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hillip Tetlock. 2005. Expert Political Judgement: How good is it? How can we know? Princeton University Press. 238 pages.
저자는 인지 심리학자이며, 이 책은 저자가 정치 전문가들의 미래 예측 행태에 대해 10여년 이상 연구한 결과를 정리하여 제시한다. 결론인 즉, 정치 전문가들의 미래 예측 능력은 그리 크지 않다. 어떤 것에 대해 예측하는가보다는 어떤 방식으로 사고 하는가가 예측의 정확성을 좌우하는 핵심 요인이다.
저자는 정치전문가의 사고 방식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눈다. 하나는 "고슴도치"(hedgehog)라고 지칭하는 부류인데, 이들은 하나의 큰 원칙이나 이론에 경도하여 세상사를 모두 이것에 끼워맞추려는 성향이 강하다. 또다른 부류는 "여우"(fox) 라고 지칭하는 부류인데, 이들은 특별한 원칙이나 이론은 없으며 벌어지는 상황에 민첩하게 반응하여 수시로 입장을 조정한다. 고슴도치류는 거대 이론에 바탕을 두고 연역적 방식으로 사고하는 반면, 여우류는 사실에 바탕을 두고 귀납적 방식으로 사고한다. 고슴도치류는 자신의 이론과 주장에 대해 확신이 강하며 세상을 보다 단순하게 그리는 반면, 여우류는 세상을 훨씬 복잡하고 확률적으로 생각하며 인간의 세상 인식 능력에 대해 유보적이다.
수백명의 정치 전문가들에게 1980~90년대에 중요한 국제정치경제의 관심사에 대해 구체적인 수치로 예측을 하도록 하고, 예측의 정확성은 물론, 예측 사건이 발생하기 전과 발생한 후에 전문가들의 인식 방법의 차이 등을 분석하였다. 소련의 붕괴, 캐나다의 분열, 남아공화국의 인종차별 정권의 종말, 유럽 통합의 미래, 한반도를 포함한 핵전쟁 가능성, 경제 위기, 등등 100개 이상의 질문에 대해 예측 자료를 수집하였다. 분석 결과 여우류의 전문가가 고슴도치류보다 미래 예측이 정확했다. 그러나 어느 전문가들보다 타임시리즈 통계 모델로 미래 확장 예측(extrapolation)을 했을 때 예측의 정확도가 훨씬 높았다. 그 분야에 대해 오랫동안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제법 안다고 하는 전문가보다 단순한 수치들의 귀납인 통계 분석이 훨씬 정확한 것은 아이러니이다.
전문가들은 자신이 예측한 사건이 실제 발생하지 않았을 경우에도 자신의 예측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다양한 이유를 제시하면서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사안이 발생하기 위해 전제가 되는 조건이 만족되지 않았다거나, 거의 그렇게 될 뻔했다거나, 예측한 사건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을 뿐이라거나, 위험한 사건의 발생 가능성을 실재보다 더 크게 예측한 자신의 태도가 옳았다거나, 등등으로 자신의 틀린 예측을 정당화한다. 예컨대 캐나다의 프랑스어권 퀘백주가 영어권 지역으로부터 분리되리라는 예측에 대해, 1991년 국민투표 결과 51%가 분리를 반대하는 것으로 나왔다. 이 결과를 두고 캐나다의 분열을 예측한 전문가의 생각이 틀렸다고 반박하기는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투표 이전에 어떤 상황이 다르게 전개되었다면 국민투표 결과가 다르게 나왔을 수도 있다. 또한 51%의 투표 결과는 샘플링 에러의 범위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즉 만일 투표를 통계적으로 독립적으로 여러번 한다면, 그중 분리를 찬성하는 결과의 투표가 발생했을 수 있는데, 현실에서는 한번밖에 투표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 사건이 어떻게 귀결되었는가는 순전히 우연일뿐이다.
예측이 틀릴 수 있는 다양한 사유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예측의 정확성에서 여우류는 고슴도치류보다 일관되게 앞선다. 또한 자신의 예측 사건과 관련된 인접 사안이 발생했을 때, 여우류는 자신의 예측치를 수시로 조정하는 반면, 고슴도치류는 일단 자신이 한 예측을 고수하는 경향이 있다. 여우류는 자신의 예측이 틀릴 수 있음을 항시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상황의 변화에 따라 자신의 예측을 수시로 수정하는 데 꺼리낌이 없는 반면, 고슴도치류는 자신이 옹호하는 이론과 그에 따른 예측에 대해 강한 확신이 있기 때문에, 상황이 변해도 좀처럼 입장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정치권은 물론 일반 대중들에게도 고슴도치류가 여우류보다 인기가 높다. 사람들은 자신이 옹호하는 이념이나 진영에 부합하는 말을 하는 사람을 좋아하고 그런 사람의 주장에 쉽게 귀를 기울인다. 반면 불확실한 세상을 전제로 하고 여러 유보적인 조건을 달면서 불확실한 예측을 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사람들은 확실한 세계관과 확고한 주장을 복잡한 세계관과 애매한 주장보다 선호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정치 전문가의 의견을 경청하는 동기는, 그들의 주장의 사실성 못지 않게 그들의 주장의 오락성을 사기 때문이다. 정치 정문가의 세계에서 객관성은 그리 존중받는 덕목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정치 전문가들은 자신의 주장이 명확하게 틀리거나 맞는지 판명할 수 있도록 미래 예측을 하지 않는다. 그들의 의견이 맞는지 틀리는지를 분명히 알기는 어렵다.
이 책은 자신의 연구 결과를 방법론적으로 세세한 부분까지 설명하면서 제시하기 때문에 읽기가 힘들었다. 사회과학 연구방법론과 통계학의 배경 지식이 상당해야 이해되는 부분이 많다. 일반적인 교양서의 범주에 들지 않는 책이다. 기술적인 면을 조금 걷어내면, 그의 주장이 훨씬 흥미로울 것 같다. 물론 그러면 다른 책이 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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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iel Markovits. 2019. The Meritocracy Trap: How America's foundational myth feeds inequality, dismantles the middle class, and devours the elite. Penguin Press. 286 pages.
