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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나무/배나무'에 해당되는 글 51건
2024. 12. 6. 22:10

마크 E. 윌리엄스 (김성훈 옮김). 2017(2016). 늙어감의 기술: 과학이 알려주는 나이드는 것의 비밀. 현암사. 348쪽.

저자는 노인의학 전문의이며, 이 책은 과학적 연구결과와 자신의 오랜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잘 늙어가는 방법을 제시한다.

현재 서구에서 기대수명은 80이 넘는다. 그러나 늙어가는 것 및 노인에 대한 인식은 이러한 변화에 따라미치지 못한다. 미국에서 1900년대 초반까지 기대수명이 47세였으며, 로마시대에는 35세에 불과했다. 이제 일하는 기간 만큼이나 오랜 시간을 노인으로 지내야 한다. 노년기는 인생의 잔여 기간이 아니며, 노년기의 삶을 죽음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존재로 살아서는 안된다. 과거 노인에 대한 지식과 편견이 현재의 사람들을 지배하는데, 이것은 과학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사람은 태어났을 때가 가장 서로 유사하며,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 사이에 차이가 벌어진다. 노년기는 젊을 때보다 사람들 사이의 차이가 더 크다. 건강, 정서적 상태, 사회경제적 지위 등에서, 하나의 범주로 뭉뚱그릴 수 없을 정도로 노인들 사이에 편차가 크다. 자신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노인들 사이에 차이가 크게 벌어진다.

잘 늙는다는 것은 나이가 들어서도 건강하고,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의욕적으로 사는 것이다. 이를 위해 다음 몇가지를 필수적으로 이행해야 한다. 첫째, 우리의 몸에 자극을 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규칙적인 운동과 균형잡힌 영양 섭취가 요구된다. 둘째,  머리에 자극을 주는 것이다. 노년기에도 지적인 활동을 계속 해야 한다. 셋째, 감정을 잘 다스리는 것이다. 노화에 따라 붙는 부정적 감정에 굴복하지 말고, 자신의 역할과 존재에 자긍심을 가지고 살도록 해야 한다. 넷째는 자신의 인생과 죽음에 대한 성찰과 함께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는 것이다. 죽음을 회피하려 하지 말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도록 심성을 길러야 한다.

노인의 몸이나 정서에 특별히 도움이 되는 비책은 없다. 수명을 늘이려고 악착같이 노력하기보다는, 사는 동안 건강하게 살고 삶의 질을 높이려고 노력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에너지 사용이다. 노년이 되어도 삶에 목표를 세워서 열심히 사는 것이 건강한 노년의 삶의 핵심이다. 돈을 버는 일을 그만둔다고 하여, 자신의 활동이나 사회 관계가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노년의 삶을 어떻게 영위하는가는 각자 하기 나름이며, 그 결과 노인들 사이에 차이가 크게 나는 것이 현실이다.

이 책은 과학자로서 저자의 지식과 의사로서의 경험이 잘 녹아 있는 설명과 조언을 제시한다. 특별히 새로운 말은 없지만, 노년에 대한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 검토에서, 생물학적, 생리학적, 임상적 검토에 이르기까지 균형있고 간명하게 설명한다. 다만 후반부에 영혼에 자양분을 공급하는 제목으로 이야기하면서 중언부언하는 인상을 준다.

2024. 12. 4. 11:15

크리스토프 드뤼서 (전대호 옮김). 2009(2015). 음악본능: 우리는 왜 음악에 빠져들까? 해나무. 466쪽.

저자는 과학 저널리스트이며. 이 책은 뇌과학과 음악학 분야의 연구를 바탕으로 하여 음악을 감상하고 직접 하는 것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섭렵한다. 저자의 서술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음악을 이해하고 즐기는 능력은 인간 본능의 일부이다.

역사상 인류 모든 사회에 음악이 존재하는 데, 이는 진화의 산물이다. 배우자를 구하는 짝짓기 행위의 일부로 발달했다는 가설도 있지만, 사회구성원의 통합을 도모하는 목적에서 발달했다는 가설이 더 신빙성이 있다. 모든 인류 사회에서 음악 활동은 개인이 홀로 하는 행위이기 보다, 공동체 구성원에게 공유되고 함께 참여하는 활동으로 존재했다. 함께 춤추고 음악을 하면서 공동체 구성원은 결속을 다졌다.

음계는 문화에 따라 다른 데, 태어난지 얼마 안된 유아는 특정 음계에 대한 선호가 없는 것으로 실험 결과 밝혀졌다. 그러나 태어난지 불과 1년이 되기도 전에 유아는 자신이 속한 문화의 음계에 익숙하고 이를 선호하는 성향을 보인다. 화음에 대한 선호는 생리적 근거가 있다. 협화음을 들을 때 우리의 두뇌는 불협화음을 들을 때와는 다른 반응을 보인다. 자신을 음치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약간의 훈련만 하면 음정을 맞출 수 있다. 이는 우리의 뇌가 본능적으로 음고를 구별하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음들 간에 상대적 거리를 구별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매우 소수의 사람만이 음의 절대적 주파수를 인지하는 절대 음감을 가지고 있다. 박자와 리듬 역시 마찬가지로 인간의 본능의 일부로,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다양한 박자와 리듬을 구별하고 따라하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인간은 익숙한 음악을 쉽게 식별해내는 놀라운 능력을 보인다. 불과 첫 몇 음만 듣고도 사람들은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수많은 음악 중의 하나와 쉽게 매치시킨다. 사람들은 자신이 익숙한 음의 진행을 여러번 들으면서 고착화시킨다. 서구 음악의 기본적인 화음 진행 규칙에서 벗어나 진행되면, 전문적인 음악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도 금방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낀다. 이는 일종의 '통계적 학습'의 결과인데, 많이 지나갈수록 숲속에 길이 나는 것과 마찬가지의 원리로서, 많이 접할수록 익숙하게 느끼고 앞으로의 진행을 예상하게 되며, 그러한 예상에서 벗어날 때, 이상하다고 느끼고 긴장을 느낀다. 예컨대 서구의 음악은 시작할 때의 조성에 맞는 기본음으로 끝을 맺는 것이 보통인데, 기본음이 아닌 음에서 음악이 끝나면 무언가 더 이어져야만 할 것 같은 미진한 느낌이 든다.

음악은 감정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사람들은 대체로 15세에서 25세 사이에 들은 음악을 일생 동안 기억하며, 특정 음악을 자주 들었던 때 느꼈던 감정이, 이후에도 그 음악을 다시 들으면 바로 연상된다. 과거의 특정 감정을 재생시키는 데, 음악은 냄세 만큼이나 뚜렷하게 연상 작용을 유발한다.

음악을 직접 하면 다른 어떤 활동보다 뚜렷이 우리의 뇌가 변화한다. 죽은 음악가의 뇌는 다른 직업에 종사하다 죽은 사람의 뇌와는 외관에서도 구분된다. 두뇌 활동에 문제가 있는 환자, 예컨대 치매나 파킨슨 병 등의 경우에, 노래를 부르는 등 음악을 직접하는 행위를 통해 뇌 전체의 활동을 촉진시켜 뇌의 퇴화를 늦추는 효과가 있다.

