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on Acemoglu and Simon Johnson. 2023. Power and Progress: Our thousand-year struggle over technology and prosperity. Public Affairs. 422 pages.
저자는 경제학자와 경영학자이며, 이 책은 역사적으로 기술발전의 방향에 대해 검토하고, 특히 근래에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 발전이 내포한 문제점을 지적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기술 발달이 노동자의 삶에 반드시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았다. 농업기술이 발달하면서 농업의 생산성이 높아졌지만, 높아진 생산성의 과실을 권력자들이 독차지 했을뿐, 농민의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다. 19세기 초반까지 산업혁명을 통해 생산성이 크게 높아졌지만, 공장 노동자의 삶은 나지지 않았으며 심지어 더욱 비참해졌다. 기술 개발의 주도권을 자본가들이 쥐고 있었기에, 새로운 기술을 통해 생산 비용을 절감하고 노동 통제를 강화하여 노동자의 노동력을 더욱 착취하는 방향으로 기술이 발전하였다. 기술 발전에 대한 비젼에 노동자의 삶의 향상은 존재하지 않았다. 기술이 발전하여 생산성이 향상되면, 소득이 높아지고, 수요가 증가하여, 노동자의 임금이 올라가고, 기술발전의 혜택이 전계층에게 널리 퍼진다는 주류 경제학의 전형적인 발전모델 (productivity bandwagon effect)은 실제 현실과 맞지 않는다.
사회는 기술 발전의 방향을 선택할 수 있는데, 19세기 중반까지 기술 발전은 노동 친화적이지 않았다. 19세기 후반 도시 공장의 노동자들이 단결하여 자본가에 대항하는 세력을 형성하면서 노동조건과 임금이 향상되기 시작했다. 18세기 말 산업혁명으로 시작된 생산성 향상이 노동자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자본가에 대항하는 세력화가 필수적이었던 것이다.
2차대전후 1970년대까지 미국을 포함한 서구사회는 높은 경제성장을 구가하였는데, 이 기간 동안 모든 계층에게 고루 혜택이 돌아갔다. 일반 노동자에게까지 생산성 향상의 과실이 고루 돌아간데에는, 1930년대 뉴딜정책의 영향과 전쟁후 관대한 복지정책이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1980년대 레이건 정부의 반노동정책과, 기업의 이윤을 최우선으로 하는 산업구조조정은, 노동자의 힘을 크게 약화시킨 반면 대기업 집중을 심화시켰다. 이 시기 이래 노동자의 소득은 정체하거나 감소한 반면, 고급 기술을 보유한 엘리트들에게 생산성 향상의 과실이 집중되었다.
1990년대 이래 정보기술의 발달은 소수의 대기업에 산업이 집중되고 엘리트들이 생산성 향상의 과실을 독점하는 경향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정보 기술의 발전 방향은 일반 노동자를 소외시키는 자동화와 노동 통제에 맞추어졌으며, 데이터의 중앙집중을 심화시키고 있다. 현재와 같이 기계가 노동자를 대치하는 방향이 아니라, 노동자가 기계를 이용하여 업무 능력을 향상시키고 다양한 새로운 연관 업무가 생겨나는 방향으로 기술이 발전해야 한다. 소수의 엘리트들이 기술 발전 방향을 일방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에 일반 노동자의 이해가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는데, 기술 발전에 노동자의 의견이 반영되도록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세금이나 규제를 동원한 정부의 개입 및 노동자의 세력화를 통해, 노동 친화적인 방향으로 기술 발전의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사회가 기술 발전의 방향을 선택할 수 있다거나, 노동 친화적인 기술 발전에 대한 그들의 아이디어가 분명하게 다가오지 않고, 그들이 제시하는 대응 방안 역시 설득력이 떨어진다. 역사적인 검토는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서구에서 노동자의 임금 향상과 복지제도의 발전은, 그들의 지적과 같이 노동자들의 정치 세력화의 결과였다. 물론 앞으로도 노동자의 힘이 반영된 정치적 개입이 정보기술의 방향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저자는 why nations fail 이라는 좋은 책을 썼기에 기대를 갖고 읽었는데, 이 책에서는 서술하는 내용의 깊이가 얕아 읽는 내내 의아한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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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iel Lieberman. 2013. The Story of the Human Body: Evolution, Health, and Disease. Vintage Books. 367 pages.
저자는 진화 생물학자이며, 이 책은 인간의 진화 과정을 통해 인간의 신체가 만들어진 과정을 설명하고, 현대 사회가 인간의 신체에 어떤 문제를 야기했으며, 이러한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논의한다.
유인원의 진화과정에서 현대 인류의 가지가 갈라진 두가지의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하나는 두발로 일어서서 다니는 직립보행이며, 두번째는 신체의 다른 내장기관에 비해 두뇌가 지나치게 커진 것이다. 기후 환경의 변화가 이러한 진화를 촉발시켰다. 지구의 기온이 떨어지면서 아프리카의 숲이 줄어들자, 일부 유인원들이 나무에서 내려와 숲을 벗어나 초원 지대에서 활동하게 되면서 직립보행이 발달하였다. 수렵 채취를 하여 다양한 먹거리 자원을 확보하고, 불을 이용해 음식을 소화하기 쉽게 익혀먹게 되면서, 인류의 내장 기관은 줄어든 대신, 집단적 활동을 위해 요구되는 두뇌 활동이 발달하게 되었다.
농업과 뒤이은 산업혁명은 인류의 생활환경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농업으로 생산량이 증가하면서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였다. 그러나 농업 사회에서는, 음식의 다양성이 줄어들고, 홍수나 가뭄과 같은 자연재해에 취약해졌으며, 밀집 거주로 인해 질병이 빈발하고, 장시간의 고된 노동 등으로, 삶의 질은 이전 수렵채취 시대보다 열악해졌다. 19세기 산업화로 인구 증가는 지속되었지만, 도시의 삶은 매우 비위생적이고 열악했다. 20세기 중반 이후에야 비로서 선진 산업국에서 보통 사람들의 삶의 질이 수렵채취 시대 사람의 수준을 넘어서게 되었다. 이는 사람들의 키의 변화를 통해 확인된다.
인간의 몸은 오랜 기간 동안 수렵채취 단계를 거치면서 그러한 삶의 방식에 맞추어 만들어져 있다. 이러한 인간의 몸은 현대 선진 산업사회의 삶의 방식과 맞지 않는 문제를 발생시키기 때문에, 현대인은 과거에는 보기 어렵던 다양한 새로운 질병으로 고생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병을 "부정합 질병" mismatch disease 라고 통칭한다. 당뇨병, 순환기 질환, 암, 허리 통증, 골다공증, 평발, 근시, 치통, 등등. 인간의 내장 기관은 나이가 들면 고장날 가능성이 높아지지만, 수렵채취인들에게는 볼 수 없었던 현대인의 새로운 질환은 단순히 노화 때문은 아니다.