저자는 법학자이며, 이 책은 현재 미국에서 업적주의(meritocracy)가 지배하는 환경이 낳는 심각한 문제를 서술한다. 업적주의는 소득 불평등을 심화시키며, 중류층을 없애고 사회양극화를 촉진시킨다. 업적주의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현재의 사회 분위기는 엘리트층과 중류층간 간격을 벌리고, 엘리트의 계층 지위를 후세대로 세습시킴으로서 미국을 계층지위가 세대를 넘어 고정되는 카스트 사회로 만들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업적 경쟁에서 패배한 사람은 물론 업적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에게도 지나치게 큰 부담을 안겨준다.
1980년대 이래 미국에서 소득 상위 1% 층과 나머지 사람들 사이에 소득 격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들 상위 1% 층은 최고의 전문가 직업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기업의 고위 경영자, 투자금융회사의 금융 전문가, 유명 법률회사의 변호사, 전문 분야의 의사, 컨설팅 회사의 임직원, 기술 스타트업의 임직원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높은 인적 자본을 활용하여서 회사에 엄청난 부를 창출하고, 그 일부를 자신의 소득으로 챙긴다. 이들의 연봉은 수십억에서 수천억원에 달한다. 과거 귀족사회나 산업사회의 지배층인 귀족과 자본가들은 토지나 공장을 소유하고, 타인으로 하여금 일하게 하고 자신은 놀면서 엄청난 소득을 향유하는 유한계급이었다. 반면, 20세기 후반에 새로이 등장한 엘리트 전문인들은 스스로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며, 최고의 학교에 들어가 최고급의 기술을 획득하고, 이 기술을 활용하여 매우 복잡한 일을 수행하고 엄청난 부를 창출해 낸다. 이들은 누구보다 높은 능력과 노력으로 높은 생산성을 올리며, 그에 대한 보상으로 높은 소득을 누리는 사람들이다. 1980년대 이래 정보기술과 운송 기술의 발달 덕분에, 전에는 가능하지 않은 정도로 매우 복잡한 일을 체계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된 덕분에 출현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주당 50~100 시간을 투입하는 엄청난 노동으로 자신을 혹사하면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일에 중독되어 살아간다.
이러한 엘리트들은 엄청난 경쟁을 뚫고 그 자리에 올라섰다. 그들은 자신의 자녀들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경쟁을 뚫고 엘리트로 선발되도록 하기 위해, 어릴 때부터 엄청난 관심과 투자를 쏟아붓는다. 엘리트 부모의 엄청난 투자는 실제 그들의 자녀가 우수한 학교에 들어가고,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학교 졸업후 자신과 같은 엘리트 전문인으로 성장하게 만든다. 반면 중류층은 자녀에게 큰 투자를 하지 못하므로, 중류층의 자녀는 엘리트 전문인으로 성장하기 어렵다. 미국의 명문 사립 대학교에 입학하는 학생의 대부분이 부모가 부자이며, 등록금이 엄청난 사립 혹은 부자 동네의 공립 초중등 학교를 나왔다는 사실이, 미국 사회의 엘리트 지위가 교육을 매개로 하여 세대간 전승되고 있음을 지시한다. 엘리트 자녀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엄청난 정신적 압박을 받고 학교를 다니며, 그들이 명문 대학교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도, 다시 좋은 직장에서 엄청난 경쟁과 일의 압박 속에서 살아간다.
이러한 경쟁에서 배제된 중류층 이하의 사람들은 경쟁에 패배한 것으로 인한 실망과 좌절 속에서 살아간다. 1980년대 이래 정보기술과 기계화 덕분에 중간 관리층이 줄어들고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중류층의 삶은 과거보다 불안정해졌다. 그들은 불안전 고용과 실직 등으로 노동하지 않는 유휴시간이 늘었으나, 이것이 삶의 질의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미국 사회층의 양극화는 심화되어, 엘리트와 엘리트 아닌 사람들 사이에 소득은 물론 삶의 모든 측면에서 서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사는 곳, 일하는 방식, 자녀를 키우는 방식, 자녀가 다니는 학교, 가족의 안정성, 소비 물품, 여가를 보내는 방식, 정치적 성향, 종교 활동, 가치관, 등 모든 면에서 엘리트와 엘리트 아닌 사람들은 서로 다른 삶을 살고 있다.
현재 미국 사회의 소득 불평등도는 1920년대 후반 대공황이 일어났을 때에 근접하고 있다. 미국의 중하층은 엘리트들을 부도덕하고 이기적이며 건방진 사람들이라고 비난하고, 엘리트들은 중하층을 무능하고 노력하지 않고 절제할 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들이라고 경멸하면서, 서로 간 반목이 심하다. 미국의 금권주의 정치 풍토에서 엘리트들은 정부를 장악한 반면, 중하층은 이러한 정부에 등을 돌렸다. 결국 도날드 트럼프와 같은 대중영합주의자의 선동이 대중에게 먹혀들고, 정치의 합의 도출 기능이 마비되고,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한 나라에 살면서 엘리트와 엘리트 아닌 사람들이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살고 서로 반목하는 지금의 상황이 지속되면 모두에게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인류의 과거에서 높은 불평등은 결국 전쟁 혹은 혁명을 통해서만 해결되었다.
능력과 노력에 따라 보상하는 업적주의를 벗어나 대안이 있는가? 저자는 이 부분에서는 그리 설득적인 논의를 전개하지 못한다. 저자는 업적(merit) 자체가 사회 환경에 따라 가치가 주어지는 것이므로, 사회적으로 높은 보상이 업적과 함께 해야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엘리트들이 다니는 명문 사립대학은 그들이 보유한 엄청난 규모의 펀드의 수익을 활용하여 재학생들에게 크게 투자하고 이것이 높은 교육 성과로 이어지기 때문에, 명문 사립대에 입학 문호를 넓히도록 정부가 압력을 넣어야 한다. 엘리트 직장의 일 중독 문화가 임직원의 높은 수입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들에게 일을 덜하도록 제도적 압력을 가해야 한다.
