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Bradford DeLong. 2022. Slouching Toward Utopia. Basic Books. 536 pages.
저자는 경제학자이며, 이 책은 1870년에서 2010년까지 서구,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한 경제사를 서술한다.
1870년대는 맬더스의 주장, 즉 생산성의 증가가 인구 증가를 앞지를 수 없기 때문에, 인류는 빈곤과 비참속에서 간신히 생존을 지속하는 삶을 영위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주장이 틀리게 된 시점이다. 인류는 조직적 연구를 통한 기술 발전 (research and technology)과 대규모 경영 조직(large corporation)의 주도 덕분에 생산성 증가가 인구 증가를 앞서게 되었으며, 이후 생존 수준을 넘어선 풍요를 구가하게 되었다.
1870년 이래 엄청난 부의 창출을 이끈 또 다른 요인은 자본주의 시장 경제이다. 시장은 모든 참여자의 아이디어를 모으는 (crowdsourcing) 기제이며, 다른 어느 체제보다도 효율적으로 자원을 배분하는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인류가 이전에는 보지 못한 규모의 부를 만들어 내었다. 자본주의 경제는 전체 부의 규모는 크게 높이지만 분배의 문제는 잘 해결하지 못하는약점을 안고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시장 가치를 최고의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인간의 다른 여러 욕구와 권리를 잘 반영하지 못한다. 시장이 인간을 위해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시장을 위해 기능하는 주객 전도 현상을 초래하였다. 칼 폴라니는 사람들은 공동체에 대한 욕구, 자신의 능력에 맞는 일을 할 권리, 인간적으로 취급될 권리 등, 시장 가치로 평가되기 어려운 욕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이 추구하는 유토피아는 칼 폴라니가 주장하는 그러한 가치와 권리가 모든 사람에게 보장되는 사회이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만들어낸 분배 체계는 갈등을 초래하며 때때로 대공황과 같은 혼란을 겪게 된다.
1870년에서 1차대전이 발발한 1914년까지 서구의 경제는 엄청난 부를 창출하였으나, 자체의 모순 때문에 큰 전쟁과 대공황을 겪었다. 대공황을 거치면서 서구 자본주의는 사회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하고 시장의 문제를 어느 정도 완화시켰다. 사회보장제도, 정부의 개입에 의한 시장 조정, 정부 재정을 통한 경기 변동의 완화, 등 케인즈의 경제학은 서구 자본주의의 핵심으로 편입되었다. 그 결과 1945년 이차대전 종전 이래 1970년대 초반까지 약 30년간 서구 경제는 다시 엄청난 풍요의 시대를 맞았다.
1970년대에 중동발 자원민족주의의 충격파는 서구 경제를 심각한 침체로 몰아 넣었다. 미국 경제는 1980년대 산업 구조 조정과 신자유주의적 시장 경제 강화 정책에 힘입어 다시 회복했으며, 1990년대에 정보통신기술과 콘테이너 운송 기술 발달이 가져온 세계화의 선두에서 생산성 혁신을 이끌면서 다시 엄청난 부를 만들게 되었다. 그러나 세계화로 형성된 국제분업체계는 고부가가치 분야를 서구 특히 미국이 독식하면서, 세계의 부가 선진국의 소수에게 집중하는 경향을 심화시켰다. 개발도상국들 또한 세계화가 만들어낸 국제분업체계에 편입되어 혜택을 보게 되면서, 세계의 빈곤인구는 놀랄만한 속도로 줄어들었다.
21세기에 들어 세계는 유토피아로 나아가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저자는 아니다 라고 뚜렷이 말한다. 자본주의 경제는 부를 만들어내는 능하지만, 인간의 다양한 욕구와 권리를 충족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한편 분배 문제에서 강점을 보인 사회민주주의 체제는 1990년대 이래 지속적으로 부를 만들어내는 데 실패하여 신자유주의에 의해 대체되었다. 세계 경제의 부를 계속 증가시키면서 어떻게 모든 사람들의 다양한 욕구를 효과적으로 충족시킬지 하는 질문에 대해, 인류는 아직 뚜렷한 답을 찾지 못했다.
이 책은 경제학자의 관점에서 20세기의 변화를 검토한다는 면에서 역사학자의 경제 변화에 대한 서술과는 확실히 결이 다르다. 저자는 자신의 리버럴한 입장을 서술의 곳곳에서 많이 표출하고 있다. 약간 냉소적이며 비유적인 표현을 많이 쓰기 때문에, 저자가 뚜렷이 무엇을 이야기 하는지 불확실한 문구가 많다. 읽기 쉬운 책은 아니며, 혹시나 하고 끝까지 참고 읽었지만 별반 통찰력을 얻지 못했다. 저자는 칼 폴라니를 추종하는데, 어떻게 세계 경제가 칼 폴라니가 제시하는 대로 발전할 수 있을지에 대해 전혀 아이디어가 없다. 세계 경제가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는지 저자 스스로 자신도 잘 모르겠다고 솔직히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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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K 식물 편집위원회 (박원순 옮김). 2020. 식물 대백과사전. 사이언스 북스. 343쪽.
이 책은 도판으로 구성된 백과사전으로 식물의 다양한 측면을 그림과 함께 서술한다. 식물계, 뿌리, 줄기와 가지, 잎, 꽃, 씨앗과 열매로 장을 구분하여 제시한다. 식물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 보다는 다채로운 그림이 이 책의 핵심이다. 다양하고 기이한 식물들의 사진과 그림을 보면서 눈이 호사하는 느낌이 든다. 자연이 만든 생명체의 다양성에 새삼 감탄한다. 어린 시절에 백과사전을 읽으며 홀로 많은 시간을 보냈던 기억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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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in De Haas. 2023. How Migration Really Works: the facts about the most divisive issue in politics. Basic Books. 372 pages.
