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on Acemoglu and James Robinson. 2006. Economic Origins of dictatorship and democracy. Cambridge. 379 pages.
저자는 경제학자와 정치학자이다. 이 책은 어떤 경우에 민주주의로 이행하고, 어떤 경우에 민주주의로 이행하지 않는지, 어떤 경우에 민주주의가 공고해지는지에 대한 이론을 제시한다. 전반은 저자가 제시하는 이론에 관해 개념적으로 설명을 하고, 중반 이후는 수리모델을 적용해서 이 이론을 검증한다.
정치는 집단간에 경제적 이익이 충돌하는 장으로서, 부를 가진 소수의 엘리트 집단과 가난한 다수의 대중들 간의 투쟁이 정치과정의 핵심이다. 비민주적 정치체제는 엘리트의 부를 지키는 데 기여하며 다수의 대중에게 돌아가는 부의 몫은 적은 반면, 반대로 민주적 정치체제는 다수의 대중에게 부가 재분배되는 정책을 구사하므로 엘리트의 이익에 반하나 대중에게는 이익이 된다.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들어서면 재분배 정책을 채택하기 때문에 소득의 불평등 수준은 완화된다. 엘리트가 대중의 위협이 없는 데도 자발적으로 참정권을 확대하여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경우는 생각할 수 없다.
소수의 엘리트와 다수의 대중사이에 밀고 당기는 관계로부터 민주주의가 출현하는데, 저자는 이를 게임 이론을 적용하여 이론화한다. 다수의 대중으로부터의 참정권 요구, 부를 나누라는 요구가 커지면 엘리트들은 이러한 요구를 물리적으로 억압할 것인가, 아니면 그들에 요구에 굴복하여 참정권을 확대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밑으로부터의 요구가 매우 큰 데, 엘리트들이 무리하게 힘으로 억압한다면 혁명이 일어나게 되며, 이 경우 엘리트들은 밑으로부터의 요구에 타협하는 결정을 한 경우보다 더 큰 피해를 입는다. 밑으로부터의 요구에 대해 엘리트들은 일시적으로 당근책을 제시하지만, 민중은 일시적 당근을 넘어서 미래에도 자신들에게 계속 유리하게 분배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장받기 위해 의사결정 제도를 민주주의로 바꾸려고 한다. 민주주의 제도는 대중이 엘리트로부터 미래의 분배를 보장받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저자는 민주주의로 이행하거나, 혹은 이행하지 않는 유형을 네가지로 단순화한다. 첫째는 영국의 모델이다. 영국은 17세기에 명예혁명을 통해 귀족과 지주로 구성된 의회가 왕권을 견제하는데서부터 시작해, 19세기에 들어 수 차례의 정치 개혁으로 참정권을 점차 확대하여, 1870년대에는 남성 모두에게 참정권이 부여되는 민주주의를 확립했다.
엘리트가 참정권 확대를 양보하는 이유는, 밑으로부터의 요구가 거셀 때 이를 물리적으로 억압하여 초래하는 혼란의 비용이, 참정권을 확대하여 민중의 요구에 타협하는 비용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영국은 상공인 계층이 확대되면서 과거에 엘리트가 토지에만 의존하던 때보다 물리적 억압의 비용이 더 들게 된 반면, 참정권을 확대한다고 해도 민주주의 정권의 재분배 정책으로 인해 엘리트가 떠앉아야 하는 비용이 적어지게 되었다. 엘리트가 토지에만 부를 의존하면, 대중을 물리적으로 억압하면서 초래하는 혼란의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다. 반면, 상공업이 확대되어 엘리트의 부가 무역, 상공업, 인적자본에 의존하는 비중이 커지면, 대중의 억압이 초래하는 물리적 혼란의 비용이 매우 크다. 엘리트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무역과 상공업의 비중이 클 경우 민주주의 체제가 들어선다고 해도 부의 재분배 조치로 인한 희생은 엘리트가 토지에만 의존하던 때보다 훨씬 적다. 상공업의 부는 토지의 부보다 해외로 부를 이전하거나 조세를 회피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용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국의 엘리트들은 민주주의로 양보하는 것을 쉽게 허락할 수 있었다.