이 책은 미국 사회의 소득의 양극화, 특히 고급 전문직의 높은 수입과 그들의 지나친 일 중독 및 엄청난 자녀 교육 투자에 논의를 집중한다. 책의 대부분을 이러한 현상을 서술하는 데 할애한다. 그의 서술에는 몇가지 약점이 보인다. 첫째, 그는 업적주의 사회의 승리자(meritocrats)로 엘리트, 부자, 최고노동자 등을 언급하는 데, 이 집단의 범위가 모호하다. 엘리트 집단과 중류층 이하 사람들 사이에 격차가 벌어지는 것을 강조하면서, 때로는 엘리트 집단의 범위를 대학 졸업자, 전문 대학원 졸업자, 아이비리그 대학 졸업자, 상위 0.1%, 상위 1%, 상위 5%, 상위 10% 등, 가용한 통계에 따라 수시로 조정한다. 그가 주장하는 엘리트의 독보적인 소득이나 배타적 삶의 방식이, 계층지위에 따라 낮아지면서 연속선을 그린다면, 그의 주장의 근본, 즉 양극화된 사회라는 주장은 무너진다. 둘째, 그의 서술은 전적으로 미국 사회에 한정해 있는데, 그가 지칭하는 엘리트들은 세계화된 사회 속에서 높은 지위를 획득한 사람들이다. 미국의 엘리트 전문인은 대부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다국적 비즈니스 분야에서 활동하고 그로부터 높은 소득을 거둔다. 예컨대 빌게이츠가 엄청난 부를 획득한 것은 세계화된 시장 속에서 그의 능력과 노력이 독보적으로 평가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의 업적주의 보상체계는 미국 사회에 한정해서는 파악하기 힘들다.
셋째,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보상하는 업적주의가 큰 소득 격차와 사회 양극화를 낳고 있다면, 그 대안이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없다. 그가 제시하는 대안이라고 하는 것은 아마추어 수준이다. 인류의 과거는 부모의 지위에 따라 자동적으로 지위를 배분하는 방식인 카스트나 귀족 사회, 정실에 따라 지위를 배분하는 방식, 부모의 재산과 사업을 자식이 물려받는 방식이 지배했다.이러한 방식보다는 능력과 노력에 따라 보상하는 업적주의가 그나마 낫다. 그러나 저자가 지적했듯이 업적주의 또한 세대간 엘리트 지위의 전승을 근본적으로 틀어 막을 수 없다. 왜냐하면 부모가 자신의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에, 엘리트들은 자신의 능력과 노력의 노하우를 전력을 다해 자녀에게 전승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지위를 자녀에게 전승한다.
실용주의 철학자인 마이클 샌델은 업적주의의 폐해를 막기위해, 업적과 보상을 극단적으로 연결시키는 순수한 업적주의 방식을 부분적으로 수정할 것을 제안한다. 업적의 가치를 어느 정도는 인정하되, 이것 이외에도 사회와 삶에 가치있는 다양한 기준을 동시에 인정한다면, 개인의 업적에만 전적으로 보상을 몰아주는 현재의 업적주의 보상체계는 타당하지 않다. 국가가 관여하여 다양한 가치에 따른 보상의 균형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고, 그에 따라 각 가치에 따른 행동에 대해 보상이 적절히 돌아가도록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는 이러한 방식을 사회 민주주의적 방식이라고 지칭한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능력과 노력에 따른 영리 행위의 업적에 대해 높은 세금을 매겨, 이 세금으로 다른 가치 행위에 대해 보상을 해준다는 발상이다. 샌델의 사회민주주의적 보상 체계에 설득력이 있지만, 사실 현재의 상황은 업적주의를 약화시키기보다는 업적주의를 더 충실히 적용하는 방향으로 개선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미국을 포함한 세계 모든 사회는 개인의 능력과 노력이 제대로 보상되지 않으며, 이것이 더 큰 사회 문제를 낳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현재 미국의 엘리트 전문인들의 소득, 일, 교육에 대해 상세하게 서술한다는 점에서는 가치가 있다. 그러나 서술이 지나치게 반복적이라 읽는 것이 매우 지루했다. 양극화와 엘리트 중심 업적주의의 폐해에 대해서는 말을 많이 하지만, 그렇다면 대안이 무엇이냐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책의 맨 끝에서 간단히 언급하고 끝 맺어서 허탈했다. 대안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담기지 않은 비판이라면 비판의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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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번드 모리스 (이규범 옮김). 2017(1985). 바디 워칭. 범양사. 312쪽.
저자는 동물학자이며, 이 책은 머리카락에서 발끝까지 인체를 20개 부분으로 나누어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구조와 기능, 진화의 흔적, 성장과 운동, 자세, 표정, 몸짓 등등을 생물학, 의학, 심리학, 문화인류학, 사회학 등 과학적 지식을 총 동원하여 종합적으로 설명한다. 또한 신체 각 부분에 대한 사회적 관습, 상징적 의미, 미신과 신화 등 사회 문화적 측면 또한, 서구사회에서 아프리카의 원시 부족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의 다양한 문화를 비교하면서 설명한다.
신체 각부분과 연관된 설명을 다양한 사진과 그림과 함께 곁들여 제시하기 때문에 이해가 쉬우며 읽는 즐거움이 있다. 우리 몸은 누구에게나 매우 친숙하지만, 평소에 의식하지 못했던 다양한 사실을 접하게 되어 매우 흥미로웠다. 우리 몸의 많은 부분이 성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는 사실은 인간 행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예컨대 인간의 다리 자세에 따라 이것이 발산하는 성적인 의미가 다르다는 사실. 번역도 자연스럽게 잘 되어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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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도 슈사쿠. (공문혜 옮김). 1982(1966). 침묵. 홍성사. 295쪽.
저자는 소설가이며, 이책은 종교적인 고뇌를 주제로 한 종교소설이다.
