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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9. 16. 17:19

Paul Ormerod. 2005. Why Most Things Fail: Evolution, Extinction and Economics. Pantheon Books. 245 pages.

저자는 경제학자이며, 이 책은 대부분의 회사가 망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이는 생물계에서 지구상에 존재했던 대부분의 종이 소멸한 것과 비슷한 이유이다. 행위자들의 네트워크 속에서 나타나는 합리적으로 예측하고 대응할 수 없는 수준의 복잡성이 궁극적 원인이다.

회사들이 망하는 것은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다. 미국에서 창업한 회사 중 10%가 첫 1년을 넘기지 못하고 망한다. 창업한지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초기의 혼란과 시행착오를 극복하면, 이후에는 창업 이래 흐른 시간과 망할 위험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없다. 그러나 여하간 대부분의 회사는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망한다. 미국에서 100년전에 상위 100대 회사 중 현재까지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은 회사는 절반에 불과하며, 여전히 상위 100대 기업에 든 경우는 겨우 19개이다.

회사가 망하는 주된 이유는 회사 자체의 결함 때문이기보다는, 회사들 사이에 상호작용 속에서 경쟁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회사들은 서로 연결된 네트워크 속에서 활동하는데, 상대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전략을 수시로 조정한다. 문제는 나의 행위에 대해 상대가 취할 선택지가 다양하고, 여러 상대를 동시에 다루어야 하기 때문에, 합리적으로 계획하고 대응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네트워크 속에서 특정 행위자가 추진하는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고 어그러질 가능성은 무척 크며, 회를 거듭하며 상호작용하다 보면 결국 이러한 위험이 회사를 망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주어진 상황에 아무리 합리적으로 대응한다고 해도 예기치 못한 충격으로 인해 망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행위자들 사이에 상호작용은 매우 복잡한 상황을 만들어 낸다. 게임 이론에 따르면, 행위자들 사이의 상호작용에서 발생하는 복잡한 상황에 합리적으로 대응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예컨대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 각 참가자에게 최선의 전략이 참가자 전체에게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현실에서 행위자들은 게임의 규칙을 수시로 바꾸면서 자신에게 최선의 전략을 추구하기 때문에, 상대의 행위를 예측하고 합리적으로 대응하는 일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사람들은 대체로 주어진 상황에서 주위를 돌아보고 다른 사람들이 한 행위를 모방하는 방식으로 행동한다. 이러한 행위 방식은 사람들 사이에 선호가 연결되는 preference attachment 효과를 가져오며, 이는 선호 대상의 객관적인 질과는 관계없이 열악한 선택을 가져오기도 한다.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행위자들이 최선을 다해서 선택한 결과는 랜덤하게 선택한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다.

행위자들은 상호작용을 통해 생존 적응력 fitness에서 상호간 긍정적 혹은 부정적 영향을 주고 받는다. 외생적인 충격과 내생적인 요인 때문에, 생물 종이나 회사의 생존 가능성에 굴곡 fluctuation 이 발생한다. 어떤 종에서 우연히 약간의 변이가 발생하고, 이것이 다른 종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영향이 파급되고, 그것이 다시 원래의 종에게 영향을 미치는 과정이 반복되면, 그 와중에 일부 종이 멸종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약간의 종 혹은 회사가 멸종하는 일은 항시 일어나는 반면, 많은 종 혹은 회사들이 한꺼번에 멸종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지만 가끔씩 발생한다. 그 당시 생존하는 종 중 20% 이상이 멸종하는 대규모 멸종이 지구의 역사에서 지금까지 다섯 번이나 발생하였다. 종이 멸종하는 규모와 빈도 간의 관계를 보면 지수의 법칙 power law 이 작용한다.

행위자들이 네트워크 속에서 상호작용하면서 일부가 멸종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라면, 멸종을 피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기존의 네트워크에 속한 행위자들에게 익숙한 것, 익숙한 방식이 아닌 새로운 것, 새로운 방식을 들고나오는 것이 생존 가능성을 높인다. 즉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기존에 상대의 대응을 넘어서는 새로운 충격파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여러 상대의 다양한 대응이 초래하는 불확실성과 충격을 넘어서는 길은, 내 쪽에서부터 적극적으로 충격파를 만들어 내어 복잡한 상황이 초래하는 부정적인 요소를 상쇄하는 것이다.

이 책은 자연의 복잡계 complex system 현상을 회사라는 경제행위에 적용한 흥미로운 글이다. 책 자체는 산만하게 쓰여서 저자의 서술이 그리 명확하게 이해되지 않는데, 이는 아마도 이 주제에 관한 논의가 아직 거친 수준에 머물러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2023. 9. 14. 10:01

Steven Pinker. 2018. Enlightment Now: The Case for Reason, Science, Humanism, and Progress. Viking. 453 pages.

저자는 인지심리학자이며, 이 책은 인류는 진보해왔음을 객관적인 증거로 밝히며, 또한 어떻게 진보해왔고 진보를 방해하는 요소는 무엇인지 서술한다.

서구에서 1700년대에 시작된 계몽주의 (Enlightment), 즉 인간의 이성 reason 을 이용하여 세상을 파악하고 개입한다면 인류는 진보 progress 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은, 이전에 세상은 신이나 전통적 권위에 의하여 움직이기 때문에 인간은 무력하며 진보는 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을 대체하였다.

인간 삶의 주요 영역에서 진보가 어떻게 얼마나 이루어졌는지 객관적인 수치로 제시한다. 객관적 삶의 질 영역인 건강과 수명에서부터 주관적 삶의 질 영역인 행복도에 이르기 까지, 전 영역에서 인류의 삶은 1800년대 산업혁명이 시작된 이래 지난 150년간 크게 개선되었다. 일부 지역, 일부 집단, 일부 시기에 진보가 역전되거나 정체되기도 하였지만, 크게 볼 때 지구상 거의 모든 곳에서 지속적으로 진보가 이루어졌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이러한 진보는 인간의 합리적 이성과 과학기술을 이용하여 당면한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해 온 점진적 과정 incremental progress 이었다. 물론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면 그에 파생된 새로운 문제들이 생기기 때문에, 문제를 완전히 해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인류의 삶이 나아지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많은 사람들은 인류의 삶이 진보해 왔으며 지금도 진보가 계속되고 있음을 부정하고, 오히려 인류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거나, 인류 사회가 더 혼란해지고 과거보다 더 살기 어려워졌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이렇게 잘못 인식하는 원인은 여러가지이다. 인간의 인지 기능은 긍정적인 것보다는 부정적인 것을 더 잘 기억하고 그것에 더 주의를 기울이도록 편향되어 있으며, 자신에게 인접한 소수의 사례를 전체의 유형으로 일반화하는 버릇이 있다. 매스컴은 새로이 발생하는 자극적인 문제만을 보도하고 긍정적인 변화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세상이 실제보다 더 나쁘며 과거보다 악화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식인과 비평가들은 세상이 나빠지고 있다고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언급을 해야만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항시 부정적으로 언급한다. 이러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객관적 수치를 통해 냉정하게 상황을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

과거를 이상화하고 전통 가치를 옹호하는 보수주의자는 물론, 현실을 비판하고 개선을 촉구하는 진보주의자 또한, 인류가 진보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려 한다. 사회가 악화되어 왔으며 현재도 그러하다는 부정적 인식은, 인간의 이성을 이용하여 합리적으로 계획하고 대응하는 방식으로 점진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을 방해한다. 대신 비이성적 접근을 옹호하거나, 극단적인 입장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새로운 지식이 축적되면서, 현재 문제점에 대해 새로운 대응책을 강구하고, 이를 실행하여  그 결과를 통해 잘못을 고치고 더 나은 대응책을 찾아나가는 과정, 즉 이성적으로 살아가는, 과학하는 doing science 방식이 인간의 진보를 위하여 가장 효과적인 길이다.

