하면서 생활했다. 수렵채취는 다양한 먹거리 자원을 통해 영양을 균형있게 섭취할 수 있으며, 하나의 식량 자원에 문제가 생겨도 다른 자원으로 보완할 수 있어 예상치 못한 위험에 버티는 힘이 강하며, 노동 강도가 높지 않으며, 인구밀도가 낮으므로 역병으로 죽을 위험이 없다는 점에서 매우 효율적인 생존방식이다. 반면 한곳에 정착하여 곡물을 재배하고 가축을 치며 사는 농부의 삶은, 단일 작물에 의존하기 때문에 기후나 병충해 등 환경의 변덕으로 인한 생존위협에 항시 노출되어 있으며, 집중적으로 많은 노동력을 투입해야 하며, 전적으로 곡물에 의존한 섭생은 영양 불균형을 초래해 건강에 해로우며, 사람들 및 사람과 가축의 밀집 거주로 인해 역병이 자주 돌아 쉬 죽는다. 이러한 이유로 하여 인간이 정착하여 곡물을 재배하고 나서도 오랫동안 인구증가 속도는 매우 더디었다.
요컨대 한곳에 정착하여 곡물을 재배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이동하며 수렵채취를 하는 사람들의 삶보다 열악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이 수렵채취를 포기하고 한곳에 정착해 곡물을 재배하는 쪽으로 바꾸었을까? 인류는 한 시점에 수렵채취로부터 전업 농업으로 바꾸지는 않았다. 인류 역사의 대부분의 기간 동안 전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렵채취을 하고 또 일부는 농업을 부업으로 하면서 살아갔다. 다만 소수의 특별한 환경의 지역에서만 전업농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메소포타미아, 나일강 하구, 황하강 하구 등이 바로 그런 특별한 지역이다. 그러면 왜 그 소수의 지역에서 전업농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생겼을까 하는 질문에 대해, 저자는 두가지 가능성을 지적한다. 기후와 환경 변화 등의 이유로 인해 주변 지역에서 수렵채취로 생활하는 것이 어려워졌거나 아니면, 국가의 폭력이 바로 이들을 그곳에서 그렇게 살도록 가두어 놓았다. 사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국가의 멸망이 빈번했기 때문에, 곡물 농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수렵채취로 되돌아가고 또 이들이 곡물 농업을 하는 사람으로 바뀌고 하는 식으로, 두 종류의 사람들 간에 경계가 확실하게 그어져 있지는 않았다.
기후가 온화하고 매년 비옥한 농토가 만들어 지는 지역에서 곡물 재배의 생산성은 상대적으로 높다. 곡물 재배는 사람들 사이에 부의 편차를 크게 벌리며, 지위의 차이가 큰 사회를 만든다. 농사를 짓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생겨나며, 이들은 국가의 지배집단이 되어 생산자를 착취하면서 살아간다. 농사짓는 사람들이 자신의 가족이 먹고사는 범위를 넘어 추가적으로 노동을 투입하여 과잉생산을 하는 이유는, 국가의 지배집단이 그들이 생산한 것의 상당부분을 강압적으로 뺏어가기 때문이다. 문제는 고대에 농업 생산성이 그렇게 높지 않았으므로, 비생산 인구를 많이 부양할 수 없으며, 낮은 농업 생산성 때문에 대부분의 인구가 생존의 경계에서 살아가고 있으므로, 예기치 못한 변화 때문에 농사 작황이 나쁘면 그 희생을 누군가는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국가와 지배집단은 노예 혹은 거주의 자유가 없는 농노를 통해, 생산자들을 한곳에 붙박혀 도망치지 못하고 힘든 일을 하도록 강제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고대는 물론 중세시대까지 계속 이어졌다.
농업 국가의 부의 원천은 땅 못지 않게 노동력에 있다. 국가의 지배자들은 서로 전쟁을 벌여 땅과 노동력을 탈취하였다. 고대 국가에서 노예제는 보편적인데, 전쟁에서 패한 나라의 사람을 노예로 부리고, 노예상들을 통해 노예를 사고 팔았다. 농노와 노예의 삶의 수준은 열악했으므로, 출생율이 낮고 사망율이 높아 인구 증가 속도는 매우 더디었다. 사람들이 밀집하여 거주하고 인간과 가축이 근접해 사는 농업사회에는 역병이 자주 발생하여 때때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곡물을 재배할 환경이 양호하며, 국가의 지배자들의 착취를 피해 도망치기 어려운 평야지역에서만 국가가 출현하였다. 반면 산간이나 소택지나, 전적으로 곡물 재배에 의존하지 않고 수렵채취로 살 수 있는 지역이나, 곡물을 재배한다고 해도 수년에 한번씩 이동하는 화전민에게는 국가의 권력이 미치지 않았다. 곡물을 재배하는 평야지역에서도 농작물 작황이 극도로 나쁜 경우, 국가의 권력이 미지지 않는 주변지역으로 도망치는 사람이 많았다. 국가의 권력은 한곳에 붙박이로 곡물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가장 강력하게 행사된 반면, 농업 이외의 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즉 상업, 공업, 어업, 임산업 등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약하다. 왜냐하면 농업 이외의 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수시로 이동하고 생산과정과 생산물에 대해 외부인이 확실히 파악하기 어려워, 이들을 착취하기가 용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의 지배집단은 이들을 항시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아시아의 농업사회에서 농업을 우대하고 상공업을 천시했던 배경에는, 바로 국가의 지배집단이 이들의 활동을 장악하기 힘든 점이 암묵적으로 작용했다.
