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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6. 16. 10:22

David Stasavage. 2020. The Decline and Rise of Democracy: A Global History from Antiquity to Today. Princeton Univ. Press. 310 Pages.

저자는 정치학자이며, 이 책은 고대에서 근래까지 민주주의의 원천과 변화의 원인을 전제주의와 비교하면서 서술한다. 민주주의는 오랜 옛날부터 인간사회 공통의 정치 제도였으며, 민주주의는 퇴보와 발전을 거듭하면서 전개되어 왔으며, 민주주의와 전제주의는 별도의 길을 걸어왔다.

원시시대와 고대에는 민주주의가 거의 모든 인간 사회의 보편적인 정치 제도였다. 지도자가 마을 혹은 부족의 세력가들로 구성된 집단과 협의하면서 통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집단의 규모가 작을 경우 집단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는 회의에서 중요한 결정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물론 고대의 민주주의는 주로 상층부의 참여에 국한될 뿐, 일반인에게까지 주권이 부여될 정도로 폭이 넓지는 않았다. 반면 현대의 민주주의는 국민 모두에게 참여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에서는 고대의 민주주의보다 폭이 넓지만, 선거를 통한 대표 선출이라는 간헐적 간접적 방식으로 주권을 행사하기에 유권자와 대표 사이에 거리가 멀다는 점에서는 고대의 민주주의보다 깊이가 얕다.

서유럽은 국가의 힘이 약했다. 왕은 소수의 가신을 거느리고 있을 뿐이며, 자신 소유의 영지에서 나오는 소득으로 정부를 꾸렸다. 대지주 귀족이나 도시민들은 왕의 통제가 미치지 않았다. 왕은 귀족과 도시 상공인들과 협의하면서 국가의 일을 처리하였다. 중세는 물론 1700년대에 이르기까지 서유럽의 국가는 국내총생산의 1%정도의 세수만을 거둘 뿐이었다. 유럽의 왕은 15세기 절대왕정 시절에도 자신이 통제하는 관료의 수가 많지 않았으므로 통치력이 미약했다. 서유럽에서 약한 국가와 협의체 전통을 배경으로 하여, 귀족, 승려, 도시 상공인으로 구성된 협의체가 1250년 왕의 세수권한을 제한하는 서약인 Magna Carta와, 1688년 왕을 폐위시킨 명예혁명을 일으켰다. 이후 국가가 전쟁을 치르기 위해 일반인을 징집해야 하고 세금을 더 거두어야 하게 되면서, 통치자는 국민에게 주권을 점차로 더 많이 양보해야 했다. 영국에서 19세기 중반 남성 모두에게 선거권이 확대되고, 1차대전 이후에 여성에게 선거권이 확대된 과정에는 이러한 힘이 작용하였다.

중국은 일찍부터 국가의 힘이 강했다. 기원전 주나라 시절부터 왕은 두터운 관료 집단을 거느리고 강력한 통치력을 행사했다. 서기 200년전 한나라 시기에 시작된 과거제를 통해 왕은 자신이 직접 임명하고 통제하는 유능한 관료들을 동원하여 국민의 일상을 통제하였다. 한나라 시기에 국가는 국내총생산의 10%가량을 세금으로 징수하였으며, 도로나 치수사업 등 많은 사업을 전개하였다. 중국은 왕 휘하의 강력한 관료들 덕분에 중앙집권적인 전제주의 체제를 뿌리내렸으며, 이러한 전통은 현대의 공산주의 정권까지 이어지고 있다.

서유럽과 중국이 다른 길을 가게된 원인은 자연 환경의 차이에 있다. 서유럽은 넓은 평야가 없으며, 목축이나 호밀 재배에서 밀도가 낮은 농업을 하고, 자연 강우에 의존하여 생산에 굴곡이 많으며, 인구가 조밀하지 않았다. 토지면적 대비 인구밀도가 낮고, 사람들이 쉽게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으면, 통치자는 피통치자의 의견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통치할 수밖에 없다. 이는 민주주의가 서유럽보다 미국에서 더 빨리 발달한 원인이다. 반면, 중국은 황하 유역에서 문명이 발달하였는데, 이 지역에는 넓고 비옥한 퇴적토가 있으며 강물을 끌여들여 밀도가 높은 농사를 지었다. 많은 사람이 집중해서 거주하고, 농업 환경 면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는 기회가 제한되어 있으므로, 통치자는 피통치자의 의견에 귀기울이지 않고 일방적으로 통치할 수 있었다.  중국의 농업은 생산량의 측정과 예측이 정밀하게 이루어질 수 있으므로, 관료는 국민의 생산활동을 정확히 파악하고 많은 세금을 거두어들였다. 반면 서유럽의 농업은 외부인이 생산량을 측정하고 예측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지역인이 아닌 국가의 관료가 주민의 생산활동을 정확히 파악하고 세금을 거두기 어려웠다.

집단의 규모가 커지면 대표자를 뽑아 의회에 보내는 방식의 간접 민주주의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영국은 대표자에게 의결의 전권을 부여하는 제도를 1600년경에 일찌기 확립한 반면, 서유럽 대륙의 나라들은 대표자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제도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세금, 전쟁 선포 등과 같이 중요한 사안에 대해 국민이 자신의 대표에게 일정한 한도까지의 결정 권한(mandate)만을 부여하는 제도는, 국가가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하는 능력을 떨어뜨린다. 의회에서 논의가 진행되면서 대표자의 결정권한을 넘어서는 사안이 발생하면, 자신을 선출한 주민들에게 돌아가 다시 의견을 묻고, 의회에 돌아와서 논의를 진행하는 방식은 의회의 효율을 크게 저해한다. 대표자에게 의결의 제한을 부과하는 전통은 주민이 대표자에 대한 통제권을 보유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정도가 높다. 반면 대표자에게 전권을 부여하는 제도는 일단 대표자를 선출하기만 하면 주민은 대표자에 대한 통제권을 더이상 행사할 수 없다는 면에서 국민이 주권을 보유한 정도는 상대적으로 약하다.

서유럽에서 상공업이 가장 먼저 발전했던 네덜란드를 영국이 제치고 17세기 산업혁명을 이룰 수 있었던 원동력 중 하나는 영국의 의회가 변화하는 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었던 반면, 대표자의 의결을 제한하는 제도를 유지한 네덜란드 의회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민의 의견을 존중하는 정도가 높으면, 변화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기 어려우며, 기득권자들이 버티고 신규 시장 진입을 제한한다. 영국의 인클로저 운동, 즉 지주가 농경지를 목초지로 바꾸고 울타리를 쳐서 경작민을 쫒아내는 것이, 영국 의회에서 신속하게 처리될 수 있었던 것은, 대표자에게 전권을 부여한 제도 덕분이다.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의 관계는 분명치 않다. 민주주의였던 서유럽보다 전제주의였던 중국이 1700년대에 이르기까지 훨씬 더 잘 살았다. 전제주의 국가에서 국가의 지휘로 자원을 동원하여 일관된 경제성장을 추진한 사례가 여럿 있다. 소련이나 현대의 중국이 대표적인 예이다. 경제가 성숙하게 되면 추가적인 성장을 위해 개인의 창의가 필요한데, 전제주의 체제는 개인의 창의를 억압하기 때문에 경제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 맞는 것 같지 않다. 중국 공산당 정부는 정치적인 반대의견은 강력히 억압하지만, 생산성을 높일 수있는 비정치적인 아이디어는 적극적으로 권장하여, 혁신을 활성화시키고 있다.

민주주의가 성장하려면 어느 정도의 소득 수준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 또한 맞지 않는다. 서구에서 민주주의는 현재 기준으로볼 때 매우 가난한 수준의 사회에서 발달하였으며, 중국은 현재 상당한 소득 수준에 도달하였지만 민주주의가 정착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 중류층이 자신의 의견을 정치에 반영하라는 요구가 높아지고 정치 참여 욕구가 커지기 때문에 중국이 민주화될 것이라는 예측은 지금까지 맞지 않고 있다. 물론 국민들이 기본적인 생존에 허덕인다면, 선동 정치가의 주장에 쉽게 혹하고 매표와 같은 선거 부정이 만연하기에 민주주의가 자리잡기 어렵다는 주장은 맞다. 그러나 전세계적으로 볼 때 기본적인 생존의 위협을 넘어선 수준에 도달하게 되면, 국민의 소득 수준과 민주주의는 경험적으로 관련이 크지 않다.

