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chard Wrangham. 2019. The Goodness Paradox: the strange relationship between virtue and violence in human evolution. Vintage. 284 pages.
저자는 인류학자이며, 인간이 온순해지는 방향으로 진화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계획적 폭력성은 상존한다고 주장한다. 개나 고양이가 인간이 개입하여 온순하도록 길들여진 반면, 인간은 외적인 개입 없이 스스로 온순해지는 과정을 밟아 왔다(self-domestication hypothesis).
동물의 폭력성은 두가지 종류로 구분된다. 첫째는 상대의 도발에 대해 즉흥적으로 반응하여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이다(reactive violence). 대부분의 폭력적 행동은 이 범주에 속한다. 둘째는 상대의 명시적 도발이 없는 상태에서 미리 계획을 하여 상대를 공격하는 경우이다(proactive violence). 전자가 감정적 흥분 상태에서 하는 행동이라면, 후자는 냉정한 손익, 승패의 계산 하에 하는 행동이다. 계획적 공격을 하는 경우는 침팬지나 늑대 등 소수 고등 동물에게만 관찰된다.
개나 가축을 길들인 과정은, 인간이 개입하여 온순한 후손을 계속 선별하여 온순한 유전자를 가진 후손만을 증식시킨 결과이다. 신석기 시대에 현생 인류가 지구상에 나타난 이래 인간은 꾸준히 온순해졌다, 즉 폭력적 성향이 감소하였다. 이러한 진화의 과정은, 소규모 집단 내에서 두드러지게 폭력적이고 위압적인, 즉 집단의 규범을 크게 위반하는 사람을 제거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집단 내에서 두드러지게 폭력적인 사람을 제거함으로서 집단 구성원들간에 협동이 보다원활해진다. 집단 구성원들 사이에 협동이 원활한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생존력이 높기 때문에 진화의 수레바퀴가 그러한 방향으로 굴러간 것이다.
소규모 집단 내에서 폭력적이고 위압적인 일탈자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덜 힘센 구성원들 사이에 일탈자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모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언어가 발달한 인간들 사이에서만 이러한 정밀한 소통과 집단 행동이 가능하다. 인간을 제외한 동물 세계에서 폭력적인 일탈자를 계획적으로 제거하는 관행이 발달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역사상 존재하는 수렵 채취사회를 관찰해 보면 지위의 불평등도가 낮으며 평등주의 이념을 강력히 옹호하는데, 이는 바로 진화의 결과이다.
인간의 도덕성이란, 집단 규율을 위배하는 사람을 제거하는 진화의 과정을 통해 형성된 심리적 성향이다. 공정함을 추구하는 심리, 자신에게 손해가 가더라도 집단의 규율을 위배하는 사람을 벌 주고 싶어하는 심리, 등이 진화를 통해 형성되었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침팬지에게서는 이러한 심리적 성향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도덕적 성향은 집단의 생존에 도움이 되며, 동시에 그러한 심리를 가진 개인에게도 이익이 된다. 왜냐하면 인간의 도덕성은 자신이 속한 집단으로부터 배제되지 않으려는 욕구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자신이 속한 집단으로부터 포용되고 인정받는 것은 자신의 생존 및 후손의 번영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미리 계획하여 폭력적 공격을 가하는 것은,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집단 규범에 위배하는 구성원을 제거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신이 속하지 않은 집단을 공격하는 경우이다. 동물은 승리의 가능성이 높은 경우에만 미리 계획하여 폭력적 공격을 감행한다. 상대에 비해 압도적 전력을 동원하거나, 혹은 불시에 상대의 허를 찌르는 방식으로 공격하여 승리를 거둔다. 상대와 전력이 대등하거나 상대가 나의 공격을 예상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공격을 감행한다면 나에게 피해가 클 것이기에 결코 공격하지 않는다. 인류가 이웃 나라와 전쟁을 벌이는 것은 동물들의 폭력적 공격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 인류 사회의 가파른 위계구조와 군사 조직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요컨대, 인류의 진화 과정은, 즉흥적 폭력 행사를 지속적으로 줄여왔으나, 그와 함께 계획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과정을 동반하였다. 현대 사회에서는 국가의 폭력 독점과 법치의 결과, 감정적 격발이 초래하는 즉흥적 폭력 행사는 현저히 줄었다. 반면 국가간 충돌에 대규모의 폭력을 동원하는 것은 여전하다. 인간이 과거에 비해 덜 폭력적이라고 단순히 말하기 힘든 이유이다. 자신이 속한 집단을 최고로 생각하고 타집단을 낮추어 보는 부족주의(tribalism), 자민족중심주의(ethnocentrism)가 근래에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으므로 인간의 미래가 밝지만은 않다.
