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yne Leighton and Edward Lopez. 2013. Madmen, intellectuals, and academic scribblers. Stanford University Press. 190 pages.
저자는 경제학자로서 새로운 정치경제 이론이 세상을 바꾼다고 역설한다. 1980년대에 농구 경기에서 30초내에 슛을 해야 하는 규칙을 도입하여 프로농구 산업이 살아나게 된 사례를 예를 들어, 새로운 제도가 새로운 인센티브 시스템을 만들어 내고 이것이 효율적인 결과를 만들어 낸다. 새로운 제도는 아이디어에 뿌리를 두는데, 아이디어는 학자의 머리에서 나오거나, 혹은 일반인의 생활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다.
저자는 책전체를 통해 세가지 질문에 답하고자 한다. 첫째, 민주주의는 왜 낭비적이고 정의롭지 않은 정책을 만들어 내는가? 둘째, 왜 실패한 정책은 사회적으로 낭비적이고 더 좋은 대안이 존재함에도 폐지되지 않고 오랫동안 버티고 있는가? 셋째, 왜 어떤 낭비적인 정책은 폐지되는가? 이 세가지 질문에 답하려면 정치경제학적 지식을 총동원해야 하기에 이 책의 전반부는 서구의 정치 사상과 경제 이론의 역사를 훑는데 할애한다.
민주주의가 낭비적이고 정의롭지 않은 정책을 만들고 이를 오랫 동안 유지하는 이유를 경제학의 공공선택 이론(public choice theory)에서 찾는다. 정부의 정책은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정치 참여자들간에 거래로 형성된다. 공공의 자원은 이익 집단 간에 거래에 의해 배분된다. 정치인과 정부 정책은 결집된 이익(focused interest)을 가진 소수 집단의 요구에 부응하는 반면, 분산된 다수의 소비자의 이익은 무시한다. 이것이 민주주의 정부가 다수의 시민의 이익에 반하는 정책을 만들고 오랫동안 유지하는 이유이다.
어떤 낭비적 정책이 폐지되려면 대안적인 정책을 뒷받침할 새로운 아이디어가 먼저 형성되어야 한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지식인들의 활동을 통해 점차 확산되고 사회적 환경이 뒷받침되면, 대안적인 정책으로 구체화되며 낭비적 정책을 대체한다. 그 단적인 예로 로크의 천부인권론과 몽테스퀴에의 견제와 균형 이론이 미국의 민주주의 헌법을 낳았으며, 케인즈의 유효수요 이론이 대공황 시기 적극적인 재정 정책을 낳았으며, 맑스의 유물론적 계급투쟁이론이 러시아와 중국의 공산주의 체제를 낳았으며, 하이에크의 개인의 자유와 시장을 최고로 두는 이론이 20세기 후반 신자유주의 정책의 밑바탕을 제공하였다.
근래에 미국에서 아이디어가 제도를 바꾼 구체적 사례를 네가지 제시한다. 첫번째 사례는 1990년대 중반에 도입된 주파수 경매제도이다. 이전까지 통신 주파수는 정부 위원회의 재량적 판단에 의해 소수의 업체에게 할당되었다. 경제학자 로날드 코스는 1950년대 이래 줄기차게 주파수는 토지와 마찬가지로 시장원리에 의해 배분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고이론적으로 설명했으나, 1990년대까지 정치권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통신 제도가 이익집단에 의해 포획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에 이동통신이라는 새로운 산업이 등장하고, 정부의 재정적자가 커지면서, 결국 가장 높은 금액을 제시하는 업자에게 주파수를 경매하는 제도를 도입하게 되었다.
두번째 사례는 1980년대 초반에 전개된 항공산업 자유화이다. 그때까지 항공 요금이나 취항 노선은 정부에 의해 엄격히 관리되었으며 신규 진입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러한 지나친 규제는 항공 안전을 보장한다는 구실로 지속되었다. 경제학계는 1960년대 이래 항공 산업을 시장원리에 맡기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지속적으로 주장하였으나, 기존 항공업계의 이익에 가로막혀 변화가 어려웠다. 1970년대에 오일쇼크로 경제 전반에 인플레가 높아지면서 새로운 시험을 할 기회가 열렸다. 소수의 노선에 대해 제한적으로 가격할인 경쟁이 붙었으며, 경제위기의 와중에 와싱턴 정치계에서 완전히 국외자였던 카터 대통령이 취임하고 항공규제를 담당하는 기관장에 개혁 성향의 경제학자가 임명되었다. 개혁의 바람을 몰고 온 젊은 정치인인 에드워드 케네디가 의회에서 개혁 논의를 주도하면서 마침내 1982년에 항공산업은 완전 자유화되었다.