수렵채취 시대의 사람과 비교할 때 현대인이 새로이 고생하는 질병의 원인은 크게 세가지이다. 첫째는, 너무 많이 사용하여 문제가 발생한 경우 too much, 둘째는, 사용하지 않아서 문제가 발생한 경우 disuse, 셋째는, 예전에는 없던 새로운 삶의 방식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 경우 novelty 이다. 각각에 대해 간단히 요약하자면, 첫째로 너무 많이 사용하는 대표적인 예는 과도한 영양 섭취이다. 수렵채취 시대에 만들어진 우리의 몸은 당분과 지방에 대한 갈망이 크다. 현대 선진 사회의 사람들은 당분과 지방을 제한없이 쉽게 획득할 수 있으므로, 그결과 미국인의 절반 이상이 비만 상태이다. 이는 인간의 대사작용에 무리를 초래하여, 당뇨병, 고지혈증, 고혈압을 유발한다. 둘째로, 사용하지 않아서 문제가 되는 대표적인 예는 사람들의 빈약한 운동양이다. 땀을 흘릴 기회가 적고, 하루종일 앉아서 생활하고, 거의 걷거나 뛰지 않는 현대인의 생활 방식은, 먹고 살기위해 항시 걷고 뛰어야 했던 수렵채취 시대 사람들의 몸에 문제를 발생시킨다. 우리 몸이 섭취하는 에너지가 기초대사와 운동을 통해 소모하는 에너지보다 항시 많기 때문에 다양한 대사증후군을 유발하며, 근육과 골밀도가 적어 고통을 겪는다. 우리의 몸은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하기 때문에 적정한 운동을 하지 않는다면 몸이 망가질 수밖에 없다. 과거보다 적게 사용하는 또다른 예는 현대인들이 애를 적게 낳는 것이다. 그 결과 여성들의 일생동안 월경횟수가 크게 증가하여 유방암의 위험이 높아졌다. 세번째 새로운 삶의 방식의 예는 다양한 문명의 이기가 제공하는 지나치게 편안한 생활이다. 실내의 조명에서 문자를 읽는 생활은 근시를 초래했으며, 부드럽게 가공된 음식을 탐닉하는 식생활은 턱과 치아구조를 변화시켜 사랑니 통증을 초래했고, 당분이 많은 음식은 충치를 유발했으며, 의자 생활은 허리 통증을 가져왔으며, 푹신한 신발은 평발의 위험을 높였다.
섬유질이 많고 당분과 지방이 적은 음식을 먹으며, 운동을 많이하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것은 이제 모든 사람들이 아는 상식이다. 문제는 현대 산업사회의 생활환경은 이러한 방식의 생활을 어렵게 한다는 점이다. 현대인의 생활방식이 가져온 대사증후군 등에 대해, 현대 의학은 대체로 증상을 완화시키는 데 치료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을 뿐, 원인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대응하지 않는다. 이러한 질병은 수렵채취시절에 만들어진 인간의 유전자와 현대의 생활환경의 상호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인간의 유전자를 바꾸는 것은 가능하지 않으므로, 생활환경을 바꾸는 길밖에는 없다. 과학 연구를 통해 치료 기술을 높이거나 교육을 통해 생활방식을 바꾸는 것의 효과는 제한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해결책은 어떻게 생활환경과 생활방식을 바꾸도록 할 것인가로 모아진다. 저자는 정부의 개입에 의해 간접적으로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바꾸도록 유도하는 '너지' nudge 방식을 광범위하게 도입할 것을 제안한다. 성인들이 어린이에게 건전한 삶의 방식을 유도하듯이, 성인에 대해서도 그러한 집단적 노력이 필요하며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세금이나 규제를 통해서 생활환경을 바꾸면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바뀌고 부정합 질병의 위험이 줄어들 것이다. 선진 사회의 인구 고령화가 되면서 부정합 질병의 빈도가 높아지고 의료비가 크게 증가하기 때문에, 이렇게 하여 질병의 원인에 대응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다.
이 책은 저자의 연구에 기반을 두고 어떻게 건강하게 살 것인지에 대해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저자의 주 연구분야인 인류의 진화와 관련된 이야기와 농업사회 이후 인간의 부정합 질병에 대한 이야기로 크게 나누어진다. 두가지 이야기의 내용이나 서술 방식이 매우 달라서 두권의 책을 읽는 느낌이다. 후반을 별도의 책으로 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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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rt Cialdini. 2007(1984). Influence: The psychology of Persuasion. Harper Collins. 280 pages.
저자는 심리학자이며, 이 책은 심리학 이론과 실험 사례들을 다양하게 인용하면서, 사람들이 어떻게 설득당하는지, 부당하게 설득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하여 설명한다. 사람들이 설득당하는 심리 기제로 다음 여섯가지를 제시한다. 호혜적 주고받음 reciprocation, 약속한 것에 대해 일관성을 유지하기 commitment and consistency, 다수의 선택을 추종하기 social proof, 좋아하는 사람을 따르기 liking, 권위에 따르기 authority, 부족한 것을 선호하기 scarcity, 등이다.
사람들은 스스로 복잡한 정보를 처리하면서 사안에 대해 이성적으로 꼼꼼히 따져보는 것을 피한다. 복잡한 정보를 포함한 것이 내는 단순한 신호에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방식으로, 머리를 덜 쓰면서 산다. 사람들이 설득 당하는 심리 기제는 바로 이러한 단순 신호에 자동 반응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대체로 이렇게 행동하면 사안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별다른 의심없이 단순 신호에 자동 반응하며 살아간다. 사람들의 심리적 자동 반응을 부당하게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설득의 심리 기제를 부당하게 상대에게 구사하는 경우를 경계해야 한다. 다음에서 여섯개의 심리적 기제를 간단히 설명한다.
첫번째, 호혜적 주고받음 reciprocation은, 인간은 상대로부터 무엇을 받으면 반드시 상응하는 것을 주려고 하는 강한 의무를 지게 된다. 상대로 부터 무엇을 얻어내기 위해, 먼저 상대에게 무엇을 주는 것은 효과적이다. 상대에게 선물로 인식될 것은 물론, 상대에게 양보로 인식될 것을 미리 제시하면, 이에 상응하여 상대의 마음을 내쪽으로 움직일 수 있다. 세일즈맨이 이 원리를 부당하게 이용하여 물건을 팔려 한다면, 상대가 나에게 미리 준 것이 선물이 아니라 물건을 팔기 위한 미끼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상대에게 의무감을 갖지 않도록 생각을 의식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두번째, 약속한 것에 대해 일관성을 유지하기 commitment and consistency는, 사람들은 일단 약속을 하면 이후 그것과 일관된 방향으로 움직이는 성향이다. 처음부터 큰 약속을 얻어내려 하기보다, 처음에는 작은 것에 대한 약속에서부터 시작해 점차 규모를 높여 나가면, 큰 것을 얻어낼 수 있다.
세번째, 다수의 선택을 추종하기 social proof는, 사람들은 불확실할 때 주위에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따라한다. 자신과 유사한 다른 많은 사람들이 선택한 것을 사람들은 신뢰한다. 처음 몇 사람들이 선택을 한 것을 뒤에 온 사람들이 자동적으로 따라하면서 눈덩이 효과 snowballing effect를 만들어 낸다.
네번째, 좋아하는 사람을 따르기 liking는, 사람들은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성향이 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두가지 큰 요인으로, 하나는 외모이며, 두번째는 자신과 유사한 특성이다. 외모의 영향력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광범위하며 크다. 세일즈맨은 고객이 자신과 유사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고객이 자신에게 호감을 갖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세일즈맨의 술책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본인이 관심을 갖는 물건은 자신이 세일즈맨을 좋아하는지 여부와 무관하다는 점을 자각하고, 구입하려고 하는 물건의 특성에 집중하여 냉정히 판단해야 한다.
다섯번째, 권위에 따르기 authority는, 사람들은 권위있는 사람의 의견을 맹목적으로 추종한다. 심지어 권위있는 사람의 전문 분야가 아닌 분야에까지 확장하여 그의 의견을 추종한다. 권위의 근거가 되는 전문분야가 아닌 분야와 관련하여서는, 권위있는 사람 역시 보통 사람이라는 점을 인식하여야 한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으로 거짓 권위에 합리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여섯번째, 부족한 것을 선호하기 scarcity는, 사람들은 물량이 부족하거나 가용 시간의 제한이 있는 물건을 그렇지 않은 것보다 더 높게 평가하며 더 선호한다. 이는 손실을 보는 것을 이득을 얻는 것보다 훨씬 더 꺼리며, 선택이 제한되는 것을 기피하는 성향 때문이다. 세일즈맨들은 물량의 제한이나 가용 시간의 제한을 거짓으로 설정하여, 고객이 열등한 제품을 꼼꼼히 살펴보지 않고 서둘러 구매하도록 압박한다.
