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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1. 3. 21:13

Neil Shubin. 2008. Your inner fish: a journey into the 3.5 billion-year history of the human body. Vintage books.

시카고 대학의 고고생물학자인 저자가 우리 몸의 각 기관이 어떤 진화 과정을 거쳤는지 연원을 거슬러 올라면서 일반 독자들이 알기 쉽게 설명한다. 진화의 연결고리에 관한 설명이 주를 이루지만, 동시에 어떻게 그런 발견에 이르게 됬는지 연구 과정을 상세히 이야기 한다.

물 속에서 살던 동물이 육지로 올라오는 진화의 중간 단계 생물의 화석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구성한다. 북극의 한 섬에서 저자가 찾는 대상의 화석을 찾는 작업을 생생히 묘사한다. 전 세계에서 저자가 찾는 생물군의 화석을 찾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을 추적하여 마침내 그것을 찾아내는 작업은 과학과 우연이 결합된 서사이다.

인간의 팔과 물고기의 지느러미의 구조를 해부학적으로 비교하고, 배아의 발달과정에서 인간의 팔과 물고기의 지느러미가 발달하는 과정의 유사점을 보여준다. 이빨과 머리 털과 새의 깃털과 유방은 동일한 원시 피부조직으로부터 변이되어 나타난 형질이다. 배아의 초기 발달 과정에서 보이는 네 개의 아치 형상의 구조가 인간에게는 두개골과 목과 귀로 발달하고 물고기는 지느러미로 발달한다.  인간과 근접할수록 유전자에서도 유사점이 발견되며, 물고기의 것으로부터 인간의 것으로 기관이 진화해온 과정은 유전자에서도 변화의 궤적을 읽을 수있다. 

물고기에서 진화의 시원을 한 단계 더 올라가 다세포 박테리아와 인간의 기관을 비교한다. 인간의 몸의 조직은 다세포 박테리아와 동일한 물질로 구성되어 있으며, 세포와 세포를 결합하여 조직하는 방식 역시 박테리아 동일하다. 다세포 박테리아는 세포들 사이에 기능의 분화를 이루면서 전체의 생존을 돕는데 이는 인간의 다양한 기관과 유사한 원리이다. 지구의 생물계가 어떻게 단세포 박테리아에서 다세포 박테리아로 진화했는지에 대해, 지구의 대기중에 산소 농도가 증가하여 생물체들이 에너지를 더 생산할 수 있게 되었고, 콜라겐이라는 세포를 구성하는 복잡한 물질을 만들 수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후각기관, 시각 기관, 청각 기관, 각각에 대해 물고기와 인간을 비교하면서 단순한 구조에서 복잡한 구조로 진화해 가는 과정을 설명한다. 인간의 후각 기관은 물고기보다 훨씬 더 많은 냄세를 판별하는데, 이는 서로 다른 종류의 냄세 분자 각각을 판별하는 수천개의 유전자를 통해 냄세 판별기관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 이 냄세 판별기관을 제어하는 유전자의 상당수가 비활성화되어 있는데, 이는 인간의 감각의 70%를 시각에 의존하는데, 이는 육지에 사는 동물인 인간의 생존에서 냄세의 중요성은 쇠퇴한 반면 시각의 중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인간은 동물 중에서도 칼라를 구별하는 시각 능력을 발전시켰는데, 이는 지구 식물의 변화에서 단순한 색의 나무만 존재하다가 다양한 칼라의 식물, 예컨대 꽃과 열매 등이 많이 출현하게 되면서 칼라를 구별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각 기관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던 동물의 기관이 돌연변이를 통해 조금씩 변화하는 긴 연결고리의 맨 끝에 있다. 이것은 문제를 발생시키기도 한다. 원래 물에서 사는 데 적합하도록 만들어진 기관이 변이를 통해 뭍에서 사는 환경에 적응되도록 변화되었다는 것은, 처음부터 뭍에서 사는 환경에 적합하도록 만들었다면 그렇게 만들지 않았을 비효율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인간의 머리와 목과 척추를 연결하는 신경 섬유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 이는 원래 물고기의 머리와 아가미를 근처에서 연결하던 신경 조직이 변화되면서 복잡해진 것이다. 

인간은 유인원이 된 이후에도 진화 과정의 대부분을 수렵채취의 단계에서 생활했으므로 현대의 생활에 부적합한 몸을 갖고 있다. 저자는 우리가 겪는 질병이나 문제를 바로 이러한 진화의 긴 연결고리를 통해 설명한다. 비만, 심장질환, 고혈압은 현대인의 생활 환경이 수렵 채취에 적합하게 빚어진 몸에 맞지 않아서 일어나는 질병이다. 인간의 딸꾹질은 인간이 물고기와 올챙이로부터 진화해 온 과거로 부터 물려받은 잔재이다. 올챙이는 물속에서 아가미로 호흡하면서 동시에 폐로 공기호흡을 한다. 물을 흡입하여 아가미로 보내면서 동시에 폐를 막는 동작을 하는 데, 바로 이것이 인간의 딸국질과 동일한 동작이다. 딸꾹질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이 책에서 처음보았다. 저자는 인간의 몸은 생물의 역사를 온전히 그 안에 담고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일반인의 흥미를 돋우도록 설명을 하지만, 인용하는 설명은 체계적인 연구 성과에 근거한 것들이다. 왜 그런지하는 의문을 해명하는 데 주력한다. 과학을 한다는 것이 실제 이런 것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는다. 실제 논의하는 것은 매우 세세한 것들이다. 그런데 생물의 진화 과정을 밝히는 데에 이 세세한 것들이 핵심적인 증거가 된다. 책을 읽어가면서 과학활동에 대한 저자의 열정과 흥분을 읽는다.

2019. 10. 25. 13:36

Carl Benedikt Frey. 2019. The Technology Trap: Capital, labor, and power in the age of automati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366 pages.