저자는 네덜란드의 사회학자로 이민문제 전문가이다. 이책은 이민 문제를 둘러싼 논쟁에서 흔히 제기되는 주장을 반박하면서, 객관적인 데이타를 사용하여 이민 문제의 실상을 밝힌다.
국제 이민이 근래에 폭증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지난 반세기 동안 국제 이민자의 절대수는 증가했으나, 인구 비율로 볼 때에는 전체 인구의 3% 부근에서 매우 안정적이다. 이민자의 대부분은 언어와 문화가 유사한 같은 지역 내에서 이동하며, 가난한 나라에서 선진국으로 이동하는 인구는 상대적으로 매우 소수이다. 근래에 선진산업국에서 불법이민자들이 폭증했다고 대중영합 정치인들이 주장하면서 대중을 선동하는 것은 그들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얻기 위함이지, 실제 불법 이민자들이 폭증했기 때문은 아니다. 시민단체나 매스컴 역시, 불법 이민자들의 고통과 폭증을 자극적인 말과 이미지를 사용하면서 크게 부각시키는데, 이 역시 그들 자신의 이익, 즉 대중의 지원과 관심을 끌기 위한 것이다.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에 소득 격차가 엄청남에도 매우 적은 수의 사람들만 이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이 익숙한 환경에서 계속 살려고 한다. 국경을 넘어 먼거리를 이동하는데에는 물질적 정신적으로 큰 투자가 필요하다. 국경을 넘어 이주하는 모험을 감행할 때 치러야 할 재정적 비용이나 신체적 위험은 엄청나며, 설사 목적지에 도착해도 낮선 환경에서 주변의 차별과 무시와 외로움을 버텨내며 지내는 것은 엄청난 시련이다. 국경을 넘어 이주를 감행하는 사람들은 출신 국가에서 상대적으로 재력이 있고, 교육 수준이 높으며, 정신적으로 강인한 사람들이 오랜 고민과 계획 후에 신중하게 실행에 옮긴다. 이민자의 대부분은 극빈한 나라가 아닌 어느 정도 소득과 교육 수준이 되는 개도국, 예컨대 멕시코,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등 국가 출신이다. 재해, 빈곤, 전쟁 등의 이유로 고향을 떠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같은 나라 내에서 이웃 지역이나 시골에서 도시로 이동하는 데에 만족한다.
큰 비용과 위험을 무릅쓰고 선진국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은 뚜렷한 이유가 있다. 선진국에서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것이 자신의 나라에 머무는 것보다 자신과 자신의 가족의 미래, 즉 지위를 상승시키는 데 훨씬 낫기 때문이다. 선진국에서 일할 기회가 적으면 이동하지 않는다. 선진국의 경기와 이민자의 수는 함께 움직인다. 이민자들의 거의 대부분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움직인 사람들이다. 불법 이민자들은 극심하게 착취당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선진국 사람들의 시각에서 보는 것일 뿐, 가난한 나라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이동 중에 착취당하고 도착해서 낮은 임금과 비인간적 노동조건으로 착취를 당하더라도, 그것이 자신의 나라에 머무는 것보다 나은 선택이기 때문에 그리한다.
선진국에서 얻는 일자리와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이라는 유인이 존재하는 한, 아무리 국경 장벽을 높이 세워도 불법 이민자의 유입을 막을 수 없다. 선진 산업국은 노령화, 교육수준의 상승, 여성의 노동 참여 확대, 소득 수준의 상승, 등의 요인 때문에 개인 서비스 수요가 갈수록 높아지는 반면, 소위 3d 업종, 즉 더럽고 힘들고 낮은 임금의 노동을 하려는 사람은 내국인 중에 거의 없다. 내국인은 차라리 놀면서 정부의 보조금을 받을 지언정, 그렇게 열악한 지위의 일자리를 맡으려고 하지 않는다. 이민자들이 없다면 다양한 개인서비스나, 농업 노동의 수요를 채울 수가 없다. 따라서 정치인들은 말로는 불법 이민자를 막겠다고 하지만, 막상 불법 이민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고용주를 처벌하는 조치는, 법에서 규정하고 있음에도, 실행에 옮기지 않는다. 미국 전체에서 불법 이민자를 고용한 고용주를 처벌한 사례가 일년에 10~30건에 불과하다는 통계가 이를 실증한다.
진보 혹은 보수 성향의 어느 쪽이 정부를 장악하던 이민자에 대한 실제 정책의 차이는 거의 없다. 노동시장의 수요와 합법 이민자의 규모 사이에 괴리가 있는 한, 그 간극을 불법 이민자가 채우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선진국에서 이민 노동자의 수요가 크기 때문에, 사실 이민자의 90%는 합법 이민자이며, 10%만이 불법 이민자이다. 불법 이민자의 대분은 합법적으로 입국하여 비자 기한을 넘기는 등의 방편으로 불법 이민자가 된 경우가 다수이므로, 국경을 막는데 엄청난 돈을 들이는 것은, 보안 산업의 배만 불리는 결과를 초래할 뿐, 실제 별 효과가 없다. 국경을 넘는 것을 어렵게 만들수록, 불법 이민자가 치르는 재정적 신체적 희생이 커질 뿐이다.
