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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9. 27. 15:27

키트 예이츠 (노태복 옮김). 2023. 어떻게 문제를 풀것인가 (How to expect the unexpected). 웅진지식하우스. 494쪽.

저자는 수학자이며, 이 책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방식에서의 오류를 크게 두가지, 무작위 회피와 선형관계 편향이라는 두 주제에 촛점을 맞추어 설명한다. 

인간은 순수한 무작위 randomne 상태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은 주위에서 항시 패턴, 즉 규칙성을 찾으려고 한다. 규칙을 파악하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있어 생존에 도움이 된다. 우연히 일어난 일에 대해서도 어떻게든 인과적 관계를 설정하려 한다. 원인이 불확실한 상황에 마주쳤을 때, 우리의 지력을 벗어난 존재, 즉 초월적인 신이 행한 일이라고 해석함으로서, 그러한 상황이 무작위, 즉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고 위안한다.

무작위로 발생했지만, 억지로라도 패턴을 부과하는 것이 그렇게 하지 않는 것보다 생존에 도움이 된다. 패턴이 확실하지 않다고 하여, 랜덤하게 발생하는 것으로 치부하고 준비없이 지내다가 위험에 빠지는 것보다는, 불확실하지만 패턴이 있다고 여기고 대비를 하는 경우에, 혹시 발생할 위험의 피해를 덜 당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인식 방식은, 사건이 실제 랜덤하게 발생하는 것이었다면, 드물게 발생하는 랜덤한 위험에 대비하여 에너지를 과도하게 소모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는 한다. 그러나 생명은 하나뿐이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위험은 수 없이 많기 때문에, 과도하게 조심하는 것이 그렇지 않는 경우보다 더 오래 살아남는다. 

인간은 확율적인 사고를 하지 못한다. 사람들에게는 일어나거나 일어나지 않거나의 두 상황만 존재할 뿐, 몇 퍼센트의 가능성으로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은 다가오지 않는다. 그러나 자연에는 물리 법칙에 따라 정확한 순서로 발생하기보다는, 발생의 가능성을 확율적으로 파악해야 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이 경우, 수리적 접근은 확율적 사고를 하는 데 도움을 준다. 확율적인 사고를 할 경우, 베이지안 이론 Baysian theory은 예측의 정확도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베이지안 이론이란, 기왕에 발생한 사건의 가능성을, 이후에 발생한 사건을 증거로 하여 분석하면서, 인식의 정확도를 높여가는 접근법이다. 한 사건의 발생 가능성을 사전에 알기는 어렵지만, 그 사건이 발생한 다음에 벌어진 상황을 분석하여, 이를 초래한 원인 사건의 발생 가능성을 보다 구체적으로 측정한다. 한 사건이 일어난 다음에 그의 원인을 면밀히 분석하여, 다음에 그런 원인이 발생하지 않도록 미리 조심하는 것은 베이지안 이론에 따른 행동 방식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세상을 선형관계로 인식하는 성향이 있다. A가 증가하면 비례적으로 B가 증가 혹은 감소한다고 인식하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선형 인식이다. 이러한 인식 방식은 어릴 때부터 지속적으로 주입되어 우리의 인식의 기본틀을 형성하기 때문에, 우리는 직관적으로 세상을 선형관계로 인식한다. 그러나 세상에는 선형관계도 있지만 선형관계가 아닌 경우 또한 매우 많다. 두 변수간의 관계가 직선이 아니라 곡선인 경우, 우리는 이를 잘 알아채지 못한다. 대표적인 비선형 관계로는, 길이가 증가하면 면적과 부피는 제곱과 세제곱으로 증가하며, 가역적인 피드백이 가해질 때 지수적 관계 power law 가 성립한다. 주식시장의 버블과 붕괴, 전염병의 확산 등에서 지수적인 관계가 성립한다. 자기완성적 예언이나 부메랑 효과 등도 선형관계에서 어긋나는 경우이다.

카오스 chaos 이론이라 지칭되는 복잡계 complex system 또한 선형관계와는 거리가 멀다. 초기의 조건이 약간이라도 다르다면, 시간이 지나 일이 한참 전개되었을 때, 엄청나게 큰 차이로 귀결되는 경우가 복잡계에 해당한다. 기후변화가 대표적인 사례이며, 자연에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복잡계 상황이 훨씬 많다. 단지 우리는 이를 알지 못할 뿐이다. 복잡계의 상황에서 장기적인 예측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 

이러한 모든 논의의 결론은, 자연계는 인간의 인지 편향인, 규칙성이나 선형관계가 아닌, 무작위성과 비선형관계가 지배하는 곳인데, 인간은 자신에게 편하게 잘 못 알고 있다. 인간은 자신의 인식과 예측의 한계를 인정하고 겸손해져야 한다. 인간은 많은 경우 예측이 틀릴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수학은 인간의 인식 편향이 빚어내는 잘못을 약간이나마 교정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 책은 대중 과학교양서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인다. 몇가지 기본 과학원리를 일상의 다양한 사례에 적용하여 쉽고 재미나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저자의 말솜씨가 돋보이기는 하지만, 논의는 깊지 않다. 어디에서 들어봤음직한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연이어 소개된다. 번역이 성의를 길울여 잘 됬는 데, 책의 제목은 내용과 동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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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9. 21. 16:56

Eric Hobsbawm. 1975. The Age of Capital (1848~1875). Vintage Books. 308 pages.

저자는 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19세기 중반 서구 유럽에서 산업혁명과  자본주의 경제가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고 전세계로 시장이 확대되었으며, 비교적 평화로웠던 시기를 서술한다.

1850년 경이 되면, 1830년과 1848년 유럽 전체를 휩쓴 노동자 혁명의 물결은 실패로 끝난 것이 분명해졌다. 1789년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으로 촉발된 공화정 혁명의 파장은 유럽 각 지역에서 표면적으로는 저지되고 왕정복고로 잠잠해졌다. 그러나 각 지역에서 지식인과 부르쥬아를 중심으로 민족주의 nationalism 가 높아지고, 민족 국가를 세우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반면 왕과 귀족으로 대표되는 구질서의 권위는 갈수록 쇠퇴했으며,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확대로 부르쥬아의 부와 영향력은 크게 높아졌다.

19세기 중엽 철도 산업을 중심으로 자본주의 경제가 크게 확장되었다. 1780~800년대 초반의 산업 혁명 초기에는 면화산업이 융성했으나, 이후 제철과 철도가 자본주의 산업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철도 산업의 성장과 함께 경제 전반에 거대 자본의 지배력도 커졌다. 산업혁명과 함께 농촌에서 도시로 인구 이동이 급증했으며, 유럽 곳곳에 대규모 도시가 출현하였다. 인구가 급증하면서, 한편으로는 도시로 이주하고, 다른 한편으로 아메리카 대륙, 특히 미국으로의 이민이 크게 증가하였다. 철도, 증기선, 전신 기술 덕분에 자본주의 시장이 유럽을 넘어 세계로 확대되었으며,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였다. 빠른 경제 성장과 사회변화는 노동자 계층의 정치적 참여 요구를 일시적으로 잠재웠다. 이 시기에 참정권이 점진적으로 확대되기는 하였지만, 이전 시기와 달리 과격한 혁명의 움직임은 찾기 어렵다. 

급격한 경제 성장 덕분에 부가 엄청나게 증가하였지만, 불평등 또한 커졌다. 농촌에서 도시로 이동한 도시 노동자의 삶은 매우 비참했다. 장시간 노동, 아동 노동, 위험한 작업 환경, 저임금, 밀집된 거주, 비위생적 생활 환경이 일반적이었다. 기술발달과 시장 확대로 인한 생산성 증가의 몫은 거의 대부분 자본가들이 차지하였다. 정부의 규제나 복지 제도가 발달하기 이전 단계의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아무리 생산성이 증가하여도 자본가는 노동자에게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생활 수준만을 허락하였다. 이시기에 칼 맑스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통한 자본주의 경제의 몰락을 예언하였다.