서유럽에서와 같이 일단 의회민주주의가 먼저 자리잡으면, 이후 관료가 충원되어 국가의 기능이 커진다고 해도, 의회가 관료 집단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약화되지 않는다. 반면 중국과 같이 강력한 관료집단이 전제주의 정치와 결합해 있는 경우, 이후에 민주주의가 도입되어도 자리잡기 힘들다. 2차대전 이후 식민지 국가들이 독립하여 서방의 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한 경우, 그 제도의 성공 여부는 식민지 시기 이전 그 사회에 민주주의적 협의체 전통이 얼마나 있었는가에 달려 있다. 협의체 전통이 미약하다면 식민지 시기의 전제적인 통치 방식이 독립 이후에도 계속되는 반면, 협의체 전통이 있었다면 서구의 민주주의가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1990년 공산주의 몰락 이후 개발도상국에 민주주의가 확대되면서 세계 인구의 거의 절반이 민주주의 체제 속에서 살게 된 것은 인류 역사에서 대단한 일이다. 냉전시기에 미국과 소련이 자신의 진영에 속한 전제적인 정부를 떠받쳤었는데, 이러한 보호막이 걷히면서, 많은 나라에 민주주의가 확산되고 있다. 근래에 민족주의와 대중영합주의가 발흥하면서 선진국에서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중앙정치와 대표자에 대한 유권자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은 난제이다. 시민 교육을 강화하고, 대표자와 유권자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제도적 혁신이 필요하다.

의회 민주주의는 국민의 의견을 선거를 통해 선출하는 대표자를 통해 수렴하는 제도이다. 전제주의 체제 또한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경로를 가지고 있다. 어느 체제이건 통치자는 국민의 의견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통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중국의 경우, 관료들이 지역의 민의를 수렴하는 경로로 기능한다. 능력에 따라 선발되는 관료는, 세습적 귀족과 달리 일반인 중에서 선발되므로 그들 자신이 민의를 대표하며, 이들이 행정 업무를 수행하면서 국민들과 접하며, 국민의 의견과 필요를 반영하여 제도를 조정한다. 서구의 의회 민주주의가 근래에 양극화되면서 정부와 의회가 국민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고 조정하여 일을 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중국은 유능한 관료와 정치인을 점진적으로 위로 올려보내는 자신들의 체제가, 선거를 통해 대표를 선발하는 대의제보다 더 효율적이라고 주장한다. 서구의 대의 민주주의제도와 중국의 전제주의 제도는, 각자 안정되어 있으며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이 책은 민주주의의 역사라는 흥미로운 주제와 달리, 연구 논문과 같이 경험적 분석 자료의 제시와 건조한 서술 때문에 빠르게 읽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서구와 중국을 비교하고, 이슬람과 아프리카 등을 비교하고, 고대와 중세 및 현대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종횡무진 생각을 펼쳐서, 통찰력이 돋보인다. 논의와 관련하여 의문이 생길만한 점들을 비록 저자가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논의하는 솔직함이 엿보인다. 여러가지를 생각케 하는 좋은 책이다. 

2023. 6. 9. 22:00

Yuval Noah Harari. 2018. 21 Lessons for the 21st Century. Speigel & Grau. 323 pages.

저자는 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세계가 당면한 현실을 진단하고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 한다.

책은 크게 다섯 개 부분, 21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 1부에서는 정보기술과 바이오 기술의 발전이 어떤 문제를 낳는지 설명한다. 많은 인간들의 쓸모없어지며 (irrelevant), 자유와 평등의 이념은 데이타에 의해 지배되는 세상에서 큰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제2,3부에서는 현재의 정치사회적 쟁점에 대해 그의 생각을 서술한다. 대면관계는 쇠퇴하고 온라인에 매몰된 사회, 편협한 민족주의의 발흥, 근본주의 신자들의 폐쇄적인 태도, 이민자의 문제, 테러리즘, 전쟁의 위험성, 배타적 국수주의, 세속주의 등이 논의된다. 4부에서는 철학적인 측면에서 인간의 삶을 검토한다. 인간의 무지, 미래 세계에 정의를 판별하기 어려워짐, 거짓 뉴스, 공상과학 영화에 비친 미래, 등이 논의된다. 5부에서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인간이 만든 추상적인 이야기의 함정, 명상을 통해 자신을 알게 된 경험, 등이 논의된다.

저자는 그의 첫번째 책 Sapiens 로 엄청난 유명인이 되었으며, 미래 사회를 논의한 Homo Deus 책에서 기술발달로 인간이데이터에 의해 지배되는 세상을 그렸다. 이 책은 그가 그동안 여러 군데 쓴 에세이를 모아 놓은 것인데, 앞서 두 책에서 서술한 것들이 곳곳에서 반복되며, 별로 새로운 내용은 없다. 이스라엘과 유대인의 상황에 대해 앞의 책들보다 많이 서술한다. 앞의 두 책에서 보지 못한 서술이라고 하면 제 20장 meaning 이 유일한 데, 삶의 의미를 찾는 문제에 대하여 그의 서술의 요점을 파악하기 어렵다. '삶이란 이야기가 아니며 있는 그대로 보라'고 하는데 무슨 말인지 이해되지 않는다. 그의 바로 전 책이 2년전에 나와서, 새로운 생각을 전개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인 것 같다. 마지막까지 기대를 품고 읽었으나 실망으로 끝났다.

2023. 6. 7. 15:30

Malcom Gladwell. 2019. Talking to Strangers: What we should know about the people we don't know. Little, Brown and Co.

저자는 저널리스트이며, 이 책은 모르는 사람을 만났을 때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관해, 심리학 연구들을 인용하면서 다양하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상대를 속이는 것과 상대의 생각을 읽는 것, 두가지 주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한다. 

상대의 거짓말을 판별하기는 힘들다. 일반인은 물론이고, CIA의 전문가들 조차 상대의 거짓말에 흔히 속아 넘어간다. 인간은 상대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전제하고 살도록 (default to truth) 진화되었다. 상대에 대한 기본적 신뢰는 인간 사회의 협동을 가능케 하였다. 상대의 거짓으로 입는 피해는 상대를 신뢰하는 댓가로 치르는 비용이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진실을 말하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드물기 때문에, 상대가 거짓말을 한다고 전제하는 것보다 상대가 진실을 말한다고 전제하고 사는 것이 덜 손해를 본다.

사람들은 상대가 진실을 말한다고 전제하고 살기때문에, 웬만큼 명백한 증거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상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의심은 확증으로 발전되지 않는다. CIA의 이중스파이가 발각되지 않은 이유, 버니메도프의 폰지 스킴이 발각되지 않은 이유, 필라델피아 팀 코치의 아동성애 도착증이 발각되지 않은 이유, 체조팀 전속 의사의 여성 선수에 대한 성폭행이 발각되지 않은 이유는, 이에 관련된 사람들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상대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다고 해도 이를 확증으로 바꾸기는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경우에 상대의 거짓이 발각된 것은 거부할 수 없이 객관적으로 명확한 증거가 발견되었기때문이다.

