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혜경. 2021. 은퇴의 말: 남자가 은퇴할 때 후회하는 25가지. 교유당. 249쪽.
이책은 저자가 과거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일할 때 수행했던 은퇴자 관련 면담조사 연구를 바탕으로 썼다. 한국의 남성 은퇴자들이 은퇴하고 나서 과거 현역시절 자신의 삶에 대해 후회하는 사항을 기술한다.
일밖에 모르고 살았고, 자신의 건강과 감정에 신경을 쓰지 않았고, 가족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데 시간과 정성을 투자하지 않았다. 그 결과 그야말로 아무런 준비없이 은퇴를 맞이하여, 과거에 그렇게 살았던 자신을 후회한다. 현역시절에 제법 성공한 사람은 물론 힘들게 일하며 살았던 사람까지 다양한 양태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총 25개의 꼭지 중 맨마지막 장에서만 돈 문제를 언급한다. 은퇴 후의 삶을 의미있게 살기 위해 돈은 중요하지만, 돈만이 전부는 아니다. 은퇴후에 무엇을 하며 살지, 가족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과 어떻게 어울려 살지를 미리미리 대비해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면 한국의 일반 남성 가장의 삶, 그들의 내면의 생각과 감정을 엿보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저자의 주장과 같이 은퇴 후를 미리미리 준비하면서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들었다. 한국의 남자들이 그렇게 산 것은 그들의 욕심과 어리석음 때문도 있지만, 그들이 처한 집단 규범, 주변으로부터 보이지 않는 압력의 결과가 아니었을까? 거의 대부분의 사람은 - 아무리 예상되는 일이라고 해도- 일이 닥치기 전까지 미리 대비하지 못하고 사는 것이 일반적이다. 은퇴 후를 의미있게 살기 위해 미리 자신의 삶을 조정할 능력이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 것이다. 여하간, 저자의 정갈한 글 솜씨에 홀려, 책을 잡자마다 단숨에 읽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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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경. 2021. 은퇴의 맛: 은퇴 전문가 한혜경의 지지고 볶는 은퇴 이야기 28가지. 교유당. 261 쪽.
저자는 과거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근래에 은퇴하였으며, 이 책은 은퇴를 하고 나서 자신과 삶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겪은 생각과 감정을 기술한 글의 모음집이다. 현직 교수 시절에 10년 동안 은퇴자들에 대해 심층 인터뷰 조사연구를 한 것이 바탕에 녹아 있다. 많은 은퇴자들의 경험을 들여다 보았기에, 자신의 은퇴 경험을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었다. 주변 사람과의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은퇴자의 경험을 이야기 한다.
스트레스 쌓여 바쁘게 살던 현역 생활에서 벗어나게 됬을 때, 과거 나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더 투명하게 잘 보인다. 은퇴자의 생활이란 자신이 즐겨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무리하지 않고 하는 것이 최선이다. 은퇴해서는 젊었을 때와 달리, 목표를 향하여 전력 질주하는 것이 미덕이 아니다. 욕심을 부리지 말고, 자신의 주제에 맞는 정도로 살아야 한다. 사회의 규범과 틀을 의식하면서 그에 맞추어 살려고 하는 것은 바른 은퇴 생활이 아니다.
저자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비교적 솔직하게 드러내는 용기를 가지고 있으며, 매끄럽게 글을 써서 읽는 재미가 있다. 행간에서 저자의 개성과 인간미가 드러나, 한 사람을 새로 알게 되는 맛이 있다. 저자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다양한 관심을 기르려 노력하기에 흥미롭고 내용이 있는 글을 쓸 수 있었으리라. 참 오랜만에 글을 읽으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자신의 재능이 대단치 않다고 버릇처럼 언급하지만, 글쓰는 능력이 출중한 사람이다. 우연히 책을 손에 잡고 단숨에 끝까지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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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 Walton. 1992. Sam Walton: Made in America, My story. Doubleday. 260 pages.
