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4) 그리니치 빌리지의 뒷골목으로 난 정원. 건물 사이로 출구가 열린 정원이다. 정원으로 들어가 주위를 둘러보니 도심 한 가운데인데도 조용하고 아늑하다.
몇 년 전 뉴욕 대학에서 방문 교수로 한여름을 보낸 일이 있다. 워싱턴 스퀘어 공원 앞 도서관에서 큰 유리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면 정말 아름답다. 가까운 건물의 계단 형으로 올라가는 옥상도 멋있고 워싱턴 기념 아치를 통해 보이는 5번가도 무척 아름답다. 여름에는 오래된 건물 사이로 워싱턴 스퀘어 공원과 5번가가 나무 가지로 울창하게 드리워져 있어 유럽의 옛날 도시를 보는 느낌이다.
뉴욕 대학 도서관의 실내는 천장이 높고 고풍스러운 샹들리에가 드리워져 있어 웅장한 느낌을 준다. 마호가니 책상이 반들반들 빛나고 책상마다 놓여 있는, 놋쇠로 만든 갓을 씌운 등이 환하게 빛을 발해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킨다. 등록금이 비싼 귀족 사립 학교는 과연 다르구나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아침 일찍 이곳에 와서 한적한 도서관의 분위기를 즐기고, 워싱턴 스퀘어 공원을 내려다보면서 하루를 계획하곤 했다. 자리를 잡고 조금 시간이 지나면 무거운 트레일러 가방을 끌면서 변호사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하나둘씩 나타난다. 이들은 우리나라의 고시생과 마찬가지로 책상 위에 한 무더기의 책을 쌓아 놓고 하루 종일 책과 씨름한다. 7월 말의 어느 날 도서관에 오니 이들이 완전히 사라져 있어서 웬일인가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무렵 변호사 자격시험이 있다고 한다. 뉴욕 대학 도서관에서 보낸 여름은 내 일생에서 가장 호사한 시간이다.
내 기억 속에서 뉴욕 대학과 워싱턴 스퀘어 공원은 분리되지 않는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피곤하면 바로 앞에 있는 공원에 나와 앉아 사람들을 구경하며 쉬곤 했다. 점심때는 집에서 싸가지고 온 샌드위치를 먹거나, 주변의 피자집에서 피자를 사와 워싱턴 스퀘어 공원의 분수 옆 벤치에 앉아 먹고 햇볕을 쬐며 시간을 보냈다. 피곤한 날에는 도서관에서 일찍 나와 그리니치 빌리지의 골목골목을 기웃거리며 돌아다니는 것도 즐거움이었다.
금요일 오후면 도서관이 텅 비고, 대신 워싱턴 스퀘어 공원이 사람들로 북적대기 시작한다. 점심시간부터 벌써 무료 공연이 이어지고 주위에 사는 학생들과 주민이 공원에 나와 주말의 해방감을 만끽한다. 개를 데리고 나온 사람, 어린 아이를 유모차에 밀며 나온 사람, 예쁘게 차려입고 데이트 하는 남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거리의 악사, 은퇴하고 여유 있는 삶을 즐기는 듯 보이는 노부부, 배낭을 둘러맨 젊은 여행자, 연신 사진기를 들이대며 호기심을 번득이는 관광객,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사방을 휘젓고 다니는 청소년, 분수 속을 좋아라 뛰어 다니는 어린이와 강아지. 이들 속에 섞여 있으면 왠지 내 가슴도 들떴다. 지금은 멀리 가버린 젊음을 다시 맛보는 것 같았다.
날씨가 좋은 오후에 워싱턴 스퀘어 공원에 앉아 있으면 심심하지 않다. 관광객도 많이 오지만, 그보다는 주변에 사는 시민이나 대학생들이 와서 시간을 보낸다. 가운데 분수를 둘러싸고 있는 계단과 벤치에 앉아 사람들은 책을 보고, 점심 도시락을 먹고, 남녀가 손을 잡고 앉아 포옹을 하고, 햇빛을 즐기며 넓은 하늘을 바라본다. 분수 광장 옆에는 거리 공연이 벌어진다. 젊은 흑인 팀이 정말 열심히 춤을 추고 구경꾼들은 박수를 치고 환성을 지른다. 몇 년 후에 다시 와 보았는데도 같은 얼굴의 흑인이 공연을 하는 것으로 보아 이들에게 이곳의 거리 공연은 직장이다. 광장 한편에는 나무가 우거진 오솔길이 있고 양쪽 벤치에 노인들이 앉아 있고 갓난아이를 유모차에 끌고 온 엄마나 아이 보는 아주머니 들이 잡담을 나누고 책을 읽거나 바느질을 한다. 그 너머에는 돌로 된 탁자를 가운데 놓고 노인들이 체스를 두고 있다. 그 중에는 내기 체스를 업으로 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체스 말을 정렬해 놓은 채 우두커니 상대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다.여름철에는 주말마다 분수 광장 한편에서 연주회가 열린다. 뉴욕시와 기업의 협찬으로 이루어지는 클래식 음악 연주회다. 공짜로 수준 높은 연주를 듣는다는 즐거움이 있기는 하지만 그곳에 상주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그리 반갑지 않다. 점심시간부터 공연 준비를 하느라 무대를 가설하고 의자를 정렬하고 통행을 막으면서 여유로운 공간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때때로 뉴욕 대학 음악전공 학생들 몇몇이 평일 점심시간에 간단히 하는 연주가 더 흥미롭다. 그들의 연주를 가까이 다가가 듣는 사람도 있지만, 멀리 벤치에 앉아 흘러오는 음악을 들으며 점심을 먹을 때는 정말 꿈 같은 시간이다.
