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obert Kagan. 2012. The World America made. Vintage. 140 pages.
저자는 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제2차대전 이래 미국이 만든 세계질서를 설명하고, 이 질서가 무너질 때 새로 들어설 질서는 어떠할지 서술한다. 저자는 미국이 쇠퇴하고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으며, 미국이 만든 세계질서가 역사상 다른 어느 질서보다 나은 것이라고 역설한다.
1930년대까지 인류 역사상 존재한 세계 질서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정글이었다. 19세기를 지배한 강대국간 영향권 sphere of influence 을 나눠 갖는 힘의 질서는, 서로간 생존에 대한 위협이 상존하며, 상대에 대한 두려움과 갈등 및 전쟁이 끊이지 않는 혼돈 chaos 이었다. 강대국 사이에 영향권이 충돌하고 겹치는 부분에서 항시 갈등과 전쟁이 발생하였다. 1, 2차 세계대전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러한 약육강식의 정글에서 각국은 자신의 안위를 스스로 챙겨야 한다. 약자는 강자가 침공하지 않고, 다른 강자의 침공에 대해 보호해주는 것에 대해 댓가를 바치고, 강자의 이익을 위한 요구에 굴복해야 했다. 약자는 강자의 전횡에 최소한이라도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다른 강자와 연대를 맺으며, 강자들 사이에는 힘의 균형 ballance of power 이 유지됨으로서만 전쟁이 예방되었다. 이러한 힘의 균형은 주관적인 측면이 강하며, 국가들 사이에 상대적인 힘의 규모는 항시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힘의 질서에는 갈등과 전쟁의 가능성이 상존하며, 실제 전쟁을 감행하여 서로간 새로운 균형을 정립하는 사이클이 반복되었다.
2차대전 후에 미국의 주도로 만들고 유지된 세계질서는 역사적으로 매우 예외적인 성격의 것이다. 미국은 다른 강대국보다 경제 및 군사적으로 훨씬 우위에 있으며, 다른 강대국과 대양으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직접적인 위협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미국이 옹호한 이념은 자유민주주의로, 이는 각 개인과 나라의 자유, 자율,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며, 타자의 간섭을 반대하고, 권위적 통제보다 민주적 참여를 옹호하고, 폭력보다 평화적 해결을 선호하는 이념이다. 미국은 이러한 자유주의 이념 liberalism 을 기반으로 하여, 제도와 규칙에 기반한 국제 질서를 만들었다. 미국은 이러한 자신이 만든 제도와 규칙을 대체로 스스로 준수했으며, 자유민주주의를 세계 다른 나라에 전파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미국의 이념과 행동은 다른 나라들이 미국을 신뢰하도록 만들었다.
미국은 과거의 강대국과는 달리, 다른 나라들이 미국의 세계 전개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안보를 미국에게 의탁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미국은 유럽과 아시아 등 자유세계 국가들에게 안보 우산을 제공하였으며, 이 나라들은 미국을 신뢰하여 안보를 의탁함으로서 자신의 무장에 드는 비용을 절약하였다. 대부분의 나라들은 자신의 나라나 그 주변에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미국의 개입을 기대하고 요청하였다. 자유민주주의를 옹호하고 평화를 지키기 위한 군사력을 세계 구석구석에 전개한 미국의 노력 덕분에, 2차대전후 많은 나라들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도입하고 확고히 했으며, 미국의 직간접 지원 덕분에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서유럽과 동아시아가 미국이 만든 세계질서의 대표적인 수혜자이며, 이외에도 냉전시절 자유 세계의 대부분의 나라들이, 미국이 만든 국제 환경과 직간접 지원 덕분에 빈곤에서 벗어나고, 정치 안정을 도모하고, 안보를 걱정하지 않고 지냈다.
2000년대 들어와, 미국인들 사이에 오랜동안 미국의 국제 경찰 역할에 피로감이 누적되면서, 국제적 개입을 줄이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이는 미국의 국제적 위상이 과거보다 약화되고, 미국내의 정치 환경이 복잡해지고, 경제적 불평등이 확대되면서 높아진 목소리이다. 2차대전이 종전되었을 때, 미국은 전세계 GDP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압도적인 경제였으나, 1970년대 석유파동 및, 유럽과 일본의 경쟁력이 회복되어 미국의 압도적 경제력이 약화되면서, 미국은 전세계 GDP의 25%이하로 떨어졌다. 1980년대 이래 세계화와 자동화로 미국 경제가 탈산업화 deindustrialization 되면서, 제조업에 종사하던 노동계층은 좋은 잃자리를 잃고 상대적으로 질 낮은 서비스 일자리로 이전하고, 소득이 정체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미국 사회에서 유색인들의 비중이 높아지고, 백인대비 유색인의 상대적인 지위가 과거보다 향상되면서, 중하층 백인의 상대적 박탈감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미국의 국제적 개입을 줄이고 백인 중심의 국가정체성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중하층 백인을 중심으로 높아지고 있다.