한편, 다윈의 진화론이 인간 사회에까지 적용되어, 경쟁과 적자 생존이 인간 사회와 역사를 움직이는 원리로 주창되었다. 이시기 진화론은 유색인과 대비된 백인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인종주의를 정당화하였다. 비서구 세계의 원주민 사회는 서구의 선진 사회에 의해, 유색인은 백인에 의해 정복되고 지배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가 지배하였다. 이 시기에 기독교의 영향력은 급격히 쇠퇴하여, 지식인과 부르쥬아를 선두로 유럽 사회는 세속화되었다. 신의 존재를 전면 부정하는 무신론자는 많지 않았지만, 교회의 영향력은 삶의 주변으로 밀려났다.

이 책은 저자의 19세기의 삼부작 중 중간 시기를 서술한다. 정치와 전쟁에 대한 논의가 상대적으로 적으며, 경제와 사회의 근대화 modernization 과정에 대한 익숙한 서술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내용 자체는 익숙하지만, 그의 문장은 정말 읽기 어렵다. 이중 부정, 비교 부정, 복잡한 문장 구조 때문에, 두번을 읽어도 의미가 뚜렷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2024. 9. 13. 17:47

John Ikenberry. 2020. A World Safe for Democracy: Liberal Internationalism and the Crisis of Global Order. Yale University Press. 311 pages.

저자는 국제정치학자이며, 이 책은 자유주의적 국제주의 (Liberal Internationalism) 의 역사를 섭렵하고나서, 냉전이 종식된 이후 현재의 국제 질서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에 대해 간단히 논의한다.

국제정치이론에서 자유주의 liberalism 는 현실주의 realism 와 대립되는 이론이다. 현실주의는 강대국간의 힘의 역학관계로서 국제질서를 규정한다면, 자유주의는 국가들 사이에 조정과 합의를 통해 형성된 규범으로 국제질서를 접근한다.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는 서구의 자유 민주주의 liberal democracy 와 친화적 관계이며, 인류의 안전, 자유, 행복이라는 목표를 추구하는 규범적인 질서이다. 반면 현실주의는 국가들간 무정부 상태에서 상호 역학관계와 안전의 문제에만 촛점을 맞출뿐, 무엇이 옳고 바람직한가에 대한 규범적인 함의는 없다.

서구사회에서 국제주의 internationalism, 즉 국가들이 서로 협의하고 조정하는 전통은, 19세기초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고 유럽의 열강들이 모여 전후의 질서를 논의한 비엔나 회의에서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또한 계몽주의의 정신을 이어받아 19세기에 들어 이성을 존중하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움직임이 커지고, 영국을 필두로 자유무역을 확대하는 움직임이 확산되는 등, 자유주의적 국제주의가 19세기 전기간을 통해 점차 확대되었다. 이러한 19세기의 움직임은 1919년 1차세계대전이 끝난후 열린 파리 강화회의에서, 미국의 윌슨대통령이 민족자결주의, 자유무역, 항해의 자유, 국제연맹의 창설 등의 제안으로 구체화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는 미국이 국제연맹을 수용하지 않고, 서구 경제가 대공황에 빠지고, 파시즘의 발흥 등으로 위기에 빠졌으나, 제2차 대전으로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이 몰락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미국은 종전후 세계 최강국으로 발돋움했으나, 과거 유럽과 같은 제국주의의 길을 선택하기보다,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의 주도로 원칙적으로 모든 나라를 아우르는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추구하였다. UN, IMF, World Bank, GATT 등의 기관과 제도가 그런 질서의 뼈대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주의적 국제주의 질서에 소련을 위시한 공산주의 국가들은 참여하지 않음으로서 반쪽의 세계 질서가 되었다. 미국은 자신이 주도한 국제주의 질서의 일원으로서 대체로 규범에 따라 행동하면서 국제사회의 신뢰를 쌓았지만, 때로는 예외적인 존재로서 규범을 벗어난 방식으로 힘을 행사했다.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는 서구 유럽에서 1600년대 초반에 벌어진 30년 전쟁의 결과 만들어진 웨스트팔렌 조약을 바탕으로 한다. 즉 영토 존중, 주권존중, 내정간섭 금지 등의 원칙에 입각해, 국제사회에서 각 나라는 서로를 대등하게 대하는 전통이확립되었다. 이러한 질서는 서구 유럽 국가들에게만 해당될 뿐, 유럽 밖의 국가에게는 적용되지 않은 규범이었다.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는 현대성 modernity 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 기술발전, 핵전쟁 위험, 환경파괴, 기후변화, 전염병 확산, 등등, 개별 국가가 단독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유주의 국제주의는 반드시 요구된다.

21세기에 들어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는 위기에 봉착했다. 영국의 브랙시트, 미국의 트럼피즘, 민족주의의 확대와 같이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를 부정하는 경향이 선진 산업국들에서 전개되고 있으며, 러시아, 중국, 북한, 이란 등 권위주의 국가들이 국제사회에서 서로 연대하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를 흔들어 놓고 있다. 앞으로 중국이 계속 커지고, 권위주의 체제를 계속 유지한다면, 이는 미국과 자유세계에 큰 위협이 될 것이다. 그러나 자유주의적 국제주의는 현재 위협에 직면해 있지만, 과거 위기에 빠졌다가도 다시 올라선 것 처럼, 앞으로도 그러하리라고 낙관한다. 왜냐하면 자유주의적 국제주의가 지금까지 출현한 어떤 다른 대안보다도 인류에게 더 나은 가치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증거로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주의 질서에 대해, 중국이 근래에 어깃장을 놓고 있지만, 그럼에도 지금까지 그 질서 덕분에 번영하였으며, 지금도 그 질서를 부정하고 무너뜨리려고 하지 않는다. 

이 책은 저자의 대학 강의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하는데, 중복이 많아서 읽기 힘들었다. 사실적인 서술과 규범적인 서술이 섞여 있고, 정치인의 발언을 인용한 문구가 많아서, 수사적인 부분을 제외한다면, 사회과학적 분석 결과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았다.

2024. 9. 2. 17:24

Eric Hobsbawm. 1962. The Age of Revolution: 1789-1848. Vintage. 308 pages.

저자는 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1789년 프랑스 혁명에서 1848년 유럽 혁명까지 약 50년간을 대상으로, 유럽 세계를 지배하던 구체제가 무너지고 근대 체제가 들어서는 과정을 서술한다.

구체제의 특징을 요약하자면, 왕,귀족,사제가 지배층을 형성하며 인구의 다수가 농업에 종사하며 봉건제의 구속에 묶여 있다. 종교의 영향이 일상 전반을 지배한다. 봉건제 장원을 중심으로한 자급자족 경제이며, 상공업과 도시의 발달은 미약하다. 이러한 구체제는 18세기 후반에 이르러 심각한 균열을 보인다. 16세기 대항해시대 이래 상업이 발달하고, 18세기말 산업혁명이 불붙으면서 상공인의 부와 영향력이 커지고, 농민들이 농촌을 이탈하여 도시가 발달하고, 상공업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 경제가 본격적으로 확대되었다.