정부의 이민 정책은 일관적일 수 없다. 왜냐하면 보수당과 진보당 모두, 각각 자신의 지지층 내에 이민에 대해 서로 다른 이익을 가진 집단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보수당 지지자 중 기업가와 부자는 이민의 문호를 확대하기를 원하는 반면, 인종 민족 정체성을 지키고 보수적 가치를 옹호하는 사람은 이민을 줄이기를 원한다. 진보당 지지자 중, 노동자들은 이민자가 확대되는 것을 반대하나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은 이민이 확대되어 인간적으로 핍박받는 개도국 사람을 돕고 사회의 다양성이 높아지기를 원한다. 따라서 선진국 정부가 제시하는 이민 정책은 수시로 바뀌며, 실제 문제를 정면으로 부딛치기보다, 국민들에게 내세우는 인상을 중요시하고 피상적인 접근에 머무른다.
일반인들의 이민자에 대한 태도 또한 일관적이지 않다. 선진국의 일반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이나 핍박받는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밑에 깔고 있으며, 실제 주위에서 이민자들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보고 그들에 대해 우호적인 감정을 가진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민자들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하고 저임금으로 파고 들어오면서 노동시장의 상황이 열악해지는 것을 염려한다. 많은 사람은 이민자들이 식당 뒤에서 일하며, 노약자를 돌보고, 아이를 돌보고, 청소하고, 정원 관리하는 것을 일상에서 항시 경험하면서 그런 일을 도맡아 하는 이민자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불법 이민을 막는 것에는 찬성하지만 합법적인 이민자의 유입까지 막는 것은 반대한다. 국경은 엄격히 관리되어야 하지만, 선진국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젊고 열심히 일하는 노동력은 어느 정도 규모로 계속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상이 위와 같다면, 근래에 "이민의 위기" immigration crisis 라고 외치면서, 이 문제에 대해 긴급히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하는 정치인, 미디어, 시민단체의 주장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저자는 이민 문제의 사실을 정확히 이해시키는 것이 일차적 목표일뿐,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할 의향은 없다고 말한다. 선진국 사람들이 높은 물가, 낮은 성장율, 낮은 삶의 수준을 감내할 각오가 되어 있지 않다면, 이민자의 유입을 막는 어떤 방안도 효과를 볼 수 없다. 낮은 임금, 열악한 노동 조건의 일자리 덕분에 선진국 사람들은 큰 혜택을 보고 있으며, 저소득 국가 출신의 이민자들 또한 이익을 얻고 있다. 이러한 이익이 맞아 떨어지는 한 이민자는 존재할 것이고, 만약 이들의 이동을 막으려 한다면, 이민자들의 희생만 커질 뿐이다.
국경을 완전히 개방하여 사람들을 자유롭게 왕래하도록 하는 방안 또한 현실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선진국에서 이민자로 인한 이익은 중상류층에게 주로 몰려있는 반면, 노동계층은 상대적으로 큰 이익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 계층이 이민자가 주위에 넘쳐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국경의 완전한 개방은 정치적으로 현실화되기 어렵다. 선진국 국민이 합의하는 수준에서 합의하는 규모 만큼의 이민자를 합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최상의 정책으로 보인다. 내국인은 일하고 싶어하지 않지만 반드시 채워져야 할 일자리를 합법적으로 유입된 이민자가 채우도록 하는 정책이다. 만일 그렇게 하면 개도국 이민자가 지나치게 많아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대해, 저자는 일자리가 없다면 이민자이 들어오려 하지 않을 것이고, 이미 들어와 있는 사람들은 본국으로 돌아가는 "순환이동" circular movement 현상이 나타날 것이기 때문에 큰 문제 없으리라고 본다. 정치인들은 이민의 실상에 대해 솔직하게 국민을 이해시키면서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 현재와 같이 위선적으로 말과 행동이 불일치하는 정치는. 이민자의 고통을 가중시킬 뿐이다.
이 책은 저자의 30년간의 연구가 집약된 결과 답게 논의가 분명하다. 저자의 연구의 깊이가 느껴지는 책이다. 다만 맨 뒤편에 정책을 제시하는 부분에서는 모호한 서술이 보인다. 이민은 사회변화의 일부이므로, 사회변화 전체의 맥락에서 이민을 바라보아야 하고, 이민에 대한 접근 또한 보편적인 노동의 문제로 취급해야 한다는 주장은 사회학자의 냄세를 풍긴다. 여하간 서술이 명료하고 솔직한 인상을 풍기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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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rt Tignor, et al. 2011. Worlds Together, Worlds Apart, book 1. 3rd ed. W.W. Norton. 361 pages.
이 책은 대학의 세계사 교과서이다. 각 지역과 국가를 따로 취급하는 전통적인 역사 서술과 달리, 전세계를 포괄하여 세계의 변화를 큰 그림으로 다룬다. 인류의 발생에서 서기 1,000년까지를 1권으로, 1,000년부터 현재까지를 2권으로 나누어 제본하였다. 2권은 앞서 읽었고, 이어서 1권을 마져 읽었다.
서기 1,000년 이전 역사에서 특징적인 점은, 세계의 역사의 주도권이 이슬람과 중국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리스 로마 제국은 이후 서구 문명으로 크게 꽃피웠으나, 서기 1,000년까지 세계사 전체에서 볼 때, 규모 면에서 이슬람이나 중국에 크게 못미친다.