이 책은 월마트의 창업자 샘 월튼의 자서전이며, 그가 어떻게 오늘날의 월마트를 만들었는지 연대기적으로 서술한다. 그는 하는 일에 열정적이고, 부지런하고, 절약하며, 보다 나은 방향으로 변화를 쉼없이 추구하며, 경쟁을 통해 향상된다는 철저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2차대전 중 군복무를 끝내고 잠시 JC Penny 등에서 일하다가, 아칸소주의 소도시에서 잡화점을 여는 것으로 본격적인 상인의 길에 들어선다. 경쟁 업체의 보다 효율적인 운영 방식을 모방하여 자신의 사업을 개선하는 노력을 일생동안 기울이면서, 궁극적으로 업계에서 최고로 효율적인 소매업체로 올라서게 되었다. 그는 어느 곳에 가던 항시 남의 점포를 방문하여 면밀히 살피고 배울점을 찾았다. 세계에서 자신보다 소매 점포를 더 많이 방문한 사람은 없다고 장담한다.
최소한의 이문을 붙여 대량으로 판매하는 대형 할인점의 개념을 본격적으로 적용하여, 미국의 중부지역 소도시 전역에 월마트를 입점시켰다. 그당시 전국적 판매망을 구축한 선도적인 대형 할인점 K-Mart 는 중부지역의 소도시에는 진출하지 않았기 때문에, 샘 월튼은 1960~70년대에 매우 빠른 속도로 월마트 체인을 확장하면서 대형 소매회사로서 본격적으로 체제를 다질 수 있었다.
그는 철저하게 경쟁의 우수성을 신봉하는 사람이다. 경쟁을 통해 참여자 모두가 최선의 것을 만들어낸다. 상황은 계속 변화하므로, 변화하는 환경에 맞추어 최선의 방식을 찾아 변화하지 않으면, 경쟁에 뒤지게 되고, 결국 망하는 것은 당연하고 바람직하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효율과 생산성이 계속해서 높아지는 것이다. 대형 할인점이 생기기 이전 잡화점 시절 판매가는 도매가격에다 35~40%를 더하는 수준이었는데, 월마트는 이 마크업을 22%로 떨어뜨렸다. 소매점 업계는 일반적으로 매출의 6%이상을 운영경비로 지출했는데, 월마트는 이를 2~3%로 낮추었다. 이렇게 향상된 효율성은 순전히 경쟁 덕분에 만들어 질 수 있었다.
그는 고객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였다. 월마트가 입점하는 도시에서 기존의 소매 점포들이 문을 닫는 현상을 둘러싸고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그는 이러한 비판에 대해 고객의 이익에 최고로 기여하는 점포는 살아남고, 그렇지 않은 점포는 문을 닫는 것이 당연하다고 반박한다. 대형 할인점이 제공할 수 없는 전문 서비스나 특화된 상품을 취급하는 점포가 아니라면 월마트와의 경쟁에 패하여 사라지는 것이 지역 주민의 입장에서 바람직하다. 월마트 덕분에 지역 주민들은 효율적으로 운영하면서 다양한 구색을 갖춘 상점에서 좋은 품질의 제품을 싸게 많이 살 수 있게 되어 삶의 질이 높아졌다. 월마트는 지역에 입점하면서 그 지역의 사람들을 종업원으로 고용하였는데, 미국 전체적으로 백만명 이상의 고용을 창출하였다. 지역의 비효율적으로 운영되는 상점이 문닫는 대신, 지역 주민의 삶의 질이 높아지고 고용을 창출한 것이다.