이 책은 저자의 self-domestication 가설을 옹호하는데 전적으로 몰두한다. 무수히 많은 인류학적 서지 사례와 동물행동학의 사례들을 인용하면서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설명하여 읽기가 힘들었다. 절반 정도의 분량으로 했다면 좋은 책이 되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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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iel Gilbert. 2006. Stumbling on Happiness. Vintage books. 263 pages.
저자는 심리학자이며, 이 책은 인간이 저지르는 심리적 오류들을 설명하면서,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가 인간의 심리적 속성에 있다고 주장한다.
감정이란 주관적이다. 동일한 물건이나 상황에 대해 사람에 따라 맥락에 따라 다르게 느낀다. 특정 물체나 상황 자체에 행복감이 내재되어 있지는 않다.
인간의 기억은 과거에 발생한 일에 대해 요점만을 저장한다. 과거의 일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요점을 제외한 많은 부분을 채워넣어야 한다. 축적된 경험과 지식에 의지한 추론으로 세밀한 부분을 채워 넣는다.
과거에 자신이 느낀 감정에 대한 기억은 매우 부정확하다. 사람들은 현재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바탕으로, 과거에 자신이 느낀 감정을 외곡하여 기억해 낸다. 이는 미래를 상상하는 경우에도 동일하다. 미래에 만일 내가 이러저러한 것을 하면 어떻게 느낄지를 상상하는 것은 현재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의해 외곡되어진다. 그런데 미래에 내가 실제 그러한 것을 했다면 느낄 나의 감정은 미리 상상하는 느낌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지금과 그 미래 사이에 다양한 일이 벌어지면서, 지금 내가 상상한 일들이 미래에는 지금 내가 상상하는 것과는 다른 느낌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할 때, 그러한 상황을 긍정적으로 합리화하는 성향이 있다. 미리 상상할 때에는, 그러한 상황에 처하면 불행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그러한 상황에 닥치게 되면 긍정적인 이유를 찾아내서 합리화한다. 타인이 볼 때 불행해 보이는 상황에 처한 사람이 오히려 행복하게 느끼는 이유이다. 세상의 일은 다양한 측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해석에 따라서 다르게 다가올 수있다. 사람들은 세상의 일에 대해 자신의 삶을 긍정하는 측면만을 무의식적으로 선택하여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내가 미래에 어떻게 느낄지를 아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꿈꾸는 상황을 현재 실현한 사람이 느끼는 느낌을 참조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은 타인과 다른 사람이므로 다르게 느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사람은 느끼는 감정에서 서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내가 꿈꾸는 상황을 현재 실현한 사람들은 내가 상상하듯이 그렇게 큰 행복을 느끼면서 살지는 않는다. 따라서 내가 꿈꾸는 상황을 앞으로 실현한다고 해도 그리 크게 행복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자식을 낳고 기르는 것은 고된 일이며 상대적으로 볼 때 큰 행복을 가져오지 않는 행위이다. 그러나 자식이 행복을 가져올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자식을 낳고 기른다. 연구에 따르면 어느 정도 이상의 부는 행복을 가져오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느 정도 부를 이룬 후에도 계속해서 열심히 참고 일한다. 왜냐하면 더 많은 부가 더 큰 행복을 가져올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이렇게 잘못된 믿음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은 진화의 과정에서 사멸했기 때문에, 현재 남아 있는 사람은 잘못된 믿음을 가진 사람들뿐이다.
요컨대, 인간은 행복이라는 신기루를 쫒아서 열심히 달리는 존재이다. 그곳에 도달했을 때 우리가 기대했던만큼의 행복은 찾아오지 않는다. 행복감이란 주관적 감정이므로 물건이나 상황 그 자체에 행복이 있지 않다. 따라서 그러한 물건을 획득하고 상황에 도달한다고 해도 달리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신기루를 쫒아서 열심히 달려가는 것이외에 대안은 무엇인가? 현재의 상황에서 행복을 발견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런데 현재에 만족하고 행복해한다면 열심히 계속 달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사람들이 사는 사회는 번성할 수 없다. 인간의 욕구과 사회의 필요가 어긋나기 때문에, 사회는 인간에게 그릇된 믿음을 심어주었다. 인간은 그러한 그릇된 믿음을 가지고 살도록 프로그램된 존재이다.