사람들은 상대를 직접 만나보고, 그의 표정과 행동을 통해 상대의 속마음을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transparency theory), 이는 틀린 생각이다. 자신의 생각을 표정이나 행동으로 표출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많다. 형사범에 대해 보석 판정을 내릴 때, 판사가 피고인을 직접 면담을 하고 내린 판결이 객관적 자료에 근거해 컴퓨터가 판정한 결과보다 더 열등한 것으로 드러났다. 버니메도프는 그의 철저히 거짓된 투자 행위와는 달리, 매우 예의바르고 신뢰감을 주는 인물이었기에 많은 상류층 사람들이 그에게 큰 돈을 맡기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술에 취했을 때와 같이 비정상적 심리 상태에 있는 상대의 속마음을 파악하기란 훨씬 더 어렵다. 미국의 대학가에서 학생들이 파티를 벌이면서 엄청나게 술을 마셔 의식이 분명치 않은 상태에 처한 남녀 사이에 즉흥적인 성관계를 갖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때 술에 취한 남성이 술에 취한 여성의 동의를 얻었는지 여부를 판정하기는 어렵다. 여성이 술에 취해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의식 상태에 있는 경우, 이러한 여성은 상대 남성의 의도를 정확히 판단할 수 없으며, 술에 취한 남성 또한 술에 취한 여성이 보내는 메시지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다. 이 경우 법원은 남성이 여성을 성폭력한 것으로 판정한다. 왜냐하면 여성이 정상적인 상태라면 모르는 남자와 만나 잠시 술을 마시고 나서 섹스를 하기로 결정할 가능성은 크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1990년대 초반 범죄가 급증하자 경찰은 적극적으로 범죄 행위에 대응하는 새로운 전략을 채택하였다.  의심스러운 사람들에 대해 사소한 구실을 트집잡아 검문검색을 하여, 총기나 마약 등을 소지한 사람을 이들이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잡아들이는 전략이다. 이는 특히 범죄가 많이 발생하는 우범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실행되었는데, 문제는 이러한 검문검색이 경찰에 대한 무고한 시민의 반감을 높일 위험이 크다는 점이다. 이러한 전략은 상대가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의심을 전제로 한 대응으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상대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전제하고 살아가는 것과 정반대이다. 이러한 검문검색 과정에서 상대와의 감정적 충돌이 격화되면서, 사소한 검문검색이 상대를 죽이는 결과를 낳기도 하였다. 이러한 결과는, 상대의 진실성을 의심하는 방향으로 출발하는 것이 얼마나 높은 비용을 초래하는지 보여준다. 저자는 텍사스의 한적한 소도시에서 젊은 흑인 여성이 경찰로부터 사소한 구실로 검문검색을 받으면서 감정적 충돌이 격화하여 결국 유치장에서 자살로 마감한 사례를 제시한다.  

사람들이 어떤 행위를 할 때, 그것과 연관된 맥락 속에서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coupling). 예컨대 자살을 감행할 때, 자살을 용이하게 하는 수단이 가까이 있으면 자살을 쉽게 저지른다. 자살이라는 엄청난 일은 많은 생각과 고뇌를 거쳐서 감행하는 일이므로, 어떤 편리한 자살 수단이 가까이 있는지 여부는 중요치 않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영국에서 1960년대에 취사용 연료로 그때까지 사용하던 일산화탄소를 함유한 석탄가스로부터 일산화탄소를 미량 함유한 도시가스로 바꾸었을 때, 여성의 자살율이 크게 떨어진 것이 그 증거이다. 자살과 연관된 맥락을 바꾼 결과 자살이 줄어든 것이다. 앞에 언급한 경찰의 적극적인 검문검색을 통한 범죄 예방 효과는, 이러한 치안 전략이 범죄가 빈발하는 지역과 연결될 때만 효과가 있다.

저자는 학술적인 연구 결과를 일상의 사건과 연결시켜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로 각광을 받았다. 그의 강연을 들으면 그가 천부적인 이야기 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부지런한 탐색과 번득이는 감각을 결합하여 흥미로운 읽을 거리를 만들어 낸다. 일부의 연구결과를 확대 해석하기 때문에 엄밀한 설득력을 가지지는 않는다. 이야기 꾼답게 그의 글은 정말 술술 넘어간다.

2023. 6. 6. 12:37

Yuval Noah Harari. 2015. Sapiens: A Brief History of Humankind. Harper. 416 pages.

저자는 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인류의 탄생에서 현대까지의 역사를 몇가지 핵심 주제를 중심으로 거시적으로 서술한다.

인류는 인지 능력의 비약적 발달 덕분에 다른 동물과 구분되는 길을 걸었다. 추상적 상상을 하는 능력 덕분에, 인류는 종교, 이념, 민족, 국가, 법인, 기본권, 등 추상적 아이디어를 구심점으로, 서로 모르는 많은 사람이 함께 어울려 일하고 살아갈 수 있었다. 문자의 발명 덕분에 세대의 한계를 넘어 아이디어가 전해지고 축적되었다. 그러나 인류의 확장은 다른 동물들에게는 비참과 멸종을 의미했다.

농업 혁명으로 생산력이 늘고 인구가 증가했지만, 이전에 수렵채취 단계에 비해 사람들의 삶의 질이 높아진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삶은 과거보다 더 고달파졌지만, 일단 농업 단계로 접어들면 과거로 회귀할 수는 없었다. 잉여생산물을 기반으로 도시와 위계적 사회가 출현하고, 사람들은 성, 인종, 등으로 구분된 집단간에 편견을 생산하고 차별과 착취를 하였다. 이러한 구분과 착취는 생물학적 차이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상상해낸 아이디어에 근거한 것이다.

크게 볼 때 인류의 역사는 통합의 역사이다. 근래로 올 수록 인류는 과거에 고립된 수 많은 작은 단위의 사회로부터 점차 큰 단위의 사회로 통합되어, 마침내 지구 전체가 하나의 사회로 통합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통합은 경제, 정치, 종교의 영역 모두에서 전개되었다. 화폐와 교역을 통해 경제가 통합되었으며, 다민족을 아우르는 제국의 정복과 흡수를 통해 정치적으로 통합되었으며, 국한된 지역을 넘어 인류 전체를 관장하는 신과 초월적 힘이라는 아이디어로 종교가 통합되었다. 근대에 들어 '인간중심주의' Humanism 라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전통 종교를 대신하면서 통합을 이끌었다.

인류의 역사에서 이전과 판이하게 구분되는 단계인 '근대' modern 를 이끈 핵심은 '과학 혁명' scientific revolution 이다.  이전에는 과거를 이상으로 생각했으며, 모든 중요한 지식은 과거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1500년경 서구에서 '인간은 무지하다,' '세상을 관찰하여 새로운 사실을 알자' 라는 새로운 지식 탐구 방법론이 등장하였다. 이렇게 세상을 탐구하여 획득한 새로운 지식은 힘을 가져다 주었다. 세계를 관찰하여 얻은 새로운 지식과 기술은 생산력을 높이고 군사력을 증강시켰다. 서구에서는 새로운 지식의 발견과 함께 '진보' progress 에 대한 믿음이 확산되었다. 과거보다 미래가 더 좋아질 것이라는 아이디어는 인류 역사에서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반면, 서구 이외의 사회에서는 새로운 지식을 힘으로 연결시키려 하지 않았다. 중국이나 이슬람의 지식 수준이 서구보다 더 높았지만, 그들은 모든 알아야 할 중요한 것은 과거에 있다고 생각했으므로, 새로운 지식을 중요시 여기지 않았다. 모르는 것이나 문제에 봉착하면 과거 사람들이 남긴 지식을 열심히 파고 새로이 해석하려고 했다. 중국이나 이슬람인들은 인류의 이상향이 과거에 있다고 생각했다. 미래가 현재와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는 생각은, 인류의 역사가 오랫동안 정체 상태를 유지했으므로 당연하다.

과학 기술은 제국의 확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국가의 후원 속에서 발전하였다. 주요한 과학 발견은 거의 대부분 국가의 후원으로 이루어졌으며, 국가는 실용적 목적을 추구하면서 비용을 지불하였다. 자본을 투자하여 거둔 이익을 재투자하여 사업을 더욱 더 확장시킨다는 자본주의적 사이클은 신용제도와 더불어 경제 성장을 이끌었다. 사업을 하려는 사람에게 이자를 붙여 돈을 빌려주는 신용제도는 미래의 경제성장에 대한 신뢰가 있을 때만 가능하다. 자본주의 제도는 다른 모든 가치를  희생하면서까지 금전적 이익을 최고의 가치로 삼기 때문에 부작용도 적지 않지만, 다른 어느 제도보다 경제성장을 이끄는 데 탁월한 힘을 발휘하였다.

증기의 힘과 같이 새로운 에너지를 이용하는 산업혁명은 생산력을 비약적으로 높였다. 인류는 근래로 오면서 전기, 핵 에너지, 태양광 등과 같이 새로운 에너지 원을 계속 발굴하면서 생산성의 향상을 거듭했다. 이러한 물질적 발전을 이끈 힘은 과학 기술에 있는데, 인간의 과학 기술은 마침내 자연 세계의 원리인  진화적 발달을 뛰어넘어, 인간이 유전자를 조작하여 생물을 변화시키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러한 변화의 방향은 미래에 슈퍼 휴먼의 출현을 예상케 한다. 미래에 출현할 수퍼 휴먼은 현생 인류에 대하여, 마치 현생 인류가 네안데르탈인을 보듯 할 것이다.