월마트는 경쟁 업체와 비교하여 철저하게 운영비를 절약함으로서 가장 싼 가격을 제공할 수 있었다. 월마트 종원원의 보수가 동종 업체와 비교하여 결코 후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월마트는 종업원에게 점포의 경영 정보를 완전히 공개하였으며, 종업원 주식 참여제도나 이익 분배제도를 통해 회사에 대한 참여와 애사심을 높이려 했다. 샘월튼을 비롯한 경영진들이 점포의 종업원들의 의견에 항시 귀기울이고 현장의 건의와 문제에 성실하게 대응함으로서 노사가 소원해지는 상황을 예방할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 샘 월튼이, 경쟁을 통한 향상을 얼마나 신봉하고, 현장과 소통하는데 얼마나 노력했는지에 감동하게 된다. 비록 그는 경쟁자를 철저히 짓밟아버리고, 성과를 올리도록 종업원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준 냉혹한 경영자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러한 경쟁을 거치면서, 다른 어느 누구도 해내지 못한,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효율적으로 운영되는 소매점 왕국을 만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상생이라는 명목으로 대형 점포의 진출을 법으로 금하고 있는데, 그 때문에 한국의 유통업의 생산성은 매우 낮다. 효율적으로 운영되는 대형 점포가 없는 지역에서 지역 주민은 낮은 품질의 제품을 비싼 가격에 구입하여야 함으로 소비자의 삶의 질은 그만큼 낮을 수 밖에 없다. 비효율적으로 운영하는 자영업자를 효율적으로 운영되는 회사의 종업원으로 바꾸는 과정을 언제까지고 회피한다면, 결코 풍요로운 선진국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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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2010. 세계문화전쟁: 팍스 아메리카나와 글로벌 미디어. 인물과 사상사. 384쪽.
저자는 신문방송학과 교수이며, 이 책은 미국의 대중문화가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현상을 집중적으로 논의한다. 미국 대중문화가 세계적으로 지배력을 획득하는 원인을 제시하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대표적인 분야를 차례로 검토한다. MTV, 미국 드라마, 애플의 디지털 기기, 구글, 위키피디아, SNS, CNN, 국가브랜드, 문화 민족주의, 유네스코의 문화다양성 협약, 한류 등의 주제를 장을 바꾸어 차례로 검토한다.
문화는 하드파워에 뒷받침을 받는 소프트 파워이다. 미국의 대중문화가 세계적으로 지배력을 행사하는 이유는 미국의 군사력, 경제력과 연관된다. 근래에 한류가 아시아 및 개발도상국에서 뜨는 이유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대중문화의 국제적 확산에는 부정과 긍정적 측면이 공존한다. 문화적 정체성, 문화적 다양성을 위협하는 측면과 함께, 문화적 보편성, 엔터네인먼트의 효율성을 높이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 대중문화는 근본적으로 자본주의 경제 원리에 따라 작동되며, 국제적 확산 역시 자본의 논리가 바탕에 깔려 있다. 그러나 미국 문화의 확산으로 인한 문화의 획일화 경향에는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항시 새로운 것을 찾기 때문에.
이 책은 인용문을 계속 조합하면서 자신의 말을 간간히 끼워넣는 저자의 글쓰기 방식을 답습하고 있지만, 그의 다른 책에 비교하여 논의의 촛점이 뚜렷하며 깊이 있는 논의를 한다. 자신의 말로 일관되게 쓴 책보다 잡다한 인용문을 계속 따라가는 것이 독자에게 힘들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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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2013. 대중문화의 겉과 속. 전면 개정판. 인물과 사상사. 454쪽.
저자는 신문방송학과 교수이며, 이 책은 대중문화의 이론에서부터 시작하여 한국의 대중문화와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대중문화 이론 논쟁, 스타 시스템, TV, 영화, 세계화, 대중가요, 광고, 기술과 미디어, 인터넷, 언론, 등이 다루어진다. 저자는 현재 한국의 대중문화와 관련된 핵심적 의문을 제기하고, 이러한 의문에 대해 전문가들의 견해를 나열하면서 중간 중간에 자신의 견해를 짜집기해 끼워 넣는다.
대중문화에는 긍정과 부정이 교차한다. 다수의 욕구에 부응한다는 면에서 긍정적이나, 서구의 고전적 가치에 반한다는 면에서 부정적이다. 대중문화는 자본의 이익추구에 기여하면서 거대한 산업으로 발전했다. 대중의 편안함과 호기심 충족에 기여하는 대중문화는 대중의 삶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대중의 삶은 깊이 생각할 여유가 없다. 대중문화는 지루하거나 골치아픈 문제를 피하도록 도와준다. 긍정이건 부정이건, 대다수의 현대인은 거의 전적으로 대중문화에 휘감겨 산다.