이 책은 제목이 주는 인상과 달리 행복에 관한 책이라기보다, 인식, 감정, 기억, 상상에 관한 심리학의 연구결과를 설명한 책이다. 많은 연구 결과를 설명하기 때문에 소화불량에 걸리지 않도록 읽으면서 여러번 되새겨보아야 했다. 논의를 따라가는 것이 때때로 쉽지 않지만, 나름 통찰력이 있고 읽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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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국 (도정일 역). 2010. 순교자. 문학동네. 311쪽.
저자는 재미 소설가이며, 이 책은 1964년에 미국에서 발간된 소설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목사를 중심 등장인물로 하여 종교의 의미를 탐구한다. 무의미한 세계에서 어떻게 의미를 찾으면서 살 것인가? 사람들은 무의미한 고통의 연속을 어떻게 참아내며 살아가는가? 종교는 사람들에게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준다. 사람들은 절망 속에서는 살아 갈 수 없기 때문에, 허위, 환상이라고 할지라도 희망과 의미를 붙잡으려고 발버둥 친다.
핵심 등장인물인 신 목사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고통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여 지도자로서 신망을 얻지만, 막상 본인 자신은 삶의 궁극적 의미는 없다는 '비밀'을 품고 힘들게 살아간다. 이러한 비밀을 견딜 수있는 사람은 많지 않기에, 그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쪽으로, -설사 그것이 거짓이라고 해도-, 이야기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실천한다. 그를 움직이는 힘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책임이다. 그러나 본인은 삶의 무게에 짓눌려 있음을 화자에게 고백한다.
자신을 넘어선 타인들의 삶과 희망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은 목사 이외에 의사에게서도 나타난다. 그들은 대단한 용기를 가진 위인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그들 역시 세상 사람들의 고통에 분노하고 회의하는 보통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결과적으로 그들이 살아가는 동력은 타인을 위해서 헌신하는 데에서 나온다.
소설의 맨 마지막에 화자는 부산의 난민촌에서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목사를 방문하여 그곳에서 열심히 하루하루를 사는 사람들 속에서 그들과 함께 하면서 처음으로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말한다. 삶이란 의미 있는지 여부를 고민한다고 답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사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가운데 답이 찾아온다는 메시지를 제시한다.
긴박한 진행, 수월한 문체, 삶의 의미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 지적이며 논리적인 추구, 등은 마치 외국 작품 같은 인상을 준다. 책을 손에 잡자마자 끝까지 단숨에 다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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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holas A. Christakis. 2019. Blueprint: the evolutionary origins of a good society. Little Brown Spark. 419 pages.
저자는 의사이며 사회학자로서, 이 책은 인간의 사회와 문화는 진화의 결과이며, 모든 인간에게 공통된 유전 인자의 발현임을 다양한 문화, 동물, 실험을 통해 입증한다.
인류의 모든 사회는 공통된 특질을 가지고 있으며, 다음 여덟가지로 요약된다. 각각의 개체성(individual identity)를 인정하고 인식하는 능력, 배우자와 자식에 대한 사랑, 우정, 사회적 네트워크, 협동, 자신이 속한 집단을 편애하는 성향, 어느 정도의 위계질서, 사회적 학습과 교육.
인간의 유전자에 새겨진 이러한 일련의 인간의 특질이 잘 발휘된 사회는 흥한 반면, 이러한 특질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거나 인위적으로 억제한 사회는 쇄하였다. 대양을 항해하다 난파하여 섬에 고립된 사람들의 집단, 이상 사회를 만들려는 의도에서 계획적으로 조직한 사회, 실험이나 인터넷의 가상환경에서 만들어진 사람들의 집단이라는 세가지 경우의 사회를 검토한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사람들 사이에 협동은 사회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데, 사람들의 변화가 거의 없는 환경이나 반대로 사람들의 유동이 매우 심한 환경은 사람들의 변화가 어느 정도 있는 환경보다 협동의 수준이 낮다. 물질적 환경이 열악한 환경에서는 생존을 위해 높은 수준의 협동이 형성되는 반면, 물질적으로 풍요한 환경에서는 협동의 수준이 낮다.
