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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에 해당되는 글 2건
2023. 1. 28. 13:06

William H. McNeill. 1977. Plagues and Peoples. Anchor Books. 257 pages.

저자는 저명한 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전염병이 인류에 미친 영향을 역사 전개에 따라 서술한다. 저자는 서구,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를 아우르는 전지구적인 사람과 물자의 교환에 강조점을 두고 역사 전개를 서술한다. 전염병의 역사는 이러한 역사 접근의 가장 대표적인 주제이다. 17세기 이전까지 전염병에 대한 자료는 미진하므로, 많은 경우 상황 정보를 종합하여 추론한다.

전염병은 인간과 접촉이 잦아지면 '문명화'(civilized)의 과정을 겪는다. 특정 전염병에 처음으로 노출된 인구는 엄청난 인명 피해를 입는다. 한 마을 전체가 몰살하거나, 백명 중 한두 명만 살아남을 정도로 피해가 심하다. 그러나 이렇게 인간에 치명적인 병원체는 대상 인구를 소진한 다음에는 계속 생존할 수 없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에게 덜 심한 피해를 입히는 변종으로 대치된다. 한편 이러한 치명적인 전염병에 노출된 인구는 면역력을 보유하게 되기 때문에, 면역력이 없는 다음 세대로 대체되기 전까지 같은 전염병으로 다시 크게 피해를 입지 않는다. 이렇게 병원균과 인간 상호간에 적응(adaptation)이 진행되면, 처음에는 모든 사람들에게 치명적이었던 전염병이,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태어난 면역력이 없는 아동들에게만 치명적인 병으로 안정화(stabilized)된다. 특정 전염병은 대체로 3~4세대의 주기, 즉 약 100년을 주기로 하여 다시 찾아와 큰 피해를 입힌다. 3~4 세대가 지나면 특정 전염병에 대해 면역력을 가진 사람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 전염병은 대부분의 성인에게 다시 큰 피해를 일으키게 된다. 이러한 전염병의 주기적 출몰이 16세기까지 모든 인류 사회에서는 보편적인 경험이었다.

인류 사회는, 한편으로는 전염병 즉 생물체에 기생하면서 숙주와 함께 살아가는 유기체인 '미세한 기생충'(microparacitism),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인간에 기생하면서 그들을 착취하여 살아가는 인간들인 '큰 기생충'(macroparacitism)이 서로 밀접히 연결되면서 역사가 전개되었다. 큰 기생충의 적응 방식은 미세한 기생충의 적응 방식과 유사하다. 큰 기생충인 지배자들은 생산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생산한 것의 일부를 폭력을 바탕으로 전쟁, 약탈, 세금, 지대, 등의 방식으로 빼앗는다. 이웃 나라를 정복한 지배자들은 초기에는 생산자들이 생존을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혹하게 수탈하여 생산자들의 생산 기반을 몰락 시킨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일부 지배자들은 생산자들이 계속 생산을 할 수 있을만큼 남겨두고 수탈을 하며, 지배자와 생산자간 안정된 공생관계가 자리잡는다. 큰 기생충이 생산자들을 가혹하게 수탈하면, 생산자들의 영양 상태가 악화되고 병원균에 대한 저항력이 떨여져 전염병의 피해가 커진다. 전염병이 몰아닥쳐 생산자들의 생산 능력이 떨어졌는데도, 큰 기생충이 이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수탈을 계속할 경우, 그 사회는 붕괴하게 된다. 이렇게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일부 지배자들은 생산자들을 적정 수준으로 착취하여 둘 간의 관계가 안정화된다.

인류는 그리스 로마 시대, 즉 기원전 500년경에 이르러, 유라시아 대륙 대부분의 지역이 주요 전염병에 접촉한 경험을 갖게 되고, 어느 정도 면역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중동에 기원한 고대 문명과, 중국, 인도 문명 사이에 드물지만 사람과 물자의 교류가 때때로 이루어지면서, 통일되고 문명화된 전염병의 풀이 형성된 것이다. 이 지역에서는 전염병의 주기적 출몰로 인구가 확장과 수축을 반복하면서, 인구 증가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안정 상태가 1,200년대까지 이어졌다.

