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hijit V. Banerjee and Esther Duflo. 2011. Poor Economics: a radical rethinking of the way to fighr global poverty. Public Affairs. 273 pages.
올해에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저자가 자신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제삼세계의 빈곤의 실태를 진단하면서 빈곤 퇴치를 향한 새로운 접근을 제안한 혁신적인 책이다. 저자는 경험적인 관찰과 무작위 추출 방식을 사용한 통제된 실험 (Randomized Controlled Trials) 방식을 적용하여 빈곤에 대한 다양한 가설과 정책 방안의 타당성을 검증한다. 연구 결과 유효한 것으로 검증된 방법을 실천한다면 빈곤이 점진적으로 개선될 것이라는 철학을 제시한다. 이는 빈곤 퇴치 문제에 대해 거시경제학적 접근이나 정치경제학적 접근과 같이 거대 담론을 위주로 하는 기존의 경제학 조류와 배치되는 발상이다.
책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1부에서는 빈곤자의 사적인 생활에 촛점을 맞추어,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으며 왜 그렇게 사는지를 영양 섭취, 건강, 교육, 가족계획의 네 주제에 관해 논의한다. 2부에서는 빈곤자를 대상으로 한 제도 내지는 외부 세계와의 관계 맺기에 관한 내용이다. 위기 관리, 소액 대출제도, 저축 활동, 소규모 자영업, 정부 정책 개입의 다섯 주제에 대해 설명한다. 각 장은 독립적으로 구분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전체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마지막 결론의 장에서 저자의 빈곤퇴치 방법에 대한 철학을 명시적으로 밝히면서 끝낸다.
가난한 사람들은 영양상태가 나쁘다. 그러나 그것은 기본적인 식량을 살 돈이 부족해서만은 아니다. 그들은 돈이 생긴다고 해도 먹을 것을 풍부히하는데 쓰기 보다는 행사 비용이나 조금 더 맛있는 비싼 식품이나 기호품을 사는 데 써버린다. 사회적인 압력 때문에 식품 이외의 것에 적지 않은 돈을 지출하며, 삶의 재미를 위해서 비용이 더 들지만 조금 더 맛있는 식품을 구입한다. 가난한 사람은 영양 상태가 불량하여 노동 생산성이 낮지만, 영양분 풍부하며 값싼 식품을 구입하는 것이 그들의 삶의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영양상태가 좋으면 생산성이 높고 빈곤에서 탈출할 가능성이 높지만, 가난한 사람은 그러한 방안이 실현 가능하다고 보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들의 건강을 개선하는 데에는 안전한 물, 위생시설, 모기장과 같은 예방적인 수단이 효과가 크다. 가난한 사람들은 아플 때 의사를 찾는 것 이외에 전통적인 주술사나 지역의 돌팔이 의사를 찾는 경우가 많다. 의사는 접근하기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들며, 서구의 의술이 작용하는 원리에 무지하며, 서구의 의술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다. 반면 전통적인 주술사나 지역의 돌팔이 의사는 접근이 쉬우며 비용이 적게 먹힌다. 그들은 막연히 치유를 희망하는 마음에 다양한 전통적인 수단에 의지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것들에 대해 신뢰가 큰 것은 아니다. 선진국에서와 달리 시민의 건강을 보호하는 사회의 기반 시설이 부족한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은 자신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기본적인 조치를 각자가 챙겨야 하기 때문에 이것이 제대로 실행되기 어렵다.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건강에 도움이 되는 선택을 유도하는 사회적 넛지(Nudge)가 필요하다.
가난한 나라의 학교에서는 선생이 결근을 자주 하며 가르치는 임무를 소홀히 하여 교육의 질이 형편 없다. 이렇게 교육이 부실한 것은 선생이나 학교의 시설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서일까, 혹은 주민들이 좋은 교육에 대한 필요를 깨닫지 못하여 요구를 하지 않기 때문일까? 자녀가 학교를 제대로 다니면 현물로 보상을 주는 프로그램은 효과가 있는 듯하다. 교육에 대한 필요를 이렇게 물질적인 유인으로라도 만들 필요가 있다. 가난한 나라에서는 공립학교보다 사립학교의 질이 훨씬 좋다. 사립학교에서 엘리트 계층에 대한 교육은 학부모의 기대와 선생들의 관심에 힘입어 웬만큼 이루어진다. 반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공립 학교 교육은 학부모와 선생 양쪽의 부정적인 자기 완성적 예언때문에 실패로 끝난다. 가난한 나라의 학부모들은 자녀가 웬만큼 학교를 오래 다니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난할 수록 자녀를 학교에 열심히 보내려 하지 않는다. 자녀들 또한 자신이 학교 교육을 따라가리라는 자신이 없고 교육이 자신의 미래를 바꾸어 주리라는 믿음이 없기에 학업에 관심을 두지 않고 일찌 감치 학교를 중단한다. 선생들 또한 가난한 집의 자녀에게는 일찌감치 포기하고 가르치는데 성의를 기울이지 않기에 학생들은 쉽게 학업에 관심을 잃어 버리고 중도탈락한다. 학교는 엘리트에 대한 교육만 관심을 갖는데, 이는 과거 식민지 시대에 식민지 관료를 키워내던 교육의 잔재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개선안으로, 저자는 엘리트 교육과 가난한 사람들의 교육이 이원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엘리트에게는 어려운 내용을 가르치더라도 그들이 따라 오지만, 가난한 사람에게는 그들의 장래에 맞는 기본적인 내용을 교육시킨다면 그들도 따라올 것이다.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애를 많이 낳는 것은 여러 자녀 중 누군가가 자신의 노후를 뒷바라지 해주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노후 보장 문제를 가족 내에서가 아니라 사회에서 맡는다면 자녀의 경제적인 효용을 염두에 두고 많이 낳지는 않을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도 피임의 효능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지 않다, 다만 선택을 하지 않을 뿐이다. 여성에게 피임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상황을 만들면, 자녀를 덜 낳는다. 여성은 자녀의 뒷바라지를 온전히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남성보다 작은 수의 애를 낳으려 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삶에서 다양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이들은 펀드 매니저와 흡사하게 다양한 부문에 투자함으로서 위험을 줄이는 전략을 구사한다. 작게 농사를 짓고, 조그만 자영업을 하고, 때때로 임노동자로 일하는 등으로 다양하게 간여한다. 농사에서도 생산성이 높은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거나 특정 작물로 전문화하는 길을 택하지 않는다. 이는 어느 한 분야에 전문화함으로서 축적하는 효율을 포기하는 것인데, 반면 어느 한 부문에 문제가 생겨도 다른 부문을 통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삶에서 심각한 어려움에 봉착하면 이웃에게 도움을 구하는데, 이는 추후에 이웃에게 도움을 되값기 때문에 서로에게 이익이 되고 위험을 피하는 한가지 방책이다.