학자들 조차도 이러한 합리적 접근을 배격하려 한다. 예컨대 인문학자들은 깊고 신비하고 궁극적인 의미를 찾는다는 구실하에, 과학과 객관적 사실 중심의 접근을 천박한 이해를 추구하려 한다고 비판한다. 그들은 인간의 지식은 상대적인 것이며, 지식은 권력의 시녀라는 비판을 통해, 과학의 객관적 타당성을 깍아내린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어리석고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고 가고 있으므로, 절대자의 인도가 필요하다는 종교적 신념이, 인간의 이성에 의지하는 태도 대신,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든다. 자연은 가치를 제시하지 않으며, 인간은 우주의 중심이 아니며, 존재와 사건은 자연 법칙과 우연이 작용하는 장일 뿐이라는 냉혹한 진실을 사람들은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인류의 삶이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궤변이 아니며, 더 많은 사람들이 더 건강하게 오래살고, 더 풍요롭고, 더 안전하고, 더 지혜롭게 살게 된다는 것은 인류에게는 절대적인 가치를 가진 의미있는 성취이다.

그렇다고 인류의 점진적 진보가 궁극적으로 모든  문제가 없는 유토피아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서로 상충되는 면이 있기 때문에 문제가 완전히 없는 삶, 모든 사람이 항시 행복한 삶 혹은 사회는 가능하지 않다. 예컨대 인간의 자유가 확대된다고 해도, 사람들 사이에 원하는 것,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충돌할 수밖에 없다. 모험을 추구하는 사람은 안정을 추구하는 사람과 충돌할 것이며, 정신적 순수를 추구하는 사람은 물질적 만족을 추구하는 사람과 충돌할 것이다. 인간의 자유가 확대된다는 것은 미리 정해지지 않은 선택지가 는 것이므로 불확정한 삶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행복과 보람있는 삶을 위하여, 모든 것이 이를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것, 즉 인본주의 Humanism 는, 과거 신중심주의나 전통이 지배하는 사회보다 진보한 것이다.

저자는 기존에 학계나 소위 전문가들의 언급에 의문을 던진다. 예컨대 인문학의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비판하며, 언론이나 문화비평가, 기타 소위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의 비판에 대해 비판한다. 그들은 자신의 밥벌이를 위하여 현실을 외곡하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매사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고 부정적인 진단을 할 수록 무언가 있는 듯이 보는 세태를 비판한다. 소득 불평등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불공정과 빈곤이 나쁜 것이라고 비판한다. 자신의 능력에 따라 일한 결과 보상의 불평등이 나타난다면, 빈곤이 제거된다는 조건 하에서 볼 때, 나쁜 것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지금까지 성취한 인류의 진보를 인정하고, 앞으로도 어떻게 하면 이러한 길을 계속갈지 솔직하게 연구하고 실천하면, 인류가 지금까지 당면한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왔듯이,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고 예언한다. 대단한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것은 힘들었다. 인류의 진보를 통계 수치로 밝히는 부분과, 이성에 의지하지 않는 세태를 비판하는 부분은 글의 성격이 너무 달라서, 별도의 책으로 엮는 것이 좋을듯하다. 그리고 저자는 장황하게 말을 많이 한다. 저자만큼 똑똑하지 않은 사람이 그의 장황한 생각의 흐름을 쫒아가는 것은 힘겨운 일이었다.

2023. 9. 8. 12:15

Avi Tuschman. 2019(2013). Our Political Nature: The Evolutionary Origins of What Divides US. Prometheus Books. 413 pages.

저자는 인류학 배경의 정치컨설턴트이며, 이 책은 사람들의 정치적 성향의 배경에는 성격 특성이 있으며, 사람들의 성격 특성은 진화적 적응의 결과라고 설명한다. 어떤 사람이 보수적 혹은 진보적인 이유는 그의 성격과 연관되는데, 사람들 사이에 다양한 성격의 분포는 인류의 오랜 진화적 적응의 결과이다. 모든 사회에서 보수와 진보가 균형을 이루는 이유는, 이 두가지 상반된 성향이 함께 하여 인류의 진화적 적응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여러 사회에서 사람들의 정치 성향을 측정한 결과, 보수에서 진보까지의 연속선에서 정규분포의 모습을 그린다. 사람들의 정치 성향은 그들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반영하기는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부자 중 진보적인 성향을 보이는 사람이 적지 않으며, 가난한 사람 중에는 자신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보수 정책을 지지하는 경우가 흔하다. 소득과 재산의 분포는 하위로 심하게 편향된 분포이며, 이는 정치적 성향의 분포와 매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도, 경제적 이익과 정치 성향은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사람들의 정치 성향은 성격 특성을 반영한다. 성격을 구성하는 다섯가지 차원 중, 개방성(openess)과 성실성(conscienciousness) 의 두가지가 정치성향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참고로 성격을 구성하는 나머지 세 차원은 외향성(extraversion), 상냥함(Agreeableness), 신경질적임(Neuroticism)이다. 성격이 개방적일수록 진보적 정치성향을 보이며, 성실할수록 보수적 정치성향을 보인다. 사람들의 성격 특성은 일생동안 크게 바뀌지 않으므로, 사람들의 정치 성향 역시 일생동안 크게 바뀌지 않는다. 한 사회의 정치 경제 상황에 따라 정치 성향의 분포가 전체적으로 왼쪽 혹은 오른쪽으로 약간 이동하기는 하지만, 외적 상황에 관계없이 사람들의 정치성향은 여전히 정규분포를 유지한다. 사람들의 성격 특성은 많은 부분 부모로부터 물려받는다. 일란성 쌍둥이의 성격과 정치 성향은 서로 매우 흡사한 반면, 태어나서 떨어져 성장한 이란성 쌍둥이의 성격과 정치 성향은 서로 매우 다르다는 사실에서, 성격 특성과 정치 성향은 유전자에 의해 좌우된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사람들의 정치적 성향을 결정하는 세가지 차원이 있다. 부족주의(tribalism), 불평등을 허용하는 정도(tolerance of inequality), 인간 본성에 대한 인식(perceptions of human nature)이 그것이다. 이 각각의 차원은 생물학적인 진화적 적응(evolutionary fitness)과 연관되어 있다.

먼저 부족주의를 보자면, 이는 자민족 중심주의(ethnocentrism), 종교성(religiosity), 성에 대한 개방성(sexuality)으로 구성된다. 자신이 속한 집단을 우선시하고 타 집단을 배격하는 태도를 가진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자신의 유전자를 후세에 퍼뜨리는데 유리하다. 친족선택이론 (kin selection)이 이러한 사실을 입증한다. 자신과 유전적으로 연관된 사람을 중시할수록 자신의 유전자가 후세에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이론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자신의 집단 내에서만 폐쇄적으로 살아간다면,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떨어짐으로, 어느 정도의 개방성이 필요하다. 새로운 기회를 찾아 타집단과 새로운 환경에 도전하는 태도가 유전자를 퍼뜨리는데 도움이 된다. 따라서 모든 사회는 부족주의에 편향된 보수적 정치성향과 새로운 환경에 개방적인 진보적 정치성향이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고 있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신과 유사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선호하지만, 호기심이 많고 약간은 자신과 다른 사람을 선호한다. 어는 사회에서나 지나치게 보수적이지도 지나치게 진보적이지도 않은 중도 성향의 사람이 대다수인 반면, 극단적으로 보수적이거나 진보적인 사람이 소수를 이루는 이유이다.