경제사학자인 저자가 18세기의 산업혁명과 근래에 전개되는 정보기술 혁명을 비교하면서, 정보기술 혁명이 안고 있는 문제를 진단한다.  저자는 인류 역사상 두가지 다른 성격의 기술이 개발되었다고 주장한다. 첫째는 노동을 대체하는 기술(replacing technology)이며, 둘째는 기존 노동의 생산성을 높이는 기술(enabling technology)이다. 노동을 대체하는 기술은 필연적으로 기존 노동자의 저항에 직면하는데, 정치권은 노동자의 불만이 초래할 사회적 불안을 염려하여 새로운 기술의 도입을 막는 조치를 취한다. 18세기 후반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되기 전까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기술 발전이 더디었던 이유는 바로, 노동을 대체하는 신기술의 도입을 기존의 노동자와 정치권이 막았기 때문이다. 고대에서 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생산성을 높일 좋은 아이디어가 많이 제시되었지만, 이것이 실제 생산에 본격적으로 적용되지 못했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이다. 기존의 지배층은 노동 생산성이 향상됨으로 거둘 수 있는 이익은 많지 않은 대신, 기존의 지배 체제가 노동자들의 폭동으로 흔들릴 때 치러야 할 위험과 희생이 크기 때문에, 기존 노동자들이 신기술을 폐지할 것을 요구할 때  번번히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18세기 후반 산업혁명은 이전과 다른 상황 속에서 전개되었다. 산업혁명을 주도한 부르조아 상공인은 토지를 배경으로 한 기존의 정치세력에 대항해 점차 세력을 키워 나갔다. 이들은 노동을 대체하며 생산성을 높이는 기술로 이득을 얻는 집단이다. 반면 중세의 길드 조직에 뿌리를 둔 숙련 노동자들은 노동을 대체하는 기술이 보급되면 양질의 일자리를 잃는 집단이므로 격렬하게 신기술 도입에 반대했다. 19세기 초반 영국을 휩쓴 러다이트 운동이 그것이다. 영국에서 산업혁명은 방직업을 중심으로 일어 났는데, 이는 기존의 수공업적인 방직 생산을 기계 생산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방직 기술자들은 일자리를 잃은 대신, 방직 기계를 돌리는데는 아동이나 여성과 같은 저임금 비숙련 노동자들이 주로 투입되었다. 영국 정부는 이러한 변화에 저항하는 숙련 노동자를 억압하고 부르조아 상공인의 편에 섰다. 영국은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 해외시장을 놓고 군사적으로 경쟁관계에 있었는데,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국부를 축적하는 것이 이러한 국제경쟁에서 살아남는 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노동자의 요구를 묵살하였다.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전기와 내연기관이 개발되면서 전개된 소위 제 2차 산업혁명은 영국에서 백년 전에 전개된 산업혁명과 달리 기존의 노동자들에게 큰 저항 없이 받아들여졌다. 전기와 자동차는 기존의 노동자들의 노동 생산성을 크게 높이는 기술이었기 때문이다. 전기는 기존 공장의 생산성을 높이고 위험을 낮추면서 기존 노동자들에게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자동차는 새로운 고용을 창출하고 소비자의 삶의 질을 크게 높였으므로 역시 노동자들에게 환영받았다. 한편 19세기 후반 전개된 농업의 기계화는 기존의 농업 노동자의 일을 기계로 대체하였다. 그러나 농촌에서 쫒겨난 노동자들이 도시에서 급속히 확대되는 보다 양질의 새로운 산업의 일자리에 흡수될 수 있었기에 농업의 기계화 역시 큰 저항 없이 전개되었다.

1980년대 이래 전개된 컴퓨터 및 통신기술의 보급과 세계화는 산업 전반의 구조조정을 초래하였다. 이러한 구조조정에서 교육수준이 낮거나 연령이 높은 노동자들은 기존에 양질의 일자리를 잃고 낮은 임금의 서비스 일자리로 이동하거나 실업의 고통에 힘들어하고 있다. 최근 인공지능이 산업 현장에 도입되면서 이러한 추세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컴퓨터와 인공지능은 노동을 대체하는 기술이다. 교육수준이 높은 고급 기술의 노동자들은 이러한 신기술이 가져오는 생산성 향상의 과실을 향유하는데 비해, 교육 수준이 낮은 낮은 기술의 노동자들은 이러한 신기술로부터 갈수록 더 배제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서 교육수준이 낮은 기존 노동자의 저항이 예상되는데, 도날드 트럼프의 당선이나 유럽을 휩쓰는 포퓰리즘 정치인의 부상이 바로 이러한 징후이다.

새로운 기술이 실제 생산에 적용되는가 여부는 기술 자체의 문제도 있지만, 신기술이 도입될 때 사회적으로 파급되는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려있다. 과거 역사는 이러한 대응이 적절치 못할 때, 아무리 장기적으로 생산성을 크게 높일 좋은 기술이라도, 단기적으로 노동자들의 큰 저항에 부딛쳐 좌절된다는 교훈을 제공한다.  책의 말미에서 근래에 인공지능의 보급으로 초래될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관해 논의한다. 교육과 기술 훈련 투자를 높여 노동자의 기술을 고도화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기술 대체로 밀려나 실직하거나 열악한 일로 이동해야 하는 사람에게 정부가 나서서 물질적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 즉 신기술의 충격에 대해 사회가 공동으로 대응하여, 희생을 분담하고 이익을 공유하는 방안을 정치권이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이 책은 산업혁명의 과정이 어떻게 전개되었으며, 영국에서 노동 대체 기술이 어떻게 보급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 매우 설득력 있는 분석을 제시한다. 반면 근래에 전개되는 컴퓨터와 인공지능 기술의 미래에 대해서는 크게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 노동을 대체하는 기술과 노동의 생산성을 높이는 기술이 저자의 주장과 같이 뚜렷이 구분될 수있는가에 대해 의문이 든다.