1600년대에 일본이 카톨릭을 박해하던 시대를 배경으로, 일본에 몰래 잠입한 포르투갈의 선교사가 관헌의 박해을 받은 끝에 결국 배교하고 만다는 줄거리이다. 이야기의 굴곡이 없이 단선적으로 진행되며, 배교에 이르는 과정에서 겪는 주인공의 심리적 고뇌가 주요 테마이다. 주인공은 기독교를 믿는 주민들이 처참한 고문을 받는 상황에서, 자신이 배교하면 그들을 고문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겠다는 설득에 굴복한다. 하느님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란, 타인의 아픔을 줄이기 위해 신부로서 일생동안 지켜온 신앙적 고집을 꺽는 것이라고 선언한다. 하느님은 왜 선과 함께 악을 내셨으며,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인간사를 접하고도 왜 계속 침묵하냐고 묻는다.
이 소설은 이야기 전개가 단선적이지만, 주인공의 심리적인 다이나믹을 잘 묘사하여 독자의 몰입을 이끌어 낸다. 기독교의 근본적인 질문을 핵심으로 하는 전형적인 종교소설이다. 저자의 독실한 신앙이 밑바닥에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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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ic Hobsbawm. 1994. The Age of Extremes: A History of the World, 1914~1991. Vintage Books. 585 pages.
저자는 영국의 역사학자이며 공산주의자로 유명하다. 이 책은 1914년에 1차 세계대전에서부터 시작하여, 1917년 소련의 공산주의 혁명, 1930년대의 대공황과 파시즘의 확대, 1940년대의 이차대전, 이후 냉전과 1950~60년대 서구의 장기간의 경제 호황, 1970년대의 경제위기와 제삼세계의 등장, 1980년대 신자유주의의 확대, 1989~91년에 공산주의 세계의 몰락으로 끝을 맺는다.
제 1차 세계대전은, 뒤늦게 산업화로 부상한 독일이 기존의 제국주의 세력인 영국과 프랑스에 도전한 사건이다. 전쟁에 패한 독일은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나찌의 파시즘이 큰 호응을 얻는다.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중류층은 기존의 자유주의 질서에 분노하며, 민족주의적 국수주의와 반민주주의가 결합한 파시즘에 열렬히 호응한다. 2차대전으로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제국주의 질서는 몰락하는 대신, 미국이 국제무대에서 새로운 강국으로 올라선다. 1차 대전과 2차 대전은 역사적으로 볼 때 한덩어리 사건이다.
1917년 공산주의 혁명은 무산자 계층이 기득권 집단을 타도한 사회혁명 social revolution이다. 소련은 중앙집중적 계획경제 정책을 구사하면서, 1950년대까지 빠른 속도로 산업화를 이룩하였다. 기득권 집단을 전복하고, 가난하고 낙후한 사회를 빨리 발전시키는 모델로서 소련의 공산주의 체제는, 이차대전 이후 독립한 제삼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에게서 큰 호응을 얻었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 시장 기구의 비효율과 불평등 확대 문제를 피할 수 있는 대안으로 선호되었다. 그러나 중앙집중 계획경제의 비효율은 1960년대 이래 점차 확대되었으며, 결국 이러한 내재적 문제로 인하여 1980년대말 공산주의 세계의 붕괴로 끝을 맺는다.
1930년대 대공황을 겪으면서, 자본주의 체제의 수요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각광을 받았다. 북유럽 국가의 사회민주주의가 가장 극단적인 경우이다. 그러나 이러한 수정 자본주의 체제는 점차 효율성이 떨어졌으며, 1970년대 제삼세계의 부상으로 큰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1980년대 들어 시장기구를 강조하는 신자유주의가 등장했는데, 이는 이후 불평등을 확대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1980년대 들어 정보통신 기술과 운송기술의 발달로 세계화가 전개되어 국제분업이 확대되었다. 선진 산업국에서는 제조업이 쇠퇴하는 대신, 제3세계 국가들이 국제 분업 체계에 편승하여 발전하면서 세계 경제에서 비중을 늘려갔다. 그 결과 국제 정치경제에서 차지하는 미국의 비중을 갈수록 줄어들었다. 한편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지역은 이러한 세계화에서 배제된 채, 극빈자가 다수를 차지하며 정부의 역할이 미약하고 폭력이 지배하는 야만의 세계이다.
저자는 평등과 정의의 관점에서 역사 전개를 본다. 실재한 유일한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은 자체 문제 때문에 붕괴했지만, 무산자가 기득권자를 타도하는 이념으로서 칼맑스의 공산주의는 의미가 있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 체제는 불평등과 착취를 내재하고 있기 때문에, 평등과 정의의 관점에서 볼 때 좋은 대안이 아니다. 서구는 개인이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극단의 개인주의 사회로 향하고 있는데, 국가의 개입으로 전체의 복리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조정되어야 한다. 저자는 1990년대 초반 글을 쓰는 시점의 세계는 위기 상황이며 변화가 긴급히 요구된다고 주장한다.
그의 20세기 역사 해석은 큰 영향을 미쳤다. 일이차대전과 파시즘에 대한 분석은 학계의 정론으로 자리잡았다. 그가 글을 쓰던 1990년대 초반에는 중국의 부상을 전혀 상상할 수 없었는지, 불과 수십년 후에 국제 사회에서 큰 위치를 차지할 중국에 대한 언급은 빈약하다. 중국에 대한 서술은 대약진 운동과 문화혁명의 혼란이 전부이다. 공산주의 세계에 대한 그의 서술은 우호적인 동정 sympathy 의 냄세가 물씬 풍긴다. 공산주의 이념을 뿌리깊이 옹호하는 지식인으로서 서구 자본주의 세계의 전개를 분석하는 그의 서술이 신선하고 흥미롭다. 그의 글은 엄청난 정보를 잡아 넣으며, 생각을 계속 추가적으로 이어가는 방식으로 서술하기 때문에, 문장이 복잡하고 길어서 읽기 어렵다. 주어가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 문장을 반복하여 읽을 때가 많았다. 읽기는 어렵지만 통찰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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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가키 에미코 (박정임 역). 2022. 피아노 치는 할머니가 될래: 인생 후반전에 만난 피아노를 향한 세레나데. 알에이치코리아. 227쪽.