모든 사회는 사회 구성원, 특히 여성의 성생활을 엄격히 관리한다. 남성의 분방한 성생활에는 비교적 관대한 반면, 여성의 성행위는 엄격히 제한을 한다. 여성은 후손을 낳는 주체임으로 이들의 성생활을 엄격히 관리하는 것이 자신의 유전자를 퍼트리는데 핵심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모든 사회는 남성이 여성의 활동을 제한하고 여성을 지배하는 가부장적인 위계를 형성하고 있다. 부족주의적이며 보수적 정치성향을 가진 사람은 여성의 성을 엄격히 제한하고 가부장적 권위를 지지한다. 그러나 여성의 경제활동은 가족의 생존에 큰  도움을 줌으로 여성의 활동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은 진화적 적응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여성의 자유를 허용하고 남성과 여성의 권위 격차를 줄이는 진보적 정치 성향 또한 진화적 적응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도시화와 산업화로 여성의 경제활동 기여도가 높아지고, 여성이 폐쇄적이며 권위적 가족관계을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이 높아지면서 남녀간의 권력 격차는 줄고 있으며, 그에 따라 정치성향은 전체적으로 진보적인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람들이 각자 능력에 따라 공정하게 보상받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가난이나 성공의 책임은 구조적 환경의 탓인지, 가족 내에서 부모가 권위를 가지고 자식을 양육하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부모가 자식을 자신과 대등하게 대우하는 것이 좋은지,  등에 대해 보수와 진보는 의견이 서로 엇갈린다. 사회와 가족이 원활하게 돌아가려면 이렇게 서로 상반된 태도의 사람들이 모두 필요하다. 어느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울게 되면, 사회와 가족은 원활하게 돌아갈 수 없다.

사람의 본성이 상호 협조적 (cooperative)인지 아니면 경쟁적(competitive)인지에 관해, 철학자에서부터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었다. 이 두가지 상반된 생각은 인간의 생존, 유전자의 확산에 필수적이다. 보수주의자는 인간의 본성을 경쟁적으로 보고, 진보주의자는 협조적으로 본다. 인간의 본성을 맹목적으로 협조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으면 반칙을 저지르는 (cheating)사람에 의해 망하며, 지나치게 경쟁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으면 협동을 통한 시너지를 거두지 못함으로,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자연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모든 사회에는 협조적이면서 경쟁적인 요소를 동시에 품고 있으며, 인간의 본성에 대해 중도적인 정치 지향의 사람이 다수를 차지한다.

저자는 사람들의 정치지향의 결정 요인을 성격 특성 및 진화적 적응에서 찾는 과정에서,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거의 모든 논의를 인용하고 있다. 그 결과 이 책은 모든 다양한 잡다한 지식이 뒤범벅되어 있다. 저자의 박학다식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듯하다. 논의를 좀더 체계화하고, 핵심적인 증거 위주로 설명을 집약했다면 더 좋은 책이 되었을 것이다.

2023. 9. 2. 22:32

Diego Olstein. 2021. A Brief History of Now: The Past and Present of Global Power. Palgrave Mcmillan. 354 pages.

저자는 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19세기 영국의 제국주의에서부터 시작해 근래까지, 미국의 패권과 이에 대항하는 다양한 세력들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분석적으로 서술한다. 각 시기별로 각 세력 집단을 유형화하여 설명한다.

영국은 18세기 말 이래 산업혁명으로, 19세기 중반 경제적 군사적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제국주의 국가가 되었다. 대내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와 산업화가 결합했으며, 대외적으로는 자유무역과 비교우위를 밀어붙였다. 독일과 미국은 영국의 압력에 맞서 보호무역 정책을 강력히 실시하면서, 19세기 후반 후발 산업화와 민주주의 확대에 성공하면서, 20세기에 들어 영국에 대항하는 강국으로 올라섰다. 반면, 러시아, 오스만 터키, 중국 등, 자국의 신민을 권위적으로 억압하는 전통적인 제국들은, 영국이나 독일과 같이 산업화를 통해 군사력을 높이고 싶었으나, 국민의 참여를 높일 경우 권력자들이 권력을 잃을 것을 두려워하여, 결국 개혁이 좌절되고 강국으로 올라서는데 실패하였다.

독일은 후발 산업화를 통해 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하였으나 그에 걸맞게 식민지를 확보하지 못하여 불만을 가지고, 결국 1914~18년, 1939~45년에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다. 두차례의 전쟁을 계기로 영국, 프랑스, 독일의 국력은 소진되고 식민지를 잃은 반면, 미국은 영국을 대체하는 새로운 강국으로 떠올랐다. 러시아는 일차대전 중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 공산주의 이념을 추종하는 강국으로 떠오르면서, 영국과 미국이 대표하는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미국은 영국과 달리, 식민지를 직접 지배하는 제국주의를 지향하지 않았다. 대신 압도적 군사력과 세계 곳곳에 군사기지를 구축하여 정치군사적으로 세계 국가들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엄청난 경제력을 바탕으로 이차대전후 유럽의 복구를 지원하고, 무역과 투자, 다국적 기업 등을 통해 세계 경제를 실질적으로 지배했으며, 미국의 대중문화와 미국인의 꿈 이념을 통해 세계인의 의식을 사로잡는 등, 세계에 대해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였다.

제이차대전 이후 서구의 제국주의으로부터 독립한 식민지 국가들은 민족자결 원칙을 기반으로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적 국가주의가 결합된 체제를 채택하였으며, 미국과 소련의 패권에 추종하를 거부하고 비동맹의 제삼세계를 지향하였다. 중남미, 인도, 인도네시아, 이집트, 가나 등이 이러한 나라들이다. 이들은 보호주의 장벽을 높이고 수입대체 산업화를 통해 자국의 산업을 육성하려고 하였으나 산업화와 민주주의에 실패하였으며, 정치적 혼란을 겪으면서 민주주의 형식을 갖춘 권위주의 체제를 지속해오고 있다. 이들 제삼세계 국가들은 1990년대의 세계화에 편승하여 원자재를 수출하면서 경제적으로 힘겹게 버텨나가고 있다.

미국의 패권에 포함된 서구 국가들은 1930년대 대공황속에서 케인즈의 경제정책을 따라 국가의 역할을 확대하였으며, 이차대전 이후 고도 성장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에 오일쇼크를 겪으면서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방향을 전환하였다. 이후 미국은 정보통신기술과 운송기술의 발달과 함께 산업구조조정을 통해 생산성이 높아지고 성장을 지속하였다. 제조업은 해외로 이전하고, 국내에서는 금융, 서비스, 리서치 등에 주력하는 국제분업 세계화의 선두에 올라섰다. 그 결과 부의 집중과 불평등이 지속적으로 확대되었다.

소련은 중앙집중 경제와 권위주의 체제의 비효율이 갈수록 악화되었으며, 1980년대에 고르바초프가 개혁을 추진하였으나 이미 늦었다. 1980년대 후반, 폴란드, 헝가리, 동독, 등에서 소련의 장악에서 벗어나 민주화 시도가 진행되어 결국 1990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으며, 1991년 소련이 해체되었다. 동구권은 서유럽에 편입되었으며, 러시아는 1990년대의 극심한 혼란을 겪으면서, 결국 민족주의와 권위주의가 결합된 약화된 강국으로 복귀하였다.

중국은 1949년 공산당 정권이 수립된 이후 모택동 치하에서 큰 혼란을 겪었다. 이후 1978년 등소평이 집권하여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면서, 지난 사십년간 고도 성장을 통해 미국 다음의 강국으로 올라섰다. 중국의 경제성장은 미국과 선진산업국에서 1980년대 이래 구조조정으로 제조업을 해외로 이전한 것과 절묘하게 맞물려 성공할 수 있었다.

1980년대 이래 신자유주의 정책과 국제분업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선진 산업국에서는 불평등이 높아지고 성장에서 소외된 집단의 불만이 커졌다.  그 결과 민족주의와 반세계화의 목소리가 높아져 트럼프와 같은 극우 정치인이 등장하고, 세계에 대한 미국의 지배력은 약화되었다. 1960~70년대의 베트남 전쟁의 실패, 2003년 국제사회의 반대를 무릅쓴 이라크 침공, 아프간 전쟁의 실패 등으로 미국의 정치 군사력에 대한 세계의 존경은 사라졌다.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미국 경제의 비중이 줄었으며, 미국의 이념과 문화의 매력 또한 빛바래게 되었다. 미국의 패권이 약화되면서 각 나라들은 각자 도생의 민족주의적 성향이 높아지고 세계 질서는 다극체제로 이행하였다.