분절화된 여러 정치 체제간 경쟁에서 서구 사회 발전의 동력을 찾는다. 서구와 달리 이슬람과 중국은 일찌감치 강력한 중앙집권 정치 체제가 자리를 잡았다. 특히 중국의 경우 왕조가 바뀔 때마다 분열의 시기가 있었으나, 이를 혼란기로 인식하고 다시 통일해야 한다는 의식이 중국인 사이에 강력했기 때문에, 여러 조각의 정치체로 나누어진 상태를 정상으로 생각한 서구와는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정착하여 농사짓는 생산 방식의 높은 생산력 덕분에 인구가 늘고 물질 문명이 발전하였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 전개에서 계속 이동하는 유목민의 역할은 매우 크다. 유목민은 말, 무기 제조, 전쟁기술에서 정착 농민을 크게 앞섰기 때문에, 유럽, 이슬람, 인도 사회의 기존 농업 사회를 정복하고 지배 집단으로 군림하면서, 그들의 입맛에 맞는 계층체계와 규범을 만들어 냈다. 그들은 전쟁과 정복, 요컨대 타인에 대한 폭력 행사를 삶의 수단으로 삼았는데, 이들이 바로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지배집단의 선조이다. 반면 정착 농업인들은 유목민 지배자 집단의 밑에서 실제 생산을 담당하는 다수의 민중을 구성하였다.
서유럽 사회가 근대에 들어 세계의 다른 어느 지역보다 번성하고 세계를 제패하리라는 사실은, 1500년 이전까지 누구도 예상하기 힘들었다. 로마 제국을 이어받은 정치체는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서로마가 아니라, 콘스타티노플을 중심으로 한 동로마였다. 그리스 정교회 Authodox Church 의 명칭에서도 드러나듯이 비잔티움을 잇는 동로마 제국이 로마 제국의 정통 후손이다.
종교는 사회를 구성하고 움직이는 중요한 바탕이다. 서유럽에서는 종교가 정치를 지배하였던 반면, 이슬람은 종교와 정치가 한몸이었으며, 동아시아에서는 정치가 종교를 지배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그결과 서구나 이슬람에서는 종교가 매우 중요한 반면, 동아시아에서는 세속적인 세계관이 지배하고 종교는 부수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 책은 서구 유럽 중심의 세계관을 벗어나, 세계를 전체적인 시각에서 공평하게 검토한다. 서기 1,000년까지 서구 유럽은 변방에 위치한 야만의 지역이기에 별반 언급되지 않는다. 그리스 시대와 로마 제국 또한 이슬람이나 중국과 비교할 때 빛이 바래는 느낌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앞으로 1,000년 후에 세계를 주도하는 집단이 현재와는 다르리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아메리카와 아프리카까지를 고르게 커버하는 세계의 역사를 읽다보면 기억의 용량에 무리가 가는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여하간 유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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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다 하루키. (김동연 옮김). 2022. 80세의 벽. 한스 미디어. 221쪽.
저자는 정신과 전문의로 30여년 동안 노인전문병원에서 일했으며, 본인의 나이를 61세라고 밝힌다. 이 책은 본인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80세를 넘긴 노인들의 건강, 생활 태도, 삶의 방식 등에 대해, 문제점과 바람직한 방향을 가벼운 에세이 형식으로 서술한다.
80세 노인이 되면 젊은이를 치료하는 서구 의학 방식은 잘 듣지 않는다. 반드시 건강검진을 받을 필요는 없으며, 자신의 몸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약이나 치료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 장수하는 약은 없으며, 약은 몸이 좋지 않을 때만 먹으면 된다. 고혈압, 고혈당, 고콜레스테롤이라는 노인병 삼대 질환에 대해, 저자는 과도하게 혈압을 낮추거나, 혈당을 낮추거나,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려고 하는 것은 80대 노인에게는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젊은 사람들의 몸에 맞춘 기준치는 80대 노인에게는 적용될 수 없다. 혈압을 과도하게 낮추면 기력과 면역력이 떨어지고, 혈당을 과도하게 낮추면 인지 기능이 저하하고 치매의 위험이 높아지며, 콜레스테롤 수치를 과도하게 낮추면 기분과 정력이 악화한다. 득보다 실이 더 많은 것이다. 미국 노인은 심혈성 질환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일본 노인은 암과 노쇠로 대부분 사망한다. 서양 노인을 기준으로 하여 개발된 치료 방식이 일본 노인의 경우에는 부적합한 경우가 많다. 80세가 넘으면 대부분의 사람의 몸에는 암세포가 존재하며, 인지기능의 저하로 어느 정도 치매가 진행되고 있다. 노인들은 자신의 몸이 젊은 때와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고 젊은 때와는 다른 자세로 삶에 임해야 한다. '투병'이 아니라 병과 함께 사는 방식을 익혀야 한다. 그런 점에서 많은 의사나 병원의 현행 접근 방식은 그릇되므로, 환자 본인이 잘 가려서 따라야 한다.
80세가 넘으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미루지 말고 당장 하고,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지 않아야 한다. 나이가 들면 감동이 옅어지는데, 이는 호르몬의 영향도 있지만, 노인은 경험이 많기 때문에 웬만한 일은 이미 친숙하여 감동되지 않는다. 다양한 경험을 하려 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데도 노인이 되었다고 포기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특히 운전을 하고 돌아다닐 수 있는데, 노인이라고 운전면허를 반납하는 것은 절대 반대이다.