소수의 곡물 농업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초기의 국가는 취약하여 오래 버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한 곳에서 매년 동일한 소수의 곡물을 재배하는 농업 방식은 기후나 병충해 등 환경의 변화에 취약하여 생산성이 높지 않으며 생산량의 진폭이 심하였다. 기본적으로 간신히 연명하는 생산성의 수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작황이 특히 좋지 않은 경우, 세금과 부역으로 착취를 당하고 농민들의 삶이 더 열악해져 국가의 권력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도망치지 않으면, 해가 갈수록 삶이 더 악화되는 악순환이 전개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농민들이 도망치고, 반란이 일어나고, 이웃나라와 전쟁에 패해 파괴되면서 국가는 멸망한다.
국가가 멸망한다고 하여, 그곳에 살던 사람들까지 모두 일시에 죽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지배집단의 착취를 피해 주변 지역으로 도망쳐 화전을 일구고 수렵채취로 생계를 이어가거나, 승리한 국가이 지배집단 밑에서 노예로 일하면서 삶을 이어간다. 자신의 국가에서 농노로 일하나, 승리한 국가에서 노예로 일하나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문화가 유사한 이웃나라의 노예가 되면 조만간 그 나라의 하층 계급의 일원이 된다. 이후 새로이 노예가 유입되면서, 계층의 사다리에서 한단계 상위로 올라가는 과정을 밟게 된다.
역사는 국가의 기록을 통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국가의 틀 안에서 사는 사람을 문명화된 사람으로 묘사하는 반면, 국가의 영역 밖에서 사는 사람은 무지한 야만인으로 비하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국가의 영역 밖에서 사는 사람들은 주변의 다양한 가용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면서 살아간다. 농업에 기반한 국가의 틀 안에서 사는 사람들은 국가의 영역 밖에서 생산되는 산물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이 둘간에는 상호의존의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국가의 영역 밖에서는 구리, 아연, 등의 광산물, 모피와 가죽, 목재, 기타 산과 바다에서 나는 것들을 생산하여 국가 안에서 사는 사람들의 곡물과 교역을 한다. 국가의 영역 밖에서 사는 사람들은 국가와 국가 사이의 변방에 위치하며 이들을 이어주는 교역을 한다. 국가의 영역 밖에서 사는 사람들은 기동력이 좋고 무예에 능하기 때문에 국가 내에 사는 사람들을 수시로 위협하는 존재였다. 중국의 변방에 위치한 흉노족, 위구르족, 만주족, 몽고족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국가의 힘이 강할 때에는 이들의 세력이 상대적으로 쪼그라들지만, 국가의 힘이 약할 때에 국가의 영역 밖에 위치한 사람들은 수시로 국가를 침범하고 멸망시키기도 하였다.
국가의 영역 밖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국가와 같은 강력한 권력 기구가 존재하지 않으며 그들 내에 지위의 격차가 크지 않으므로 상대적으로 삶이 자유롭고 분방하다. 그러나 변방인들의 삶이 반드시 풍요로운 것만은 아니다. 국가의 영역 밖에서 사는 사람들 또한 그들 사이에 전쟁을 벌여 노예를 포획하여 국가에 팔며, 그들 자신이 국가의 용병으로 고용되어 생계를 유지하기도 한다. 서기 1500년경까지 국가의 영역 밖에서 사는 사람들은 서구에도 상당한 규모였다. 이후 국가의 권력이 커지면서 국가의 영역 밖에서 사는 사람들은 갈수록 쪼그라져, 결국 서구에서는 사라졌다.
이 책은 저자의 경험적 연구의 결과이며, 동시에 저자의 세계관이 스며들어 있는 글이다. 저자는 국가를 지배집단이 폭력을 독점하며 생산자를 착취하는 깡패집단의 도구로 본다. 전형적인 막시스트의 관점이다. 무정부주를 신봉하는 저자의 설명이, 한편으로는 맞지만, 그렇다면 대안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답변하지 않는다. 세계는 국가를 통해 거대한 집단적 노력을 투입하여 기술발전, 풍요, 평화를 거두었다, 최소한 서구 선진산업사회에서는. 국가가 없다면 이러한 위업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국가의 힘이 약한 나라에서는 극심한 빈곤이 횡횡하며, 빈부의 차이가 크며, 폭력이 난무하며, 많은 사람들이 질병에 시달리고 일찍 죽는다. 물론 서구의 국가에서도 집단 노력의 산물을 모두가 공평하게 누리고 있지는 않다. 계층 차이는 매우 크며, 국가는 지배집단의 이익을 중하층의 이익보다 더 보호한다. 여하간 통찰력을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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