영국에서 민중의 요구가 특히 19세기에 거세졌을까? 이는 18세기의 계몽주의 운동, 프랑스 혁명, 미국 혁명 등으로 민중의 정치 의식이 높아졌으며, 산업화, 도시화로 민중의 조직력이 커졌기 때문이다. 반면 농업이 주인 경제에서는 민중이 농촌에 흩어져 있어 조직화하기 어렵기에 밑으로부터의 요구가 약할 수 밖에 없다.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 산업화, 도시화가 본격화된 19세기 후반에 들어 민주주의 체제가 들어선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중간계층의 존재는 다수의 민중과 소수의 엘리트 사이에서 양쪽의 요구를 절충하는 선택을 용이하게 한다. 따라서 중간계층이 성장하면 민주주의가 탄생하고 공고화되기 유리한 조건이 조성된다. 엘리트들은 밑으로부터의 요구에 대해, 먼저 중간계층을 포섭하여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밑으로부터의 압력을 약화시킨다. 다음 단계에서 밑으로부터의 요구가 다시 높아지면 참정권을 조금 더 허용하면서 점진적으로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경로를 밟는다.
영국은 민주주의제도가 도입된 이후, 지속적으로 민주주의 제도가 공고해지는 과정을 밟았다. 엘리트의 입장에서 볼 때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민주주의의 틀을 조작하여 계속 유지하면서 민중의 재분배 요구에 조금씩 양보하는 것이, 판을 뒤집어 업는 것보다 엘리트들이 부담해야 하는 피해가 덜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두번째 유형은 중남미 모델이다. 이 모델은 일단 형식적 민주주의가 들어서기는 하나, 민주주의가 공고화되지 못한다. 아르헨티나 등은 19세기 초반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후 독재의 길을 걸어 오다가 19세기 중후반부터 형식적 민주주의를 만들기는 했으나, 쿠데타로 엎어지고, 다시 민주주의 정부가 들어서기를 1980년대말까지 반복해왔다. 대농장 소유에 의존하는 중남미의 엘리트들은 대중의 분배 압력에 못이겨 형식적으로 민주주의를 허용했다가, 이러한 민주 정부의 혼란으로 쿠데타가 발생하여 군부가 집권하면, 민주정부때 도입했던 재분배 정책이 취소되면서 엘리트의 이익에 우호적인 환경이 만들어지고, 이어서 다시 민주주의의 압력이 높아지는 악순환을 거듭하였다. 중남미는 부의 불평등 수준이 높기 때문에, 민주주의 체제가 들어서 재분배 정책을 추진하면 엘리트들이 감당해야 하는 희생이 매우 크다. 부의 불평등 수준이 높아 밑으로부터의 압력이 혁명으로 비화될 위험도 크기 때문에, 엘리트들은 형식적 민주주의에 동의하기는 하나, 민주주의를 공고화하는 것에는 한사코 소극적이다. 민주주의 정부가 혼란에 빠져서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면 엘리트들은 쉽게 이들을 지지하는 편에 서게 된다.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계기, 및 민주주의가 퇴행하는 계기는 모두 경제적 위기 상태에 빠질 때 발생한다. 외부적 요인 등으로 경제가 어려움을 격게 되면 밑으로부터의 요구가 거세져서 엘리트가 양보하는 사태로 발전한다. 일단 민주주의 체제가 들어섰어도 경제적 혼란에 처할 경우 이 정부는 군부 쿠데타에 쉽게 허물어진다. 쿠데타로 집권한 정부는 민중의 분배와 정의의 요구보다는 질서와 경제 안정을 우선시 하기에, 이들은 엘리트와 쉽게 결탁하며 기득권 집단에 유리한 정책으로 선회한다.
세번째 모델은 국민들이 참정권 확대를 강하게 요구하지 않는 비민주주의 체제로 싱가포르가 이에 해당한다. 싱가포르는 부의 분배가 상대적으로 평등하며 정부가 능력에 따라 움직이도록 투명하게 개방되어 있다. 국민은 국가의 주요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데에서는 배제되어 있지만, 현재의 부의 분배와 삶의 수준에 어느 정도 만족하므로 엘리트의 독점적 권력에 반대하지 않는다. 민중들은 민주주의를 강하게 요구함으로서 엘리트와 충돌하여 피해가 발생하면서까지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것의 보상이 크지 않다고 판단하기에 현상황에 안주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소득과 교육 수준이 높으므로 언제라도 민주주의 요구가 커질 수 있고, 엘리트의 입장에서 볼 때 민주주의 체제로 양보하는 것의 희생 역시 크지 않으므로, 장기적으로 볼 때 싱가포르에는 국민의 참여가 확대되는 민주주의가 들어설 것으로 예상한다.