이 책은 사람들이 어떻게 마음을 바꾸게 되는지, 어떻게 설득에 넘어가는지를 심리학 이론과 실험 연구 사례를 다양하게 인용하면서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저자는 이 연구를 위해서 다양한 세일즈 회사에 지원하여 참여관찰자로 3년이나 일했다고 한다. 책이 나온지 4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잘 팔리는 데에는, 저자가 제시한 설득의 심리 기제가 현실적이고 타당하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이책의 최근 판에서 하나를 더 덧붙인다. 일곱번째 심리기제로 '상대와 동일한 집단에 속하면 따른다 unity'를 추가한다. 본인과 상대가 같은 집단에 속하며, 한 배를 탔다는 점을 인식시키면 상대를 설득할 수 있다. 이는 인간의 부족주의 tribalism 성향을 지적한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 구성원을 선호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저자의 설명은 대체로 현실적으로 타당하지만, 설득력이 떨어지는 부분도 있다. 저자는 설득의 심리 기제에 자동 반응하지 않기 위해, 생각을 의도적으로 전환하는, 즉 이성적으로 생각하도록 노력하면, 자동반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이 그렇게 가능할지 의문이다. 왜냐하면 자동반응의 심리기제는 오랜 진화의 과정을 통해 형성된 것이며, 대부분의 경우에 자동반응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타당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주장하듯이 일순간에 사고하는 방식을 전환하여 자동반응을 멈추고 이성적으로 따져보기는 힘들다.
저자는 상대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거래에 대해서는 상대를 설득하는 데 별다른 기술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이 책에서는 제외하겠다고 책의 서문에서 말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이익이 되는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 남의 설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그의 지적은 일견 당연한 듯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에게 이익이 됨에도 실행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기름진 음식을 탐닉한다거나 운동을 하지 않는다거나 술 담배를 하는 등은 자신의 건강에 해가 됨을 잘 알고 있지만 건강한 생활을 실천하지 못한다. 상대를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바람직한 행위를 하도록 유도하는 데에는 심리적 기제를 활용하거나 정확한 지식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사실 아무리 심리적 기제를 이용한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과 반대되게 행동하도록 설득하는 것이 얼마나 가능할지 의문이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기 때문에, 심리적 조작을 통해 상대가 자신의 이익에 반하여 물건을 사도록 설득하는 것은 일시적 피상적으로만 가능할 듯하다. 예컨대 보험을 판매한다고 할 때, 그것이 고객의 욕구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심리적 조작을 하여 구매하도록 설득한다고 하여도, 그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다. 그런 관계에는 신뢰가 쌓일 수 없고, 그런 회사는 오래 버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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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in Dunbar. 1996. Grooming, Gossip, and the Evolution of Language. Harvard Univ. Press. 207 pages.
저자는 진화심리학자이며, 이 책은 인간의 언어가 발달한 과정을 본인의 연구 결과를 중심으로 설명한다. 저자는 인간의 언어가 집단내 사람들 사이에 유대를 맺고 관계를 관리할 필요성때문에 생겨났다고 본다.
침팬지를 포함한 유인원은 많은 시간을 서로 털을 골라주는데 (grooming) 소비한다. 이러한 행위는 위생적 목적도 있지만 서로간 신뢰 관계를 구축하고 유지하기 위한 목적이 주이다. 유인원 집단의 구성원들 사이에 사회 관계는 복잡한데, 서로 유대를 맺는 것은 생존에 필수적이다. 집단으로 사는 것이 단독으로 사는 것보다 생존에 득이 되지만, 대신 집단내 구성원들 간 관계를 관리하는 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해야 한다.
영장류의 두뇌 크기와 집단의 규모 사이에는 비례 관계가 성립한다. 이러한 비례관계를 인간에 적용할 때, 인간의 뇌의 규모에 대응하는 집단의 규모는 150명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 수치는 저자의 이름을 따서 흔히 '던바의 수'라고 지칭한다. 실제 인간 사회를 둘러보면, 구성원들 사이에 직접적 대면 관계와 정보를 공유하는 집단의 규모는 150명을 넘지 않는다. 150명을 넘으면, 간접적 익명의 관계가 급속히 불어나며, 위계구조와 규칙에 따른 형식적 관계로 바뀌게 된다. 자연부락, 종교 집단, 군의 병사 집단 등의 예에서 150명이 최대 상한임을 확인한다.
인간의 두뇌가 그렇게 큰 이유는 '남들의 생각을 읽는 데' theory of mind 엄청난 정보처리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최대 5중까지 중첩된 reflexive 정도까지 남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다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1단계), 다른 사람이 내가 어떻게 생각한다고 생각하는지 (2단계), 다른 사람이 내가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한다고 생각하는지 (3단계), 등으로 사고의 복잡성이 높아진다. 이렇게 남의 생각을 읽는 것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관리하고 서로의 행동을 조율하는데 필수적인 능력이다. 침팬지는 2단계를 넘어서지 못한다. 집단의 규모가 커질 수록 사람들 사이에 관계를 조율해야 할 필요는 커지기 때문에, 남들의 생각을 읽는 능력이 고도로 발달하는 것은 집단의 유지를 위해 필수적이다.
침팬지 집단의 규모는 50명이 넘지 않으며, 이들은 깨어있는 시간의 약 20%를 그루밍에 할애한다. 집단의 규모가 커지면 유대를 맺고 관계를 관리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유인원들로부터 추정할 때, 인간은 깨어있는 시간의 45%를 관계를 관리하는데 소비해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시간을 관계를 관리하는 데 소비한다면, 생존에 필요한 식량을 확보할 시간이 부족해지게 된다(time budget limitation). 인간은 이문제를 언어를 통해서 해결했다.
연구결과 사람들은 자유롭게 대화할 때, 전체의 3분의 2의 시간과 내용을 사회적 관리에 할애한다. '누가 누구와 무엇을 어떻게 했는가' 하는 것이 사람들의 대화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렇게 남에 대해 뒷담화를 하는 것(gossip)은 직접 대면하여 관계를 관리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대화를 하는 그룹은 4명을 넘지 않는데, 이는 한명이 말하고 다른 세명이 듣는 구조이다. 한번의 말을 통해 세명과 관계를 맺으므로, 말하는 사람이 듣는 사람 개개인과 직접적으로 대면하는 것과 비교할 때, 관계를 관리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을 3분의 1로 절약할 수 있다. 물론 말을 통해 관계를 관리하는 것은 직접 행동으로 관계를 관리하는 것보다는 깊이가 얕기는 하다.
사람들은 이렇게 상호간 담화를 통해 유대를 맺으며 일탈자 freerider를 억제함으로서 집단을 유지한다. 이렇게 언어를 이용하여 관계를 관리하는 시간을 절약한 결과, 인간은 다른 유인원과 비슷하게 깨어있는 시간의 20~25% 만을 관계를 관리하는 데 쓰면서 더 큰 집단 속에서 살 수 있다. 수렵 채취인의 생활을 보면, 저녁에 불 주변에 모여 앉아서 하는 일의 절반은 바로 말을 통해 관계를 관리는 일이다. 인간의 진화 과정을 추적해 보면 불이 사용된 후, 인간의 두뇌 크기가 이전보다 크게 커졌는데, 이는 집단의 규모가 커지고 언어를 통한 효율적인 관계 구축과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되었음을 시사한다.
인간의 언어가 사회적 목적을 위해 발달했다는 증거는, 방언의 발달에서도 확인된다. 사람들의 집단은 시간적 공간적으로 서로 멀어지면 바로 방언이 나타난다. 방언은 사람들의 집단 소속을 확인시켜주는 효과적인 징표이다. 언어 습관은 어린 시절에 고정되고 이후에는 습득하기 어렵기 때문에, 상대가 우리 집단 소속인지를 확인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영국의 노동계층의 남성은 노동자 집단의 방언을 사용하나, 여성은 중류층의 말씨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여성은 자신보다 상위계층의 남자와 혼인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노동계층의 방언을 사용하지 않는 반면, 남성은 자신이 속한 노동자 집단 속에서 신뢰를 구축하여 생계를 확보해야 함으로 노동계층의 방언을 구사할 필요성이 여성보다 더 크다.