음악을 전문적으로 하는데는 오랜 수련의 과정이 필요하며, 어릴 때 시작할수록 학습의 효율이 높다. 전문 연주자는 10,000 시간, 즉 매일 3시간씩 10년간 연습을 해야 도달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 음악을 배운다고 해서 실력이 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음악을 배우는 목표가 전문 연주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배우고 연습하는 과정 속에서 음악을 즐기는 데 둔다면, 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음악을 배울 가치가 있다. 물론 특정 악기를 웬만큼이라도 능숙하게 다루는데는 오랫동안 지루한 연습 과정을 참고 견뎌야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음악 자체가 주는 즐거움이라는 보상도 함께 한다. 피아노보다는 기타가 배우기 쉬우며, 가창법을 배워 아마추어 합창단에서 활동하는 것에서도 새로운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이 책은 고전 음악보다는 일반 대중 음악을 주로 예로 들며, 자신의 음악 체험을 덧붙이면서 많은 연구 성과를 쉬운 서술로 요약하여 제시한다. 이야기를 전개하는 솜씨가 뛰어나며, 번역도 자연스럽게 해서, 읽는 내내 흥미롭고 즐거웠다.

2024. 11. 29. 16:44

David Tuckett. 2011. Minding the Markets: An Emotional Finance View of Financial Instability. Palgrave Macmillan. 206 pages.

저자는 정신분석학자이며, 이 책은 펀드매니저들에 대한 심층 인터뷰 자료를 배경으로 금융 버블이 일어나는 기제를 설명한다.

금융자산은 기본적으로 미래의 가치가 불확실하다. 금융자산 이론에 따르면, 현재까지의 모든 정보와 지식은 현재의 가치에 반영되어 있다. 따라서 자산에 대한 과거의 지식을 근거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금융자산의 불확실한 미래 가치는 어떤 확율 함수에 의해서도 파악할 수 없다. 이러한 이론은 완전하게 작동하는 시장을 전제로 하는 것인데, 실제 시장의 움직임에는 틈이 있으므로, 이 틈을 이용하여 시장 평균 수익율을 상회하는 이익을 실현하는 것이 펀드매니저의 목적이다.

펀드 매니져는 자신의 투자 행위를 뒷받침하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예컨대, 기업의 펀더맨탈을 남보다 정확히 파악하여 펀더맨탈에 기초한 가치와 시장 가격 간의 차이를 이용하는 가치투자를 한다거나, 시장의 단기 출렁임에 흔들리지 않고 펀더맨탈에 기초한 장기 투자를 한다거나, 남들이 못보는 부분, 남들이 가지지 않은 정보를 이용하여 특정 기업의 진실한 가치를 파악하여 예외적인 투자를 한다는 등이다. 펀드 매니져와 금융회사들은 이러한 이야기를 고객에게 제시하여 투자금을 끌어들이며,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삼는다. 

펀드 매니져는 자신이 선택한 기업에 대해 감정적인 애착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제시하는 이야기에서 이러한 감정적인 애착을 읽을 수 있다. 자신이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엄청난 물건' fantastic object 를 포착했다거나, 주식이 자신의 기대와 달리 움직이면 '배반' betrayed 을 당했다고 느낀다. 금융 자산이란 기본적으로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이러한 감정적 애착 없이 냉정하게 결정을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감정"이 그들의 행위를 이끄는 안내자이고 동력이다. 펀드 매니저는 자신이 투자한 자산의 상승과 하락을 항시 감시하고, 업계에서 수익에 따라 펀드매니저에 대한 등수를 매기는 것을 확인하지 않을 수 없다. 펀드 매니져는 엄청난 감정적 스트레스 속에서 매일을 살며, 이것이 그들의 일의 기본적인 속성이라고 받아들인다.

금융자산의 미래는 근본적으로 불확실하므로, 그들의 이야기가 투자 성공으로 뒷받침될 때도 있지만, 그못지 않게 투자 실패를 낳는 경우도 많다. 그들은 투자 결과에 따라 큰 감정적인 기복을 경험한다. 주식이 자신의 예상과 달리 움직일 때, 펀드 매니져는 자신이 제시한 이야기에 유리한 쪽으로 데이터를 일방적으로 해석하는 '감정적으로 나누어진 상태' (divided state)로 자신을 방어한다. 즉 시장의 위험을 통합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투자한 주식에 유리한 방향으로 시장의 데이터를 일방적으로 해석하고, 펀드 매니저 본인 및 투자자에게 그렇게 설명한다. 손실이 지속되면 그들은 결국 직장을 잃기 때문에, 자신이 투자한 주식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감정적으로 반응한다. 장기투자를 추구한다고 하지만, 단기에라도 손실이 나면 투자자로부터 압력이 높아지기 때문에,  주가 하락에 대한 펀드 매니져의 감정적 개입과 자기 방어는 심할 수 밖에 없다. 

펀드 매니저가 선택한 주식의 가치가 상승하면 그가 만들어낸 이야기가 맞다고 확신하며, 반대로 가치가 하락할 때에도 그가 만들어 낸 이야기가 맞다고 믿고, 그 이야기로부터 하락한 이유를 도출하여 자신과 고객을 설득한다. 하락이 지속되어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자신이 만들어 낸 이야기에 오류가 있다고 인정하고, 그 주식을 손해를 보고 팔고 손 뗄 수 밖에 없다. 금융자산의 미래 가치는 예측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함에도, 펀드 매니저는 자신이 만들어 낸 이야기를 믿으며 그러한 이야기를 통해 미래의 불확실성을 통제하고 있다는 믿음 속에서 생활한다. 그러한 믿음이 냉정한 현실과 부딛쳐 깨지면 배반당했다고 느끼고 좌절하는 등 엄청나게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인다. 이것이 바로 펀드 매니저로 오랫동안 일하는 사람이 드문 이유이다. 어느 펀드 매니져이든 자신이 만든 이야기에 대한 믿음 없이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객이 펀드매니져에게 기대하는 역할은 단순히 손실을 입지 않는 수준을 넘어, 시장 평균 수익율을 상회하는 것이다. 다른 펀드매니져나 금융 회사보다 우월한 수익율을 기록하지않으면 고객은 떠난다. 펀드 매니져는 기업의 펀더맨털에 기초해 독립적으로 투자한다고 하지만, 다른 펀드 매니져들이 어떻게 하는지를 항시 염두에 두면서 그들과 보조를 맞추어야 한다. 다른 펀드 매니져들이 높은 수익을 올리는 기회를 자신만 놓친다면, 그 또한 부정적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혼자서만 동떨어지게 행위할 때 감당해야 할 위험이 크기 때문에, 펀드 매니져는 대체로 업계의 집단적인 감정 group feel 에 휩쓸려 움직인다.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전에, 일부 펀드 매니져들은 금융기관이 진 과도한 리스크를 염려했지만, 그들 역시 다른 펀드 매니져와 마찬가지로 투자하였다. 펀드 매니저는 업계의 평균을 상회하는 예외적인 존재여야 하며, 동시에 업계의 공통된 투자 성향에서 크게 벗어나서는 안되는 모순된 처지에 놓여 있다.

금융시장에 참여자는 각자가 감정적으로 깊이 개입되어 있으며, 집단적인 감정에 쏠려서 움직이므로, 이러한 환경에서 금융시장의 버블이 발생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특정 금융자산의 위험도가 높아졌다고 해도, 큰 수익을 올리려는 개별적인 욕구와 집단적인 감정이 결합하며, 해당 자산의 위험을 통합적으로 보기보다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일방적으로 데이터를 해석하는 '감정적으로 나누어진 상태'를 보일 때, 해당 자산의 위험이 과도하게 상승하는 것을 제어할 수 없다. 요컨대 위험도의 가파른 상승 다이나믹은 금융시장의 참여자가 엄청나게 큰 감정적 개입을 하는데 기인한다.