역사학자들은 전염병이 사건의 전개에 미친 영향을 과소 평가하는데, 이는 전염병의 출몰이 예기치 못한 사건이며, 전염병에 대한 기록이 미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의 중요한 분기점, 예컨대, 서구에서 아테네의 몰락, 페르시아의 패배, 로마제국의 붕괴, 중세 봉건제의 발달, 등에서 전염병의 발흥이 사건의 방향을 바꾸는 데 크게 기여한 요인이다. 또한 황하강 유역에서 시작된 중국문명이 1300년대까지 양쯔강 이남으로 확대되지 못하고, 인도 북부의 세력이 인도 중부 이남으로 확대되지 못한 것 역시, 아열대 지역의 높은 전염병 위험이 서늘한 지역에서 시작된 문명의 남하를 막았기 때문이다. 따뜻한 지역은 전염병의 위험이 높기 때문에, 인구 밀도가 낮으며, 생산력이 높지 못하여 큰 규모의 비생산인구를 부양하지 못하기 때문에 문명이 발달하지 못했다.

전염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몰살을 당하는 혼란 속에서, 사람들은 기존의 이념과 권위 체계에 대한 신뢰를 거둔다. 대신 이러한 혼란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할 새로운 아이디어를 갈구하는 데, 기독교, 불교, 유교는 사람들의 고통을 토양으로 성장하였다. 세속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사람, 특히 가까운 사람들의 갑작스런 죽음에 대해, 기독교는 이를 하나님의 심판, 인간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계획으로 설명하였으며, 죽은 다음 천국에 간다는 믿음으로 사람들의 허무를 달래 주었다. 불교는 이러한 고통과 혼란에 대하여, 세속적 욕망에서 물러날 것과, 죽은 다음 다시 환생한다는 믿음으로 사람들을 위무하였다. 유교는 가족의 유대를 강조하여 조상에서 자신 그리고 후손으로 이어지는 연결에 대한 믿음을 통해 인생의 허무를 잊게 하였으며, 중앙집권 체제에서 가족의 확대로서 국가에 대한 충성과 관료적 의례와 절차를 믿음의 일부로 만들었다.

1300년대에 흑사병이 유럽을 포함한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휩쓸었다. 흑사병은 쥐를 매개로 하여 인간에게 전염되는 질병이다. 이 병원균은 히말라야 북단에 원천을 두고 있었는데, 1200년대 중반 몽고 제국이 이 지역에 정벌을 갔다 돌아오면서 병원균을 가지고 왔으며, 이것이 징기스칸의 서방 정벌을 따라서 중앙아시아 초원지역을 넘어 터키와 헝가리까지 진출했으며, 마침내 1300년대 초에 서유럽을 휩쓸었다. 몽고의 서방 정벌이 헝가리에서 멈추게 된 이유 역시 몽고 정벌군이 흑사병으로 크게 피해를 입어 후퇴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흑사병은 선박을 통해 이탈리아 북부에 유입되어 유럽 전체에 퍼졌다. 서유럽에서는 초기에 큰 피해를 입은 뒤, 이후 다시 흑사병이 몰려왔을 때 격리와 검역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피해를 점차 줄여 나갔다. 반면 동유럽에서는 이러한 방법을 도입하지 않아 1700년대까지도 흑사병의 출몰로 큰 피해를 입었다.