여성이 남성보다 언어를 관계의 관리를 위하여 더 많이 사용할 것 같지만, 여성과 남성의 대화 내용을 분석해 본 결과 여성이나 남성이나 대화 내용의 3분의 2는 누가 누구와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뒷담화가 차지한다. 다만 이는 동성 사이에서 대화를 할 때 그런 것이고, 이성이 섞인 집단에서 대화를 할 때는 확연히 달라진다. 이성이 섞인 집단에서 남성은 여성보다 지식과 관련된 내용을 더 많이 말한다. 남성은 여성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과시할 목적에서 지식과 관련된 내용을 더 많이 말하는 것이다. 동성 집단 내에서 말할 때에도 남성은 여성보다 자신에 대해 떠벌이는 시간이 더 많은 반면, 여성은 남에 대해 말하는 시간이 더 많다. 이 역시 남성은 자신을 광고하고 자신의 지위를 확보하는 데 더 주력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상대에게 유용한 정보를 전달하는 데 언어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자신의 지위를 확보하고 관계를 관리하는 데 언어를 더 많이 쓴다. 남성과 여성간에는 '성적인 선택' sexual selection 의 기제가 작용하기 때문에, 남성과 여성들 간에는 말의 내용이나 기능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이는 동성들의 모임보다는 이성이 섞인 모임에서 더 두드러진다.
이 책은 저자의 연구 결과를 배경으로 유인원과 인간을 비교하면서 흥미롭게 서술한다. 인간 사회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하면서도 가독성이 높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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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향. 1997. 영국사: 보수와 개혁의 드라마. 까치글방. 496쪽.
저자는 영국사를 전공한 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영국의 역사서이다. 주요 주제에 따른 서술을 먼저 하고, 이어서 시대에 따른 서술을 한다. 주요 주제로는 영국인의 정체성, 통치제도, 영제국, 지성사, 지주와 중간계급과 자본주의, 노동계급, 영국의 현안과제(북아일랜드, 유럽통합, 경제적 쇠퇴)를 다루고 있다.
영국은 섬나라이기에 유럽 대륙의 정치 군사적 갈등으로부터 독립되어 있다. 1060년대 노르만의 침공 이래 20세기까지 일천년 동안 외세로부터 침입을 전혀 받지 않았다. 덕분에 정치가 안정되었으며, 유럽인과 구분되는 정체성을 형성하게 되었다.
영국은 중세시대부터 왕권에 대한 지주 귀족들의 견제가 컸으며, 이는 1200년대의 마그나카르타에서 명문화되었다.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는 자유주의 전통이 1600년대에 이미 정착되었으며, 1688년의 명예혁명에서 의회의 승인없는 세금의 부과를 금하고, 국가의 자의적 권력 행사로 개인의 생명과 자유와 재산이 침해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명확히했다. 대륙과 달리 영국에서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넘어 왕과 국가가 개인과 사회 위에 군림하는 절대 왕정의 시대가 존재하지 않는다. 왕은 의회의 승인을 얻어 세금을 징수하였는데, 이는 대륙 국가의 왕들이 자의적으로 세금을 거두는 것보다 효율적으로 세수를 확보할 수 있으므로, 프랑스 및 스페인 등과의 전쟁에서 영국이 승리를 거두는 결정적 원인이다.
영국의 지주계급은 상공업 자본으로 전화함으로서 경제 변화의 흐름을 잘 탔다. 17세기 인클로저 운동을 통해 소규모 농민을 몰아내고 농업의 대형화, 효율화를 이끌었으며, 이들은 이후 상업자본가, 금융자본가로 성장하였다. 이는 영국의 장자상속제에 힘입었다. 장자는 토지를 통째로 상속받아 지주로 남지만, 차남 이하는 상업과 금융 부분에 진출하거나 성직자로 성장하였다. 따라서 지주계급과 상공업 자본가 계급은 밀접하게 연결되었다.
영국은 세습적 신분 못지 않게, 근대 초기부터 부의 축적에 의한 지위 상승이 가능했다. 상업, 금융, 전문직, 등을 통해 부를 획득한 부르주아들은 토지 귀족 못지 않은 존경을 얻을 수 있었다. 상공인은 대지주 귀족과 함께 의회에 참여하였다. 성공한 부르주아들이 토지를 획득하여 지주계급으로 신분을 바꾸려는 욕구는 강하지 않았기에 산업 자본은 재투자되었다. 경제발전을 향한 자본의 선순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영국은 대륙과 달리 어느 정도 신분 상승의 길이 열려있는 개방된 사회였다. 이것이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먼저 시작된 이유 중 하나이다. 영국은 개인의 자유와 성취 동기가 다른 어느 유럽 국가들보다 강하였기 때문이다. 프랑스인은 영국을 상인의 나라라고 경멸했으나, 상공업의 부에 대한 긍정적 태도가 영국의 발전을 이끈 동력이다.
1750년대에 영국과 프랑스의 7년 전쟁에서 영국이 승리함으로서 독보적 강국으로 부상하였다. 이후 미국 식민지를 잃기는 했으나, 인도, 캐나다, 호주, 등 전세계에 식민지를 건설하여 19세기 말에는 전세계의 5분의 1을 식민지로 거느리는 제국이 되었다. 18세기 후반 가장 먼저 산업혁명에 착수하여 19세기 중반 영국은 세계의 어느나라보다 생활수준이 높았으며, 세계 상공업의 생산과 수출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19세기 후반이 되면 영국의 경쟁력은 후발 산업국인 미국과 독일에 의해 추월당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선발 산업국의 이점은 사라지고, 기득이권이 버티면서 새로운 파괴적 혁신을 추진할 능력을 상실하여, 후발 산업국보다 산업의 효율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20세기에 들어 영국은 경쟁국가에 뒤지고, 두차례의 전쟁을 겪으면서 제국을 유지할 능력을 상실하여, 인도의 독립을 시작으로 1960년대에 제국의 대부분을 상실하였다.
영국의 노동자들은 18세기 후반 유럽을 휩쓴 사회주의 물결 속에서 급진 노선보다는 자본가와의 타협을 선택한다. 영국의 노동자들이 유럽보다 상대적으로 부유하였으며, 19세기 말 이래 노동자의 요구를 정치 과정에 흡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 노동조합의 후원을 등에 없은 노동당이 집권하였으며, 노동자의 요구의 상당 부분이 복지국가의 확대로 반영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 경제위기에 더하여 노동자들의 파업이 격렬했을 때, 보수당의 대처 수상이 집권하여 시장경쟁을 중시하는 신보수주의 정책을 밀어붙였다. 그러나 영국은 금융부문을 제하고는, 낮은 생산성 때문에 산업 경쟁력이 낮은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이 책은 저자의 연구와 강의 경력을 잘 배합하여 쓴 책이다. 저자의 전공 분야인 계급과 노동 분야를 깊이있게 잘 썼다. 영국인은 세계의 가장 선진적인 모범국민으로서의 자부심을 한 때 가졌지만, 지금은 선진 산업국들 중 상대적으로 뒤쳐진 나라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대단한 폭력적 갈등이나 혁명 없이 헌정이 계속 이어진다는 점이 특이하다. 영국은 사회 청산의 경험을 갖지 않은 유일한 나라이다. 이것을 긍정적으로 보아야 할지, 부정적으로 보아야 할지 불확실하지만, 한국과 비교할 때 한 수 위의 나라인 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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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ovanni Federico. 2005. Feeding the World: An Economic History of Agriculture, 1800~2000. Princeton Univ. Press. 232 pages.
저자는 경제사학자이며, 이 책은 서구를 포함한 전세계의 농업의 발전을 경제학적 관점에서 많은 데이터를 인용하면서 서술한다. 농업은 지역과 환경에 따라 매우 다양하고, 정치적 사회적 요인과 얽혀 있어서 일반화가 힘들며, 신뢰할만한 데이터가 많지 않다.
