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2010. 세계문화전쟁: 팍스 아메리카나와 글로벌 미디어. 인물과 사상사. 384쪽.
저자는 신문방송학과 교수이며, 이 책은 미국의 대중문화가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현상을 집중적으로 논의한다. 미국 대중문화가 세계적으로 지배력을 획득하는 원인을 제시하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대표적인 분야를 차례로 검토한다. MTV, 미국 드라마, 애플의 디지털 기기, 구글, 위키피디아, SNS, CNN, 국가브랜드, 문화 민족주의, 유네스코의 문화다양성 협약, 한류 등의 주제를 장을 바꾸어 차례로 검토한다.
문화는 하드파워에 뒷받침을 받는 소프트 파워이다. 미국의 대중문화가 세계적으로 지배력을 행사하는 이유는 미국의 군사력, 경제력과 연관된다. 근래에 한류가 아시아 및 개발도상국에서 뜨는 이유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대중문화의 국제적 확산에는 부정과 긍정적 측면이 공존한다. 문화적 정체성, 문화적 다양성을 위협하는 측면과 함께, 문화적 보편성, 엔터네인먼트의 효율성을 높이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 대중문화는 근본적으로 자본주의 경제 원리에 따라 작동되며, 국제적 확산 역시 자본의 논리가 바탕에 깔려 있다. 그러나 미국 문화의 확산으로 인한 문화의 획일화 경향에는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항시 새로운 것을 찾기 때문에.
이 책은 인용문을 계속 조합하면서 자신의 말을 간간히 끼워넣는 저자의 글쓰기 방식을 답습하고 있지만, 그의 다른 책에 비교하여 논의의 촛점이 뚜렷하며 깊이 있는 논의를 한다. 자신의 말로 일관되게 쓴 책보다 잡다한 인용문을 계속 따라가는 것이 독자에게 힘들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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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ber Zelinsky. 2001. The Enigma of Ethnicity: Another American Dilemma. University of Iowa Press.
문화지리학자인 저자가 미국의 인종민족의 다양성에 관한 문제를 분석한 학술서이다. ethnicity 는 우리말로는 번역이 안되는는데, 특징이 구별되는 집단을 ethnic group 민족 집단이라 하고, 그렇게 스스로 구별하고 주변 타자들이 구별을 짓는 특성을 ethnicity라 한다. ethnicity 는 주류 집단이 타자를 구분짓는 방식이다. 미국에서 주류 집단인 영국계는 유럽의 다른 지역으로부터 온 이민자들을 민족 집단으로 구별짓고 편견과 차별을 가하였다. 독일계, 북유럽계, 아일랜드계, 이탈리아계, 폴랜드계, 유대인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영국계 자신에 대해서는 이 개념이 적용되지 않는다. 즉 ethnicity는 집단간에 권력의 차이, 위계적인 질서를 반영한다. 유럽의 영국이외 지역 출신의 이민자 후손은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에스닉 집단이라는 오명이 붙었으나 20세기 후반 들어 백인 미국인이라는 개념으로 통합되어 가고 있다. 즉 ethnicity 가 탈색되고 주류 집단으로 편입되고 있다.
그렇다면 1970년대 이래 ethnicity에 관심이 높아지고 유럽의 다양한 민족 출신, 특히 이탈리아계나 아일랜드계 후손들이 자신의 민족성에 다시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이는 symbolic ethnicity 상징적 민족성일 뿐이다. 이는 삶의 조건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문화적 취향을 취사선택하는 것, 즉 개인의 편의에 따라 선택적으로 입었다 벗었다 하는 옷에 불과하다. ethnicity 와 함께 따라다니던 열등함이 사라졌기 때문에 마음편히 택할 수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것의 구속력은 미약하다.
중남미계, 아시아계, 특히 흑인들의 경우 ethnicity 의 구속은 가까운 시일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설사 사회경제적으로 백인 주류에 동화한다고 하여도, 외모로 구별되는 인종적 특성 때문에 '우리와는 다르다'는 명찰이 쉽게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백인 주류사회는 인종주의를 쉽게 버리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인종주의는 백인에게 권력관계에서 우위를 부여하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백인이기 때문에 여러 상황에서 우위를 점하고 이익을 취하는 것이 가까운 시일내에 바뀌지 않을 것이다.
1980년대 이래 소수자의 권리를 짓밟아서는 안되며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사회분위기가 퍼지면서 민족 문화의 다양성을 긍정적으로 여기는 풍조가 자리잡았다. 그러나 저자는 다양한 문화를 진정 존중하고 동등하게 대하는 다문화주의 multiculturalism 가 정착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한다. 특정 집단의 문화는 그 집단의 권력관계에서의 위치를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사회에나 권력을 주도하는 집단과 이에 대응하는 하급의 집단이 존재하며 이는 문화적 다양성에도 투영된다. 어느 사회에서나 주류와는 다른 소수자의 문화가 특이하고 호기심을 유발하는 것은 그것이 주류가 아니고 열등한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1980년대 이래 특정 지역과 연관되지 않고 여러 문화가 혼합된 형태로 존재하는 새로운 다문화 개체가 출현했다고 주장한다. 이민족, 이인종간에 결혼이 증가하고, 이민자들이 본국과 미국의 양쪽에 발을 디디고, 이민초기부터 지위가 높은 직업에 종사하고, 이민자 밀집 거주지를 형성하지 않고 흩어져 살면서, 서로간에 사회문화적 교류를 하는 집단은 미국의 백인주류와는 다르지만 그렇다고 과거에 소수자 민족집단의 전형에도 맞지 않는다.이들은 분명 주류와는 다른 ethnic group이지만 그렇다고 열등한 성격의 ethnicity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들이다.
미국은 앞으로도 다양한 민족들이 이민을 오고 서로 섞이면서도 변형되고 약화된 형태로 자신들의 다양성을 지속해 가는 다양성이 풍부한 사회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왜냐하면 미국은 특정 주류 집단과 피로 연결된 이념적 구심점이 없기 때문이다. 영어라는 구심점은 계속 유지될 것이지만 관습, 가치관, 음식문화 등은 다양한 민족 문화가 섞이면서 변형을 지속할 것이다. 그것이 미국의 강점이었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물론 유색인의 비율이 증가하면서 미국 문화의 구성은 달라질 것이고, 이러한 변화를 두려워하고 반발하는 백인들의 움직임 역시 강해해지고 있지만, 이들이 미국 문화의 변화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저자는 낙관주의자이면서 미국을 사랑하는 감정이 연구에 녹아있다. 이 책은 학술적 분석서이기는 하지만, 미국문화의 다양성에 대한 저자의 풍부한 학식이 녹아 있다. 저자는 정말 많은 사례를 구구절절 나열하면서 문화적 다양성의 미학을 표현한다. 물론 그의 낙관적인 예상이 단기적으로는 맞지 않을 수있다. 도날드 트럼프의 예에서 보듯이. 장기적으로도 미국이 다양성이 주는 체제의 강점을 계속 살려나갈까? 저자는 다양성을 긍정적으로보지만, 유색인의 입장에서 볼 때 그리 달가운 명찰이 아니다. 백인의 반발이 큰 폭력 없이 다양성의 확대라는 흐름으로 흡수될까? 나는 이 질문에 대해 회의적이다. 근래에 미국과 중국의 패권 싸움에서 보듯이, 권력 다툼의 장에서는 평화적 타협과 조화라는 결과는 역사상 예가 없다. 미국의 백인이 ethnic group의 일원으로 바뀌는 것은 평화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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