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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이론'에 해당되는 글 1건
2021. 7. 30. 11:18

Jeffrey Winters. 2011. Oligarchy. Cambridge University Press. 285 pages.

저자는 정치학자이며, 이 책은 부와 권력의 관계를 규명하는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고, 과거와 현재의 여러 사례를 통해 그의 이론을 검증한다. 권력의 궁극적 원천은 부(wealth)이며, 권력의 핵심은 부를 지키는 것이다. 소득과 재산 분포의 상위로 갈 수록 부의 집중도는 비약적으로 높아지는데, 전인구의 1%의 100분의 1도 안되는 소수의 부자들에게 자신의 부를 지키는 문제는 분포 상에서 그들 아래에 있는 일반 부자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거대 부자들에게 부를 둘러싼 갈등은 잠재적 및 현재적 폭력을 수반한다. 부자는 자신의 부를 이용하여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이는 자신들의 부를 지키는데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 

부와 권력의 관계는 역사적으로 네가지 유형으로 나타난다. 첫째는 거부들 사이에 폭력적 투쟁이 지배하는 유형이다. 거부들에게 자신의 부에 가장 큰 위협은 다른 거부들이다. 이들은 사적인 폭력 수단을 보유하면서, 자신의 부를 지키고 다른 거부들의 부를 빼았는다. 이는 역사상 가장 흔히 존재하는 권력의 유형이다. 아프리카의 추장에서부터, 고대사회의 군벌, 중세시대의 영주, 미국의 애팔래치아 산간 지역의 파벌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많은 사례를 찾을 수있다. 거부들은 자신의 부를 사용하여 폭력 수단을 고용한다. 인구 대부분을 차지하는 보통사람을 착취하는 데 폭력을 사용함은 물론, 다른 거부들의 위협을 물리치기위해 개인적으로 보유하는 폭력 수단은 필수이다. 돈이 없으면 자신을 위해 일하는 폭력 수단을 고용할 수없으며, 폭력이 없으면 생산자를 착취해 부를 축적할 수 없다. 부와, 폭력과, 권력은 등치의 관계이다.  

두번째 유형은 거부들이 집단적으로 권력을 공유하는 유형이다. 거부들은 각자 개인 소유의 폭력 수단을 보유하지만, 공동으로 정치에 직접 참여하면서 질서를 유지한다. 이탈리아의 마피아 사이에 결성된 협의체, 고대 아테네와 로마의 정부, 중세 이탈리아의 베니스와 시에나와 같은 도시 국가가 대표적 사례이다. 이러한 유형에서는 공동 정부에 참여하는 특정한 거부가 위임된 권력의 정도를 넘어서 다른 거부들을 지배하는 위치에 올라설 위험성이 항시 존재한다. 이러한 위험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하여 위임된 권력의 과다를 제한하는 다양한 장치를 만들어 놓고, 특정 거부가 권력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상호견제한다.  그럼에도 로마에서 시저가 공동 정부의 권력을 독점하여 황제가 되었다. 거부들 사이에 공동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협약이 깨어지면, 폭력적 투쟁의 유형으로 쉽게 회귀한다.

세번째 유형은 특정한 한명의 거부가 절대적 권력을 행사하면서 나머지 거부들을 일방적으로 통제하는 유형이다. 절대 권력자는 본인 자신이 엄청난 부를 소유하고 있으면서 국가 권력을 동원하여  거부들 사이에 갈등을 조정하고, 보통사람들에 대한 그들의 착취를 관리한다. 거부들은 절대 권력자가 자신의 부를 보호해주는 대신에 부분적으로 개인 소유의 폭력 수단을 포기한다. 절대 권력자는 국가의 권력을 이용하여 자신의 부를 늘리는 한편으로, 국가의 권력에 따른 이권을 다른 거부들에게 적절히 나누어주면서 개인적으로 그들의 충성을 관리한다. 외형적으로는 법에 의한 지배의 형태를 갖추고 있으나, 부를 축적하는 영역에서는 법이 아니라 절대 권력자의 개인적 재량이 기본 원칙이다. 절대 권력자와의 친소관계 및 절대 권력자의 개인적 선호에 맞추어 모든 중요한 결정이 이루어진다. 보통사람들은 법에 의한 지배를 받으나, 거부들은 법의 범위 밖에 있다. 인도네시아나 필리핀이 대표적인 예이다. 인도네시아는 수하르토의 치하에서 절대권력을 중앙에 완전히 집중시켰으며, 일반 거부들은 절대권력자에 대항할 수있는 개인적 폭력 수단을 소유하지 않고 권력자의 재량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반면 필리핀은 독재자 마르코스의 치하에서 일반 거부들이 개인적 폭력 수단을 부분적으로 소유하면서 독재자를 비판하고 위협하는 존재였다.