1800년대 이래 근래까지 농업은 꾸준히 발전해 왔다. 농업 생산량은 비약적으로 늘어, 그동안 크게 증가한 인구를 먹여살리는 데서 넘어, 잉여 산물을 많이 생산하는 단계에 도달했다. 1900년대 초반까지는 생산요소들, 즉 토지,노동,자본을 이전보다 더 많이 투입하여 더 많은 양을 생산하였으며, 1900년대 이후에는 생산성의 증가가 생산량의 증가를 이끌었다. 1900년대 이후 화학 비료와 농약, 기계화, 종자 개량, 등으로 생산성이 크게 증가하였다.
농업은 제조업과 달리 규모의 경제 효과가 크지 않다. 대규모 농장은 감독의 어려움과 인센티브의 한계 때문에 효율성이 그리 높지 않다. 1800년대까지는 토지에 대해 전통적 소유권이 지배했다. 자신이 소유한 토지를 경작하는 가족농 family farm, 지주와 생산물을 나누는 소작농 share-cropper, 미리 정한 임대료를 지불하는 임차농 tennant, 마을 공동 소유의 농지 common, 빚에 구속되어 자신이나 남의 토지에 붙박이로 살아가는 농민 debt-peonage, 많은 일꾼을 고용하여 자본주의적으로 경영하는 농장 management farm, 강제적 혹은 자발적 집단 농장 collective farm, 등 다양한 형태가 공존한다. 세계의 여러 나라들은 20세기 들어 토지 소유권을 경작자에게 주는 토지개혁을 실시하였으나, 이러한 개혁 정책이 불평등을 줄이고 농업 생산성을 높이는데 기여한 효과는 일관되지 않다. 한국과 타이완의 토지 개혁은 대표적인 성공 사례이다.
개별 농가의 토지 규모는 개발도상국의 경우 꾸준히 감소한 반면, 선진 산업국에서는 1950년대까지 큰 변화가 없다가, 이후에는 빠르게 증가하였다. 전통사회에서도 시장경제가 농업에 깊숙이 침투해 있었다. 농민들은 자신의 이익에 따라 농산물을 시장에 내다 팔고 상업 작물을 재배했으며, 일꾼을 일시 혹은 장기적으로 고용하였다. 1930년대 대공황 이전까지 정부는 농업에 개입하지 않고 자유방임적인 태도를 취했으나, 대공황을 계기로 정부가 나서서 생산량을 조절하고, 보조금을 지급하고, 가격을 통제하는, 등으로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선진국 정부의 농업 정책은 소비자의 희생을 요구하면서 농민을 보호하는 정책인 반면, 개발도상국에서는 농민의 희생을 요구하면서 제조업과 도시 노동자를 지원하는 정책을 구사했다. 선진국에서 농민들은 도시 주민과 유사한 수준의 소득에 도달했으며, 투표권을 매개로 강력한 로비력을 행사하여 자원 배분의 비효율과 생산성을 외곡하고 있다.
이 책은 농업경제사 분야의 전문학술서이다. 데이타에 대한 갑론을박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며, 막상 이론적인 서술은 많지 않다. 농업은 인류의 역사와 경제발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지만, 통찰력을 주는 좋은 책을 찾기는 어렵다. 이책은 그런 기대를 가지고 구입했으나, 전혀 아니올시다 이다. 여하간 끝까지 대충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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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ic Hoffer. 2002(1951). The True Believer: Thoughts on the Nature of Mass Movement. Harper Perennial. 168pages.
저자는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않고 막노동자로 일생을 지내면서 독학으로 책을 읽고 글을 써서 명성을 얻은 특이한 사람이다. 이 책은 그의 첫번째 책으로, 기존의 질서를 전복시키는 혁명적인 대중운동에 대한 그의 생각을 서술한다. 왜 혁명적인 대중운동이 발생하고, 어떤 사람이 참가하고,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대중운동이 시작되고 종결되는지 서술한다. 경험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한 객관적 설명이 아니라 저자의 주관적 생각을 제시한다.
기존의 질서를 전복시키는 급진적인 사회운동은 궁핍과 좌절과 억압이 극에 달하는 저점에서 발생하지는 않는다. 프랑스 혁명,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 등이 발생하기 이전 한동안 사람들의 삶의 수준이 향상되고 있었다. 사람들의 기대수준이 올라가는데, 현실이 그에 미치지 못할 때 기존 질서를 뒤없는 사회혁명이 발생한다. 전제주의 정권의 억압이 굳건할 때에는 체제를 전복할 사회운동이 일어나지 않는다. 전제주의 정권의 장악력이 떨어지는 시점, 즉 국민을 조금 풀어주는 시점에 급진적인 사회운동이 발생한다. 사람들이 먹고 살게 없다고 하여 혁명을 하지는 않는다. 극빈하면 일상의 생계를 확보하는 데 심리적 육체적 에너지가 모두 소진되기 때문에 혁명에 참여할 여유가 없다. 소련의 스탈린 시절, 중국의 모택동 시절, 정책 실패로 수백만이 굶어 죽었지만, 정권의 장악력이 확고하였기 때문에 체제에 대한 반발이 유의미하게 형성되지 않았다.
급진적인 사회운동은 혁명의 이념과 목표에 자신을 완전히 헌신하는 사람에 의해 추진된다. 이들은 자신의 삶에 실망하고, 좌절하고, 의미를 찾지 못하여, 자신의 인생을 걸 대안을 찾는 사람들이다. 혁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또 다른 부류는 현재의 질서에서 잘 맞지 않는 주변적인 사람이다. 자신의 삶에 실망하거나 현재의 질서에서 주변적인 사람은 현재의 질서를 뒤업고,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데 엄청난 열성을 보인다. 이들은 혁명을 방해할 어떠한 장애물도 부숴버리는 에너지를 발휘하는 광신도 fanetics 들이다. 자신의 삶에서 미래를 보지 못하고, 현재의 삶에 무료해 하고 암담해 할 때, 사회를 뒤집어 업고 새 세상을 만든다는 이념과 목표에 쉽게 빠져든다. 이들은 혁명이 가져오는 혼란과 변화 그 자체에 희열을 느끼며, 막상 목표를 현실적으로 실현하는 데에는 큰 관심이 없다. 광신도들이 없다면 기존 질서를 뒤업는 작업이 수반하는 혼란과 폭력과 저항을 이겨내고 계속 나아가는 추진력이 충분히 공급되지 못하기 때문에 혁명은 실패한다.
광신도들은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위해서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혁명적 이념에 엄청난 열정을 투입하면서 자신을 희생할 수 있다. 반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현재의 질서를 바꾸려는 사람은 계산적이기 때문에 추진력이 약하며 기득권의 저항과 역경을 이겨낼 수 없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사람은 기존의 질서를 완전히 전복시키고 새로 시작하려 하기보다 기존의 질서와 적절한 선에서 타협하는 선택을 한다. 자신의 일이 어느 정도 의미가 있는 사람들, 예컨대 지식인, 예술인이나, 자신의 가진 것 있는 사람들은, 외부의 이념에 자신을 희생하는 헌신을 하지 않는다. 극단적으로 가난한 사람들 또한 혁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
혁명은 기존 체제에 대해 사람들의 불만이 어느 정도 무르익어야 발화가 된다. 이러한 환경에서 지식인들은 새로운 이념과 대안을 제시하여, 사람들에게 희망을 제공한다. 기존의 질서에 대한 불만만으로는 부족하며 대안에 대한 희망이 있어야만 혁명의 동력이 작동한다. 혁명의 시작은 지식인의 말에서부터 시작된다. 기독교의 시작은 예수의 말이며, 볼셰비키 혁명의 시작은 맑스와 레닌의 말이며, 종교개혁의 시작은 루터의 말이다. 사람들은 혁명적 이념이 제시하는 환상, 현실을 대치하는 대안에 대한 희망에 끌려서 혁명에 참여한다. 혁명에 참여하는 사람은 개인이 아니라 사회전체를 바꾼다는 희망, 자신을 일개 개인이 아니라 사회전체와 동일시하는 환상에 빠져서 자신을 희생한다. 이러한 희망과 환상에 모두 설득당하고 동조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혁명은 필연적으로 폭력을 수반한다. 광신자들은 사회전체의 이름으로 혁명의 이념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을 적으로 몰아 증오하며, 폭력적 수단을 동원하여 반대자를 억압하고 처단한다.