직접적인 인용을 중심으로 글을 전개하기 때문에, 분석적인 깊이와 글의 호흡이 얕은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저자의 생산성에 감탄할 수 밖에 없다. 생각의 재료를 모아놓은 책이란 느낌이 든다. 이러한 재료를 소화해서 자신의 말로 일관되게 풀어놓았다면, 훨씬 읽기 쉽고 설득력이 있는 글이 됬었을텐데 하고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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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eph Nye, Jr. 2011. The Future of Power. Public Affairs. 234 pages.
저자는 국제정치학자이며, 이 책은 그의 hard power v. soft power 논의를 종합 정리하고, 미국의 국제적 지위를 진단한다.
power는 분야에 따라 구분되어야 한다. 안보 분야에서 군사력이 power의 핵심이지만, 경제, 문화, 과학 기술 등의 분야에서는 별도의 power 가 존재한다. power 는 상대가 누구냐에 좌우된다. 절대적인 수준이기보다는 상대와 비교해 나은 정도가 power이다. power 는 얼마나 자원을 많이 보유하는가 하는 측면과 함께, 이러한 자원을 실제 행위로 어떻게 전환하는가 하는 측면을 포함한다. power 는 상대를 내가 원하는 대로 하도록 직접적으로 강압하는 측면과 함께,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아젠다를 설정하고, 상대를 설득하고, 상대가 나에게 자발적으로 유인되도록 하는 간접적인 측면을 포함한다. 상대가 나에게 유인되는 문화적인 힘, 소프트 파워는 하드 파워를 전제로 한다. 소프트 파워와 하드 파워가 잘 결합된 형태를 스마트 파워 smart power 라고 정의하면서, 소프트 파워가 함께 갈 때 하드 파워도 강화된다고 주장한다.
21세기에 들어 인터넷과 정보통신의 영향이 확대되면서 power 의 원천은 확산되고 있다. 정보에 접하고, 정보를 생산하는 비용이 낮아지면서, 과거와 같이 정보를 독점하는데에서 나오는 힘은 상대적으로 줄어든 것이다. 1991년에 소련이 무너지면서 일시적으로 세계에서 미국은 독보적 지위에 올라섰지만, 이후 BRIC, 특히 중국의 부상으로 미국이 세계에서 점유하는 비중은 줄어들었다. 미국은 과거와 같이 세계위에(over) 지배하기보다 세계의 다른 나라들과 더불어(with) 지도적 역할을 하는 위치에 머물게 되었다. 미국은 군사력 분야에서는 절대적 파워를 가지고 있지만, 경제, 문화, 과학 기술 등에서는 그에 못미치며, 환경, 에너지 등의 문제에서는 파워가 약하다.
세계에서 현재 미국이 차지하는 지배적 지위(hegemony)가 앞으로 중국으로 이전할 것인가, 혹은 세계에서 미국의 힘이 쇠퇴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 저자는 부정적으로 답한다. 미국의 지위는 앞으로도 한동안, 적어도 21세기 전반부에는 쇠퇴하거나 중국으로 대체되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로, 미국의 군사력은 압도적이고, 미국의 경제는 생산성 향상을 멈추지 않고 있으며, 이민자가 계속 들어오고, 미국의 대학은 매우 우수하며, 미국의 대중문화는 세계를 지배하며, 미국이 추종하는 가치, 예컨대 민주주의, 인권, 자유, 등은 여전히 세계인을 매혹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지만, 미국의 소프트 파워를 대체할 대안은 아직 출현하지 않았다.