18세기 후반 산업혁명 industrial revolution 이래 세계는 산업화 시대에 접어들었는데, 20세기 후반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정보혁명 information revolution 에 접어들었으며, 근래에 한단계 더 높아진 인공지능 혁명 Artificial Intelligence Revolution 으로 들어가고 있다.  인간의 지적인 분야를 기계가 맡게 되면서 인류의 삶의 방식은 앞으로 크게 바뀔 것이다.

저자는 미국 정책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며, 아마도 아르헨티나 사람으로 추측되는데, 중남미의 변화에 깊이있는 이해를 보인다. 미국과 서유럽 중심의 역사에서 벗어나, 세계의 다른 나라들, 특히 제삼세계의 입장을 균형있게 반영하는 드문 역사 서술이다. 후반부에서는 분석의 정치성이 떨어지지만, 전반적으로 세계의 흐름에 대해 높은 통찰력을 제시한다.

2023. 8. 29. 16:38

John Mearsheimer. 2018. The Great Delusion: Liberal Dreams and International Realities. Yale University Press. 234 pages.

저자는 국제정치학자이며, 이 책은 미국의 외교정책의 실패 원인을 자유주의적 패권 (liberal hegemony) 추구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자유주의 liberalism, 민족주의 nationalism, 현실주의 realism 원칙을 대비하여 설명한다.

미국은 대표적인 자유주의 국가이다. 자유주의는 개인을 중심에 두고, 개인의 천부적 인권 inalianable rights, 개인의 자유 individual freedom, 및 재산의 사유 private ownership 을 축으로 하는 이념이다. 개인의 선호에 차이를 허용하며 tolerance, 의견 차이와 이익 충돌을 조정하기 위해, 개인보다 상위에 있는 권위체인 국가를 필요로 한다.  존 로크의 천부인권과 계약 이론이 이를 대표한다. 이러한 자유주의 이념은 민주주의와 결합하여, 인류 역사상 가장 살기좋은 자유민주주의 liberal democracy 정치 체제를 탄생시켰다. 서구의 선진 산업국가들은 모두 이러한 이념을 따르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다.

민족주의란 자신이 속한 민족 nation의 생존과 번영을 개인의 자유와 권리보다 우선시 하는 이념이다. 개인의 권리와 민족의 생존이 충돌할 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개인보다는 민족을 우선시한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자신이 속한 집단의 생존을 보편적인 인권보다 감정적으로 더 가깝게 느낀다. 다른 나라 사람들의 인권보다는 내 국가의 생존에 더 목숨을 건다. 민족주의는 민족의 생존과 자주적 결정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주권을 보유한 민족 국가 nation-state를 탄생시켰다.  민족과 국가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 즉 다민족 국가나 국가가 없는 민족은 모두 갈등의 위험을 안고 있다.

국가간의 관계, 즉 국제정치는 국내 정치와는 다른 역학이 작용한다. 국제정치에서는 국가 간에 갈등이 발생할 때 이를 강제적으로 조정할 권위적 존재가 없다. 쉽게 말해 무정부상태 anarchy 이다.  국가들이 자신의 이익에 따라 마음대로 행동해도 유효하게 제제할 수 없다.  소위 정글이라 표현하는, 힘의 원리만이 작용하는 장이다. 국제기구나 국제법이란 국가들간에 자발적 합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므, 힘있는 국가가 이를 위반해도 강제할 수 없다.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국제정치에서 모든 국가들은 자신의 안전을 스스로 확보 self-help 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합종연횡, 즉 힘이 약한 국가들이 연합하여 힘있는 국가와 힘의 균형을 이루는 방식 balance of power 으로 각 국가들은 안보 위험을 해결한다.

미국은 1991년 소련이 무너진 이후 세계에 경쟁자가 없는 일극체제 unipolar system의 정점에 올라섰다. 일극체제의 정상에 올라선 이후, 전보다 더 미국의 자유주의 원칙을 세계 각국에 전파, 강요하였다. 문제는 미국의 개입을 받은 나라 사람들이 미국의 간섭을 환영하지 않고 저항한다는 점이다. 미국이 침입하여 그 나라의 정치와 사회를 미국식, 즉 자유민주주의로 바꾸어 놓으려 하면, 민족주의적 감정을 자극하여 반발을 초래한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리비아, 시리아, 조지아, 우크라이나, 등 미국이 개입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엄청난 살상과 혼란이 발생하여, 미국이 개입하기 이전보다 상황이 훨씬 더 나빠졌다.

미국의 외교 엘리트들은 미국의 힘을 과신하고,  미국의 이념과 체제를 세계에 전파하는 것이 세계를 평화롭게 하는 길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러나 다른 나라를 개조할 수 있는 미국의 능력은 제한적이며, 자유주의를 전파하겠다고 남의 나라 일에 개입하는 것은 전쟁과 혼란을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미국의 국익이 직접적으로 연관된 나라에 최소한으로 개입하는 정도에서 멈추어야 한다. 미국이 자유주의를 전파하려는 외교정책을 포기할 때, 세계는 더 평화로워질 것이다. 

국제정치는 힘의 원칙에 따라 움직이지만, 미국이 지배하는 세계는 예외적으로 평화로울 것이라는 주장도 한계가 있다. 미국은 평화와 번영과 인권을 사랑하는 자비로운 국가 benign country 이므로, 미국의 자유주의 패권 추구를 긍정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미국 또한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자국의 이익에 따라 행동하며, 자국의 이익에 반할 때에는 언제고 상대를 공격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미국이 보편적인 이념인 자유주의를 숭배하지만, 미국인들이 외국인의 목숨과 권리와 자유를 미국인의 목숨과 권리와 자유만큼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미국의 자유주의는 제한적이며,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개입을 받은 외국인들은 미국의 간섭을 환영하지 않는다. 미국 역시 자신의 민족을 우선시하는 민족주의 원칙에 따라 행동하므로, 다른 나라 사람들도 민족주의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저자는 현실주의 국제정치를 강력히 옹호하는 사람이다. 미국의 이상주의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이를 포기할 때 세계는 물론 미국 국내사정도 더 나아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트럼프가 들어선 이후 미국 우선주의 America First 를 미국의 외교 무역정책에 노골적으로 추진하는 것을 옹호한다. 그러나 미국이 실패하고 잘못한 부분도 많지만, 무어라고 해도 한국은 미국의 자유주의 외교정책의 최대 성공작이다. 넉넉한 형님같이 한국에 베풀어준 미국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한국은 생각하기 어렵다. 물론 한국은 냉전체제에 공산주의에 대적하는 미국의 쇼윈도에 걸린 모델이 된 덕분에 운좋게 잘 풀렸지만 말이다.

2023. 8. 25. 21:14

Brian Greene. 2020. Until The End of Time: Mind, Matter, and Our Search for Meaning in an Evoluving Universe. Vintage. 326 pages.

저자는 물리학자이며, 이 책은 우주의 시작에서부터 소멸까지 서술하면서, 그 속에서 생명체와 인류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인류의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저자 나름의 견해를 제시한다. 진화, 엔트로피, 중력이 전과정을 지배한다.

우주는 시간이 지나면서 엔트로피가 높아지는데 (열역학 제2법칙), 엔트로피가 높아진다는 것은 무질서의 증가, 혹은  가능한 경우의 수가 증가하는 현상이다. 우주는 엔트로피가 낮은 단계인 빅뱅에서부터 시작하여, 우주 공간으로 물질이 확산되면서 엔트로피가 증가한다. 전반적으로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속에서, 부분적으로 엔트로피가 낮은, 즉 질서있게 조직된 것들이 출현한다. 별이나 생명체가 바로 그것이다. 별은 우주 공간에 떠다니는 물질들이 중력에 의해 서로 끌려 뭉쳐서 만들어진다.