폭력이 성공적으로 추진되려면, 혁명의 진행 단계에 따라 다양한 역할의 사람들이 등장하여 제 몫을 하여야 한다. 혁명의 이념과 대안과 희망을 제시하는 지식인, 자신을 희생하면서 기존의 질서를 부수고 혁명의 행동강령을 실천하는 광신도, 혁명 사업을 실행하고 조직을 관리하는 현실적인 실행인, 광신도와 실행인을 아우르고 이끌어가는 지도자, 혁명이 성공했을 때 뒤정리를 담당하며 혁명의 이념과 목표를 제도로 구체화시키는 관료, 등이 모두 갖추어져야 한다. 실행인의 뒷받침을 받지 않고 광신도만으로는 혁명이 성공할 수 없다. 지도자가 없는 광신도들은 오합지졸에 불과하다. 기존의 질서를 전복했을 때 현실적으로 처리해야 할 문제들이 많은데, 이를 새로운 질서, 새로운 제도로 정착시키는 일을 할 인재들이 필요하다. 이들이 없다면 혁명은 혼란으로 끝나게 된다. 혁명의 초기에는 광신도들이 중추적 역할을 하지만, 이들은 혁명 후반 제도화의 단계에는 오히려 정착을 반대하는 걸림돌이 된다. 이들은 안정을 원치 않고, 비현실적인 새로운 세상을 구축할 것을 계속 부르짖으며, 질서를 만들기보다 질서를 파괴하는 데 더 관심을 두기 때문이다.
혁명은 오래 끌면 실패한다.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변화를 기피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변화보다 안정을 선호하기 때문에, 아무리 기존 질서에 문제가 많다고 하여도, 사람들은 웬만하면 참고 그대로 지내려 한다. 혁명적 변화란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변화라는 충격에 짧게 노출되어야만 견딜 수 있다. 기존의 혁명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근본적으로 변한 부분도 있지만, 기존 질서의 대부분은 혁명 이후에도 계속 이어진다. 단기간의 혁명을 통해 기존의 질서에 균열이 가고 변화의 방향이 설정되면, 시간을 두고 충격의 여파가 퍼지면서 서서히 변화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기독교의 탄생에서 로마의 국교가 되기까지 300년의 세월이 걸렸으며, 16세기의 종교개혁이나, 18세기 후반의 프랑스 혁명과 미국의 독립혁명, 등도 혁명의 충격이 가시고 오랜 시간에 걸쳐 변화가 전개되었다.
저자는 특이한 이력답게, 글쓰기 방식이나 논지의 전개에서도 파격적이다. 다르다. 객관적 증거를 제시하거나, 기존의 논의 위에 자신의 주장을 덧붙이는 방식이 아니라, 자신의 오랜 경험과 반추의 결과물을 일방적으로 토해낸다. 주관적이고 선택적으로 추출하는 과장이 엿보이지만, 독창적인 신선함이 엿보인다. 다만 이 책에서는 혁명의 중요한 요소를 누락시키고 있다. 저자는 주로 개인의 심리적인 측면에서 혁명 참가자에 촛점을 맞추는데, 혁명은 사회구조적인 현상이다. 혁명의 원인은 혁명 참가자의 심리에 있기보다, 사회구조적 모순에 있다. 저자는 이부분을 처음에 약간 언급한다. 여하간 재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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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ol Tavris and Elliot Anderson. 2020(2007). Mistakes were made (but not by me): Why we justify foolish beliefs, bad decisions, and hurtful acts. Mariner books. 377 pages.
저자는 사회심리학자이며, 이 책은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는 이유를 사회심리학의 인지불일치 이론에 근거해 설명한다. 가족, 기억, 상담, 사법 기관, 편견, 갈등과 전쟁, 정치 등 다양한 영역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는 문제에 관하여 논의한다.
1950년대에 페스팅거라는 심리학자가 제시한 인지 불일치 cognitive inconsistency 이론은 현재까지 다양한 사회관계의 문제를 설명하는데 적용된다. 이 이론의 핵심은, 사람들이 서로 상반되는 생각과 행동을 내적으로 동시에 수용하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상반된 것 중 하나를 바꾸어 인지적 일치 상태로 만들려고 하는 성향이 있다. 이러한 성향은 진화의 산물로 보인다. 상반된 생각과 행동을 유지하는 것은 심리적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여 추진력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자신이 잘못하여 상황이 어그러진 경우,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과소평가하거나, 상대나 주위 환경에 책임을 전가함으로서 자신을 정당화 justification 한다. 상대가 자신의 잘못을 지적할 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생각을 바꾸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자신의 잘못이 자신의 정체성, 즉 자신이 중요시 여기는 것과 밀접히 연관된 경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서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상이한 의견이나 행동이, 상대의 비판과 공격으로부터 자신의 입장을 방어하기 위하여 자신을 정당화하고 추가적 조치를 취하는 과정에서 점점 더 차이가 벌어져, 마침내 되돌리기 어려울 정도로 차이가 벌어지는 상태로 발전한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는 메카니즘이다. 즉 처음에는 사소한 잘못이지만, 이것을 인정하지 않고 지내면서 자신의 입장을 옹호하다보면, 그것이 처음보다 훨씬 큰 문제로 발전하게 되어, 도저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지게 된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경우, 잃어야 할 것이 점점 커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기억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나중에 기억을 연상할 당시의 상황에 맞추어 바뀐다. 사람들은 자신의 상황이 바뀌면 과거에 벌어진 것과 정반대로 기억하기도 한다. 과학적 검증 결과, 실제 발생한 것과 기억하는 내용 간에는 큰 관련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의 상황에 맞추어 기억을 재구성하는 작업은 자신이 의식하지 않는 사이에 이루어진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만 기억하며, 불리한 부분은 아예 기억에서 지워버린다. 또한 사람들은 동일한 현상에 대해 서로 다르게 인지한다. 자신의 이익에 맞추어 동일한 현상을 다르게 인지하고 기억하기 때문에, 자신의 의견만 고집한다면 사람들 사이에 갈등은 피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신도 관여한 동일한 현상에 대해 상대방이 자신의 이익에 맞게 의도적으로 진실을 외곡하고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아동에 대한 성폭력을 적발하는 과정에 상담심리분석이 많이 활용됬다. 상담심리사들은 피해 아동에게 피해 상황을 진술받기 위해, 아동의 억압된 기억을 떠올린다는 구실로 유도 신문을 하였다. 아동들이 이러한 유도 신문에 계속 노출되게 되면 없는 사실도 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어, 무고한 사람이 많이 피해를 당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러한 상담심리 기법이 잘못된 것임을 과학적으로 입증했음에도, 여전히 적지 않은 상담심리사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유사한 상담 기법을 계속 적용하고 있다. 그들이 자신의 상담분석기법이 잘못된 것임을 인정하면, 지금까지 그들이 해왔던 행위가 모두 부정되고, 자신의 직업을 잃고, 피해자에 대한 보상 문제를 떠않게 되기 때문이다.
사법기관에서 피고를 취조할 때, 그가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라고 가정하고 취조한다. 이는 형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를 상정한다는 사법원칙 benefit of doubt 과는 정반대의 관행이다. 그들은 범행을 저지른 사람에게 범죄 행위를 자백받는 것이기 때문에 강압적 방법을 써도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강압적 방법으로 자백을 받는 경우, 그 자백은 대부분 진실과 거리가 멀다는 과학적 연구결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법기관에서는 강압적 방법을 애용한다. 형사는 일단 자신이 범인을 지목하면 그가 범인이라고 확신하기때문에, 자신의 확신과 어긋난 증거는 소홀히 하며, 심지어 정반대의 결정적 증거가 나와도 이를 부정한다. 그러한 증거에는 오류가 있다거나, 혹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폄하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정당화한다.
