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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4. 2. 22:11

Brian Hare and Vanessa Woods. 2020. Survival of the Friendliest: Understanding our orgins and rediscovering our common humanity. Oneworld Publications. 197 pages.

저자는 인류학자이며, 이 책은 동물의 진화과정에서 다정한 성격을 가진 개체가 번성한다는 독특한 주장을 한다. 진화론에 따르면 육체적으로 강하고 지능이 높은 유전자를 가진 개체가 그렇지 못한 개체와 경쟁에서 승리하여 번성한다는 주장이 지배했다. 반면 저자는 이웃에게 다정한(friendly) 개체는 어려운 과업을 함께 협력하여 타개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지 못한 개체보다 생존 경쟁에 유리하다고 주장한다.

동물을 길들이는 실험을 여러 세대에 걸쳐 시행한 결과, 다양한 측면에서 동물의 형질이 변하는 것을 발견했다. 인간에 대해 적대적 민감성이 적은 개체를 선택한다는 기준만을 적용했음에도, 이와 관련이 없는 형질들이 일관된 방향으로 변한다는 사실은 주목할만 하다. 외적으로 보면 얼굴의 생김새에 변화가 관찰된다. 이마에서 턱까지 경사도가 줄며, 얼굴의 형상이 각진 모습에서 길고 갸름한 형태로 변하며, 송곳니가 줄어들며, 광대뼈가 들어가고, 코의 높이가 낮아지고, 앞으로 튀어 나온 이마가 들어가며, 눈이 움푹 들어간 정도가 줄어든다. 전반적으로 몸의 크기가 줄며, 두개골의 크기가 줄어든다. 또한 발달 단계에서 유아기에 보이는 특징들이 일생동안 고정된다. 이러한 변화는 개나 가축을 길들이는 과정에서 뿐만 아니라, 과거 사멸한 인류의 조상이나 유인원과 현생 인류를 비교해도 유사한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외면적 변화와 함께, 내면의 형질의 변화도 전개된다. 상대의 의도를 읽는 의사소통 능력이 향상되고, 공격성과 폭력성이 줄어드는 대신, 다정하고 온순해진다.

인간은 타인의 의도를 읽는 의사소통능력이 태어난지 일년 무렵부터 다른 모든 동물을 앞선다. 사람과 가장 가까운 동물인 개 또한 인간의 의도를 읽는 능력이 침팬지보다도 뛰어나다. 타인의 생각을 읽는 능력은 심리학에서 "theory of mind"라고 칭하는데, 다른 동물과 비교하여 인간이 가장 뛰어난 능력이며, 집단으로 생활하면서 함께 일을 하는데 필수적이다. 인간은 육체적 힘이 대단치 않음에도 이러한 뛰어난 의사소통 능력과, 이를 기반으로 고도의 집단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능력 덕분에 지구상의 최강자로 등극하였다.

야생의 세계에서 동물은 다른 개체에 대해 적대적 민감성이 매우 높다. 타 개체를 경계하고 쉽게 가까이 하지 않는 성향은 동물 세계에서 보편적이다. 동물들이 자신의 가까운 가족 밖의 타 개체를 만나면, 서로 공격하여 위험을 제거하거나, 위계를 확실히 정하여 굴복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길들여진 동물은 이러한 본능적 성향을 억제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타인과 함께 생활하려면 남에 대한 적대적 민감성이 적어야 한다. 인간은 이러한 적대적 민감성을 줄이는 방향, 즉 공격적, 폭력적 성질을 줄이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이를  '스스로 길들이기 가설' (self-domestication hypothesis)라고 칭한다. 가축이나 애완동물은 인간이 의도적으로 적대적 민감성을 줄이는 방향으로 선별하여 길들인 결과물인 반면, 인간은 인간 종족 내에서 적대적 민감성이 상대적으로 적은 사람이 선택되어 왔다. 그 결과 현생 인류는 과거 유인원에 비해 적대적 민감성이 적고, 덜 폭력적이고 덜 공격적인 존재가 되었다. 타인에 대해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개체가 더 번성할 것 같지만, 인류 조상의 수렵채취 시절에,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개체는 집단 구성원의 경계와 배척의 대상이 되어 살아남을 수 없었다. 네안데르탈인은 현생 인류보다 훨씬 힘이 세고 공격적 폭력적이었지만, 적대적 민감성이 적고 더 고도의 사회적 네트워크를 구축했던 현생인류와 경쟁에서 패하여 소멸하였다.

