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ward Conze. 1959(1951). Buddhism: its essence and development. Harper Torchbooks. 212 pages.
저자는 서구의 유명한 불교학자이며, 이 책은 주로 반야바라밀다심경에 의존해 불교의 교리를 설명하고 있다.
불교는 서구의 철학과 달리, 세상의 진리를 파악하려는 지적인 관심보다, 도 darma 를 깨닫는 실천에 촛점을 맞춘 실용적인 접근을 택한다. 불교의 목표는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자아를 버려야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 세상과 삶은 고통으로 차있음으로 세상과 삶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물러나 마음의 평정을 확보해야 한다. 업보를 쌓아 윤회를 거듭하면서, 궁극적으로 깨달음을 얻고 극락 Nirvana 으로 들어가는 것이 불교의 목표이다.
세상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은, 소유를 최소화하고 가난을 꺼리지 않는 것이다. 남을 괴롭히고 마음 상하게 하는 행위 역시, 세상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에 반하는 행동이다. 자아를 버리고, 세상과 내가 구별되지 않는 하나임을 깨달아, 주위 사람과 생물에 대해 동정심 compassion 을 가져야 한다.
불교는 서구에서와 같은 전지전능한 인격신을 설정하지 않지만, 일반인들은 전지전능한 존재로서 부처를 숭배한다. 깨닮음은 세상과 나 자신에 내재되어 있는 부처의 길, 즉 도를 발견하는 것이므로, 불교에서 인격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은 빈 empty 것이다. 구별을 하는 것, 주체와 객체, 나와 너, 긍정과 부정, 등으로, 인식하려 하는 것은 어리석다. 불교의 진리는 언어나 논리로 표현할 수 없다.
불교는 지적인 전통과 신비적 체험의 전통으로 나뉘어 있다. 전문가들은 지적인 깨닮음을 강조하나, 일반 신도는 신비적 체험에 관심이 많다. 소원을 성취하고 병을 고치고 등 일반인의 염원을 신비한 힘으로 풀어주는 것 역시 불교 믿음의 일부이다. 탄트라 불교는 신비적 체험을 강조하는 종파이다.
소승 불교는 구도자 개인의 깨달음에 촛점을 두며, 대승 불교는 대중 전체의 구원에 촛점을 둔다. 불교의 원래 교리는 소승불교에 가까운데, 중국으로 전파되면서 대승 불교가 갈려나왔다. 대승불교의 한 종파인 선불교는 지적인 탐구를 중요시하지 않는다. 세상의 모순을 꿰뚤어보는 통찰력은 논리적인 탐구를 통해 획득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불교의 고전이라고 추천받아 읽었으나, 많은 부분의 서술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200쪽의 책을 중간에 던지지 않고 끝까지 참고 읽었으나, 이해가 높아지지 않아 실망했다. 집중해서 읽었으나 읽은 것이 아니다. '언어와 논리를 넘어선 깨달음' 이라는 말이 납득이 가지 않는다. 고통도 즐거움도 염려도 관심도 없는 무념무상의 세상에 들어 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어차피 우리는 모두 죽지 않는가? 윤회는 허구이다, 이 세상의 고통과 부정의와 우연를 이겨내기 위해 만들어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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