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dolf Vrba. 2020(2002). I escaped from Auschwitz: The shocking true story of the world war II hero who escaped the Nazis and helped save over 200,000 Jews. Racehorse publishing. 446 pages.
저자는 17세에 슬로바키아에서 유태인 집단 이주 명령에 따라, 나찌의 유태인 집단학살로 유명한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이송되어 1942년에서 1944년까지 약 2년간 지내다가 탈출에 성공하였다. 그는 탈출 후 유태인 조직의 도움으로 아우슈비츠의 실상이 전세계에 알려지도록 했으며, 이후 전범 재판에 증인으로 나서 유태인 학살 잔학행위에 연관된 사람들의 처벌에 앞장섰다. 이 책은 아우슈비츠에서 벌어진 일을 상세히 묘사하고, 그가 어떻게 탈출에 성공했는지, 탈출 후에 어떻게 아우슈비츠의 실상을 외부로 알렸는지 설명한다. 그가 수용소에 있던 2년동안 1,750,000명이 죽었다고 진술했는데, 나치의 유태인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아우슈비츠에서 200~300만명이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어떻게 그렇게 짧은 시간에 전유럽으로부터 그렇게 많은 유태인을 잡아들여 신속히 살해할 수 있었을까. 유태인들은 유럽 전역에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박해 받고 있었다. 따라서 나찌 혹은, 나찌에 협력하는 지역 정부에서 그들을 새로운 곳으로 이주시킨다고 했을 때, 유태인들은 박해받는 곳을 떠나 미지의 삶의 장소로 이주한다는 아이디어에 대해 큰 거부감을 가지지 않았다. 아우슈비츠로부터 탈출하여 그곳의 실상을 폭로한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나찌의 집단 학살 정책에 대해 아무 정보도 없었다. 나찌는 아우슈비츠의 실상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철통 보안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많은 유태인들은 자식의 앞날을 위해 지금 사는 곳보다 앞으로 가는 곳이 더 나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이주 열차에 순순히 올라탔다.
이 수기의 대부분은 저자가 어떻게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죽음을 피할 수 있었는지 설명한다. 아우슈비츠에서 대량 학살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려면 많은 보조 인력이 필요한데, 수용자들 중 건장한 사람을 선발하여 이러한 일을 맡긴다. 이들은 강압속에서 자신의 생존을 위하여 사람들을 대량으로 죽이는 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이 작업에 동원된 수용자들은 굶주림의 위협이 없었다. 이들에게는 규칙을 위반하지 않고 건강을 계속 유지하는 한, 생존이 확보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아우슈비츠에서 1년 이상 생존하는 사람은 드문데, 저자가 2년이나 죽지 않고 버텼다는 것은 예외적이다.
저자는 젊음의 활기 뿐 아니라, 상황을 잘 판단하고 신중히 행동하는 영민함을 갖추었다. 그는 독일어, 러시아어 등 다섯개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는데, 이것이 힘있는 사람의 호감을 얻는데 유용하게 작용했다. 윗 사람이 그를 잠시 접해보고 호감을 느껴 그와 함께 일하도록 하는 일이 여러번 벌어진다. 사회적인 지위의 대물림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 강제 수용소에서 도, 사람들의 인적자본의 차이가 지위의 차이, 삶과 죽음의 차이를 만들어냈다. 그는 전쟁후에 대학에 진학하여 의학을 공부하고 이후 의학자로서 하바드 의대에서 교수까지 하였다. 그는 수용소 내에서 드문 인재(elite)였음은 물론, 수용소 밖에서도 드문 인재(elite)였던 것이다.
강제 수용소에서 수용자들 사이에 지위의 불평등은 인적 자본과 운이 결합하여 만들어졌다. 그는 죽을 고비를 여러번 겪는데, 그때마다 운이 함께 하였다. 수용소에서 그가 쌓은 신뢰관계는 매우 중요한 자산이었다. 누구를 신뢰하고 누구를 신뢰하지 않을지 잘 판단하는 것은 삶과 죽음 사이의 결정인데, 그는 남의 마음을 읽는 눈이 있었다. 십장의 명령에 따라 규칙을 위반하다 발각되었을 때, 그는 엄청난 고문을 받으면서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 고문의 후유증으로 거의 죽음의 문턱까지 갔으나, 그 십장의 관리하에 특별 대접을 받으면서 건강을 다시 회복할 수 있었다.