그러나 인간의 이런 다정한 성질은 자신과 근접한 집단의 구성원에게만 적용될 뿐, 자신과 먼 집단의 구성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자신의 생존에 도움을 주는 자신에 근접한 집단 구성원에게는 다정하지만, 자신의 생존과는 연관이 희박하거나 자신의 집단에 위협이 될 가능성이 있는 타집단에게는 냉혹하고 잔인하다. 사람들은 조그만 식별이라도 적용하여 자신의 집단과 자신이 속하지 않은 집단을 구분하며, 타 집단 성원에 대해서는 자신의 집단 성원에게와는 전혀 다른 생각과 태도를 갖는다. 즉 인간의 부족주의 성향(tribalism)이 그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백인은 유색인을 자신과 같은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현재도 사람들은 편견을 가지고 차별하는 집단 구성원을 자신과 같은 인간으로 인식하지 않는다(dehumanizing). 대상을 자신과 같은 인간이 아니라고 인식할 때, 자신의 집단 성원에 대해서 가지는 다정함은 타집단 성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흔히 타집단 사람들을 사람이 아닌 동물이나 괴물로 칭하면서, 그들이 자신과 같은 인간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키고, 그들을 열등하게 여기고 적대적으로 취급한다. 미국에서 그러한 타집단은 흑인, 타민족, 이민자, 다른 정당 지지자, 여성, 가난한 사람, 등 상황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띤다.타집단 성원을 자신과 같은 인간이 아니라고 인식하면, 그들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차별하고 불이익을 가하며, 그 결과 벌어진 차이는, 다시 그들은 자신과 같은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을 강화시킨다.

타집단을 나와 같은 인간이 아니라고 인식하는 성향을 불식시키려면, 타집단 사람들과 자주 교류하여 그들도 나와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느끼게 해야 한다. 흑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줄이려면, 백인과 흑인이 함께 살고, 함께 공부하고, 함께 일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지름길이다. 가난한 사람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줄이는 것, 타민족 이민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줄이는 것, 남성과 여성 사이의 편견과 차별을 줄이는 것,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자들간 적대적 행위를 줄이는 것, 등등, 모두 두 집단 간 교류를 늘이도록 사회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지름길이다. 

저자는 다양한 연구 결과를 종합하여 기존의 학설을 뒤집는 독특한 주장을 제시한다. 타인에게 다정한 개체가 생존경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은 일견 모순적이다. 타인에게 다정한 태도는 또다른 인간의 본성인 부족주의의 한계에 갖혀 넓게 적용되지 못하기 때문에, 더 큰 갈등과 폭력을 유발한다는 주장 역시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타인에게 다정한 개체가 위계를 추구하는 개체보다 적자 생존에 더 유리하다는 주장은 인류의 역사로 볼 때 그리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인간의 조직활동이라는 것은 위계체계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성원들 상호간 대등한 다정한 조직이 현실세계에서 어려운 일에 집단적으로 대처하는 능력이 위계적 조직보다 더 클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은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도 소수의견에 불과하다. 또한 인간을 포함한 생물은 모두 타인이 아닌 자신의 유전자를 널리 퍼뜨리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본능이 타인에 대한 다정함과 어떻게 맞추어지는지 궁금하다. 여하간 흥미있게 단숨에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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