인간의 몸과 마음은 계속 써야 제대로 작동한다.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몸을 계속 움직이고, 머리를 계속 쓰는 생활을 게을리하면 곧 쇠하여 죽는다. 몸에 맞는 정도로 많이 걷고, 흥미로운 일을 찾아서 하고, 사람들과 교류하는 생활을 지속해야 한다. 귀찮다고 안움직이고, 텔레비젼만 보고,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빨리 기능이 쇠퇴한다. 어떻든 인간은 결국 늙고 쇠하여 죽는 것이므로, 80세가 넘으면 '잔존 기능'을 잘 활용하여 잘 사는 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젊을 때와 같이 굳은 결심이나 노력을 많이 기울여서 한결같이 무엇을 추구하는 방식의 삶은 80대 노인에게 적합하지 않다. 악착같이 보람을 찾으려고 하며 살 것이 아니라, 살다가 보람을 찾으면 다행이고 아니면 말고 하는 태도로 살아야 한다. 몸과 마음이 변하고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수시로 생각과 진로를 바꾸는 것을 꺼리지 말아야 한다. 주위의 눈에 크게 개의치 말고, 생긴대로 마음가는 대로 산다고 해도, 80대에는 젊은이와 달리 무엇을 해도 크게 사고칠 위험이 적으므로, '불량 노인'이라고 치부하면서 자신에게 적당히 관대하게 사는 것이 좋다. 많은 경험을 뒤로 하고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 있는 80대 노인은, 느슨하게 사는 삶이 주는 즐거음과 특권을 누려도 사람들이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도서관에서 쉬는 시간에 문득 주변에 손에 잡혀 읽은 책인데, 삼십분만에 단숨에 흥미롭게 읽었다. 80대 노인 뿐만 아니라 절은이들에게도 생각할 거리를 주는 책이다. 책의 부제가 "벽을 넘어서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20년이 기다린다"고 썼는데, 과연 그럴까? 젊은이를 대상으로 한 책에서 써야 할 말인 듯 싶다. 여하간 저자의 경륜과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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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onard Mlodinow. 2018. Elastic, Unlocking your brain's ability to embrace change. Vintage books. 220 pages.
저자는 물리학자이면서 과학저술, 과학저널리즘, SF 드라마 극작가 등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이 책은 인간의 비체계적인, 유연한 사고 작용에 촛점을 맞추어 인간의 사고, 즉 생각하는 활동에 관해 이야기한다.
인간은 크게 두가지 방식으로 생각한다. 하나는 체계적, 논리적, 분석적 사고 작용으로 하향 top-down 방식으로 전개된다. 다른 하나는 비체계적, 종합적, 즉흥적, 창조적인 사고 작용으로 상향 bottom-up 방식으로 전개된다. 전자는 당면한 주제에 촛점을 맞추고 엄격히 통제된 방식의 사고인 반면, 후자는 비통제적이고 산반한 방식의 사고이다. 정확히 정의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전자의 방식이 유용한 반면, 전에 없던 새로운 상황과 문제에 대처하는 데에는 후자의 방식이 유용하다.
인간 두뇌의 좌반구와 우반구는 작동 방식이 다르다. 좌반구는 논리적 분석적 사고에 능한 반면, 우반구는 비체계적 즉흥적 사고에 능하다. 우반구는 감정과 동기화를 담당하는데, 어떤 행위를 왜 하고 싶고 해야 하는지에 대한 동기를 제공한다. 좌반구는 어떤 문제에 대해 합리적이고 전형적인 답을 제시하는 반면, 우반구는 비논리적이고 비실용적이지만 다양하고 새로운 답을 제시한다. 인간의 두뇌는 좌반구와 우반구가 제시하는 다른 성격의 답들 중에서 취사선택, 종합하여 최종적인 답을 의식에 떠오르게 한다. 이 과정에서 우반구가 만들어 내는 비논리적이고 상식과 규범에서 벗어나는 답들은 거른다. 유연한 사고, 창조적인 사고는, 바로 이러한 두뇌의 거르는 과정 filtering 을 억제하는 데 있다.
유연한 사고는 구체적인 문제에 집중하지 않고 이완된 상태에서만 작동한다. 이완된 상태에서 작동하는 사고 작용은 인간의 두뇌의 기본 작동 양식 default mode of thinking 이다. 릴랙스하고 있을 때에도 우리 뇌는 활발하게 움직이는데, 구체적인 문제에 촛점을 맞추어 생각할 때와 작동 방식이 다른 것이다. 산보를 할 때, 샤워를 할 때, 꿀잠을 잘 때, 음악을 듣거나 바깥 경치를 보면서 편안히 휴식을 하고 있을 때가 바로 이 디폴트 모드가 작동할 때이다. 이렇게 이완된 상태에서 문득 그동안 집중적으로 생각했으나 풀리지 않던 문제에 대한 해답이 떠오른다. 우뇌에 대한 좌뇌의 filtering 기제가 약화되고, 우뇌의 유연한 사고가 자유롭게 작동하고, 관점의 전환이나 지금까지 생각지 못한 다양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유연한 사고를 촉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명상하기, 자신을 새로운 환경에 처하도록 해보기, 다른 의견의 사람과 토론하기, 마음을 이완시키는 약물, 술 등을 섭취하기, 등을 통해, 유연한 사고를 기를 수 있다. 유연한 사고를 촉진하려면, 엉뚱한 발상을 억압하거나 실패를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엉뚱한 발상과 실패를 거듭하는 과정 속에서만, 성공적인 아이디어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과학 저널리즘에 가까운 책이다. 다양한 기존 연구를 꿰어 맞추고 유머를 곁들이면서 흥미롭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술술 읽어 내려간다. 평이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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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타 카터 (장성준, 강병철 옮김). 2020(2019). 인간의 뇌. 김영사. 249쪽.
저자는 의학 저널리스트이며, 이 책은 뇌의 구조와 기능, 뇌질환에 관해 그림과 함께 상세한 설명을 덧붙인 도감이다. 뇌에 관한 거의 모든 지식을 총망라하고 있다. 뇌 해부학, 감각, 운동과 조절, 감정, 사회적 뇌, 언어와 의사소통, 기억, 사고, 의식, 뇌의 발달과 노화, 뇌질환 등으로 찹터를 나누어 설명한다.
