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liam Easterly. 2001. The Elusive Quest for Growth: Economists' adventures and misadventures in the tropics. MIT Press. 291 pages.
저자는 월드 뱅크의 경제학자이며, 이 책은 개발도상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원조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개발도상국의 문제점을 검토한다.
개발도상국이 경제발전을 하도록 하는 요인에 대한 기존의 경제학 이론은 틀렸다. 첫째, 경제학자들은 개발도상국은 자본이 부족하여 발전을 못하기 때문에, 자본을 지원해주면 발전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개발도상국에 인력과 기술은 부족하지 않기 때문에, 자본만 대주면 생산성이 오를 것이라고 암묵적으로 가정하는데, 개발도상국은 자본을 투자한다고 해도 이를 운용할만한 인력과 기술이 부족하기 때문에 제대로 생산성을 올리지 못한다. 둘째, 경제학자들은 개발도상국이 인적자본이 부족하여 발전을 못하므로 교육 수준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데, 개발도상국 사람들의 교육 수준이 높아진다고 해도 국내에서 교육받은 사람들을 제대로 소화할만한 일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에 해외로 나가거나 무용지물이 되버린다. 셋째, 경제학자들은 개발도상국이 소득을 높이기 위해 인구 압력을 낮추는 것이 필수라고 주장하는데, 출산율과 소득간의 인과관계를 잘못 생각하고 있다. 실상은, 출산율이 낮아지면 소득이 오르는 것이 아니라, 소득이 오르면 출산율이 낮아진다.
개발도상국이 경제발전을 하는데 부족한 자본을 국제사회의 신용 공여와 원조로 보충하는 방식은 잘못됐다. 개발도상국에 제공된 신용이나 원조가 경제발전을 위해 쓰이는 경우는 드물다. 국제사회의 신용과 원조는 경제개발에 쓰이기보다 지배층의 호주머니로 들어간다. 개발도상국의 빚은 시간이 흐를수록 누적되어 구제금융이나 빛 탕감으로 귀결된 경우가 허다하다. 개발도상국의 지배층의 입장에서 볼 때, 경제를 제대로 운용하여 경제 사정이 나아지면 국제사회의 신용과 원조가 줄어들 것이고 그러면 자신들이 착복할 수 있는 돈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신용과 원조는 의도하는 방향과 반대되는 인센티브로 작용한다. 이러한 부정적인 인센티브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지난 기간의 경제 운용 성적에 따라 신용과 원조를 공여하는 방식으로 바꾸어야 한다. 제대로 경제를 운용하는 정부에 신용과 원조를 몰아주는 반면, 제대로 경제를 운용하지 못하는 정부에는 신용과 원조를 줄여야 한다.
경제성장을 이끄는 핵심 요인은 자본보다 기술이다. 자본에 대한 수익은 체감하기 때문에 자본을 증가시켜 생산성을 높이는데에는 한계가 있는 반면, 기술이 높아지면 수익이 더 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생산성을 높이는데 큰 역할을 담당한다. 기술은 이를 개발한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더 큰 이익을 가져오며, 이미 기술이 축적된 위에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며, 기술 인력은 서로 함께 함으로서 서로의 생산성을 높이는 상승효과를 가져온다. 따라서 이미 기술이 높은 선진국은 기술 인력을 더 많이 모을 수있으며 더 높은 기술을 개발하는 선순환을 가져오는 반면, 기술 수준이 낮은 개발도상국은 이미 있는 기술자들 조차 해외로 이주하고 기술부족이 더 심화되어 경제발전을 할 수없는 악순환을 낳는다.
개발도상국은 정부의 규제가 성장을 막는 장애물이다. 정치인과 관료 등 기득이권자들이 경제 전체에 도움이 되기보다 사리를 우선시하기 때문에, 경제활동은 비효율적이고 비용이 많이 소요된다. 정치인과 관료의 부패가 심한 곳에는 해외로부터 직접투자가 들어오지 않아 선진 기술을 배우지 못하며, 자원을 노리고 들어온 투자의 경우, 권력자들이 수익을 착복하여 해외로 유출시킴으로, 자원 개발로 거둔 수익은 국내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기보다 부패의 먹이감이 될 뿐이다.
대다수의 개발도상국은 소득 양극화와 다민족 갈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 소득 양극화가 심한 경우 정부는 경제 전체를 위한 정책을 펴기보다 소수 부자 지배층의 이익에 기여하는 정책으로 일관한다. 여러 민족이 갈등을 벌이는 상황에서 국가는 지배층이 속한 민족에게만 이익이 되고 타 민족은 배제하는 정책을 펴기 때문에, 전체적인 경제성장을 추구하기 어렵다. 개발도상국이 경제발전에 매진하지 못하는 진정한 원인은 국민들이 계급과 민족으로 서로 갈려 갈등을 벌이기때문에 정치가 불안하며, 그 결과 경제성장을 위한 안정된 제도를 갖추기 힘들기 때문이다. 국가가 자의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며, 열심히 일한 결과물을 언제 뺏길지 모르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노력과 투자를 하려하지 않는다.
저자는 월드뱅크에 오랫동안 재직하면서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을 돕는 연구와 지원활동을 배경으로 이 책을 썼다. 곳곳에서 저자의 경험에 기반한 안타까운 감정을 담은 사례들을 접한다. 개발도상국에 대해 그가 느끼는 답답함을 독자도 공감하게 된다. 이 책은 문제점은 잘 지적하고 있지만, 어떻게 하면 개발도상국을 덧에서 벗어나게 할지에 관해서는 아이디어를 제시하지 못한다. 그도 책의 말미에서 이를 고백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마지막까지, 저자가 질문에 대해 무언가 답을 주겠지 하고 기대했는데, 결국 아무런 답을 주지 못하여 허무했다. 사실 명쾌한 답이 있다면 벌써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빈곤에서 벗어났을 것이다. 그래도 한국, 중국, 동남아시아의 일부 국가들과 같이 빈곤에서 벗어난 나라들이 있다는 것을 보면, 개발도상국의 미래에 절망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근래에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나라들 중에도, 동아시아만큼은 아닐지라도 경제성장이 제법 꾸준히 이루어지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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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vin Roth. 2015. Who gets What - and Why: the new economics of matchmaking and market design. Mariner Books. 231 pages.
저자는 게임 이론과 market design 연구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으며, 이 책은 그의 연구 결과를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쓴 책이다. 저자가 연구 혹은 설계한 시장의 사례를 예로 하여 효율적 시장의 이론에 대해 설명한다.
효율적인 시장은 시장 참가자가 많아야 하며(thick), 참가자 다수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 갈 수 있어야 하며, 거래의 비용이 많이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 시장 참가자가 많을수록 혼잡도가 높아지므로 효율성이 떨어지는데, 이를 해결할 장치가 있어야 한다. 참가자가 안전하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밝히면서 사기당할 것을 염려하지 않는 (safe)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시장은 자연발생적으로 발생하면서 스스로 문제점을 개선해가지만, 근래에 지식과 기술이 발달하면서 완전히 새로이 만들어진 시장도 적지 않다.
상품이 표준화되어 있어 개별적으로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한 시장(commodity market)에서는 다수의 판매자와 구매자가 서로에게 익명으로 가격에 의존해 거래를 한다. 반면 상품이 표준화되지 않고 개별적인 특성이 큰 시장에서는 판매자과 구매자가 서로 짝을 짓는(matching) 방식으로 거래가 이루어진다. 이 책에서는 주요 매칭 시장의 사례, 즉 콩팥 이식을 둘러싼 콩팥 기부자와 수혜자의 짝을 교환하는 시장, 의대를 졸업한 수련의 지망생과 그를 고용할 병원을 짝짓는 시장, 중고등 학생의 진학과 관련해 지원자와 학교를 짝짓는 시장, 법대 졸업생과 로펌 및 판사서기 자리를 짝짓는 시장, 주파수를 경매하는 시장, 등을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한다.