인류 역사에서 일처일부제가 지배한 이유는, 그 이외의 다른 방식의 친밀한 결합, 즉, 일처 다부제, 다처 일부제, 난혼 등이 사람들 사이의 관계와 사회의 존속에 불안정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일처다부제의 사회에서는 짝을 찾지 못하는 다수의 남성이 위험한 행동, 폭력, 범죄에 쉽게 빠져든다.
인간을 포함한 고등 동물은 대부분 친구를 가지고 있다. 친구는 자신과 유전자를 공유하는 친척의 범위를 넘어서서 넓은 범위의 자원에 접할 수 있도록 해주며, 불확실한 미래의 위험에 대비하는 보험의 성격을 띤다.
인간이 각각의 개체성을 인정하고 상대를 인식하는 능력은, 상호적인 협동관계를 형성하기 위하여 필수적이다. 이간의 협동에 대한 본능은 협동에 위배되는 사람을 벌주려는 성향과 함께 한다. 사람들은 나의 이익이 희생되더라도 협동을 위배하는 사람을 벌주려고 나선다. 사람들은 공정을 선호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자신에게 손해가 가더라도 공정하지 못한 분배는 배격한다. 인간의 도덕율의 상당 부분은 인간의 본능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인간의 유전자는 문화의 대체적인 틀을 규정짓는다. 문화와 사회적 규범이 생물학적 유전자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과거에 학자들은 부정했다. 생물학적 결정론이나 환원주의를 경계했다. 그러나 근래로 오면서 인간의 사회활동과 유전자의 연관을 긍정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인간은 근래로 올수록 덜 폭력적이고, 문화와 지식의 축적을 통해 물질적으로 더 풍요롭고, 서로를 인정하고 관용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이러한 긍정적 변화는 유전자와 문화가 상호작용하면서 진화한 결과이다. 진화하는 인간의 미래는 밝다.
이 책은 인간과 동물의 진화와 관련하여 엄청나게 많은 다양한 사례를 인용한다. 유사한 많은 정보를 망라하면서 길게 길게 서술하여 독자의 인내력을 힘들게 한다. 앞에서 본듯한 비슷한 이야기가 반복하여 나오기에 다 읽어내느라 무척 힘들었다. 절반 정도의 분량으로 썼다면 훨씬 좋은 책이 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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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an Krueger. 2007. What Makes a Terrorist: Economics and the Roots of Terrorism. Princeton University Press. 175 pages.
저자는 저명한 경제학자이며, 이 책은 "어떤 사람이 왜 테러리스트가 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경험 데이터를 이용하여 경제학적 분석을 시도한다.
일반적으로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이 삶의 다른 수단이 막혀서 테러리스트가 된다고 생각하는데,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테러리스트는 그 나라 사람들의 평균보다 교육 수준이나 소득 수준이 훨씬 높은 사람들로 밝혀졌다. 테러리즘이란 이념적 정치적 불만을 폭력적 행위를 통해 표출하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은 먹고살기에 허덕이기 때문에 이념적 정치적 불만에 신경쓸 여유가 없다. 반면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은 지정학적 문제나 돌아가는 상황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자기 나름대로 판단할 능력이 있다. 테러리즘은 투표 행위와 유사하다. 교육 받은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가 유효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투표를 한다. 테러리즘 역시 투입하는 노력에 대비한 결과를 생각할 때 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참여하는 것이다. 테러리즘은 매우 계산적 합리적 행위이다. 상대에 대해 전면적으로 폭력을 사용하여 전쟁을 벌일 능력이 없는 힘이 크게 불균형한 관계에서, 약자가 강자에게 자신의 의지를 효과적으로 발휘하는 행위가 테러이다.