일부학자들은 1990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만들어진 미국의 일극체제 uni-polar 세계질서가, 미국의 국제적 위상 약화와 중국의 부상으로 인하여 다극체제 multi-polar 세계질서로 이행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다극체제의 세계질서란, 다름이 아니라 2차대전 이전 인류 역사와 오랫동안 함께한 규범 'norm' 으로 복귀하는 것을 말한다. 힘의 국제 정치, 정글의 세계가 다시 도래함을 의미한다. 유럽에서는 러시아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하여 독일이 재무장할 것이며, 동아시아에서는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하여 일본이 재무장할 것이다. 강대국간에 영향권을 나누어가지면서, 의견 충돌이 발생할 때 갈등과 전쟁으로 이견을 해소할 것이다. 강대국이 아닌 나라들은 강대국의 눈치를 보고, 강대국의 요구에 굴복하고, 강대국에게 다양한 형태의 조공을 바쳐야 할 것이다. 지금은 온순한 독일과 일본이지만, 군사력이 커지고, 외부로부터 위협에 직면하면, 과거와 같은 권위주의적 행태가 다시 고개를 들 것이다. 그러한 세계에서의 삶은 지금보다 훨씬 위험하고, 불안정하고, 힘들 것이다.
저자는 미국의 위상이 약화되고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미국의 위상이 약화되고 있다는 세간의 주장에 하나하나 반박한다. 세계 GDP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 25%는 1970년 이래 지금까지 변함없다. 미국의 정치가 분열되어 마비되었던 경험은 미국 역사에서 여러번 있었다. 미국의 군사력은 세계의 다른 나라와 비교해 여전히 압도적인 수준이며, 중국이 부상하고 있다고 하나 미국의 압도적 우위가 약화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미국의 생산성 향상 속도는, 근래에 정보통신기술이나 인공지능 기술 향상에서 보듯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르며, 매우 다이나믹한 경제 체질을 유지하고 있다. 1970년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패하고, 워터게이트 사태로 정치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고, 중동 석유 산출국의 자원민족주의로 경제가 크게 침체했을 때도 있었으나, 미국은 1980년대에 정보통신기술, 컨테이너 운송기술, 구조조정 등의 기술과 경영의 혁신을 통해, 1990년대에는 다시 높은 생산성과 경쟁력을 회복하였다. 중국이 부상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총생산에서는 미국을 능가할지라도, 국민의 일인당 소득에서는 미국에 크게 뒤떨어진다. 중국은 권위주의 체제의 불안정 때문에 미국과 대등한 국력에 도달할 날은 요원하다.
미국이 2차대전 이후 수립한 자유민주주의 세계질서가 대다수의 세계인들에게 평화와 번영을 가져왔는데, 이는 미국의 압도적 국력에 기반한 것이다. 만일 미국의 상대적 국력이 약화되고, 세계가 다극체제로 이행한다면, 세계인은 물론 미국인에게도 험한 앞날이 도래할 것이다.
이 책은 저자의 역사적 통찰력을 동원하여 미국이 지배한 세계질서를 비교적 공정하게 평가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는 미국의 쇠퇴에 대해 크게 우려하지 않지만, 최근에 발간된 그의 다른 책에서는, 미국에서 반자유주의 anti-liberalism 가 높아지는 근래의 흐름에 대해 매우 염려한다. 트럼프는 절대 권력과 자신의 경제적 이익만을 쫒는 원칙이 전혀 없는 사람인데, 이것이 근래 미국 사회의 반자유주의 운동에 편승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만일 미국에서 자유주의 liberalism 의 이념이 약화된다면, 세계에서 자유주의 이념의 힘은 약화될 것이며, 반면 중국이나 러시아와 같은 권위주의 국가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커질 것이다. 권위주의 정권은 자유민주주의의 확대를 적극적으로 막으려 한다. 왜냐하면 자유민주주의는 권위주의 정권의 존립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이 고립주의로 흐르는 반면, 권위주의 국가가 자유민주주의를 붕괴시키는 데 적극적으로 힘을 쏟는다면, 세계는 갈등과 전쟁의 시대로 접어들 것이다.
이 책에서는 미국이 주도한 국제질서가 세계의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었다고 주장하는데, 미국의 개입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으며 지금도 힘든 상황인 중남미나 중동 사람들은 물론, 미국의 외면 혹은 냉전시 외곡된 개입으로 어려움을 겪은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사람들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데, 과연 그것이 그렇게 사소한 문제인지 의문이다. 중남미, 중동, 아프리카, 등에서 반미 감정이 높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책은 발간된지 시간이 지나서 시의성은 좀 떨어지지만, 현재 전개되는 상황의 배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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