물론 큰 돈을 벌고 잃는 일에 감정적으로 크게 개입하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금융 버블을 막으려면 금융 시장의 참여자가 감정적으로 크게 개입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금융 투자가 '따분한' boring 일이 되도록 해야 한다. 금융 투자를 통해 큰 돈을 벌 기회가 존재한다는 환상을 버리도록 해야 한다. 펀드 매니져와 금융회사의 장기적인 투자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한다면, 사람들은 이러한 환상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일시적으로 예외적인 성과를 거둘 수는 있지만, 오랜기간 지속적으로 예외적인 성과를 거둘 수는 없기 때문이다. 금융자산의 미래 가치가 정말 불확실하다면, 합리적인 방식의 투자 수익은 결국 시장 평균에 수렴할 수 밖에 없다. 펀드 매니징 업계는 그들이 만들어낸 환상적인 이야기의 산물에 불과하다. 고객이 그들이 제시하는 환상을 사는 순간, 금융 버블은 만들어지고 언젠가 폭발하는 길로 나아갈 수 밖에 없다.

이 책은 금융 시장의 참여자들의 인터뷰를 기초로 금융 투자 업계를 분석한 흥미로운 책이다. 인터뷰 자료를 읽다보면 펀드 매니저들이 마치 경마판의 말인 듯한 생각이 들며, 그들에 대해 동정심이 느껴진다. 근래에 인덱스 펀드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데, 시장의 평균을 추구하는 인덱스 펀드에는 감정이 개입하지 않기 때문에 금융 버블이 생기지 않아야 한다. 물론 알고리즘 투자에 따른 시장 쏠림은 또다른 문제이지만. 이 책이 다루는 주제 자체는 흥미롭지만 저자의 서술은 매우 읽기 어렵다. 내용의 반복이 심하며, 중언부언 필요 없이 덧붙여 말하는 식으로 글을 복잡하게 구성하여, 그만 읽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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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1. 21. 21:58

Dieter Helm. Net Zero: How We Stop causing climate change. William Collins. 240 pages.

저자는 경제학자이며, 이 책은 지금까지 지구 온란화를 멈추려는 세계의 시도를 비판하면서, 현실적으로 실현가능한 정책을 제시하고, 정치 경제적으로  그러한 대책이 가장 합리적인 이유를 설명한다.

1990년 유엔이 주도한 교토협약이래, 2015년 파리협정에 이르기까지, 세계는 지구온난화를 멈추기 위하여 회의를 무수히 하고 엄청나게 많이 논의하였다. 그러나 지난 30년간 지구의 대기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지속적으로 증가하였으며,  앞으로도 이대로라면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즉 지난 30년간 국제사회의 노력은, 실제 지구의 대기중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데에는 전혀 효과가 없었다.

지금까지의 노력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top-down 방식의 규제였다. 국가 대표들이 만나서 서로 감축 목표를 협의하여 정하고, 이 목표 달성을 위해 각 나라가 국내 정책을 만들어 집행하는 방식이었다. 문제는 세계에서 압도적인 규모의 이산화탄소 배출국인, 중국, 미국, 인도가 이러한 감축 협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중국과 미국은 자신의 주권이 국제협정에 의해 제한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이들로부터 구속력 있는 동의를 받아내지 못할 것이다. 국제사회에서는 이들 강국이 설사 약속을 위반한다고 하여도 제제를 가할 도리가 없기 때문에, 국제회의를 거듭하면서 참가국으로부터 감축 약속을 쥐어 짜내는 것은 사실상 효과가 없다. 한편, 일방적으로 감축 목표를 정하고 어느 정도 성실히 이행하는 유럽 조차도,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는 행동하지 않는다.

유럽은 1990년을 기준점으로 하여, 유럽 지역으로부터 이산화탄소의 배출을 줄이는 방향으로 노력하여 상당한 진척을 보였다. 유럽에서는 이제, 이산화탄소 배출이 특히 많은 석탄을 거의 퇴출시켰으며, 에너지 사용 효율을 높이고, 에너지 집약 산업을 점차적으로 퇴출시키고, 이산화탄소 배출 허가권을 거래하는 방식으로 배출 총량을 규제하는 등, 여러 수단을 동원하여 이산화탄소 배출을 감축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유럽의 노력은, 에너지 집약 산업의 생산물을 중국 등에서 수입함으로서,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는 지역을 유럽으로부터 지구 상의 다른 지역으로 옮긴 것에 불과하다. 유럽의 탈산업화로 deindustrialization 인하여, 이 지역에서 이산화탄소의 배출이 줄어든 것일 뿐이다. 유럽인들이 이산화탄소를 많이 사용하는 에너지와 상품을 계속 선호하고 소비하는 한, 지구 대기에서 이산화탄소를 줄인다는 것은 헛구호에 불과하다. 유럽에서는 이산화탄소의 배출이 줄어들겠지만, 유럽인이 사용하는 물품을 생산하는 지구상의 다른 곳에서는 이산화탄소의 배출이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인들은 이러한 자명한 사실에 애써 눈감고 있다.

이산화탄소의 배출을 진짜로 줄이려면, 이산화탄소 배출을 초래한 사람이 그 비용을 부담하게 하는  방법이 가장 효율적이다. 지금까지는 이산화탄소의 저감 노력을 주로 생산 쪽에서 접근했는데, 저자는 소비 쪽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업이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여 생산하는 이유는 결국 소비자가 그러한 생산품을 원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비자의 행동을 바꾸지 않는 한 기업에게 이산화탄소를 저감하도록 강요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소비자가 그러한 제품을 원하는 한, 기업은 어떤 우회수단을 써서라도 소비자의 요구를 만족시키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소비자의 행동을 바꾸는 방향의 접근을 밑에서부터의 개선 bottom-up 방식이라고 명명한다. 즉 환경오염이라는 경제적 외부효과 externality 를 가격에 반영시킴으로서, 시장 기구가 작동하여 환경오염의 비용 부담이 고르게 배분되도록 하는 것이다. 에너지와 상품에 포함된 이산화탄소의 배출양에 비례해 세금, 즉 탄소세 carbon tax 를 매기면 된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것은 물론, 해외에서 생산되어 수입되는 물건에도 동일한 방식으로 탄소세 border tax를 매긴다면, 생산 장소가 어디냐에 상관없이, 순수히 지구 환경이 미치는 영향의 정도에 비례하여 비용 부담이 배분될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선진산업국은 물론 개발도상국 사람들도 가급적 이산화탄소를 덜 배출하는 방향으로 생산과 소비를 조정할 것이다. 지구 상의 어느 곳에 살던지, 사람들은 탄소세를 덜 부담하는 방향, 즉 이산화탄소를 덜 배출하는 방향으로 행동을 조정해 갈 것이다.