1789년 프랑스혁명은 이러한 사회경제적 변화의 산물로, 부르쥬아라 칭하는 상공인 계층이 구체제를 뒤집어 엎은 사건이다. 직접적 원인으로는, 1756년의 7년 전쟁 결과 재정파탄에 처하고, 조세징수인의 가혹한 수탈과 흉작이 겹치면서, 농민 폭동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사회적 혼란을 배경으로 하여, 부르쥬아가 중심이 된 의회에서 왕,귀족,사제의 권한을 제한하는 결정을 내렸으며, 입헌군주국을 세우려고 하였다. 그러나 프랑스를 둘러싼 주변국들이 프랑스를 공격하여 구체제를 복구하려 하고, 왕당파와 개혁파 사이에 내전이 격화되면서, 혁명은 위기를 맞게 되었다. 결국 1792년 혁명 주도세력은 반대자를 엄격히 처벌하는 공포정치에 들어가고, 왕을 단두대에서 처벌하고 공화정을 수립한다. 나폴레옹 장군은 프랑스를 위협하는 주변 국가를 차례로 격퇴하고  프랑스를 위기에서 구하면서 영웅으로 숭앙되고, 결국 1799년 공화정을 버리고 황제에 등극한다. 나폴레옹 군대는 유럽 대륙을 거의 석권했으나, 1812년 러시아를 침공하여 크게 패하고, 주변국가들에 의해 폐위되었다. 이들은 1814년 외국에 도피했던 왕을 다시 세웠으며, 1815년 귀양지에서 돌아온 나폴레옹이 최종적으로 쫒겨남으로서 프랑스 혁명은 막을 내린다.

프랑스 혁명을 계기로 왕권신수설에 바탕을 둔 절대 왕정 monarchy 은 유럽 역사에서 사실상 막을 내린다. 나폴레옹이 점령한 지역 곳곳에서 공화정이 시도되었으며, 왕이 국가를 대표한다는 전통적 믿음 대신,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라는 생각이 퍼지게 되었다. 이러한 생각은 특히 프랑스 혁명 정부가 외세의 위협에 대항하여 일반 민중으로부터 병사를 모집하여, 이들이 나라를 지키는 전쟁을 치르면서 굳어졌다. 나폴레옹 군대가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프랑스군은 애국심에 가득찬 민중의 군대였던 반면, 다른 나라의 군대는 귀족과 용병으로 이루어졌서 열심히 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왕과 귀족들은 일반 민중을 무장시키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나폴레옹은 업적에 따른 보상의 원칙을 엄격히 적용한 반면, 귀족과 용병으로 이루어진 전통 군대는 열심히 싸울 동기가 약했다.

1814년 비엔나 회의 Congress of Vienna 를 계기로 나폴레옹이 점령한 지역에 국경이 새로 그어지고, 외면적으로는 구체제가 각 지역에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일반 민중은 구체제를 더이상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1830년과 1848년에 유럽 전 지역에서 구체제에 저항하고 공화정을 추구하는 폭동이 벌어졌다. 이러한 폭동들은 결국 진압되었으나, 이후 구체제로 다시 되돌아갈 수는 없었다. 왕과 지배층의 권리를 제한하는 입헌 군주정으로 변화하고, 봉건 질서의 불합리한 구속을 폐지하고, 중산층의 권리를 확대하는 개혁이 속속 이루어졌다.

프랑스 혁명은 유럽 전역에 민족주의 nationalism을 고취시켰다. 구체제에서 왕과 귀족은 일반 민중과 유리되어 있었는데, 프랑스 혁명군이 진출하여 왕의 권위를 무너뜨리면서, 각 지역에서는 언어와 종교를 중심으로 '민족' nation 이라는 정체성이 뚜렸해지고, 민족 국가를 세우려는 시도가 중산층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프랑스 혁명군을 본따 유럽 전지역에서 지역의 일반 민중을 징집하여 민족 군대를 만드는 제도가 도입되면서, 민족 국가의 개념은 공고해졌다.

영국은 유럽을 뒤흔든 20년간 전쟁의 피해를 입지 않은 유일한 지역이다. 나폴레옹군이 영국 해군에 일찌감치 패했기 때문이다. 영국과 비교하여 프랑스는 중산층의 세력이 약했으며, 농민을 도시 노동자로 바꾸는 과정이 프랑스 혁명 때문에 더디게 전개되었으며, 7년 전쟁을 계기로 식민지 쟁탈전에서 프랑스는 영국에 패하여 많은 식민지를 잃었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19세기에 들어 프랑스는 영국과 달리 산업혁명이 빠르게 전개되지 못했다. 반면 영국은 19세기에 전세계를 식민지로 호령하고, 산업혁명에서 유럽 대륙 국가보다 크게 앞서면서, 엄청난 부와 군사력을 호령하는 제국이 될 수 있었다.

프랑스 혁명은 정치 군사 영역에서 주로 전개되었지만, 사회구조, 예술, 종교, 과학등 사회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쳤다. 예술 분야에서는, 18세기 계몽주의를 기반으로 한 고전주의에 더하여, 프랑스 혁명 시기에 낭만주의가 출현하는데 크게 영향을 미쳤다. 기존의 권위나 합리성에 대항하여, 인간의 감정과 자유로운 표현을 중시하는 낭만주의는, 전통의 구속을 벗어버리는 혁명 정신을 반영한다.  프랑스 혁명은 기독교의 영향이 약화되던 18세기 계몽주의의 시대흐름을 가속화시켰다. 기독교 교회는 구체제를 뒷받침하는 세력이었기 때문에, 프랑스 혁명군은 교회의 세력을 허물어 뜨리는 역할을 하였다.

요약 하자면, 18세기 후반에 시작된 산업혁명과 프랑스 혁명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구체제를 무너뜨리고, 자본주의 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국민주권의 새로운 체제가 성립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러한 변화의 힘은 19세기 후반에 본격적으로 꽃을 피워서, 본격적인 자본주의 경제와 기술 발달, 입헌군주제와 남성 모두에게 투표권의 확대로 귀결된다. 

이 책은 프랑스 혁명을 중심으로 근대가 출현하는 과정을 분석한 고전이다. 역사책이라고는 하지만, 역사적 사건 서술이 거의 없고, 사회과학적 원인과 결과를 분석적으로 논의하기 때문에, 역사 사건에 대한 사전 지식을 필요로 한다. 계급 갈등을 중심으로 사회변화를 파악하는 사회학적 접근을 한다. 공산주의자 답게, 구체제, 자본주의, 부르쥬아지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숨기지 않으며, 노동자 농민에 대한 긍정적인 편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이중부정과 삽입구가 많고, 생각의 전개에 따라 문장을 계속 확장하는 방식으로 글을 쓰기 때문에 읽기가 매우 힘들다. 그럼에도 역사의 흐름에 대해 통찰력을 주는 대단한 책이다.

2024. 8. 21. 16:51

John Mearsheimer. 2014(2001). Tradegy of Great Power Politics. W.W. Norton. 411 pages.

저자는 국제정치학자이며, 이 책은 자신이 "공격적 현실주의" (offensive realism)  라고 명명한 현실주의 국제정치이론의 핵심을 설명하고, 1800년대 초반 나폴레옹 전쟁에서부터 최근 미국과 중국의 대립에 이르기까지 강대국들 사이의 주요 국제정치적 갈등을 예로 하여 자신의 이론의 타당성을 입증한다.

국제정치의 세계에는 국가를 넘어서는 권위체가 없으며, 국가들은 자신의 생존을 각자 스스로 책임져야 하며, 국가들 사이에 권력 경쟁이 치열한 무정부 anarchy 상태이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 대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할 수 없으며, 한 나라의 다른 나라에 대한 의도는 수시로 바뀔 수 있기 때문에, 모든 나라는 자신의 안보를 확실히 하기 위해 자신의 경제와 군사력을 키우고, 주변에 위협이 될만한 나라가 부상하는 것을 막는데 최선을 다한다. 자신의 국가가 속한 지역에서 가장 강하고 유일한 강대국이 되는 것만이, 가장 확실하게 안보를 보장하는 길이다. 자신의 나라와 대양을 넘어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자신에 비견할만한 그 지역의 유일한 강자가 출현하는 것을 막는 것 또한 자신의 안보를 지키는 데 중요하다.