저자는 에세이 작가이며, 이 책은 저자가 50대 중반에 피아노를 다시 배우고, 음악에 빠지게 된 과정을 서술한다. 어렸을 때 배우다 만 피아노를 다시 시작하면서 느낀 감정과 시련의 과정을,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겪은 인생 경험과 교차하면서 이야기한다.
저자는 피아노를 다시 배우고 싶다는 꿈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었지만, 우연히 음악 출판사 사장으로부터 글을 써보라는 제안을 받기 전까지는 실현하지 못했다. 음악잡지에 글을 쓰는 조건으로 전문 피아니스트를 선생으로 소개 받고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다. 어렸을 때 기초를 배우기는 했지만 40년간 피아노를 만진 일이 없는데, 피아노 선생의 권유로 연습곡이 아닌 본격적인 작품을 처음부터 치기 시작한다. 모짜르트의 "반짝반짝 작은별" 변주곡을 맨처음으로 치고, 이어 쇼팽, 베토벤, 드비시, 바흐 등의 곡을 어렵게 어렵게 쳐나가면서, 음악의 세계에 빠져든다. 과거 수동적으로 듣기만 할 때와는 달리, 본인이 피아노를 치면서 피아노 작품을 훨씬 깊게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을 큰 수확으로 꼽는다.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지 3년이 지나 이 책을 쓰는 시점에서, 피아노 없이는 앞으로의 인생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피아노가 작가의 인생에 중요한 동반자가 되었다.
저자는 무척 성실한 사람이다. 노력을 투입하면 그에 따른 성과가 고지곧대로 나온다는 점을 피아노를 배우는 묘미로 지적한다. 지난 삼년 동안 거의 매일 두시간 이상 꼬박꼬박 피아노를 쳤다고 한다. 그러나 피아노를 배우는 과정은 지난하여, 엄청난 노력을 투입하는 것에 비해서는 진척이 매우 느리다. 이렇게 계속 연습하면 늘기는 느는 것인가, 곡의 어려운 부분을 내가 과연 쳐낼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을 품고서 피아노 연습을 하지만, 결국 끈질기게 연습하면 그래도 조금이나마 진척이 있음을 확인하고 보람을 느낀다.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투입해도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이 불확실함을 인정하면서 연습을 한다. 인생의 후반기에 들어 몸과 두뇌가 후퇴함을 체감하면서, 고도의 능력을 요구하는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것에 대한 불안감과 체념을 고백한다.
피아노란 젊을 때와 달리 단순히 열심히만 한다고 하여 되는 것이 아님을 절감한다. 의욕과 초조함이 앞서 매우 열심히 연습한 결과 손가락 통증에 고생하며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치는 단계로 업그레이드를 시도한다. 자신의 피아노 실력이 느는 것과 함께, 자신의 피아노 연주가 도달할 수 있는 한계를 절감한다. 왜 내가 피아노를 치는가 하는 질문을 수시로 자신에게 던진다. 저자는 피아노를 칠 때가 즐겁다고 말한다. 노년에 피아노를 치는 것은 전문 연주자의 실력을 넘보는 것이 아니라, 어떤 목표점에 도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피아노를 치며 즐거움과 보람을 느끼는 그 자체로, 즉 "현재에 만족하는 것"이라고 하며 글을 맺는다.
저자는 전업 작가 답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솜씨가 좋다. 글 전체에 유머가 깔려 있으며, 자신의 새로운 인생에 대한 자긍심이 넘쳐 흐른다. 이 글의 필자 또한 이 책의 저자와 마찬가지로 늦깍이로 피아노를 배우고 있다. 그의 고민과 시련에 전적으로 공감하며 단숨에 읽었다. 필자 역시 이러한 길이 어디까지 갈지 의문을 품고 피아노를 친다. 물론 이 책이 답을 주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와 유사한 길을 가는 동시대의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느낀다. 번역도 자연스럽게 잘 해서 읽기가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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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ty Lyman. 2021. The Painful Truth: the new science of why we hurt and how we can heal. Bantam Press. 218 pages.
저자는 신경정신과 의사이며, 이 책은 사람들이 지속적인 통증(persistent or chronic pain)을 느끼는 원인을 설명하며, 이러한 지식을 기반으로 어떻게 통증을 치유해야 할지 제시한다.
통증은 기본적으로 우리 몸을 보호하는 장치이다. 이는 통증이 우리 몸 조직의 손상이 보내는 신호라는 전통적인 생의학적(biomedical) 개념과 대조되는 새로운 시각이다. 즉 "pain is our body's protector, not detactor"라는 명제는 통증에 대한 혁명적인 인식의 변화이다. 통증이란 원래 우리 몸의 손상된 부분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 두뇌가 발하는 경고이다. 우리 몸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통증을 통해 우리의 의식과 행동을 조정한다. 통증은 이를 유발한 물질, 환경, 상황으로부터 우리가 앞으로 멀리하고 조심하도록 유도한다.
단기적으로 느끼는 통증은 손상된 조직이 보내는 신호이며, 손상이 치유되면 통증이 사라진다. 그러나 조직의 손상이 치유되었음에도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통증은 마음의 문제이다. 우리의 두뇌가 우리의 몸을 과보호하는 상태로 굳어져서 (wired), 물리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없음에도 우리의 두뇌가 환경에 지나치게 과민하게 반응하여 통증을 유발하는 것이다.
통증이 물리적 손상에 대한 수동적 반응이기보다, 두뇌의 적극적 작용의 결과라는 증거는 흔하다. 병사들이 전장에서 크게 부상당했음에도 그 당시에는 통증을 느끼지 못하다가 안전한 곳으로 옮겨졌을 때 통증을 느끼는 경우, 우리의 두뇌는 전장에서 살아남는데 집중하는 반면 통증은 생존에 도움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손상된 조직에서 올라오는 통증 감각 신호를 무시한다. 어떤 일이나 상황에 집중해 있을 때, 그당시 다친 것을 깨닫지 못하다가, 나중에 일이 끝나고 나서 통증을 느끼게 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통증은 사회적 원인에 의해서도 만들어진다. 사회적으로 고립되거나, 정당하지 못하게 취급되거나, 사회적으로 배제되거나, 인간 관계에서 높은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 우리 몸은 통증을 느낀다. 우리 두뇌가 이러한 상황을 안전하지 않은, 생존에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통증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나 가난한 사람들이 쉬 아프고, 아프기 때문에 정상적인 사회활동에 참여를 줄이고, 이것이 다시 통증을 악화시키는 악순환을 빚는다. 반면 주위 사람으로부터 사랑받고 돌봄을 받는 경우, 조직의 손상이 유발하는 통증 조차 훨씬 줄어든다.