장기적으로 이익을 가져오지만 단기적으로 사회적 저항에 부딛친다면 그러한 기술은 적용되기 어렵다는 그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근래에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에서 보듯이, 이 상황이 19세기 초 영국이 처한 상황 즉, 격심한 국제경쟁의 상황과 유사하다면, 미국의 정치권이 생산성 향상을 초래하는 AI 기술의 보급을 노동의 편에 서서 막을리 없다. 미국의 지도층은 새로운 혁신을 주도하는 상공인의 편에 서서 국제경쟁에 우위를 차지하는 데 전념할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불평등이 확대되겠지만, 미국의 노동 계층은 개발도상국의 노동자와 경쟁해야 하는 입장이므로 정치력을 크게 갖지 못할 것다. 트럼프와 같은 대중영합주의 정치인들 역시 입으로는 노동자의 편이라고 하지만 실제는 기업인의 편에서 미국 경제의 힘을 키우는 데 몰두할 수밖에 없다. 그러지 않는다면 미국은 중국과 같은 후발국의 추격에 따라잡힐 수밖에 없다.

저자는 인공지능 기술 혁명이 노동자의 반대에 부딛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예측하지만, 미국과 중국의 경쟁은 미국의 낮은 기술의 노동자를 배제하고 그들의 반대를 무력화시키려 할 것이다. 그러나 낮은 기술의 노동자들은 숫자가 많으므로 쉽게 배제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저항과 갈등 미국의 정치와 경제의 효율성을 약화시킬 것이다. 길게보면 신기술이 도입되면서 선진국이 앞서가는 속도는 둔화되는 대신, 후발국 특히 중국의 추격이 지속되면서 선진국과 후발국간의 격차가 좁혀지게 될 것이다. 모든 개발도상국이 이러한 후발국의 열차에 같은 속도로 올라타지는 않을 것이며, 중국도 경제가 고도화될 수록 미국과 흡사한 갈등으로 경제와 정치의 효율성이 약화될 것이다.

2019. 10. 20. 12:38

Christopher Steiner. 2012. Automate This: How Algorithms took over our markets, our jobs, and the world. Penguin Group. 220 pages.

포브스의 탐사보도 전문기자가 그동안 쓴 글을 모아서 편집한 책이다. 흥미를 북돋우는 사례 중심으로 서술한다. 기존에 인간이 하던 분야에 알고리즘이 적용되어 변화되는 과정을 서술한다. 증권 시장에 관한 이야기가 책의 중심을 차지하며, 기타 분야는 서술의 양이나 깊이가 얕다.

헝가리 이민자인 토마스 피터피가 1960년대부터 시작하여 증권 거래에 알고리즘 거래 방식을 도입하여 엄청나게 큰 돈을 번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이야기한다. 그는 알고리즘 거래 전문회사를 설립하여 미국 증권가의 강자로 군림하고 있는데, 그의 회사는 특이하게도 엔지니어와 수학자를 주로 고용하여 알고리즘을 고도화시키는데 전문인 회사이다. 알고리즘 거래와 연관된 이야기로, 시카고에서 뉴욕에 걸쳐 직선거리의 광통신을 깔아 속도를 매우 중요시하는 알고리즘 거래 회사를 상대로 크게 돈을 번 이야기를 한다.

두번째 사례로는 알고리즘으로 음악을 분석하는 이야기이다. 새로운 작품이 시장에서 성공할지를 예측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하여 성공한 이야기와, 알고리즘으로 고전 음악을 작곡하여 인간이 만든 작품 못지 않은 호평을 받았으나 비판에 직면한 이야기를 한다.

세번째 사례로는 게임 이론을 적용한 알고리즘의 세계를 소개한다. 국제 정세가 어떻게 전개될지를 알고리즘으로 예측하여 미국의 정보기관에서 유용하게 활용하는 이야기, 포커게임을 개발하거나, 신장이식 기부자와 수용자를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개발한 이야기를 한다.

네번째 사례로 알고리즘으로 사람들의 성격을 분석하는 세계를 소개한다. 심리 검사와 같은 질문에 대한 응답 자료를 이용해 NASA에서 알고리즘을 적용하여 우주여행이나 업무에 적합한 성격의 사람을 가려내고 갈등의 가능성을 예측하는 모델을 활용한다. 알고리즘으로 사람의 성격을 파악하는 방식은 사람들이 쓰는 언어를 자료로 활용하는데 콜센터에서 고객을 응대하는 데 적용하며, 고객을 분류하고 그에 적절한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는데 사용한다. 사람들의 이메일이나 전화 통화에서 쓰는 언어를 분석하여 고객이나 직원의 성격을 파악하고 문제의 가능성을 차단하거나 적절한 세일즈 전략을 선택하는데 사용한다.

이외에도 다양한 사례를 언급하고 있는데, 의료 영역에서 환자를 진단을 하고 투약을 하는데 활용하며, 스포츠에서 선수를 선발하는데 사용하며, 법률회사에서 적절한 법규나 판례를 찾아내는 데 활용하는 등등.

마지막으로 월스트리트와 실리콘 밸리가 우수한 엔지니어와 수학자 확보하기 위해 경쟁하는 양상을 서술한다. 1990년대 알고리즘 거래가 붐을 이룰때 월스트리트로 인재가 몰렸으나, 2007년 금융위기 이후 실리콘 밸리로 인재가 몰리고 있다. 월스트리트에서 알고리즘을 정교화하는 일은 돈은 많이 받지만 그들의 재능이 사회를 바꾸는 데 활용되는 것이 아니기에 유감이라고 서술한다.

