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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7. 6. 18:33

Robert Dahl. 1998. On Democracy. Yale University Press. 188 pages.

저자는 정치학자이며, 이 책은 민주주의의 원리와 현실적인 필요 조건을 설명한다. 전반부에서는 민주주의란 무엇이며 왜 민주주의가 다른 정치체제보다 나은지 설명하며, 후반부에서는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존립하는데 기여하는 조건에 대해 논의한다.

민주주의는 시민들의 정치적 평등(political equality)을 기본 조건으로 한다. 민주주의의 이러한 조건은 왕정, 독재, 전제정치 등 다른 정치체제와 뚜렷이 구별되는 핵심 원리이다.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는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보다 정치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지 않아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느 민주주의 정치체제도 이러한 이상을 완전히 충족시키지는 못한다.

시민들이 정치적으로 평등하기 위해서는 다음 다섯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효과적 참여, 평등한 투표,  정치 사정에 대한 이해, 의제를 통제할 수 있는 권한, 성인 모두를 포괄함, 등이다. 이중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정치적 평등이 실현될 수 없다.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다른 어느 정치체제보다 나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권력의 독단적 횡포를 피함, 인간의 기본권을 보장함, 자유/ 자기 결정권/ 도덕적 자율을 보장함, 인간 개발, 개인의 이익을 보호함, 평화와 물질적 번영을 가능케 함. 이러한 이유들은 이론적 결론이면서, 동시에 경험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이다.

대규모 집단에서 민주주의 정치가 가능하려면 다음의 제도적 장치들이 갖추어져야 한다. 선출직 공무원, 자유롭고, 공정하며, 자주 치러지는 선거, 의사표현의 자유, 집권자가 아닌 다른 대안적 정보 출처가 존재함, 결사의 자유, 시민 모두를 포괄하는 시민권, 등이 그것이다.  현존하는 민주주의 정치체제는 이 제도적 장치들을 모두 갖추고 있다. 이 제도적 장치 중 어느 하나라도 결핍할 경우 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이러한 민주주의 제도를 가능케 하는 현실적 조건은 다음과 같다. 선출직 공무원이 군과 경찰을 통제할 것,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굳건하게 지지하는 신념을 가지고 있을 것, 민주주의에 반대하는 외세의 압력이 없을 것, 시장경제 자본주의, 분절적인 하위문화가 강력하게 존재하지 않을 것, 등이다.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보면, 이러한 조건들 모두가 어느 정도 충족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가 출현하기 어려우며, 설사 출현했다고 해도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서구에서도 이 조건을 모두 만족시킨 나라는 20세기에 들어서도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요컨대 민주주의 정치체제는 인류 역사를 통털어 매우 드문 특이한 현상이다.

어느 나라나 외부 혹은 내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위기 상황에 때때로 봉착하는데, 앞의 조건들이 충족되지 못하면 위기 상황에서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경험을 한다. 선출직 공무원이 군과 경찰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경우 위기 상황에서 군사 쿠데타로 이전하기 쉬우며, 시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이 굳건하지 않으면 위기 상황에서 지도자의 독단적 효율성이라는 유혹에 쉽게 빠지며, 민주주의에 반대하는 외세의 압력이 크면 외세의 간섭 때문에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존립하기 어렵다. 자본주의는 경제적 자원 배분이 시장에 참여하는 개인들 모두에게 분산되어 있는 반면, 공산주의는 중앙에서 자원을 통제하여 배분하는데, 공산주의 경제체제에서는 지도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원을 전횡할 위험이 크다. 그러나 방임적 자본주의는 독점과 지나친 분배의 불평등이라는 문제점을 낳는데, 이는 민주주의의 정치적 평등 이념에 해가 된다. 따라서 현존하는 민주주의 정치체제는 모두 자본주의의 부작용을 제어하기 위해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수정 자본주의를 택하였다. 대부분의 나라는 인종, 민족, 종교, 계급 등에 따라 분절적인 하위문화로 쪼개져 있는데, 하위문화 간 차이가 크고 대립이 심각하면 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하기 어렵다. 미국과 같이 이질적인 집단을 주류 문화로 완전히 동화시키는 정책을 수행하거나, 아니면, 이질적 집단들 사이에 협의를 통해 정치자원을 배분하는 제도를 만들어 민주주의 정치를 수행하는 스위스나 벨기에와 같은 드문 예도 있다.

21세기에 세계적으로 가장 큰 관심사는 중국의 민주화일 것이다. 중국 경제가 성장하면 중산층이 두터워지고, 필연적으로 이들의 정치적 참여에 대한 요구가 높아질 것이다. 현재의 중국은 플라톤이 주장한 "현자의 정치(guardianship politics)"를 채택하고 있는데, 이는 절대권력의 부패 위험, 견제의 결핍, 정당성의 결여 문제 때문에 현실적으로 취약하다. 근래의 역사를 돌아보면, 절대권력은 민주주의보다 어리석은 결정을 내려 국민을 고난에 빠뜨린 경우가 많다. 민주주의 체제는 다중의 지혜가 결집되는 의사결정 장치를 가지고 있으므로, 절대권력자 한사람이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정치체제보다 위험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적으며, 상황의 변화에 맞추어 적응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시간이 갈수록 상황이 복잡해지고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므로, 독재 체제는 민주주의 체제보다 효율성이 떨어지게 될 것이다.

이책은 저자가 일생 동안 연구한 주제인 민주주의 정치체제에 관한 연구결과를 정리한 글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민주주의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저자가 지금 이책을 썼다면, 트럼프 이후 미국의 민주주의의 위기나, 중국의 괄목할 경제성장과 독재가 함께 가는 것에 대해 좀더 깊이 있게 논의하며 저자의 통찰력을 제시했을텐데,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