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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7. 1. 15:21

Annalee Saxenian. 1994. Regional advantage: Culture and competition in Silicon Valley and Route 128. Harvard University Press. 168 pages.

저자는 도시경제학자이며, 이 책은 보스턴의 Route 128 지역과 실리콘 밸리를 비교하면서, 왜 전자 기술의 발달은 보스턴 지역에서 시작했으나 실리콘 밸리에 따라잡히게 되었는지, 왜 실리콘 밸리에서 컴퓨터 기술 혁신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지 설명한다.

보스턴 주변 지역은 뛰어난 산업 입지를 가지고 있다. 18세기 미국의 산업혁명이 이 지역에서 시작되었으며, 우수한 대학과, 높은 인구 밀도와, 정치 경제의 중심지를 인근에 둔 덕분에, 오래전부터 미국에서 이 지역은 기술과 산업의 중심이었다. 특히 2차 대전을 전후하여 정부의 대규모 방위산업 수요에 부응하여 전자기기, 항공기, 미사일, 등 첨단 산업이 크게 발달하였다. 이 지역의 기업들은 방위산업 예산의 절반 이상을 독식하면서, 신기술 분야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하였다.

보스턴 지역에서는 연방정부의 대규모 발주에 의존하는 기술 대기업이 지역의 산업 생태계를 장악하고 있었다. 기술 대기업은 생산에 필요한 자원을 내부에서 조달하는 수직적 계열화 체제를 갖추고 있었으며, 한 지역에 있으면서도 기업들 서로간에 연관이 적은 독립적 단위로 존재하였다. 이 대기업들은 기술 개발이나 부품 조달을 모두 내부에서 하였으며, 위계적 조직과 비밀주의가 팽배한 관료적 경영 행태를 보였다.

실리콘 밸리 지역은 2차 대전 이전까지 특별한 기술 기업이 없는 곳이었다. 그러나 미국이 태평양 전쟁을 치르면서 샌프랜시스코 지역에 돈과 사람이 몰리면서 이 지역은 활력을 얻게 된다. 실리콘 밸리가 기술 개발의 메카로 뜬 데에는 몇 가지 중요한 계기가 있다. 하나는 보스턴 지역에서 일하다가 스탠포드 대학의 전자공학 교수로 부임한 Frederick Terman 이 서부지역에 기술 개발의 동력을 불어넣기해 산학협력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시도한 것이다. 스탠포드 대학은 인근 산업체와 학교 연구실이 밀접히 협력하는 것을 장려하였으며, 교수와 학생의 연구결과물의 사업화를 지원하였다. 기업체 엔지니어가 대학의 강의를 듣게 함으로서, 기업이 최신 기술을 학교로부터 전수 받고, 학교가 산업 현장의 감각을 획득할 수 있게 하였다. 그 결과 휴렛팩카드, 선 마이크로시스템, 등  많은 실리콘 밸리의 기업이 스탠포드 대학의 졸업생에 의해서 설립되었다. 그들은 졸업해서도 기업활동에서 서로 유대를 지속했으며, 경영이나 기술적 문제에 관해 서로 주고받고 대학과 연계를 유지하는 고리가 되었다.

둘째는 직접회로의 기술이 1950년대에 개발되었는데, 스탠포드를 나오고 동부의 벨 연구소에서 일하던 William Shockley가 실리콘 밸리에 직접회로 칩을 생산하는 기업을 만들었고, 이곳에서 일하던 엔지니어 8명이 이 기업에서 나와 Fairchild Semiconductor 를 만들어 크게 성공한 것이다. 이 기업은 이후 무수히 많은 실리콘 밸리의 기술기업들을 파생시켰다. 대학교의 자유로운 분위기와 업적 중심의 문화, 휴랫패커드의 수평적 경영, 쇼클리의 권위를 배격하는 경영, 일하던 기업에서 떨어져 나와 새로이 창업하는 많은 사례 등이 실리콘 밸리의 수평적이고, 비공식적 네트워크를 중시하고, 정보가 자유롭게 교환되고, 업적 중심의 경쟁을 우선하는 생태계를 만들었다.

