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ul Kennedy. 1987. The Rise and Fall of the Great Powers. Vintage. 540 pages.
저자는 역사학자로, 1500년경부터 서구에서 강대국이 차례로 흥했다 쇠하는 과정을 서술한다. 스페인 제국, 네덜란드 제국, 합스부르크-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대영제국이 20세기 초까지 그 길을 밟았으며, 20세기 들어서는 미국과 소련이 그길을 가고 있다. 이러한 모든 사례에서 '경제력이 궁극적으로 군사력을 좌우하며 강대국의 힘의 배경이다'라는 명제를 주장한다. 두번째의 명제는, 한 나라의 국력이란 상대적인 비교에서만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한 나라의 군사력은 그의 적의 군사력과 비교를 통해서만 강약을 가름할 수 있다. 한 나라의 체제의 강점과 약점 역시 그와 대비되는 다른 나라의 강점과 약점과 비교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강대국이 될 수록 전세계 곳곳에 담당해야 할 안보의 부담이 늘어난다. 강대국은 시간이 흐르면 자신의 경제력이 정상적으로 감당할 수있는 정도를 넘어서 더 큰 군사력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려면 국가의 자원의 많은 부분을 군사력 유지에 써야 하는데, 이는 생산적 투자에 써야할 부분이나 국민의 삶의 풍요를 위해 써야 할 부분의 희생을 수반한다. 생산적 투자에 자원을 덜 투입하면 경제 성장이 늦추어지며, 국민의 삶의 풍요를 위해 쓰는데 자원을 덜 투입하면 국민의 불만이 높아진다.
강대국의 밑에 단계에 있는 나라들은 강대국과 비교하여 군사력보다 생산적 투자에 더 많은 자원을 할애 하므로 시간이 지나면서 그 나라들 중 강대국을 능가하는 경제력을 가진 나라가 나타난다. 그들의 경제력이 높아지면, 필연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군사력을 증강하게 되고, 기존의 강대국을 물리치고 새로운 강대국으로 등극한다. 역사적으로 강대국의 교체는 결코 평화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15세기까지만 해도 중국, 인도, 이슬람 문명이 서구를 앞섰으나, 이후 서구가 앞서나가며 다른 문명을 복속시킨다. 가깝게는 유럽의 정치문화에서, 보다 근본적으로는 자연환경의 차이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유럽은 다양한 정치 집단이 서로 경쟁하는 관계를 유지했다. 이러한 경쟁은 제도와 기술의 혁신, 경제 발전과 군사력의 성장을 낳았다. 반면 중국, 인도, 이슬람 지역에서는 강력한 단일 정치집단이 오랫동안 권력을 장악하면서 변화를 거부하고 전통을 고수하는 문화를 뿌리내렸다. 이러한 지역에서는 기득이권 집단이 거대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으므로, 새로운 아이디어가 발붙일 여지가 없었다. 기존 질서에 위험 요소가 될 어떠한 것이라도 초기에 싹을 자르는 조치를 취하였다. 대표적인 예로 명나라 시기에 해외무역을 금지하면서 큰 배를 모두 없애고 새로 건조하지 못하도록 한 조치를 들 수있다.
유럽이 동양과 달리 다양한 정치 집단이 공존할 수있었던 것은, 산악과 바다와 강, 다양한 기후의 자연 환경이 단일 정치체제의 출현을 방해하였기 때문이다. 영국은 대륙과 바다로 떨어져 있으며, 이탈리아와 독일, 스페인과 프랑스는 산악으로 서로 분리되어 있다. 그들은 군사적으로 서로 경쟁하고, 중상주의 정책에서 보듯이 경제력에서 서로 경쟁하며, 영국의 산업혁명이 유럽 대륙으로 확산된 사례에서 보듯이 과학과 기술에서 서로 경쟁하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는 서구의 강대국들이 흥하고 쇠하는 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대영제국은 18세기 말 산업혁명을 처음으로 시작하면서 부를 축적하기 시작하여, 1760년대에 7년전쟁을 통해 스페인과 프랑스를 제치고 세계의 지배적인 강대국의 지위에 올라섰다. 스페인과 프랑스는 합리적인 제도를 갖추지 못했으며 경제가 효율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전통적인 체제가 지배하였다. 이들 나라의 군사력은 컸지만 경제력이나 제도의 효율성에서 영국보다 훨씬 낙후되어 있었다. 19세기 초반 영국은 전세계의 산업생산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인 경제력을 축적하였고, 전세계에 식민지를 축적하면서 압도적인 강국이 되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이후 산업 혁명이 다른 나라로 확대되면서 영국의 압도적인 경제력은 점차 쪼그라들었다. 영국 사회의 기득권 세력이 새로운 혁신을 방해하고, 노동자의 요구가 높아지면서 영국의 상대적인 산업 경쟁력은 떨어지고 경제성장의 속도는 느려졌다. 반면 독일은 새로운 기술 혁신이 계속이루어지고, 통일을 통해 국토가 확장되면서 경제력이 크게 성장하였다. 국제질서에서의 기존의 지위가 독일의 경제력에 걸맞지 않게 되었기에 독일은 1차대전을 일으켰으며, 결국 2차 대전까지 치르고 나서야 독일의 도전은 중단된다.