흑사병은 기존의 권위와 이념 체계에 큰 균열을 가져왔다. 중세 시대에 굳건했던 정통 기독교의 조직과 교리 대신에, 신비주의와 내면의 성찰을 강조하는 믿음이 활개쳤으며, 기존의 기독교 교단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1500년대의 종교개혁의 발단이 되었다. 흑사병에 대한 기독교의 대응이 무력한 것을 체감하면서, 기독교에 대한 사람들의 헌신이 약화되었다. 이는 1500년대에 종교의 영향에서 벗어난 르네상스와 과학기술의 발달을 낳았다. 흑사병에 대한 대응 조치가 도시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면서 중앙집권이 확대된 반면 교회와 지역 영주의 세력은 약화되었다. 흑사병은 1300년 무렵에 중국으로부터 화약이 도입되고, 이후 총과 대포가 발명되면서 봉건 영주와 기사의 세력이 약화된 것과 더불어 중세를 붕괴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흑사병은 서유럽 전체에 노동력 부족 현상을 초래했으며, 이는 중세의 생산과 사회관계에 큰 변화를 초래하였다. 한편 이 시기 중국에서는 몽고제국의 후손인 원나라가 망하고 명나라가 들어섰으며 인구가 크게 감소하였는데, 이러한 변화 역시 몽고 지역에서 흑사병의 피해가 심각하여 지배력을 계속 행사하기 어려웠던 것이 주요 원인으로 추정된다.

1400년대 후반에 유럽은 대항해 시대에 접어들었다. 유럽인들은 대서양을 넘어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하였으며, 바다를 통해 아시아에 진출하였다. 유럽 세력이 대양을 넘어 확장하게 된 원인은, 1300년대 이래 거듭된 흑사병의 위협을 이겨내고 인구가 빠르게 성장하였기 때문이다. 반면 같은 시대에 중국의 명나라는 해외로의 진출을 억제하고 중국 대륙 내로 한정하는 정책을 펼쳤다. 중국은 강력한 중앙집권체제가 지배하였으므로, 지배권의 약화를 방지하기 위해 쇄국정책을 펼쳤다. 반면 유럽은 중세의 봉건체제를 벗어나 중앙집권이 강화되는 과정에서 작은 나라로 쪼개졌으며, 이들간에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기 때문에 해외로 진출하는 것이 장려되었다.

아메리카인들은 유라시아의 전염병에 전혀 노출되지 않았었으므로, 유럽인이 가져온 전염병으로 엄청난 인명 피해를 입었다. 마치 유럽인이 아시아로부터 건너온 흑사병에 처음 노출되었을 때처럼. 외부에서 온 전혀 생김새가 다른 사람들로 인해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비참하게 죽은 반면, 이러한 병원균에 면역력을 가진 침략자들은 거의 피해가 없는 것을 보고, 전염병으로부터 살아 남은 생존자들은 삶의 의미를 잃고 자기 파괴적으로 생활하거나, 지금까지 자신의 사회의 믿음과 권위 체계를 부정하고 침략자의 지배와 이념을 순순히 수용하였다.

1600년대 이후 유럽의 인구는 빠르게 증가했다. 웬만한 치명적인 전염병에 대해 면역력을 보유하게 되었으며, 전염병이 돈다고 해도 때 방역과 격리 등의 방법으로 전과 같이 큰 피해를 입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메리카 대륙으로부터 수입한 감자, 옥수수, 알파파 등의 생산성이 매우 높으므로 인구 전반의 영양 수준이 높아졌으며, 아메리카 대륙으로 유럽인이 이동하면서 유럽의 인구 압력이 낮아진 것, 등이 인구 증가의 원인이다. 1700년대에 들어 경험주의의 과학적 접근이 의료 분야에 확대되면서 병원균의 확산을 억제하는 실증적인 방법이 개발 보급되었다. 대표적인 예로, 홍역을 예방하는 예방 접종이 그것이다. 또한 도시의 비위생적인 환경를 개선하는 조치들이 속속 전개되었다. 1800년대 중반 현미경의 발명으로 병원균의 실체가 확인되면서 전염병은 마침내 인류가 실체를 파악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대상이 되었다.

1800년대 중반에 이르러 유럽의 도시들은 주변 농촌지역보다 사망율이 높지 않은 수준에 도달하였다. 그전까지 도시인의 수명은 농촌 사람들보다 낮았으므로, 계속하여 주변 지역으로부터 도시로 인구가 유입되어야만 도시가 유지되었다. 1800년대에 서유럽의 위생과 의료 지식이 전세계의 유럽인이 진출한 지역에 보급되면서, 한 지역의 사람들이 외부로부터 유입된 새로운 전염병에 노출되어 몰살당하는 현상은 사라졌다.