이 책에 나온 사례는 저자가 탐사보도 기사를 쓰기 위해 직접 인터뷰한 것에 바탕을 두었다.그래서 현장 감각이 살아 있으며 흥미롭게 이야기를 전개하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논의의 깊이는 깊지 않으며, 인상적인 에피소드를 열거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실제 알고리즘이 얼마나 어떻게 활용되며, 알고리즘 적용에서 어떤 문제를 노출하며, 어떻게 인간과 협업을 하고 있는지에 관해 증권 거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깊이가 있으나 다른 분야는 인상적인 서술에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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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0. 18. 13:50

Don Norman. 2013. The Design of Everyday things. Basic Books. 298 pages.

인지심리학을 응용한 산업디자인 분야의 전문가인 저자가 산업 디자인의 기본에 대해 설명한 책이다. 저자는 사람들이 물건을 잘못 사용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잘 못한 것이 아니라 그 물건이 인간의 심리적 속성을 무시하고 이것에 어긋나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러하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심리 속성에 잘 맞고 사용하기 편하도록 만든다는 원칙을 인간 중심 디자인 Human Centered Design 이라고 하며, 이것이 모든 디자인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 좋은 디자인은 인간과 물건이 서로 잘 소통하면서 인간의 의도에 맞게 물건이 잘 반응하고 기능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인간은 단순한 일을 반복해서 하는 데 쉬 실증을 내고 실수하며,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힘들어 하며, 여러 숫자나 정보를 기억하는 데 한계가 크다. 만일 물건이 이러한 것을 사용자에게 요구한다면 사용자는 실수와 좌절하는 느낌을 거듭 받을 것이다. 기계는 반복적이고 논리적인 업무를 잘 수행하는 반면, 인간은 변화나 창의적인 생각하는 내는데 능하다.  인간과 기계가 서로 협업을 하면서 서로 잘하는 부분을 보완한다면 업무 수행 능력은 크게 높아질 것이다.

인간이 머리 속에 단기에 기억하는 용량이 매우 작기 때문에 인간이 필요한 정보를 모두 기억하여 물건을 사용하도록 설계해서는 안된다. 사용자가 많은 것을 기억해서 조작하도록 하면 실수를 하며 제대로 될 수가 없다. 인간이 기억해야 하는 부분은 가급적 최소화 단순화하는 대신, 물건 속에 필요한 정보가 가급적 많이 녹아 있도록 해서, 물건이 사용자의 의도에 맞추어 알아서 작동하도록 설계 한다.

일단 어떤 물건이 사람들에게 익숙해지면 비록 그것이 효율성에 약점이 있다해도 계속 수용되는 관성을 갖는다. 소비자들은 매우 새로운 것에 거부감을 가지므로, 이러한 관성은 깨기 어려우며, 변화는 점진적으로만 이루어진다. 과거에 그 물건이 개발될 때는 어떤 기능이 효율적이었더라도, 이후에 상황이 바뀌면 이것이 비효율적이 되는 경우가 왕왕 발생한다.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수용하는 데서 얻는 이득이 기존에 익숙한 것을 버리는 비용보다 많을 때에만 새로운 것을 수용하기에 변화는 서서히 일어날 수밖에 없다.

새로운 물건을 개발할 때는 두개의 단계를 거친다. 첫째는 사용자가 어떤 욕구를 갖는지 파악하는 단계이며, 두번째는 그 욕구를 어떻게 물건이나 서비스로 적절히 구현해 낼지이다. 사용자의 욕구를 파악하는 길은 실제 기존에 유사한 물건이 사용되고 있는 현장에서 참여 관찰을 하면서 무엇이 부족한지 무엇을 개선해야 할지를 파악해야 하며, 일단 신제품 개발의 대상이 될 소비자 욕구를 확정지은 다음에는 신제품에 대한 브레인 스토밍 단계를 거쳐 시제품을 만들고 테스트 한뒤 개선하는 과정을 여러번 반복해야만 제대로 된 물건이 만들어진다. 책상에 앉아서 소비자의 욕구를 추정하고 물건을 설계하여 시장에 내놓으면 반드시 실패한다.

신제품 개발의 현장에서는 소비자에게 쓰임새(usability)만을 고려하여 소비자가 쓰기에 좋도록 최선의 물건을 만든다는 원칙을 지킬 수 없다. 예산과 납기의 제한 속에서 신제품 개발이 이루어지며, 팔리는 것을 만들어야 할 필요성은 소비자의 사용 가치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소비자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사용을 방해하기 까지 하는 새로운 기능이 들어가는데, 이는 경쟁업체를 의식해 구매를 자극하기 위한 목적에서 그리되는 것이다.

업무 현장에서는 원칙대로 하면 일이 수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안전장치나 안전 절차를 많이 만들어 놓아도 이 안전 장치를 모두 지키면서 하면 일이 완수되지 않기에 일부러 안전 장치나 절치를 무시하고 일을 한다. 그러나 만에 하나 일이 잘 못되면 그렇게 한 담당자에게 책임을 묻는다.  일이 잘 못되었을 때, 일을 한 담당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그릇되다. 일이 잘 못되는 근본 원인은 일을 그렇게 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여러 원인이 중첩되어 일이 잘 못되기때문이다. 일이 잘못될 때 담당자를 문책하기보다 담당자가 그렇게 일을 하도록 만든 근본 원인을 찾아야 한다. 이렇게 근본 원인을 찾으려 하지 않고 담당자만을 문책하고 덮어버리면, 뒤에 그 일을 맡은 사람이 또 유사한 잘못을 저지를 것이다. 왜냐하면 물건 혹은 일 자체가 담당자의 잘못을 유도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설사 일을 잘못한 담당자가 자신의 잘못이라고 인정한다고 해도, 일이 잘 설계되어 있다면 그가 그렇게 잘못하지 않았을 것이기에, 근본 원인을 사람에게 귀착시키는 것은 그릇되다.