콩팥 기부자와 수혜자를 짝짓는 시장은 2000년에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콩팥을 돈을 받고 거래하는 행위는 전세계적으로 이란을 제외하고는 법으로 금하고 있다. 콩팥 기부는 죽어가는 사람으로부터 적출하거나 순수한 기부를 통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콩팥을 원하는 사람에 비해 기부되는 콩팥은 현저히 적다. 따라서 일방적인 순수한 기부보다는 기부자를 상호 교환하는 방법으로 거래가 이루어진다. 콩팥을 수혜받고자 하는 사람은 대체로 가족이나 친지로부터 기부 받는 길을 택하는데, 문제는 기부자의 콩팥을 수혜자의 몸이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콩팥 기부자를 확보한 수혜자들이 서로 기부를 맞교환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몸에 맞는 콩팥을 찾아서 이식하는 경우가 많다. 매사추세츠주에서 시작한 기부자와 수혜자의 쌍을 맞교환하는 네트워크는 점차 범위를 넓혀가면서 맞교환 콩팥 이식의 사례를 늘이고 있다. 수혜자를 동반하지 않은 순수한 기부자의 콩팥이 기부자와 수혜자의 쌍의 교환 네트워크에 투입되면, 연쇄적인 기부와 수혜의 사슬을 형성하면서 콩팥이식 사례를 획기적으로 늘린다. 기부자와 수혜자의 쌍을 동시에 시술하는 대신에 시차를 두고 시술함으로서 두쌍 간의 교환을 넘어서 세쌍, 네쌍 간의 교환도 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병원과 의사들이 이식의 사례 수를 늘리는 것보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기때문에, 콩팥 기부 네트워크는 지역을 넘어서 전국으로 확대되지 못하고 있다. 네트워크의 범위가 넓을 수록 교환의 가능성은 커지며, 이식 사례 수는 비약적으로 늘어난다.
의대를 졸업한 수련의 지망생과 이들을 고용하는 병원간에 짝을 맺어주는 시장은 저자의 도움으로 체계화되기 전에는 혼란 상태였다. 병원들은 타 병원보다 우수한 수련의를 먼저 차지하려고 하면서 채용 인터뷰를 제안하는 시점이 갈수록 앞당겨졌으며,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병원들이 합의하여 채용 시작 시점을 정하였을 때, 매우 짧은 유효 기간을 둔 채용 제안(exploding offer)을 남발함으로서 지망생이 제대로 검토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결국 병원들 사이에 진흑탕 경쟁으로 합의는 무너지고, 무질서한 채용 경쟁으로 지원자와 병원 모두 불만족한 결과를 얻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장을 새로 디자인 해달라는 의뢰를 저자에게 했다. 저자는 '채용 확정을 연기하는 알고리즘' (deferred acceptance algorithm)을 적용한 중앙집중의 결제 방식 (clearinghouse)를 도입함으로서 문제를 해결하였다. 채용 확정을 연기하는 알고리즘의 작동 원리는 다음과 같다.
1) 지망생이나 병원 모두 각각 상대에 대해 자신의 선호를 서열로 매긴 목록을 작성하여 제출한다. 2) 배정의 1차 라운드로, 선호 목록의 최상위에 있는 지망생과 병원을 짝짓는다. 3) 만일 병원의 허용 좌석에 비해 최상위로 이 병원을 지목한 지망생의 수가 많을 경우, 이 지망생 중 병원이 정한 상위의 순으로 지망생을 잠정적으로 배정한다. 4) 1차 라운드에서 탈락한 지망생은 선호 목록의 차상위에 있는 병원에 대해 2차 라운드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평가를 진행한다. 이때 이미 1차 라운드에서 이 병원에 잠정적으로 배정된 모든 지망생과, 1차 라운드에서 탈락하여 차상위 선호 병원으로 온 지망생은, 동일한 지위에서 병원의 선호 순위에 따라 모든 지원자를 평가한 후 상위 순으로 지망생을 잠정적으로 다시 배정한다. 매 라운드마다 배정은 계속 개정되게 된다. 5) 이렇게 모든 병원과 모든 지망생에 대해 상호 선택을 반복한 후, 배정되지 않은 지망생이 남지 않게 되면, 지금까지 배정된 병원과 지망생의 짝짓기를 최종적으로 확정한다.
이 알고리즘은 중앙결제 방식을 통하지 않고 지원하거나 채용하는 선택이, 이 결제 시스템을 통해 하는 선택보다 항시 열등한, 즉 하위 순위의 상대와 짝짓기를 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에, 최상의 짝짓기를 제공한다. 반면, 일순위를 우선적으로 배정하여 확정짓는 방식(immidiate decision method)은, 만일 1순위 대상에서 탈락할 경우, 자신이 원하는 2순위의 대상 또한 인기가 많은 곳이라면, 그가 2순위의 대상으로 배정되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원하지 않는 하위 순위의 대상으로 밀려 배정될 위험이 있다. 따라서 1순위를 먼저 배정하는 방식을 적용하는 경우, 사람들은 자신의 실제 선호 순위를 밝히기보다는 전략적으로 자신이 채용될 가능성이 높은 자리를 고려하여 순위를 외곡하여 제시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반면 채용 확정을 연기하는 알고리즘을 적용할 경우, 자신의 1순위 대상에서 탈락한다고 하여도, 자신의 2순위 대상에서 다른 모든 지원자와 동등하게 평가받을 수 있으므로, 자신의 실제 원하는 선호순위를 솔직하게 밝히는 것이 최선의 전략이 된다.
중고등학생 입학과 관련해 지원자와 학교를 짝지워주는 시장은, 학교가 지원자의 순위를 제시하는 대신 선호 기준을 제시하는 것 이외에는, 수련의 지망자를 병원과 짝짓는 시장과 동일하다. 지원자는 자신이 선호하는 학교를 10개까지 순위를 적어 내게 하며, 중앙결제 시스템은 지원자의 선호에 따라 각 학교에 대해 잠정적인 배정 라운드를 계속 돌리면서, 모든 학생들이 자신의 선호 목록의 최상의 학교에 배정되고, 학교도 자신의 선호 기준에 따라 가장 우수한 학생을 받게 된다. 그러나 이 알고리즘은 기존의 학교간의 서열과 학생들 사이의 우열을 인정한 채, 그러한 조건에서 가장 최상의 짝짓기를 만드는 것일뿐, 학교간의 서열의 문제나 학생들간의 서열의 문제 자체를 건드리고 있지는 않다.
최상의 짝짓기 알고리즘이 존재한다고 하여도, 기존의 비효율적인 시장이 쉽게 바뀌지는 않는다. 각 시장마다 이익을 보는 쪽이 있으며, 이들은 시장의 개혁을 반대하기 때문이다. 법률 시장의 경우 판사의 힘이 매우 크기 때문에 법대 졸업생을 배정하는 중앙결제시스템의 도입을 어렵게 한다.
모든 물품을 돈으로 거래하는 것을 사회가 허용하지는 않는다. 인체의 장기를 거래하는데 돈이 개입해서는 안된다고 사회가 규정하고 있으며, 마약과 섹스 또한 돈으로 거래되는 것을 금하는 사회가 많다. 그러나 어느 것이 돈으로 시장에서 거래가 가능한가는 시대와 사회에 따라 변해왔다. 예컨대 중세 서구에서는 이자를 받고 돈을 대여해주는 것을 금했다. 효율적인 시장을 설계하는 작업은 경제학 이론을 실제에 적용하여 효과를 본 대표적 예이다.
저자는 이 분야에 대가이므로 자신의 연구와 활동을 자신의 말로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쓴 것 만으로 내용이 매우 풍부하다. 복잡한 이론을 흥미로운 사례를 동원해 알기 쉽게 쓴 솜씨가 대단하다. 지원자와 자리를 짝짓기 하는 것은 살면서 주변에서 흔히 경험하는 일이므로, 저자의 설명이 머리에 쏙쏙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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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ffrey Winters. 2011. Oligarchy. Cambridge University Press. 285 pages.