그리니치 빌리지에는 옛날 도시의 모습이 살아 있다. 구불구불한 길과 기억하기 힘든 독특한 이름을 가진 가로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중에 게이 스트리트라는 이름도 보인다. 4번가와 12번가가 교차하기도 하고, 특이한 이름의 도로가 한두 블록 이어지다가 중간에 다른 이름으로 바뀌기 일쑤다. 주변으로 고층 건물이 올려다 보이지만 이곳에서만은 4~5층 높이의 오래된 건물이 주를 이룬다.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오래된 목조 건물과 밖으로 철제 계단이 돌출된, 벽돌로 지은 아파트가 가로에 잇닿아 있다. 폭이 5미터도 안 되며 한 층에 방 하나만 있는 삼사 층의 주택도 눈에 띈다. 일전에 이곳에 사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다. 한 건물에 한 가구가 사는데, 이 층에는 부엌 겸 거실이 있고 삼 층과 사 층에 조그만 침실이 각각 하나씩 있다. 집안에 난 좁은 계단을 오르내리며 사는 것도 나름 괜찮단다. 물론 장애가 있는 경우라면 이런 집에서 살기 어렵겠지만 말이다.
건물 사이에 난 좁은 골목으로 출구를 빠끔히 내밀고 있는, 조그만 정원을 가진 오래된 집도 보인다. 정원에 들어가 보니 도심 한 가운데인데도 조용하고 아늑하다. 대로변에는 상점이 줄지어 있지만 뒤편의 좁은 거리에는 드라마에나 나옴 직한 고풍스러운 주택이 고즈넉이 자리잡고 있다. 좁은 거리는 바닥에 작은 벽돌이 깔려 있어 멋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길거리에는 오래된 가로수가 줄지어 가지를 길게 늘어뜨리며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맨해튼의 중심가가 바로 옆이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만큼 동네 전체가 조용하다. 오래된 유럽의 구시가를 거니는 느낌이다.
이렇게 오래된 동네에 누가 살까 궁금해 하는데, 사오십 대의 지적으로 보이는 훤칠한 남자가 캐주얼 차림으로 문을 열고 나온다. 산보를 가려나보다. 편한 옷이지만 점잖게 입은 할머니도 간혹 눈에 띈다. 식료품을 산 쇼핑백을 손에 들고 있다. 미국 교외의 전형적인 주택가와는 달리 어린 아이나 청소년이 돌아다니는 것은 보기 힘들다. 함께 다니는 남녀를 많이 보지만 자녀가 없는 부부이거나 동거하는 연인 사이로 보인다.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마주치는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뉜다. 거리에서 보는 사람의 절반은 관광객으로 보이는데, 젊거나 중년 관광객이 많은 반면 어린 아이를 동반한 가족 관광객은 거의 없다. 또 다른 부류는 주변에 직장이 있거나 이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인데 이들의 차림새와 태도에서 보보스의 분위기를 읽는다. 어느 누구의 명령도 받지 않으며 자신의 머리로 먹고사는 자유분방한 전문직 종사자들이다. 그들은 지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비교적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누구에게도 거리낌이 없는 태도이다.
