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현준. 2026.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개정판. 을유문화사. 403쪽.
저자는 건축학자이며, 이 책은 도시와 건축에 대해 저자의 다양한 생각을 비체계적으로 서술한 글을 모아놓은 것이다.
도시와 건축은 인간 친화적이어야 한다. 인간 친화적인 거리는 이벤트의 지점이 많은 거리이다. 강북의 명동과 강남의 테헤란로는 이런 측면에서 대척점에 있다. 서울의 도시 재개발은 기존의 스토리를 모두 지워버리고 그곳에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골목으로 이어진 과거 동네의 집들에 비해 재개발로 탄생한 아파트는 인간 친화적이지 않다. 기존의 건물을 밀어내고 전면적으로 새로 구축하는 재개발보다, 기존의 것을 다듬어 새로운 목적을 부여하고 개량하는 재생이 더 좋다. 후자의 예로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나, 소호의 로프트를 들수 있으며, 서울의 성수동 팝업 스토어 거리를 들수 있다.
도시는 역사적으로 진화했다. 로마의 도시가 체계적인 수로를 건설해 물 문제를 해결하였고, 파리가 체계적인 하수도 시설을 건설해 위생 문제를 해결했고, 런던이 중앙에 큰 공원을 조성해 인구밀집이 야기하는 문제를 해결하였고, 뉴욕이 전화망을 통해 사람들간 효율적인 정보 네트워크를 구축하였다. 세계의 대도시들은 이전에 발달한 도시로부터 장점을 빌려오면서 새로운 것을 추가하는 과정을 이어왔다.
인간의 스케일에 맞춘 건축물은 그곳에 사는 사람이나 그곳에 접근하는 사람에게 편안함과 친근감을 준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의 사찰과 서구의 대성당은 대척점에 있다. 사찰에는 인간적 규모의 작은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반면, 서구의 대성당은 매우 높고 거대한 건물이 버티고 있어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에게 거리감과 경외감을 만들어 낸다. 동양의 저택은 자연과 어울어지는 것을 선호하는 반면, 서구의 저택은 자연의 제한을 극복하고 제압하는 것을 선호한다. 건축은 사람들의 세계관과 문화적 심미안의 차이를 반영한다.
이 책은 흔히 지식인들이 근대화의 부작용이라고 하는 것을 비판하고, 지나간 과거의 것을 아름답게 생각하는 시각을 드러낸다. 이는 과거에 극히 일부의 상류층만이 여유있게 살고, 대부분은 어렵고 비참하게 살았던 사실을 애써 외면한다. 사실 기억할만한 건축물이란 전부가 상류층의 전유물이었다. 서울의 아파트는 서울 시민의 절반이 넘는 중류층의 생활의 터전이다. 심미적인 관점에서 볼 때 아름답지 않을지 모르지만, 인간적으로 의미있는 공간이다. 이책의 저자도 아마도 아파트에 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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