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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중심주의'에 해당되는 글 1건
2020. 9. 1. 21:18

Robert B. Marks. 2015. The Origins of the Modern World: A Global and environtal narrative from the fifteenth To the twenty first century. 3rd ed. Roman & Littlefiels. 218 pages.

저자는 중국사를 전공한 역사학자로 기존 역사학계의 유럽중심주의를 배격한다. 1800년대초 유럽이 산업혁명에 진입할 때까지 중국과 아시아가 세계를 주도했다. 기술 수준, 생산성, 산업과 교역 규모 등 모든 면에서 중국과 인도는 유럽을 능가했다. 그당시 유럽은 세계의 변방에 위치한 낙후한 지역이었다. 유럽이 1500년대에 대항해의 시대를 열게 된 계기는 그당시 선진 지역인 중국에 가는 길을 찾기 위해서였다. 13세기에 몽골 제국이 중앙아시아에서 중동, 헝가리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면서 동서간 교역이 활발했는데, 14세기에 중동 지역에 이슬람 제국이 들어서면서 유럽에서 아시아로 가는 통로가 막혀버려 중국으로 가는 새로운 길을 찾을 필요가 절실해졌다. 유럽 사람들이 중국으로 가는 길을 찾으려고 그렇게 노력한 이유는 중국의 선진 문물과 교역하려는 욕구 때문이다. 반면 중국은 세계의 첨단을 달리던 나라로 유럽으로 부터 얻을 것이 별로 없었다. 중국은 유럽 나라들과 달리 바다를 통한 외부와 교역이나 정복에 힘을 기울이지 않았으며, 외부와의 관계는 내륙에 유목민의 침략을 방어하는 데 제한되었다.

유럽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엄청난 양의 은을 확보하였다. 이는 중국이 명나라 시대에 화폐제도를 지폐에서 은으로 바꾼 것과 맞물려서, 아메리카 대륙의 은은 유럽을 거쳐 대량으로 중국에 흘러들어갔다. 유럽은 중국에 은을 지불하고 비단, 도자기, 차 등의 선진문물을 수입하였다. 아메리카 대륙으로부터 은의 유입이 줄어든 반면, 유럽인의 중국 문물에 대한 욕구는 줄어들지 않으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유럽의 생산품 중 중국에 수출할만한 것이 없었으므로, 영국은 인도에서 아편을 재배하여 중국으로 수출하여 거둔 돈으로 중국의 문물을 수입하는 방향으로 전환하였다. 아편 무역은 중국의 반발에 부딛쳤으며, 결국 1840-50년대에 두차례의 아편전쟁을 거치면서 영국은 중국을 굴복시켰다.

유럽은 대양을 항해하는 기술을 발전시키고, 유럽 국가들 간 치열한 경쟁을 통해 무기 제조 기술을 발전시키면서, 점차 무력으로 세계를 정복하는 노선을 밟았다.  유럽에 정복된 아메리카, 인도, 아프리카, 동남아시아의 식민지들은 유럽의 산업화 과정에서 천연자원과 원자료를 공급하고 완제품을 수입하여 소비하는 시장의 역할을 하였다. 비유럽 지역의 식민지화는 유럽이 산업화를 통해 부흥하게 만들고, 식민지의 기존 산업을 몰락시켜 가난하게 만드는 양극화의 길을 열었다.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가장 먼저 시작된 것은 영국 중부지방에 철광석과 양질의 석탄이 인접해 매장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천혜의 조건 덕분에 수증기의 힘을 이용해 석탄을 채굴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증기 기관차를 이용한 철도 건설, 섬유 산업의 기계화로 이어졌다. 과거 인류의 역사는 환경 조건의 한계에 가로막혀 경제 발전과 인구 성장이 제한되었는데, 산업 혁명은 이러한 환경 조건의 한계를 뛰어 넘는 수단을 제공함으로서 지속적인 경제발전과 인구 성장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영국에서는 산업혁명 이전까지 인도의 면직물을 대량으로 수입하여 소비하였는데, 인도를 식민지화하면서 인도의 면직물 수입을 금지하는 대신 면화 원재료를 수입하고 국내에서 가공하여 국내 소비와 수출을 하는 방향으로 전환하였다. 이는 과거에 융성하던 인도의 면화 산업을 몰락시켰다.