인류는 근래로 오면서 물질적으로 더욱 풍요로워졌지만, 과연 인간은 과거보다 더 행복할까? 물질적 향상과 더불어 인간의 욕구와 기대수준 또한 함께 높아졌으므로, 삶에 대한 주관적 만족도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미디어와 대중문화는 잘 나가는 사람들을 계속 상기시키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불만과 염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세계인의 중심 가치관인 인간중심주의는 인간 개개인의 느낌 feeling, 자기 자신의 속에서 들리는 소리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자신의 느낌을 최고의 기준으로 한다는 것은, 욕구의 쳇바퀴에서 벗어나는 길이 아니다. 인류의 물질적 발전이 행복을 높이지 못한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말인가? 불교에 따르면 인간의 불만과 근심은 집착에서 비롯되므로, 집착을 끊으면 만족과 불만이 없는 상태, 즉 세상을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관조하는 상태에 도달한다고 말한다. 인간의 행복을 어떻게 높일 수 있을까는 아직 미해결의 과제이다. 한편 인류의 발전은 지구상 다른 생물들에게는 비참과 파멸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저자는 이 책을 출간한 이후 세계적으로 유명인이 되었다. 필자도 이 책을 읽고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 책의 무엇이 사람들을 그렇게 매혹시켰을까'라는 의문을 품고, 오래전에 읽어 기억이 희미한 이책을 찬찬히 다시 읽어보았다. 첫째, 여러 학문 영역을 넘나들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끌어내는 능력이 대단하다는 사실이 두드러졌다. 저자의 독서가 광범위할 뿐만 아니라, 그많은 이야기를 기억속에서 꺼집어 내어 적재적소에 꿰어 맞추는 능력은 놀랍다. 둘째, 저자는 관점을 수시로 바꾸고, 때때로 서로 다른 시대와 맥락을 비교하면서 신선한 발상을 발산한다. 기존의 역사 서술은 거의 모두가 서구 중심인데, 저자는 수시로 비서구인의 관점에서 비교하며, 또한 인간이 아닌 다른 생물의 관점에서 비교하기도 한다. 셋째, 역사 서술에 생물학, 사회학, 인류학, 정치학, 경제학적 시각을 접목하여 사회과학적 상상력을 종횡무진 발휘한다. 그 결과 이 책이 역사책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이다. 물론 두번째 읽으니 곳곳에서 그의 추리이나 서술에 약점이 보이지만, 그럼에도 신선한 재미를 선사한다. 그는 아직 젊으므로 앞으로 어떻게 생각이 발전할지 궁금하다.

2023. 5. 31. 20:51

Heather Heying and Bred Weinstein. 2021. A Hunter-Gatherer's Guide to the 21th Century: Evolution and the Challenges of Modern Life. Swift. 243 pages.

저자는 진화생물학자 부부이며, 이 책은 현생 인류가 오랜 동안 수렵채취의 단계를 거치는 동안 형성된 특질이 20/21세기 현대 문명 사회에서 마주치는 문제를 서술하며, 이를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해 언급한다.

인간의 진화적 적응은 유전자와 문화의 양면에서 전개된다. 동물의 유전자는 환경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하지만, 문화를 통해 다양한 상황과 변화에 적응할 수 있었다. 인간은 동물 세계에서 가장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데, 이는 인간이 다른 어느 동물보다 문화가 발달했기 때문이다. 유전자와 문화는 상호 작용을 하면서 발전하기 때문에, 소위 "자연과 환경" nature versus nurture 중 어느 것이 먼저냐는 논쟁은 부적절한 질문이다.

산업혁명 이후 인간의 환경은 매우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반면 인간의 몸은 오랜 동안 수렵채취 단계를 거치면서 형성되었으며 이렇게 빠른 속도의 변화에 적응하도록 만들어져 있지 않다. 따라서 현대인이 사는 환경은 인간의 몸과 맞지 않으므로 여러 문제를 발생시켰다.

저자는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는 기본 원칙으로, 가능한 한 현대 문명의 상황으로부터 거리를 두려고 노력하고, 대신 자연에 근접한 방식으로 생활하도록 노력할 것을 권한다. 의료, 음식, 잠, 섹스와 젠더, 자녀 양육, 관계 맺기, 학교, 등의 주제에 대해 장을 달리하면서 서술한다. 현대 의료 기술의 개입보다는 자연 치유를 권하며, 가공 식품을 멀리하며, 잠을 잘 자는 것을 중요시하며, 남녀간 일생동안 상호 헌신을 수반하는 일부일처제를 권장하며, 여성과 남성은 서로 능력과 성향이 다른 것을 인정하며, 비대면 접촉보다 대면 접촉하는 관계를 권장하며, 학생이 스스로 생각을 발전시키도록 하고, 어려움에 부닥뜨려 해결책을 스스로 체득하도록 하는 교육을 권장한다.

현대문명은 지속적 성장과 더 많은 소비를 추구하고 있는데, 이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비즈니스 세계는 사람들에게 쓸데없이 욕망을 자극하지만, 이는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사람들이 자본주의 논리와 시장의 힘에 휘둘리지 않도록, 정부가 적절히 규제해야 한다.

뉴욕타임즈가 추천한 베스트 셀러라고 해서 읽고 실망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이 바로 그러하다. 제목이 그럴듯하여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읽었지만 결국 실망으로 끝나다. 그들의 주장에 특별한 것이 없으며, 상식적인 지적이 대부분이다. 그들의 논의는 대부분 그들의 전문 분야를 벗어나기 때문에 독특한 아이디어를 제시하기 어려웠으리라. 현대 사회는 복잡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권하는 대로 하고 싶어도 하기 어려우며, 설사 그렇게 한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인류의 진화의 과정은 거꾸로 되돌리기 어렵다.

2023. 5. 28. 18:08

Yuval Noah Harari. 2017. Homo Deus: A Brief History of Tomorrow. Harper. 402 pages.

저자는 역사학자이자 사회철학자이며, 이 책은 인류의 과거 역사와 현재의 기술을 바탕으로 하여 인류의 장기적 미래 모습을 예측한다.

인간은 과학기술 덕분에 기아, 질병, 전쟁을 이제 거의 정복하였다. 인간의 다음 도전은 죽지 않고 오래도록 살고, 더 높은 행복을 누리며, 세상에 대한 통제력이 높아져 신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인간은 유전자를 조금씩 조금씩 변형하여 더 오래살고, 더 똑똑하고, 감정을 더 잘 통제하는 존재를 만들어 낼 것이다. 그러한 미래에, 현재의 인간은 마치 현재 동물이 그러한 것 처럼, 미래의 인간에 의해 도태되거나, 아니면 그들에게 길들여져 착취당하는 처지에 놓일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함께 초인류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능력이 있는 사람들부터 바뀌게 될 것이다. 문제는, 생물학적 능력의 격차가 사람들사이에 벌어지면, 이는 지금까지 사회경제적 격차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격차를 좁히는 것이 어려워질 것이다.  마치 과거에 일반인과 노예의 격차와 같은 사회가 출현할 수 있다.

인류는 과거 신 중심의 세계관에서 인간중심의 세계관으로 이전했다. 이제 인간의 경험, 인간의 행복이 모든 결정에 궁극적인 기준이 되었다. 인간중심주의 Humanism 는,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 긍정적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단일한 어떤 것이 아니라 여러 경험의 복합체인데, 이 복합체는 합리적이며 일관된 특성의 것이 아니어서,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할 때의 '자아'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관은 핵심이 되는 자아를 전제로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자아는 허구라는 사실이다.

생물학에 따르면 인간은 근본적으로 유전자, 즉 고도의 데이터 처리 장치이다. 진화론에 따르면 생물체는 유전자가 핵심이며, 생명활동이란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확산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인간의 데이터 처리 능력이 다른 동물의 데이터 처리능력보다 더 높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동물보다 데이터 처리 능력이 더 높기에 생존 경쟁에서 승리하여 그들을 지배하고 멸종시켰다. 인간의 감정이란 인간의 지적 능력과 마찬가지로 진화의 과정을 통해 발달한 고도의 데이터 처리 장치에 다름이 아니다. 인간의 지적 능력이나 감정이 모두 데이터 처리장치라면, 데이터 처리 능력이 고도화되면 될수록 더 좋다 라는 논리적 추론으로 귀결된다.