강대국이 주위의 나라들에 대해 공격적인 이유는, 국제질서 속에서 자신의 나라의 기존 지위 status quo 에 안주해서는 자신의 안보를 확실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지역에서 최강자가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자신보다 강한 자에 대응해 다른 나라와 연대를 도모하여 안위를 보전해야 한다. 강대국은 자신의 확실한 안보를 위해 경쟁자의 부상을 적극적으로 offensive 차단해야 하기 때문에, 주변국에 대해 공격적이 될 수 밖에 없다. 예컨대 선의와 평화를 강조하는 미국이지만, 상대의 도발이 없음에도 이라크를 침공하고 중남미의 반미 정권을 무너뜨리는 공작을 수시로 감행한 것에서 보듯이, 국가의 안보를 확실히 하기 위해 상대의 선의에 의지해서는 안되며, 국제정치체제 속에서 자신의 상대적 힘을 기르고 경쟁자의 부상을 적극적으로 견제해야 한다

국가들 사이의 관계 및, 각 국가들이 다른 나라에 대해 어떻게 행동하는가 하는 것은, 각 국가들이 처한 국제정치 시스템의 권력 분포에 따라 결정된다 (structural realism). 각 나라의 국내 정치가 민주주의건 전제주의건, 자본주의 체제건 공산주의 체제건, 지도자의 성향이 어떠하냐 등에 관계없이, 즉 이념, 체제, 지도자의 성향 등 국내적 변수와 상관 없이 모든 나라들은 국제정치 시스템 내에서의 구조적 맥락에 맞추어 행동한다. 

국제정치 시스템은 역사적으로 크게 세 가지 부류로 구분된다; 비등한 힘의 두 강대국이 대치하는 양강 구도(balanced bipolar structure), 셋 이상의 비등한 힘의 강대국이 포진한 다자 구도 (balanced multipolar structure), 한 나라가 지역의 다른 나라들보다 힘이 우세한 상황에서 셋 이상의 강대국이 포진한 다자 구도(unbalanced multipolar structrue).  제2차 대전 이래 미국과 소련이 대치한 냉전 상태가 첫번째 경우이며, 독일이 상대적으로 우세하면서 프랑스, 영국, 러시아 등이 포진한 19세기말에서 20세기 중반까지의 유럽이 세번째 경우이다. 나폴레옹 전쟁 이래 독일이 부상하기 이전까지 19세기 중반의 상황이 두번째에 해당한다. 첫번째 즉 양강 구도가 가장 평화로우며, 다음으로 두번째, 즉 균형된 다자 구도가 평화롭게, 세번째, 불균형된 다자 구도는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한 나라가 상대적으로 우세한 불균형 다자 구도에서, 강한 나라는 다른 나라를 공격하여 지역의 패권을 장악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구조적 현실주의 정치 이론에 따르자면, 20세기 초반 유럽은 불균형 다자구도 속에서 독일이 우세한 상황이었으므로, 히틀러가 출현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조만간 독일이 주변 국가를 침공하여 유럽의 지역 패권을 장악하려 시도하였을 것이다. 

미국은 자신의 지역, 즉 서반구에서 유일한 강자가 되었다. 반면 1800년 초반 프랑스의 나폴레옹 전쟁, 20세기 초중반 독일이 주도한 제1, 2차 세계대전, 일본이 주도하여 아시아 전역을 휩쓴 제2차 대전, 등에서 유럽 혹은 아시아 지역을 제패한 유일한 강자가 되려는 시도가 좌절되었다. 미국은 건국이래 북미 전역을 힘으로 정복하여 통일하고, 1823년 몬로 독트린 이래 서구 열강이 서반구에 세력을 펼치는 것을 막았으며, 20세기 두차례의 세계 대전에 참전하여, 유럽과 아시아에서 미국과 경쟁할만한 지역의 패권 국가가 부상하는 것을 막았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은 소련의 세력이 서구 유럽으로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마샬플랜이라는 대규모 경제원조와 NATO라는 군사적 투자를 통해 소련의 확장을 막았다.

1990년 소련이 스스로의 문제 때문에 붕괴하면서, 이차대전 이래 미국과 소련의 대치 상태, 즉 냉전 Cold War 은 미국의 승리로 끝났다. 미국은 전세계에서 유일한 강대국 unipolar system 의 지위에 등극하였다. 이제 미국은 경쟁하거나 우려할만한 상대가 없기 때문에 세계 곳곳에 내키는 대로 개입하였다. 1990년 초반의 이라크 전쟁, 2000년대의 아프간 전쟁, 2차 이라크 전쟁,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미국은 이 모든 개입에서 단기적 전쟁에는 승리하였지만, 해당 지역 사람들의 자주 자결을 원하는 민족주의와 충돌하였기 때문에 결국 물러나야 했다.

1980년대 이래 중국의 빠른 경제 부상으로 2000년대 들어 인구와 경제 규모 면에서 중국이 가까운 미래에 미국의 경쟁자가 될 조짐이 보이면서, 미국은 중국의 성장을 견제하는 정책으로 돌아섰다. 197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미국은 중국의 개방과 경제 성장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이는 중국의 경제가 성장하고 중류층이 비대해지면 결국 민주주의 정부가 들어서게 되고, 민주주의 국가는 전쟁을 좋아하지 않으며, 또한 외국과 밀접하게 연결된 개방 경제는 전쟁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중국의 성장은 미국을 포함한 세계 평화를 촉진하리라는 자유주의 국제정치 이론에 바탕을 둔 정책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에 미국 경제가 어려움에 빠지자 아시아 대륙에 패권적 지위의 강대국이 등장하는 것은 미국의 경제적 및 안보적 이익에 해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높아졌으며, 결국 미국 정부는 중국의 부상을 억누르는 강경 정책으로 선회하였다.

미국은 호주, 일본, 인도, 등과 연대를 맺으며 중국의 세력 확장을 억제하려고 노력하며, 중국의 경제와 기술이 발전하는 것을 막기 위해, 무역 규제와 기술 수출 제한을 포함한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과 중국의 대립은 저자의 "공격적 현실주의" 정치 이론이 예측한 그대로이다. 중국은 미국의 견제에 당연히 반발하기 때문에, 미국과 중국간 갈등이 전쟁으로 비화될 위험성이 높다. 한반도에서 남북간 충돌이나, 타이완을 둘러싼 충돌, 등이 미국과 중국간 전쟁으로 확대될 위험성이 큰 곳이다. 중국과 미국 모두 핵 무기를 가지고 있으므로 전면전의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러나 아시아 지역은 넓은 지역에 걸쳐 퍼져 있으며, 국지적 충돌의 충격이 체제 전체로 퍼지면서 확대될 가능성이 유럽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중국과 미국간 전쟁의 부담이 과거 냉전시절 소련과 서유럽 혹은 미국과의 전쟁의 부담보다는 훨씬 덜하다. 다시말하면 중국과 미국간의 제한된 전쟁의 가능성은 냉전시절보다 높다.  

중국의 부상이 지속되면, 주변에 있는 국가들은 국외의 강대국인 미국 및 지역 국가들 서로간에 연대를 맺으면서 중국을 견제하는 균형 외교 balance of power 를 펼치는 것이 최선이다. 왜냐하면 중국은 지역의 유일한 강자가 되는 목표를 추구할 것이며, 지역의 패권을 쥔 강대국은 그 지역의 여타 나라들에 간섭을 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중남미에 대해 그래온 것 처럼, 중국도 지역 패권 국가가 되면 유사하게 행동할 것이다.