에너지와 물품을 소비하는 한, 이산화탄소가 전혀 발생되지 않도록 할 수는 없다. 이산화탄소가 발생되는 양만큼, 지구상의 대기에서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쪽으로 동시에 노력을 기울여, 대기중 이산화탄소의 순증가가 없도록 하는 것, 즉 net zero 를 목표로 두어야 한다. 나무를 심고, 녹지를 늘이고, 탄소를 포집하여 지하나 바닷속에 저장하는 등의 노력을, 이산화탄소의 발생을 줄이는 노력과 함께 기울여야 한다.

화석 에너지로부터 친환경 에너지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규모의 기간시설 infrastructure 투자가 필요하다. 풍력 터빈이나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고 발전하는 것은 민간에 맡긴다고 해도, 전력망을 깔고, 전체의 전력 시스템을 관리하는 것은 정부가 담당해야 한다.  미래의 친환경 에너지는 주로 전기에 의존할텐데, 전기차를 본격적으로 보급하려면 충전 시스템의 기준을 정하고 전국에 망이 깔리도록 관리하는 주체는 정부가 되어야 한다. 민간 기업은 아직 수요가 많지 않은 분야에 선제적으로 투자하려 하지 않고, 설사 투자한다고 해도 자신의 회사에게만 배타적으로 이익이 되도록 하려 하기 때문에 비효율이 매우 클 것이기 때문이다. 

근래의 추세로 볼 때 에너지 전환은 빠른 기술 발전 덕분에 가까운 미래에 크게 개선될 것이다. 이러한 기술발전을 이끄는 연구개발은 국가가 주도해야 한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전 역사에서 보듯이, 산업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는 범용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는 민간 기업이 하려 하지 않는다. 민간이 개발한 기술은 저작권으로 보호되어야 함으로, 사회전반에 큰 파급력을 가질 수 없다. 친환경 에너지는 화석 연료에 비해 생산 비용이 많이 들고, 에너지 집적도가 낮으며, 지속적으로 안정적인 에너지를 제공하지 못하는 한계를 안고 있다. 이러한 한계를 가진 친환경 에너지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이를 보완하는 안정적인 에너지원을 구축하도록 계획하고 관리하는 역할 역시 정부가 담당해야 한다. 앞으로도 상당 기간 정부의 보조금이 추가되어야만 소비자에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저자의 논의의 핵심은 탄소세이다. 즉 최종 소비자가 탄소배출 비용을 부담하게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으로 탄소 발생을 줄이는 방안임을 강조한다. 이렇게 거둔 탄소세의 세수는 엄청난 규모일텐데, 이를 환경을 개선하는 목적에 한정해 쓰기보다는, 일반 재정에 포함시켜 최적의 효율성을 거두도록 하는게 좋다. 탄소세는 일종의 간접세이기 때문에, 소득이 낮은 사람이 소득이 높은 사람보다 더 많이 부담한다. 이러한 역진성을 상쇄하기 위하여, 소득이 낮은 사람에게 세금을 깍아주거나 사회복지를 늘이는 방법으로 하여, 전체의 형평을 맞출 수 있다. 앞으로 인구 노령화 등으로 선진국 정부의 재정이 크게 증가해야 하는 데, 탄소세를 통해 이러한 재정적 압박을 완화할 수 있다면, 탄소세의 도입은 정치적으로 실행 가능한 방안이 될 것이다.

선진산업국 사람들은 대체로 현재의 소비생활이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environmentally unsustainable 사실에 동의한다. 그렇지만 이를 지속가능하도록 만드는 데에는, 소극적이거나 자기 기만적으로 행동한다. 자신은 표면적으로 오염을 배출하지 않는 듯 하지만, 남들이 오염을 배출하여 만든 것을 수입하여 소비하는 데에는 거리낌이 없다. 명실상부하게 친환경적이 되도록 생활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필요 없는 소비를 줄이고, 대중 교통을 이용하고, 환경위해적인 소비를 삼가고, 등등. 저자는 환경배출의 순증가가 0이 되는 미래가, 반드시 소비를 축소하거나 성장이 멈춘 경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기술 개발 덕분에 지난 수십년 동안에도 생산성이 크게 증가했듯이, 앞으로도 많은 환경 문제가 기술 개발에 의해 해결되고 생산성이 증가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낙관한다. 그럼에도, 현재와 같이 지속가능하지 않은 unsustainable 방식의 생활을 멈추지 않는다면, 결국 지속가능하지 않을 not sustain 것이며, 환경 재앙을 맞을것이다.

저자는 이 분야에 오랜 연구를 한 권위자 답게, 명쾌한 논리로 문제를 분석하고 실제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환경문제에 대한 다른 많은 책과는 구별되는 독보적인 책이다. 문제는 저자의 주장과 같이 탄소세를 부과하고, 특히 수입품에 대해서도 탄소세를 거둔다면, 개발도상국의 수출은 정체될 것이고 경제성장은 더뎌질 것이다. 현재의 환경 오염은 선진국이 과거 산업화 과정에서 저지른 것인데, 앞으로의 환경 개선을 위해 개발도상국은 산업화 성장을 멈추어야 한단말인가 하는 질문을 피할 수 없다. 저자는 이 질문에 대해 두가지로 답한다. 지구온난화의 피해는 선진산업국보다 개발도상국이 지리적인 위치 때문에 더욱 크게 입을 것이기 때문에,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문제는 선진산업국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에게도 시급한 과제이다. 개발도상국에게 빈곤문제가 환경문제보다 더 시급한 과제라고 해도, 선진 산업국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에 대해 보상을 하는 것은, 지구 대기에 이산화탄소 농도를 줄이는 문제와는 별도로 접근해야 한다. 저자의 이러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선진국이 이러한 보상을 하는 데 매우 소극적이기 때문에, 별도의 접근으로 선진산업국과 개발도상국간 형평의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 않다. 개발도상국의 입장에서는 당장의 빈곤을 줄이는 것이 미래의 환경 재앙을 예방하는 것보다 더 시급하고 큰 문제이기 때문에, 선진국의 탄소세는 개발도상국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환경 위기로 인한 선진산업국 사람들의 고통이 개발도상국 사람들의 물질적 결핍으로 인한 고통과 유사한 수준이 될 때, 개발도상국 사람들도 환경 개선에 진정으로 동참할 것이다. 

사람들의 소비 방식을 바꾸어 이산화탄소 발생의 순중가를 0으로 만들려면 상당한 규모의 탄소세가 부과되어야 하는데, 과연 선진산업국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는데 동의하겠느냐 하는 어려운 문제가 남는다. 저자는 일시적으로는 탄소세의 여파로 실질 구매력이 떨어지고 소비가 줄어들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방식으로 소비와 행동을 조정할 것이기 때문에 탄소세는 탄소배출 저감이라는 목표에 근접할수록 줄어드는 경향을 보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서구의 자유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사람들이 절약을 하도록 강제하는 합의를 이끌어낸 것은, 과거 전시 상황이 유일하다. 서구의 다수의 사람들이, 미래에 닥쳐올 환경 재앙을 현재의 만족을 희생해야 할 정도의 절박함으로 받아들이려면, 지구의 기후변화가 앞으로도 한참은 진척되어야 할 것이다. 도저히 감내하기 어려운 상태에 도달한다면, 사람들이 마지 못해 현재의 소비를 희생하는 데 동의할 것이다. 

이책은 유럽의 상황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세계 환경 오염의 주범인 미국과 중국에 대해서는 전혀 다루고 있지 않다는 한계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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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1. 15. 16:59

시어도어 그레이. 2010. 세상의 모든 원소 118. 영림카디널. 235쪽.