저자는 정치학자이며, 이 책은 부와 권력의 관계를 규명하는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고, 과거와 현재의 여러 사례를 통해 그의 이론을 검증한다. 권력의 궁극적 원천은 부(wealth)이며, 권력의 핵심은 부를 지키는 것이다. 소득과 재산 분포의 상위로 갈 수록 부의 집중도는 비약적으로 높아지는데, 전인구의 1%의 100분의 1도 안되는 소수의 부자들에게 자신의 부를 지키는 문제는 분포 상에서 그들 아래에 있는 일반 부자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거대 부자들에게 부를 둘러싼 갈등은 잠재적 및 현재적 폭력을 수반한다. 부자는 자신의 부를 이용하여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이는 자신들의 부를 지키는데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
부와 권력의 관계는 역사적으로 네가지 유형으로 나타난다. 첫째는 거부들 사이에 폭력적 투쟁이 지배하는 유형이다. 거부들에게 자신의 부에 가장 큰 위협은 다른 거부들이다. 이들은 사적인 폭력 수단을 보유하면서, 자신의 부를 지키고 다른 거부들의 부를 빼았는다. 이는 역사상 가장 흔히 존재하는 권력의 유형이다. 아프리카의 추장에서부터, 고대사회의 군벌, 중세시대의 영주, 미국의 애팔래치아 산간 지역의 파벌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많은 사례를 찾을 수있다. 거부들은 자신의 부를 사용하여 폭력 수단을 고용한다. 인구 대부분을 차지하는 보통사람을 착취하는 데 폭력을 사용함은 물론, 다른 거부들의 위협을 물리치기위해 개인적으로 보유하는 폭력 수단은 필수이다. 돈이 없으면 자신을 위해 일하는 폭력 수단을 고용할 수없으며, 폭력이 없으면 생산자를 착취해 부를 축적할 수 없다. 부와, 폭력과, 권력은 등치의 관계이다.
두번째 유형은 거부들이 집단적으로 권력을 공유하는 유형이다. 거부들은 각자 개인 소유의 폭력 수단을 보유하지만, 공동으로 정치에 직접 참여하면서 질서를 유지한다. 이탈리아의 마피아 사이에 결성된 협의체, 고대 아테네와 로마의 정부, 중세 이탈리아의 베니스와 시에나와 같은 도시 국가가 대표적 사례이다. 이러한 유형에서는 공동 정부에 참여하는 특정한 거부가 위임된 권력의 정도를 넘어서 다른 거부들을 지배하는 위치에 올라설 위험성이 항시 존재한다. 이러한 위험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하여 위임된 권력의 과다를 제한하는 다양한 장치를 만들어 놓고, 특정 거부가 권력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상호견제한다. 그럼에도 로마에서 시저가 공동 정부의 권력을 독점하여 황제가 되었다. 거부들 사이에 공동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협약이 깨어지면, 폭력적 투쟁의 유형으로 쉽게 회귀한다.
세번째 유형은 특정한 한명의 거부가 절대적 권력을 행사하면서 나머지 거부들을 일방적으로 통제하는 유형이다. 절대 권력자는 본인 자신이 엄청난 부를 소유하고 있으면서 국가 권력을 동원하여 거부들 사이에 갈등을 조정하고, 보통사람들에 대한 그들의 착취를 관리한다. 거부들은 절대 권력자가 자신의 부를 보호해주는 대신에 부분적으로 개인 소유의 폭력 수단을 포기한다. 절대 권력자는 국가의 권력을 이용하여 자신의 부를 늘리는 한편으로, 국가의 권력에 따른 이권을 다른 거부들에게 적절히 나누어주면서 개인적으로 그들의 충성을 관리한다. 외형적으로는 법에 의한 지배의 형태를 갖추고 있으나, 부를 축적하는 영역에서는 법이 아니라 절대 권력자의 개인적 재량이 기본 원칙이다. 절대 권력자와의 친소관계 및 절대 권력자의 개인적 선호에 맞추어 모든 중요한 결정이 이루어진다. 보통사람들은 법에 의한 지배를 받으나, 거부들은 법의 범위 밖에 있다. 인도네시아나 필리핀이 대표적인 예이다. 인도네시아는 수하르토의 치하에서 절대권력을 중앙에 완전히 집중시켰으며, 일반 거부들은 절대권력자에 대항할 수있는 개인적 폭력 수단을 소유하지 않고 권력자의 재량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반면 필리핀은 독재자 마르코스의 치하에서 일반 거부들이 개인적 폭력 수단을 부분적으로 소유하면서 독재자를 비판하고 위협하는 존재였다.
네번째 유형은 법에 의한 지배가 뿌리내린 입헌 민주주의 정치이다. 거부들은 법에 의해 부를 완전하게 보호받는 대신에 사적인 권력을 완전히 포기한다. 거부들은 다른 거부들로부터 자신의 부를 강압적으로 빼앗길 위험은 사라졌으나, 대신 일반 민중으로부터 부를 나누어 달라는 거센 요구나 국가로부터 고율의 세금을 통해 부를 빼앗길 위험에 항시 노출되어 있다. 거부들은 자신의 부를 보호하는 일을 전적으로 하는 전문가를 많이 고용하여 법의 구멍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돈을 사용하여 정치인을 매수함으로서 법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외곡시킨다. 미국의 세법이 매우 복잡하여 빠져나갈 구멍이 많은 이유는 바로 이들의 영향 때문이다. 그 결과 미국의 거부들의 실효 세율은 일반 노동자의 세율보다 훨씬 낮으며, 근래에는 상속세를 완전히 폐기하였다.
민주주의는 보통사람들의 정치 참여를 확대했지만, 부의 집중을 제어하지는 못했다. 거부들은 돈의 힘을 동원하여 민주주의 선거에서 국민이 선택할 수 있는 후보의 범위와 정강을 제한함으로서 국민의 선택을 무력화시킨다. 분배의 평등을 요구하는 보통사람들의 시민 운동은 거부들이 돈을 사용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전적으로 일하는 전문가나 정치인들에 필적할 수 없다. 일반 사람들은 생계를 위한 활동을 소홀히 하면서 오랫동안 공동의 이념적 대의를 위해 발벗고 뛰기 힘들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시민의 정치 참여를 높이기는 했지만, 거부들의 부를 지키는 노력을 제한하는 데에는 무력할 수 밖에 없다.
싱가포르는 경제활동에 관한 한 법에 의한 지배를 확립했지만, 정치적 자유의 영역에서는 독재를 유지하는 특이한 예이다. 싱가포르의 부의 집중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심하며, 거부의 부는 법에 의해 잘 보호되고 있다. 그러나 법에 의한 지배라는 원칙은 개인의 정치적 자유까지 보장하지는 않는다. 민주주의적 참여가 부의 권력 독점과는 별개의 영역이라는 또 다른 증거이다.
이 책은 새로운 권력 이론을 제시하는 학술서이다. 과거 엘리트 이론이 부의 소유에 관계 없이 소수에게 정치적 권력의 집중에 촛점을 맞추었는데, 그는 엘리트 이론은 권력의 원천의 중요성에 관해 소홀했다고 비판한다. 권력의 핵심은 부의 소유와 부를 지키는 것을 둘러싼 갈등이기 때문에, 이것을 간과한다면 정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부가 수반되지 않은 권력은 직위에서 벗어나는 순간 거품처럼 사라지므로, 부의 소유를 둘러싼 권력과는 관심이나 행태가 다를 수밖에 없다. 진정한 권력의 추동력은 물리적 부에 있다. 소득과 재산 분포 상위 0.01%에 속하는 사람들이 과거나 현재나 정치 권력의 핵심이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나머지 99%의 사람들은 거부에게 착취되거나 혹은 그들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앞잡이에 불과하다.
거부의 권력도 변화한다. 사회적, 경제적 위기로 거부의 부가 타격을 받으며, 세대를 거치면서 부의 부침이 있다. 거부의 구성과 권력이 변화한다는 것은 이러한 구조에 때때로 균열이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위기가 지나고 나면 일부 거부들의 부는 소실되고 새로운 부가 축적되면서 기존의 거부 집단에 순환이 일어난다. 일반 사람들은 법을 지키지만 거부들은 법 위에 있고, 법을 집행하는 기관은 이들과 타협한다. 권력의 핵심을 물리적 부로 보는 그의 이론은 역사와 정치를 보는 신선한 아이디어이다. 거부의 부를 위협하는 위기를 단순히 외생변수로만 치부하고, 근대 사회에서 지식인의 역할을 부정하는 물질결정론 materialism 이 반드시 옳은 것 같지는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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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rwin Nuland. 2007. The Art of aging: a Doctor's prescription for well-being. Random House. 290 pages.