생명체란, 자기복제를 하는 분자들이, 변이를 하고, 그들 간의 경쟁 속에서 더 복제를 잘하는 놈이 생겨나고, 그런 것들이 서로 합쳐져서 자기복제를 더 잘하게 되면서 생성됐다. 생명체는 환경으로부터 에너지를 공급받고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 (metabolism)을 통해 질서를 유지한다. 생명체가 활동하면 엔트로피가 높아지는데, 생명체는 이러한 높아진 엔트로피를 환경으로 배출함으로서, 내적으로 낮은 수준의 엔트로피, 즉 질서를 유지한다.

사고와 의식을 포함한 인간의 모든 활동은 물리적 법칙을 따르며, 물리적 입자들의 상호작용에 다름이 아니다. 그러나 물리적 입자의 집합체의 활동을 적절히 설명하기 위해서는, 물리적 입자의 수준을 넘어서는 다른 수준의 설명이 효과적이다. 물리적 최소 입자, 분자, 세포, 생명체, 인간과 같이, 집합적으로(aggregate) 상위 수준에 적합한 설명을 하기 위하여, 물리학, 화학, 생물학, 심리학의 이론이 동원된다. 예컨대 인간의 자유의지는 인간의 수준에서는 적합한 설명이지만, 인간을 구성하는 물리 입자의 수준에서는 타당하지 않다. 모든 설명을 물리적 입자의 수준으로 환원한다면, 집합적인 상위 수준의 활동을 설명하는 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질문에 적합한 수준의 설명을 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생존을 위한 진화의 과정에서, 인간은 언어와 이야기(story)를 발전시켰다. 인간의 언어는 집단적 사회활동을 돕기 위해 발달했으며, 이야기 역시 자연과 인간사에 대응하는 활동 능력을 향상시키기 때문에 발달하였다. 진화의 목적은 생존과 후손의 번영 (survive and thrive) 에 있지, 진리 (truth)를 추구하는 데 있지 않다. 생존과 진리 추구는 서로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의 진화의 과정에서 발달시킨 행동과 지식은 생존에는 도움이 되지만, 반드시 객관적으로 진실일 필요는 없다. 특히 인간이 감각으로 인식할 수 없는 분야에서는, 인간의 감정과 지식은 객관적 진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것이 인간의 믿음이다.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왜 세상이 그렇게 전개되는지에 대해, 인간은 생존을 위하여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 냈는데, 이는 객관적 진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신화나 종교와 같이 과거에 믿었던 것들이 그릇되다고 밝혀졌다.

먼 미래에 우주는 종말을 맞을 것이다. 태양은 미래에 팽창하여 수성과 금성을 삼켜버리고, 그 후에는 수소와 헬륨이 다 소진되어, 탄소와 산소의 재 덩어리가 될 것이다. 지구는 이러한 태양에 끌려서 함몰할 것이며, 태양은 다시 은하수 속에 함몰할 것이다. 이러한 함몰 과정이 우주에서 계속 진행되다가, 마지막에는 물질의 최소단위인 중성자까지 부서져 버리고, 결국 어떤 것도 아무런 움직임도 없는 절대 0도에 근접한 차가운 종말을 맞을 것이다. 이러한 모든 과정은 물질간 중력의 힘이 작용하여 전개된다. 

이렇게 인류의 종말, 생명체의 종말, 우주의 종말이 예정되어 있는 데, 그 속에서 인간의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모든 인간이 궁극적으로 소멸된다고 하면, 사실 현재 바쁘게 돌아가는 모든 인간 활동은 의미가 없다. 기여할 대상이 없고, 봐줄 사람이 없고, 물려받을 후손이 없는, 인간의 노력이란 헛될뿐이다. 사실 냉정하게 따지면, 인간의 활동이란, 물리적 법칙을 따라 움직이는 물리 입자의 상호작용일 뿐이므로, 의미를 묻는 것이 적절치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존재를 물리학의 관점에서 달리 볼 수도 있다. 인간의 존재란 빅뱅에서부터 시작한 우주의 전개과정 속에서 매우 매우 가능성이 희박하게 출현한 물리 입자들의 조직이다. 다르게 전개될 가능성이 훨씬 더 컸지만, 인간은 이러한 가능성을 거스르고 출현하였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가능성 속에서 출현한 존재와 활동, 즉 인간의 삶은 매우 소중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러한 소중한 가치는 인간의 수준에서만 그러하다. 물리 입자의 수준에서는 단순히 하나의 확률적 가능성이 실현된 것에 불과하다. 저자는 이러한 것을 생각하면서 현재를 소중하게 충실하게 살 것을 제안한다.

저자는 전문적인 물리 학자이면서 훌륭한 이야기 꾼이다. 많은 비유와 재미있는 사례를 곁들이면서 전문적인 이야기를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과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살면서 느낀 것들을 곳곳에서 소개하면서, 자신의 연구와, 자신이 읽은 것과, 자신의 생각과, 지나온 자신의 삶의 정리가 결합된 글을 썼다. 그의 전문 분야가 아닌 진화, 언어, 종교, 창조성, 등에 관한 서술은, 그의 독서를 통해 얻은 각 분야의 논의를 빌려와 서술하기 때문에 쉽게 이해가 됬다. 그러나 후반으로 가면서 물리학 이론을 총동원하여 우주의 종말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삶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야말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것은 욕심이 좀 지나친 것 같다. 자신의 분야가 아닌 부분은 뺐으면 더 좋은 책이 되었을 것이다.

2023. 8. 21. 16:41

 

Carles Boix. 2015. Political Order and Inequality: Their Foundations and Their Consequences for Human Welfar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68 pages.

저자는 정치학자이며, 이 책은 국가가 생겨난 기원 및, 국가와 불평등과 경제성장의 관계에 관해 이론적 논의와 함께, 인류학, 역사학, 기타 다양한 데이타를 이용해 수리적으로 검증한다.

수렵채취 단계나 낮은 기술 수준의 농업 사회에서는, 사람들이나 집단들 사이에 생산성의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에 평등했다. 그들은 집단 구성원들 간에 불평등이 발생할 요소를 서로 감시하면서 억제하였으므로, 국가라는 제삼의 권위 기구 없이도 당사자들 서로간 개인적 상호작용을 통해 갈등을 해소하고 질서를 유지했다. 이러한 사회는 특정인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여 생산성을 높이는 것을 억제했으므로, 성장이 없이 정체된 상태를 오랫동안 유지하였다. 생산력의 범위 내에서 인구를 제한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존의 한계 수준 근처에서 가난하게 생활했다.

농업 기술이 발달하고 잉여 생산물이 출현하면서, 사람들은 생산자와 탈취자의 두 부류로 나누어졌다. 생산자는 가치를 생산하는 사람이며, 탈취자는 생산자가 생산한 것을 탈취해 생활하는 사람이다. 생산자는 탈취자에게 자신이 생산한 것의 일부를 빼앗기는 대신 안전과 질서를 얻는다. 탈취자는 우월한 무력을 바탕으로 생산자를 지배하고 그들로부터 잉여 생산물을 탈취해간다. 역사상 대부분의 국가는 이러한 탈취자들이 세운 군주제 monarchy 를 택하고 있다.

고대의 아테네나, 근대 이전 북이탈리아의 도시 국가에서는 예외적으로 공화정 republic이 존재하였다. 도시국가에서는 생산자들이 자신의 방어를 직접 담당하거나, 용병을 구입하여 방위를 담당하게 하였다. 도시국가의 공화정은 구조적으로 취약하기 때문에 오래가지 못했다. 북이탈리아 도시국가의 공화정은 규모가 작았기 때문에, 규모가 큰 이웃 나라의 탈취자에 의해 함락되었으며, 용병을 고용한 경우 무력을 보유한 용병이 반역을 일으키지 못하게 제어하기 어렵기 때문에 결국 용병 출신의 무력 집단에 의해 전복되었다. 근대 이전에는 규모가 큰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 사이에 원활하게 이익을 조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공화정이 출현할 수 없었다.