미국이 지배적 지위를 계속 유지하려면, 세계인에게 공공재(public goods)를 공급하는 역할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세계 평화, 자유 무역, 항행의 자유는 과거 대영제국 시절에 영국이 공급하던 공공재이며, 세계인은 이를 이용하면서 영국의 지배에 크게 반발하지 않았다. 과거와 차이점이라면, 개발도상국의 경제개발, 즉 세계의 빈곤퇴치에 기여하는 것을 미국의 역할에 추가해야 한다. 과거와 달리 세계화가 크게 진전되었고, 국제무대에서 개발도상국들이 입다물고 가만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저명한 국제정치 학자로서 정부의 고위 정책에 깊숙이 관여한 경험이 배어 있어, 저널리즘의 논의와 달리, 깊이와 균형감각이 돋보인다. 다만 이 책이 트럼프 대통령 이후에 쓰였어도 미국의 미래를 낙관했을까는 의문이다. 대체적으로는 저자의 의견에 공감하지만, 트럼프 이후 미국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면서 미국에 대해 긍정적으로 낙관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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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Baylis, Steve Smith, Patricia Owens. 2020. The Golbalization of World Politics: An introduction to international relations. 8th ed. Oxford. 529 page.
저자는 국제정치학자이며, 이 책은 세계화와 국제관계에 촛점을 맞춘 교과서이다. 국제관계(International Relations)라는 학문분야의 주요 이론을 소개하며, 국제관계 분야에서 쟁점 주제들을 개괄적으로 검토한다. 이삽십명의 저자가 각자 장을 나누어 쓴 것이기 때문에, 주제에 따라 글의 질에 차이가 있다.
1990년에 냉전이 끝난 이후 국제관계는 과거에 현실주의(Realism)와 자유주의(Liberalism)지배하던 분야에서 다양화되었다. 이제 국제관계는 국가 단위를 넘어서 초국가적 다자 기구나 국제적 비영리단체와 같은 새로운 행위자들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또한 국제관계에서 국가의 생존과 안보가 유일한 기준이었던 것에서 인간의 기본권이나 복리와 같은 새로운 가치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각 주제를 깊이 다루고 있지 않지만, 최근까지의 상황을 반영하여 국제사정을 전반적으로 이해하는 데는 유용하다. 정치경제적 시각을 도입하여 문제를 해석하는 글들은 이념적으로 편향되어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일부 글에서는 저자의 주제에 대한 통찰력이 보이지만 또 다른 글들은 피상적이고 산만한 서술을 하고 있다. 좋은 글들을 선별한다면 괜찮은 교과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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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dley Bull. 2012(1977). The Anarchical Society: a study of order in world politics. 4th ed. Palgrave. 308 pages.
저자는 국제정치학자이며, 이 책은 국제 정치와 "국제 질서"(international order)의 성격을 규명한다. 국제정치란 국가들 사이의 관계이다. 국제관계에는 국가간에 폭력을 통제하는 단일한 중앙 기구가 없기 때문에, 한 영토와 국민에 대하여 폭력을 독점하는 기구인 국가 내에서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질서가 유지된다. 국가들 사이에는 상호관계로 엮여진 국가들의 체제(states system)가 존재한다. 국가들의 체제에서 질서를 추구하는 것과 정의를 추구하는 것은 별개이며, 현실에서는 두개의 가치가 상충된다. 국가들의 체제는 기본적으로 정의롭지 않으며, 국제정치는 정의를 기준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국제사회(international society)에는 국가들 사이에 암묵적으로 지키는 규범이 있다. 그러나 이 규범은 법과는 달리 정치적인 것으로, 이를 위반해도 강제하기 어렵기 때문에 모호하고 유동적이다. 이 규범은 국가들 사이에 전개되는 사건들을 통해 뒷받침되고 상황에 따라 변한다. 국제정치에서 폭력 사용을 가급적 꺼리는 규범이 존재하지만, 질서 유지를 위해 폭력 사용이 용인되기도 한다. 국가들은 가급적 국제적 규범을 지키려고 하지만, 자신의 이익에 따라 규범을 위반하거나 바꾸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국제정치에서 질서를 만들어내는 가장 중요한 기제는 국가들 간에 힘의 균형(balance of power) 이다. 상황이 변화하여 힘의 균형이 깨지면 새로운 연합이나 분열, 전쟁 등을 통해 힘의 균형을 회복하게 된다. 국가들 사이에 전쟁은 질서를 유지하는 중요한 기제이다.