저자는 대중과학 저술가이며, 이 책은 주기율표에 있는 총 118개의 원소 각각에 대해 샘플 사진을 곁들여 설명한다. 과학 원리에 대한 약간의 배경 설명과 함께, 일상에서 각 원소가 사용되는 예들을 제시한다. 원자번호 1번 수소 H에서부터 그당시까지 발견 혹은 합성된 118번의 '우눈옥튬'까지 각각의 원소에 대해 설명한다.

저자는 원소 샘플 수집가이며, 자신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곳곳에 삽입하면서 캐쥬얼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가볍게 서술 부분을 읽고 사진을 보면서 눈요기하는 도감책이다.

2024. 11. 15. 16:42

Robert Jourdain. 1997. Music, the Brain, and Ecstasy: How music capture our imagination. Avon Books. 333 pages.

저자는 대중 과학 저술가이며 피아노 연주자이다. 이책은 음악의 원리를 물리적인 소리에서부터 음악 작품의 감상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소리 sound, 음 tone, 음율 melody, 화음 harmony, 리듬 rhythm, 작곡, 연주, 감상, 이해, 황홀경, 등으로 각 장 마다 구분된 주제에 대해 설명한다. 

음악에서 '음' tone 은 특정 주파수의 소리 집합이다. 어떤 악기의 음이 단일 주파수로 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악기의 음은 '기본음' fundamental 과 이보다 높은 주파수의 여러개의 '상음' overtone 이 동시에 섞여 있다. 우리는 어떤 음과 이보다 높은 주파수의 배율로 만들어진 다른 음을 같은 음으로 인식한다. 이를 '옥타브 등가' octave equavalence 의 원칙이라 하는데, 옥타브가 높아질 때마다 주파수가 배율로 증가하며, 우리는 중간 옥타브의 소리와 위의 옥타브들의 소리를 같다고 느낀다. 기본음의 주파수의 1.5배에 해당하는 음도 상음에 섞여 있는데, 서구 음계에서 한 옥타브의 중간에 해당하는 '도'와 '솔'의 간격이 이에 해당한다. 여기서 기본음이 어떤 주파수여야 하는가는 중요치 않다. 왜냐하면 우리의 두뇌는 주파수간의 간격 interval을 주로 구별하기 때문이다. 서구의 음계에서 악기를 조율할 때, 중간 옥타브 아래의 '라' A 음을 기준으로 하는 데, 이는 관행적으로 초당 110헬츠이다. 모짜르트 시대에 비해 근래로 올 수록 같은 음에 대해 약간 높은 수준의 주파수를 설정한다. 이는 아마도 우리의 귀가 낮은 주파수보다 높은 주파수의 음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현대의 서구 음계는 한 옥타브 간격을 균등하게 12개로 나눈 음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중 7개 음은 우리의 귀에 서로 잘 조응하는 것으로 들리는 반면, 5개 음은 불협화음으로 들린다. '도레미파솔라시' 라는 7개의 온음과 5개의 반음으로 구성된 체계가 서구 음악의 기본 음계이다. 한 옥타브 내에 12개의 반음들을 서로 어떻게 간격을 조정하는가에 따라 다양한 음계가 만들어질 수 있는데, 장조와 단조라는 두가지 방식의 간격 조정 음계만이 현재는 주로 사용된다.

세계의 모든 문화가 한 옥타브의 간격 intrerval을 반드시 12개 음으로 구분하는 것은 아니다. 인도나 인도네시아에서는 이보다 훨씬 많은 수의 간격으로 음을 구분하며, 많은 전통 문화의 음계는 5개의 간격으로만 구분한다. 특정 음계는 특정 문화의 음악적 관습의 산물이기 때문에, 서구 사람들에게는 서구의 음계가 편하고 좋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문화는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서구에서 발전시킨 화음과 형식의 복잡성을 서구의 음계가 뒷받침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서구의 음계를 능가할만큼 풍부하게 복잡한 음악을 발전시킨 다른 음계는 찾을 수 없다.

음률 melody은 시간이 경과하면서 음고 pitch 의 상하로 움직이며 음이 전개되는 것을 뜻한다. 사람들은 음악을 주로 멜로디로 인식한다. 어떤 음의 진행 contour 이 사람의 마음을 끄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떤 음의 진행을 사람들이 싫어하는지는 분명하다. 대체로 화음에 부합하는 음의 진행이어야 한다. 동일한 음이 지나치게 많이 반복되거나, 화음에서 크게 벗어나는 음이 많거나, 비약이 심한 음악은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다.

화음 harmony 은 서로 조화를 이루는 여러 개의 다른 음고 pitch 음의 조합을 말한다. 서구에서 1500년대 이후에 단일 성부로부터 다성부 polyphony 의 음악이 발전하면서, 음을 조합하는 여러 방식이 개발되었다. 기본 3화음 triad 이 가장 많이 쓰이는데, 기본음에 3도와 5도 음정의 음을 쌓은 화음을 의미한다. 18~19세기에 바흐, 모짜르트, 베토벤으로 대표되는 서구 고전음악은 화음 진행을 고도화시키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조성음악이라 하여 서구 음악의 주류를 차지한다. 서구 고전음악은 화음의 고도화를 추구한 반면, 리듬 특히 박자의 복잡성은 희생을 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반면, 많은 비서구 사회의 전통 음악은 화음은 복잡하지 않지만 리듬은 복잡한 음악을 탄생시켰다.

리듬 rythm은 음악의 시간적 경과이다. 리듬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규칙적인 시간의 경과를 의미하는 박자 meter와, 의미있는 음의 뭉치인 악구 phrase 가 그것이다. 박자는 규칙적인 시간의 단위이지만, 반드시 기계적인 규칙성을 따르지는 않는다. 음악의 분위기에 따라 같은 박자에서도 좀더 느리게 혹은 빠르게 전개한다. 악구는 대체로 넷 혹은 여덟 마디로 구성된 의미있는 음의 뭉치이다. 음악 작품은 이러한 의미있는 음의 뭉치들이 위계 체계 hierarchy 를 형성한다. 음악 작품이란 단순히 여러 음의 나열이 아니라, 언어에서와 같이 위계체계를 형성하면서 복잡성과 추상성을 높인다. 음악에 대한 훈련이 깊어질 수록, 음의 뭉치들의 복잡성과 추상성의 위계체계가 높아지고, 이를 판독하는 능력도 길러진다. 예컨대 베토벤의 작품은 음의 뭉치의 위계체계가 높은 반면, 대중음악은 복잡성과 추상성의 위계체계가 얕다. 따라서 서구 고전음악의 고도의 위계체계로부터 아름다움을 느낄려면 어느 정도 훈련이 필요한 반면, 대중음악은 훈련 없이도 음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작곡 composition 이란 작곡가의 머리속에 저장된 많은 패턴을 재료로 하여, 약간을 새로이 첨가하고 새로이 버무려 내는 작업이다. 마치 체스의 마스터가 수만개의 패턴을 기억하고, 이로부터 새로운 상황에 대처해 새로운 수를 두는 것과 흡사하다. 음악 활동에 열심히 매진하는 가운데에서만 영감이 떠오른다. 베토벤은 수천장의 습작 기록을 남겼는데, 이를 보면 수도 없이 지우고 고치는 작업을 통해서 완성작이 만들어지는 것을 확인한다. 전체의 구성과 중요 요소만을 대강 먼저 정하고, 이어서 나머지 부분을 채워가는 방식으로 일을 한다. 작곡가들은 머리속으로 음에 대한 이미지 auditory image 를 통해서 음의 전개를 만들어 내고, 이를 피아노로 확인하는 과정을 왕복하면서 작곡한다. 작곡가들은 소리에 민감하고, 감정적으로 격렬한 성정을 가지며, 조울증의 성향을 띤 경우가 많다.