무력 기술 수준에 따라 생산자와 탈취자의 관계가 변화하였다. 청동기 시대 이전에는 무력 기술 수준이 매우 낮아 특별히 무력 수준이 우월한 사람이나 집단이 없었으므로 탈취자가 출현하지 않았다. 청동기 무기와 이후 말의 출현으로 무력 기술 수준이 크게 높아지면서, 무장을 하는 데 많은 비용이 소요되어, 이 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이 탈취자로 군림하면서, 다수의 비무장 생산자를 지배하는 국가가 생겨났다. 13세기에 총포가 도입된 이후, 기마 무사의 무력적 우위가 사라지면서 귀족의 세력이 약화되었다. 대신 비싼 총포를 구입할 자본을 조달하는 능력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게 되었다. 상업과 금융업이 발달한 영국과 네덜란드, 아메리카 대륙으로부터 대규모 은을 수입한 스페인, 풍부한 농업 생산력을 바탕으로 큰 규모의 자본을 동원할 수 있었던 절대왕정의 프랑스가 강국으로 올라섰다. 

생산 기술이 발전하면 사람들 간 및 지역 사이에 생산성의 차이 때문에 불평등이 커진다. 새로운 기술 발전에 의한 생산성 증대는 기존의 탈취자 집단에게 위협이 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회에서는 기존의 지배집단이 새로운 생산기술의 발전을 가로막는다. 예외적으로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토지 소유를 기반으로 한 기존의 탈취자 집단이 상공업 자본가로 탈바꿈하면서, 새로운 기술 개발의 이익을 신흥 부르주아지와 공유하였기 때문이다. 영국의 지주와 상공업 계층은 의회를 통해 왕권을 견제하면서, 해군력을 증강하고 상업을 확장시켰으며, 식민지를 확장하면서 새로운 기술 발전의 이익을 공유하였다.

농업 생산성이 높아지고 인구가 증가하면서 도시가 발달하였다. 도시로 인구가 모이면, 도시인들 사이에 분업과 전문화 수준이 높아지고, 이는 기술 발전을 촉진한다. 서구에서 산업혁명이 발생한 이유는, 유럽 지역이 작은 국가들로 쪼개져 있었고, 서로간 경쟁이 치열했기 때문이다. 각 나라의 군주는 자신의 나라에 인구가 늘고, 도시가 발달하고, 군사기술과 자본 규모가 높아져서, 이웃나라와의 경쟁에서 우위에 올라서기를 원했다. 도시의 상공인들은 농촌 사람들보다 소득이 높으며, 세금을 부담하고 총을 들고 전쟁에 직접 나가는 국민으로서, 왕과 지배층에 대한 발언권이 높아져서, 결국 공화제로 이전되었으며, 과거 산업혁명 이전보다 소득 분포가 평준화되었다. 요컨대, 산업혁명은 군사 기술의 발전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며, 국가의 출현 및 불평등 수준 역시 생산 기술 및 군사기술의 수준과 연관된다.

이 책은 저자의 주장을 다양한 데이터를 통해 검증한 학술서이다. 19세기 이전의 불평등 수준을 키의 분포로 측정하였으며, 생산기술의 발달 지표로 매우 다양한 자료들을 사용하고 있다. 수리 모델을 설명하는 부분은 따라가기가 쉽지 않으나, 전세계의 역사적 사례를 시대를 관통하면서 인용하며, 다양한 가용 자료를 이용해 기존의 논의를 뛰어 넘는 독창적인 주장을 한다. 대단한 비교 연구이다.

2023. 8. 17. 17:22

David Buss. 2016(1994). The Evolution of Desire: Strategies of Human Mating. Basic Books. 350 pages.

저자는 진화심리학의 개척자 중 한사람이며, 이 책은 짝짓기 전략에서 남자와 여자간 차이가 나는 이유를 진화론을 적용하여 설명한다. 전반적인 논의는 Trivers 의 '부모투자이론'(parent's investment theory)에 바탕을 두고 있다. 남자는 개별 후손을 생산하는데 자원을 많이 투자하지 않기 때문에 가급적 많은 여자와 성관계를 맺는 것이 진화적으로 최적인 반면, 여자는 개별 후손을 생산하는데 많은 자원을 투자해야 하기 때문에 성관계의 상대를 선택하는 데 매우 까다롭고 신중한 것이 진화적으로 최적의 전략이다. 남자는 건강한 후손을 낳을 수 있는 여성의 신체적 능력에 관심이 큰 반면, 여자는 자신과 아이의 부양에 필요한 자원을 제공할 남자의 사회경제적 능력에 관심이 크다.

여성은 장기적으로 관계에 헌신할 상대를 찾는데 관심이 큰 반면, 남성은 가급적 적은 자원을 소모하면서 여러 여자와 관계를 맺는데 관심이 크다. 여성은 기본적으로 일회성의 섹스에 관심이 적으며, 일회성의 섹스를 한다고 하여도 당장의 사회경제적 자원을 획득하기 위해서거나, 아니면 일회성 섹스를 통해 상대를 탐색하고 장기적인 관계로 발전하도록 만드는 수단으로 접근한다. 반면 남성은 장기적이며 헌신적인 관계를 염두에 두지 않은 일회성의 섹스 그 자체에 관심이 많다.

상대의 성적인 의도가 확실치 않은 경우, 남성은 상대 여성의 애매한 행동을 성적인 관계에 관심이 많다고 편향되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후손을 생산한다는 진화적 관점에서 볼 때 남성은 이렇게 편향되게 해석할 때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반면 여성은 상대의 성적인 의도를 잘못 해석하는 경우는 없다. 여성은 상대 남성이 자신에게 신뢰와 헌신을 제공할 것이라는 확신이 어느 정도 들때까지는 자신과 섹스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미국의 대학가에서 남녀가 데이트를 하면서 남성이 여성에게 성폭력을 행사하는 사건 date rape 이 많이 벌어지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진화적 남녀간 짝짓기 전략의 차이에 기인한다.

남성이 지위 획득에 관심이 많은 것은, 여성이 자신의 짝을 선택하는 기준으로, 남성의 사회경제적 지위, 즉 자신에게 필요한 자원을 공급하는 능력에 두기 때문이다. 이는 다윈의 '성적 선택이론' sexual sellection theory 이 지시하는 바이다. 여성이 자신의 외모에 관심이 많은 것 역시,  남성이 자신의 짝을 선택하는 기준으로, 여성의 외모, 즉 건강한 후손을 낳는 능력에 두기 때문이다. 반대로, 남성은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큰 관심이 없으며, 여성은 남성의 외모에 큰 관심이 없는 것 역시 같은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남녀간 성적인 갈등이 발생하는 원인은 상대가 원하는 것을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남성이 여성 짝에게 사회경제적 자원을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면,  여성은 자신의 짝을 버리고 다른 남성을 찾으려 한다. 자신의 여성이 아이를 생산하지 못하면, 자신의 후손을 생산할  수 있는 다른 여성을 찾는다.  결혼한 여성이 다른 남성과 외도를 하는 이유는, 자신의 남성의 부양능력에 만족하지 못하여, 앞으로 자신의 남성과 헤어질 것에 대비하는 전략이다. 반면 남성은 자신의 여성 짝에 만족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다른 여성과 일시적 성관계를 맺을 기회를 마다하지 않는다.