도감답게 뇌의 구조와 기능에 대한 fmri 사진이 해설과 함께 많이 붙어 있지만, 이러한 사진들이 뇌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지는 못한다. 본문의 서술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은 "알지 못한다", "분명치 않다" 등 이다. 과학계가 뇌에 대해 대략적으로 이해하고 있지만, 인간의 다른 기관과 달리 아직 초보적인 수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여하간, 그림이 없이 글로만 된 책을 읽을 때 보다 이해가 조금은 향상되는 듯하다. 일반 독자를 위한 책이기는 하지만, 해설의 수준은 상당히 전문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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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Krugman, Maurice Obstfeld, and Marc Melitz. 2012. International Economics, Theory and Policy. 9th ed. Pearson. 690 pages.
저자는 노벨 경제학 수상자로, 이 책은 국제경제학 분야의 대표적인 교과서이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문, 즉 무역 부문과 환율과 거시경제 부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부문은 다시 이론적 논의 분야와 정책 분야로 나뉘어져 있다. 이론적 설명이 때로 어렵지만, 현실로부터 다양한 사례를 가져와서 설명하기 때문에, 국제경제의 현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이해하는 데 실제로 도움이 된다.
무역 부분은 상대적으로 이해가 쉬우나, 환율과 거시경제 부분은 실물 부문보다 훨씬 복잡하여 이해가 쉽지 않았다. 결국 무역 부분만 꼼꼼히 읽고 이해한 반면, 환율과 거시경제 부문은 앞부문과 달리 제대로 읽지도 이해하지도 못했다 (무역부문을 읽느라 진이 빠져, 환율과 거시경제 부문을 읽으면서는 집중을 하기 어려워서 일 수도 있다). 평소에 이코노미스트 등 경제 기사를 읽으면서 대강 알고 있던 사항을, 이 책을 읽으면서 이론적으로 보다 정확히 이해하게 되었다. 많은 연구와 통찰력이 집약된 대단한 교과서라고 감탄하며 읽었다. 나중에 여력이 나면, 환율과 거시경제에 관해 다른 쉬운 책을 먼저 읽고, 이책을 다시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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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겐고 (이정환 옮김). 2020. 구마 겐고, 건축을 말하다. 나무생각. 291쪽.
저자는 일본의 건축가이며, 이 책은 자신이 어떻게 건축가로 성장했으며, 무슨 철학을 가지고 있는지 서술한다.
저자는 도꾜 외곽에 농촌과 도시의 변경 지역에서 성장했다. 어린 시절 이웃에 숲으로 둘러쌓인 전통적인 농가 주택에서 자주 놀았으며, 나무 블록을 쌓아서 만드는 놀이를 즐겼으며, 아버지와 함께 밭에 딸린 조그만 집을 조금씩 고쳐짓는 경험 속에서 자연과 인간에 친근한 거주 공간를 선호하는 성향이 만들어졌다. 그는 고등학교 때 오사카 만국 박람회에 가서 건축물을 보고 강렬한 인상을 받았으며, 이를 계기로 건축가가 되겠다는 꿈을 꾸었다.
서구에서는 19세기 중후반 고도의 산업 성장과 과학기술의 진보 속에서 모더니즘 Modernism이 지배하였다. 모더니즘은 근면과 계획, 효율, 기계화, 대규모, 진보를 숭앙하는 가치관이다. 그러나 19세기말 20세기초에 물질문명에 반발하는 반모더니즘의 세계관이 등장하였다. 일본은 1970년대에 전후 고도 성장이 끝나고 오일쇼크를 거치면서 미래에 대한 낙관이 퇴조하였다. 저자는 이러한 시점에 성인기에 진입하면서 반모더니즘의 세계관을 내재화하였다. 저자는 대학교 학생 시절부터 기존 건축계의 주류였던 모더니즘 사조에 반대하는 태도를 취했다. 대학원을 졸업한 후 그는 일본의 전통과 서구의 현대를 접목하는 새로운 양식의 건축을 지향해왔다.
유토피아란 존재하지 않으며, 사람들은 현실에 두발을 딛고, 일상에서 수시로 닥치는 일들을 그때 그때 상황에 맞추어 살아간다. 그는 거창하고 화려한 것을 추구하기 보다, 작고 실질적인 것을 추구한다. 콘크리트와 강철로 지어진 집은 인간 친화적이지 않다. 나무를 많이 사용하며, 자연에 인접해 지어진 집을 선호한다. 직선보다는 곡선을 선호하며, 부드러운 질감의 소재를 선호한다.
본인은 그의 건축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지만, 이 책을 읽으며 그가 능숙한 작가라는 인상을 받았다. 자신의 성장과정, 자신이 만든 작품, 건축학의 역사, 서구 문화사, 자신의 평소 생각, 등을 잘 버무려서 흥미롭게 서술한다. 두세쪽의 짧은 에세이들을 모아놓아서 가볍고 자유분방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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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zra Klein. 2020. Why We're Polarized. Avid Reader Press. 282 pages.
저자는 저널리스트이며, 근래 미국 정치가 심하게 양극화된 원인을 다양한 기존 연구를 인용하여 검토한다.