이 책은 출간된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현실주의 정치이론의 고전이라고 지목될만큼 국제정치학계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저자의 단순 명쾌한 이론과 경험적 사례 검증이 설득력을 높이고 있다. 국제 제도의 효용을 과소 평가한다거나, 국제정치의 세계에서 힘의 논리 이외에 다른 가치도 유의미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는 하지만, 근래에 격화되는 미국과 중국의 대립은 현실주의 정치 이론에 힘을 보태고 있다. 저자의 서술을 따라가다보면 현실을 설명하는 사회과학 이론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은 국제정치학계의 대표적인 학술서이면서도 쉽게 다가오는 흥미로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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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렬. 2009. 화학이 안내하는 바다탐구. 자유아카데미. 463쪽.

저자는 화학 해양학자이며, 이 책은 화학 지식을 동원하여 바다를 탐구한 결과를 설명한다. 바다물의 화학적 구성, 바닷물의 순환, 깊이에 따른 바다의 특성 차이, 바다의 지형, 바다가 기후에 미치는 영향, 조석과 파도, 등이 주요 내용이다.

화학 해양학에서는 온도와 염을 중심으로 바다를 분석한다. 깊이 및 지역에 따라 온도와 염에 차이가 있다. 바다는 깊이에 따라 표층과 중층 및 심해로 나눈다. 햇빛이 투과되는 표층의 깊이는 100미터도 안된다. 이 표층에서 대부분의 생명 활동이 전개된다. 1,000미터 이하의 심해에는, 0~2도의 매우 차가운 물이 적도에서부터 극지방까지 동일한 분포를 보인다. 바닷물에 녹아있는 염은, 소금의 구성 성분인 염소와 나트륨이 대부분(86%)을 차지하며, 이외에 황산, 마그네슘, 칼슘, 칼륨 등이 있는데, 지역에 관계없이 전세계적으로 염의 구성 비율이 동일하다.

바다는 매우 깊다. 전세계 바다의 평균 깊이는 3,600미터에 이른다. 육지의 연장인 대륙붕은 200미터 깊이 이하의 얕은 바다이며, 대륙붕을 넘어서면 가파른 경사를 지나 심해의 평탄한 해저가 넓게 펼쳐진다. 평탄한 해저 곳곳에는 깊은 협곡인 해구와, 화산으로 솟아오른 해령이 존재한다. 지구물리학 이론인 판구조론으로 바다의 지형을 설명할 수 있다. 대서양에는 남에서 북으로 길게 해저 산맥이 존재하는데, 이는 아메리카 판과 유라시아판이 서로 갈라지면서 벌어진 틈으로 마그마가 분출하여 만들어졌다. 지구의 판과 판이 만나는 지점에 매우 깊은 해구가 형성된다. 밀도가 높은 해양판이 상대적으로 밀도가 낮은 육지판 아래로 들어가면서 해구를 만들고 지진과 화산을 발생시킨다. 이러한 심해에 대한 탐사가 이루어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

바닷물은 수평으로 뿐만 아니라 수직으로 순환한다. 표층의 바닷물이 심해로 내려가서 전세계 바다의 밑 바닥을 한바퀴 돌고 표층으로 올라오는 순환을 반복한다. 표층의 바닷물이 심해로 내려가는 입구가 대서양의 북쪽 끝에 있으며, 이곳에서 심해로 내려간 바닷물은 대서양 남쪽을 지나 인도양 바닥을 거쳐 태평양 북쪽에서 표층으로 솟아 오른다. 이러한 순환의 중간인 대서양 남쪽과 인도양에서 일부가 표층으로 용출한다. 이러한 전지구적인 수직 순환을 한번 하는데 1,000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일반적으로 해류라고 지칭하는 수평 순환은 표층에서만 일어나며, 심해는 매우 서서히 이동한다.

태평양 동쪽의 표층 온도의 이상 변화로 인해 태평양 서쪽 지방에서 기상 이변이 발생한다. 엘리뇨는 페루 연안의 이상 고온을, 라니냐는 그 반대 현상을 지칭한다. 이러한 변화는 수십년을 주기로 발생하는데, 원인은 모른다. 근래에 전지구적으로 표층 온도가 상승하면서 지구 온난화의 우려가 커졌다. 해양 온도의 변화는 지구 역사에서 주기적으로 발생했는데, 근래에 관찰되는 해양 온도의 상승은 1,800년대 이래 산업화와 함께 특이하게 빠른 속도로 전개되고 있다. 

바다는 인류의 삶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음에도 바다에 대한 체계적 이해는 달 탐험보다 더 늦게 이루어졌다. 이 책은 전문 연구자의 서술로 바다에 관해 깊이있는 지식을 전달한다. 바다에 관해 알려진 지식뿐만 아니라, 어떤 과정을 통해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졌는지, 연구 방법과 계기를 설명한 것 또한 흥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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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8. 11. 15:50

Gerd Gigerenzer. 2022. How to stay smart in a smart world: Why human intelligence still beats algorithms. Pneguin Books. 247 pages.

저자는 심리학에 배경을 둔 의사결정과 리스크 관리를 연구하는 학자이며, 이 책은 인터넷과 AI의 영향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 가져온 문제점과 이에 대한 대응책을 제시한다.

인공지능 AI의 응용 범위가 높아지고 있는데, 인공지능은 인간의 지능과는 다르게 작동하며, 강점과 약점에서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인공지능은 불확실성이 없고 고정된 규칙이 적용되는 안정된 환경에서 놀랄만큼 높은 성과를 낸다. 체스 게임이나 동일한 업무를 반복하는 데서 인공지능은 인간을 이겼다. 반면 인간의 지능은 불확실하고 변화하는 상황에 적응하기 위하여 진화한 산물이다. 인간이 활동하는 사회와 미래는 불확실성이 높으므로 인공지능이 잘 대응하기 어렵다. 주가와 금융위기를 예측하거나, 인간 행동을 미리 예측하거나, 질병의 발생과 전개 양상을 예측하는 등에서 인공지능은 인간보다 낫지 않다. AI 의 능력에 대한 많은 논의는, AI를 개발하는 사람과 회사의 상업적인 동기 때문에 실제보다 과장되어 있다.

인공지능은 사람들의 행동과 가치관을 인공지능에 맞추어 바꾸는 방식으로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예컨대, 근래에 자율주행차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 현재 그대로의 교통 환경에서 완전한 자율주행차는 가능하지 않다. 대신, 인간이 인공지능 환경에 맞추어 적응하는 (adapt to AI) 방식으로 변화할 것이다. 예컨대 자율주행차 전용 도로가 생기고, 그러한 도로에서는 인간의 주행이 금지되고, 모든 불확실한 변수가 제거된 교통환경이 그것이다. 이는 과거 자동차가 처음 소개되었을 때, 자동차 도로에 인간이 들어가서는 안되고 마차가 다니지 못하게 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AI와 빅데이터 분석은 기본적으로 변수들 사이에 통계적인 상관관계를 통해 세상을 파악하는데, 이는 한계가 있다. 반면 인간은 이론적인 인과 관계를 통해 세상을 파악한다. 인과적으로 왜 그러한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한다면, 아무리 그러한 사건과 통계적으로 연관된 변수를 많이 알고 있다고 해도, 피상적이며 과거에 이미 발생한 상황에 이해가 국한된다. 과거에 발생하지 않은 방식으로 사건이 전개된다면, 과거의 사건에 바탕을 둔 상관관계 지식은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과거에 일어난 사건의 변이를 잘 설명하는 모델을 만들었다고 해도, 이 모델이 앞으로 일어날 사건의 변이를 잘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모델을 만드는 데 사용되지 않은 사례에 대해 이 모델이 얼마나 잘 맞는지 검증해야 한다. 많은 사회과학 연구에서 제시하는 회귀분석 모델의 설명력은, 해당 연구에 사용되지 않은 다른 사례나 미래의 사건에 대해서는 설명력이 약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인간 세상은 불확실성이 높기 때문이다.