남성과 여성 모두 자신의 짝이 자신 이외의 사람과 바람을 피울 경우 심한 감정적 질투를 느끼는데, 이러한 감정적 흥분의 이유는 남녀가 다르다. 남성은 자신의 여성이 다른 남성과 성관계를 하는 것에 집착하는 반면, 여성은 자신의 남성이 다른 여성에게 자원을 나누는 것에 집착한다. 여성은 자신의 남성이 다른 여성을 사랑하지 않고 일시적 성관계를 맺은 것을 용서할 수 있으나, 남성는 자신의 여성의 성관계 그 자체를 용서할 수 없다.

여성의 생식능력은 20대 초반에 가장 왕성하며 이때가 남성에게 가장 매력적인 시기이다. 여성은 20대 중반을 넘어서면 지속적으로 성적인 매력이 떨어진다. 반면 남성의 사회경제적 능력은 30대 중반 이후에 최고에 도달한다. 남성의 생식능력은 50대나 60대에도 어느 정도 유지된다. 여성과 남성이 상대에게 최고로 매력적인 시기가 서로 어긋남으로, 여성은 자신보다 나이가 위인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하며, 상대의 현재 능력보다 미래에 사회경제적 잠재력에 더 가치를 둔다. 여성의 생식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30대 후반 이후, 여성은 짝짓기 시장에서 퇴장하거나, 아니면 육체적 매력이 아닌 사회경제적 능력과 지혜와 경험 등으로 남성 상대에게 어필한다. 반면 남성은 나이가 들어도 사회경제적 능력이 높아짐으로, 중년이후의 남성이 젊은 여성과 성관계를 맺는 전략을 구사한다.  

장기적이며 헌신적인 관계, 일회성 섹스, 다른 상대와 바람을 피는 것, 헤어짐, 등은 자신의 후손을 만드는데 가장 유리하도록 남녀 모두 구사하는 전략이다. 남자와 여자가 생물학적으로 처한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대체로 남성보다 여성이 장기적이며 헌신적인 관계를 선호하지만, 상황에 따라서 남성은 물론 여성또한, 일회성 섹스나, 다른 상대와 바람을 피우거나, 상대와 헤어지는 전략을 구사한다. 인류는 일부일처제라는 남녀 상호간 장기적이며 헌신적인 관계를 구축함으로서 지구상에서 번성하였다. 그러나 남녀간 인구비율이 달라지거나, 개별적으로 남녀 각각 처한 조건에 따라, 앞에 언급한 다양한 짝짓기 전략을 구사한다. 인간 사회의 도덕은 일부일처제를 옹호하지만, 사람들은 항시 일부일처의 관계를 맺은 것은 아니다. 일부일처 제도를 따르는 것이, 개별 남자 혹은 여자에게 후손을 만드는 데 유리하지 않은 상황에 처하게 되면, 일부일처제 이외의 짝짓기 전략을 구사해 왔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인간의 남녀간 짝짓기는 문화에 의해 좌우되는 부분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생물학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남녀 관계의 다양한 모습을 매우 설득력있게 설명한다. 이론의 힘을 통감한다. 여성의 선택 때문에 남성의 사회경제적 지위추구 노력이 매우 치열한 것이며, 그 결과 이 사회의 사회경제적 지위 위계는 남성에 의해 장악되었다. 반면 남성의 선택 때문에 여성은 외모에 집착하며 외모를 높이기 위해 피나게 노력한다. 문제는, 외모는 많은 부분 타고난 것이라 당사자가 어쩔 수 없으며 나이가 들면 가치가 떨어지는 것인 반면, 사회경제적 지위는  본인의 노력으로 획득가능한 것이며, 나이가 들면 가치가 높아지는 것이라는 점이다. 자연은 결코 인간의 정의감이나 형평을 고려하여 움직이지 않는다. 자연적인 것이 반드시 옳은 것은 (naturalism fallacy) 아니기 때문에, 인간의 도덕과 정의에 맞추어 자연을 바꾸는 것이 인간의 문화라고 하지만, 이는 마치 강물을 거슬러 노젓는 것 만큼이나 힘든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남녀 관계와 관련하여 엄청나게 많은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남녀관계는 생존에 필수적인 분야이므로, 지금까지 사회를 살아가면서 항시 관심을 갖고, 엄청나게 많은 직접 혹은 간접 경험을 통해, 어느 분야보다도 많은 지식을 축적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이 알고 있는 이야기이지만, 그래도 이론적으로 설명을 하니 통찰력이 더해진다.

2023. 8. 15. 11:51

Erez Aiden and Jean-Baptiste Michel. 2013. Uncharted: Big data as a lens on human culture. Riverhead Books. 212 pages.

저자들은 데이터 과학자들이며, 이 책은 구글의 Ngram Viewer 프로그램을 이용해 언어, 명성, 검열, 기억 등의 주제에 관해 분석한 결과를 소개한다. 

구글은 2000년대 중반부터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책을 스캔해 디지털 아카이브를 만드는 Google Books 프로젝트를 진행해서, 이 책이 쓰일 당시 3천만권의 책을 아카이브하였다. 저자들은 MIT 연구소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구글의 책 아카이브에서 특정 단어가 사용된 빈도를 추적하여 사회문화의 변화를 파악하는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였다. 그들의 노력이 결실을 거두어, 이후 일반인이 웹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Ngram Viewer 프로그램이 구글의 무료 프로그램으로 도입되었다.

 그들의 첫번째 분석은 언어의 진화과정을 추적하는 것이다. 영어에 일반동사와 불규칙 동사의 차이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인도유러피안 어족에 속하는 언어들은 모두 원래 동사들이 불규칙하게 시제 변환을 하였다. 그러나 기원전 500년경부터 -ed 를 붙여서 시제변환을 하는 방식이 도입되었는데, 이후 이러한 변환 방식이 주류로 자리잡았고, 기존의 불규칙 동사는 점차 규칙 동사로 전환되었다. 현재까지 불규칙 동사로 남아있는 것은 사람들이 아주 많이 사용하는 170개 남짓에 불과하다. 이들은 일상에서 자주 사용되면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계속 새로이 상기되기 때문에, 규칙동사로 바뀌는 운명을 피할 수 있었다. Ngram Viewer를 통해 언제부터 사람들이 불규칙 동사를 점차 규칙 동사의 방식으로 사용하게 되었는지 추적할 수 있다. 또한 이 프로그램을 통해 특정 단어가 탄생하고 소멸하는 과정을 추적함으로서, 유행과 생활방식의 변화를 간접적으로 추정할 수 있다.

두번째 분석은 '명성' fame 의 발전과정을 추적하는 것이다. 명성은 데뷔, 도약, 정점 도달, 쇠퇴 라는 생애주기를 보인다. 매년 최고의 명성을 기록한 사람에 대하여, 그들의 명성이 전개된 과정을 분석한 결과, 명성은 데뷔에서부터 정점까지 매우 가파른 성장 곡선을 그리며, 정점을 지나게 되면 서서히 감소한다. 근래로 올수록 데뷔에서 정점에 도달하는 기간이 짧아지며, 과거보다 더 이른 나이에 정점에 도달한다. 분야에 따라 곡선의 모습이 다른데, 정치인이 가장 높은 정점에 도달하며, 가장 늦은 나이에 유명해진다. 반면 연예인은 젊은 나이에 정점에 도달하며 정점이 높지 않다. 한편, 유명했던 사람이나 사건에 대해 Ngram에서 갑자기 빈도가 줄어드는 모습을 통해, 검열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세번째 분석은 역사적 사건이나 사람에 대한 집단 기억의 궤적을 확인하는 것이다. 특정 사건에 대한 집단 기억은 사건 초기에 강도가 높으며, 일단 고점을 지나면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감소하는 곡선을 그린다. 문명의 이기나 새로운 아이디어가 받아들여지는 과정의 경우, 대체로 개발된지 상당한 시간이 흘러서야 인식이 확산된다. '진화' 와 같은 단어는 20세기 초반에 정점을 지나 쇠퇴하는 듯이 보이다가, 근래에 들어 더욱 활성화되었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달로 인간의 행위에 대한 디지털 기억이 넘쳐나고 있다. 사생활이나 저작권의 침해의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엄청난 양의 인간 행위에 대한 기록을 잘 이용한다면, 인간에 대한 이해를 깊이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구글의 Ngram Viewer 프로그램은 그러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책은 컴퓨터 기술에 밝은 젊은 학도들이 번득이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적용해 본 결과를 가볍게 서술한다. 컴퓨터와 인터넷을 통해 엄청난 양의 데이터가 쌓이고 있지만, 이를 이용하는 것은 넘어야 할 산이 많고, 아직 시작 단계이다. 

