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수영. 2026. 필연적 혼자의 시대. 다산북스. 369쪽.
저자는 사회복지 학자이며, 이 책은 저자가 지난 수년간 한국의 1인가구의 실태를 인터뷰 방식으로 연구한 결과를 바탕으로 하여 혼자 사는 사람들의 삶의 다양한 측면을 검토한다. 1인가구를 대상으로, 일, 여가, 소비, 식생활, 살림, 가족친족 관계, 죽음 등의 주제를 다룬다. 1인가구가 처한 다양한 문제를 검토하면서, 문제에 대처하는 사회적 대안에 관해 실험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1인가구는 한국의 전체 가구 중 36~42%를 차지한다. 지난 수십년간 1인가구가 증가하는 경향은 선진산업국 공통이다. 이는 개인의 선택 때문이기보다 변화된 사회 환경의 소산이다. 개인을 단위로 하는 자본주의 capitalism 의 발달과, 개인의 독립된 정체성, 개인의 가치와 선택, 개인의 자유, 등을 중시하는 개인주의 indicidualism 의 심화라는 경향이 맞물리면서, 개인화 individualization 가 강화된 결과 혼자 사는 사람들이 증가하였다. 시장을 중심으로 하여 개인의 업적과 경쟁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도 이러한 변화에 한 몫했다. 일자리의 안정성이 사라지면서, 동반하는 식솔 부담이 없이 혼자사는 사람의 가볍고 유연한 적응력이 시장 경쟁에서 강점으로 부상하였다.
결혼하지 않고 혼자사는 사람은 결혼한 사람들과 비교하여, 삶에서 일의 비중이 큰 반면, 다른 활동의 비중은 작다. 일에 더 에너지를 쏟기 때문에, 일로부터 얻게 되는 스트레스도 더 크다. 여가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적으며, 여가활동도 노동능력의 재생산이라는 기능적 측면에 그친다. 자신의 자아 통제 부족이나 살면서 겪게 되는 육체적 감정적 손상을 옆에서 지켜보고 도와줄 사람이 없어 취약하다.
혼자사는 사람은 식생활을 포함한 살림살이의 질이 결혼해 사는 사람보다 현저히 낮다. 자기 하나를 위해 살림의 자질구레한 것들을 하는 것을 생략하기 때문이다. 경제적 능력이 되면 가사 서비스를 시장에서 구입하며, 경제적 능력이 되지 않으면 살림의 질을 낮추며 근근히 살아간다. 혼자 사는 사람은 결혼해 사는 사람보다 생활이 불규칙하고 덜 건강하다. 혼자 사는 사람은 스스로를 돌보지 않으면 안되는데, 많은 사람은 이것의 필요성은 느끼지만 실천하기 어렵다. 자신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고 나서야, 능력이 있는 일부 사람들은 자신을 돌보는 데 관심을 갖고 사는 방식을 조정한다.
혼자사는 사람은 부모, 형제, 조카 등 원가족 구성원과 연결을 유지하면서 확대가족의 테두리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50대 무렵이 되어 부모가 죽고 나면 갑자기 원가족과의 끈이 떨어지면서, 사적인 영역에서 진짜 혼자 사는 삶으로 전락한다. 돌봄을 제공할 사람도,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돌봐줄 사람도 없는, 정말 홀로의 삶이 된다.
사회경제적 수준이 높은 사람은 일에 매진하기 때문에, 일을 넘어서 사적인 관계의 망이 좁은 반면, 사회경제적 수준이 낮은 사람은 자신의 부족한 경제 자원을 보완하기 위해 사적인 관계 망이 더 깊은 경우도 관찰된다. 혼자사는 사람들은 자신이 보유한 경제적 자원과 사회적 자원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혼자사는 사람은 자신이 죽은 다음, 자신의 시신을 제대로 수습해줄 사람이 없고, 자신을 기억할 사람이 없다는 점을 염려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서술에서 드러나는 따뜻한 마음은 전해졌지만, 저자의 사회인식에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려웠다. 저자는, 1인 가구가 증가하는 경향은 경제사회문화 환경의 변화가 초래한 필연적 결과인데, 1인 가구의 삶은 결혼하여 자식과 함께 사는 가구보다 삶의 질이 열악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저자의 전제가 맞는 것일까? 전통사회에서는 삶의 방식이 획일적이고, 이 틀에서 벗어나면 문제로 인식하였다. 반면, 근대로 올 수록 삶의 방식이 다양해지고, 개인에게 다양한 선택지가 주어진다. 2인 이상 가구에서도 다양한 삶의 질이 관찰되듯이, 1인 가구에서도 다양한 삶의 질이 관찰된다. 혼자 산다는 것은, 삶의 여러 차원 중 하나에 불과하다. 집단의 구속, 집단 구성원 사이의 차별, 집단을 위한 희생, 등등, 가족의 삶이 반드시 밝은 측면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결혼하는 것을 미루고 주저하다가 혼자사는 삶으로 귀결되는 데, 이들의 인생 길이 반드시 실패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나름 현실적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온 것이다. 여성 중 혼자사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사회적인 억압에 대한 거부의 결과이다. 혼자사는 삶의 긍정적 측면이나, 혼자 잘 사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텐데, 이들은 이 책에서는 아예 언급되지 않는다. 혼자사는 삶을 긍정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또 다른 책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혼자사는 사람의 삶의 질이 결혼해 함께 사는 사람의 삶의 질보다 낮다는 주장은 두가지 가정을 바탕에 깔고 있다. 첫번째 가정은, 혼자사는 것은 물리적으로나 심리적 측면에서 볼 때 함께 사는 것보다 비효율적이고 비기능적이라는 주장이다. 보통사람은 자신의 생활과 마음을 엄격히 관리하고 조절할 능력이 결여되어 있으므로, 배우자 및 자녀와 함께 서로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참견하는 것이 훨씬 기능적으로 좋고 효율적이라는 생각이다. 이러한 주장에 일리가 있으나, 함께 살면서도 엉망으로 사는 사람이 있고, 혼자 살면서도 잘 관리하고 사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혼자사는지 여부가 가장 중요한 결정 요인인지는 의심스럽다.