강대국은 국제질서를 유지하는데 관심이 크다. 국제질서를 교란시키는 요인 혹은 국가에 대해 통제력을 행사한다. 냉전시절에 미국과 소련은 서로 간에 직접적인 폭력 행사를 자제하였으며, 세계의 구석에서 벌어지는 폭력에 대해 확대되지 않도록 관리하였다. 현재의 국제질서는 강대국을 중심으로 만들어 진 것이며, 그들의 이익에 기여한다. 국제질서에서 중소국가의 견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국제질서가 서구의 선진국에 유리하도록 자원과 권력의 불평등 분배를 용인하므로, 제삼세계 국가들은 정의가 바로세워지도록 바꾸는데 관심이 크다.
핵무기는 국제질서에 새로운 변수로 등장하였다. 국가간 폭력이 발생했을 때 폭력 행위의 대상은 물론 폭력 행위를 시작한 당사자까지 존립이 위협받게 되었다. 핵무기는 폭력의 발생을 합리적으로 제한하는 (deterrance) 역할을 한다. 그러나 핵무기가 확산되면 폭력이 줄어들 것이라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핵무기를 동원하는 비합리적 폭력 사용 상황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핵전쟁이 두려운만큼 핵무기 사용을 상호간 자제하겠지만,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하여 전통적 무기를 사용하여 제한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를 배제할 수 없다.
현재의 국가들의 체제에서 국가들 사이에 종종 폭력이 행사되고, 국제정치가 정의롭게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국가 중심의 국제질서를 바꾸어야 한다는 요구가 많다. 그러나 그 대안으로 거론되는, 전세계를 관장하는 권력의 중앙집중, 지역단위의 결합체 형성, 국가이외에 다른 행위자, 예컨대 다국적 기업, 국제단체, 등을 포함한 새로운 국제체제, 등은 현실적이지 않거나 각자 나름의 한계를 안고 있다. 저자가 보기에 국가들의 체제는 20세기 이전에 비해 20세기 후반으로 가면서 서로 간에 규범을 지키는 정도가 약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 중심의 현재의 국제체제는 질서를 확보하는 최선의 방안이다.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 국제 정치 세계에서 질서, 법, 폭력, 갈등, 등의 개념을 국내 정치에서 아이디어를 끌어와 이해하려고 하는데, 이것은 분명한 오류이다 라고 단언한다. 질서를 확보하기 위해 전쟁이 벌어지고, 질서와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 정의를 추구하는 것과 충돌한다는 지적에서 저자의 통찰력이 번득인다. 이 책은 1970년대에 쓰여져서 냉전 종식 이후의 상황과 맞지 않는 지적이 곳곳에 있다. 이 책의 또다른 단점은 문장이 복잡하여, 마치 법률 문구를 읽는 느낌이다. 논리적으로는 정치하지만, 독자에게 친절하게 쉽게 쓰여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통찰력이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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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l Greaves. 2000. Cancer: the evolutionary legacy. Oxford University Press. 266 pages.
저자는 세포 생물학자이며, 이 책은 암의 생성 기전에서 부터, 다양한 종류의 암의 특성, 암의 예방과 치료에 이르기까지 암과 관련해 밝혀진 지식을 체계적으로 잘 설명한다.
