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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물질주의'에 해당되는 글 1건
2021. 4. 16. 18:02

Ronald Inglehart. 2018. Cultural Evolution: People's motivations are changing, and reshaping the world. Cambridge. 216 pages. 

저자는 정치학자로 "세계가치관조사" World Value Survey 의 주관자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책은 저자의 가치관 변화 이론을 조사 자료를 이용하여 검증한 그간의 연구 결과들을 요약하여 제시한다. 저자는 근대화이론 modernization theory 를 약간 변형하여,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 사회의 가치관이 물질주의 materialistic values 에서 비물질주의 non-materialistic values 로 바뀐다고 주장하였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그의 주장을 한단계 더 발전시켜 생존을 중심으로 하는 가치관 survival values 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가치관 Expression values 로 바뀐다고 주장한다.

물질적인 생존이 위협을 받는 단계에서 사람들은 권위주의적 지도자를 추종하며, 집단주의 collectivism 가치관을 지지하며, 외부인을 배격하며, 다양성을 허용하지 않으며, 종교를 중시하며, 위계적 질서와 전통을 옹호한다. 그러나 물질적 결핍으로부터 해방되어 물질적 안정을 당연시하는 단계에 이르면 사람들의 삶의 우선순위는 바뀐다.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중시하고, 자유를 중시하며, 개인주의 individualism 가치관을 지지하며, 자율성을 중시하며, 다양성을 허용하며, 세속적 합리적 가치관을 가지며, 외부에 대해 개방적이 된다. 이러한 변화는, 생물학적 진화와 유사하게, 풍요로운 사회에서는 자신을 표현하는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삶과 사회발전에 더 유리하기 때문에 나타난다. 서구 사회가 20세기 후반 지식중심의 경제 knowldege economy 로 이전하면서, 자유, 자율성, 다양성을 중시하는 사람이 획일적 질서를 중시하는 사람보다 생산성이 더 높아진다.

가치관의 변화는 세대의 이전을 통해 이루어진다. 성장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형성된 가치관이 이후 일생동안 변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장기에 물질적 결핍을 겪은 사람은 생존을 중심으로 하는 가치관을 일생 유지하게 되는 반면, 성장기에 물질적 안정을 당연시하며 자라난 세대는 자신의 표현을 중시하는 가치관을 일생 유지한다. 서구 사회에서 2차대전 이전에 성장기를 겪은 세대는 생존을 중심으로 한 가치관을 가진 반면, 전후의 풍요 시기에 성장한 세대는 자신의 표현을 중시하는 가치관을 가진다. 이들이 바로 1960년대의 반문화운동, 베트남전 반대 운동, 여성운동, 동성애 인정을 가져온 세대이다. 

개별 사회 내에서 볼 때는 종교적인 사람이 덜 종교적인 사람보다 삶의 질이 높지만, 사회전체를 단위로 보면 종교를 중시하는 사회는 세속적인 사회보다 구성원들의 삶의 질이 높지 않다. 서구 산업사회는 모두 세속주의 secularism가 확대되어 왔는데, 이러한 추세 예외라고 하던 미국 조차도 근래에 종교의 영향력은 약화되고 있다.

개인주의가 강하고 개인의 선택을 중시하게 되면 여성의 지위는 향상된다. 물질적 생존이 위협을 받을 때에는 권위주의적 남성 우위의 가치관이 지배하지만, 물질적 위협으로 부터 벗어나면 여성의 지위, 성적 자유, 성적 다양성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사회가 발전한다.

물질적 위협으로 부터 벗어나면 집단에 대한 충성도는 약화된다. 이는 자신의 나라를 위해 기꺼이 전장에 나가겠다는 의지의 약화로 나타난다. 즉 물질적 위협에서 벗어나면 사람들의 의식은 평화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변한다.

경제발전이 왜 민주주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저자는 경제발전이 사람들의 가치관의 변화를 가져오고, 이것이 민주주의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기 때문이라는 인과관계를 제시한다. 사람들이 생존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면, 자신을 표현하고 자유를 중시하는 가치관이 지배하게 되고, 이는 자신의 목소리를 정치에 반영시키려는 노력으로 이어진다. 사람들의 의식에서 민주적 욕구, 즉 자신의 의견이 반영되기를 원하는 욕구가 높아지면, 사회적 동원으로 이어지며, 이는 민주적 제도의 발전을 낳는다. 사람들의 민주적 욕구의 정도와 민주적 제도화의 정도가 불일치 할 경우 정치가 불안정해진다. 만일 사람들의 민주적 욕구가 높지 않다면, 아무리 외부로부터 민주적 제도를 도입하여도 이것이 정착하기 어렵다. 대표적인 예가 이라크이다. 중국을 민주화하려면 결국 그들의 경제발전을 도와서 중국인들이 자신의 표현을 중시하는 가치관으로 변화하도록 만드는 것이 정답이다. 중국은 아직도 일인당 소득이 낮아 사람들이 생존의 위협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므로 권위주의 가치관과 권위주의 정치가 지배하고 있다.

경제가 발전하여 소득이 높아지면 사람들의 행복도도 높아진다. 소득이 낮은 수준에서는, 소득이 증가하면서 행복도가 높아지는 속도도 높다. 그러나 소득 수준이 어느 정도에 도달하면, 소득의 증가가 행복도의 증가에 미치는 영향은 약화된다. 그럼에도 소득의 증가가 행복도의 증가를 이끈다는 명제는 어느 소득 수준에서나 항시 옳다. 행복도는 시대나 사회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거나, 행복도는 소득과 무관한 것이라는 기존의 주장은 경험적으로 그릇되다.

1990년 동구권이 몰락하면서 동구권 사람의 주관적 삶의 질은 현저히 하락하였다. 이는 경제적인 후퇴에도 원인이 있지만, 그 못지 않게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공산주의 이념이 몰락하면서 삶의 의지처를 잃은 때문이다. 그 결과 동구권은 공산주의의 몰락 이후 종교의 영향이 높아졌다. 종교가 공산주의의 빈자리를 메운 것이다.

근래에 서구 산업국의 노동계층 사람들은 소득이 정체하고 실업률이 높아지면서 물질적 위협을 느끼게 되었으며, 생존을 중시하는 가치관이 높아졌다. 그 결과 이들은 권위주의와 인종주의를 옹호하며, 대중영합주의 정치인에 지지를 보낸다. 이민자가 20세기 후반 이래 급격히 증가하면서 자신의 삶의 방식이 위협을 당한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자신의 계급적 이익을 벗어나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문화적 가치에 따라 투표하는 성향이 높아졌다. 종교와 전통적 가치를 강조하는 노동계층의 투표 성향은 계급적 이익과는 별개의 독립 차원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서비스 노동자가 늘어나고, 인공지능의 확대로 사무직 노동자의 지위까지 위협받고, 승자독식 winner-takes-all 체제가 뚜렷해지면서, 생존을 중시하는 가치관이 확대되며, 민주주의가 후퇴할 위험이 크다.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하여, 1930년대에 대공황시대에 뉴딜정책과 유사하게,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분배를 바로잡는 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 

저자는 근대화이론의 옹호자로 이 책에서 그의 일생의 연구결과를 집약한다. 그의 주장은 비교적 분명하며, 데이타 분석 결과를 통해 그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이 책의 초반은 자신의 이론을 잘 정리하여 읽을만 하다. 그러나 이책의 중반 이후는 그가 과거에 쓴 논문을 짜깁기하여 덧붙이기 때문에 중복이 많으며 읽기에 지루하다. 여하간 한 학자의 일생의 연구를 요약하여 제시한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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