컴퓨터가 발전하여 이제 컴퓨터의 데이터 처리 능력이 인간의 수준을 능가하게 되었다. 지적 문제를 푸는 분야에서 인간은 조만간 컴퓨터를 당해낼 수 없다. 인공지능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정도로 많고 복잡한 데이터 처리를 하게 되었다. 조만간 인간은 인공지능에게 자신의 결정을 맡길 것이다. 왜냐하면 인공지능이 특정 개인에 대한 정보를 더 정확히 분석하여 그를 더 잘 알고 그의 사정에 더 적절한 선택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데이터를 더 잘 처리하고 문제를 풀어낸다면, 많은 사람들은 쓸모가 없어질 것이다. 소수의 고급 데이터 처리능력을 갖추고, 인공지능을 디자인하는 고도로 복잡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제외한다면, 그러한 능력을 갖지 못한 대부분은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보통사람들의 지적 능력에 기반한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민주주의 또한 부적절해 질 것이다. 인공지능이 상황을 더 잘 판단할 수 있다면, 일반 사람이 투표하여 선거로 결정짓는 방식은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국가는 일반인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 인공지능이 더 잘 전쟁을 치룰 수 있게 된다면, 전쟁에 일반인은 쓸모가 없기 때문에 국가가 일반인을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 즉 대다수의 일반인은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으로 쓸모가 없어지기 때문에 국가가 그들의 복리를 살펴야 할 필요성도 없어질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세상을 데이터가 지배하는 세상 Dataism이라고 명명한다.

이미 인공 지능은 여러 분야에서 인간과의 경쟁에서 우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반면 인간은 인공지능이 어떻게 데이터를 처리하여 이러한 능력을 발휘했는지 이해할 수 없는 단계에 도달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판단을 대치하는 분야는 빠르게 확대될 것이다. 많은 분야에서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더 신뢰되는 사회가 도래할 것은 확실하다. 자본주의의 시장기구보다, 민주주의의 선거보다 인공지능의 데이터 분석 결과에 기반한 결정이 더 효율적인 사회는 현재의 사회와는 많이 다를 것이다. 문제는 무엇을 위한 효율인가 라는 점이다.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높은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 주는 것, 즉 제레미 벤담의 최대의 행복이 지금까지 효율성을 판단하는 기준이었다. 인간은 물질적인 만족만으로는 살 수 없다. 결정의 주체가 되고 사회에 기여하는 존재라는 느낌, 즉 보람, 의미를 찾는 존재이다. 인공지능이 모든 결정을 대리하는 사회에서 사는 사람은 삶의 의미를 느끼면서 살지 못할 것이다. 자신의 데이터 처리능력이 사회에 쓸모가 없다면, 그러한 사회에서 살아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살아야 할 의미나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삶은, 현재 동물 농장에서 하루하루 생존을 영위하는 닭이나 돼지의 삶과 다름이 없다.

사실 현재 우리의 삶도 삶의 의미를 크게 느끼면서 사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럭저럭 살아가는 것이 현대인의 삶인데, 삶의 결정이 모두 인공지능에 의해 뺏기게 된다면, 그런 '혹시나' 하는 자기기만적인 감정 조차도 좀처럼 일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정말 암울한 삶이다. 인간의 삶이 알고보면 동물 농장에 닭이나 돼지와 다름이 없다고 지적한다면.   유발 하라리는 대단한 통찰력을 지닌 사람으로 보인다. 그의 식견에 감탄하며 읽었다.

2023. 5. 17. 22:49

Richard Easterlin. 1996. Growth Triumph: The twenty-first Century in Historical Perspective. Univ. of Michigan Press. 154 pages.

저자는 경제학자이며, 이 책은 세계 경제가 어떻게 성장해 왔으며, 인구 증가는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21세기에도 경제성장이 계속 이루어질지에 대해 논의한다.

세계의 경제는 18세기 후반 영국의 산업혁명에서부터 시작하여 이전과 다른 속도로 장기간 고도의 성장 궤도에 접어든다. 이렇게 매년 1~3%의 성장을 오랫동안 지속한 혁명적 변화의 동력은 과학 지식과 기술의 발전에 있다. 새로운 과학 기술 뿐만 아니라 문제를 접근하는 경험적 실험적 객관적인 방법론 덕분에 끊임없는 탐구와 신기술 개발이 이어졌다. 산업혁명 이래의 경제 발전은 자본과 노동 등의 생산요소를 과거보다 더 많이 투입하여 양적으로 성장한 면보다는, 생산성의 향상을 통해 질적으로 성장한 면이 더 크다. 

산업혁명 시기 국가들 사이에 경제성장의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국가들 사이에 세력 균형의 변화가 따른다. 신기술을 개발하여 경제력을 높인 나라는 군사력도 함께 높아지기 때문에, 이전에 형성된 국가간 세력 분포에 변화가 불가피하다. 산업혁명을 통해 성장한 서유럽 국가들은 산업 발전에 착수하지 못한 아시아 아프리카의 나라들을 19세기 후반 식민지로 복속시켰다. 유럽에서 먼저 산업화에 성공한 영국 및 프랑스와, 뒤에 발전하여 따라잡은 독일 사이에 세력 분포의 변화를 둘러싼 갈등은 제1차 세계대전을 불러왔다.

과학 지식과 기술은 국가간에 쉽게 전파된다. 과학 지식과 기술이 경제성장의 동력이라면 유럽을 넘어서 세계로 경제성장이 빠르게 퍼져 나갔어야 하지만 현실을 그렇지 못한데, 왜일까?  과학 기술이 생산성의 향상으로 이어질려면 제도적 기반이 갖추어져야 한다. 교육과 민주적 의회제도가 생산성 향상에 필요한 제도적 기반이다. 과학 기술을 이해하여 생산에 적용하며 기술의 변화를 수용하려면 교육받은 노동력이 필수이다. 노동자들이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면, 아무리 외국으로부터 과학기술을 도입해도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경제활동의 결과 산출된 부를 정치 권력자들이 임으로 뺏어간다면, 즉 정부가 시민의 사유재산권을 보장하고 계약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과학기술을 적용하여 생산성을 향상시키려 노력하지 않는다.  의회제도는 권력자의 임의적 권력 행사를 제한하고, 시민의 사유재산권과 계약을 보장하고 존중하는 제도적 장치이다. 과학 기술 및 이를 뒷받침하는 교육 제도와 의회제도가 다른 물적인 요소보다 경제성장에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은, 제1,2차 세계대전후 독일과 일본이 폐허를 딛고 빠르게 성장한 사실에서 입증된다. 독일과 일본은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지만 과학 기술 및 제도적 기반이 손상되지 않았기 때문에, 불과 일이십년만에 전쟁 이전의 경제 수준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서구에서 19세기 중반 부터 '사망율의 혁명' mortality revolution 이 일어났으며, 시간 차이를 두고 이어서 출산율이 떨어지는 인구 변천 population transition 과정을 겪었다. 사망율이 급격히 떨어진 원인은 위생과 건강에 대한 과학 지식과 기술의 발전에 있다. 병균이 질병의 원인이며 위생상태가 불결하면 병균이 창궐한다는 과학 지식을 기반으로 하여, 병균이 서식하는 환경을 체계적으로 제거한 결과 사망율이 급격히 떨어졌다. 경제성장에 필요한 과학 기술과 제도적 기반을 갖추는 것보다, 질병과 위생에 대한 과학 지식 및 불결한 환경을 제거하는 제도를 갖추는 것이 훨씬 용이하기 때문에, 개발도상국은 경제성장보다 사망율을 떨어뜨리는 데에서 훨씬 더 빨리 성공할 수 있었다.  

선진국은 인구 노령화 및 인구 감소로 인해 경제성장이 멈추는 미래를 걱정하는데, 이는 기우이다. 인구 노령화의 문제로 크게 두가지가 언급된다. 첫째는 인구가 노령화하면 노동 공급이 줄어들고 노동의 질이 떨어지기 때문에 생산성 향상이 어렵다는 우려이다. 2030년까지 노동공급이 약간 줄어들지만 우려할만큼 크지 않으며, 이후에는 이미 낮은 출생율의 세대가 자리 잡았기 때문에 노동 공급이 더이상 줄지 않는다. 노령화에도 불구하고 전인구 대비 노동공급이 크게 줄지 않는 이유는, 노령 인구가 느는 것과 함께 아동의 비율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고령의 노동력은 젊은 사람보다 생산성이 낮다는 주장에 대해, 사무직이 주류인 선진국에서 고령의 노동력은 경험이 풍부하여 육체적 정력이 부족한 부분을 커버하며, 과거와 달리 미래에 고령의 노동자는 젊은 사람에 비해 교육 수준이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고령이라고 하여 생산성이 젊은 노동자보다 크게 낮지 않다.

