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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8. 12. 19:38

Frank Snowden. 2019. Epidemics and Society: from the Black Death to the Present. Yale University Press. 505 pages.

저자는 의료사를 전공한 역사가이며, 이 책은 인류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 주요 전염병을 전반적으로 검토한다. 서구유럽과 미국 사회를 중심으로 하며, 흑사병, 홍역, 황열병, 이질과 장티프스, 콜레라, 폐결핵, 말라리아, 소아마비, 에이즈, 사스와 에볼라에 이르기까지 장을 달리하며 다룬다.

서구의 의료는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와 로마의 갈렌에서부터 비롯한다. 그들은 인간의 질병을 신이나 악마의 행위로 보지 않고 자연현상으로 보는 인식의 전환을 가져왔다. 병이란 인간의 성질을 구성하는 네가지 요소가 불균형 상태에 빠진 결과라고 주장했다. 해로운 기운을 제거하는 개입을 통해 병을 치유할 수 있는데, 사혈하는 방법을 주로 많이 썼다. 이러한 의료 철학은 19세기 중반까지  서구 의학계를 지배하였다. 19세기 중반 현미경의 발명으로 세균의 존재가 확인되고, 자연발생적으로 세균이 만들어지지 않으며, 감염에 의해 세균이 전파된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야 비로서, 오랫동안 서구를 지배한 의학이론은 세력을 잃게 되었다.

흑사병은 유럽 사회를 오랫동안 여러번 휩쓸었다. 1200년대 초의 흑사병이 제일 심하기는 했지만, 1700년대에 이탈리아에서 마지막으로 휩쓸고 지나갈 때까지, 서구 사회는 흑사병을 때때로 경험하였다. 흑사병의 발생했을 때 그 지역을 집단적으로 격리하는 방법이 유일한 방어책이었다. 흑사병을 매개하는 쥐를 잡는 운동을 전사회적으로 벌인것이 약간의 퇴치 효과가 있기는 했으나, 흑사병이 서구에서 사라진 원인은 확실치 않다. 덜 심한 증상을 보이는 흑사병은 여전히 개발도상국에서 종종 발병한다.  

홍역은 인류와 오랫동안 함께하였으며, 매우 보편적인 전염병이다. 한때 유럽에서 전 성인 인구의 5분의 1이 홍역에 걸릴 정도로 흔한 병이다. 이 병에 걸리면 죽거나 곰보가 되었기 때문에, 19세기 초반까지 곰보는 주위에서 흔히 볼 수있었다. 19세기 초반 제너의 종두법이 보급되면서 점차 잡히기 시작했다.

황열병, 이질, 장티프스는 나폴레옹의 몰락과 밀접히 연관된다. 서인도제도의 프랑스 식민지인 아이티에서 노예 반란이 일어났을 때, 나폴레옹이 파견한 군대가 황열병으로 고생하다 결국 패퇴하였다. 나폴레옹은 아메리카 대륙에 교두보를 잃게 되어, 그당시 북미에 프랑스 거대한 식민지 영토였던 루이지아나를 그당시 신생국이던 미국에게 매각하는 방식으로 철수 하였다. 나폴레옹이 러시아 정벌에 나섰을 때, 이질과 장티프스로 많은 병사를 잃고 추위에 시달리다 결국 러시아 전선에서 크게 패배하였다. 전염병이 역사의 방향을 바꾸는 데 일익을 담당한 것이다.