연주 performance 란 음에 대한 이미지 auditory image 가 먼저 머리 속에 떠오르고, 이를 몸의 운동으로 전환하는 작업이다. 많은 연주자들은 실제 손으로 연주하기 전에 머리속에서 음의 이미지를 통해 연주하는 절차를 밟는다. 어릴 때부터, 예컨대 6세부터, 음악 연습을 꾸준히 하는 것이 이러한 음의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중요하다. 일단 음의 이미지와 몸의 움직임의 연결이 확고히 정착되면, 연주의 대가들은 실제로 몸으로 많이 연습하지 않고도 머리속으로 연주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바이올린의 대가인 파가니니나 피아노의 대가인 리스트는 젊을 때는 많이 연습했지만, 대가가 되고나서는 연주 시간이 많지 않았다고 한다. 어느 정도 연습해야 음의 이미지와 몸의 움직임이 잘 연결된 상태가 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최소 10년 이상 매일 연습하여 10,000~ 20,000시간을 축적해야만 그러한 단계에 도달한다고 한다.

이해 understanding 이란 음들 사이의 복잡하고 추상적인 체계를 파악하는 것이다. 음악 애호가는 음악의 복잡한 패턴에 따라 앞으로 전개될 음들을 예상하고, 이러한 예상이 맞아 떨어지는 것을 확인하면서 즐거움을 느낀다. 작곡가들은, 이러한 예상에 쉽게 부합하지 않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우회하고 예상치 못한 새로운 요소를 삽입하면서, 음악의 청자와 일종의 밀고 당기기를 한다.

이 책은 저자의 음악 활동 경험과 과학적 이론적 지식이 잘 녹아 있다. 음악에 관련된 거의 모든 궁금증에 답하고 있다. 다른 과학 분야와 달리 음악의 분야는 별로 밝혀진 것이 많지 않음을 확인한다. 아마 예술의 분야가 다 그렇겠지만. 오랫동안 음악을 접해 왔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음악이라는 새로운 영토를 발견한 느낌이다. 저자의 과학 지식이 뇌과학 분야에 많이 치중되어 있다.

2024. 11. 7. 14:55

Wayne Leighton and Edward Lopez. 2013. Madmen, Intellectuals, and Academic Scribblers: The Economic Engine of Political Change. Stanford University Press. 190 pages. 

저자는 경제학자이며, 이 책은 정치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기제에 대한 이론적 논의와 함께, 정치적 변화 사례들을 통해 그들의 이론을 옹호한다.

이야기는 1980년대 프로농구의 규칙을 바꾼 사건에서부터 시작된다. 프로 농구에 공격시간 제한의 규정이 없던 시절, 많은 농구 경기에서 점수를 앞서는 팀이 적극적으로 공격을 하지 않고 볼을 돌리며 시간만 끌면서 관중의 흥미를 잃게 만드는 관행이 일반화되었는 데, 이 때문에 프로 농구 산업계가 위기에 처하였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공격시간 제한 규정이 새로이 도입되었는데, 이는 프로 농구 게임을 역동적이게 바꾸면서 관중을 흡인하여 큰 흥행 성공으로 이어졌다.  새로운 아이디어에 따라 규칙을 바꿈으로서, 운동 선수의 인센티브가 바뀌었고, 그 결과 농구 선수의 행동 방식과 농구 게임의 내용이 바뀐 것이다.

사람들의 행동은 인센티브에 의해 좌우되는데, 인센티브는 제도의 산물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정치과정을 통해 제도로 구체화된다. 학자는 아이디어를 생산하며, 이들이 만들어낸 아이디어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지식인을 통해 사회 전반에 확산된다.  전문직 종사자, 변호사, 언론인, 연구소 연구원, 교사 등 아이디어를 전파하는 지식인의 유형은 다양하다. 이렇게 널리 퍼진 아이디어가 적절한 사회 환경을 만나면 정치인에게 채택되고, 정치과정을 통해 구체적인 제도로 실현된다. 새로운 정책은 새로운 인센티브 시스템을 만들어내며, 그러면 사람들의 행동이 바뀌고, 결국 사회가 바뀌게 된다. 학자들은 지금까지 축적된 다양한 아이디어를 취사선택하여 조합하고, 현장에서 활동하는 사람으로부터 힌트를 얻기도 하면서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생산한다. 

새로운 아이디어에 따른 새로운 인센티브 시스템을 도입하기는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기존의 인센티브와 제도의 틀 속에서 이익을 누려온 기득권 집단 status quo 의 반발을 극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새로운 아이디어는 사회환경이 우호적이지 않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채택되지 못하고 사장된다. 그러나 어떤 아이디어는 외적인 변화 때문에 사회환경이 바뀌게 되어, 다시 빛을 보게 되고, 정치인에게 채택되어, 정책으로 구체화되기도 한다. 

부캐넌의 공공선택이론 public choice theory 은, 왜 비효율적인 정책이 효율적인 정책을 물리치고 오래 버틸 수 있는지 설명한다. 소수의 결집된 행위자의 이익에 기여하는 정책은, 비록 전체로 볼 때 비효율적인 자원 배분을 가져온다고 해도, 그들이 결집하여 정치적 압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오래도록 살아남는다. 반면 다수의 비결집된 행위자의 이익에 기여하는 정책은 그것이 전체적으로는 이익을 가져온다고 해도, 정치적으로 조직적인 압력을 행사하지 못하기 때문에, 정책으로 구체화되기 어렵다. 외적인 환경이 변화하여 새로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새로운 정책이 요구되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될 때, 기득권 집단이 옹호하던 기존의 정책에 대한 도전이 힘을 얻게 되고, 기득권 집단의 힘에 균열이 발생한다. 

책에서 제시한 정치적 변화의 구체적 예는 다양한데, 다음 네가지 사례를 집중적으로 검토한다. 1970년대 미국에서 라디오 전파대역을 그당시까지 정부가 재량적으로 분배하던 시스템으로부터 경매 시스템으로 전환한 것, 1980년대에 민간항공서비스산업에 존재하던 엄격한 정부 규제를 풀고, 신규 진입, 가격, 노선 개설 등에 자유 경쟁 원칙을 도입한 것, 1990년대에 클린턴 행정부의 복지 개혁, 1990~2000년대에 주택금융관련 규제감독의 완화와 그 귀결로 2008년 금융위기 발생이 그것이다. 이외에도 케인즈의 거시 경제이론에 따라 1930년대 경제 대공황시기에 루즈벨트 대통령이 뉴딜 정책을 채택하였으며, 그이후 모든 서방의 국가들이 미국을 본받아 적극적인 재정 정책을 채택하면서, 그때까지 자본주의 경제의 큰 문제였던 시장의 큰 폭의 부침을 완화시킬 수 있게 된 것도 아이디어가 제도로 구체화된 다른 예이다.