인구 노령화로 우려되는 두번째 문제는 인구 부양비가 높아진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인구 노령화는 노인 인구의 증가와 아동 인구의 감소를 동시에 수반하기 때문에, 전체 인구의 부양비는 변함이 없다. 노인이 늘면 연금이나 의료비가 증가하는 데 이는 젊은이들의 노동 소득을 갉아먹기 때문에 문제라고 한다. 그러나 아동을 부양하는 비용은 노인을 부양하는 비용 못지 않게 많이 드는 데, 아동이 줄어들기 때문에, 경제 전체의 부양 부담의 총량은 노령화로 인해 높아지지 않는다. 노인이 는다고 해서 노동자들의 소득이 과거에 비해 부양 인구를 부양하는 데 더 투입되지는 않는 것이다.다만 아동을 부양하는 것은 개인의 사적인 지출로 충당되지만, 노인을 부양하는 것은 세금 등의 공적인 지출로 충당된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과거에 아동을 부양하는 데 들던 비용을 노인을 부양하는 데 드는 비용으로 이전하도록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은 정치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요컨대 노령화로 인한 부양 부담의 문제는,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이다.

동일 시점에서 비교할 때, 한 사회에서 소득이 높은 사람은 소득이 낮은 사람보다 더 행복하다. 그러나 시간차를 두고 비교를 하면, 과거와 비교하여 현재에 소득이 높아졌다고 하여 과거보다 더 행복하지는 않다. 이는 경제가 성장하면 사람들의 기대수준도 함께 높아지기 때문이다. 어느 사회나 사람들의 생활수준에 대한 평균적인 규범이 있는데, 사람들은 자신의 생활을 이 평균적인 규범과 비교하여 행복 여부를 판가름한다. 경제가 성장하면 생활수준에 대한 평균적인 규범도 함께 높아진다. 물질적 생활수준이 높아지면 사람들이 물질에 대한 관심을 줄이고, 비물질적인 가치를 추구한다는 증거는 아직 서구사회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미래에 소득이 지속적으로 증가한다고 하여도 사람들은 갖추어야 할 물질적 수준이 함께 높아지기 때문에, 그때에 가서도 행복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것들이 계속 추가적으로 존재할 것이다. 즉 미래에도 현재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물질적으로 좀 더 높은 생활을 갈망할 것이다. 

선진국에서 경제성장은 과거보다 속도는 떨어지지만 앞으로도 꾸준히 이루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앞으로도 이전보다 더 큰 풍요를 원하며, 과학기술의 발전에 기반한 생산성 향상은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선진국에서 시작된 경제성장은 아시아를 넘어 아프리카로 확산될 것이다. 후발 산업국들은 선발 산업국들과의 격차를 좁혀갈 것이다. 후발 산업국은 선진국이 개발한 과학기술을 빌려와 쓸 수 있으므로, 선진국이 성장하던 때와 비교하여 성장 속도가 더 빠르다. 반면 선진국은 완전히 새로운 과학기술을 개발하여 생산성을 높여야 하기 때문에 성장 속도가 더딜 수 밖에 없다. 개발도상국의 경제가 성장하여 선진국에 근접하게 되면 후발 산업국들은 성장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배경으로 선진국들에 대해 국제적 영향력의 재분배를 요구할 것이다. 20세기 초반 영국대 독일의 제1차 세계대전과 같은 충돌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선진국의 과학 기술이 세계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세계의 문화와 가치의 차이는 줄며, 효율과 합리성을 우선하는 세속적 가치가 전세계를 지배할 것이다.

이책은 저자의 경제 성장에 관한 오랜 연구를 정리하는 취지로 쓰여졌다. 논쟁적이기보다 상식적인 부분을 재확인하면서 평이하게 서술한다. 경제 성장에 관한 기존 논의가 잘 녹아 있는 느낌을 받았다. 인구 노령화를 둘러싼 분석은 냉철하면서도 참신하게 들렸다. 인구 노령화나 선진국의 인구 감소는 경제적 효과보다는 국가의 위신과 같은 비경제적 요인 때문에 그렇게 아우성친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2023. 5. 14. 22:57

Eric Jones. 2003(1981). The European Miracle: Environments, Economics and Geopolitics in the History of Europe and Asia. 3rd ed. Cambridge. 257 pages.

저자는 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세계사의 핵심 질문인, 서구가 왜 세계의 다른 모든 지역을 앞서 발전하게 되었는지 원인을 찾는다. 자연 환경적인 요인과 제도적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서구가 아시아보다 앞서 산업화에 성공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서구가 본격적으로 아시아를 앞서게 된 시점은 대략 1500년대, 즉 북서유럽 사람들이 대양으로 나아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인도양을 거쳐 인도와 중국에 진출하게 된 무렵이다. 1500년대 이전에는 중국 문명이나, 이슬람 문명이 기술적으로 서유럽보다 앞섰으며, 물질적 수준에서도 서유럽은 상대적으로 낙후되었었다.

서유럽은 아시아의 다른 문명권과 비교하여 인구 출산률이 낮았으며, 인구 밀도가 높지 않았다. 아시아의 다른 지역에서는 가뭄과 홍수 등 자연 재해가 빈발하였기 때문에 자연출생력이 허락하는 한 최대로 자녀를 낳는 전략을 택한 반면, 서유럽은 자연재해가 적었으므로 최대 자연출생력에 못미치는 출산 관행이 지배했다. 서유럽에서는 사람들이 결혼을 늦게 하거나 하지 않음으로서 출산력을 조절하는 사회관습이 정착했다.

서유럽은 아시아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인구밀도가 높지 않으므로 인력보다 자본을 더 집중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경제가 발전하였다. 농업이 주였던 시절에, 아시아는 논에 많은 노동력을 투입하여 생산력을 높이는 전략을 구사했으나, 서유럽에서는 목초지에 가축을 키우고, 상대적으로 적은 인력을 투입하여 밭을 경작하였다. 이러한 차이는 이후 서유럽에서 수력, 풍차, 석탄을 사용하여 에너지를 얻고, 새로운 생산기술을 개발하고 적용하는 것, 즉 생산 과정에 더 많은 자본을 투입하여 생산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서구가 발전하는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반면 아시아에서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사람들의 반발이 높았으며, 과거의 방식을 고수하는 보수주의가 지배하였다.  

1500년대 무렵 유라시아 대륙에는 크게 네개의 문명권, 즉 유럽 문명, 중동의 오토만 제국, 인도의 무굴 제국, 중국의 명나라 제국이 존재했다. 서유럽을 제외한 유라시아 대륙의 다른 문명은 정복 문명이었다. 중동과 인도 및  중국의 원나라와 청나라 제국은 모두 중앙아시아의 초원 지대 유목민들이 남하하여 세운 나라이다. 서유럽은 중앙아시아 초원 지역에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유라시아 대륙의 다른 문명과 달리 유목민 약탈자 권력이 닿지 못한 행운을 누렸다. 외부로부터 유입된 정복 세력은 토착인을 최대한 착취 약탈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을뿐, 국가의 생산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장기적인 안목에서 경제를 관리하고 국민을 통치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 정복 국가의 국민들은 중앙 집권의 권력에 포획되어 있었으며, 귀족들 또한 권력 집단의 일원으로서 국민을 착취하는 역할만 하였다.

반면 서유럽은 작은 여러 나라로 나뉘어서 서로 경쟁하였다. 유럽의 자연 환경은 산, 강, 바다로 지역을 잘게 나누고 있으며, 북서 유럽에는 숲이 널리 퍼져 있어 지역간의 원활한 소통을 방해하였으므로, 단일 권력이 전 지역을 장악하기 어려웠다. 각각 분할된 지역에 토대를 둔 국가들은 서로간 끊임 없는 경쟁과 협력을 통해 힘의 균형을 유지해야 생존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권력 집단들의 틈바구니에서 상공업자들은 상대적 자율성을 누릴 수 있었다. 서유럽의 권력자들은 자의적으로 상공업을 제한하거나 상공업자의 재산을 몰수하는 식으로 전횡을 부릴 수 없었다. 서유럽의 상공업자들은 자본을 축적하여 재투자하여 성장하는 것이 가능했다. 반면 아시아의 약탈적 정권 하에서 상공업자들은 자본을 모으는 것이 위험했으므로, 조금이라도 돈이 모이면 사치한 생활에 소비하거나, 지주 혹은 관료의 지위로 갈아타려고 노력했다.