인터넷과 인공지능은 감시사회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인터넷과 인공지능 서비스를 공짜로 이용하는 대신 자신의 사생활 정보를 몽땅 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에게 내어준다. 이 회사들은 사용자의 개인정보를 광고주에게 팔아 큰 이익을 얻는다. 사람들은 자신의 사생활이 타인에게 털리는 것을 염려하면서, 사생활을 털어가는 서비스 회사에게 사용료를 지불하는 대신 자신의 사생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선택을 원치 않는다 (privacy paradox). 인터넷과 인공지능 회사는 사용자들이 더 오래 더 많이 이용하도록 하기 위해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여 여러가지 장치를 개발하였다. 그 결과 사람들은 이러한 서비스에 중독되어 사용을 스스로 조절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의 알고리즘이 제시하는 계속된 비디오 공급에서 눈을 거두지 못하는 것, 자신의 페이스북을 수시로 열어보아야 하는 것, '좋아요'에 집착하여 무수히 자신의 영상을 올리고, 항시 이를 의식하면서 행동하는 것, 등등. 이러한 소비자의 행동은 고도의 심리적 조작의 결과이다. 사람들은 자극적 뉴스와 영상에 관심이 더욱 쏠리기 때문에,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이런 쪽의 콘텐츠를 더 많이 제시하고, 이를 통해 사람들의 견해는 더욱 극단적인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중국에서는 인터넷과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각 개인에 대해 사회 신용지수 social credit 를 산출하여 일상 전반에 활용하는 시범사업을 여러 도시에서 시행하고 있다. 이는 사람들의 금융 신용지수를 산출하여 금융 활동에 활용하는 것과 유사하다.  사람들이 하는 모든 행동은 사회 신용지수의 산출을 위해 점수로 입력된다. 사회 신용지수는 사람들이 사회 규범을 잘 지키도록 유도하는 순기능과 함께, 체제에 비판적인 의견과 행동을 억압하는 결과를 낳는다. 한편, 서구 사회는 중국과 달리 정부가 아닌 인터넷 기업들이 개인 정보를 샅샅이 수집하며, 이를 광고주에게 판매함은 물론, 정부의 정보기관에게 제공하여 사회에 위험한 인물을 감시하고 색출하도록 한다. 

인터넷과 인공지능이 가져온 인터넷 서비스 중독과 감시 사회에서 벗어나는 길은 있다. 현재처럼 서비스를 공짜로 이용하는 대신 자신의 사생활 정보를 내주는 방식이 아니라, 서비스를 이용하는 대신 요금을 지불하는 구독 방식으로 전환하면 문제가 해결된다. 그런데 현재는 사람들이 서비스 요금을 지불하기를 거부하기 때문에,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도록 하고, 요금을 징수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도록 강제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정책에 대해 거대 인터넷 기업들은 적극 반대하겠지만, 정부가 주도하여 사회적 합의를 이끌고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저자는 자신이 제안하는 서비스 요금 유료화를 강제하는 정책이 실현되리라고 확신하는 것 같지 않다. 저자의 서술을 따라가다보면, 인공지능이 가져오는 미래가 반드시 사람들을 더 행복하거나 편안하게 만들 것 같지 않다.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잘 할 수 있도록 인간의 행동과 사회 환경을 바꾸어 가리라는 예감이 든다. 중국의 사회 신용지수의 예에서 보듯, 사회질서와 통제에 대한 가치관도 바뀔 것 같다. 개인의 자유를 핵심 가치로 두는 사회에서, 사람들 사이에 조화와 질서를 우선시하는 사회로. 싱가포르식 사회 모델이다.  통찰력을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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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oshi Kanazawa. 2012. The Intelligence Paradox: Why the intelligent choice isn't always the smart one. John Wily & Son. 208 pages.

저자는 진화심리학자이며, 이 책은 인간의 지능 intelligence 에 대한 저자의 연구에 바탕을 두고, 지능은 무엇이며, 왜 존재하며, 어떤 일을 하는지 서술한다.

인간의 지능은 진화의 결과 생겨난 다양한 속성 human traits 중 하나이다. 지능은 유전하는 속성이며, 사람에 따라 지능 수준은 차이가 크다. 인간의 육체적 속성 예컨대, 피부색이나 체질, 혹은 심리적 속성 예컨대, 공격성, 외향성, 예민성, 등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지능도 유전적인 영향이 큰 속성 중 하나이다. 문제는 다른 속성과 달리, 인간의 지능은 가치 평가가 함께 따른다. 지능이 낮은 사람은 지능이 높은 사람보다 인간적인 가치 worth 가 떨어지는 것으로 생각한다.

인간의 지능은 여러 측면이 있다. 언어적 지능, 수리적 지능, 공간 지각 지능, 논리적 추론의 지능, 사회적 지능, 등등. 이러한 다양한 측면의 지능은 서로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한 분야의 지능이 높으면 다른 분야의 지능도 함께 높다. 이러한 여러 지능의 배경 변수로서, 다방면을 포괄하는 지능 general intelligence 을 '지능 지수' Intelligence Quotient 로 측정한다. 일반적인 상식과 달리, 지능지수는 신뢰도가 매우 높은 측정 지표이며, 일생 크게 변하지 않는다. 즉 지능지수로 대표되는 인류 공통의 분명한 실체가 있으며, 일반적인 비판과 달리 서구 문화가 만들어낸 개념이 아니다. 성인이 되면 어릴 때보다 유전적인 영향이 더 뚜렷이 발현되기 때문에, 어릴 때보다 성인이 되어 사람들 사이에 지능지수의 차이가 더 커진다.

인간은 유인원으로부터 진화해 온 이래 지난 200만년 동안 대부분을 아프리카의 사바나 지역에서 수렵채취 생활을 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현재 인간이 가지고 있는 유전적 특질은 수렵채취 활동에 적합하게 진화해 왔다. 농업을 하기 시작한 10,000년전 이후에 생활은 인간의 진화 과정에 아직까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특히 지난 200년간 도시화 산업화로 출현한 현대의 사회에서는, 오래전 수렵채취 시절에 획득한 특질이 적절치 않을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달고 기름진 음식을 좋아하는 습성을 들 수 있다.

인간의 행동과 심리의 많은 부분은 유전적인 요소를 포함한다. 심리학계에서는 대체로 50:50으로, 즉 유전적 요소가 50%, 환경적 요소가 50%이라고 본다. 그러나 인간 생존에 필수적인 속성은 유전적 변이를 허용하지 않는다. 인간 생존에 필수적인 특성에서 유전적인 차이가 나타난다면, 이러한 특성에서 열등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의 후손은 지금까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부 사람들의 우수한 지능은 진화적 관점에서 볼 때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가 아니다. 인간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 즉 이성의 짝을 찾고, 자손을 기르고, 먹을 것을 구하고, 등의 능력과 비교할 때, 우수한 지능은 이러한 활동에 큰 이점을 주지 못했던 것이 분명하다.

인간의 우수한 지능은 익숙하지 않은 환경 즉, 새로운  삶의 문제에 당면했을 때 대처하는 능력으로 진화하였다. 오랫동안 변화가 거의 없는 환경에서 생존하고 적응하는 데 필요한 속성은 인간의 보편적인 본성으로 확고하게 굳어진 반면, 새로운 환경에 접해 대처하는 능력은 모든 인간에게 공유된 특질이 아니라, 진화의 과정에서 새로이 출현한 특질이다. 인간 진화 과정에서 오래도록 친숙한 환경인 사바나에서 생활할 때 필요한 인간 공통의 생존 능력, 즉 이성의 짝을 찾고, 자손을 양육하고, 먹을 것을 구하는 등에서 지능이 높은 사람과 지능이 낮은 사람 간의 차이는 없다. 반면 농업을 시작한 후 새로이 출현한 환경에서 전에는 익숙치 않은 새로운 문제와 관련해, 지능이 높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대처 능력이 더 크다.