도날드 트럼프를 지지한 공화당원들은,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후 행한 그의 비도덕적 행위와 무능에 대해 눈을 감는다. 그의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거짓되게 그를 모함을 하고 있다거나, 설사 그가 잘못이 있다고 해도, 이는 그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에 불과하다고 과소평가한다. 혹은 민주당이 집권했을 때보다는 그래도 낫지 않느냐고 자위한다. 특히 이익이 걸려 있는 단체나 기독교 신자의 경우, 트럼프가 인간적으로 비난받을 사람이라고 해도, 그가 추진한 법안이 자신의 이익에 부합할 경우, 그의 부정적 인간성을 외면한다. 트럼프 정부에서 일하는 공직자들은, 그가 무능하고 도덕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지만,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트럼프에게 아첨하거나 그의 충복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트럼프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에, 자신이라도 자리를 지키고 일을 하여 나라의 운영을 책임져야 한다고 정당화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떤 경우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까? 자신의 잘못으로 인하여 벌어진 피해가 부정할 수 없이 명백하고, 피해자의 상처에 감정적으로 크게 공감할 경우, 드물지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이 발생한다. 이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는 그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한다는, 즉 잘못으로부터 교훈을 얻는 선순환 사이클로 진입하게 된다. 실수와 잘못을 거듭하면서, 무엇이 문제인지를 파악하여, 결국 좋은 결과를 도출하는 것은 과학의 강점이다. 사람도 자신의 잘못을 반추하고,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괴로워하고, 그러는 과정 속에서 교훈을 얻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정당화하거나, 감추고 잊어버리려 한다면, 유사한 상황에서 잘못을 반복할 위험은 제거되지 않으며, 자신의 향상을 기대할 수 없다.
자신의 잘못을 자신의 정체성과 연결시키 않으려고 할 경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수 있다. 착하고 유능한 사람도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무능하고 어리석은 부정적 정체성과 연결되기 때문에, 잘못을 저지르는 행위와 정체성을 분리해서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잘못이 심각한 경우, 피해가 큰 경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는 것은, 보상을 해야 하는 부담 뿐만 아니라, 사회로부터 무능한 사람으로 찍혀, 자신의 지위를 뺏길 위험을 각오해야 한다. 경쟁적인 사회에서, 자신의 무능을 드러내는 것은, 주위 사람들이 늑대 같이 달려들어 자신을 끌어내리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경쟁사회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위험한 행위이다.
저자들은 단단한 사회심리학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들의 주장을 다양한 상황에서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포괄하는 폭이 넓다. 살면서 주위에서 흔히 보고, 누구나 스스로 경험한 적이 있기 때문에 이해가 쉽다. 이것이 3개정판까지 나온 이유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렇다면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게 하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 그들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것으로 제시한 사례는 매우 제한적이며 설득력이 크지 않다. '결국 이것이 인간의 한계란 말인가' 하는 탄식이 나온다.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경쟁에서 패하거나 죽어서 무대에서 사라져야만 잘못된 관행이 고쳐질 수 있다. 이것이 역사적으로 개선이 더디고 힘든 이유일 것이다. 잘 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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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sim Nicholas Taleb. 2010(2007). The Black Swan: The Impact of the Highly Improbable. 2nd ed. Penguin books. 397 pages.
저자는 증권딜러를 거쳐 통계학자로 변신한 사람이며, 이 책은 미리 예상할 수 없는 매우 드물게 일어나는 위험에 관해 논의한다.
검은 백조란 매우 드물게 일어나지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는 사건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세상사는 예상할 수 있는 위험보다는 예상하지 못하며 매우 드물게 일어나는 위험에 의해 좌우된다. 근래로 올수록 이러한 경향이 과거보다 더 심하다. 사람들은 이러한 위험이 발생한 뒤에 사후적으로, 그러한 사건이 일어날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고 설명하지만 (narrative fallacy), 사전적으로 이러한 일이 발생하리라고 예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세상을 설명하고 이해하려 하는 강력한 욕구를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설명하지 못하는 것을 남겨두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사건은 아무런 사전적 이유 없이 랜덤하게 발생하거나, 원인이 있다 해도 이를 확인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이전에 일어났지만 우리가 그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그러한 사건을 원인으로 하여 검은 백조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problem of silent evidence). 검은 백조는 이전에 발생한 사건을 원인으로 하여 설명하고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한 매우 특이한 사건이다.
실재의 현상은 이론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학문적 접근은 모두 이론에 따른 가정을 바탕에 깔고 현실을 설명하려고 하는데, 이렇게 접근하면 랜덤하게 발생하는 사건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이론적 접근을 버리고 데이타에 충실하여, 현실로부터 잠정적으로 패턴을 추정하는 귀납적 방식을 택해야 한다. 검은 백조 현상은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칠면조는 주인으로부터 1000일동안 먹이를 받아먹으면, 앞으로도 계속하여 먹이를 받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1000개의 사건에 대한 가용한 정보를 바탕으로 하여 1001번째 날을 예측하는 것이다. 그러나 1001번째 날이 크리스마스라 주인은 칠면조를 잡아먹는다. 칠면조의 입장에서 볼 때 1001번째의 죽음은 검은 백조이다. 검은백조가 나타나리라고 예측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법은 없다.
통계학, 경제학 등 인간사를 연구하는 학문은 근본적으로 세상사는 정규분포를 따른다고 가정하나, 사회의 현상 중 정규분포를 따르지 않는 것이 많다. 사람들은 원인과 결과 간에 비례적 선형적 관계를 가정하나, 비선형적인 관계를 보이는 것이 많다. 물질적 속성의 것, 예컨대 키, 체중, 수명, 등은 선형적 관계이나, 비물질적인 속성의 것, 예컨대 소득, 매출, 정보, 손해, 기술, 등 많은 사회현상은 정규분포나 선형적 관계를 따르지 않는다. 지수적 법칙 power law 은 이러한 비선형적 관계의 한 예이다. 지수적으로 증가하는 함수의 경우, 초기 값에 조그만 차이로도 시간이 지나면 결과가 크게 벌어진다. 정규분포에 따른다면 평균에서 벗어나면 급속하게 가능성이 줄기 때문에 예외적인 현상의 비중이 매우 작지만, 지수적 법칙으로 증가하는 함수의 경우 평균에서 벗어난 예외적 현상의 비중이 매우 크기 때문에 전체의 평균이 이 예외적 현상에 의해 좌우되게 된다.
검은 백조는 이러한 비선형적 사건의 일종이다. 비선형적인 극단적인 사건이 전체를 좌우하는 상황을 기본으로 하고 (Extremistan), 정규분포를 따르는 상황을 예외적인 것으로 상정하는 세계관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학문적 접근은 정규분포의 상황을 기본으로 하고(Mediocristan), 비선형적 분포의 상황을 예외적인 것을 취급하는 데, 이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처사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문적 접근은 현실과 유리되어 있다. 경제예측이나 재무분야의 포트폴리오 관리 이론은 모두 사기이다. 그들의 예측을 현실과 비교해 보면 전혀 맞지 않음에도, 사람들은 이들의 전문적인 설명에 혹해서 그릇된 세계관을 가지게 되고 위험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생활을 한다.
검은 백조을 예측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는 대비할 수 있다. 예상치 못한 위험에 튼튼하게 대비하여 (robust) 미리 미리 조심하면서 살아야 한다. 자연은 이러한 예상치 못한 위험에 대해 대비하게끔 진화하였다. 일견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중복을 두는 것 (redundancy) 이 그것이다. 자연의 유기체들은 비상상황에서 하나가 망가지더라도 나머지 하나로 버텨나가게끔 설계되어 있다. 예상치 못한 드문 위험에 대비하지 못한 생물은, 드물지만 엄청난 충격을 주는 위험에 노출되어 멸종되어 버렸다. 최대의 효율을 추구한다고 여유를 두지 않고 최적화하는 것 (optimization) 은 자신을 예기치 못한 드문 위험에 취약하게 노출시키는 어리석은 행위이다. 취약함을 줄이는 방식으로(anti-fragile)으로 살아야 한다.