1800년대초까지 유럽을 앞서있던 중국은 산업혁명으로 유럽에 뒤쳐지면서 격차가 점점 더 벌어졌다. 환경 조건의 한계를 뛰어 넘지 못하고 정체된 사회와 이를 뛰어 넘어 성장하는 사회간의 간격은 기술 수준이 발전하면서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중국은 1980년대에 개방적인 자본주의로 전환하여 본격적으로 경제발전에 착수하면서 빠른 속도로 서구와의 격차를 좁혀왔다. 인도와 기타 개발도상국들 역시 20세기 후반 식민지 상태로부터 독립하고 산업화하면서 서구와의 격차를 줄이고 있다.

저자는 유럽이 중국보다 먼저 산업혁명에 착수한 것이 유럽 문화의 내재적 우수함 때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영국에서 철광석과 양질의 석탄이 근접해 매장되 있는 것, 유럽 대륙이 여러 국가로 쪼개져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군사 기술이 발달하게 된 것, 유럽이 중국으로 가는 길을 찾다가 우연히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우월한 군사기술을 활용하여 전세계에 식민지를 정복하게 된 것, 등이 산업혁명과 이후 경제 발전의 근본적인 원인인데, 이들은 모두 우연의 산물이다. 유럽이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중국보다 특별히 더 합리적이라거나, 유럽이 중국보다 과학기술이 더 우수하거나, 상공업이 더 활발한 문화였던 것은 아니다. 합리적인 사고나 우수한 과학 기술 덕택에 스팀 엔진을 개발하고 섬유 산업의 기계화를 이룬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서구의 학자이면서 중국과 아시아의 편에서 세계 역사의 전개를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을 가졌다. 서구의 발전이 우연의 산물이라는 그의 주장이 맞을 것이다. 세상의 일은 많은 부분 우연적 조건이 맞물려 만들어낸 결과이기 때문이다. 내재적인 우수함이라고 하는 것도 결국 원인을 거술러 올라가면 자연 조건의 차이나 우연한 상황의 조합이 만들어 낸 것이다. 특정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근본적으로 우수하다는 인종주의를 용인하지 않는한 모든 인간사는 우연한 외부 환경과 인간 사이에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결과이다. 서구가 중국과 아시아보다 앞선 것은 근본적인 원인이 여하하건 부정할 수 없다. 역사는 경로 의존적(path-dependent)이기 때문에, 일단 서구가 아시아보다 앞서게 되면 그 이후의 길이 달라진다. 물론 20세기 초반까지 유럽이 미국을 앞섰지만, 두차례에 걸쳐 유럽인들이 그들끼리 벌인 전쟁을 통해 폐허가 되면서, 미국이 유럽을 앞서는 새로운 경로가 만들어지게 됬듯이, 미국의 제도적 비효율과 내부 갈등 때문에 국력이 약해지는 대신, 중국이 꾸준히 노력하여 결국 미국을 따라잡고 서구를 다시 앞서게 되는 역사의 경로에 들어설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중국의 일인당 소득은 1만불에 불과한 반면 미국은 6만불에 달하므로, 중국이 미국을 앞서는 것은 가능하다고 해도 먼 미래의 일이다. 중국의 소득이 높아지고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발전의 속도가 떨어지고 내부 갈등이 커질 것이기 때문에 중국의 미래를 예단할 수 없다.   

이 책은 대학교의 교재로 집필된 듯하다. 세계 역사 전반을 빠른 속도로 훑으면서, 기존 연구를 바탕으로 전반적 흐름을 이해하는 데 주력한다. 아시아를 세계의 중심에 놓는 독특한 시각이 눈에 띠지만, 저자의 주장에 대해 치밀한 증거를 인용한 논의가 제시되지는 않는다. 개별 지역이나 국가에 촛점을 두기보다 지구 전체적으로 근대 세계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한눈에 조망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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