저자는 산업디자인 분야의 학자에서 출발하여 산업 현장의 디자인 전문가로 활동하고 사업가이기도 하다. 그러한 자신의 성향에 맞게 이 책은 디자인 이론과 산업 현장에서 전개되는 비즈니스 현실을 융합하여 어떻게 산업 디자인을 할 것인가 라는 실천적 질문에 답한다.  쉽게 쓰여져 있고 사례를 들며 설명하여 그의 논지가 빠르게 다가온다. 한국을 긍정적으로 여러번 언급하는 것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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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Floris Cohen. 2015. The Rise of modern science explained, a comparative history. Cambridge University Press. 286 pages.

이 책은 서구의 과학혁명을 전공한 역사가의 방대한 저작을 일반 독자가 접근할 수있는 버전으로 축약하여 저술한 책이다. 저자는 17세기에 서구에서 전개된 과학혁명이 어떻게 전개되었으며, 왜 서구에서 그 시기에 일어났는지 설명한다. 17세기 과학혁명의 시원은 그리스의 자연 철학에서 부터 출발한다. 그리스의 자연 철학의 전통은 세갈래로 나뉘는데, 첫째는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자연 철학으로 이는 이성과 논리를 동원하여 연역적으로 자연과 세계를 설명하는 이론 지향의 지식 체계이다. 둘째는 그리스인이 이주한 알렉산드리아에서 전개된 수리적 방법으로 자연과 세계를 설명하는 역시 이론 지향의 지식체계이다. 셋째는 그리스 시대 이후에 새로이 나타난 탐구 방식으로 면밀한 관찰을 통해 실용적 지식을 지향하는 지식 체계이다.

그리스의 자연 철학은 이슬람에 의해 전승되었다. 그러나 이슬람은 이러한 지식 체계를 확장 발전시키는 데 실패했다. 그 원인으로 저자는 11세기에 몽골의 침략으로 인하여 자연에 대한 지적 탐구가 좌초되었으며, 외부 세계가 아닌 내부의 정신세계를 지향하는 쪽으로 지적 활동이 위축되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서구는 13세기까지 기독교의 종교적 독단이 지배하는 지적으로 암흑의 세계였다. 서구는 어떻게 이러한 종교적 독단의 족쇄에서 풀려나게 되었을까? 르네상스라 불리는, 이탈리아 북부지방에서 시작된 그리스의 자연철학을 재발견하는 지적 움직임이 그 시작이다. 기독교의 독단적 권력은 16세기 초반까지도 상당한 힘을 발휘했다. 갈릴레오나 코페르니쿠스의 발견은 기독교의 독단에 의해 억압되었으며, 이후의 학자들도 교회 권력의 탄압을 의식해 조심해야 했다. 그러나 서유럽은 여러 나라로 쪼개져 있었고, 로마 교회의 권력에 대항하는 세속적 군주의 힘이 점차 커지면서 학자들은 탐구의 자유를 획득할 수 있었다.

저자는 왜 과학 혁명이 중국이 아닌 서유럽에서 일어났는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중국은 단일 권력에 의해 계속 지배되어 온 반면, 서구는 여러 나라에 의해 갈려 있었고, 또 그리스에서 이슬람으로, 그리고 북이탈리아에서 대서양 연안 지역으로 지적 활동의 중심이 바뀌고, 서유럽 내에서도 여러 나라로 나뉘어지면서, 중심이 바뀔 때 마다 새로이 해석되고 새로운 요소가 추가되면서 발전이 이루어진 반면, 중국은 이것이 불가능했던 것이 중국의 지적 발전을 저해했다. 또다른 차이로 서구 문명은 자연과 세계를 향한 외적인 지향을 추구하여 지적 활동은 물론 경제나 해외 탐험 등에서 새로운 발견을 추가하고 발전시킨 반면, 이슬람이나 아시아는 내적인 지향을 추구하여 지적 활동이나 경제가 확장성이 부족했다.

17세기에 들어 서구의 학자들은 알렉산드리아로부터 유래한 수리적 접근과 아테네로부터 유래한 자연철학적 접근을 융합하였으며, 거기에 관찰과 실험을 중심으로 한 베이컨의 경험주의를 융합하여 현대 과학방법론을 완성하게 되었다. 17세기에 이러한 지적이 발전이 이루어진 이유는 16세기에 종교혁명 이후 전유럽을 휩쓴 정치적인 혼란이 가라앉아 안정을 되찾았으며, 종교혁명 이후 교회로부터 독립하여 힘을 얻은 각국의 군주들이 과학발전을 통한 국력의 확장을 지원하려 한 것이 지식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베이컨의 말이 대표하듯이, 현대 과학은 지식이 자연을 지배하는 힘을 인간에게 가져다준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한다. 과학적 지식이 실용적 응용을 통해 직접적 이익을 가져온 것은 18세기에 들어서 이지만, 이전에 지배하던 종교적 교리나 이론적 담론에서 벗어나 엄밀한 관찰과 실험을 동원한 객관적 검증을 통해 자연과 세계를 탐구하는 과학 탐구방식은, 발견이 새로운 의문점을 낳고 이것이 다시 새로운 발견을 낳는식으로 지식이 계속 확장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책은 동일한 주제로 저자가 쓴 방대한 책을 요약한 것이라서 이 책 자체만 보면 그리 잘 쓴 책은 아니다. 특히 문체가 난삽하여 읽어나가기가 어렵다. 복문에 복문이 중첩되고, 삽입구가 많고, 구문을 주어로 사용하는 문장들로 가득찬 글은 부드럽게 읽히지 않는다. 천체와 물리학의 기본 개념에 대한 구체적 논쟁이 서술의 대부분을 차지하기에 디테일을 쫒아가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그가 제기한 질문, 즉 왜 전통 사회의 지적인 정체를 극복하고 과학 방법론이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는가 하는 질문은 무척 흥미롭다. 이 책에서 여러 요인이 지적되었지만, 한마디로 하면 개방성과 다양성에서 서구가 동양을 앞섰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사회가 폐쇄적 배타적이 되는 순간 지적인 활동은 정지한다는 교훈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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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9. 30. 21:10

Charles Duhigg. 2012. The Power of Habit: Why we do what we do in life and business. Random House. 286 pages.

