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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4. 24. 11:38




6시 버스에 맞 추려고 새벽 5시 반에 숙소를 나섰으나 버스는 두시간 늦게 왔다. 아침 찬공기에 모두들 떨고 혹시 버스를 노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왔다갔다 한다. . 나는 되는대로 할 심산이기에 느긋하게 주위 사람들을 관찰하며 기다린다. 내옆에 있는 인도에서 온 가족은 금장신구를  온몸에 두루고 있다. 다른편에 앉은 아이와 함께 여행하는 젊은 여인은 담배를 계속 피운다. 스트레스에 싸인 모습이 찌푸려진 얼굴에 그대로 나타나 있다.
스위스에서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로 가는 길은 험했다. 끝도 없이 긴 터널을 여러개 지나고 양 옆으로 깍아지른 절벽사이로 아슬아슬 하게 도로가 나있다. 빙하에 깍여져서 U자형 공간의 바닥을 지난다. 양옆 바위에는 옆으로 줄이 그어 있다. 자연의 힘은 대단하다. 스위스 국경을 지나니 바로 평야가 펼쳐진다. 스위스 사람들은 산속에만 사는 것이다. 7시간을 달려 오후 세시를 넘어서야 볼로냐에 도착했다. 오늘은 버스를 너무 오래 탔다.
숙소를 어렵게 찾았는데 특이하다. 오래된 건물 속에 들어있는 고급 아파트의 한층을 이렇게 싸구려 숙소로 쓰다니. 바닥이 모두 대리석으로 되있고 화장실에는 변기 옆에 비데용 변기가 따로 있고 거실에는 대리석 바가 차려져 있다. 사람들은 그곳에 걸터 앉아 이야기를 한다. 23 유로를 냈다.
볼 로냐는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다. 중세시대의 투박한 벽돌 건물이 옛날 그대로 이다. 육중한 건물 사이로 난 습하고 어두컴컴한 골목길을 꽤 걸었다. 바닥은 벽돌이나 자갈로 되있으며 이끼가 덮여 있어 미끄럽다. 그 건물 속에 사람이 살고 있다. 내가 묵은 숙소도 외관은 그런 중세 건물이지만 속은 현대식이다. 관광객이 많지 않아 골목길을 호젓이 걷고 아무도 없는 거대한 벽돌 건물에 둘러 싸인 공터에 앉아 과거를 상상해보는 것은 새롭다.
그곳에 앉아 문득 왜 이렇게 정신나간 사람 마냥 돌아다니는지 자연 생각이 미쳤다. 외로운 여행자로 아무도 모르게 이 구석에 걸터 앉아서 말이다. 많이 생각해 보았다. 사실 이 여행도 오래전부터 이리하리라고 정하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글을 매일 쓰는 것도 여행 첫날 밤에 깨서 잠이오지 않아 시작한 것이다. 답이 없다는 것을 안다. 그냥 살다 가는거란 것을. 한 때  삶이 괴롭고 더이상 어리석은 짓을 반복하는 것이 지겹게 느껴져 바다물에 빠져도 봤다. 그순간 나에게 의지하고 있는 어린 아이가 떠올라 죽을 힘을 다해 헤엄쳐 나왔다. 내가 없으면 걔가 힘들게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다.
여행하면서 사람들을 보면 힘들게 사는 모습을 본다. 젊은 남녀 커플은 사랑의 열기에 들떠서 연신 서로 쓰다듬고 키스를 하지만 그 옆에는 삶에 지치고 몸이 무거운 노년의 무표정한 얼굴이 있다. 그들도 한 때 젊고 들뜬 시절이 있었으리라. 어머니의 유물을 정리하면서 나의 어머니도 젊은 시절이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꽃같은 모습의 젊은 시절이. 지금 저럽게 자유분방한 젊은이가 몇십년 후에는 또 저렇게 삶에 지친 모습으로 변하다니 허무하다. 그래서 부처는 출가했다고 하는데. 나에게는 그것도 해답이 아닌 것 같다. 이세상에 있는 한 그 굴레에서 도피할 방법은 없다.
앞을 모르고 걸어간다. 확실한 것은 조만간 죽는다는 사실뿐. 그래서 삶에 두려움은 없다. 아무리 힘들어도 탈출구가 바로 옆에 있다는 것을 안다. 죽으면 자연으로 돌아간다. 개미나 소가 그렇듯이. 길을 걷다 고급 레스 토랑의 현관에서 죽은 참새를 발견했다. 나는 어릴 때 새가 죽으면 모두 어디로 가는지 궁금했다. 하늘로 올라가는지.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새가되고 싶었다. 내가 새라면 갈매기의 꿈에나오는 새 처럼 올라갈 수 있는데 까지 한껏 높이 올라가 보고 싶다. 나는 꿈을 많이 꿨는데 자유스런 해방감보다는 중력을 이기며 추락하지 않으려고 힘겹게 날개를 퍼덕이며 안타까와하다가 깼다. 그러면 그 느낌이 너무나 절실해서 깨서도 한동안 여운이 남아 있다.
나의 삶은 이번 여행과 다르지 않다. 미리 계획한 여정이 없고 정신나간 놈 마냥 그냥 달리기만 한다는 점에서. 과거에 마라톤도 해봤지만 별거 없었다. 섹스는 더더군다나 더 별거 없다. 매일 숙소에 도착하면 다음날의 일정을 잡는다. 이곳 볼로냐는 중세를 맛볼 수있는 독특한 곳이지만 날이 새면 다시 떠날 것이다. 머물러 있고 싶지 않다. 떠돈다고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그래도 한곳에 있는 것틀 참을 수 없어 발걸음을 옭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계속 사는 거겠지. 이제는 나에게 의지하던 아이도 독립해 제 갈길을 가고 있다. 내 삶을 꼭 더 지속해야 할 이유가 없기에 홀가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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