이 책은 거의 반세기전에 집필되었음에도 대단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서유럽에 국한된 시야를 세계로 확대시키고, 지배자와 정치 분야에 집중된 전통적 역사 서술을 넘어, 지배자와 피지배자를 아우르고 사회전반의 변화를 거시적으로 통찰하는 안목을 제공한다. 정말 대단한 책이다.

 
2022. 8. 12. 19:38

Frank Snowden. 2019. Epidemics and Society: from the Black Death to the Present. Yale University Press. 505 pages.

저자는 의료사를 전공한 역사가이며, 이 책은 인류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 주요 전염병을 전반적으로 검토한다. 서구유럽과 미국 사회를 중심으로 하며, 흑사병, 홍역, 황열병, 이질과 장티프스, 콜레라, 폐결핵, 말라리아, 소아마비, 에이즈, 사스와 에볼라에 이르기까지 장을 달리하며 다룬다.

서구의 의료는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와 로마의 갈렌에서부터 비롯한다. 그들은 인간의 질병을 신이나 악마의 행위로 보지 않고 자연현상으로 보는 인식의 전환을 가져왔다. 병이란 인간의 성질을 구성하는 네가지 요소가 불균형 상태에 빠진 결과라고 주장했다. 해로운 기운을 제거하는 개입을 통해 병을 치유할 수 있는데, 사혈하는 방법을 주로 많이 썼다. 이러한 의료 철학은 19세기 중반까지  서구 의학계를 지배하였다. 19세기 중반 현미경의 발명으로 세균의 존재가 확인되고, 자연발생적으로 세균이 만들어지지 않으며, 감염에 의해 세균이 전파된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야 비로서, 오랫동안 서구를 지배한 의학이론은 세력을 잃게 되었다.

흑사병은 유럽 사회를 오랫동안 여러번 휩쓸었다. 1200년대 초의 흑사병이 제일 심하기는 했지만, 1700년대에 이탈리아에서 마지막으로 휩쓸고 지나갈 때까지, 서구 사회는 흑사병을 때때로 경험하였다. 흑사병의 발생했을 때 그 지역을 집단적으로 격리하는 방법이 유일한 방어책이었다. 흑사병을 매개하는 쥐를 잡는 운동을 전사회적으로 벌인것이 약간의 퇴치 효과가 있기는 했으나, 흑사병이 서구에서 사라진 원인은 확실치 않다. 덜 심한 증상을 보이는 흑사병은 여전히 개발도상국에서 종종 발병한다.  

홍역은 인류와 오랫동안 함께하였으며, 매우 보편적인 전염병이다. 한때 유럽에서 전 성인 인구의 5분의 1이 홍역에 걸릴 정도로 흔한 병이다. 이 병에 걸리면 죽거나 곰보가 되었기 때문에, 19세기 초반까지 곰보는 주위에서 흔히 볼 수있었다. 19세기 초반 제너의 종두법이 보급되면서 점차 잡히기 시작했다.

황열병, 이질, 장티프스는 나폴레옹의 몰락과 밀접히 연관된다. 서인도제도의 프랑스 식민지인 아이티에서 노예 반란이 일어났을 때, 나폴레옹이 파견한 군대가 황열병으로 고생하다 결국 패퇴하였다. 나폴레옹은 아메리카 대륙에 교두보를 잃게 되어, 그당시 북미에 프랑스 거대한 식민지 영토였던 루이지아나를 그당시 신생국이던 미국에게 매각하는 방식으로 철수 하였다. 나폴레옹이 러시아 정벌에 나섰을 때, 이질과 장티프스로 많은 병사를 잃고 추위에 시달리다 결국 러시아 전선에서 크게 패배하였다. 전염병이 역사의 방향을 바꾸는 데 일익을 담당한 것이다.