저자는 외과 의사이며, 이 책은 의사의 관점에서 어떻게 해야 노년을 잘 살 수 있는가에 관해 서술한다.
50대에 접어들면 사람들은 자신의 육체가 퇴보한다는 것을 자각한다. 병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러나 노화 자체는 병이 아니다. 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잘 관리하면 큰 장애 없이 죽기 직전까지 잘 살 수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늙고 있다고 자각하면 활동을 줄이고 움츠러드는데, 그러한 태도와 행위가 노화를 촉진한다. 노화의 정도는 사람에 따라 차이가 크다. 자신이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 때문에 활동을 줄일 필요는 없다. 현대 사회의 대부분의 활동은 노년에 들어서도 자신이 하려고만 한다면 계속할 수 있다. 극단적 스트레스나 순발력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 노인은 젊은이에 뒤쳐지지만, 일상적인 수준에서는 젊은이와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
노년을 잘 살기 위해 세가지가 중요하다. 첫째는 남을 사랑하고 사람들과 맺는 관계의 중요성이다. 사람들은 자신보다 더 큰 무엇을 위해 살 때 삶의 의미와 가치를 느낀다.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 이외의 소중한 사람은 자식과 가족이며, 보다 폭넓게는 사회 일반이다. 남을 사랑하고 남으로부터 사랑을 받을 때 삶의 활력을 유지할 수있다. 둘째는 자신의 육체적 능력을 잘 관리하는 것이다. 우리의 육체는 적절히 지속적으로 사용해야만 기능을 잘 유지한다. 셋째는 창조성이다. 새로운 것을 찾고 도전하는 것은 삶의 활력을 위해 핵심적인 요소이다. 불확실과 불완전함을 안고 새로운 무엇을 향해 자신을 발전시키는 것은 죽을 때까지 계속되어야 한다.
노년을 어떻게 사는가는 많은 부분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 꾸준히 운동하면서 육체를 관리하고, 무리를 하지 않고, 주위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지속하고, 호기심을 잃지 않고 새로운 일을 꾸준히 찾으면서 자신을 발전시키려 한다면 노년은 젊은 시절보다 더 값진 삶이 될 것이다. 오랜 경험을 통해 쌓인 지혜 덕분에 더 현명하게 선택하고 더 생산적인 결과를 만들 수 있다. 반면 육체적 후퇴에 위축되어 우울해 하고 여생을 지루하게 보낸다면 노년은 매우 힘들 것이다.
노년의 활력은 두뇌 작용과 연관되어 있으며, 두뇌 작용은 육체 활동과 연관되어 있다. 운동을 하면 육체만이 아니라 두뇌도 자극되어 활력을 잃지 않는다. 유산소 운동도 좋지만, 무산소 근육운동을 강력히 추천한다. 우리 몸의 긴장 강도를 높이는 운동을 하면, 노년에도 근육이 생성되며 혈관과 심폐 능력이 향상되어 노화를 멈추고 되돌릴 수 있다.
노년의 목표는 오래 사는 것보다는 죽기 직전까지 건강하게 활력을 유지하면서 살다가 죽음에 임박하여 급격하게 퇴화하여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어야 한다. 노년을 보람있게 살기 위해 젊은 시절 부터 앞으로 어떻게 노년을 살지 준비해야 한다. 재정적 준비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 않게 지적으로 어떻게 살지 조금씩 준비하며 노년을 맞아야 한다. 노년을 어떻게 사는가는 사람에 따라 크게 다르다는 것이 의사로서 저자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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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es Bessen. 2015. Learning by Doing: the Real connection between innovation, wages, and wealth. Yale University Press. 227 pages.
저자는 경제학자이며, 이 책은 새로운 기술이 어떻게 개발되는지, 근래에 왜 임금격차가 확대되는지, 기술 혁신을 촉진하기 위해 어떤 정책을 도입해야 할지에 관해 서술한다.
새로운 기술은 소수의 엘리트 발명가에 의해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그 기술을 적용해 일하는 노동자들의 경험 속에 체화된 실용적 기술을 통해 발전한다. 기술 혁신은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없는 시행착오와 개량을 통해 경험이 쌓이면서 조금씩 이루어진다. 처음 아이디어를 만든 발명가를 칭송하지만, 그의 아이디어가 실제 쓸모가 있는 기술로 구체화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의 점진적 개량 노력이 덧붙여져야 한다.
노동자들이 현장 경험을 통해 익힌 (on-the-job) 실용 기술들이 함께 하지 않으면, 아무리 우수한 기계나 기술이라도 제대로 성능을 내지 못한다. 단적인 예로 영국이 개발한 면직 기계를 일본과 중국에 수출했을 때, 영국의 기술자가 함께 따라왔음에도, 이 기계를 활용한 생산성에서 일본과 중국은 영국의 수준에 훨씬 못미쳤다. 일반 노동자들이 보유한 실용 기술은 엔지니어의 추상적 기술 못지 않게 생산성을 내는데 중요한 요소이다.
특정 분야에서 기술의 변화가 빠르며 아직 표준화가 되지 않은 초기 발전단계에는, 노동자들이 실용적 현장 기술을 배우는 것을 꺼린다. 이 단계에는 보편적 아이디어를 보유한 엔지니어의 역할이 중요하다. 반면 기술이 성숙하여 표준화가 된 단계에서는 노동자들이 구체적인 관련 기술을 배워 생산성 향상에 적극적으로 기여하기에 임금도 올라간다. 즉 기술이 아직 유동적인 단계에서는 생산성 향상의 과실이 엘리뜨 엔지니어에 머물 뿐 일반 노동자들에게까지 미치지 못한다. 1980년대 이래 정보통신기술은 아직 표준화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으며, 관련 기술이 일반 노동자들에게 널리 보급되지 못했다. 그 결과 일반 노동자와 엘리뜨 엔지니어 간의 소득 격차는 크게 벌어졌다. 현재 미국의 노동시장은 현장에 필요한 실용적 기술을 보유한 노동자에 대한 수요는 많으나 이러한 중간 수준의 기술을 갖춘 노동자가 크게 부족한 상황이다.
신기술로 인한 소득 불평등 확대를 줄이려면, 일반 노동자들이 신기술과 관련된 구체적 실용 기술을 익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전문대학의 기술 교육을 적극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전국민의 4년제 대학교육을 장려하고, 대학의 고급 연구활동에 재정을 일방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은 방향이 잘 못 되었다.
새로운 기술 개발을 촉진하려면 기술의 공유를 장려해야 한다. 성숙한 단계에 도달한 기술은 지적재산권을 엄격하게 보호하는 것이 타당하지만, 유동적인 초기 단계의 기술에 대해 특허를 남발할 경우, 기술 개발을 방해하게 된다. 특허권을 엄격히 보호하는 정책은 표준 기술을 보유한 대기업에게 유리하기에, 지금까지 미국의 특허 정책은 특허를 강화하는 방향으로만 발전해 왔는데, 이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데 주력하는 start-up에게는 매우 불리한 정책이다. 표준화 단계에 도달하지 않은 불확실한 기술의 경우, 특허권으로 보호하지 않아도 모방을 통해 이익을 거두기 어려운 반면, 서로 모방하면서 기술을 향상시키는 상승 효과가 더 크다.
미국의 20세기 주요 기술의 개발과정을 보면, 정부의 군사 용도의 기술 개발이 민간에 확산되는 과정을 거쳤다. TV, 컴퓨터, 인터넷, GPS, AI, 등 대부분의 핵심 기술은 군사용도의 기술 성과를 민간에서 받아 개량하면서 이루어졌다. 정부가 군사용도의 기술 개발을 지원하면서 참여 기관과 연구자들 사이에 기술 공유를 적극적으로 장려했기 때문에 연구의 효율이 매우 높았다. 개별 기업은 자신의 연구 과정과 성과를 배타적으로 소유하려고 하기 때문에, 관련 연구자 공동체의 집단적 협력을 기대할 수없다. 근래에 미국의 군사 목적의 연구는 배타적 비밀주의를 엄격히 강요하기 때문에 과거와 같이 높은 연구 효율과 민간 확산을 기대하기 어렵다.