현재 미국의 정치 지형은 민주당 지지자와 공화당 지지자들이 서로 극단적으로 양극화되어 있으며, 중간층 혹은 부동층이 매우 엷다. 미국의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자신이 동일시하는 집단 정체성에 따라 이 두 진영 중 하나에 속한다. 미국인에게 중요한 집단 정체성은 다양한 범주에 걸쳐 있는데, 대체로 다음과 같다. 백인 대 유색인, 남성 대 여성, 복음주의 개신교도 대 이들 이외의 사람, 보수주의자 대 자유주의자, 교외/ 농촌지역 주민 대 대도시 주민, 고등학교 졸업자 대 대학교 졸업 이상 학력을 가진자, 등이다. 각각의 집단 구분에서, 전자에 속하는 사람은 공화당을 지지하고, 후자에 속하는 사람은 민주당을 지지한다. 이렇게 다양한 정체성 범주가 공화당과 민주당이라는 두 개의 집단으로 일관되게 정렬해 있다. 이 다양한 정체성 기준간에는 역사적 혹은 사회문화 및 경제적으로 서로간 약간의 연관성은 있지만 필연성은 없다. 예컨대 백인과 남성이 아니라 백인과 여성이 한 집단으로 묶인 정체성을 형성할 수도 있다.
미국인의 정치적 지지는, 논리적 혹은 실용적으로 일관된 이유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집단이 상대의 집단과의 다툼에서 이기는 것 자체를 목표로 한다. 예컨대 오바마가 제안한 의료 개혁은, 예전에 미트 롬니를 비롯한 공화당 의원들이 제안한 정책과 유사한 것인데, 오바마의 집권에 반대하는 공화당 지지자들은 오바마가 제안했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정책을 극렬하게 반대한다. 정체성 정치의 또 다른 예로, 최근 선거에서 공화당 지지자들은 도날드 트럼프가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신뢰할 수 없는 사람임을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의 상대인 힐러리 클린턴이 승리하는 것을 더 참을 수 없어 했기 때문에 트럼프를 지지했다. 요컨대 근래의 미국 정치는 실용적인 정책 대결이 아니라, "우리 대 그들" (us versus them) 이라는 정체성에 토대를 둔 진영 싸움이다. 미국인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우리편이 이기고 상대편이 지기를 원하기 때문에, 혹은 설사 나에게 실제적으로 불이익이 돌아간다고 해도, 상대편이 이기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하기 때문에, 정치가 심하게 양극화되어 있다. 집단 정체성을 중심으로 한 진영 싸움이 정치판을 지배하면, 상대를 합리적으로 설득하면서 실용적인 접근으로 타협을 도출하는 정치가 가능하지 않다. 이유를 불문하고 상대를 미워하고, 상대와 어울리고 싶어하지 않고, 상대가 이기는 상황을 두려워하는, 요컨대, 양자간 접근과 타협이 불가능한 정치만이 남았다.
미국의 정치 지형이 과거에도 이렇게 극단적으로 양분되었던 것은 아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민주당과 공화당은 각 정당 내에 다양한 이념과 의견을 가진 정치인들이 섞여 있어서, 정책 사안에 따라 소속 정당의 경계선을 넘어 지지하고 서로간에 타협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특히 민주당의 경우 서로 정반대의 이념을 가진 두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즉 남부의 민주당원은 흑인을 억압하는 인종주의를 극렬하게 옹호하는 반면, 북부의 민주당원은 진보적인 자유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당시 민주당은 남부 흑인의 인권에 눈을 감는 것을 조건으로 하여서만, 민주당의 정강을 추진할 수 있었다. 그당시 공화당에 보수주의자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며, 인종 문제와 관련해서는 남부의 민주당원보다 훨씬 더 진보적인 의견을 가진 공화당원이 적지 않았다. 요컨대 과거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립이 심하지 않았던 때는, 흑인의 희생을 토대로 하여 타협의 정치가 전개되었다. 따라서 흑인을 포함한 미국인 전체로 볼 때, 과거 양극화되지 않았던 정치가 지금의 양극화된 정치보다 더 건강하다고 볼 수 없다.
근래 미국 정치의 극단적 양극화의 시발점은, 1960년대 중반 민주당이 집권하던 시절에 흑인에게 실질적으로 투표권을 주는 개혁을 실시한 후에, 1970년대에 들어 남부의 민주당원들이 공화당으로 갈아타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공화당은 백인을 중심으로 한 정당, 즉 백인의 집단 정체성을 최우선에 두는 정당으로 변모하였다. 공화당원에게 백인의 인종 정체성이 그렇게 크게 부상한 원인은, 1970년대 이래 미국인의 인종 구성이 변했기 때문이다. 1960년대 중반 이민법 개정 이래, 미국인의 인종 구성에서 아시아인과 중남미인의 비중은 갈수록 커진 반면, 유럽계 백인의 비중은 갈수록 줄어들었다. 2040년경이 되면 백인이 미국 인구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 것이 확실하다. 미국은 과거 노예제에 뿌리를 두고 오랫동안 유색인을 차별하고 억압하는 사회였으며, 백인들은 백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삶의 모든 분야에서 유색인보다 우월한 특권을 누렸다. 백인은 숫적으로 자신들의 비중이 줄어드는 것을 일상에서 체감하면서 위기감을 느끼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에 반발하는 행태, 즉 정치적으로 자신들의 집단 정체성을 강화하면서, 사사건건 반대 진영과 대립하는 태도를 취한다. 공화당은 백인의 인종 정체성을 중심에 두고, 역사 문화 사회적으로 백인 인종과 연관된 특성인, 남성, 복음주의 기독교 신앙, 도덕적 보수주의, 교외/농촌지역 거주자, 교육수준이 높지 않음, 등이 일관되게 결합된 모습을 띤다.