19세기 프랑스에서는 파리의 대형 병원을 중심으로 전염병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일었으며, 영국에서는 위생 상태를 높이는 사회적 운동이 크게 벌어졌다. 거주지 주변의 오염물에서 질병이 시작된다는 새로운 이론이 힘을 받으면서, 상하수도를 설치하고, 수세식 화장실을 도입하고, 거리의 오물과 물웅덩이를 제거하는 등으로 전사회적으로 위생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벌인 결과 전염병 발생이 크게 줄었다. 위생을 높이는 사회운동은 유럽 대륙과 미국으로 퍼져나가 1차대전때까지 활발하게 이어졌다. 서구에서 전염병이 줄어들고 수명이 늘어난 데에는 의료적 처치보다는 위생 상태가 개선된 덕이 훨씬 크다. 소득이 높아지고, 영양상태가 개선되고, 교육수준이 높아진 등 사회적 요인이 19세기 중반 이래 사람들의 건강 수준을 꾸준히 향상시켰다.

콜레라는 원래 인도에서 발원한 전염병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열악한 생활에서 집중적으로 발병하였다. 흑사병, 홍역 등 이전에 주요 전염병이 대체로 계급을 불문하고 전반적으로 발병한 반면, 콜레라는 가난한 사람이 사는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병하는 특징을 보인다. 이탈리아 나폴리의 가난한 지역에서 콜레라가 주로 발병한 반면, 부유한 이웃 지역에서는 콜레라가 발병하지 않은 것을 예로 하여, 콜레라의 퇴치는 빈곤자의 열악한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방법으로만 가능함을 보여준다. 선진 산업국에서는 이제 콜레라가 퇴치되었지만, 빈곤이 만연한 지역, 즉 남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등지에서는 여전히 콜레라가 때때로 창궐한다. 

폐결핵은 19세기 중반 병원균이 확인되기 이전까지는 유전적인 체질에 기인한 질병으로 여겨졌다. 폐결핵은 매우 서서히 진행되고 유명 지식인들도 종종 걸렸으므로, 낭만적인 이미지가 따라다녔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이래 폐결핵도 다른 전염병과 다를 것 없다는 부정적 이미지가 붙여지면서, 폐결핵을 퇴치하는 사회적 운동이 벌어졌다. 맑은 공기를 쐬면서 요양하는 것이 좋다는 견해가 지배하면서 요양원이 많이 세워졌다. 그러나 2차대전 이후 항생제가 발견될 때까지, 자연 치유를 제외하고 폐결핵에 걸려 낫는 신뢰할만한 방법은 없었다.

말라리아는 더운 기후에서 모기에 의해 전염되는 질병인데, 2차대전 이후 미국이 살충제롤 대량으로 살포하여 모기를 박멸하는 운동을 통해 말라리아를 퇴치하려 하였다. 이러한 노력이 집중적으로 전개된 곳으로, 이탈리아의 사르디니아 섬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살충제의 대량 살포만으로 말라리아를 퇴치하려는 노력은 실패하였다. 살충제 살포와 함께 예방적으로 키니네를 취약 인구가 집중적으로 복용하고, 소득 수준의 향상으로 주거환경과 영양상태가 개선되는 등의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마침네 사르디니아 섬에서 말라리아가 완전히 퇴치되었다. 사르디니아의 퇴치 사례는 전세계의 열대지방에서 지금도 말라리아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어나가는 현실에 한가닥 희망을 제시한다.

이 책은 뒤로 갈수록 글이 건조해지고 내용의 정제가 덜 된 보고서를 읽는 느낌이 든다. 전염병에 대해 전반적으로 알 수 있으나, 분석의 깊이가 얕고, 잡다하게 많은 사실을 망라하는 방식으로 서술하여 읽는 재미가 덜하다. 예일대학교의 개방대학 강의안에 기초해 만든 책이기 때문에 그런것 같다. 서구의 전통 의학을 지배한 히포크라테스와 갈렌의 의료 이론에 대해 서술하는 부분을 읽으면서는 우리나라의 한의학과 흡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실험과 관찰에 의지하여 새로운 과학적 지식의 발전을 장려하기보다, 고전과 정통 이론을 고수하고 이것에서 벗어나는 시도를 배격하는 방식은, 마치 동의보감을 여전히 금과옥조로 인용하는 한의학의 태도와 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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