네번째 모델은 민주주의로 이행할 가능성이 차단된 경우로, 인종차별이 철폐되기 이전의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이에 해당한다. 남아프리카에서는 백인과 유색인사이에 부와 이념의 격차가 매우 크므로, 백인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유색인의 요구를 억압하려 하였다. 유색인들의 참정권 요구는 백인의 노골적인 폭력에 부딛쳐 좌절되었다. 북미 대륙에서는 인디안 원주민들이 질병과 살육으로 오래전에 제거된 반면,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흑인 원주민들이 제거되지 않고 백인 지배자의 착취 대상으로 복속되어 20세기까지도 이러한 상태를 계속 유지해 왔다.
그러나 1990년대에 남아프리카에서도 민주주의가 도입되었다. 20세기 중반 이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경제가 다원화되고, 국제적 압력이 높아지면서, 백인 권위주의 정권에 가해지는 내외의 압력은 점차 높아졌다. 경제 다원화에 따라 흑인들의 소득이 점차 상승하면서 백인과 흑인간에 불평등의 정도도 완화되었다. 1980년대 이래 백인들은 흑인들에 대한 억압의 고삐를 점차 늦추면서 흑인들과의 공생관계를 모색하였다. 넬슨 만델라라는 흑인 지도자가 백인들에게 보복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백인과 권력을 분점하는 방안을 제도화하면서, 마침내 1990년대에 민주주의가 도입되었다. 그러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는 중간층이 얇으며 소득 격차가 매우 크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공고화되기 어려운 취약한 상태이다.
20세기 후반에 들어 전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확대되고 있다. 이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하였다. 전반적으로 민중들의 소득 수준과 교육 수준이 높아진 것, 세계화가 확대되면서 민주주의 정권의 재분배 정책으로 인한 엘리트의 희생이 감소한 것, 국제적 압력의 확대와 전염효과 등을 들 수있다. 20세기 중반까지도 민주주의가 공고화되지 못하던 아르헨티나, 칠레, 콜럼비아 등에서도 앞으로 민주주의가 공고화될 것으로 예상한다. 경제의 다변화, 대중의 소득과 교육 수준 상승 등의 요인이 중남미 민주주의의 공고화에 기여하는 요인이다.
배링턴 무어가 "민주주의와 독재의 사회적 기원"이라는 책에서 민주주의의 이행을 사회계급 사이의 구조적 관계로 설명함에 비해, 이 책의 저자는 "민주주의와 독재의 경제적 기원"이라는 유사한 책 제목을 달고 경제적 이해의 갈등 관계로 민주주의의 이행 여부를 설명한다. 두개의 논의는 모두 경제결정론이라는 유사점이 있다. 무어는 사회학자답게 보다 사회구조적인 배경에 설명의 촛점을 맞추는 반면, 이 책은 경제적 결정론을 바탕으로 하면서 정치학의 행위자 모델을 접목하는 설명을 한다. 경제 이외의 요인, 예컨대 인종이나 민족 등에 따른 정치적 갈등도 깊이 들여다 보면 경제적 이익의 분배와 관련된 것이므로 경제결정론적인 설명이 보편적으로 타당하다고 주장한다. 정치를 철저하게 경제적 이익의 분배를 둘러싼 갈등의 장으로 보는 접근 역시 독특하다. 모든 정치과정은 경제적 이익을 둘러싸고 전개된다는 시각이다.
이 책은 저자들이 제시하는 이론에 대해 개념적 설명을 하는 부분은 이해할 수 있지만, 수리 모델을 제시하는 중반 이후부터는 이해하기 어렵다. 저자들의 다른 책이 그렇듯이 통찰력이 크며 감탄할만하다. 수리모델이 얼마나 타당하고 유용한지는 까막눈인 필자로서는 전혀 알 수 없지만, 개념적으로 설명하는 부분은 명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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