네번째 유형은 법에 의한 지배가 뿌리내린 입헌 민주주의 정치이다. 거부들은 법에 의해 부를 완전하게 보호받는 대신에 사적인 권력을 완전히 포기한다. 거부들은 다른 거부들로부터 자신의 부를 강압적으로 빼앗길 위험은 사라졌으나, 대신 일반 민중으로부터 부를 나누어 달라는 거센 요구나 국가로부터 고율의 세금을 통해 부를 빼앗길 위험에 항시 노출되어 있다. 거부들은 자신의 부를 보호하는 일을 전적으로 하는 전문가를 많이 고용하여 법의 구멍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돈을 사용하여 정치인을 매수함으로서 법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외곡시킨다. 미국의 세법이 매우 복잡하여 빠져나갈 구멍이 많은 이유는 바로 이들의 영향 때문이다. 그 결과 미국의 거부들의 실효 세율은 일반 노동자의 세율보다 훨씬 낮으며, 근래에는 상속세를 완전히 폐기하였다.

민주주의는 보통사람들의 정치 참여를 확대했지만, 부의 집중을 제어하지는 못했다. 거부들은 돈의 힘을 동원하여 민주주의 선거에서 국민이 선택할 수 있는 후보의 범위와 정강을 제한함으로서 국민의 선택을 무력화시킨다. 분배의 평등을 요구하는 보통사람들의 시민 운동은 거부들이 돈을 사용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전적으로 일하는 전문가나 정치인들에 필적할 수 없다. 일반 사람들은 생계를 위한 활동을 소홀히 하면서 오랫동안 공동의 이념적 대의를 위해 발벗고 뛰기 힘들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시민의 정치 참여를 높이기는 했지만, 거부들의 부를 지키는 노력을 제한하는 데에는 무력할 수 밖에 없다.

싱가포르는 경제활동에 관한 한 법에 의한 지배를 확립했지만, 정치적 자유의 영역에서는 독재를 유지하는 특이한 예이다. 싱가포르의 부의 집중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심하며, 거부의 부는 법에 의해 잘 보호되고 있다. 그러나 법에 의한 지배라는 원칙은 개인의 정치적 자유까지 보장하지는 않는다. 민주주의적 참여가 부의 권력 독점과는 별개의 영역이라는 또 다른 증거이다. 

이 책은 새로운 권력 이론을 제시하는 학술서이다. 과거 엘리트 이론이 부의 소유에 관계 없이 소수에게 정치적 권력의 집중에 촛점을 맞추었는데, 그는 엘리트 이론은 권력의 원천의 중요성에 관해 소홀했다고 비판한다. 권력의 핵심은 부의 소유와 부를 지키는 것을 둘러싼 갈등이기 때문에, 이것을 간과한다면 정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부가 수반되지 않은 권력은 직위에서 벗어나는 순간 거품처럼 사라지므로, 부의 소유를 둘러싼 권력과는 관심이나 행태가 다를 수밖에 없다. 진정한 권력의 추동력은 물리적 부에 있다. 소득과 재산 분포 상위 0.01%에 속하는 사람들이 과거나 현재나 정치 권력의 핵심이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나머지 99%의 사람들은 거부에게 착취되거나 혹은 그들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앞잡이에 불과하다. 

거부의 권력도 변화한다. 사회적, 경제적 위기로 거부의 부가 타격을 받으며, 세대를 거치면서 부의 부침이 있다. 거부의 구성과 권력이 변화한다는 것은 이러한 구조에 때때로 균열이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위기가 지나고 나면 일부 거부들의 부는 소실되고 새로운 부가 축적되면서 기존의 거부 집단에 순환이 일어난다. 일반 사람들은 법을 지키지만 거부들은 법 위에 있고, 법을 집행하는 기관은 이들과 타협한다. 권력의 핵심을 물리적 부로 보는 그의 이론은 역사와 정치를 보는 신선한 아이디어이다. 거부의 부를 위협하는 위기를 단순히 외생변수로만 치부하고, 근대 사회에서 지식인의 역할을 부정하는 물질결정론 materialism 이 반드시 옳은 것 같지는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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