현대 사회에서 지능이 높을수록 교육 수준이 높고, 소득이 높으며, 매력적이며, 사회적 지위가 더 높다. 현대사회의 환경은 인간 진화의 오랜 과정에서 볼 때 익숙한 환경이 아니기 때문에, 지능이 높은 사람은 현대 사회에 출현한 새로운 분야에서 월등히 유리하다. 교육, 소득, 성별 등 여러 조건을 통계적으로 통제했을 때, 똑똑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다양한 면에서 유의미한 차이를 보인다. 지능이 높은 사람은 더 리버럴하며, 신을 믿지 않으며, 성적인 배타성 sexual exclusivity 을 고집하며,  올빼미 체질이며, 동성애 성향을 가지며, 고전 음악을 좋아하며, 술을 더마시며, 여성의 경우 결혼을 덜하고 결혼했다 해도 아이를 덜 낳는다.

저자는 지능이 인간의 생존과 번식에 필수적인 활동에 유리함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책의 곳곳에서 여러 차례 강조한다. 그러나 현대 사회와 같이 빠르게 변하는 환경에서 지능의 이점은 최대로 발휘된다. 저자의 가설이 맞다면, 현대 사회에서도 근래로 올 수록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기 때문에, 지능이 높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더 성과를 내고 더 우월한 지위를 차지할 것이다. 이는 저자가 "지능의 역설" intelligence paradox 라고 지칭하는, 즉 지능이 높은 사람이 인간 생존에 필수적인 부분에서 더 우월하지는 않다는 명제와는 반대된다. 그의 글을 따라가다보면, 저자의 분석이 흥미롭지만, 조금 설익은 주장을 한다는 느낌이 든다. 여하간 신선한 주장이어서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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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holas Christakis and James Fowler. 2009. Connected: How your friends' friends' friends affect everything you feel, think, and do. 2009. Little, Brown Spark. 306 pages.

저자들은 각각 사회학자와 정치학자이며, 이 책은 저자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하여 인간 관계망의 속성과 참여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설명한다.

인간 관계망은 참가자들에게 다양하게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까까운 친구와 같이 직접적인 관계를 넘어서, 3도 three degrees, 즉 친구의 친구의 친구에게까지 작용한다. 그러나 3도를 넘어서는 영향력이 거의 전파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서로 영향을 미치고 협력하는 것은 진화를 통해 형성된 특질인데, 수렵채취 시절의 선조는 대체로 150명 이내의 친밀한 관계망 속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3도를 넘어서는 관계를 경험할 기회가 없었다. 따라서 3도를 넘어선 사람에게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것은 진화의 결과로 보인다.

사람들은 유사한 속성의 사람끼리 무리를 짓는 경향이 있다.  관계를 통해 영향을 미치는 내용은 매우 다양하다. 감정, 비만, 흡연, 취향, 정치적 견해, 아이디어, 습관, 병원균, 등등. 흡연자는 흡연자들끼리, 비만한 사람은 비만한 사람들끼리, 행복한 사람은 행복한 사람들끼리, 우울한 사람은 우울한 사람들끼리 무리를 지으며 상호작용을 한다. 이는 단순히 유사한 속성의 사람들끼리 뭉치는 성향때문만은 아니며, 관계망 속의 상대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이다.

관계망의 중심, 즉 사람들 사이에 관계가 촘촘한 곳에 위치한 사람은 관계망의 주변부, 즉 사람들 사이에 관계가 성글은 곳에 위치한 사람보다 영향력이 더 크다. 왜냐하면 같은 수의 친구를 가지고 있더라도, 친구의 친구가 많은 경우 나의 영향력이 더 많은 사람에게 전파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관계망은 참여자들 사이에 관계의 촘촘함에서 균일하지 않다. 사람들 사이에 관계의 촘촘함에서 위계가 존재한다. 관계망에서 촘촘한 곳에 위치한 사람에게는 더 많은 정보가 흐르며 더 많은 기회에 접할 수 있는 반면, 촘촘하지 못한 곳에 위치한 사람에게는 가용한 정보나 기회가 제한되어 있다. 즉 개인의 속성이 아니라 관계망의 속성에 따라 특정 참여자의 자원의 다과가 결정된다. 자신이 관계망의 어디에 위치할지는 자신이 결정할 수 없다. 나의 친구, 나아가 나의 친구의 친구가 얼마나 사교적일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페이스북과 같은 온라인 친구는 오프라인의 친구와 같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한 인간이 친밀하게 관리할 수 있는 관계망의 범위는 150명을 넘어서지 않는다. 온라인 소통은 오프라인 관계를 보완하고 강화하기 위해 주로 쓰인다. 물론 정보의 수집을 위해서는 폭넓은 온라인 관계망이 유용하지만, 인간적인 접촉과 사교의 목적을 위해서 온라인은 제한적으로만 도움을 준다. 물론 온라인 데이팅 서비스와 같이 인간적 접촉을 목적으로 하는 새로운 관계 형성 방법이 앞으로 갈수록 확대되면서 온라인 관계에 새로운 장이 펼쳐질 것이다.

저자가 관계망에 관한 연구 경험이 풍부하기 때문에 생생하게 사례를 설명한다. 인간 관계망에 다양한 연구 결과를 망라하고 있기 때문에, 주제를 포괄적으로 이해하게 해준다. 이 책에서 이야기 하는 것들이 이제는 상식이 될 정도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인간 관계망은 인간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임을 모두 알고 있지만, 데이타 수집의 어려움 때문에 지금까지 소홀히 되었는데, 사람들의 디지털 생활이 확대되면 앞으로 크게 확대될 수 있다. 물론 사생활 침해의 문제나 상업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이 여전히 어렵기는 하지만, 사회과학이 전적으로 개인의 속성에 촛점을 맞추는 개인주의적 방법론 methodological individualism 의 한계에서 벗어나야 할 필요는 있다.

2024. 7. 26. 17:51

Gerald Davis. 2009. Managed by Markets: How finance reshaped America. Oxford University Press. 255 pages.

저자는 조직을 전공한 경영학자이자 사회학자이다. 이 책은 1970년대 이래 금융 시장의 부상을 중심으로 미국 경제사회의 변화를 검토한다. 다음 몇가지 주제에 논의를 집중한다. 첫째는 거대규모의 제조업의 주식회사 (big corporation)를 중심으로 하던 미국의 경제 체제가 변하고 있다. 둘째, 미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금융 산업의 비중이 커지고, 중심이 은행으로부터 자본 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셋째, 시장에서의 가치가 모든 경제 사회 활동의 기준이 되면서 사람들의 삶의 패턴도 바뀌고 있다.

미국은 1970년대초까지 거대 규모의 제조업 분야의 소수의 주식 회사들이 각 분야의 산업을 과점하는 경제 체제였다. 매출액과 고용에서 거대한 조직들은 거대한 자산과 높은 생산성, 안정적인 고용, 제조업 중심의 특징을 보였다. 주식회사의 소유 구조는 매우 넓게 퍼져 있었으며, 경영진은 주주로부터 독립되어 있었다. 경영자들은 주주는 물론 종업원, 지역사회, 고객,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 (stakeholders)를 동시에 고려하면서 회사를 이끌었다. 회사의 규모가 클 수록 경영자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기 때문에, 회사 경영의 최우선 목표는 회사의 규모를 키우는 것이었다. 종업원은 오랫동안 한 직장에서 일하며, 내부에서 성장한 사람이 경영자로 발탁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1970년대 중반 미국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기업은 매출보다 이익을 중시하게 되었다. 회사를 담보로 빚을 내서 공격적으로 인수하거나(leveraged buyout), 경쟁 관계의 다른 회사의 일부 혹은 전부를 인수 합병하는 행위 등에 대한 법적 제한이 사라지면서, 안정적으로 이익을 내어 현금 흐름이 탄탄한 재정 상태를 유지하여 회사 사냥꾼의 공격을 예방하는 것이 경영자의 주요 관심사가 되었다. 이익을 내지 못하거나 회사의 핵심 업무가 아닌 분야는 외부에 매각을 하고 종업원을 해고하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경영자와 종업원 모두 언제든 회사에서 쫒겨날 것을 예상해야 하기에 회사에 대한 충성은 더 이상 기대되지 않았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주주의 이익이 회사 경영의 중심이 되었다. 경영자의 보수를 주식의 가치와 연동시키는 관행이 확산되었으며, 주식 가치의 단기적인 변동이 회사와 경영자의 유일한 성과 평가 기준으로 자리잡았다.