세번째 사례는 1996년 빌클린턴 대통령 시기에 이루어진 복지 개혁이다. 빈곤자를 구제하는 정부의 복지 정책에 대한 아이디어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1930년대 대공황시대에 사회보장 시스템을 낳았고, 1960년대 존슨 정부 시절에 빈곤과의 전쟁이라는 구호하에 다양한 복지 제도를 도입하였다. 1990년대 들어 미혼모의 문제가 커지고, 기존의 복지제도가 복지에 의존성을 높인다는 주장이 높아지면서, 결국 복지 수혜자의 복지 혜택 수급년한을 제한하고 구직을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복지제도가 개혁되었다. 이는 정부의 복지제도가 '사회가 도와줄 가치가 있는 빈곤자' (deserving poor)를 선별적으로 도와야 한다는 아이디어가 관철된 경우이다.
네번째 사례는 2008년의 금융위기이다. 자신 소유의 집에서 산다는 것은 '미국인의 꿈'(American Dream)으로 오래전부터 미국 문화에 이상화되었다. 정부가 사람들의 자가 소유를 권장하는 정책에 착수한 것은 1930년대부터 이며, 이차대전 이후에 더욱 강화되었다. 1990년대에 들어 정부의 자가소유 권장 정책은 보다 구체화되어, 정부가 모기지(장기 주택저당 대부)를 지원하는 기관을 설립하였고, 금융기관이 사회약자와 소수자에 대해 모기지를 제공한 실적을 금융기관 평가의 기준으로 삼게까지 됬다. 이러한 정부의 정책 방향에 부응하여 금융기관은 신용이 부실한 가구에 모기지를 남발하였으며, 신용평가회사는 부실한 모기지에 근거한 채권을 우량등급으로 평가하였다. 결국 소득이 되지 않은 사람들까지 너도 나도 집을 사는 붐이 일면서 주택가격의 거품이 형성되었다. 2008년 갑자기 거품이 꺼지면서 금융기관은 엄청난 부실채권으로 파산의 위기에 처하여 정부가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금융기관을 구제하기에 이르렀다. 자가소유라는 아이디어가 낭비적인 인센티브 시스템을 만들어 내고, 이에따라 사람들이 비효율적으로 움직여 엄청난 사회적 낭비를 만들어 낸 대표적 사례이다.
좋은 아이디어가 좋은 제도를 낳고, 이것이 좋은 인센티브 시스템을 만들면서 사회가 선순환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타당한 면이 있다. 그러나 조건이 맞을 때에만 좋은 아이디어는 좋은 제도로 구체화된다. 이때 적절한 조건이란, 집단간의 이익 구조에 균열이 생길 때이다. 아이디어와 사회 조건 중 어느 쪽이 변화를 위해 더 중요할까? 어느 쪽이 항시 옳다고 일괄적으로 주장할 수없다. 사안에 따라 아이디어가 더 중요한 경우가 있고, 혹은 사회조건이 더 중요할 때가 있다. 사실 좋은 아이디어가 없어서 사회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보다는, 좋은 아이디어가 기득권자가 버티고 있는 사회조건에 가로막혀 제도변화로 이끌지 못할 때가 더 많다. 예컨대 우버가 대표하는 공유경제의 도입과 기존 택시업자간 갈등은 좋은 아이디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변화를 거부하는 사회조건 때문에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저자는 정치경제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에 답하기 위하여 기존의 정치사상과 경제이론을 모두 검토하겠다는데, 황당한 발상이다. 수많은 사상가와 이론가의 주장을 피상적으로 나열하면서 요약해 놓아서, 별로 통찰력을 제공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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