미국이 유럽보다 기술 개발이 활발한 것은, 기술과 기술자에 대한 사회전반의 우호적 분위기와 함께, 기술 기득권자를 보호하는 정도가 유럽보다 덜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기술에 관심을 가지고 기술 개량에 참여하는 분위기가 조성될 때 기술 개발이 활발하게 이루어 진다. 기술 개발은 소수의 엘리뜨 엔지니어가 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 일에 참여하면서 배우고 개량하는 가운데 점진적으로 기술은 발전한다.
이책은 저자의 과거 기업 경험을 바탕으로 기술이 실제 어떻게 쓰이고 개발되는지 이야기 한다. 학자가 쓴 글과 달리 이론적 논의보다는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신 기술 개발이라는 것이 실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기 어렵다. 저자는 실제 적용하면서 깨달아가는 과정을 통해 기술이 점진적으로 발전한다고 주장한다. 기술발전에 관한 기존의 이야기는 대체로 신화일뿐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고 주장한다. 기술 개발은 엘리뜨 이론가나 골방의 발명가의 업적만으로는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평이하지만 설득력 있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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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n Morris. 2013. War! What is it good for?: Conflict and the progress of civilization from primates to robots. Farrar, Straus and Giroux. 393 pages.
저자는 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인류의 역사 전반을 훑으면서 전쟁은 평화를 가져오는데 필수적인 것이었다는 명제를 주장한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공격성과 폭력성을 지닌 동물이다. 수렵채취 단계에서 폭력으로 사망한 사람은 전체 인구의 10~20%에 달한다. 사람들은 문제와 어려움에 봉착하면 쉽게 폭력적 수단에 의지했으며, 집단들 사이에 제한된 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갈등은 끝없는 공격과 보복을 낳았다. 농경을 하면서부터 행위 방식에 변화가 나타났다. 농경으로 인구 밀도가 늘고 이동의 제한에 부닥치면서, 과거 작은 집단 간 폭력적 갈등은 규모가 큰 사회 간 전쟁으로 발전했다. 전쟁에서 상대 집단을 이기기 위해서는 자신의 집단이 상대보다 더 부강하고 규율이 더 잘 잡혀 있어야 한다. 중앙집권적 국가 권력의 사회 통제의 효율성이 높아지면서, 사회 내에서의 사적인 폭력은 엄격히 제한되었으며, 그 결과 폭력의 빈도는 현저하게 줄었다.
과거 소집단 사이의 폭력적 갈등이 빈번했을 때는, 상대를 공격하여 이길 경우, 보복을 예방하기 위하여 상대 집단 사람들을 모두 죽이는 것이 안전한 방책이었다. 반면 국가가 폭력을 통제하는 단계에서는, 다른 국가와 전쟁에서 이기면 상대의 반발을 무마하는 수준에서 폭력을 그치고, 대신 상대 국가의 구성원을 자신의 사회 안으로 포용하여 더 큰 국가로 만드는 것이 미래의 전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안전한 방책이다. 그 결과 로마의 제국주의 시대에 폭력으로 죽은 사람은 전체 인구의 1~2%로 과거에 비해 현저하게 줄었다. 전쟁을 통해 더 강력한 국가와 군주 Leviathan 가 출현하면서 폭력은 감소하고 평화가 찾아온 것이다.
중앙아시아로부터 온 기마민족의 공격으로 로마가 멸망하면서 강력한 국가의 통제는 허물어졌다. 기마민족은 농경사회의 지배자와 달리 기본적으로 정주하여 사회를 통제하는 권력이 아니다. 그들은 전쟁을 통해 상대를 포용하고 더 큰 부강한 나라로 성장하는 길을 걷기 보다는, 상대를 정복하여 파괴하고는 물러나거나 혹은 얕은 수준의 통치만을 하는 지배자가 되었다. 이들은 정주하는 권력이 아니므로 피지배자를 자신의 일부로 포용하여 그들의 안위과 부를 높임으로서 궁극적으로 자신들의 전쟁의 능력을 키우기보다는, 피지배자를 자신들의 일부로 포용하지 않고 타자로서 착취하는 수준에서 머물렀다. 기마민족의 전쟁은 상대를 파괴하는 것에서 더 발전하지 않는 '비생산적 전쟁'이다. 유럽은 다시 작은 집단으로 쪼개졌으며 이들 사이에 갈등과 폭력의 빈도는 높아졌다. 중세 시대에 유럽은 로마 제국주의 시대보다 폭력의 수준이 훨씬 높다. 유럽이 다시 상대를 포용하는 '생산적 전쟁'의 길로 들어선 것은 총기가 보급되고 기마 공격이 무력화되면서부터이다. 총기가 보급되면서 전쟁의 비용은 비약적으로 증가했으며 훈육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높은 전쟁 비용을 조달하고 잘 훈련된 군대를 확보하기 위해 사적 폭력을 억제하고 사회를 잘 다스려야 할 필요성 역시 증가하였다.
서구가 세계를 제패하게 된 것은 항해와 무기 제조 기술이 발달하고, 군대의 훈육과 조직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서구 유럽은 지형 조건상 작은 나라로 쪼개져 있으면서 서로 간에 잦은 갈등과 경쟁을 해야 했다. 그 결과 유럽은 단일 체제의 중국이나 인도와 달리 상호간 모방하면서 경쟁적 발달을 하였으며, 이러한 과정이 축적되면서 아시아와의 격차를 넓혔다. 서구의 제국주의시대 정복 초기에는 폭력이 많이 사용되었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제국주의는 종주국과 식민지 모두에서 질서를 높이고 폭력을 줄이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18세기 중반 영국이 프랑스와 패권전쟁에서 승리하고, 산업혁명으로 부와 기술을 높이면서, 영국은 세계에 대해 개방정책을 강요하였다. 각 나라들은 각자 자신이 잘하는 것을 생산하여 서로 교역하므로서 모두의 부를 높였다. 이러한 개방정책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영국에게 매우 큰 부와 번영을 안겨주었다. 영국은 강력한 군사력으로 자유 항해와 교역의 자유를 보장하는 세계 경찰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문제는 이러한 개방정책을 통해 영국만 성장한 것이 아니라, 후발 산업국인 미국과 독일도 빠르게 성장하여, 19세기 후반 무렵에 미국은 산업 생산에서 영국을 따라잡았으며 20세기 초에 이르면 독일도 영국을 위협할만큼 크게 성장했다는 사실이다.
독일은 자신들의 성장한 국력에 비해 자신들이 차지한 식민지가 보잘 것 없음에 불만이 커졌으며, 결국 1914년과 1938년 영국과 프랑스를 상대로 두차례나 전쟁을 벌였다. 이 전쟁을 통해 국력을 소진한 영국 대신, 미국이 세계 경찰의 위치에 올라서서 개방 정책을 이어갔다. 1989년 소련이 몰락함으로서 미국은 마침내 유일한 세계 경찰의 위치에 올라섰다.
미국의 안전 보장과 이를 바탕으로 한 개방정책은 미국에게 가장 큰 이익을 주었지만, 과거에 그랬듯이 다른 후발국가들에게도 빠른 추격 성장의 기회를 제공했다. 중국은 미국의 개방정책과 세계 경찰의 역할덕분에 빠르게 국력을 높였다. 영국에서 미국으로 패권이 넘어가는 과정에서 두 차례의 전쟁을 거쳤듯이, 미국에서 중국으로 패권이 넘어가는 과정에서 전쟁이 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이 앞으로도 계속 생산성을 높여간다면, 가까운 미래에 중국에 추월되지는 않을 것이지만, 저자는 궁극적으로는 미국이 중국에 추월당할 것으로 예측한다. 과거와 달리 핵무기의 확산으로 앞으로 전면전은 전쟁 당사자 모두에게 엄청난 피해를 안기기 때문에 전면 전쟁이 발생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미소간 군비축소의 결과 현존하는 핵무기는 수천만명을 죽이는 정도에 불과하며, 미사일을 요격하는 기술의 발전 등으로 핵무기의 피해를 선제적으로 줄일 수있는 방법이 계속 개발되고 있다. 따라서 핵무기의 엄청난 위험 때문에 앞으로 전쟁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은 옳지 않다. 엄청난 피해를 입기는 하겠지만 여전히 인구의 상당 비율은 핵무기를 사용하는 전면 전쟁에서 살아남을 것이므로 전쟁의 위험은 상존한다.