테러리스트는 대체로 시민의 권리와 민주주의를 보장하지 않는 나라에서 나온다.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며 국민의 의견을 존중하는 나라에서는 국민이 자신의 이념적 정치적 불만을 제도권 내에서 소화할 수 있다. 그러나 권위주의 국가에서는 이러한 통로가 막혀 있으므로 제도권 밖의 폭력적 수단에 의지해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낸다.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는 국제적 테러의 경우, 테러의 대상은 거의 대부분 정치적 민주주의가 확립된 나라들이다. 테러를 통해서 국민의 여론을 들끓게 하는 효과를 노리기 때문에,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고 정부가 국민의 여론에 민감한 민주주의 국가에서 테러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국제적 테러리스트를 배출하는 나라 역시 상대적으로 가난하지 않다. 예컨대 국제적 테러리스트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소득 수준은 높으나 국민을 억압하는 권위주의 국가이다. 국민의 소득 수준과 테러리스트 배출은 상관관계가 없다.
테러는 얼마나 성과가 있을까? 장기적으로 볼 때 경제적 효과는 크지 않으며, 심리적 효과 역시 테러가 발생한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빠르게 소멸된다. 정치적 영향은 조금 복잡하다. 선거 직전에 테러가 발생하면, 우파와 극단주의의 지지도가 높아진다. 미국에서 2001년 9.11 테러 이후 부시 대통령은 국민의 인권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하였으며, 외국인과 이민자를 배척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민주주의가 후퇴하였다.
테러는 테러리스트의 입장에서 볼 때 투자한 비용에 대비해 성과가 큰 전술이다. 테러리즘을 예방하기 위해서, 교육 수준을 높이고 빈곤을 없애려고 하는 것은 직접적으로 큰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그보다는 시민의 권리를 높이고, 이념적 정치적 불만이 평화적으로 표출될 수 있도록 출구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저자는 테러리즘이 빈곤의 소산이 아니라는 사실을 경험적 데이터로 입증함으로서, 기존의 상식을 뒤집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이 완전히 옳지는 않다. 개인의 수준에서 보면 테러리스트는 그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이기 때문에, 테러리스트는 빈곤의 소산은 아니다. 그러나 사회의 수준에서 보면 불평등도가 높고 국민들이 가난할수록 시민의 권리 보장이나 민주주의가 뿌리내리기 어렵고 권위주의 정치가 지배하기 때문에, 테러리즘은 근본적으로 빈곤과 불평등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저자도 이러한 점을 책의 후반부에서 인정하고 있다. 이 책은 교양서라기보다는 학술서에 가깝다. 이 책은 경험 데이터에 근거한 엄밀한 분석을 통해 사람들이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상식이 틀렸음을 밝힌 흥미로운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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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 Bekoff. 2007. The Emotional lives of animals. New World Library. 166 pages.
저자는 생태학/진화생물학자이며, 이 책은 동물도 사람과 유사하게 감정을 가지고 있음을 여러 연구 결과를 인용하면서 역설한다. 동물이 사람과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한다면, 사람들이 동물을 취급하는 방식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이나 동물은 모두 주위 상황에 효율적으로 대응하는 방식으로 감정을 진화시켰다. 특히, 사회생활을 하는 동물에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남의 감정을 파악하는 것은 생존을 위한 효과적 의사소통을 위해 필수적이다. 동물의 감정은 생존에 필수적인 일차적인 감정과 덜 중요한 이차적인 감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전자에는 고통, 공포, 분노, 쾌락, 등이며, 후자에는 슬픔, 질투, 권태, 호기심, 등이다. 생물 세계의 진화의 연속선 상에서 인간은 동물과 감정 능력을 공유한다. 인간과 동물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감정을 느끼는 능력에서는 동일하다.
동물도 공정함(fairness)과 공감(empathy)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 동물의 놀이 과정에 내포된 감정을 연구한 결과, 놀이 과정에서 암묵적으로 합의된 공정한 규칙(fair play)을 지키는 것은 동물에게도 중요하게 여겨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동물은 놀이 과정을 통해 협동하는 능력을 기른다. 진화의 원리를 적자생존의 경쟁으로만 보는 것은 옳지 않다. 경쟁과 협동이 함께 할 때 생존의 가능성이 커진다. 동물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타자의 감정을 추체험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자신을 타인의 입장에 놓고 그가 느끼는 감정을 자신도 공감한다.