두번째 가정은, 사람은 태어나서 살면서 후손을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이는 생물계의 일반적인 패턴을 인간에게 투영한 주장이다. 인간은 생물계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의지로 후손 생산을 조절할 수 있다. 전통사회는 자손을 낳고 기르는 것을 사람들의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생각했고, 기독교 세계관은 자손을 많이 나아 번성하는 것을 신의 축복으로 생각했다. 태어나서 자손을 만들지 못하는 사람은 불충분하고 결여된 삶을 사는 것으로 간주했다. 이러한 가정은 서구산업사회에서 최근에야 부정되었다. 자손을 만들지 않는 삶의 방식도 자손을 만드는 것과 대등하게 가치있다는 생각이 점차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구에 인간이 부족하지 않으며, 인간은 자연 환경과 생태계를 파괴하는 가장 위험한 존재라는 점을 사람들이 인정하면서, 자손을 만들지 않는 삶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자손을 만들어야 할 의무가 사라진다면, 혼자 사는 삶이 결혼하여 함께 사는 삶보다 근본적으로 열등하지는 않다. 하지는 않다. 함께 사는 삶의 기능적 문제점을 보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혼자사는 삶의 기능적 문제점를 보완한다면, 삶의 다양성을 확보한다는 면에서 혼자살거나 결혼하여 함께 사는 문제는, 상황에 따라 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된다.
일전에 본인은 스웨덴에서 한동안 머물렀던 적이 있다. 중년 여인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했는데, 그녀는 이혼을 하고 혼자 살고 있는데,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으며, 전남편은 같은 도시에서 살면서 그녀와 자주 교류하는 사이였다. 주말마다 서로의 집을 번갈아 방문하여 함께 지내며, 이 여성이 집안일 등으로 도움을 청하면 전남편이 와서 집안에 자잘한 일들을 도와줬다. 그 여성과 이런 저런 대화를 많이 하였는데, 그녀가 전남편과 다시 합쳐서 살 생각이 있는지 물었더니, 그 녀는 전남편과 가까운 친구 사이로 지내는 지금의 자유가 더 좋다고 답했다. 같은 도시에 사는 성인 자녀는 독립하여 가끔씩 어머니의 집에 찾아와 시간을 보내다 가곤한다. 그 여성의 삶을 가까이에서 보면서, 함께 사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혼자 사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구나 하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혼자사는 것만이 중요한 삶의 결정 요인이 아니라면 다른 무엇이 있을까? 2인가구의 삶과 마찬가지로, 사회경제적 수준, 성, 연령이 역시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도 중요한 삶의 결정 요인이다. 저자도 간간히 언급하지만, 사회경제적 수준의 차이에 따라 사는 양태가 다르고, 여성과 남성의 삶의 양태가 다르고, 젊은 사람과 중년 이후의 삶의 양태가 다르다. 저자는 삶의 영역별로 이야기를 묶었기 때문에, 이러한 구분들이 혼재되어 서술되었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중요한 몇개의 타입은 구분하여 서술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예컨대 사회경제적 수준이 높은 젊은 남성은 사회경제적 수준이 낮은 중년 이후 여성과는 혼자사는 방식이 무척 다르다. 일, 여가, 소비, 살림살이, 친밀한 관계 등 삶의 여러 측면은 서로 연관되어 상호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에, 각각을 따로 떼어 서술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전형적인 타입을 몇개 추출하여 비교 서술한다면, 한국 사회에서 혼자사는 삶의 전체를 보다 더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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