인류의 평화에 대한 희망이 과학 발전에서 나올 수있다. 인류는 공격적 폭력성을 문화적 장치를 통해 통제해왔으며, 그 결과 근래로 올 수록 폭력이 줄어들었다. 앞으로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전이 계속되면, 사람들 사이에 의식의 연결이 확대되면서 궁극적으로 컴퓨터와 인류 모두가 결합한 단일체 Singularity 가 출현할 수 있다. 컴퓨터의 도움으로 나와 우리의 외연이 계속 확장되다가 결국 모두가 하나가 되는 단계에 도달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단계에 도달하기 이전에, 인류는 과학 기술을 더 많이 활용하여 유리한 집단과 과학 기술이 낙후된 집단간에 불평등이 확대될 수있다. 전자는 월등한 능력을 동원하여 후자를 복속시키고 착취하는 관계를 만들 수 있다. 아마도 이러한 예측이 보다 가까운 미래의 모습일 것이다.
이 책은 저자의 역사적 지식을 버무려 비교적 가볍게 서술한 책이다. 특별히 새로운 이야기나 새로운 주장은 없으며, 인류 역사 관통하는 상식을 제공한다. 인간의 본성은 갈등, 공격, 폭력이며, 강력한 국가와 군주의 출현으로 이러한 본성을 제어한다는 토마스 홉스의 명제를 재확인한다. 전쟁 때문에 강력한 국가와 군주가 출현하여 개인과 집단간 소소한 폭력을 제어한 결과 오늘날과 같이 폭력 행사가 드문 평화로운 사회가 됬다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주장의 핵심은 강력한 국가와 군주, 세계의 경찰의 필요성이다. 만일 세계의 경찰 역할을 하는 국가의 힘이 약화된다면 다시 혼돈의 상황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즉 평화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강력한 폭력적 존재가 버티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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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 Zachary Taylor. 2016. The Politics of Innovation: Why some countries are better than others at science and technology. Oxford. 297 pages.
저자는 정치학자이며, 이 책에서 한 나라의 과학기술의 발전을 이끄는 다양한 제도적 요인을 비교한 뒤, 대외로부터의 정치경제적인 위협이 과학기술의 발전과 혁신을 가져오는 궁극적 동력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창조적 불확실성" creative uncertainty 라는 개념으로 요약한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정부의 적극적 노력이 투입되지 않으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과학기술 지식은 배타적 소유가 어렵기에 시장에서 적절히 공급될 수 없기 때문이다. 기존 연구에 따르면 혁신을 불러오는 다섯가지의 핵심 요인이 있다. 첫째는 지적 소유권이 잘 설정되 있을 것, 둘째, 정부의 연구개발 지원금, 셋째, 과학기술 교육, 넷째, 연구중심 대학, 다섯째, 국내 기술 발달을 유도하는 무역정책이다. 이러한 요인들은 모두 정부의 적극적 개입으로 실행된다.
제도학파 경제학자들은 소유권 보장과 인센티브 제도, 민주주의, 권력 분산, 투명성, 등의 제도 환경을 경제 성장의 필수 요인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국가들을 비교해보면 양호한 제도를 갖추고 있으나 과학기술 발전이 부진한 나라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제도는 부실하지만 과학기술 발전이 활발한 나라가 있다. 호주나 오스트리아가 전자에 해당하며, 한국과 중국이 후자에 해당한다. 양호한 제도가 과학기술의 발전을 낳는 필요조건은 아닌 것이다.
새로운 기술과 혁신은 관행을 바꾸는 것이기에 승자뿐만 아니라 패자를 낳는다. 기존의 기술로부터 기득이권을 누리던 집단은 혁신적 변화에 반발한다. 이들은 과학기술의 연구에서부터 개발된 기술의 적용에 이르기까지 모든 단계에서 다양하게 방해하면서 기술 발달을 힘들게 한다.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이유에서 새로운 기술은 방해를 받는다. 기득이권 집단에는 노동자에서부터 경영자, 정치인, 종교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역사에는 기득이권 집단의 방해로 새로운 기술의 도입이 지체되거나 좌절된 경우가 수 없이 많다.
그러나 국외로부터 군사적, 경제적 위협이 국내 세력의 방해보다 더 클 때 새로운 기술이 개발될 수 있다. 국외로부터의 경쟁과 위협이 높으면, 국민이 합심하여 국력을 길러야 한다는 요구가 전사회적으로 설득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안보 위협은 국방력을 높여야 할 필요를 낳으며, 이는 정부의 적극적 과학기술의 투자를 낳는다.
국가의, 특히 정부의 제한된 자원을 과학기술 발전에 투자하는 것에는 많은 불확실성이 따르기 때문에, 긴박한 필요가 없는한 이러한 투자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비용이 많이 들고 결과가 불확실한 과학기술보다는 보건 복지, 교육, 지역 개발 등 국민의 삶에 근접한 실용적 분야에 자원을 배분하라는 요구가 더 힘을 받는다. 이것이 안보 위협이 높은 나라에서만 주로 과학기술의 적극적 투자가 이루어지는 이유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을 위한 정부의 노력은 과학기술의 인력, 자본, 기업, 지역 등을 둘러싼 국내외의 네트워크를 만들어내는데 치중할 때 성과를 발휘한다. 연구기관과 산업체를 연결하고, 기술과 자본을 연결하고, 국내 기업과 해외 기업을 연결하고, 산업 단지를 조성하는 등으로 네트워크를 만들어내는데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이스라엘과 타이완은 네트워크 형성에 크게 성공하여 과학기술의 발전을 이루었다.
저자는 한마디로, "경쟁이 혁신을 낳는다"고 말한다. 외부로부터의 경쟁과 위협이 없으면, 국내 세력들이 갈등을 벌이면서 혁신의 동력을 갉아먹기 때문이다. 그의 이론이 미국, 영국, 독일 등의 선진국이 과학기술의 발전을 지배하는 상황을 잘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거시적으로 볼 때 타당한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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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alee Saxenian. 1994. Regional advantage: Culture and competition in Silicon Valley and Route 128. Harvard University Press. 168 pages.
저자는 도시경제학자이며, 이 책은 보스턴의 Route 128 지역과 실리콘 밸리를 비교하면서, 왜 전자 기술의 발달은 보스턴 지역에서 시작했으나 실리콘 밸리에 따라잡히게 되었는지, 왜 실리콘 밸리에서 컴퓨터 기술 혁신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지 설명한다.
보스턴 주변 지역은 뛰어난 산업 입지를 가지고 있다. 18세기 미국의 산업혁명이 이 지역에서 시작되었으며, 우수한 대학과, 높은 인구 밀도와, 정치 경제의 중심지를 인근에 둔 덕분에, 오래전부터 미국에서 이 지역은 기술과 산업의 중심이었다. 특히 2차 대전을 전후하여 정부의 대규모 방위산업 수요에 부응하여 전자기기, 항공기, 미사일, 등 첨단 산업이 크게 발달하였다. 이 지역의 기업들은 방위산업 예산의 절반 이상을 독식하면서, 신기술 분야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하였다.
보스턴 지역에서는 연방정부의 대규모 발주에 의존하는 기술 대기업이 지역의 산업 생태계를 장악하고 있었다. 기술 대기업은 생산에 필요한 자원을 내부에서 조달하는 수직적 계열화 체제를 갖추고 있었으며, 한 지역에 있으면서도 기업들 서로간에 연관이 적은 독립적 단위로 존재하였다. 이 대기업들은 기술 개발이나 부품 조달을 모두 내부에서 하였으며, 위계적 조직과 비밀주의가 팽배한 관료적 경영 행태를 보였다.