사람들은 애완 동물을 상대할 때에는 동물이 감정을 지니고 있음을 직관적으로 안다. 그러나 자신의 애완 동물을 상대하는 상황이 아닌 경우, 동물을 감정 능력이 없는 물건으로 취급한다. 과학자들은 실험 동물을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물건과 같은 존재처럼 취급하며, 가축을 기르는 사람들은 잔인한 방법으로 동물을 대우한다. 그들이 자신의 애완견이었다면 그렇게 했겠느냐고 저자는 질문한다. 동물이 인간과 마찬가지로 감정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동물을 잔인하게 취급해서는 안된다. 그들의 감정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동물을 대해야 한다. 과학 실험을 위해, 인간의 식생을 위해 동물에게 고통을 주는 것을 최소화해야 한다.
저자는 책 전체를 통해 동물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역설한다. 동물이 인간과 동일하게 느낀다는 사실은 기독교가 인간을 동물과 구별된 특별한 존재로 보는 교리에 반하므로, 사람들이 좀처럼 이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동물과 인간이 특별히 구별되지 않으므로, 그가 동물과 인간이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역설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게 여겨진다.
동물이 감정이 있다고 해서 동물을 덜 잔인하게 취급해야 한다는 논리로 연결되지 않는다. 인간이 감정이 있다고 하여 인간이 서로를 잔인하게 죽이고 착취하는 관행이 사라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인간이 동물을 잔인하게 취급하는 이유는 동물이 감정이 없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대를 무자비하게 대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상대가 자신과 외양이 다르면 다를수록 죄책감을 덜 느끼면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대를 이용한다. 백인들은 자신과 외양이 다른 흑인들을 착취하며, 흑인보다 자신과 외양이 더 다른 존재인 동물을 훨씬 더 심하게 착취한다. 저자의 순수한 마음은 이해하지만, 동물 복지를 높이는 일은 동물이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 만으로는 크게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지구상에서 인간이 줄어드는 것이 동물 복지를 높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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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mas Watson Jr. 1990. Father, Son & Co.: My life at IBM and beyond. Bantam book. 446 pages.
저자는 IBM 회사의 2대 회장이며, 이 책은 IBM 회사의 성장에 관한 이야기를 일인칭 시점에서 인간적 삶에 촛점을 맞추어 쓴 자서전이다.
저자의 아버지, 즉 IBM의 창업자는 1900년대 초반 저울과 시계를 제작 판매하는 작은 회사의 세일즈맨으로 시작했다. 그는 이 회사에서 별로 주목받지 못하던 제품이던 기계식 계산기의 중요성을 일찌기 간파했다. 그는 회사를 인수하고 기계식 계산기 사업을 크게 일으켰, 저자가 아버지가 일군 회사에 들어갈 무렵에는 상당한 규모의 회사로 성장했다.
저자는 학창시절 별로 우수한 학생이 아니었으며, 아버지의 연줄로 브라운 대학에 간신히 입학하였다. 대학시절 학교생활에 흥미를 붙이지 못하고 여자와 파티를 전전하며 시간을 보냈으며, 자신의 미래에 불확실한 불안감으로 가득찼다. 대학 졸업후 공군에 입대하여 비행기 조종사가 되었으며, 장군의 눈에 들어 러시아를 횡단하는 미션에 참여하면서 자신감을 얻게 된다.
전역후 아버지의 회사에 들어가 아버지의 밑에서 회사 경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회사가 기계식 계산기에 주력하던 시절, 일찌감치 전자식 계산기, 즉 컴퓨터의 잠재력에 눈떴다. 아버지를 포함한 회사의 기존 경영진의 반대를 무릅쓰고 회사의 미래를 컴퓨터 분야로 전환하는데 성공함으로서 독립적 경영 능력을 입증하였다. 컴퓨터가 개발된 초기 단계에, 마침 미국이 전쟁에 참전하여 컴퓨터에 대한 정부 수요가 급속히 늘어난 기회를 IBM은 공격적으로 포착하였다. 저자의 판단은 맞아떨어져, 정부의 대규모 수요 덕분에 IBM 은 컴퓨터 분야에서 가장 먼저 대량 생산 체제를 구축하였으며, 이후 민수용 컴퓨터 분야에서 압도적인 지위를 획득하게 되었다. IBM은 1950~1960년대에 컴퓨터 확산의 황금기를 거치면서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였다.