암은 인류의 역사와 같이 해왔으며, 동물에게서도 종종 발견된다. 암은 세포가 증식할 때 유전자 복제의 오류, 즉 돌연변이의 산물이다. 우리의 면역체계는 유전자 복제의 오류를 탐지하고 잘못된 유전자를 가진 세포를 죽이는데, 암세포는 이러한 면역체계를 속이면서 증식을 계속한다. 우리의 몸의 정상적인 세포는 일정 회수의 복제를 거듭하면 사멸하도록 되어 있는데, 암세포는 이러한 자동 사멸 장치를 무력화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 결과 암세포는 면역 체계의 감시에서 벗어나 무한히 증식을 계속할 수 있다. 다만 우리의 신체 기관은 세포가 증식을 계속하는 데 물리적 한계가 있기때문에, 암세포는 어느 정도 증식하면 특정 기관의 물리적 한계를 뛰어 넘기 위해 다른 기관으로 전이하여 증식을 계속한다.
유전자 복제 과정에서 오류는 자주 발생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오류는 세포 생성의 초기 단계에 사멸하거나, 설사 존속한다고 해도 암세포로 발전하지 않는다. 양성 종양의 대부분은 암세포로 발전하지 않는다. 엄청난 스트레스가 지속될 때 암세포로 발전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이러한 스트레스는 우리 몸의 내부에서부터 나오는 경우가 많으며, 우리 몸의 외부로 부터 가해지기도 한다. 또한 특정 암에 걸리기 쉬운 유전자를 물려받은 후손에게서 특정 암의 발병율이 높다. 환경적 요인과 유전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암의 발병 가능성을 높인다.
우리 몸의 내부에서 가해지는 스트레스의 대표적 예는 여성의 생식 기능과 연관된 스트레스이다. 여성은 매달 월경을 하면서 성 호르몬의 홍수를 경험한다. 여성의 몸이 임신을 준비하는 과정은 유방, 자궁, 난소에 큰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여성에게서 유방암과 자궁경부암이 자주 발생하는 이유이다. 남성의 경우 전립선 암도 비슷한 이유로 자주 발생한다. 우리 몸의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스트레스의 대표적 예는 흡연으로 인한 타르에 폐가 지속적으로 노출되면서 폐암이 발생하는 경우이다. 이외 우리 몸에서 외부 환경과 접촉하는 지점에서 암이 자주 발생한다. 피부암, 식도암, 위암, 직장암 등이 예이다. 외부의 독소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가 누적되기 때문이다. 암 자체는 병균에 의해 전염되지는 않지만, 병균이 우리 몸을 공격하면서 가하는 스트레스로 인해 돌연변이가 발생하여 암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성병이 생식기 암의 발생 가능성을, 헬리코박터 균이 위암의 발생을, 헤파티티스 균이 간암의 발생 가능성을 높인다.
엄청난 스트레스가 가해져 암세포가 생성되었다고 해도, 이것이 증식하여 우리 몸에 해를 끼치는 단계에 도달하기까지 보통 수십년의 세월을 필요로 한다. 암의 대부분은 생식 기능이 종식된 시점, 즉 여성의 경우 폐경 이후, 남성의 경우에도 50대에 주로 나타난다. 거꾸로 말하면, 중년 이후에 주로 발병하는 암의 시초는 수십년 전 젊은 시절에 스트레스에 노출되면서 만들어진 암세포에서 부터 시작된다. 만일 암 증상이 생식 기능이 종식되기 이전에 발현된다면, 그러한 유전자는 후대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암의 원인이 존재한다고 하여 반드시 암으로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위험이 커지면 암의 발생 가능성이 높아지지만, 스트레스에 노출된 모든 사람에게서 암이 나타나지는 않는다. 일생 담배를 즐긴 사람 중에 암에 걸리지 않은 사람이 암에 걸린 사람보다 더 많다. 스트레스에 노출된 세포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악성 암세포로 발전할 것인가 여부는 확률적 문제이다.
암이 우리 몸의 세포 복제의 오류에서 기인한다면 암 발생을 줄이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에 대해, 저자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고 답한다. 암을 완전히 예방하거나 완전히 치료하는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암의 발생을 줄이려면 스트레스 요인을 미리 방지하는 것이 최선이다. 담배를 피지 않고, 야채와 과일을 많이 먹고, 운동을 많이 하고, 등으로 스트레스 요인을 줄이면 암 발생 가능성은 감소한다. 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양성 종양을 조기에 발견하여 제거하는 것도 암을 예방하는 길이다.
