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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6. 7. 15:30

Malcom Gladwell. 2019. Talking to Strangers: What we should know about the people we don't know. Little, Brown and Co.

저자는 저널리스트이며, 이 책은 모르는 사람을 만났을 때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관해, 심리학 연구들을 인용하면서 다양하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상대를 속이는 것과 상대의 생각을 읽는 것, 두가지 주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한다. 

상대의 거짓말을 판별하기는 힘들다. 일반인은 물론이고, CIA의 전문가들 조차 상대의 거짓말에 흔히 속아 넘어간다. 인간은 상대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전제하고 살도록 (default to truth) 진화되었다. 상대에 대한 기본적 신뢰는 인간 사회의 협동을 가능케 하였다. 상대의 거짓으로 입는 피해는 상대를 신뢰하는 댓가로 치르는 비용이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진실을 말하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드물기 때문에, 상대가 거짓말을 한다고 전제하는 것보다 상대가 진실을 말한다고 전제하고 사는 것이 덜 손해를 본다.

사람들은 상대가 진실을 말한다고 전제하고 살기때문에, 웬만큼 명백한 증거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상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의심은 확증으로 발전되지 않는다. CIA의 이중스파이가 발각되지 않은 이유, 버니메도프의 폰지 스킴이 발각되지 않은 이유, 필라델피아 팀 코치의 아동성애 도착증이 발각되지 않은 이유, 체조팀 전속 의사의 여성 선수에 대한 성폭행이 발각되지 않은 이유는, 이에 관련된 사람들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상대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다고 해도 이를 확증으로 바꾸기는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경우에 상대의 거짓이 발각된 것은 거부할 수 없이 객관적으로 명확한 증거가 발견되었기때문이다.

사람들은 상대를 직접 만나보고, 그의 표정과 행동을 통해 상대의 속마음을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transparency theory), 이는 틀린 생각이다. 자신의 생각을 표정이나 행동으로 표출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많다. 형사범에 대해 보석 판정을 내릴 때, 판사가 피고인을 직접 면담을 하고 내린 판결이 객관적 자료에 근거해 컴퓨터가 판정한 결과보다 더 열등한 것으로 드러났다. 버니메도프는 그의 철저히 거짓된 투자 행위와는 달리, 매우 예의바르고 신뢰감을 주는 인물이었기에 많은 상류층 사람들이 그에게 큰 돈을 맡기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술에 취했을 때와 같이 비정상적 심리 상태에 있는 상대의 속마음을 파악하기란 훨씬 더 어렵다. 미국의 대학가에서 학생들이 파티를 벌이면서 엄청나게 술을 마셔 의식이 분명치 않은 상태에 처한 남녀 사이에 즉흥적인 성관계를 갖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때 술에 취한 남성이 술에 취한 여성의 동의를 얻었는지 여부를 판정하기는 어렵다. 여성이 술에 취해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의식 상태에 있는 경우, 이러한 여성은 상대 남성의 의도를 정확히 판단할 수 없으며, 술에 취한 남성 또한 술에 취한 여성이 보내는 메시지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다. 이 경우 법원은 남성이 여성을 성폭력한 것으로 판정한다. 왜냐하면 여성이 정상적인 상태라면 모르는 남자와 만나 잠시 술을 마시고 나서 섹스를 하기로 결정할 가능성은 크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1990년대 초반 범죄가 급증하자 경찰은 적극적으로 범죄 행위에 대응하는 새로운 전략을 채택하였다.  의심스러운 사람들에 대해 사소한 구실을 트집잡아 검문검색을 하여, 총기나 마약 등을 소지한 사람을 이들이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잡아들이는 전략이다. 이는 특히 범죄가 많이 발생하는 우범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실행되었는데, 문제는 이러한 검문검색이 경찰에 대한 무고한 시민의 반감을 높일 위험이 크다는 점이다. 이러한 전략은 상대가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의심을 전제로 한 대응으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상대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전제하고 살아가는 것과 정반대이다. 이러한 검문검색 과정에서 상대와의 감정적 충돌이 격화되면서, 사소한 검문검색이 상대를 죽이는 결과를 낳기도 하였다. 이러한 결과는, 상대의 진실성을 의심하는 방향으로 출발하는 것이 얼마나 높은 비용을 초래하는지 보여준다. 저자는 텍사스의 한적한 소도시에서 젊은 흑인 여성이 경찰로부터 사소한 구실로 검문검색을 받으면서 감정적 충돌이 격화하여 결국 유치장에서 자살로 마감한 사례를 제시한다.  