저자의 아버지, 즉 1대 창업자는 노년이 되어서도 회사의 경영권을 자식에게 물려주려 하지 않았다. 저자와 아버지는 둘다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로, 회사 경영을 둘러싸고 부딛치고 화해하기를 반복하였다. 결국 아버지가 죽기 바로 직전에야 아버지로부터 최고 경영자의 지위를 물려받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저자의 남동생이 IBM 의 해외 사업을 독립적으로 운영할 수 있록 조정하였다. IBM은 그러한 아버지의 조치와 동생의 유능한 경영 능력 덕분에 미국내의 사업 못지 않게 해외 사업이 별도로 큰 규모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조치는 국내 사업을 담당하는 저자와 해외 사업을 담당하는 남동생 간에 간극을 만들었으며, 남동생이 저자보다 먼저 죽을 때까지로 둘 간에 감정적 거리를 지속하였다.
저자는 50대 중반에 심장마비 증상을 겪으면서 경영 일선에서 은퇴하였다. 급속한 속도로 성장하는 회사를 운영하는 스트레스가 그의 건강을 악화시켰음을 깨닫고, 은퇴 이후에는 한동안 요트를 타고 비행기를 조정하면서 여행을 다녔다. 한편, 그는 기업가로는 드물게 진보적 이념의 소유자였으므로, 1960년대 케네디 대통령 시절부터 민주당 정치인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1970년대 연방 정부의 핵무기 관련 대통령 직속 위원회를 맡았으며, 이후 그의 공적 역할은 카터 대통령 시절 소련 대사직으로 이어졌다.
이 책은 미국의 대표적 기업가의 성장 과정을 회사와 인간적인 면모의 양쪽에서 비교적 솔직히 서술한다. 미국에서 한 시대를 풍미하며 성공한 사람의 삶과 그를 둘러싼 사건의 다양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경쟁을 추구하는 냉혹한 기업가의 면모가 가끔씩 엿보이나, 자서전 답게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그려진다. 대부분의 큰 성공이 그러하듯, IBM의 성장 역시 시대의 변화가 제시하는 중요한 기회를 포착한 것이 핵심이었다. 저자가 특별한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고 느껴지지 않으며, 거대한 기업을 일구고 운영하는 것 역시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의 곳곳에서 미국의 상류층 생활 방식을 읽을 수 있다. 그는 돈과, 지위, 명예, 권력, 요트, 별장, 비행기, 아름다운 아내, 많은 자식, 등 그야말로 모든 것을 얻은 사람이다. 세상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새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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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경. 2012. 나는 매일 은퇴를 꿈꾼다. 샘터. 267쪽.
저자는 노인복지를 전공한 학자이며, 이 책은 이론적 지식에 풍부한 현장 연구경험을 잘 조합하여 일반인이 읽기 쉽게 쓴 고급교양서이다. 저자 자신이 수년 후 은퇴를 맞이할 것이기에, 타인의 사례를 설명하면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행간에 녹아있다.
은퇴 후의 노인을 독립적인 인간으로 보아야 하며, 은퇴 후의 삶 또한 그러한 시각에서 계획해야 한다. 노인이란 젊은이와 마찬가지로 한 인간으로서 독립적이며 의미있는 삶을 추구하는 존재이다. 현직에서 떠났기에 젊은이와 비교해 활동의 강도나 종류에서 차이가 있지만 추구하는 바는 같다. 은퇴자도 주위로부터 인정받으려 하며, 가족을 포함한 주위 사람들과 전인적인 교류를 원한다.
노년의 삶을 잘 살기 위해 돈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하는 일이다. 물질적으로 혹은 정서적으로 남에게 의존하려 하면 자존감을 지킬 수 없으며, 남에게 휘둘리기 때문에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기대하기 어렵다. 자식과 배우자에 완전히 매몰되지 않고, 어느 정도 심리적 거리, 내지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 필요한 지식을 배우고, 일하고, 노는 것, 이 세가지가 적절히 배합된 삶의 방식을 일생동안 유지해야 한다. 개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배우고, 일하고, 노는 내용과 강도가 다르겠지만, 일생 어느 시기라도 어느 한 부분을 게을리하면 반드시 문제가 따른다. 여기서 일은, 반드시 돈되는 일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전세대에 비해 교육과 소득수준이 크게 높은 베이비부머는, 노인, 은퇴자에게 붙어있던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개척해야 한다. 은퇴 후의 삶을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꾸리려고 노력한다면 그렇게 만들 수 있다. 은퇴 후의 삶을 하나의 틀로만 재단하는 것은, 실재로 다양한 사람들이 만들고 있는 다양한 삶의 방식을 간과하는 것이다. 은퇴 후의 삶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소극적으로 살던 사람이라도 본인이 노력하면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다.