치 책의 저자들은 자유시장 원칙을 옹호한다. 시장에서 무수한 참여자의 독립적 판단이 작용할 때 가장 효율적인 자원 배분이 이루어진다는 아담스미스와 하이에크의 주장을 옹호한다. 또한 아이디어가 세상을 움직이는 핵심적인 힘이라는 관념론적 철학을 옹호한다. 그러나 그들은 아이디어가 적절한 사회적 환경을 만나야만 열매 맺을 수 있다고 하면서, 현실적인 조건과 운의 중요성 또한 강조한다. 기업 경영의 기업가 entrepreneur 못지 않게, 정치분야에서도 환경의 변화를 민감하게 읽어내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적시에 도입하여 제도로 만들어내는 정치적 기업가 political entrepreneur 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들은 기존의 기득권 제도를 파괴하고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내는 창조적 파괴 creative destruction 을 한다.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어떻게 기득권 집단의 철옹성이 무너지고, 점진적이지만 제도의 변화가 찾아오는지에 대한 그들의 설명은 흥미롭다. 복잡한 현실 정치를 경제원리를 통해 설명해내는 그들의 순박함에 호감이 갔다. 그러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채택하는 데 적합한 현실적인 조건이 어떻게 형성될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은데, 사실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드는 것보다 이것이 더 어려운 부분이고, 이 때문에 기득권이 깨지기 어렵고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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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0. 23. 15:26

키트 예이츠. 2019. 수학으로 생각하는 힘. 웅진 지식하우스. 356쪽.

저자는 수학자이며, 이 책은 일상생활에서 수학적으로 생각할 때 잘 못된 경우를 여러 사례들을 인용하면서 풀어낸다.몇개의 독립적인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기하급수적 증가와 감소, 통계적 판단의 오류, 우연의 확율에 대한 이해, 사실을 의도적으로 외곡하는 수치 표현, 전염병에 대응하는 수학적 모델, 등이다.

인구 전체로 볼 때 특정 질병의 발생 확율이 매우 낮다면, 선별 검사에서 양성으로 판정됐다고 해도, 실제 질병에 걸렸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양성 판정자 중에 false positive 경우가 true positive 경우보다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만일 진짜로 그 질병에 걸렸다면, 두번 연속 false positive 를 받을 확율은 크게 낮아지므로, 처음 진료한 곳과 다른 의료기관에서 독립적 검사를 통해 이차 의견을 받는 것이 좋다.

어떤 집단에서 두 사람의 생일이 일치할 확율은 생각보다 높다. 예컨대 23명이 모인 집단에서 생일이 일치할 확율은 50%를 넘어선다. 이는 사람수가 증가하면 구성원 사이에 랜덤한 두사람의 조합의 경우의 수가 매우 빨리 증가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두 사건간의 관계에 대해 흔히 인과적 연관을 상상하는데, 실제는 우연히 두 사건의 특징이 일치할 가능성이 크다. 사건이 우연히 발생할 가능성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수준보다 훨씬 높다.

사람들은 자신이 강조하고 싶은 드물게 일어나는 특질의 변화에 대해서는 비율로 표기하여 변화의 크기를 과장하는 반면,  자신이 숨기고 싶은 드물게 일어나는 특질의 변화에 대해서는 절대수치의 차이로 표기하여 변화의 크기를 축소하려 한다. 의도적으로 한쪽편은 비율로 표기하고, 다른 쪽 편은 절대 수치로 표기한다면, 이는 거짓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독자를 속이는 행위이다. 숫자를 제시하면 주장에 권위가 더해지는 듯 하지만, 이렇게 숫자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외곡되게 표현하는 행위는 미디어나 정치권은 물론 학계에서 흔히 저지르는 잘못이다.

최적화를 행할 때, 모든 가능한 사안을 검토한 후 최선을 선택하는 것은 비용대비 수익이 적다. 첫 세 사건에서는 기준을 정한 후, 이후에 마주치는 사건 중, 이 기준보다 더 좋은 것이 나타나면 더이상의 탐색을 중단하는 것이 수학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최적화 전략이다. 식당을 고르거나, 상품을 고르거나, 등, 다수의 사건 중에서 결정을 하려할 때, 이 수학적 지혜를 활용할 수 있다. 

이 책은 수학이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오용될 수 있는지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이야기로 풀어낸다. 이러한 종류의 책은 문제가 복잡해지면 수학이 어떻게 우리의 생각을 도와주는지 설득력있게 제시한다. 수학적 논증에 합당한 다양한 사례를 찿아내고 이야기로 풀어내는 저자의 능력이 돋보인다. 다만, 법적인 다툼에서 수치를 해석하는 부분에서는 번역에 문제가 있는지 여러번을 읽어도 이해하지 못했다. 여하간 흥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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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10. 18. 13:00

 

전봉근. 2023. 한반도 국제정치의 비극: 동북아 패권경쟁과 한국의 선택. 박영사.444쪽.

저자는 국제정치 학자이며, 이 책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 상황을 분석하고, 한국이 어떤 외교 전략을 취해야 할 것인가에 관해 논의한다.

한국의 외교 전략을 고민하기 위해서는 먼저 한국의 정체성과 국익을 확실히 해야 한다. 한국은 크게 네가지의 정체성을 가진다. 첫째, 한국은 미국,중국, 일본, 소련이라는 강대국에 둘러싸여 중간에 끼인 국가이다. 둘째 한국은 경제적으로 대외의존도가 높은 통상 국가이다. 셋째, 한국은 북한의 위협이 상존하는 분단 국가이다. 넷째, 한국은 인구과 경제규모에서 세계에서 강대국은 아니나 그렇다고 약소국도 아닌 중간의 위치의 국가이다. 한국의 존립과 번영을 위해 이 네가지 중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한국은 외교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의 안보는 원칙적으로 부단한 자강 노력과 함께 한미동맹을 근간으로 해야 한다. 한국은 경제적으로 중국에 많이 의존하고 있으므로, 중국을 자극하는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 미국의 요구를 따르되 중국의 심기를 크게 거슬릴 행동은 삼가야 한다.  중국에 대해서는, 국제사회가 합의한 원칙 내에서,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전적으로 미국에 의존하여 중국의 대척점에 서거나 혹은, 중국에 따르면서 미국과 척을 지는 행동은 피해야 한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 어느 쪽도 잃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가 중국이 밀어붙이는 국제질서보다는 우리의 안보를 위해 더 의지할만 하기 때문에, 미국에 우선을 두어야 한다.

한국은 우리와 비슷한 입장의 나라들과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호주, 터키, 인도, 유럽연합, 캐나다, 멕시코, 브라질 등의 나라들과 연대를 맺으면서,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공동의 힘을 구축해야 한다. 물론 이 나라들은 각자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통일된 대오를 형성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미중의 갈등 속에서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부분이 있으므로, 함께 목소리를 낸다면 중간자로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북한의 핵무장에 대해 한국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 저자는 한국이 핵무장하는 것은 어렵다고 주장한다. 한국이 핵무장을 시도한다면,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사회의 엄청난 압박과 제제를 받을 것인데, 한국 경제는 대외의존도가 높으므로 이를 감당할 수 없다.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해, 한국의 압도적 재래식 전력과 미국의 도움으로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 한국은 미국의 핵우산 하에 있으므로, 비록 이것의 신뢰성은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겠지만, 북한이 핵을 사용하면 미국 또한 핵을 사용하여 응징하리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북한이 핵을 사용하기는 어렵다. 북한 정권의 붕괴를 각오하지 않는 한, 핵무기는 사용하지 못한다. 북한은 한국과 미국의 위협에 대응하여 정권의 생존을 위해 핵을 보유하는 것이지, 남한을 침공할 의도로 핵을 보유하는 것은 아니다. 즉, 북한의 핵 위협은 그렇게 생각만큼 현실적인 위협은 아니다. 한국이 핵재처리 능력을 확보하여, 핵무기는 보유하지 않아도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는 방안, 즉 일본의 현재 지위와 같은 수준에 도달하는 목표 또한, 미국의 반대로 추진이 쉽지 않다.