2023. 8. 14. 10:53

Joshua Cole and Carol Symes. 2020. Western Civilizations: their history and their culture. vol1. 20th ed. W.W. Norton. 549 pages.

저자는 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미국 대학의 교양학부의 대표적인 서구 문명사 교과서이다. 서구 문명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부터 시작해, 그리스 로마, 비잔틴, 대서양 연안 서유럽으로 발전하였다. 이 책은 기존의 역사책과 비교해 몇가지 차이를 보인다. 첫째는, 과거의 역사책이 승자의 관점에서 승자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했다면, 이 책은 보다 중립적, 균형적인 접근을 한다. 둘째는 보다 구조적인 관점에서 역사 전개를 해석한다. 일이 왜 그렇게 전개되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정치적 갈등에만 촛점을 두지 않고 경제와 사회적 요인을 고루 검토한다. 셋째는 역사 전개에서 여성의 위치와 역할을 조명하는데 노력을 한다. 넷째는 서구 문명의 발전에서 중동과 이슬람의 역할을 비중있게 다룬다.

그리스는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자로 등극한 아테네가 다른 도시 국가들을 착취하는 지위에 올라서고, 아테네 내부에서도 소수의 시민들이 권력을 독점하고 다수의 노예를 배제하였다. 결국 아테네에 대항하는 동맹이 결성되고, 도시국가들 서로간의 갈등에 과거의 적이었던 페르시아를 끌어들임으로서, 결국 그리스 도시국가들 전체가 페르시아에 먹히는 결과를 초래했다.

로마 제국은 피정복 신민을 체제 내로 포용하는 제도적 장치 덕분에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로마의 원래 신민들은 소수인데다 계급 구조의 최상층에서 향락에만 몰두한 반면, 외국으로부터 들어온 사람들이 군사를 포함한 실제의 모든 일을 담당하는, 지나치게 불평등하고 외곡된 구조 때문에, 결국 내부 반란이 일어나 망하였다. 로마 제국이 망한후, 기독교 문명과 로마의 유산은 세갈래로 나누어졌다. 하나는, 그리스와 터키에 걸쳐 위치한 동로마 비잔틴 제국이 기독교 문명의 주축을 이어받았으며, 다음으로는 로마의 잔존 세력인 로마 교황을 중심으로 이탈리아에 위치한 서로마 제국이며, 세번째는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의 이슬람 세력이다. 이슬람 지역에서는 그리스 로마의 제도와 문물을 많이 물려받아 사용하였다.     

중세는 경제사회 발전이 정체된 암흑의 시기가 아니었다. 이는 근세의 학자들이 씌운 굴레에 불과하다. 서구 문명은 중세 시기 즉 500~1500년의 기간 동안 꾸준히 발전했으며, 이러한 변화 덕분에 1600년 이후 근세의 발전을 낳았다. 중세시대 서구 문명의 중심은 그리스 로마 문명을 이어받은 비잔틴 제국에 있었다. 비잔틴 제국은 안정된 행정관료 제도 덕분에 거의 1,000년 동안 큰 변고 없이 체제의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비잔틴 제국의 행정 관료는 노예가 담당하였다. 똑똑한 노예들은 행정 관료의 훈련을 받고 승진의 길을 걸어 최고 지도층에까지 도달하기도 하였다. 비잔틴 제국은 과거의 로마제국과 마찬가지로 원래의 신민들은 계급의 상층에서 놀고 먹는 반면 노예들이 모든 일을 다하는 지나치게 불평등하고 외곡된 구조 때문에 노예들의 반란으로 쇠퇴하였다.

1100년경 십자군 운동을 계기로 비잔틴 제국이 쇠하는 대신 베네치아와 제노아를 중심으로 한 북이탈리아가 흥하였다. 북이탈리아가 주도한 시기는 잠시로, 1400년대에 항해술의 발달 덕분에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주도하는 대서양 지역으로 중심이 이동하였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적극적으로 대양을 개척한 덕에 아시아와의 교역을 선점했으며, 중남미 대륙을 식민지로 선점하여 엄청난 부를 거두었다. 그러나 이렇게 식민지로부터 획득한 부를 국내 생산 기반을 높이는 데 쓰지 않고, 유럽 대륙의 이웃 국가들과 전쟁으로 위세를 높이는데 써버렸다. 시간이 지나 아메리카 대륙으로부터 들어오는 부가 줄어들면서, 결국 새로이 부상한 영국과 프랑스에 무역을 제압당하여 쇠퇴하였다. 프랑스는 넓은 영토와 풍부한 자원 덕분에 서서히 국력이 성장한 사례이며, 영국은 일짜감치 왕권을 견제하고 상공인들이 성장하면서 금융과 무역이 발달하여 국력이 성장하였다.  

왕과 귀족간의 갈등, 세속권력과 종교 세력 간의 갈등, 지배집단과 중간층 간의 갈등, 지주 세력과 상공인 간의 갈등, 등이 역사를 추진한 동력이다.  지배자의 전제적 통치에 대한 견제는 1300년부터 유럽 여러 나라에서 전개되었다. 왕에 대한 견제는 오랫동안 대지주인 귀족이 주을 이루었는데, 1300년경 총과 대포의 도입으로 귀족의 중요성은 줄어든 대신, 전쟁 비용을 대는 상공인과 전쟁에 보병으로 참여하는 일반인의 중요성이 높아졌다.  전쟁에서 일반 보병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민족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한 국민 국가가 등장하였다. 국민 국가는 영토와 민족어를 바탕으로 한다. 과거에는 국가는 왕의 사유물로서,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유럽 전지역에 걸쳐 영토와 언어에 관계없이 전개되었다. 일반 민중은 왕과 완전히 유리되어 있었으며, 왕은 일반 민중들과 언어 및 종교를 달리하는 경우도 흔했다. 전쟁은 귀족들과 용병들을 고용하여 왕들 사이에 벌어지는 게임에 불과했다. 

서구 문명의 발전의 동력은 전쟁과 상공업에 있는데, 이는 중국 문명과 뚜렷이 대비되는 특징이다. 그리스, 로마, 이탈리아 문명은 상업이 중심이었으며, 이후 대서양 제국들 역시 상업이 발전의 중심이었다. 토지는 귀족들의 권력의 기반이었으며, 이들은 군사력을 장악하였다. 전쟁기술이 발전하면서 군사력으로서 귀족의 중요성은 사라진 대신, 높은 전비를 부담하는 주축으로서 상공인의 세력이 부상하였으며, 일반 보병으로 뛰는 일반인의 세력이 점차 부상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이후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동력이 된다. 

서구 문명은 끊임없는 전쟁의 연속이었고, 종교의 비중이 매우 큰 문명이었다. 서구 문명의 주도권은 시기에 따라 변천하였는데, 고대에는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였고, 다음으로는 그리스와 로마였고, 이어서 북이탈리아와 지중해 지역이었고, 이후 스페인,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 등 대서양의 서유럽으로 중심이 옮아갔다. 1941년에 1판을 시작으로 20번째 판을 개정하기까지 오랜 기간 동안 여러 저자를 거치며 다듬어져서, 이해가 쉽고 균형된 논의를 제공한다. 이 책을 읽음으로서 서구 사회를 이해하는데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간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