근래에 미국에서 마약성 진통제(opiods)에 중독되어 젊은 나이에 죽는 사회문제가 심각하다. 이러한 진통제에 의존하는 사람들은 실업, 빈곤, 사회적 배제로 인해 자존감이 손상되어 일반인보다 고통을 더 심하게 느낀다. 마약성 진통제는 복용을 할수록 효과가 떨어져 더 많은 양을 복용해야 하고, 마약성 진통제 자체가 통증에 대한 우리 몸의 민감성을 높여서 일반인보다 일상에서 통증을 훨씬 높은 강도로 느끼기 때문에, 진통제를 더 자주 더 많이 찾는 악순환이 진행되어, 결국 마약성 진통제 과다 복용으로 사망에 이른다. 마약이나 마약성 진통제는 단기적으로는 통증을 없애주지만, 장기적으로는 통증을 더 느끼게 만드는 부작용을 가지고 있다.
조직의 손상을 동반하지 않은 지속적 통증은 두뇌의 문제임으로, 통증을 유발하는 두뇌의 작용을 바꾸어야만 통증이 치유된다. 처음 통증을 유발했던 상황이 더 이상 위험 요소가 아니라는 점을 두뇌에 새로이 각인시켜야 한다. 이는 환경을 바꿈으로서 가능하다. 예컨대 지속적으로 허리 통증을 느끼는 경우,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여 점차 강도를 높이는 운동을 통해, 허리 움직임이 허리 관절을 더이상 위험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두뇌가 스스로 깨닫게 해야 한다. 우리의 두뇌는 변형(rewiring)이 가능한 높은 유연성을 지닌다. 두뇌의 오작동으로 인한 통증은 인식의 오류를 개선함으로서 치유할 수 있다.
저자는 자신의 개인적 경험과 다양한 사례들을 이론적 논의와 섞어서 설득력 있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많은 연구 결과를 인용하는데, 전달하려는 내용에 비해 때로는 반복적이고 장황하다는 느낌이 든다. 4분의 1 정도 양을 줄이면 더 좋은 책이 됐을 것이다. 여하간 이해가 잘 되고 통찰력을 주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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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Bradford DeLong. 2022. Slouching Toward Utopia. Basic Books. 536 pages.
저자는 경제학자이며, 이 책은 1870년에서 2010년까지 서구,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한 경제사를 서술한다.
1870년대는 맬더스의 주장, 즉 생산성의 증가가 인구 증가를 앞지를 수 없기 때문에, 인류는 빈곤과 비참속에서 간신히 생존을 지속하는 삶을 영위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주장이 틀리게 된 시점이다. 인류는 조직적 연구를 통한 기술 발전 (research and technology)과 대규모 경영 조직(large corporation)의 주도 덕분에 생산성 증가가 인구 증가를 앞서게 되었으며, 이후 생존 수준을 넘어선 풍요를 구가하게 되었다.
1870년 이래 엄청난 부의 창출을 이끈 또 다른 요인은 자본주의 시장 경제이다. 시장은 모든 참여자의 아이디어를 모으는 (crowdsourcing) 기제이며, 다른 어느 체제보다도 효율적으로 자원을 배분하는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인류가 이전에는 보지 못한 규모의 부를 만들어 내었다. 자본주의 경제는 전체 부의 규모는 크게 높이지만 분배의 문제는 잘 해결하지 못하는약점을 안고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시장 가치를 최고의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인간의 다른 여러 욕구와 권리를 잘 반영하지 못한다. 시장이 인간을 위해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시장을 위해 기능하는 주객 전도 현상을 초래하였다. 칼 폴라니는 사람들은 공동체에 대한 욕구, 자신의 능력에 맞는 일을 할 권리, 인간적으로 취급될 권리 등, 시장 가치로 평가되기 어려운 욕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이 추구하는 유토피아는 칼 폴라니가 주장하는 그러한 가치와 권리가 모든 사람에게 보장되는 사회이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만들어낸 분배 체계는 갈등을 초래하며 때때로 대공황과 같은 혼란을 겪게 된다.
1870년에서 1차대전이 발발한 1914년까지 서구의 경제는 엄청난 부를 창출하였으나, 자체의 모순 때문에 큰 전쟁과 대공황을 겪었다. 대공황을 거치면서 서구 자본주의는 사회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하고 시장의 문제를 어느 정도 완화시켰다. 사회보장제도, 정부의 개입에 의한 시장 조정, 정부 재정을 통한 경기 변동의 완화, 등 케인즈의 경제학은 서구 자본주의의 핵심으로 편입되었다. 그 결과 1945년 이차대전 종전 이래 1970년대 초반까지 약 30년간 서구 경제는 다시 엄청난 풍요의 시대를 맞았다.
1970년대에 중동발 자원민족주의의 충격파는 서구 경제를 심각한 침체로 몰아 넣었다. 미국 경제는 1980년대 산업 구조 조정과 신자유주의적 시장 경제 강화 정책에 힘입어 다시 회복했으며, 1990년대에 정보통신기술과 콘테이너 운송 기술 발달이 가져온 세계화의 선두에서 생산성 혁신을 이끌면서 다시 엄청난 부를 만들게 되었다. 그러나 세계화로 형성된 국제분업체계는 고부가가치 분야를 서구 특히 미국이 독식하면서, 세계의 부가 선진국의 소수에게 집중하는 경향을 심화시켰다. 개발도상국들 또한 세계화가 만들어낸 국제분업체계에 편입되어 혜택을 보게 되면서, 세계의 빈곤인구는 놀랄만한 속도로 줄어들었다.