그리니치 빌리지 곳곳에 테이블을 밖에 내놓은 카페와 레스토랑이 있다. 그곳에서는 세련된 사람들이 담소를 나누며 한가한 여유를 즐긴다. 대로변에는 보헤미안 풍의 가게가 눈에 띈다. 펑크 스타일의 옷과 장신구를 파는 상점, 패션 드레스를 파는 부티크, 색다른 문양과 색채의 물건을 전시한 인테리어점, 독특한 그림을 걸어 놓은 화랑이 있다. 사실 이곳 거리에는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물건을 왕창 사서 집안으로 나르는 사람을 별로 보지 못한다. 사람들은 종이봉투나 쇼핑백에 들어갈 정도의 식료품을 사서 옆구리에 끼고 걷는다. 자동차 트렁크 한가득 식료품을 사서 실어 나르는 미국 중류층의 전형적인 소비문화와는 퍽이나 다른 분위기다. 차고가 없는 집이 대부분이고, 거리에는 녹음이 우거져 있으며 한가하게 거리를 산보하는 사람이 눈에 띈다.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동성애자를 만나기 어렵다는 것이 쉽게 납득되지 않았다. 동성애 커밍아웃 운동이 시작된 곳이 아닌가? 역사적으로 유명한 곳이 그렇듯 동성애자의 폭동이 일어났던 스톤월 인은 생각보다 훨씬 조그만 가게였다. 지금도 영업을 한다는데 사람의 인적을 별로 찾을 수 없다. 현관 위에 걸린 무지개 문양의 깃발이 이곳이 동성애와 관련된 곳임을 말해줄 뿐이다. 그 맞은편 크리스토퍼 공원에 있는 동성애 기념 동상 주변에서도 동성애자를 볼 수 없다. 이곳 모퉁이의 게이 스트리트에서 할머니를 만났다. 동성애자는 이곳을 떠난 것이다.
금요일이나 토요일 퇴근길에는 철망으로 둘러쳐진 거리 농구를 가끔씩 구경했다. 그곳 근처로 걸어가면 사람들의 함성이 들리고, 철망 너머 빠르게 움직이는 선수들의 격렬한 몸 놀림과 욕설이 나를 흥분시킨다. 그곳에서 움직이는 흑인 청년들을 보노라 면 본능에 충실한 동물이 연상된다. 울퉁불퉁한 근육질, 민첩한 몸놀림, 신속한 대시와 무지막지한 충돌, 엄청난 점프력. 이들의 건장한 육체를 보면서 한편으로 아름답지만 다른 한편 가슴이 아팠다. 흑인이 동물로 취급되던 노예제의 기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흑인 노예는 두뇌를 가진 인간이기보다 소나 말처럼 힘을 쓰는 동물로서 소유되고 착취되었다. 노예제 시절 유산 목록에는 가축이나 가구와 함께 노예의 이름이 기록되어 후손에게 상속되었다. 노예제는 흑인을 지능이 낮고 동물적 본능에 충실한 존재로 보는 고정관념을 미국 문화 속에 고착시켰다. 영화나 광고에서 흑인은 동물처럼 원초적인 욕정과 무지막지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이미지를 사용한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보면 백인이 흑인보다 키가 크고 육체적으로 더 건장하다. 미국에 오래 살면서 흑인에 대한 고정관념이 거짓이라는 것을 깨닫기는 했지만, 그것은 이성적인 판단일 뿐 감정적으로는 여전히 흑인은 육체적인 존재라고 느낀다. 문화적인 고정관념이 이성적 판단을 압도하는 것이다.
그리니치 빌리지에는 예술가들이 살지 않는다. 이곳을 걷다 보면 문화계의 유명 인사를 만난다고 하는데 이들은 가난한 예술가와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이곳은 중류층이 사는 교외나 부자들이 모여 사는 부촌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곳곳에서 자유로움과 다양성의 멋이 풍겨나기 때문이다. 순수한 보헤미안 주의와는 거리가 멀겠지만 , 판에 박힌 따분함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개성을 풍기며 다양성을 맛볼 수 있다. 일전에 어느 대도시의 교외에서 한동안 머문 적이 있는데 질식할 것 같은 단조로운 환경이 권태 그 자체였다. 기껏해야 인근 공원에서 바람을 쐬거나 도서관에서 비디오를 빌려 보거나 주말에 쇼핑몰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영화를 관람하는 것이 다였는데, 조금만 지나면 이 생활에 진력이 난다. TV를 즐겨 보는 것도 아니고 잔디를 기르는 데 취미도 없는 내게 교외의 생활은 인생 낭비다. 아무리 편리하고 풍요롭다고 해도 지적인 자극과 문화적인 호기심이 발동하지 않는 곳에서는 살고 싶지 않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이곳에 모여 있을 것이다. 집값이 무척 비싸다고 하니 아무나 살기는 어렵겠지만, 한적함이 묻어나면서 도시의 다양성과 문화생활이 바로 곁에 있는 이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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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뉴욕 시청 앞 공원. 맨해튼 시내에는 조그만 공원들이 곳곳에 있다. 고층 빌딩 사이에 있는 이 공원을 우연히 지나면서 도심 공원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었다.