사람들이 어떤 행위를 할 때, 그것과 연관된 맥락 속에서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coupling). 예컨대 자살을 감행할 때, 자살을 용이하게 하는 수단이 가까이 있으면 자살을 쉽게 저지른다. 자살이라는 엄청난 일은 많은 생각과 고뇌를 거쳐서 감행하는 일이므로, 어떤 편리한 자살 수단이 가까이 있는지 여부는 중요치 않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영국에서 1960년대에 취사용 연료로 그때까지 사용하던 일산화탄소를 함유한 석탄가스로부터 일산화탄소를 미량 함유한 도시가스로 바꾸었을 때, 여성의 자살율이 크게 떨어진 것이 그 증거이다. 자살과 연관된 맥락을 바꾼 결과 자살이 줄어든 것이다. 앞에 언급한 경찰의 적극적인 검문검색을 통한 범죄 예방 효과는, 이러한 치안 전략이 범죄가 빈발하는 지역과 연결될 때만 효과가 있다.

저자는 학술적인 연구 결과를 일상의 사건과 연결시켜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로 각광을 받았다. 그의 강연을 들으면 그가 천부적인 이야기 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부지런한 탐색과 번득이는 감각을 결합하여 흥미로운 읽을 거리를 만들어 낸다. 일부의 연구결과를 확대 해석하기 때문에 엄밀한 설득력을 가지지는 않는다. 이야기 꾼답게 그의 글은 정말 술술 넘어간다.

2020. 5. 29. 21:40

 

Paul Seabright. 2010. The Company of Strangers: a natural history of economic life.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0. 315 pages.

프랑스의 정치경제학자인 저자는 인간의 경제생활을 인간의 본능과 연결시켜 설명한다. 동물의 세계에서 인간은 가장 공격적인 동물이다. 인간의 과거는 폭력으로 점철되어 있다. 자연 상태의 인간은 모르는 사람(strangers)을 마주쳤을 때, 상대에게 친절하게 손을 내밀기보다는 상대를 위협하고 공격한다. 그런 인간이 어떻게 서로에게 의지하는 경제 활동을 하게 되었을까?

서로 협력하는 유전자를 지닌 사람들의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생존 가능성이 높기에 진화를 통해 서로 협력하는 유전자를 지닌 사람들이 선택되었다. 어떻게 좁은 범위의 가족과 친족의 범위를 넘어서는 타집단의 사람에 대해, 두려워하고 피하거나 공격하기보다 서로 다가가 평화롭게 접촉을 유지하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게 되었는가? 이에 대한 답은, 상대에게 받은 호의를 되값으려 하는 인간의 본능에 있다. 인간은 거래의 본능이 있는데, 유사한 가치의 것을 교환하므로서 서로에게 모두 이익을 가져온다. 인간은 다시 만날 가능성이 희박한 상대에게도 받은 것에 상응하는 것을 되주려는 성향을 보인다. 즉 인간의 호혜적 교환은 계산의 결과이기보다는 유전자에 각인된 본능이다.

이방인을 공격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손을 내밀어 서로 거래하는 관계로 발전시킨 것은, 한편은 이러한 성향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사람들이 선택된 결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대등한 거래관계를 안정적으로 보장하는 제도를 정착시킨 덕분이다. 시장기구와 사유재산 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거래 당사자가 계약을 존중하지 못하면 국가의 권력을 동원해 계약을 강제하고 사유재산을 보호하는 것은 안정적인 거래관계를 위해서 필수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는 깨어지기 쉽기 때문에 항시 세심히 관리해야 한다. 안정적인 거래를 위협하는 요인을 방치하면, 금방 이방인을 두려워하고, 위협하고,  공격하고 지배하려하는 인간의 본능이 고개를 든다. 

한편 상대가 나의 호의를 이용하기만 하고 상응하는 것을 나에게 제공하지 않으면 그러한 행위를 처벌하려는 강력한 본능을 발전시켰다. 거래의 공정성은 인간의 유전자에 깊숙이 박힌 본능이다. 바로 이러한 본능이 서로가 잘하는 것을 각자 수행하면서, 각자가 생산한 것을 서로 교환함으로서 모두가 이익을 더하게 된다. 데이비드 리카르도의 '비교우위 이론'이 바로 그것이다.