암에 걸리면, 수술로 암 부위를 제거하고, 방사선을 쬐어 암세포를 태워 버리고, 화학요법으로 독성을 가하여 암세포가 증식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은 모두 한계가 있다. 암 부위를 제거한다고 해도 암 세포가 다른 기관으로 전이하는 것을 막기 어렵다. 방사선 치료나 화학 요법은 암세포만이 아니라 그 주변에 있는 정상세포도 죽여버리는 무자비한 방법인데, 방사선이나 독소에 내성을 가진 암세포가 출현하며, 다른 기관으로 전이되는 것을 막기 어렵다. 조기 발견과 스트레스 요인을 줄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이 책에서 암세포의 발생 기전을 생물학적으로 엄밀하게 설명하는 부분은 이해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서 전반적으로 암에 대해 이해가 트이는 느낌을 받았다. 통찰력을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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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Bloom. 2016. Against empathy: the case for rational compassion. HarperCollins. 241 pages.
저자는 사회심리학자이며, 감정이입보다는 이성적 접근이 세상 문제를 해결하는데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한다.
타인이 느끼는 것을 내가 느끼는 감정이입 emphy 은 일견 긍정적일 것 같지만, 부정적 측면이 더 많다. 감정이입은 서치라이트와 같아서 좁은 촛점에 관심을 집중하기때문에, 편견을 낳으며, 문제를 전반적으로 검토하는 것을 방해한다. 감정이입은 현재 이곳에서의 상황에 집중하게 함으로서, 앞으로 어떻게 상황이 발전할지에 대해 이성적인 추론과 이러한 추론에 바탕을 둔 이성적인 대응을 어렵게 한다. 감정이입은 내편과 남의 편을 구분하게 만들며, 공평한 접근을 어렵게 만든다.
인간은 원래 공평하지 않다. 만일 어떤 사람이 나와 가까운 것과 나와 먼 것을 둘다 공평하게 취급한다면, 나와 가까운 것을 편애하여 불공평하게 행하는 사람과의 경쟁에서 밀려나, 결국 진화의 과정에서 소멸할 것이다. 감정이입은 나와 가까운 것을 편애하는 진화 과정의 산물이다. 나의 가족, 나의 친구, 나의 공동체의 사람들의 감정이 나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인간의 본능인데, 이러한 편협한 감정에 휘둘린다면 크게 볼 때 문제의 해결을 어렵게 만들 뿐이다.
사람들이 감정이입에 의존하여 공적인 문제를 다룬다면 정의란 존재할 수없다. 감정이입을 억제하고, 상대의 사정을 이해하는 이성적 접근을 통해서만 전체적으로 정의롭고 효율적인 사회가 될 수있다. 상대의 상황을 파악하는데 감정이입 emphasy 대신에 공감 compassion 으로 충분하다. 상대가 겪는 고통을 나도 느끼는 감정이입이 아니라, 상대가 겪는 고통을 인지하고 이해하는 공감능력으로 충분하다.
인류의 역사에서 감정이입 때문에 타인에 대해 폭력과 잔인함이 행사된 경우가 많다. 나 및 나와 가까운 사람에게 가해진 고통은 나와 먼 타인에게 가해진 고통보다 훨씬 크게 느껴지며, 나 및 나와 가까운 사람에게 가해진 부정의는 타인에게 가해진 부정의보다 훨씬 심각하게 보인다. 그 결과 나와 가까운 사람의 감정을 나도 느끼는 감정이입은 사태의 정확한 파악과 효율적인 대응을 어렵게 만든다.
이책은 한 주제에 대해 저자의 생각을 연습한 결과물 처럼 보인다. 인간의 심리 작용이 감정에 의해 좌우된다는 연구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이에 대해 인간 심리의 기본은 이성에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글이 마치 대화하듯이 술술 읽히는 장점은 있으나, 가벼운 심리학 저술이 그러하듯이, 그리 큰 통찰력을 주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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