실리콘 밸리 지역은 2차 대전 이전까지 특별한 기술 기업이 없는 곳이었다. 그러나 미국이 태평양 전쟁을 치르면서 샌프랜시스코 지역에 돈과 사람이 몰리면서 이 지역은 활력을 얻게 된다. 실리콘 밸리가 기술 개발의 메카로 뜬 데에는 몇 가지 중요한 계기가 있다. 하나는 보스턴 지역에서 일하다가 스탠포드 대학의 전자공학 교수로 부임한 Frederick Terman 이 서부지역에 기술 개발의 동력을 불어넣기해 산학협력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시도한 것이다. 스탠포드 대학은 인근 산업체와 학교 연구실이 밀접히 협력하는 것을 장려하였으며, 교수와 학생의 연구결과물의 사업화를 지원하였다. 기업체 엔지니어가 대학의 강의를 듣게 함으로서, 기업이 최신 기술을 학교로부터 전수 받고, 학교가 산업 현장의 감각을 획득할 수 있게 하였다. 그 결과 휴렛팩카드, 선 마이크로시스템, 등 많은 실리콘 밸리의 기업이 스탠포드 대학의 졸업생에 의해서 설립되었다. 그들은 졸업해서도 기업활동에서 서로 유대를 지속했으며, 경영이나 기술적 문제에 관해 서로 주고받고 대학과 연계를 유지하는 고리가 되었다.
둘째는 직접회로의 기술이 1950년대에 개발되었는데, 스탠포드를 나오고 동부의 벨 연구소에서 일하던 William Shockley가 실리콘 밸리에 직접회로 칩을 생산하는 기업을 만들었고, 이곳에서 일하던 엔지니어 8명이 이 기업에서 나와 Fairchild Semiconductor 를 만들어 크게 성공한 것이다. 이 기업은 이후 무수히 많은 실리콘 밸리의 기술기업들을 파생시켰다. 대학교의 자유로운 분위기와 업적 중심의 문화, 휴랫패커드의 수평적 경영, 쇼클리의 권위를 배격하는 경영, 일하던 기업에서 떨어져 나와 새로이 창업하는 많은 사례 등이 실리콘 밸리의 수평적이고, 비공식적 네트워크를 중시하고, 정보가 자유롭게 교환되고, 업적 중심의 경쟁을 우선하는 생태계를 만들었다.
실리콘 밸리의 엔지니어들은 소속 기업에 대한 충성보다 동료 기술집단에 대한 충성이 더 컸다. 기술 변화가 워낙 빠르고, 그에 따라 기업 활동도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기술에 대한 신뢰가 조직에 대한 신뢰보다 더 클 수밖에 없었다. 배경이 없이 기술과 아이디어만으로 출발하여 크게 성공하고, 사업에 실패해도 크게 오명이 붙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엔지니어들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험하기 위해 창업을 힘들지 않게 택하였다. 지역에 지원 공급망의 생태계가 잘 갖추어져 있으므로 창업에 큰 비용이 들지 않았다. 핵심 아이디어를 제외하고는, 인근에서 모두 경영 지원, 기술 지원, 부품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와 컴퓨터관련 기술이 워낙 빨리 변하기 때문에, 이들 사이에 경쟁이 매우 치열했으며 조금만 방심하면 기술이 낙후되어 퇴출되는 환경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기술 개발에 따라 새로운 시장이 계속 확대되는 플러스 섬 plus sum의 환경이므로, 기술 비밀주의나 비용이 많이 드는 법정 다툼을 하기보다는 약간의 보상을 받으면서 서로에게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도록 허용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지역 내에서 엔지니어와 물자의 잦은 이동을 통해 기술이 금방 상대 기업에게 노출되기 때문에 비밀주의가 통하기 어려웠다. 가격 경쟁보다는 높은 품질과 기술적 우위가 우선적인 고려 사항이었으며, 지역내 인력과 물자의 이동을 통해 전반적으로 기술수준이 높아지고, 향상된 기술의 수익을 모두가 누리는 분위기였다.
반면, 보스턴 지역의 대기업은 모든 기술과 생산을 회사 내에서 소화하려고 했기 때문에 변화의 속도가 느렸다. 시작은 앞섰으나 시간이 갈수록 신기술 개발 속도에서 실리콘 밸리에 뒤쳐지게 되어 도태될 수밖에 없었다. 보스턴의 기업들은 기술 개발 부문을 실리콘 밸리로 이전하여 첨단의 기술 개발 속도에 따라갈려고 하였으나, 최종적 의사결정이 여전히 동부의 대기업 관료의 손에 있었으므로 서부의 민첩하게 움직이는 기술 기업을 따라갈 수 없었다. 예컨대 1960년대에 DEC 는 중형 컴퓨터 분야에서 독보적 지위를 구축했는데, 퍼스널 컴퓨터와 워크스테이션으로 넘어가는 기술 변화의 흐름에 뒤쳐져 1990년대에 결국 망했다.
실리콘 밸리가 보스턴을 따라잡고 1970년대 이래 미국의 전자산업의 중심으로 자리매김을 한 뒤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80년대 중반 이래 메모리 칩이 대량생산의 범용제품이 되면서 실리콘 밸리의 반도체 생산 기업들이 일본의 경쟁에 밀리게 되었다. 대규모의 설비를 투자하여 비용 감축과 효율성을 높이는 대량 생산방식에서 실리콘 밸리 기업들은 일본의 후발주자에게 패했다. 결국 1990년대 들어 메모리 칩 생산을 포기하고 프로세서 칩에 집중하였으며, 소규모의 주문생산이 요구되는 첨단기술이 집적된 칩을 디자인 하고 생산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실리콘 밸리는 기술개발의 동력을 회복하였다.
저자는 동부의 보수적이며 폐쇄적 대기업 문화와 서부의 엔지니어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변화에 민첩한 창업가 문화를 잘 대비하고 있다. 기술 변화가 매우 빠른 반도체와 컴퓨터 분야에서 실리콘 밸리의 엔지니어 기업 네트워크이 얼마나 놀라운 힘을 발휘하는지 잘 보여준다. 관계자 인터뷰, 지역 신문기사, 통계 자료를 조합하여 훌륭한 분석을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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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liam Baumol, Robert Litan, and Carl Schramm. 2007. Good Capitalism, bad capitalism, and the economics of growth and prosperity. Yale University Press.
저자는 경제학자들로, 이 책은 개발도상국과 선진산업국 각각에 대해 경제를 지속적으로 성장시키는 방법을 제시한다. 지속적인 경제 성장은 생산성의 향상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생산성의 향상은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기업가들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따라서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기업가들이 생겨나는 것을 장려하고, 이들이 초기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 혁신을 추진하도록 자극하는 제도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저자는 자본주의를 네가지 형태로 구분한다. 정부 주도형 자본주의 state-guided capitalism, 족벌적 자본주의 oligarchic capitalism, 대기업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big-firm capitalism, 기업가 자본주의 entrepreneurial capitalism. 정부 주도형 자본주의는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 많이 보이는데, 정부가 생산활동의 주요 의사결정자 역할을 한다. 선진국 기술을 모방하는 단계에는 이 모델이 효율성을 발휘할지 모르나, 경제가 기술의 정점 단계에 도달 했을 때 관료적 비효율의 함정 때문에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기업가를 만들어내기 어렵다. 족벌적 자본주의는 중남미, 아프리카, 중동의 개발도상국에서 흔히 보이는 유형이다. 이 모델에서 소수 지배층이 자신들의 이익 보전에만 관심이 있을뿐 경제 발전에는 큰 관심이 없다. 경제 발전은 기득이권 구조의 균열을 가져오기 때문에 새로운 기업 활동을 장려하지 않는다. 대기업이 지배하는 자본주의는 유럽의 대륙국가와 일본에서 보인다. 이 모델에서는 대기업이 경제를 지배하는데, 대기업은 관료적 비효율 때문에 혁신을 만들어 내는데 비효율적이며, 기득권 지위에 안주하려 하기 때문에 혁신을 질식시키는 성향을 보인다. 유럽의 대륙국가와 일본이 1970년대 이래 경제가 정체되고 실업율이 계속 높은 이유는 혁신이 생겨나지 않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기업가 자본주의는 미국에서 보이는데, 혁신이 활발히 진행되며, 혁신 기업이 낳는 생산성 향상이 경제 전체에 파급되면서 지속적 경제성장을 이끌고 있다.