각자는 각자의 이익을 위하여 최선을 다할 때, 분업을 통해 서로 의존하는 관계를 형성하게 되고, 분업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부유해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저자는 이를 터널 비젼, 즉 자신의 좁은 이익만을 돌보는 방식인데, 놀라운 것은 모든 사람이 터널 비젼을 가지고 살고 있음에도 전체의 이익이 높아진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이 전체의 선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각자의 선을 위해 일할 때 부의 총량이 높아진다는 사실은 바로 아담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이론이 주장하는 바이다. 이는 전체의 선을 위해 중앙집중적으로 계획하는 공산주의 체제보다 개인 각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하고 결정하는 분권적인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가 더 효율적인 이유이다. 명령과 복종에 의해, 혹은 이념에 추종하기 때문에 맺어진 정치적 관계보다는, 상호의 이익을 가져오는 상업적인 거래관계, 모두가 시장 가격의 신호에 따라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관계가 더 효율적이고 안정적이다.

분업의 효율은 다른 한편으로, 분업에 참여하는 구성 부분간에 조율이 어그러질 때 문제를 발생시킨다. 경제 불황은 바로 이 분업이 어그러진 결과이다. 2008년에 금융위기를 발생시킨 주체는, 지나치게 위험한 투자를 한 은행뿐만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넘어 빚을 내어 집을 산 개인들이다. 위험한 투자에 참여한 투자자들은 이것이 매우 위험한 행위임을 알고 있음에도 자신에게는 그 위험이 실현되지 않으리라는 막연한 기대에서 폭탄 돌리기를 한 것이다. 

개인 각자의 결정으로 할 수있는 범위를 넘어선 일을 도모하는 것, 즉 긍정적인 외부효과가 나타나는 일을 수행하기 위해 국가가 존재한다. 개인은 국가의 조정을 통해 이러한 집합적인 일에 참여함으로서 개인 각자가 할 수있는 범위를 넘어선 일의 이익을 누리게 된다. 즉 공공재를 생산해내는 것이다. 농업을 시작하면서 관개사업을 하는 것이나, 외적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하여 군대와 성벽을 쌓는 것이 그것이다.

국가간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호혜적인 거래관계이다. 거래관계의 당사자 국가 간에 규모의 차이가 클 때, 그들간의 관계는 실용적인 대등한 거래관계로부터, 권력을 추구하는 지배와 종속의 관계로 변질하는 경우가 많다. 제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초강대국이면서 다른 나라와 호혜적인 거래관계를 맺으려고 하였는 데, 이는 자유주의 이념에 따른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미국의 이익에 이것이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힘이 상대적으로 약해지면서, 미국은 자유주의 이념을 계속 지키는 것이 자신의 이익에 도움이 될지 의문을 품게 되었다.  근래에 미국이 자국이익 우선주의로 나아가는 것은, 보통의 나라들 사이에 맺어지는 자연적인 관계로 복귀하는 것이다.

저자는 인간이 이방인을 두려워하고 공격하던 본능을 극복하고 서로 거래를 하고 분업을 하면서 의존하는 경제관계로 발전시킨 것을 '위대한 실험'(Great Experiment)이라고 한다. 인간은 여전히 낯선 사람을 배척하고 자신들의 좁은 집단 범위에만 이익을 나누려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족주의(tribalism)적 성향이 강하기에 이러한 위대한 실험은 깨어질 위험성이 높다. 우리 가족, 우리 친족, 우리 지역, 우리 동창, 우리 나라, 우리 민족, 우리 인종에 우선권을 주고 외부인에게 차별적인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여전히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행하는 방식이다. 인류 문명의 성과는 이러한 본능을 자제하고 낮선 사람과 함께 일하고 낮선 사람에게도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려고 한 결과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실험은 취약하며, 실제로 무너지는 경우를 인류 역사에서 무수히 많이 본다. 인간은 앞으로 진화해야 할 길이 멀다.

이 책은 경제 철학이다. 경험과학적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인간의 사회적 삶의 방식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기술하고 설명한다. 프랑스 학자의 책 답게 주절이 주절이 말이 많다. 잡다하게 관계된 논의를 모두 망라한 에세이들을 모아 놓았다. 자신의 주장을 명료히 하면서 직설적으로 쓰는 영미권의 학술 풍토와는 많이 다르다. 이를 모두 읽어내느라고 고생했다. 저자의 설명이 장황하여 따라가다보면 지치기에, 과연 이러한 서술방식이 효과적인지 의심스럽다. 프랑스의 사회과학은 생각이 자유분방하고 통찰력을 준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영미권의 그것에 비해 각광을 받지 못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독자에게 친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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