실리콘 밸리의 엔지니어들은 소속 기업에 대한 충성보다 동료 기술집단에 대한 충성이 더 컸다. 기술 변화가 워낙 빠르고, 그에 따라 기업 활동도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기술에 대한 신뢰가 조직에 대한 신뢰보다 더 클 수밖에 없었다. 배경이 없이 기술과 아이디어만으로 출발하여 크게 성공하고, 사업에 실패해도 크게 오명이 붙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엔지니어들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험하기 위해 창업을 힘들지 않게 택하였다. 지역에 지원 공급망의 생태계가 잘 갖추어져 있으므로 창업에 큰 비용이 들지 않았다. 핵심 아이디어를 제외하고는, 인근에서 모두 경영 지원, 기술 지원, 부품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와 컴퓨터관련 기술이 워낙 빨리 변하기 때문에, 이들 사이에 경쟁이 매우 치열했으며 조금만 방심하면 기술이 낙후되어 퇴출되는 환경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기술 개발에 따라 새로운 시장이 계속 확대되는 플러스 섬 plus sum의 환경이므로, 기술 비밀주의나 비용이 많이 드는 법정 다툼을 하기보다는 약간의 보상을 받으면서 서로에게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도록 허용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지역 내에서 엔지니어와 물자의 잦은 이동을 통해 기술이 금방 상대 기업에게 노출되기 때문에 비밀주의가 통하기 어려웠다. 가격 경쟁보다는 높은 품질과 기술적 우위가 우선적인 고려 사항이었으며, 지역내 인력과 물자의 이동을 통해 전반적으로 기술수준이 높아지고, 향상된 기술의 수익을 모두가 누리는 분위기였다.

반면, 보스턴 지역의 대기업은 모든 기술과 생산을 회사 내에서 소화하려고 했기 때문에 변화의 속도가 느렸다. 시작은 앞섰으나 시간이 갈수록 신기술 개발 속도에서 실리콘 밸리에 뒤쳐지게 되어 도태될 수밖에 없었다. 보스턴의 기업들은 기술 개발 부문을 실리콘 밸리로 이전하여 첨단의 기술 개발 속도에 따라갈려고 하였으나, 최종적 의사결정이 여전히 동부의 대기업 관료의 손에 있었으므로 서부의 민첩하게 움직이는 기술 기업을 따라갈 수 없었다. 예컨대 1960년대에 DEC 는 중형 컴퓨터 분야에서 독보적 지위를 구축했는데, 퍼스널 컴퓨터와 워크스테이션으로 넘어가는 기술 변화의 흐름에 뒤쳐져 1990년대에 결국 망했다.

실리콘 밸리가 보스턴을 따라잡고 1970년대 이래 미국의 전자산업의 중심으로 자리매김을 한 뒤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80년대 중반 이래 메모리 칩이 대량생산의 범용제품이 되면서 실리콘 밸리의 반도체 생산 기업들이 일본의 경쟁에 밀리게 되었다. 대규모의 설비를 투자하여 비용 감축과 효율성을 높이는 대량 생산방식에서 실리콘 밸리 기업들은 일본의 후발주자에게 패했다. 결국 1990년대 들어 메모리 칩 생산을 포기하고 프로세서 칩에 집중하였으며, 소규모의 주문생산이 요구되는 첨단기술이 집적된 칩을 디자인 하고 생산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실리콘 밸리는 기술개발의 동력을 회복하였다.

저자는 동부의 보수적이며 폐쇄적 대기업 문화와 서부의 엔지니어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변화에 민첩한 창업가 문화를 잘 대비하고 있다. 기술 변화가 매우 빠른 반도체와 컴퓨터 분야에서 실리콘 밸리의 엔지니어 기업 네트워크이 얼마나 놀라운 힘을  발휘하는지 잘 보여준다. 관계자 인터뷰, 지역 신문기사, 통계 자료를 조합하여 훌륭한 분석을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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