미국의 정치가 심하게 양극화된데는 미디어의 역할도 한 몫 한다. 케이블 티브와 인터넷이 출현하기 이전인 1970년대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자신과 의견이 다른, 혹은 자신이 속하지 않은 정치 집단의 의견도 일상적으로 접해야 했다. 자신의 구미에 맞게 미디어를 취사선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제한된 숫자의 신문 방송은 가급적 넓은 범위의 고객을 확보하는 것이 회사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에, 심하게 편파적인 의견을 피했으며, 가급적 다양한 의견을 폭넓게 제시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케이블 티브가 보급되고, 1990년대 중반 인터넷이 출현하면서, 사람들의 미디어 선택의 폭은 엄청나게 넓어졌다. 미디어 회사들은 모든 범위의 고객을 고루 상대하는 것보다, 편파적인 생각을 가진 충성스런 고객을 확보하는 것이, 회사의 이익에 부합했다. 그결과 FOX 채널과 같이 지극히 편파적인 미디어가 공화당 지지자를 파고 들었으며, 그보다는 덜 편파적이지만, CNN, MSNBC 등의 채널은 민주당 지지자들의 선호를 따르는 미디어로 자리매김하였다. 인터넷은 알고리즘을 이용하여 이용자의 성향에 맞는 내용만을 편향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미디어의 편파성 효과가 케이블 티브이보다 훨씬 심하다. 사람들은 이렇게 편파적인 미디어만을 접하면서 상대편의 의견을 들을 기회가 없어지며,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의견을 내재화하고 더욱 더 굳건하게 사실이라고 믿게 되었다.
민주당과 공화당을 비교해 보면, 공화당이 민주당보다 훨씬 더 편파적이며, 극단적인 벼랑끝 전략까지 구사하면서 자신의 진영의 우위를 지키려 한다. 민주당은 이념 지형에서 진보에서 중도보수까지를 넓은 범위를 포괄하며,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반면 공화당은 이념 지형에서 보수쪽에 훨씬 치우쳐 있으며, 백인이라는 인종 정체성이 다른 모든 정체성을 압도한다. 이러한 차이는, 백인이 자신들의 인구 수가 줄어 들고 인종적 특권이 축소되고 있다는 위기감 때문에 나타난 결과이다. 현재 공화당과 민주당은 대통령 선거나 상하원 의원 선거에서 표면적으로는 거의 대등한 점유율을 보이고 있지만, 이는 미국의 정치 제도가 심하게 외곡되어 있어서 유권자의 대표성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상원 선거에서 민주당은 전국민의 60% 이상의 표를 획득하지만, 각 주 당 2명의 상원의원이 할당된 제도 때문에, 주들 사이에 인구 규모의 차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하원 역시 선거구를 공화당의 득표에 유리하도록 일방적으로 조정하여 (gerrymandering), 실제로는 민주당이 훨씬 더 많은 표를 획득하지만, 하원의원 수에서는 절반밖에 획득하지 못한다. 대통령 선거에서 역시 2000년 앨고어와 부시의 선거나, 최근의 클린턴과 트럼프의 선거에서 모두 민주당 후보가 국민의 다수의 표를 획득하였지만, 선거인단이라는 외곡된 제도 때문에 국민의 소수의 표를 획득한 공화당 후보가 당선되었다. 백인의 인구 비율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이런 외곡 현상은 더 빈번하게 발생할 것이다. 공화당은 자신의 지지자가 상대적으로 소수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극단적인 주장과 벼랑끝 전략을 구사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한다. 또한 가급적 투표하기 어렵게 만들어 민주당 지지자들의 투표를 방해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저자는 현재 극단적으로 양극화된 미국 정치를 어떻게 개선할지에 대해 뾰족한 해결책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고백한다. 저자는 양극화된 정치 지형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념적으로 정당이 양극화되어 있으면 유권자들은 자신의 의견에 근접한 정당을 더 잘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이념적으로 구분되지 않는 모호한 정강의 정당이 난립하는 정치 지형보다는, 이념적으로 양극화된 정당 구도가 더 낫다고 본다. 양극화 그 자체보다는, 현재 미국의 정치가 국민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즉 국민 주권이 제대로 정치 과정에 반영되지 않는 외곡된 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공화당이 저렇게 극단적인 전략을 쓰는 것은, 소수의 지지를 받으면서 정권을 장악하고 있어서, 상대와 합리적인 타협이 불가능한 형국에 처해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화당이 기존 제도가 제공하는 기득권을 포기하도록 제도를 개선하기는 매우 어렵다. 저자는 대신, 미국인들이 중앙 정치에 대한 관심을 줄이고,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정치에 더 관심을 쏟을 것을 제안한다. 사실 지역의 정치가 주민의 이익에 더 가까이 있고, 극단적인 진영 싸움보다는 실용적 타협점을 찾기에 더 용이하다. 사람들이 지역 정치를 통해 실용적인 접근을 하는 습관이 든다면, 중앙 정치도 실용적이 되도록 사람들의 행동 패턴이 바뀔 것이다.
이 책은 저널리스트가 쓴 정치 분석서로는 드물게, 많은 학술 연구를 참고하여 주제를 체계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미국 정치의 양극화와 관련된 논의를 폭넓게 섭렵하는 기회를 얻는다. 다만, 저자가 민주당 지지자이기 때문에, 공화당 지지자라면 혹시 미국 정치의 양극화를 다른 시각에서 보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그렇게 양극단으로 쪼개져 있다면, 분명 저자와 반대편에 서있는 공화당 지지자는 민주당 지지자와는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미국 정치를 볼 것이다. 문제는 학계와 미디어는 대부분 민주당 지지자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데 있다. 체계적인 분석은 지식인의 소관인데, 미국에서 지식인은 거의 대부분이 민주당 지지자이므로, 공화당 지지자이면서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이 책을 다 읽으면서, 저자의 분석 역시 편파적인 접근의 산물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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