19세기 프랑스에서는 파리의 대형 병원을 중심으로 전염병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일었으며, 영국에서는 위생 상태를 높이는 사회적 운동이 크게 벌어졌다. 거주지 주변의 오염물에서 질병이 시작된다는 새로운 이론이 힘을 받으면서, 상하수도를 설치하고, 수세식 화장실을 도입하고, 거리의 오물과 물웅덩이를 제거하는 등으로 전사회적으로 위생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벌인 결과 전염병 발생이 크게 줄었다. 위생을 높이는 사회운동은 유럽 대륙과 미국으로 퍼져나가 1차대전때까지 활발하게 이어졌다. 서구에서 전염병이 줄어들고 수명이 늘어난 데에는 의료적 처치보다는 위생 상태가 개선된 덕이 훨씬 크다. 소득이 높아지고, 영양상태가 개선되고, 교육수준이 높아진 등 사회적 요인이 19세기 중반 이래 사람들의 건강 수준을 꾸준히 향상시켰다.

콜레라는 원래 인도에서 발원한 전염병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열악한 생활에서 집중적으로 발병하였다. 흑사병, 홍역 등 이전에 주요 전염병이 대체로 계급을 불문하고 전반적으로 발병한 반면, 콜레라는 가난한 사람이 사는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병하는 특징을 보인다. 이탈리아 나폴리의 가난한 지역에서 콜레라가 주로 발병한 반면, 부유한 이웃 지역에서는 콜레라가 발병하지 않은 것을 예로 하여, 콜레라의 퇴치는 빈곤자의 열악한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방법으로만 가능함을 보여준다. 선진 산업국에서는 이제 콜레라가 퇴치되었지만, 빈곤이 만연한 지역, 즉 남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등지에서는 여전히 콜레라가 때때로 창궐한다. 

폐결핵은 19세기 중반 병원균이 확인되기 이전까지는 유전적인 체질에 기인한 질병으로 여겨졌다. 폐결핵은 매우 서서히 진행되고 유명 지식인들도 종종 걸렸으므로, 낭만적인 이미지가 따라다녔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이래 폐결핵도 다른 전염병과 다를 것 없다는 부정적 이미지가 붙여지면서, 폐결핵을 퇴치하는 사회적 운동이 벌어졌다. 맑은 공기를 쐬면서 요양하는 것이 좋다는 견해가 지배하면서 요양원이 많이 세워졌다. 그러나 2차대전 이후 항생제가 발견될 때까지, 자연 치유를 제외하고 폐결핵에 걸려 낫는 신뢰할만한 방법은 없었다.

말라리아는 더운 기후에서 모기에 의해 전염되는 질병인데, 2차대전 이후 미국이 살충제롤 대량으로 살포하여 모기를 박멸하는 운동을 통해 말라리아를 퇴치하려 하였다. 이러한 노력이 집중적으로 전개된 곳으로, 이탈리아의 사르디니아 섬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살충제의 대량 살포만으로 말라리아를 퇴치하려는 노력은 실패하였다. 살충제 살포와 함께 예방적으로 키니네를 취약 인구가 집중적으로 복용하고, 소득 수준의 향상으로 주거환경과 영양상태가 개선되는 등의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마침네 사르디니아 섬에서 말라리아가 완전히 퇴치되었다. 사르디니아의 퇴치 사례는 전세계의 열대지방에서 지금도 말라리아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어나가는 현실에 한가닥 희망을 제시한다.

이 책은 뒤로 갈수록 글이 건조해지고 내용의 정제가 덜 된 보고서를 읽는 느낌이 든다. 전염병에 대해 전반적으로 알 수 있으나, 분석의 깊이가 얕고, 잡다하게 많은 사실을 망라하는 방식으로 서술하여 읽는 재미가 덜하다. 예일대학교의 개방대학 강의안에 기초해 만든 책이기 때문에 그런것 같다. 서구의 전통 의학을 지배한 히포크라테스와 갈렌의 의료 이론에 대해 서술하는 부분을 읽으면서는 우리나라의 한의학과 흡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실험과 관찰에 의지하여 새로운 과학적 지식의 발전을 장려하기보다, 고전과 정통 이론을 고수하고 이것에서 벗어나는 시도를 배격하는 방식은, 마치 동의보감을 여전히 금과옥조로 인용하는 한의학의 태도와 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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