빚을 지는 것은 취약한(fragile) 생활방식이다. 예기치 못한 위험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행위이다. 개인이건 국가이건 최대한 자신의 소득 이내에서 살아야 한다. 빚을 동원하여 사업을 하면(leveraged), 예상치 못한 드문 위험이 닥쳤을때, 그동안 벌어놓았던 모든 이익 이상의 것을 까먹기 때문에, 망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금융계나 대기업의 보상 방식은, 이익에 대해서는 비례 이상으로 많이 보상을 하면서, 손해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로 되어 있다. 따라서 금융계는 무모한 정도로 많은 위험을 안고 사업을 하는 도덕적 해이 (moral hazard)상태에 빠져 있다. 2007년의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이러한 무모한 영업이 초래한 위험을 당사자들이 지지 않고 세금으로 손해를 메웠다. 위험을 발생시킨 당사자가 위험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 현재의 보상 구조가 지속되는 한, 과도한 위험을 안은 취약한 사업 방식은 미래에 예기치 않은 드물게 발생하는 위험에 노출되어 또다른 시스템 위기를 초래할 것이다. 위험을 발생시킨 당사자가 위험에 따른 손해를 짊어지는 보상 구조(skin in the game) 로 바꾸어야만 위기를 막을 수 있다.
저자는 금융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 답게 학술적 접근의 비현실성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는 검은 백조, 랜덤한, 비선형적인, 등 매우 매력적인 주제를 다루어서 스타가 되었다. 사람들은 모두 세상이 랜덤한 사건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는 것을 살면서 모두 경험하지만, 이를 체계적으로 언급하는 사람은 드물다. 세상사가 랜덤하게 발생한다고 하는 것은 "왜 그런일이 발생하는지 모르겠다" 는 말을 하는 것이므로, 아무도 자신이 모른다고 드러내서 말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 책의 저자도 검은 백조는 전혀 예측할 수 없다고, 전혀 설명할 수 없다고, 예측이나 설명을 하려고 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솔직히 이책은 그렇게 잘 쓴 책은 아니다. 주제와 무관한 잡다한 사설을 곳곳에서 쉼없이 냉소적으로 퍼부어 대기 때문에, 정말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정신 똑똑히 차리고 가려서 읽어야 해서 필요 없이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었다. 비슷한 이야기를 계속 장황하게 반복하는 것도 흠이다. 주제와 무관한 개인적인 에피소드와 진지하고 복잡한 사안을 수시로 섞어가며 서술하는 것 역시, 그의 스타일이라고 하지만, 주의를 분산시기 때문에 비효율적인 서술이다. 그럼에도 통계학이나 경제학에서 기존에 하던 말과는 다른 신선한 주장을 제시하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어디까지 그의 주장이 옳은지를 살펴야 하는 피곤함이 따르기는 하지만. 그의 주장은 부분적으로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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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nee Engeln. 2017. Beauty Sick: How the cultural obsession with appearance hurts girls and women. Harper. 356 pages.
저자는 심리학자이며, 이 책은 그녀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미국 여성들이 외모에 집착하는 관행의 원인과 문제점, 그리고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
미국에서 10~30대 연령에 속한 거의 대부분의 여성은 외모에 대해 강박적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간다. 특히 체중에 대한 강박은 심각한 수준으로, 다이어트로 인한 부작용이나 심지어 거식증에 시달리고 있다. 대부분의 젊은 여성들은 자신의 몸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며, 자존감이 약하고, 우울증 등으로 고생한다. 여성들이 자신의 몸에 과도하게 신경쓰고 투자하는 것은 다른 생산적 분야에 써야 할 정신적 물질적 에너지를 빼앗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는 여성이 남성과 사회활동을 하면서 상대적으로 성과를 덜 내는 원인이다.
여성이 자신의 몸에 집착하는 것은 여성을 성적인 대상으로 인식하는 문화 때문이다. 여성은 자신의 몸이 항시 관찰되고 평가되는 환경 속에서 살면서, 이러한 시각을 내면화한다. 미국의 상업적인 대중문화와 광고는 여성의 몸을 대상화(objectification)하는 극단적인 무대이다. 이러한 무대에 등장하는 여성 모델과 연예인은 통계적으로 예외적 범주에 속하며, 포토샵등으로 조작한 비현실적 몸매을 이상화시킴으로서, 일반 여성들이 자신의 몸에 불만족하게 만들어, 화장품이나 다이어트 등의 미용 헬스 용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도록 자극한다.
여성들이 자신의 외모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것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 모든 여성은 각자 자기만의 아름다움이 있다고 설득하는 것은 도움이 안된다. 왜냐하면 외모에 대한 문화적 기준을 개인의 의지로 거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광고나 티브이에 나오는 미모의 여성들은 예외적이고, 비현실적이고, 상업적 목적을 위해 시청자의 인식을 외곡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고 해도 역시 도움이 안된다. 미디어의 메시지를 의식적으로 부정한다고 해도, 그러한 미디어의 이미지에 자극받아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몸에 관심이 끌리고, 비교하는 것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몸에 대한 관심을 줄이기 위해서는, 그들의 일상에서 몸에 대한 논의를 의식적으로 줄여야 한다. 여성의 몸을 강조하는 광고나 티브이 프로그램을 피하고, 자신이나 남들의 몸에 대한 언급을 삼가고, 대신 다른 주제에 관심을 높이면 몸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 수 있다. 인간의 심리적 에너지는 제한된 자원이므로, 다른 주제에 관심을 늘이면, 몸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 수 있다.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몸에 대한 관심을 완전히 꺼버릴 수는 없다. 그러나 몸을 남에게 보이는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인식을 전환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는 여성도 남성과 같은 몸에 대한 시각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몸에 대한 집착에서 상대적으로 벗어나 있는 여성들을 조사한 결과, 그녀들은 어렸을 때 부모 특히 어머니의 영향이 크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부모 자신이 여성의 몸에 집착하지 않고, 자녀들에게 사회에서 중요한 일을 하도록 격려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여성들은 자신의 몸에 대한 집착이 덜했다. 외모의 사회적 가치는 다른 능력의 가치보다 못하다. 왜냐하면 외모는 일시적이고 관찰자의 시각에 의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는 해야 할 중요한 일이 많은데, 외모는 이러한 중요한 일을 성취하는 데 그리 도움이 되지 못한다.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을 하는 데 관심을 쏟도록 부모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힘을 모아야 한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과 인터뷰 결과를 많이 인용하면서 여성의 외모에 대한 집착을 생생하게 서술한다. 사실 여성의 외모에 대한 집착은 여성이 남성과 비교하여 사회적 권력의 위계에서 약자에 속하는 데에 근본적 원인이 있다. 여러 권력 자원 중 외모는 하나의 권력 자원에 불과하다. 여성이 사회적 위계에서 남성과 대등해 질 때, 여성의 외모에 대한 집착은 사라질 것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은 자신의 외모에 신경쓰기는 하지만, 다른 자원에 신경쓰는 것보다 외모에 더 신경을 쓰지는 않는다. 이는 남성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의 여성이 체중에 강박관념을 가지는 것은, 부분적으로 미국의 음식에 지방과 설탕이 과도하게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미국 음식을 먹으면 살이 찌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마른 몸을 우월하게 여기는 사회적 인식이 형성된 것이다. 필요한 영양을 충분히 섭취할 수 없는 가난한 나라에서는 마른 몸이 아니라 뚱뚱한 몸을 이상화하는 가치관이 존재한다. 미국인의 3분의 2가 비만이고, 중상층에서만 마른 몸의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은, 마른 몸을 유지하는 것이 도달하기 매우 어려운 목표이기 때문에, 사회적 지위의 상징으로 차용되고 있다. 요컨대 여성의 외모에 대한 집착은 불평등 사회에서 보이는 지위에 대한 강박증의 일종이다. 이책에서 많은 여성들의 생생한 경험을 읽는 장점이 있지만, 중복이 많은 것이 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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