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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4. 26. 12:47



로마에서 아침 9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 가니 차창 밖 풍경이  지금 까지와 완연히 다르다. 멀 리 언덕 위로 집과 마을이 보이고 올리브 밭 포도 밭 풀 밭이 번갈아 가며 계속 된다. 수로가 안보인다. 흙은 바짝 말라 있고 햇빛은 따갑게 내리 쬔다. 물이 귀한 지중해성 기후 지역에 들어섰다. 사막 같이 건조한 곳에 올리브와 포도를 재배하는 것이 신기하다.
남쪽으로 더 내려가니 끝없이 이어진 평지가 펼쳐진다. 길이 곧아서 지평선을 보며 앞으로 간다. 지평선을 계속 쳐다보려니 최면에 빠진 것 마냥 졸려서 한동안 잤다. 깨어 보니 차는 여전히 그대로 달리고 있다. 이태리는 넓고 정 말 다양하다. 로마까지 오는 고속도로에는  콘테이너 트럭이 줄지어 있었는 데. 남으로 갈 수록 점점 줄더니 이제는 자취를 감췄다. 산업이 발달하지 않고 가난하기 때문일 것이다. 차창밖으로 지나치는 집들은 낧고 허름하다.
나는 탁 트인 공간을 무척 좋아한다. 사람이 북적이는 곳에 가면 질식할 것 같아 얼 른 나온다. 사람들과 부대끼며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다. 혼자가 낫다. 내 속에 성난 괴물이 앉아 있다.  그것이 머리를 쳐들지 못하도록 억누르지만 그래도 그것은 나의 행동과 사고를 움직이는 주인이다.

언제부터 그 괴물이 내 안에 자라기 시작했는지 어렴풋이 안다. 나는 어머니 말을 잘 듣는 순한 아이였다. 어릴 때 사진을 보면 스르르 웃음이 난다. 초등학교 때 사진을 보면 천진 난만하게 티없이 웃고 있다. 재잘거리며 웃음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중3 때 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반장을 하면서 형편이 어려운 급우들을 보게 됬다. 학교에 안 나오면 선생님이 나보고 걔 집에 가서 보고 오랬다. 지금도 그들의 가난이 떠오른다. 하꼬방 어두컴컴한 방안에 누워 있었다. 그들은 수업시간에 잠만 잤는데 왜그러냐고 물으니 어차피 고등학교에 가지 않는데 공부는 왜 하냐고 했다. 담배를 피고 불로 팔을 지지면서도 나에게는 담배를 피지 말 라고 그랬다.
고등학교에 올 라가서는 정말 힘들었다. 시험을 계속 보는게 힘에 부쳤고 저녁 늦게까지 학교에서 자습을 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우열반을 나누고 반에서도 성적순으로 자리를 정했는데 그 경쟁이 힘들었다. 나보다 낮은 성적의 아이들이 얼마나 자존심 상할까 의식하며 상위를 차지한 것에  미안해 했다. 말수가 줄었고 어머니가 나에게 음울한 아익라고 했다. 다시 뒤 돌아보기 싫은 시간이다. 대학에 가서는 교정에 항시 전경이 진을 치고 있고 데모와 최루탄 냄새를 맡으며 억압을 느꼈다. 이영희의 베트남 전쟁을 분석한 글을 읽으며 지금까지 학교에서 배운 사실이 거짓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나서 주위를 돌아보니 위선과 거짓과 부정의가 선명히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이 태연히 아무일도 없는 양 지내는 것이 참을 수없었다. 부정의는 자연에 가까운 상태이고 인간은 제도를 통해 욕심을 제어하면서 발전해왔다는 것을 점차 머리로 이해했지만 가슴속에 도사린 분노는 사라지지 않았다. 나도 그 부정의에 동참하기에 마음이 불편한 것이리라. 영화 대부의 주인공이 머리를 싸매며 괴로워 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래서 나는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풀기위해 넓은 공간을 찾는다. 넓게 열린 공간을 보면 환장한다. 물을 만난 물고기 처럼.

7시간을 달려 브린디시란 작은 도시에 도착했다. 이탈리아 반도의 장화 발뒤꿈치에 위치해 있다. 도시외곽에서 버스를 내린후 중심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의아했다. 마치 핵폭탄 맞은 것 마냥 햇빛은 따갑게 내려 쬐는데 거리가 비어 있다. 상점은 모두 셔터를 내렸고 제법 큰 슈퍼마켓은 아직 4시 밖에 안됬는데 문을 닫았다. 바닷가 가까이 도시 중심으로 가니 그제야 사람이 보인다. 그리스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이먼곳에 왔는데 알고보니 이곳은 그리스 로마시대에 건설된 항구도시로 그당시 유적이 남아 있는 관광 도시였다. 지금은 시즌이 아니라 철시한 것이다.
숙소를 어렵게 물어 찾아가니 외따른 골목속에 있는 민박집이다. 현관 문을 열고 어두컴컴한 통로를 지나며누조그만 정원이 나타나고  계단을 올 라가면 또 조그만 정원이 나타난다. 비밀의 공간 같다. 칠십가까이 되보이는 할머니가 안내하는데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다. 결국 아들을 불러내서 간신히 필요한 몇 마디를 했다. 그녀석의 영어도 신통치 않아 의사소통이 힘들다. 이탈리아에서는 영어가 통하지 않는다. 어디를 가던 영어로 물으면 이탈리아 말로 뭐라고 뭐라고 한다. 혼자 쓰는 방은 과분할 정도로 좋았다. 통나무 판자로 사방벽이 둘러치고 천장에 나무 서까래가 드러난 오래된 집이다. 주인 할머니가 쓸고 닦아 깨끗하고 단정하다. 손바닥 만한 정원에는 각양각색의 화초를 가꾸고 있다.
수백년은 됬음직한 집 사이로 난 골목길을 무작정 돌아다녔다. 바닥에는 주먹만한 검은 색 돌이 깔려 있고 희고 넓은 대리석 조각으로 차도를 포장한 특이한 길이다.  가까이에 대리석이 많이 나나보다. 중세 때부터 그랫을 것 같은 길을 해가 뉘엿뉘엿 지는데 한참이나 싸돌아다녔다. 황혼녁에  비스듬이 벽에 비친 주황색 빛이 아름다웠다.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파 어지럼증이 찾아 올 무렵 어느 구석에서 피자집을 발견했다. 부부가 하는 조그만 가게 였는데 주민들이 계속 찾아와 피자를 찾아가고 인사만 건네고 가기도 간다. 피자를 주문했는데 한판에 4.5 유로란다. 토마토 소스와 치즈를 듬뿍 얹고 종이처럼 얇은 프로슈토로 전면을 뒤덮은 피자이다. 약간 짰지만 바삭바삭하고 맛있다. 조그만 홀 탁자에 앉아 부부가 일하는 모습을 보며 천천히 먹었다. 손님이 뜸해진다. 반판을 배부르게 먹고 나머지는 싸왔다. 여러 일이 일어난 하루였다. 오늘 마침내 가지고 다니던 외투를 차에 두고 내렸다. 깨달았을 때는 이미 버스가 떠난후. 인생은 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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