뉴욕타임즈의 탐사보도 전문 기자인 저자가 다양한 사례 연구 결과와 저자의 직접 인터뷰를 섞어서 사람과 조직의 습관과 관행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하는 대중적인 심리학 책이다. 습관은 인간의 삶에서 매우 중요하다. 사람들의 행위의 대부분은 습관에 따라 진행된다. 습관은 세개의 구성요소로 이루어지는데 신호(cue), 관행(routine), 보상(reward)이 그것이다. 사람들은 신호를 접하면 루틴에 빠져드는데, 보상에 대한 갈망이 이러한 습관을 움직이는 동력이다.

저자는 습관을 세가지 차원에서 접근한다. 첫째는 개인의 습관이며, 둘째는 조직의 관행이며, 셋째는 사회의 관습이다. 사람들은 보상에 대한 갈망을 외면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러한 보상을 충족하도록 굳어진 루틴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러나 습관의 구성 요소를 분석하여, 어떤 보상을 추구하며, 어떤 신호에 접하여 나쁜 관행을 반복하는지 정확히 파악한다면, 루틴에 빠져드는 신호에 접해 다른 행위로 유사한 보상을 얻도록 훈련을 반복함으로서 나쁜 습관을 고칠 수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쁜 습관을 고치겠다는 굳은 의지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의지가 있으면 신호에 접해 나쁜 루틴을 반복하는 대신 미리 계획한 다른 행위를 실행에 옮길 수있으며, 이것이 반복된다면 옛날의 나쁜 루틴은 새로운 루틴으로 대체된다.

저자는 이러한 이론을 알코홀릭 어너니머스 모임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알콜중독에 빠진 사람이 이 모임에 와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모여 자신의 나쁜 습관을 분석적으로 검토하면서, 그가 어떤 신호에 반응하여 알콜을 마시게 되며, 어떤 보상을 추구하는지를 파악한다. 그 모임을 통해 집단으로부터의 지지라는 보상과 보다 큰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보상을 얻고, 술이 땡기는 금요일 저녁에 술을 먹는 대신 규칙적으로 모여서 이야기하는 것이 이 모임의 성공 요인이다.

조직이 나쁜 관행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나쁜 관행의 바탕이 되는 작은 관행(keystone habit)을 바꾸는 것이 유용하다. 알미늄 제련 대기업인 알코아의 사례에서 새로온 사장이 작업장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여 조직을 바꾸어나간다. 근본이 되는 관행을 바꾸면 이것이 여타 다른 나쁜 관행을 바꾸는 쪽으로 파급효과를 미친다. 문제는 무엇이 나쁜 관행의 바탕이 되는 작은관행이냐 하는 것인데, 저자도 인정하듯이 이것을 사전에 미리 알기는 어렵다. 조직의 나쁜 관행이 바뀐 다음에 돌아보니 그 때 그것을 바꾼 것이 변화의 촉발점이었다고 알게 될 뿐이다. 그러나 변화가 일어난 사후에 어떤 것이 변화를 이끄는 계기였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타당성이 없는 주장이다.

조직의 나쁜 관행을 바꾸는 것은 평상시에는 어렵지만 조직이 위기 상황에 몰렸을 때는 가능하다. 런던의 지하철 공사가 관료조직의 경직성에 매몰되 고객의 안전을 등한시하였는데, 큰 화재사건을 계기로 안전을 우선하는 방향으로 조직의 관행을 바뀌었다. 사회의 관습을 바꾼 예로 미국의 민권운동의 촉발점이 된 몽고메리시의 버스보이콧 사건을 검토한다. 로자 파크가 가진 광범위한 관계망이 바로 개인적인 사건을 시전체의 보이콧 사건으로 확장시킬수있게 한 요인이었다고 분석한다. 로자 파크의 넓은 관계망은 버스보이콧이라는 대의를 널리 확장시켰으며, 이것을 수용하도록 흑인 공동체에 사회적 압력으로 작용하였다. 집단 압력은 사람들의 관행을 바꾸도록 만드는 중요한 힘이다.

마지막으로 자유의지와 습관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자신이 통제하기 힘든 도박벽 때문에 파멸한 것을 그 개인의 책임으로 모는 것이 타당한가 하는 질문에 대해, 저자는 자신의 행위를 스스로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도박이 가져오는 심리적 보상을 회피하기 힘들다고 하여도 선택의 여지가 개인에게 있다는 점에서 그는 벌받아 마땅하다.

책의 부록에서 습관을 어떻게 바꿀 것이가에 대해 조언을 준다. 요지는 자신의 나쁜 습관이 작동되는 기제, 즉 신호와 보상을 면밀히 분석해, 어떻게 하면 나쁜 습관을 반복하게 만드는 신호를 접할 때, 다른 행위를 통해 유사한 보상을 얻을 수 있는지 다양한 방법으로 실험을 해보고 그중 성공하는 방법을 반복하면 나쁜 습관을 끊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다양한 사례를 망라하면서 얕은 수준의 설명을 쏟아내기에 빠르게 책장이 넘어간다. 과학 상식을 넓히면서 가볍게 읽기에 적합한 책이다. 저자의 분석이나 설명은 피상적이며, 자신의 주장에 맞는 면만 골라서 제시하기 때문에 설득력이 크지 않다. 뉴욕타임즈와 월스트리트 저널 등에서 베스트 셀러라거나 올해의 책이라고 추천하는 것이 다 내용이 풍부하지는 않음을 확인한다.