1980년대 정보산업기술과 컨테이너 운송 기술의 발달로 세계화가 가속되면서, 미국의 기업들은 제조 부문을 해외로 내보내고 마켓팅과 디자인 등 무형의 지적자산만을 내부에서 보유하는 식으로 변화되었다. 제조부문을 전혀 보유하지 않고 출발한 나이키나 애플과 같은 회사가 대표적이다. 이런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라도 대부분의 회사들이 OEM 방식으로 일부 혹은 전부의 제조 부문을 외부로부터 조달하는 사업 방식을 채택하였다. 작은 자산으로 더 많은 이익을 뽑아낼수록 단위 주식의 가치가 높아지기 때문에, 주주의 가치를 중시하는 경영은 자산과 종업원을 최소로 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게 만든다. 이러한 변화속에서 과거 거대 규모의 주식회사들은 몸체를 줄이거나 해체되었으며, 대신 매출액 대비 작은 규모의 종업원을 가진 회사들만이 경쟁에서 살아남았다. 과거 미국을 대표하던 기업인 IBM, GM, Ford, GE,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과거에 금융(finance) 산업은, 일반인으로 부터 저축을 유치하여 자금을 필요로 하는 기업과 가계에 대출을 해주는 중개 역할을 하던 은행이 중심이었다. 자신의 위험으로 증권에 투자하거나 혹은 채권을 발행하는 투자은행은 1970년대 중반까지 미미한 규모였다. 미국의 은행은 각자의 주에서만 영업을 하도록 규제하였기 때문에, 큰 회사가 밀집한 뉴욕에 소재한 은행을 제외하고는 큰 규모가 아니었다. 각 지역의 은행은 그 지역의 기업을 상대로 영업하면서 지역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1970년대까지 금융 업무는 단조로웠으며, 미국 경제에서 작은 비중을 차지했다.

1980년대 들어 은행에 대한 지역 제한과 사업 범위에 대한 규제가 철폐되고 완전히 자유화되면서 금융 산업은 크게 변하였다. 은행들 사이에 인수 합병의 바람이 불면서 전국적인 영업망을 가진 거대규모의 은행이 등장하였다. 은행의 업무도 다양해져서, 단순히 수신과 대출을 중개하는 역할을 넘어, 기업의 인수 합병을 중개하고 자금을 대주며, 기업 공개와 채권 발행을 주관하고, 다양한 위험의 새로운 상품들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역할에 이르기까지 확대되었다. 투자은행, 보험, 펀드 등 이전까지 분리되었던 다양한 금융 분야의 경계가 사라졌다.

정보기술의 발달로 위험에 대한 정보 수집과 평가가 용이해지면서, 과거 은행이 가지고 있던 정보 수집의 독점적 노하우가 사라졌다. 이제 기업들은 은행을 매개로 자금을 조달하기보다, 채권이나 증권을 발행하여 더 싼 비용으로 시장에서 직접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정보 기술 덕분에 증권을 발행하여 채무를 유동화시키는 것(securitization)이 용이해지면서, 다양한 형태의 금융상품들이 개발되어 시장에서 거래되었다. 장기주택저당채권(mortgage)을 바탕으로 하여 주택 담보부 채권(mortgage backed securities)을 발행하여 시장에서 현금을 확보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수신 업무 없이, 시장에서 유동화 채권을 발행하여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수월해지면서, 너도나도 이 사업에 경쟁적으로 뛰어들어, 상환능력이 부실한 사람에게까지 2차 3차로 모기지를 발행하도록 부축이고, 이를 바탕으로 위험도가 높은 증권을 시장에서 유통시키다가, 주택가격이 폭락하고 주택 소유자들이 채권의 상환이 어려워지자, 이를 배경으로 한 유동화 증권 또한 지급불능 사태에 이른 것이 바로 2008년 금융위기이다.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거대 주식 회사의 규모가 축소된 대신, 금융 부문에서 다양한 신상품이 무수히 개발되고 활발히 거래되면서, 미국의 총생산에서 금융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3분의 1에 이르게 되었다.

금융 시장이 경제의 중심으로 부상하면서 미국인의 일상과 의식에 변화가 왔다. 미국인들은 이제 항시 시장의 가치와 시장 위험을 의식하면서 산다. 자신이 일하는 회사가 시장에서 어떻게 평가받는지에 자신의 일자리가 달려있음을 의식하면서 직장을 다닌다. 주주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자신의 회사 혹은 자신이 일하는 부문이 다른 회사에 매각되거나 혹은 다운 사이징 될 것을 염려해야 한다. 1990년대 중반 이래 미국인의 연금 체계는, 회사가 책임지고 은퇴 기금을 굴려 종업원의 은퇴 이후 연금을 지급하는 체제 (defined benefit system)에서, 401K라 하여 개인이 책임지고 자신의 위험에 따라 은퇴 기금을 굴려서 은퇴 이후의 소득을 만들어야 하는 체제(defined contribution system)으로 바뀌었다. 그 결과 미국인은 자본시장의 부침에 자신의 노후 생계가 달려 있음을 의식하며 생활한다. 과거에 주택이란 자신이 자식을 낳고 생활하는 가정의 물적 토대라는 개념이었는데, 2000년대 들어 주택 가격이 폭등하고 주택을 담보로 2차 3차 모기지를 얻어서 자금을 확보하는 관행이 일반화되고, 이후 주택 가격이 폭락하여 집을 차압당하는 사람이 주위에 흔해지면서, 사람들은 주택 가격에 민감해지고, 주택을 재무적인 가치 (financial value)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요컨대 미국인은 이제 모든 것을 그것의 시장 가치에 항시 신경쓰면서, 자신의 위험은 자신이 관리하고 책임지는 투자자(investors)가 된 것이다.

저자는 1970년대 중반 이후 미국 경제사회의 변화를 대체로 부정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 제조업이 축소된 것이나, 금융 부문이 부상한 것이나, 세계화로 인해 다국적 기업이 부상한 점, 등 미국의 주요 변화를 부정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 그러나 이런 변화에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이 밸류 체인의 상위로 이전하면서 생산성이 낮은 부문을 해외에 내준 것이 반드시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미국의 밸류체인에서 하위 부문을 해외로 이전하였기에, 한국과 이어서 중국이 부상하고, 세계적으로 빈곤층이 극적으로 감소한 것이다. 기술 혁신과 지적재산권 전문 기업이 미국에 집중하면서 미국은 2000년대 들어 유럽보다 훨씬 앞서게 되었으며, 경제의 역동성이 높아졌다. 금융부문의 비중이 높아진 것도 유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과거 제조업 중심 거대 기업과는 대조적으로, 매출액 대비 종업원 규모가 작은 회사들이 과거 거대 주식회사를 대체했다고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애플, 등 기술 기업들은 신경제의 총아로 엄청난 부가가치를 내며 미국 경제를 떠 받들고 있다. 제조업 없이 사업하는 나이키를 반드시 부정적으로 볼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1990년대 이래 금융 부문의 확대와 관련된 그의 서술은 근래의 미국 경제의 변화를 읽는데 도움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