저자는 한국의 지정학적 위상 때문에, 선진국들의 눈치를 보면서 그들 모두와 잘 지내야 할 운명은 어쩔 수 없다고 본다. 주변 강대국들이 쉽게 잡아먹을 수 없는 능력을 키우고, 국내적으로 통일된 대오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외교 정책의 방향을 크게 바꾸고,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임기응변적으로 대응하는 한국의 외교는 개선해야 한다. 한국의 정체성과 국익을 명백히하고, 국제사회의 원칙에 따르면서, 지혜롭게 처신해야 한다.

이 책은 저자가 정부와 국책연구소에서 오랜 외교 정책연구 활동을 한 결과를 집약한 것이다. 분석과 주장은 현실적합성이 높으며 설득력이 크다. 다만 저자의 여러 보고서와 논문들을 짜깁기하여 단행본을 만들었기 때문에, 중복이 매우 많다. 저자가 자신의 생각과 지식을 집약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호흡으로 새로 책을 썼다면 훌륭한 작품이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2024. 10. 14. 20:54

Daniel Levitin. 2014. The Organized Mind; thinking straight in the age of information overload. Dutton. 383 pages. 

저자는 뇌과학자이며, 이 책은 조직적으로 사고하고 생활하는 방법을 뇌과학의 연구에 기초해서 설명한다. 

인터넷 시대가 되면서 사람들은 정보 과부하 상태에서 살고 있다. TV, 이메일, SNS, 유튜브, 인터넷 검색, 등의 경로를 통해 매일 엄청난 규모의 정보에 사람들의 의식이 노출된다. 쇼핑을 가서도 단일 품목에 대해 선택지가 매우 많기 때문에, 이러한 정보들을 비교하여 선택하는 과정에서 뇌의 에너지를 많이 소모한다. 이러한 정보들은 우리의 주의력과 기억력 및 뇌의 정보 처리 능력을 조금씩 갉아먹기 때문에, 사람들의 뇌는 지쳐 있다. 현대인은 정말 중요한 주제에 뇌의 능력을 집중적으로 쓰기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다.

근래에 사람들은 여러 일을 동시에 처리하는 모드, multi-tasking mode, 속에서 살아간다. 뇌과학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여러 일을 동시에 처리할 수 없다. 여러 일을 동시에 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 우리 뇌는 한가지 일에 조금 에너지를 쓰고, 다른 일로 이전하여 또 조금 에너지를 쓰고, 다시 다른 일로 이전하는 일을 반복한다. 우리의 뇌는 이렇게 일과 일 사이에 의식을 이전할 때마다 뇌의 에너지를 소비하기 때문에, 멀티태스킹 모드에서는 어느 한가지 일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며 쉽게 뇌가 지친다. 한가지 일에 집중하고, 그 일이 끝나면 다른 일로 이전하는 방식 mono-tasking mode 으로 일해야만 뇌를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뇌는 여러가지 생각을 동시에 담고 있으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기 때문에, 가급적 많은 정보를 외부 수단에 기탁하는 것이 enteralize, 우리 뇌의 부하를 줄이고 중요한 일을 위해 뇌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길이다. 우리의 뇌는 일단 입력된 정보는 의식의 수면 위 혹은 아래에서 머물면서 뇌의 에너지를 사용하기 때문에, 필요하지 않을 때에는 의식에 그 정보가 머물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필요한 일을 하기 위하여 필요한 시점에 필요한 정보를 불러내서 뇌가 처리하도록 하기 위해서, 현재 사용하지 않는 많은 정보를 외부에 기탁하고 필요할 때만 불러오도록 해야 한다. 정보를 외부에 기탁하는 방법으로는, 종이에 메모하기, 비서나 다른 사람에게 넘기기, 꼭 필요한 시점에 뇌가 필요한 정보를 상기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기, 등이 있다. 5분 이내에 처리할 수 있는 일은 바로 처리하여 머리를 비우는 것도 유용하다. 성공한 사람들은 당장 해야 할 일에 뇌의 에너지를 온전히 집중하도록 하여, 최고의 뇌 효율성을 거두면서 일한다.

뇌는 두가지 모드로 작동한다; '실행 모드' executive mode 와, '이완 모드' day-dreaming mode. 이완 모드가 기본 상태 default 이며, 실행모드가 끝나면 이완 모드로 복귀한다. 실행모드는 특정 주제에 의식을 집중하여 focused 정보를 처리하는 모드인 반면, 이완 모드는 특정한 주제에 의식이 투사되지 않고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는 상태이다. 이완 모드일 때, 전에는 연관되어 있지 않던 정보의 조각이 연결되며, 창의적인 생각, 문제에 대한 새로운 해결책이 떠오른다. 뇌에 과도하게 많은 다양한 정보가 입력되면, 이완모드에 들어가기 어렵다. 뇌는 휴식을 취할 때 이완 모드에 들어가기 때문에, 일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실행 모드의 중간 중간에 휴식을 취해야 한다. 휴가를 가고, 쉬는 시간을 갖고, 등으로, 실행 모드로부터 의식을 벗어나게 해야만, 뇌는 정보를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효과적인 의사 결정을 위해서는 수리적으로 사고할 필요가 있다. 정보의 가치를 구분하고, 중요성과 가능성을 비교 분석해야만 가장 효과적인 정보 처리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저자는 베이지안 이론 Basian theory 에 입각해서 사고할 것을 제안한다. 기초 확율 base 을 먼저 정하고, 추가적인 정보를 이것에 차례로 더하면서, 조금씩 진실에 근접하게 확율을 다듬는 것이  최선의 정보 처리 방법이다.

인터넷의 시대에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정보의 가치를 평가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정보 출처의 권위, 다양한 정보의 상호간 비교, 등의 방법을 동원하여 정보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가짜 혹은 외곡된 정보를 진실된 정보와 구별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이러한 기술은 학교 교육에서부터 단련되어야 한다.

이 책은 저자의 뇌과학 연구 결과에 근거를 두고 있지만, 지나치게 다양한 주제를 다루느라 촛점이 흐려졌다. 집안을 조직하고, 사회관계를 조직하고, 시간을 조직하고, 비즈니스를 조직하고, 의료 정보를 조직하는 등, 일상 생활의 거의 모든 영역을 다루고 있다. 뒤로 갈수록 연구 결과에 근거한 논의는 줄어들고, 자기 개발서의 냄세가 난다. 그가 언급하는 많은 정보 조직과 뇌의 효율적 사용 방법을 적용하여 살아 왔음을 느낀다. 그가 언급하는 많은 지적들은 상식과 생활의 지혜에 속하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