그가 수용소에서 생존을 위해 노력한 것은, 처음에는 순전히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였지만, 집단 학살의 참상을 대면하면서 마음 속에서 분노가 쌓이고, 이를 그대로 지속하게 내버려두어서는 안된다는 사명감이 그를 계속 살게 한 힘이 되었다. 그는 아우슈비츠에 이송된 사람들이 그곳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대량 학살 사업을 가능케 하는 동력이라는 점을 깨닫고, 자신이 탈출하여 외부세계에 이곳의 실상을 알리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았다. 아우슈비츠에 들어온지 얼마 안되서부터 탈출을 염두에 두고, 그의 표현대로 과학적으로 치밀하게 접근하였다. 아우슈비츠 보안의 허점을 면밀히 탐색하고, 다른 탈출자들의 실패를 꼼꼼히 분석하였으며, 섣부른 충동이나 탈출 제안에 쉽게 빠져들지 않았다. 외부로 탈출하여 실상을 폭로할 것을 목표로 살았기 때문에, 아우슈비츠에서 학살되는 사람들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수집하고, 자신의 기억속에 저장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가 탈출하여 슬로바키아의 유태인 조직 사람들에게 헝가리 유태인들의 대량 이주 학살이 계획되고 있음을 경고했음에도, 헝가리 유태인 조직이 자신의 나라의 유태인들에게 대량 이주의 실상을 알리지 않고 죽게 내버려둔 것에 분노했다. 전쟁후에 알게 되었는데, 헝가리 유태인 조직의 우두머리가 나치 우두머리와 거래를 하였다는 사실이다. 그 거래의 내용은, 상당한 규모의 헌금을 내는데 대한 보상으로, 헝가리 유태인 상류사회 사람들 1,800명이 스위스로 도망가는 것을 허용하는 대신, 일반 유태인들이 대량 이주의 실상에 무지한채 순순히 이주 정책을 따르도록 한 것이었다. 그 결과 헝가리 유태인 약 40만명이 아우슈비츠에서 죽었다.
이 책의 서문에서 자신이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를 설명한다. 1960년 초 영국에서 지낼 때 지역 신문에 아우슈비츠의 집단 학살 실상을 폭로하는 기사를 게재하였는데, 주변 사람들이 그의 말을 믿지 않고 오히려 그를 악의적인 사람으로 비난하는데 충격을 받고 아우슈비츠에서 일어난 일을 자세히 설명하는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아직까지도 나찌의 집단 학살이 거짓이라고 믿는 사람이 서구에서 적지 않다. 어떻게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그것도 부녀자와 어린아이들까지 포함하여, 잔혹하게 수백만이나 죽일 수 있겠는가 하고 의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보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남을 죽이고 비참하게 만드는데 기꺼이 참여한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유태인의 집단 학살 사업은 이에 관련된 여러 사람들에게 이익을 제공하였다. 유대인 집단 강제이주 정책을 집행한 지역 사람들은 유태인이 떠나면서 남긴 집, 사업체 등 소중한 재산을 거져 빼앗았으며, 아우슈비츠에서는 유태인이 가지고 온 것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하여 독일로 보냈다. 아우슈비츠의 수용자들은 인근에 있는 독일의 군수 공장에서 강제 노역을 하였다. 유태인을 처분하면서 그들이 지금까지 쌓았던 재산들은 독일과 지역 경제에 윤활유로 작용한 것이다.
이 책은 인재(elite), 인적 자본(human capital)이란 것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강제 수용소에서도 인재는 필요하며, 인재는 생존의 확율이 높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인간 사회는 근본적으로 불평등하다.
'과일나무 > 살구나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글의 인사관리 정책 (0) | 2023.02.15 |
---|---|
가장 현실적인 도덕율을 찾아서 (0) | 2023.02.12 |
인간의 심리적 결함은 진화의 산물이다. (0) | 2023.01.30 |
전염병이 인류에 미친 영향 (0) | 2023.01.28 |
소재에 대한 상식을 넓히다 (0) | 2023.0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