서유럽은 작은 나라들로 권력이 분산되어 있었지만, 기독교 문화의 일원으로서 서로 간 어느 정도는 유사했다. 서유럽의 다양한 나라들 사이에 사람들의 이동을 통한 아이디어의 전파가 매우 빨랐다. 한 지역에서 새로운 기술을 발전시키면 서유럽 전체로 곧 퍼졌다. 지역간 언어의 차이가 있지만 유럽 대륙 전체로 지식인들은 라틴어를 사용하였으며, 지역 언어들 사이에 유사성이 높았으므로 다른 언어 지역의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았다. 따라서 한 나라의 권력 집단이 자의적 횡포를 부리면, 곧 그 나라의 상공업자와 자본가들은 다른 지역으로 기술과 자본을 들고 이동하여, 그 지역의 세수가 감소하고 군사력이 떨어지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각 지역의 권력 집단은 자신의 지역에서 경제가 활발하도록 항시 관심을 기울였다. 상공업자들은 정치 권력 집단에  대해 상대적 자율성을 누렸으므로, 이후 이들이 주도하여 정치 권력을 견제하는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발달하였으며, 상공인들의 경제활동을 돕기위해 도로를 닦고 상공업의 규칙을 관리하는 등으로 국가가 국민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비스 국가 service state 로  발전하였다. 

저자는 서유럽이 1500년경 무렵에 세계를 앞서게 된 것이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라 1400년경 혹은 그 이전부터 오랫동안 점차로 배경이 무르익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정치권력이 상공업자의 자본을 자의적으로 탈취하지 못하는 관행은 1200년경 이탈리아에서 상공인을 중심으로 한 도시국가의 독립적인 존재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아시아와 비교하여 볼 때 서유럽에서는 1500년 이전부터  상공인의 사유재산을 존중하는 관행이 자리잡은 것이다. 중세시대에도 교회와 왕으로 권력이 나누어져 있었기 때문에, 왕은 자의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는데 제한이 있었다. 왕의 권력을 제한하는 전통은 영국에서 1300년대 후반 세금을 내는 상공인과 지주가 왕에게 압력을 가해 왕의 권력을 제한하는 문서인 마그나 카르타를 받아내었으며, 서유럽 전지역에서 왕의 권력을 제한하는 의회의 형성으로 이어졌다.

중동이나 인도 문명은 역병의 피해를 자주 많이 받았으나 국가가 역병의 확산을 제한하는 어떠한 조치도 하지 않은 반면, 유럽에서는 일찌감치 국가가 주도하여 방역을 하는 관행이 자리잡았다. 중국에서는 명나라 이전 서유럽보다 발달했던 생산 기술과 항해 기술을 국가가 금지하여 이후 기술이 퇴화하였다. 이는 중앙 관료들 사이의 권력 다툼과 보수 세력의 변화에 대한 저항이 이겼기 때문이다. 반면 서유럽에서 보수세력의 변화에 저항하는 힘은 중국만큼 크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신기술의 도입을 금지하였다고 해도 이웃나라가 버티고 있으므로 이러한 명령은 실제로 엄격히 지켜지지 못했다.

서유럽은 물론 아시아 전체적으로 1000년대 이래 인구가 서서히 그러나 꾸준히 증가하여 기존의 생산수단에 비교하여 인구압력이 계속 높아졌다. 1300년대 중반 페스트가 창궐하여 인구압이 일시적으로 낮아졌지만 100년도 못되어 다시 인구가 증가하였다. 서유럽과 중국은 높아진 인구압을 배출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었다. 서유럽에서는 농업 기술의 발전 및, 1500년대 이래 아메리카 대륙 등 식민지 개척으로 높아진 인구 압력이 분출될 탈출구가 마련되었으며, 이는 새로운 시장의 확대 등으로 자본주의 산업화를 이끌었다. 한편 중국은 명나라 이래 남쪽 지역으로 경작을 확대하여 높아지는 인구압을 배출하였다. 중국에서는 논농사 지역을 확대하면서 새로운 기술 개발 없이 인구를 많이 투입하여 생산을 늘리는 방향으로 발전한 반면, 서유럽에서는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여 농업과 이후 제조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경제가 발전하였다. 즉 중국에서는 인구가 증가하면서 경제의 외연적 확대가 이루어졌으나 생산성의 향상은 높지 않았던 반면, 서유럽에서는 인구 증가와 더불어 기술 발전과 자본 투입이 높아지면서 생산성의 향상이 함께 갔다.

중국에서 새로이 개척할 땅이 다했을 때, 결국 권력 집단은 국민을 더 가혹하게 탈취하고 국민들은 참다참다 결국 폭발하여 정권이 교체되지만 이러한 사이클은 반복되었다. 중국의 청나라 시절 연거퍼 발생한 대규모 민중 봉기와 엄청난 인명 피해의 배경에는 이러한 요인이 도사리고 있다. 이는 새로이 개척할 땅이 없었던 중동의 오스만 제국이나 인도의 무굴제국이 간 길이기도 하다.  반면 서유럽은 인구 증가와 생산성의 향상 및 식민지로의 인구 배출이 함께 전개되었기 때문에 엄청난 인명 피해를 동반한 민중의 대규모 반란은 찾아 볼 수 없다.

이 책은 세계사의 핵심 질문에 대해 지금까지의 학술적 논의를 비판적으로 낱낱이 검토하면서 저자의 주장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교양서로 읽는데는 어려움이 있다. 저자의 글 쓰는 방식 역시 축약적이고 복합적으로 서술하기 때문에 이해가 어려웠다. 그럼에도 이 주제와 관련하여 대표적으로 추천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논의가 균형되고 포괄적이기 때문이다. 읽기는 어려웠지만 영양가가 높았다.

2023. 5. 10. 18:02

Edward Conze. 1959(1951). Buddhism: its essence and development. Harper Torchbooks. 212 pages.

저자는 서구의 유명한 불교학자이며, 이 책은 주로 반야바라밀다심경에 의존해 불교의 교리를 설명하고 있다.

불교는 서구의 철학과 달리, 세상의 진리를 파악하려는 지적인 관심보다, 도 darma 를 깨닫는 실천에 촛점을 맞춘 실용적인 접근을 택한다. 불교의 목표는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자아를 버려야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 세상과 삶은 고통으로 차있음으로 세상과 삶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물러나 마음의 평정을 확보해야 한다. 업보를 쌓아 윤회를 거듭하면서, 궁극적으로 깨달음을 얻고 극락 Nirvana 으로 들어가는 것이 불교의 목표이다.

세상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은, 소유를 최소화하고 가난을 꺼리지 않는 것이다. 남을 괴롭히고 마음 상하게 하는 행위 역시, 세상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에 반하는 행동이다. 자아를 버리고, 세상과 내가 구별되지 않는 하나임을 깨달아, 주위 사람과 생물에 대해 동정심 compassion 을 가져야 한다.

불교는 서구에서와 같은 전지전능한 인격신을 설정하지 않지만, 일반인들은 전지전능한 존재로서 부처를 숭배한다. 깨닮음은 세상과 나 자신에 내재되어 있는 부처의 길, 즉 도를 발견하는 것이므로, 불교에서 인격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은 빈 empty 것이다. 구별을 하는 것, 주체와 객체, 나와 너, 긍정과 부정, 등으로, 인식하려 하는 것은 어리석다. 불교의 진리는 언어나 논리로 표현할 수 없다.

불교는 지적인 전통과 신비적 체험의 전통으로 나뉘어 있다. 전문가들은 지적인 깨닮음을 강조하나, 일반 신도는 신비적 체험에 관심이 많다. 소원을 성취하고 병을 고치고 등 일반인의 염원을 신비한 힘으로 풀어주는 것 역시 불교 믿음의 일부이다. 탄트라 불교는 신비적 체험을 강조하는 종파이다. 