기업가 자본주의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네가지 필요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첫째, 기업을 만드는 것이 쉽고 빨라야 한다. 기업을 세우는데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든다면, 좋은 아이디어가 기업 활동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개발도상국으로 내려갈수록 기업을 세우는데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든다. 기업을 세우는 것과 연관된 몇가지 부대 조건으로, 사업이 실패할 때 합리적으로 파산할 수있어야 하며, 금융기관의 사업 자금을 조달하는 역할이 비교적 잘 작동해야 하며, 노동자를 고용하고 해고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용이해야 한다. 둘째, 기업가의 성공에 대한 보상이 사회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재산권의 보호와 법에 의한 계약의 강제가 이루어져야 한다. 셋째 기업가의 활동을 저해하는 부정한 행위가 금지되어야 한다. 아이디어의 생산적 활용을 통해 경제 규모를 키우는 방향이 아니라, 기존의 경제 파이를 빼앗는 방향으로 사람들의 재능이 흐르지 않도록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범죄는 물론이고, 소송과 로비를 통해 제로섬의 다툼을 벌려 큰 이익을 얻게 된다면 사람들은 힘들여 새로운 아이디어를 짜내서 생산으로 연결시키려 하지 않을 것이다. 넷째는 경쟁이 계속 지속될 수 있게 해야 한다. 기존의 성공에 안주하여 오래도록 독점적 이익을 향유하면 혁신은 질식된다. 반독점법이 실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고, 무엇보다 무역과 해외투자를 개방하여 외부로부터의 경쟁에 항시 노출되도록 해야 한다.
기업가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다. 기존의 방식을 답습하면서 사업을 하는 기업 repetitive entrepreneur 과, 기존에 없는 새로운 방법을 도모하여 생산성 향상을 거두는 기업 inovative entrepreneur 가 그것이다. 전자는 단순히 물량을 많이 투입하는 것이지 생산성 향상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므로, 경제 전체로 볼 때 성장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계생산 체감의 법칙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혁신적인 방법을 개발하는 데에는 소규모 기업가가 강점이 있으나, 이들이 개발한 것을 다듬어서 대량생산 체제로 연결시키는데에는 대규모 기업이 강점이 있다. 따라서 소규모의 혁신 기업과 대기업이 적절히 조합된 체제가 경제 전체로 볼 때 생산성 향상을 가장 크게 거둘 수 있다.
유럽의 대륙국가와 일본이 대기업 중심의 체제가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들 정부가 대기업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과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또한 은행이 기업과 밀착한 관계를 형성하면서 새로운 기업이 시장에 진입하기 어려운 환경을 조성하였다. 대기업이 지배한 결과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와서 생산으로 연결되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되었으며, 채용과 해고가 어려운 경직된 노동시장이 자리잡았다.
새로운 방법을 도모하는 혁신 기업이 많이 생겨야 생산성 향상이 이루어질 수있으므로, 유럽과 일본이 지난 수십년간의 정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 경직된 노동시장을 완화하고, 신규 진입이 용이하도록 규제를 과감하게 폐지해야 한다. 노동을 포함한 전반적 규제를 일시에 폐지하는 것은, 기존 제도의 수혜자로부터 극심한 반발을 초래하기 때문에 개혁이 좌절될 것이다. 저자는 주변으로부터 점차적으로 개선할 것을 제안한다. 예컨대 지금부터 신규로 설립된 회사에 대해서는 완화된 규제 조항을 적용하는 방식이다.
요컨대 혁신 기업 활동이 활발하게 되기 위해서는, 신규 기업의 진입과 퇴출이 용이하고 인센티브가 살아있는 제도 환경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아무리 교육 시스템이 잘 되어 있다고 해도, 교육 기관에서 배출된 유능한 인재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짜내고 이를 생산으로 연결시킴으로서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지 않다면 허사이다. 정부가 지도하여 새로운 혁신을 가져오는 것은 가능하지 않은 일이며, 시장의 힘이 잘 작동하는, 즉 능력있는 개인의 역량이 잘 발휘될 수있는 제도적 환경을 만드는 것이 최선이다.
이 책은 미국이 어떻게 1970~80년대의 부진을 씻고 1990년대 중반 이래 놀라운 성장을 이룩하게 되었는지를 잘 설명한다. 저자는 경쟁이 잘 살아있을 때, 즉 모든 사람들이 기득 이권에 안주하지 않고 긴장해서 살아갈 때 경제가 지속해서 성장할 수 있다고 말한다. 유럽과 일본이 정체되고 활력이 떨어진 이유를, 바로 그들이 풍요에 안주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적절한 진단이다. 지난 세기 전체를 걸쳐 미국의 꾸준한 혁신과 생산성 향상은 정말 놀랍다. 미국 사회의 문제점을 경시할 수는 없지만, 다른 어느 선진국도 따라오지 못하는 미국 체제의 강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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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Buss. 2019. Evolutionary Psychology: The New Science of the Mind. Routledge. 402 pages.
저자는 진화심리학자이며, 이 책은 진화심리학의 대학 교재로 집필되었다. 적응과 번식이라는 진화적 과제에 대응하기 위해 인간의 심리가 발달하였다는 명제를 뒷받침하는 기존의 모든 연구를 망라하여 소개한다.
진화 심리학은 인간 심리에 대해 기존의 심리학의 분과 학문과는 다른 설명을 제시한다. 인지 심리학이 인간의 보편적인 인지 구조를 전제로 한다면, 진화 심리학은 적응과 번식의 문제 영역에 따라 상이한 인지 구조를 주장한다. 식량을 획득하는 분야, 위험을 탐지하고 회피하는 분야, 짝을 찾는 분야, 등 각각의 분야에 맞추어 상이한 인지 구조가 마련되어 있다. 인간의 대상 인지와 기억, 문제 해결 능력, 언어 능력, 지능, 등이 보편적인 규칙에 따라 작동되는 것이 아니라, 각 문제 분야에 따라 다르게 설정되어 있다.
인간의 사회 관계에 적용되는 심리 기제 역시 적응과 번식이라는 문제에 맞추어 발달되었다. 인간의 도덕 감정이 대표적 예이다. 규칙을 어기는 사람에게 도적적 분노가 퍼부어지는 이유는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 함으로서 인간의 집단적 생존에 해가 되는 행위를 막기 위해 발달한 것이다.
인간의 발달 단계에 따라 상이하게 심리적 성숙이 이루어지는 것은 발달 단계에 따라 해결해야 할 적응과 번식의 문제가 상이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행위와 심리를 진화적 관점에서 설명하는 접근은 개인의 차이를 설명하는 데 어려움이 있지만, 개인의 성격의 차이를 상이한 환경에 적응하고 번식하기 위해 개인이 택하는 전략의 차이로 설명할 수 있다. 불안정한 성격과 무책임한 성적 방종을 일삼는 성격은 불안정한 성장 과정과 불리한 환경에서 생존과 번식을 위해 가장 이익이 되는 전략이기 때문에 발달한 것이다. 심리적 부적응과 심리적 일탈이라고 칭하는 문제들도 당사자에게는 현실적으로 가장 이익이 되는 적응일 수있다. 예컨대 실패에 부닥뜨려 의기소침하고 우울증에 빠지는 것은 불리한 현실에서 에너지를 절약하고 추후의 기회를 노리는 현실적 방책이다.
진화적 관점에서 인간의 행위와 심리를 설명한다면, 심리학의 다양한 분과나 사회과학의 다양한 주제들이 일관되게 설명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거시이론인 진화론이 구체적 문제를 모두 설명해주지는 못하겠지만, 인간 세계의 많은 현상을 진화론으로 아우르는 것은 유망한 접근임에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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