이 책은 전공자가 자신의 일생의 연구 결과를 잘 녹여서 읽기 쉬운 글로 쓴 훌륭한 작품이다. 저자의 진심이 담겨 설득력이 있고, 흥미롭고 쉽게 읽히는 글 솜씨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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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경. 2021. 은퇴의 말: 남자가 은퇴할 때 후회하는 25가지. 교유당. 249쪽.
이책은 저자가 과거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일할 때 수행했던 은퇴자 관련 면담조사 연구를 바탕으로 썼다. 한국의 남성 은퇴자들이 은퇴하고 나서 과거 현역시절 자신의 삶에 대해 후회하는 사항을 기술한다.
일밖에 모르고 살았고, 자신의 건강과 감정에 신경을 쓰지 않았고, 가족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데 시간과 정성을 투자하지 않았다. 그 결과 그야말로 아무런 준비없이 은퇴를 맞이하여, 과거에 그렇게 살았던 자신을 후회한다. 현역시절에 제법 성공한 사람은 물론 힘들게 일하며 살았던 사람까지 다양한 양태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총 25개의 꼭지 중 맨마지막 장에서만 돈 문제를 언급한다. 은퇴 후의 삶을 의미있게 살기 위해 돈은 중요하지만, 돈만이 전부는 아니다. 은퇴후에 무엇을 하며 살지, 가족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과 어떻게 어울려 살지를 미리미리 대비해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면 한국의 일반 남성 가장의 삶, 그들의 내면의 생각과 감정을 엿보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저자의 주장과 같이 은퇴 후를 미리미리 준비하면서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들었다. 한국의 남자들이 그렇게 산 것은 그들의 욕심과 어리석음 때문도 있지만, 그들이 처한 집단 규범, 주변으로부터 보이지 않는 압력의 결과가 아니었을까? 거의 대부분의 사람은 - 아무리 예상되는 일이라고 해도- 일이 닥치기 전까지 미리 대비하지 못하고 사는 것이 일반적이다. 은퇴 후를 의미있게 살기 위해 미리 자신의 삶을 조정할 능력이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 것이다. 여하간, 저자의 정갈한 글 솜씨에 홀려, 책을 잡자마다 단숨에 읽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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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경. 2021. 은퇴의 맛: 은퇴 전문가 한혜경의 지지고 볶는 은퇴 이야기 28가지. 교유당. 261 쪽.
저자는 과거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근래에 은퇴하였으며, 이 책은 은퇴를 하고 나서 자신과 삶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겪은 생각과 감정을 기술한 글의 모음집이다. 현직 교수 시절에 10년 동안 은퇴자들에 대해 심층 인터뷰 조사연구를 한 것이 바탕에 녹아 있다. 많은 은퇴자들의 경험을 들여다 보았기에, 자신의 은퇴 경험을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었다. 주변 사람과의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은퇴자의 경험을 이야기 한다.
스트레스 쌓여 바쁘게 살던 현역 생활에서 벗어나게 됬을 때, 과거 나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더 투명하게 잘 보인다. 은퇴자의 생활이란 자신이 즐겨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무리하지 않고 하는 것이 최선이다. 은퇴해서는 젊었을 때와 달리, 목표를 향하여 전력 질주하는 것이 미덕이 아니다. 욕심을 부리지 말고, 자신의 주제에 맞는 정도로 살아야 한다. 사회의 규범과 틀을 의식하면서 그에 맞추어 살려고 하는 것은 바른 은퇴 생활이 아니다.
저자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비교적 솔직하게 드러내는 용기를 가지고 있으며, 매끄럽게 글을 써서 읽는 재미가 있다. 행간에서 저자의 개성과 인간미가 드러나, 한 사람을 새로 알게 되는 맛이 있다. 저자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다양한 관심을 기르려 노력하기에 흥미롭고 내용이 있는 글을 쓸 수 있었으리라. 참 오랜만에 글을 읽으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자신의 재능이 대단치 않다고 버릇처럼 언급하지만, 글쓰는 능력이 출중한 사람이다. 우연히 책을 손에 잡고 단숨에 끝까지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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