마이크로 크레딧 운동(소액 대출 운동)은 가난한 나라에서 널리 활성화되어 있다. 이것이 가난한 사람들의 기업가 정신을 자극하고 빈곤에서 벗어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저자의 경험 연구 결과, 이는 가난한 사람들이 소규모의 자영업을 통해 근근히 생계를 유지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만, 큰 사업으로 발전하는 데에는 별반 도움울 주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마이크로 크레딧은 집단 소속원들 상호간 신뢰와 사회적 압력을 이용하여 소액 대출 받은 돈울 정한 일정에 따라 규칙적으로 값는 안정된 시스템을 확립했기 때문에 계속 지속될 수 있는 사업이 되었다. 그러나 큰 사업을 하려면 실패할 가능성을 열어 놓아야 하고 사정에 따라 빌린 돈을 값는 일정이나 조건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있어야 한다. 마이크로 크레딧은 개인 사정에 따라 값지 않는 사례가 나타나면 사업 모델 자체가 붕괴하므로 큰 사업을 지원하는 금융시스템으로는 부적합 하다.
가난한 사람들도 소액이지만 수시로 저축을 하며 계 등의 방식을 이용해 집단적으로 저축한다. 그러나 큰 돈을 저축하려고 하지 않는다. 저축을 한다는 것은 미래의 계획을 위해 현재의 만족을 포기하는 것인데,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미래에 실현 가능한 계획에 대한 희망이 없기 때문에 엄격하게 자기 통제를 하면서 절약하여 저축을 하려 하지 않는다. 돈이 좀 모이면 써야 할 곳이 나타나 사라지는 과정을 반복하며, 저축이나 보험을 통해 질병이나 사고와 같은 큰 충격에 대비하지 못하기에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구멍가게와 같은 자영업을 많이 하지만, 이러한 사업이 크게 성장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러한 사업은 자본을 더 투입한다고 하여도 생산성이 오르기 힘들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여러 개의 소규모 자영업에 동시에 종사하기도 하는 데, 각 사업의 생산성은 매우 낮다. 따라서 가난한 사람이 영위하는 사업은 아무리 오래 해도 기술이 쌓이거나 전문화의 이익을 거두지 못하며, 사업에 대한 열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들은 자녀가 안정된 공무원이 되는 것을 가장 열망하는 데, 안정된 직업은 삶에 계획성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제공하기때문이다. 안정된 직업에 대한 기대가 있을 때 그들은 자녀 교육에 투자를 하고 생활을 절제하여 저축을 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정부가 부패하기 때문에 가난한 나라에 원조하는 것은 소용이 없다는 주장이나, 국민들은 개선하려는 열망이나 욕구가 없기 때문에 좋은 제도를 도입하여도 무용지물이 되어 버린다는 비관론이 경제개발관련 이론가들 사이에 지배해 있다. 저자는 이러한 거대 담론보다는 비록 규모가 작지만 구체적으로 설계된 제도로 개선을 도모하는 것이 효과가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 이러한 조그만 변화가 쌓인다면 정부도 개선되고 국민들의 의식도 높아지면서 궁극적으로 빈곤에서 탈피할 수있으리라는 조심스런 낙관론을 제시한다. 실제 그들이 실험을 통해 효과가 있다고 검증한 아이디어들이 실행되고 이것이 축적된다면 점진적으로 변화가 나타나리라는 것이다.
대단히 설득력이 있는 책이다. 상아탑에 앉아 거대담론을 제시하는 경제학자들에 비할 때, 그들은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관찰 하고 실제적인 아이디어를 개발해서 효과를 검증해보고, 왜 기대한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는지를 분석해서 다시 검증하는 작업을 반복하는 끈기를 보인다. 빈곤에 대해 논의는 많이 하지만 무작위로 선정한 표본에 대해 실험집단과 통제 집단으로 나누어 가설의 타당성이나 정책의 효과성을 엄밀히 검증하는 것은 지금까지 본 일이 없다. 이렇게 엄밀하게 유효성을 검증한 결과를 가지고 빈곤 문제의 개선을 시도해야 한다는 발상은 신선하다. 이런 접근법은 느리지만 유효한 개입이며 이것이 쌓이면 빈곤문제가 점차 해결되리라는 낙관론 또한 대단하다. 이는 기존의 경제학 방법론에서 벗어난 혁신적인 접근이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없다면 미국의 유명 사립대의 교수가 이런 작업을 도저히 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과거에 빈곤운동을 하던 경력을 살려 현장에 운동가들의 협조를 등에 업고 이러한 실험을 할 수있었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고, 대단한 책이다. 단숨에 읽고 감동받았다. 그들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을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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