21세기에 들어 세계는 유토피아로 나아가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저자는 아니다 라고 뚜렷이 말한다. 자본주의 경제는 부를 만들어내는 능하지만, 인간의 다양한 욕구와 권리를 충족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한편 분배 문제에서 강점을 보인 사회민주주의 체제는 1990년대 이래 지속적으로 부를 만들어내는 데 실패하여 신자유주의에 의해 대체되었다. 세계 경제의 부를 계속 증가시키면서 어떻게 모든 사람들의 다양한 욕구를 효과적으로 충족시킬지 하는 질문에 대해, 인류는 아직 뚜렷한 답을 찾지 못했다.
이 책은 경제학자의 관점에서 20세기의 변화를 검토한다는 면에서 역사학자의 경제 변화에 대한 서술과는 확실히 결이 다르다. 저자는 자신의 리버럴한 입장을 서술의 곳곳에서 많이 표출하고 있다. 약간 냉소적이며 비유적인 표현을 많이 쓰기 때문에, 저자가 뚜렷이 무엇을 이야기 하는지 불확실한 문구가 많다. 읽기 쉬운 책은 아니며, 혹시나 하고 끝까지 참고 읽었지만 별반 통찰력을 얻지 못했다. 저자는 칼 폴라니를 추종하는데, 어떻게 세계 경제가 칼 폴라니가 제시하는 대로 발전할 수 있을지에 대해 전혀 아이디어가 없다. 세계 경제가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는지 저자 스스로 자신도 잘 모르겠다고 솔직히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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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K 식물 편집위원회 (박원순 옮김). 2020. 식물 대백과사전. 사이언스 북스. 343쪽.
이 책은 도판으로 구성된 백과사전으로 식물의 다양한 측면을 그림과 함께 서술한다. 식물계, 뿌리, 줄기와 가지, 잎, 꽃, 씨앗과 열매로 장을 구분하여 제시한다. 식물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 보다는 다채로운 그림이 이 책의 핵심이다. 다양하고 기이한 식물들의 사진과 그림을 보면서 눈이 호사하는 느낌이 든다. 자연이 만든 생명체의 다양성에 새삼 감탄한다. 어린 시절에 백과사전을 읽으며 홀로 많은 시간을 보냈던 기억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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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in De Haas. 2023. How Migration Really Works: the facts about the most divisive issue in politics. Basic Books. 372 pages.
저자는 네덜란드의 사회학자로 이민문제 전문가이다. 이책은 이민 문제를 둘러싼 논쟁에서 흔히 제기되는 주장을 반박하면서, 객관적인 데이타를 사용하여 이민 문제의 실상을 밝힌다.
국제 이민이 근래에 폭증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지난 반세기 동안 국제 이민자의 절대수는 증가했으나, 인구 비율로 볼 때에는 전체 인구의 3% 부근에서 매우 안정적이다. 이민자의 대부분은 언어와 문화가 유사한 같은 지역 내에서 이동하며, 가난한 나라에서 선진국으로 이동하는 인구는 상대적으로 매우 소수이다. 근래에 선진산업국에서 불법이민자들이 폭증했다고 대중영합 정치인들이 주장하면서 대중을 선동하는 것은 그들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얻기 위함이지, 실제 불법 이민자들이 폭증했기 때문은 아니다. 시민단체나 매스컴 역시, 불법 이민자들의 고통과 폭증을 자극적인 말과 이미지를 사용하면서 크게 부각시키는데, 이 역시 그들 자신의 이익, 즉 대중의 지원과 관심을 끌기 위한 것이다.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에 소득 격차가 엄청남에도 매우 적은 수의 사람들만 이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이 익숙한 환경에서 계속 살려고 한다. 국경을 넘어 먼거리를 이동하는데에는 물질적 정신적으로 큰 투자가 필요하다. 국경을 넘어 이주하는 모험을 감행할 때 치러야 할 재정적 비용이나 신체적 위험은 엄청나며, 설사 목적지에 도착해도 낮선 환경에서 주변의 차별과 무시와 외로움을 버텨내며 지내는 것은 엄청난 시련이다. 국경을 넘어 이주를 감행하는 사람들은 출신 국가에서 상대적으로 재력이 있고, 교육 수준이 높으며, 정신적으로 강인한 사람들이 오랜 고민과 계획 후에 신중하게 실행에 옮긴다. 이민자의 대부분은 극빈한 나라가 아닌 어느 정도 소득과 교육 수준이 되는 개도국, 예컨대 멕시코,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등 국가 출신이다. 재해, 빈곤, 전쟁 등의 이유로 고향을 떠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같은 나라 내에서 이웃 지역이나 시골에서 도시로 이동하는 데에 만족한다.
큰 비용과 위험을 무릅쓰고 선진국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은 뚜렷한 이유가 있다. 선진국에서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것이 자신의 나라에 머무는 것보다 자신과 자신의 가족의 미래, 즉 지위를 상승시키는 데 훨씬 낫기 때문이다. 선진국에서 일할 기회가 적으면 이동하지 않는다. 선진국의 경기와 이민자의 수는 함께 움직인다. 이민자들의 거의 대부분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움직인 사람들이다. 불법 이민자들은 극심하게 착취당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선진국 사람들의 시각에서 보는 것일 뿐, 가난한 나라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이동 중에 착취당하고 도착해서 낮은 임금과 비인간적 노동조건으로 착취를 당하더라도, 그것이 자신의 나라에 머무는 것보다 나은 선택이기 때문에 그리한다.