소승 불교는 구도자 개인의 깨달음에 촛점을 두며, 대승 불교는 대중 전체의 구원에 촛점을 둔다. 불교의 원래 교리는 소승불교에 가까운데, 중국으로 전파되면서 대승 불교가 갈려나왔다. 대승불교의 한 종파인 선불교는 지적인 탐구를 중요시하지 않는다. 세상의 모순을 꿰뚤어보는 통찰력은 논리적인 탐구를 통해 획득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불교의 고전이라고 추천받아 읽었으나, 많은 부분의 서술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200쪽의 책을 중간에 던지지 않고 끝까지 참고 읽었으나, 이해가 높아지지 않아 실망했다. 집중해서 읽었으나 읽은 것이 아니다. '언어와 논리를 넘어선 깨달음' 이라는 말이 납득이 가지 않는다. 고통도 즐거움도 염려도 관심도 없는 무념무상의 세상에 들어 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어차피 우리는 모두 죽지 않는가? 윤회는 허구이다, 이 세상의 고통과 부정의와 우연를 이겨내기 위해 만들어낸 이야기.

2023. 5. 6. 22:34

William McNeill. 1991(1963). The Rise of the West: A History of the Human community. University of Chicago Press. 807 pages.

저자는 저명한 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그의 대표작으로서 고대에서부터 1950년경까지 세계 문명의 전개를 설명한다. 세계 문명의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를 포함한 중동지역이 인류의 문명을 대표한 500 BC 경까지, 이후 중앙아시아의 유목민족이 유라시아대륙의 곳곳을 수시로 침범하면서 농업 혹은 상업을 기반으로 한 문명들(헬레니즘, 인도, 중국, 이슬람 제국)을 위협한 시기인 서기 1500년까지, 전세계에 대한 서구의 압도적 지배로 요약되는 1500년 이후 현재까지, 이렇게 인류 역사를 세개의 시기로 구분을 한다. 그는 세계의 문명권이 고대부터 서로 영향을끼치며 전개되어 왔다는 점, 1500년 총포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유라시아 대륙의 발전은 중앙아시아 유목 민족의 전개에 의해 크게 좌우됬다는 점을 강조한다. 

인류의 문명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시작되었다. 기원전 3,000년 경에 이곳에서 농경이 처음 시작되고 도시가 출현하였으며, 부족의 규모를 넘어선 큰 규모의 정치체가 등장하였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이후 변방으로 확대되어, 기원전 1700년경에는 이집트, 소아시아, 크레테, 이란으로 확대되었으며, 이후 인도, 그리스, 중국 문명이 기원전 500년경까지 세워졌다. 중국은 메소포타미아 문명과는 독립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반면, 인도와 그리스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영향을 받아 세워졌다.

그리스 문명은 서쪽으로는 로마제국과 서유럽으로, 동쪽으로는 소아시아의 헬레니즘으로 확장되었다. 인도문명은 동남아시아로 확장되었으며 중국에 영향을 미쳤다. 중앙아시아의 유목민족은 철기문화를 일찌기 발전시키고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멸망시켰으며, 이란 아프간 지역으로 남하하면서 인도 문명을 위협하였다. 중앙아시아를 장악한 유목민족들은 중동과 중국을 연결하는 실크로드를 통해 문명간 교류를 활성화하였다. 이들은 서쪽으로는 동유럽 지역으로, 동쪽으로는 중국을 수시로 침범하면서 기존 사회의 변화를 촉발시켰다. 한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시작된 이슬람 문명은 동으로는 이란과 인도 지역으로, 서로는 이집트와 북아프리카로 확장하였다.

1500년까지 서유럽은 문명의 변방지대에서 낙후되었었다. 그러나 이후 항해 및 총포 기술과 함께 체계적으로 군사를 조련하는 기술을 발전시키면서 다른 모든 지역을 압도하는 전쟁 능력을 획득하였다. 서유럽이 중국, 인도와 비교하여 이렇게 크게 발전한데는, 여러 작은 정치체들간 치열한 경쟁 속에서 전쟁 능력을 함양한 것, 지주층과 비교하여 상공인의 세력이 만만치 않았던 점이 큰 이유이다. 서유럽의 이러한 전통은 중세 이탈리아의 도시국가에서 부터 발전되었다. 반면, 중국은 지주세력이 유교를 지배 이념으로 하여 상공인의 발전을 억눌렀다. 또한 상대적으로 안정된 중앙 집권체제가 계속 유지되면서 기득권을 계속 유지하고자 하는 보수의 힘이 매우 강했으며, 다수의 정치체들간 경쟁을 통한 변화의 역동성이 부족하였다.

중앙아시아의 광대한 초원지역에 사는 유목민족은 주변의 농경민족보다 군사적 능력이 출중하기 때문에 수시로 주변의 문명들을 위협하였다. 서쪽으로는 헝가리까지 진출하였으며, 이들의 압박으로 역시 유목민족이던 고트족이나 게르만족이 서유럽으로 밀려나 정착하였다. 유럽인은 고대부터 군사적 경쟁을 통해 성장하였으므로, 호전적인 문화가 바탕에 깔려있다. 유목민족들은 남으로는 북인도로 진출하여 인도 유러피안어족의  인도문명을 세웠다. 이들은 동쪽으로 진출하여 중국의 원나라, 청나라, 금나라를 세웠다. 그러나 이들은 중국의 문화에 흡수되는 길을 택했다.

중동지역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부터 시작해, 이후 헬레니즘을 수용하고, 이슬람 문명을 발전시키면서, 오랜동안 주변의 다른 문명권에 영향을 미치는 중심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후계자 문제를 둘러싸고 분열을 거듭하였으며, 노예를 기반으로 군대를 유지하였는데 이들의 거듭된 반란으로 국력이 쇠하였으며, 신정 정치가 계속되면서 변화를 거부하여, 외부의 위협에 대응한 내부의 개혁을 추진하지 못하였다.

1500년경 이후 서구 문명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시작으로, 이후 네덜란드와 프랑스, 영국으로 이어지는 세계 확장의 길에 접어든다. 1400년경 부터 서유럽은 점차 기독교의 지배에서 풀려나, 왕권이 강화되었으며, 세속적인 합리주의가 세를 더하였다. 이는 1700년대에 계몽주의로 한껏 부풀어 올랐다. 1789년의 프랑스 혁명은 국민의 힘을 키우고 민족국가를 형성시킨 계기가 되었으며, 이는 민주주의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1700년대 후반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생산력을 크게 향상시켰으며 급속한 인구증가로 이어졌다. 결국 1800년대 중반쯤 세계 모든 지역은 서구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한편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들은 유라시아대륙에 비해 3,000년 정도 문명의 발전이 낙후되어, 1500년경 서구와 만났을 때 아직 철기문화에 도달하지 못했으며, 무엇보다 유라시아대륙의 질병에 취약하여 쉽게 무너졌다. 서구의 위협에 대응해 자신의 선조로부터 계승한 문화의 무력함에 절망한 아메리카의 인디언들은, 서구의 문화를 급속히 수용하였으며, 자신의 전통 문화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저자의 역사관은 두가지 점에서 독특하다. 첫째, 세계는 서로 밀접하게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발전한다. 어느 지역에서 좋은 아이디어나 발전이 전개되면, 이것은 얼마 안되어 주변지역에 모방되고, 이러한 과정이 빠른 속도로 전지구를 돌며 영향을 미친다. 둘째, 서구가 앞서기 전인 1500년 무렵까지 유목민족의 뛰어난 군사적 능력이 세계사의 전개에 큰 영향을 미쳤다.총포의 발명으로 유목민족의 파괴력이 무력해진 후에도 여전히, 군사적 능력은 역사의 전개에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서구가 세계를 제패한 것은 우월한 군사력 덕분이다.  현재 세계는 서구의 문명권에서 살고 있으며, 앞으로 이를 대체할 어떤 다른 문명이 등장할지 예상하기 어렵다. 인류의 과학기술 문명이 계속 발전하면, 아마도 미래에 인류의 유전자를 조작하여 현재의 인류를 대체하는 새로운 인류가 등장할 수도 있다.

저자는 역사의 전개를 거시적으로 접근하면서 말로 많이 설명한다. 다양한 사회와 제도, 지역, 시간을 종행무진으로 비교하면서 엄청난 통찰력을 제공한다. 이 책을 읽다보면, 지금까지 학교에서 공부한 역사는 서유럽에 국한된 역사이며, 통찰력과는 거리가 먼 단순 학습이었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인간 사회에 대한 통찰력을 높이는 데에 역사 공부의 목적을 둔다면, 이 책은 정말 최상의 교재이다. 감탄을 거듭하면서 800쪽의 책을 읽었다. 여러번 읽을만한 책이다. 다만 20세기의 역사나, 동아시아의 역사는 상대적으로 소홀하다는 아쉬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