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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생존'에 해당되는 글 1건
2021. 1. 5. 16:07

David P. Barash. 2018. Through a Glass Brightly: Using Science to see our species as we really are. Oxford University Press.

저자는 진화생물학자이다. 이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첫번째 부분에서는 인간중심주의, 즉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세계관을 과학적 사실을 인용하여 비판하며, 두번째 부분에서는 인간이 어떻게 동물과 유사하며 또 다른지 진화생물학의 연구 성과를 인용하여 설명한다.

2부에서 논의하는 인간과 동물의 비교는 진화생물학의 주요 쟁점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지적 능력, 부모와 자식간 갈등, 상대를 속이는 행위, 일부다처 논쟁, 호전적 행위, 이타적 행위, 자유의지,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과 문화적 특성간 불일치 등이 그것이다. 각각의 주제에 대해 흥미로운 사례와 함께 이론적 논의를 전개하면서, 생물체의 진화 과정에서 인간이 동물로부터 멀리 벗어나 있지 않음을 밝힌다.

인간의 지적 능력은 자연 세계에서 인간의 생존을 위해 발달시킨 기술이다. 다른 생물체는 자신의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다른 기술을 발달시켰듯이, 인간의 지적 능력 역시 인간의 생존 환경에 맞추어진 생존 기술의 하나일 뿐이다. 인간의 생존 환경을 벗어난 논리적, 통계적 추리에서 인간은 매우 서툴다. 인간의 지적 능력은 정도의 문제일뿐, 동물세계에서도 유사한 능력을 흔히 관찰한다.

진화적 시각에서 볼 때, 우리의 몸은 유전자를 전파시키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부모와 자식은 유전자의 절반만을 공유함으로, 유전자 생존의 측면에서 볼 때 부모의 이익과 자식의 이익이 완전히 일치 하지는 않는다. 부모의 유전자를 많이 퍼뜨리려는, 즉 많은 자식을 얻으려는 부모의 이익과, 각 개인으로서 자식의 이익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형제간 갈등이 발생한다. 형제간의 갈등, 부모와 자식간의 갈등은 도덕의 문제로 정의하지만, 사실은 생물학적 토대 위에 서있다.

생물체들간 의사 소통이란, 참가자 각자가 이익을 얻기 위해 상대를 조작하고 통제하려는 노력의 일부이다. 신호를 발하는 사람은 거짓된 신호로 상대를 조작하려 하며, 신호를 받는 사람은 거짓 신호 뒤에 숨은 진실을 해독함으로서 상대에게 조작당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확보하려 한다. 사회생활을 많이 하는 동물일수록 기만하고 이를 탐지해내는 무기 경쟁은 고도로 발달했다. 인간은 신호의 진실성을 의심하기보다는 일단 믿는 쪽으로 진화하였다. 그럼에도 인간의 의사 소통에서 거짓은 생물학적으로 자연스런 일부이다.

인간의 조상에게 일부다처제가 자연적 현상이었다. 동물의 암컷과 수컷간 몸 크기의 차이, 행위 방식의 차이를 바탕으로 유추할 때, 인간 역시 일부다처제가 자연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부다처제는 짝이 없이 홀로사는 수컷을 많이 만들고, 이들이 잠재적 사회불안과 폭력의 근원이기 때문에 인간 사회는 일부일처제를 도덕률로 하여 남녀관계를 규제한다. 그러나 여전히 능력이 많은 남성은 여러 여성을 거느리는 일부다처의 생활을 비공식적으로 영위한다. 저자는 자연적 현상이 반드시 인간에게 바람직한 것이 아닌 대표적인 예로 일부다처제를 든다. 인간은 문화로 자연적 현상을 제어하고 있다. 그렇기에 규범에서 일탈하는 사례도 많이 발생한다.

원시 부족을 연구한 인류학자들은 인간이 태생적으로 호전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저자는 인간이 공격적이기는 하지만 집단간 싸움을 벌이는 호전성은 크지 않다고 주장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상대를 공격하는 것이 반드시 적자생존에 도움이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협동을 통해 이익을 얻는 경우가 싸움을 통해 이익을 얻는 경우보다 많다. 인간이 집단적으로 싸움을 하는 호전성을 띠게 된 것은, 농경을 시작하면서 상대로부터 뺏앗을만한 가치 있는 것을 비축하고 지도자의 지휘하에 조직적으로 싸움하는 능력을 발달시키면서부터이다. 원시 수렵채취인들에 대한 체계적 연구에 따르면 인류의 조상은 대체로 협동했으며 집단간 평화가 지배했다.

인간의 이타적 행위가 진화론의 이기적 인간 모델에 어긋난다는 지적은 옳지 않다. 인간은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기 위해 사는데, 자신의 유전자를 일부라도 지닌 친족의 생존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유리한 때에는 이타적으로 보이는 행위를 한다. 이타적 행위를 통하여 집단 내에서 자신의 평판을 높임으로서, 간접적으로 자신의 유전자의 확산에 도움이 되는 전략을 구사하기도 한다. 즉 인간의 이타적 행위란, 개별 인간의 몸의 측면에서 볼 때는 희생일지 모르지만, 유전자의 측면에서 볼 때에는 이기적 행위인 것이다.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자신의 행위를 통제한다는 것은 환상이다. 인간의 몸 안에는 수백만의 미생물이 함께 살고 있다. 이들 미생물이 우리의 행위와 사고작용에 영향을 미친다. 누가 누구에게 얹혀사는지 불확실 하다. 또한 유전자가 우리의 몸, 우리의 사고작용, 우리의 행위를 조정한다면, 우리가 자유의지를 가졌다고 볼 수 있는가? 인간은 자신이 의식하면서 행위하지 않는다. 다양한 요인이 작용한 결과로 행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인간의 자아란 상상의 산물이다. 인간의 이타적 행위는 인간이 의도하기보다 유전자의 이익을 위하여 저지르는 행위라는 사실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반박하는 사례가 될 수있다.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은 매우 서서히 진화를 통해 형성된 반면, 인간의 문화적 특성은 빠른 시일에 급격히 변화해 왔다. 특히 지난 이백년간의 산업화의 결과 인간의 문화적 특성은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과 매우 멀리 떨어졌다. 이제 인간은 서로에 대해, 또 자연환경에 대해 엄청난 파괴력을 지니게 되었는데, 인간은 그러한 파괴력을 생물학적으로 실감하지 못한다. 수백만명을 죽이는 핵무기 공격 행위가 한명의 상대를 물리적으로 죽이는 경험보다 실감하기 힘든 시대가 도래했다.

이 책은 저자의 오랜 연구 경험이 녹아 있는 글이다. 저자는 과학적 사실을 설명하면서 문학 작품을 많이 인용하는데, 이는 결코 좋은 글쓰기가 아니다. 설명의 명확성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저자는 본인이 좋아서 다양한 시의 일부를 수시로 인용할지 몰라도, 과학적 주제를 접하는 독자는 주제의 정확한 이해에 더 관심이 있지, 저자의 시적 감흥에 쉽게 공감하지 않는다. 제 1부에서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주장을 문학 작품을 길게길게 인용하면서 과학적 사실을 군데군데 언급하는데, 서양의 기독교 문화권에 속하지 않은 독자에게 이러한 설명은 불필요하게 장황해 보인다.

글자의 크기가 매우 작아 책을 읽는 내내 고문 받는 느낌이었다. 독자를 배려하지 않은 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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