2019. 9. 28. 22:57

Matthew O. Jackson. 2019. The Human Network: How your social position determines your power, beliefs, and behaviros. Pantheon Books. 240 pages.

저자는 인간의 관계망이 사회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스탠포드 대학의 경제학자로 자신의 연구 분야와 관련된 학술 성과를 그래프와 함께 개괄적으로 설명한다. 인간은 항시 관계망 속에서 살아가며, 이 관계망은 인간의 모든 활동 영역에 큰 영향을 미침을 다양한 사례와 연구결과로 보여준다.

먼저 관계망을 어떻게 측정하고 유형화할지에서 부터 논의를 시작한다. 사람들이 서로 관계를 맺는 유형은 다양한데, 중심적인 인물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퍼지는 망이 있는가 하면, 고리 모양으로 사람들이 서로 연결된 망이 있다. 큰 집단 내에서도 분절된 망이 여럿 나타나는가 있는가 하면, 집단의 구성원 모두가 하나의 망으로 연결된 경우도 있다. 큰 집단 내에서 하부적인 작은 망이 여럿 존재한다.

관계망의 영향과 관련해 몇가지 주요 사례에 촛점을 맞추어 설명한다. 첫째는 질병이 퍼지는 양상이다. 질병은 망의 연결점을 타고 관계망 전체에 빠르게 퍼진다. 중심 인물이 존재하지 않아도 수평적인 관계망을 통해 사람들 사이에 감염되는 속도는 무척 빠르다. 둘째 사례는 금융 시장의 메카니즘이다. 인도의 소액 대출 은행은 가난한 사람들이 아무런 담보가 없어도 관계망이라는 신뢰 보장 장치가 탄탄한 신용을 만들어 내기 때문에 성공하였다. 반면 2008년의 금융위기나 1930년의 대공황은 사람들과 금융 기관들간의 관계망을 통해 신용 붕괴의 두려움이 확산되면서 전체 금융 시스템을 마비시켰다. 금융 거래가 지나치게 소수의 대형 기관에 집중될 경우 위험의 분산이 이루어지지 않아 한 곳에서의 충격이 금방 시스템 전반으로 확산된다. 금융 위기를 겪으면 위험이 분산되도록 집중을 규제하는 조치가 내려지나, 시간이 지나며 이러한 규제는 무력화되고 다시 금융이 집중되면서 큰 공황으로 이어지는 사이클을 반복해왔다.

세번째는 관계망은 불평등을 고착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관계망 형성의 기반은 homophily 즉 류류상종의 선호이다. 진화의 과정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과 유사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을 선호하는데, 이것이 관계망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기제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교육을 받는 것이 장래에 좋으리라는 점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며 어떻게 해야 학교에서 성취하고 대학을 가게 되는지 길을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주위에 없기 때문에 빈곤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반면, 중류층은 부모와 주변 사람들로 부터 이러한 유용한 정보를 꾸준히 얻고 이러한 정보에 따라 행동하여 성공한다. 빈부의 격차가 세대간에 이어지는 것은 부를 직접적으로 물려주는 요인보다는 바로 이렇게 정보의 격차에서 발생하는 요인이 훨씬 크다. 류류 상종은 거주, 일자리, 교육, 소비 등 인간의 모든 활동 영역에서 성, 인종, 연령, 종교, 교육, 소득, 직업 등 중요 차원에 걸쳐 사람들의 교류 관계를 나누어 놓는데, 바로 이것이 불평등을 고착 시키고 확대하는 중요 원인이다.

네번째 사례는 친구나 지역 네트워크를 통해 정보가 유통되는 과정이다. 사람들간에 관계망의 밀도가 높을 수록, 특히 공통의 친구가 있을 수록 서로 간 신뢰의 정도가 높고 안정된 거래가 이루어진다. 사람들은 류류상종하기 때문에 자신과 유사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 교류하며, 이것은 사람들의 의견을 양극화하는 경향을 낳는다. 특히 sns와 인터넷이 확산되면서 이러한 성향은 더욱 강화된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세계화는 사람들간의 소통을 높이고 나라들간에 경제 의존도를 높임으로서 전쟁의 가능성을 낮추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지적한다. 근래에 보호무역주의가 높아지면서 나라들간에 경제 의존도가 낮아지면 평화를 깨는 비용이 낮아지기 때문에 우려할 일이다.

이 책은 전문 학자가 자신의 연구 분야를 일반인에게 비교적 쉬운 용어로 설명하는 성격의 책이다. 저자가 일반인이 이해할수 있는 수준으로 전문성을 낮추기 위해 노력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일반 교양서이기는 하지만 저자는 240쪽의 본문을 쓰는데 주석과 참고문헌이 90쪽에 달하는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관계망이라는 주제는 흥미있고 인간 활동의 모든 영역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흥미있는 예를이 많이 등장한다. 이러한 다양한 사례를 학술 연구 성과를 인용하면서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이책의 장점이지만, 많은 주제를 주마간산식으로 다루었다는 비판의 여지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관계망이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이해를 높이는 흥미있는 책임은 분명하다.

2019. 9. 24. 14:43

Naomi Klein. 2009. No Logo. 10th anniversary edition. Picador. 458 pages.

이책은 1990년대 중후반에 걸쳐 공정무역 fair trade를 구호로 선진국 사회 전반에 퍼졌던 다국적 기업과 세계화를 반대하는 사회운동의 배경과 전개 양상을 잘 서술한다. 책의 내용은 크게 두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전반부에서는 다국적 기업들이 선진국에서 물건을 생산하는 일을 개발도상국의 하청공장에 넘겨버리고, 대신 브랜드와 같이 상징과 이미지를 다루는 일에 집중하는 경향을 서술한다. 어떻게 브랜드를 관리하는 일이 다국적 소비재 기업 활동의 핵심이 되는지 다양한 예를 동원하여 상세히 설명한다. 후반부에서는 다국적 기업의 제품을 생산하는 개발도상국의 하청 공장에서 벌어지는 노동착취 행위에 대해 선진국 소비자들이 가두 데모나 불매운동 등으로 압박하여 그들을 굴복시키는 과정을 서술한다. 