선진국에서 얻는 일자리와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이라는 유인이 존재하는 한, 아무리 국경 장벽을 높이 세워도 불법 이민자의 유입을 막을 수 없다. 선진 산업국은 노령화, 교육수준의 상승, 여성의 노동 참여 확대, 소득 수준의 상승, 등의 요인 때문에 개인 서비스 수요가 갈수록 높아지는 반면, 소위 3d 업종, 즉 더럽고 힘들고 낮은 임금의 노동을 하려는 사람은 내국인 중에 거의 없다. 내국인은 차라리 놀면서 정부의 보조금을 받을 지언정, 그렇게 열악한 지위의 일자리를 맡으려고 하지 않는다. 이민자들이 없다면 다양한 개인서비스나, 농업 노동의 수요를 채울 수가 없다. 따라서 정치인들은 말로는 불법 이민자를 막겠다고 하지만, 막상 불법 이민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고용주를 처벌하는 조치는, 법에서 규정하고 있음에도, 실행에 옮기지 않는다. 미국 전체에서 불법 이민자를 고용한 고용주를 처벌한 사례가 일년에 10~30건에 불과하다는 통계가 이를 실증한다.
진보 혹은 보수 성향의 어느 쪽이 정부를 장악하던 이민자에 대한 실제 정책의 차이는 거의 없다. 노동시장의 수요와 합법 이민자의 규모 사이에 괴리가 있는 한, 그 간극을 불법 이민자가 채우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선진국에서 이민 노동자의 수요가 크기 때문에, 사실 이민자의 90%는 합법 이민자이며, 10%만이 불법 이민자이다. 불법 이민자의 대분은 합법적으로 입국하여 비자 기한을 넘기는 등의 방편으로 불법 이민자가 된 경우가 다수이므로, 국경을 막는데 엄청난 돈을 들이는 것은, 보안 산업의 배만 불리는 결과를 초래할 뿐, 실제 별 효과가 없다. 국경을 넘는 것을 어렵게 만들수록, 불법 이민자가 치르는 재정적 신체적 희생이 커질 뿐이다.
정부의 이민 정책은 일관적일 수 없다. 왜냐하면 보수당과 진보당 모두, 각각 자신의 지지층 내에 이민에 대해 서로 다른 이익을 가진 집단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보수당 지지자 중 기업가와 부자는 이민의 문호를 확대하기를 원하는 반면, 인종 민족 정체성을 지키고 보수적 가치를 옹호하는 사람은 이민을 줄이기를 원한다. 진보당 지지자 중, 노동자들은 이민자가 확대되는 것을 반대하나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은 이민이 확대되어 인간적으로 핍박받는 개도국 사람을 돕고 사회의 다양성이 높아지기를 원한다. 따라서 선진국 정부가 제시하는 이민 정책은 수시로 바뀌며, 실제 문제를 정면으로 부딛치기보다, 국민들에게 내세우는 인상을 중요시하고 피상적인 접근에 머무른다.
일반인들의 이민자에 대한 태도 또한 일관적이지 않다. 선진국의 일반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이나 핍박받는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밑에 깔고 있으며, 실제 주위에서 이민자들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보고 그들에 대해 우호적인 감정을 가진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민자들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하고 저임금으로 파고 들어오면서 노동시장의 상황이 열악해지는 것을 염려한다. 많은 사람은 이민자들이 식당 뒤에서 일하며, 노약자를 돌보고, 아이를 돌보고, 청소하고, 정원 관리하는 것을 일상에서 항시 경험하면서 그런 일을 도맡아 하는 이민자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불법 이민을 막는 것에는 찬성하지만 합법적인 이민자의 유입까지 막는 것은 반대한다. 국경은 엄격히 관리되어야 하지만, 선진국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젊고 열심히 일하는 노동력은 어느 정도 규모로 계속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상이 위와 같다면, 근래에 "이민의 위기" immigration crisis 라고 외치면서, 이 문제에 대해 긴급히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하는 정치인, 미디어, 시민단체의 주장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저자는 이민 문제의 사실을 정확히 이해시키는 것이 일차적 목표일뿐,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할 의향은 없다고 말한다. 선진국 사람들이 높은 물가, 낮은 성장율, 낮은 삶의 수준을 감내할 각오가 되어 있지 않다면, 이민자의 유입을 막는 어떤 방안도 효과를 볼 수 없다. 낮은 임금, 열악한 노동 조건의 일자리 덕분에 선진국 사람들은 큰 혜택을 보고 있으며, 저소득 국가 출신의 이민자들 또한 이익을 얻고 있다. 이러한 이익이 맞아 떨어지는 한 이민자는 존재할 것이고, 만약 이들의 이동을 막으려 한다면, 이민자들의 희생만 커질 뿐이다.
국경을 완전히 개방하여 사람들을 자유롭게 왕래하도록 하는 방안 또한 현실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선진국에서 이민자로 인한 이익은 중상류층에게 주로 몰려있는 반면, 노동계층은 상대적으로 큰 이익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 계층이 이민자가 주위에 넘쳐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국경의 완전한 개방은 정치적으로 현실화되기 어렵다. 선진국 국민이 합의하는 수준에서 합의하는 규모 만큼의 이민자를 합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최상의 정책으로 보인다. 내국인은 일하고 싶어하지 않지만 반드시 채워져야 할 일자리를 합법적으로 유입된 이민자가 채우도록 하는 정책이다. 만일 그렇게 하면 개도국 이민자가 지나치게 많아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대해, 저자는 일자리가 없다면 이민자이 들어오려 하지 않을 것이고, 이미 들어와 있는 사람들은 본국으로 돌아가는 "순환이동" circular movement 현상이 나타날 것이기 때문에 큰 문제 없으리라고 본다. 정치인들은 이민의 실상에 대해 솔직하게 국민을 이해시키면서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 현재와 같이 위선적으로 말과 행동이 불일치하는 정치는. 이민자의 고통을 가중시킬 뿐이다.
이 책은 저자의 30년간의 연구가 집약된 결과 답게 논의가 분명하다. 저자의 연구의 깊이가 느껴지는 책이다. 다만 맨 뒤편에 정책을 제시하는 부분에서는 모호한 서술이 보인다. 이민은 사회변화의 일부이므로, 사회변화 전체의 맥락에서 이민을 바라보아야 하고, 이민에 대한 접근 또한 보편적인 노동의 문제로 취급해야 한다는 주장은 사회학자의 냄세를 풍긴다. 여하간 서술이 명료하고 솔직한 인상을 풍기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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