뉴욕 거리를 걷다 보면 문득 떠오르는 의문이 있다. 대체 뉴욕의 무엇이 그렇게 매력적이기에 세계의 사람들이 이곳으로 몰려들까? 어떤 사람들이 뉴욕에 오고 뉴욕에 와서 무엇을 하는지 해부해 보자.
뉴욕 사람 중 가장 많은 수는 이민자와 그 가족들이다. 그들이 뉴욕으로 이민 오는 이유는 물론 아메리칸 드림을 좆아서, 열심히 일해 성공하기 위해서다. 일 세대 이민자 대부분은 낮은 임금을 받는 서비스 업종에서 일하지만, 미국에서 태어난 그들의 자녀 중 일부는 미국 대학을 나와 사무직이나 전문직에서 일한다.
뉴욕의 이민자들은 민족에 따라 일 세대 이민자들이 주로 일하는 업종이 다르다. 중국인은 음식점에서 많이 일하며, 필리핀 여성은 병원에서 많이 일하고, 파키스탄에서 온 사람은 거리의 신문 판매대나 슈퍼마켓 점원으로 일하고, 동유럽 이민자는 택시 운전수나 아파트 수위를 많이 한다. 중남미인은 가정부나 아이 돌보는 일, 호텔의 청소, 접시 닦이, 조경 관리, 공사장 인부 등 하급 서비스 직업에 많이 종사한다. 한인은 세탁소, 식품점, 손톱 미용점 등에서 많이 볼 수 있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서 일하던 사람도 미국에 와서는 세탁소나 식품점에서 일한다. 일 세대 한인이 뉴욕에서 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 중에서 그래도 고급 직종은 아마 ‘델리’일 것이다. ‘델리’란 샐러드 종류의 다양한 요리를 해놓고 뷔페 형식으로 파는 음식점인데, 근래 많이 보인다.
뉴욕에 사는 이민자들은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온다. 뉴욕은 이민자의 수도 많거니와 종류의 다양성에서도 다른 어느 도시와도 비교가 안 된다. 미국에 이민자가 많은 도시는 많지만 대부분 특정 인종이나 민족에 한정된다. 반면 뉴욕에서는 거의 모든 인종과 민족을 고루 볼 수 있다. ‘인종 전시장’이라는 용어가 대변하듯 뉴욕은 정말 특이한 곳이다.
뉴욕 거리를 채우는 두 번째 부류는 관광객이다. 2008년 4천7백만 명의 관광객이 뉴욕을 방문했다. 이중 미국 국내에서 온 사람이 80%를 차지하고, 나머지는 전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다. 뉴욕시는 관광 수입으로 매년 300억 달러, 우리 돈으로는 34조 5천억 원을 벌어들인다. 2001년 세계무역센터 테러로 관광 산업이 일시적으로 타격을 입기는 했지만, 불과 이 년 후 다시 이전 수준으로 회복해 이후 관광객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뉴욕의 관광객은 특정 시즌 없이 일 년 내내 붐빈다. 여름휴가 때와 연말연시에 관광객이 가장 많이 몰리기는 하지만 봄과 가을에도 뉴욕의 거리는 관광객으로 넘쳐난다.
뉴욕은 영국의 런던, 프랑스의 파리, 이탈리아의 로마를 모두 한 곳에 합쳐 놓은 매력을 발산한다. 맨해튼에는 하나하나가 예술 작품이고 기념비적인 건축물이 셀 수 없이 많다. 엄청난 돈과 인력, 재능이 투입된 것들이 한 곳에 몰려있어 어리둥절하다. 뉴욕에 오면 마치 시골사람이 서울에 온 것과 같은 어지러움과 활력을 동시에 느낀다.
뉴욕은 세계 유행의 중심지로, 곳곳에서 새로운 것을 볼 수 있다. 거리를 돌아다니고 매장을 기웃거리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정보를 소화하기 벅차다. 엄청난 정보와 상징의 폭탄 세례를 받는 것 같다. 뉴욕에서는 어느 곳에선가 항시 축제 또는 행사가 열리고 있다. 다양한 종류의 박물관과 전시회는 다 돌아보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다. 뉴욕의 매력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다양성이다. 사람의 다양성, 음식의 다양성, 점포의 다양성, 장소의 다양성, 분위기의 다양성, 이벤트의 다양성 등 모든 면에서 뉴욕은 다른 어느 대도시보다 다양한 면모를 보인다. 다양함 그자체가 매력을 발산하는 것이다. 세계의 모든 사람과 산물들이 한 곳에 모이는 장터 같다.