한편 미국은 새로운 기술과 경형 혁신이 계속 이루어 지고, 이민자가 계속 들어오고, 서부로 영토를 확장하면서 가용 자원의 절대 규모가 늘어났으며 19세기말에는 경제력에서 영국을 능가하게 되었다. 미국은 제 1, 2차 대전을 통해 막강한 경제력을 군사력으로 전환하였다. 두차례의 전쟁으로 유럽은 경제력과 군사력 모두에서 폐허가 된 반면, 미국은 경제력과 군사력이 전쟁을 통해 더 증가하면서 압도적인 강국으로 올라섰다. 소련은 두차례의 전쟁에서 큰 피해를 입었으나, 전쟁 후에도 상당한 국력을 남길 수있었으며 거대한 국토 덕분에 미국과 경쟁하는 강대국의 지위에 올라섰다.
2차대전이 종결된 시점에 미국의 상대적인 국력은 최고에 도달했다. 미국의 산업생산은 전세계의 절반을 차지했으며, 군사적인 우위가 최고점에 있었다. 이후 유럽의 선진산업국과 일본은 전전의 경제력을 회복했으며, 놀라운 속도의 경제성장을 통해 1970년대 초반에는 서구유럽 전체로 볼 때 미국의 수준을 넘어섰다. 미국은 1960년대 이후 복지확대와 베트남전쟁 때문에 재정적자가 누적되었으며, 1970년대에 들어 마침내 유럽과 일본에 비해 산업 경쟁력이 떨어져 수출보다 수입이 증가했으며 무역적자가 누적되었다.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미국의 상대적인 경제력은 갈수록 줄어드는데, 강대국으로서 전세계에 군사적으로 감당해야 할 역할은 줄어들지 않으므로 딜레마에 빠졌다. 한편 소련은 공산주의 체제의 계획경제의 비효율이 누적되면서 서구와 생산성 격차가 갈수록 벌어졌으며, 경제력 대비 군사적 부담의 면에서 미국보다 더 심한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저자는 1980년대 중반의 시점에서 볼 때, 세계 질서가 미국과 소련의 양극체제에서 다섯개의 강대국이 경쟁하는 다극체제로 가고 있다고 진단한다. 미국의 강대국의 지위는 조금씩 쇠퇴할 것이다. 중국은 지금까지의 경제성장 속도나 영토로 볼 때 앞으로 대단한 강대국으로 부상할 것이지만, 미국이나 소련과 경쟁하는 수준에 도달하려면 갈 길이 멀다. 유럽의 통합이 진전되면서 점차 강대국으로 올라서고 있는데, 문제는 여러 나라들간 이견을 조율하는 비효율 때문에 아무리해도 미국 만큼의 강대국은 되지 못할 것이다. 일본은 대단한 경제력을 쌓았으며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상황이 변하면 이러한 경제력을 군사력으로 전환하여 대단한 강대국이 될 것이다. 소련은 장기적으로 경제적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대단한 군사력을 비축하고 있고 엄청난 영토 덕분에 앞으로도 강대국의 지위를 잃지 않을 것이다. 요컨대 세계의 질서는 국력이 충돌하는 무정부상태의 혼돈이 지속되어 왔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이 책은 국제정치의 역학을 잘 이해할 수있게 하는 유익한 책이다. 특히 1차 대전을 전후한 국제정치 역학을 매우 잘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국가들 간에 상대적 관계를 통해 상황의 변화를 설명하는 데 유능하다. 영국, 프랑스, 스페인, 독일, 합스부르크-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간의 상호 관계를 통해 어떻게 유럽의 정치경제가 지난 오백년간 전개되었는지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저자도 인정하듯 유럽과 미국이외의 지역에 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 지난 오백년 동안 세계의 정치경제는 서구가 지배했기 때문에 그러할 수밖에 없지만. 1991년에 일어난 소련의 붕괴를 예측하지는 못했지만 소련 체제의 어려움을 잘 파악하고 있다. 소련이 붕괴하고, 중국이 부상하고, 일본이 오랜 정체를 겪은 현 시점에서 국제 정세는 1980년대 초반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럼에도 이책은 훌륭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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