뉴욕에는 말로만 듣고 텔레비전에서 보기만 했던 유명한 것들이 너무 많다. 뉴욕의 미디어가 미국과 세계인의 눈과 관심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이곳에 오기 전부터 이곳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다. 그들이 소비하는 미디어가 이곳을 동경하게 만든 것이다. 안방 TV와 영화관에서 보던 곳을 직접 가서 자신의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충분히 이곳에 올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 사람도 뉴욕에 오면 촌사람이 된다. 초강대국 미국에서도 가장 큰 도시인 뉴욕을 구경하러 많은 사람이 오는 것은 당연하다. 한국 사람이 서울에 와보고 싶어 하고, 영연방 사람이 런던에 와보고 싶어 하고, 프랑스 식민지 국가의 사람이 파리에 와보고 싶어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뉴욕에서 흔히 만나는 세 번째 부류는 무언가를 배우고 새로운 커리어의 기회를 포착하려고 온 젊은 연령의 단기 체류자다. 뉴욕에는 학교와 사설 학원이 아주 많다. 대학교만 해도 수십 개가 있으며 패션에서 연극, 요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을 가르치는 학원이 많다. 외국인이 많이 모인 곳이므로 영어를 가르치는 학원도 수를 셀 수 없다. 학생으로서 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연수를 하기 위해 뉴욕을 찾는 사람도 많다. 예컨대 뉴욕은 큰 병원이 많고 의료 서비스 분야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연수를 받는 의사와 수련생들을 흔히 만날 수 있다. 뉴욕에 있는 기업의 입장에서도 연수생을 공짜에 가까운 임금으로 쓸 수 있으므로 이들의 채용을 선호한다. 미국 대학생들에게도 뉴욕의 인턴 자리는 꿈의 기회다. 비록 정규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뉴욕에서 지낼 수 있다면 무슨 일이건 마다하지 않는다.
이들과 유사한 부류로 아무런 안정된 일거리도 갖지 못하고 무작정 뉴욕에 머무는 사람도 흔히 만난다. 학교나 학원에서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기업에서 연수생으로 일하는 것도 아니다. 이들은 최저 임금의 임시 일자리를 전전하면서 뉴욕에서 머무를 기회를 모색한다. 소위 무작정 상경한 사람들인데, 뉴욕에 최저 임금을 주는 임시직 일자리는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마냥 시간을 끌며 엉거주춤 지내고 있다. 뉴욕에 정착하는 것은 쉽지 않으므로 가지고 온 돈을 모두 소비하고 한 주 한 달을 연명하며 어렵게 살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지칠 때까지 버티다가 온 곳으로 다시 돌아간다. 이들을 만나면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젊다는 것이 자산이기는 하지만 처음에 벅차올랐던 희망이 시간이 지나 점차 가물가물해지고, 사람이 지쳐가는 것을 보면 씁쓸하다. 고향으로 돌아가 다시 힘을 내서 시작해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뉴욕 거리에서 만나는 네 번째 부류는 뉴욕을 방문한 비즈니스맨이다. 뉴욕은 비즈니스의 중심이므로 비즈니스맨들은 이곳에 출장 올 기회가 많다. 비즈니스 미팅을 위해, 혹은 뉴욕 곳곳에서 항시 열리는 상업 전시회나 모임에 참여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뉴욕의 그 많은 호텔이 항상 꽉꽉 차는 이유는 관광객도 있지만 이들 비즈니스맨 때문이다.
요컨대 새로운 꿈을 좆아서, 일자리를 찾아서, 관광을 하려고, 비즈니스를 위해 엄청난 사람들이 뉴욕을 찾는다. 전 세계로부터 사람과 돈이 모이면서 곳곳에서 낡은 건물을 수리하거나 새로운 건물이 올라가고, 길거리 곳곳을 파헤치며 도로 공사를 하고, 부동산 값이 치솟는다. ‘프랜즈’나 ‘섹스 앤드 더 시티’와 같은 TV 드라마에서 뉴욕의 생활이 매력적으로 비춰진다. 뉴욕의 브로드웨이 극장가는 전례 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는데, 여기에는 관광객이 절반 이상의 자리를 채운다. 뉴욕의 유명세는 사람을 끌고 이것은 다시 더 많은 사람과 기능을 끌어들이는 집적 효과와 상승 효과를 낸다. 뉴욕은 할 일과 배울 것, 먹고 놀 것이 많고도 다양해 많은 사람이 찾아오며, 이는 다시 더 많은 사람들을 이곳에 오고 싶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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