저자는 나이키 스포츠 용구 회사를 대표적인 사례로 하여 상세히 설명한다. 나이키의 창업자 필 나이트는 운동화를 생산하는 일을 개발도상국의 하청공장에 넘기는 대신, 그의 회사는 나이키 브랜드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사업에 전적으로 몰입하여 크게 성공하였다. 1990년대 중반 동남아에서 이들의 제품을 만드는 하청 공장에서 아동 노동, 억압적인 고용관행, 착취적인 저임금이 서구 매스컴에 보도되었다. 이는 1980년대 이래 선진국 회사들이 개발도상국으로 공장을 이전하면서 고용이 불안정해지고 실업이 늘어나고 불평등이 확대되는 등 서구에서 탈산업화가 동반한 문제와 짝을 이룬다. 세계화는 개발도상국 사람들에게 전에 없던 많은 일자리를 가져다 주었지만 선진국 사람들의 눈에 그러한 일자리가 착취적 노동으로 비춘 것은 당연하다.

다국적 기업의 제품을 생산하는 개발도상국 공장의 착취적인 노동 상황에 대한 반발이 서구 사회에서 크게 탄력을 받은 것은, 기업의 윤리를 요구하는 소비자 운동의 측면과 함께 공장이 해외로 이전하면서 어려움에 처한 선진국 노동자들의 노동운동도 함께 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공정무역 운동은 표면적으로는 개발도상국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운동이지만, 내면은 개발도상국 노동자에게 일자리를 뺏긴데 대한 반발이다. 개발도상국의 경제수준으로 보면, 착취적 노동이 일자리가 없는 것보다 낫다. 공정무역을 주장하며 세계화를 반대하는 목소리는 1999년 시애틀에서 열린 WTO 국제회의장에서 대규모 데모를 벌이면서 최고조에 달했다. 소비재를 취급하는 다국적 기업은 선진국 전반으로 퍼진 시민단체, 노동단체, 학생들의 불매 운동에 굴복하여 윤리 헌장을 도입하였으며, 개발도상국 공장의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저자는 다국적 기업들이 브랜드 구축에 기업의 역량을 집중한 것이 바로 그들의 비윤리적 기업 행위에 대한 비판에 취약해진 가장 큰 이유라고 지적한다. 1990년대 이전에도 기업은 비윤리적인 활동을 했으나 일반 시민들은 이를 응징할 수단이 제한되 있었다. 정치권은 대기업의 돈을 받고 그들의 편이었으므로 정부가 나서서 기업의 비윤리적 행위를 규제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런데 소비재를 취급하는 대기업이 제조 부문을 떨어버리고 브랜드를 가장 큰 기업의 가치로 만드는 순간, 그들은 소비자들의 비판에 취약해 진 것이다.

저자는 책의 끝부분에서 이러한 일반 시민의 저항이 이익 극대화를 위해서라면 비윤리적인 행위도 마다하지 않는 다국적 기업의 행태에 얼마나 변화를 가져왔는가 하고 질문한다. 그러한 착취적 일자리가 지속되는 이유는 개발도상국의 빈곤에 있다. 착취적인 일자리를 마다하지 않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있는 이상 그러한 일자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선진국에서 1990년대에 뜨겁게 전개됬던 공정무역 운동의 열기를 이제 선진국 사회에서 찾아볼수없다. 뒤돌아보면 1980년대 이래 세계화 과정에서 많은 저임금 일자리가 개발도상국으로 넘어온 덕분에 중국을 비롯한 많은 개발도상국에서 빈곤이 현저히 줄었고, 그것이 그 나라의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데 가장 크게 기여를 하였다. 한국이 대표적인 예이며, 중국이 뒤를 잇고 있다. 공정무역 운동이 선진국 시민들에게 개발도상국의 비참한 삶의 현장에 관심을 환기하는 계기가 되기는 했지만, 사실 그들이 반대한 세계화가 바로 개발도상국 사람들의 비참한 삶을 개선시키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하였다. 물론 그 와중에 다국적 기업과 선진국의 엘리트들이 크게 돈을 벌면서 부의 집중이 더 가속화되기는 했지만.

2000년에 이 책이 출간되고 크게 관심을 모았으며,  출간 10년을 기념하여 길게 쓴 후기를 덧붙였다. 그 후기에서 저자는 이 운동이 얼마나 실제적인 변화를 이끌었는지에 대해 회의적이라고 고백하면서, 다국적 기업의 비윤리적 활동의 배경인 자본주의와 신보수주의 정책에 대해 보다 근본적인 저항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고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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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val Noah Harari. 2017. Homo Deus: a brief history of tomorrow. HarperCollins. 402 pages.

인간은 진화의 과정을 통해 지구상에서 가장 지능이 높은 동물의 위치에 올라섰다. 인간은 개체로 보면 어느 동물보다  뛰어난 존재가 아니지만, 협동과 조직을 통해 집단으로서 개체의 능력을 뛰어 넘는 문명을 이룩하였으며, 생물계를 지배하고 급기에 자연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존재가 되었다.

인간은 자연 그대로의 세계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부여한 세계에서 살아간다. 인간이 만들어낸 종교는 바로 세계에 의미를 부여한다. 사실의 세계는 인간이 왜 그리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답을 하지 않는다. 반면 종교는 무엇이 옳은 것이고 무엇이 나쁜 것인지, 왜 해야 하는지, 혹은 하지 말아야 하는지, 무엇을 목표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제공한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능력이 확장되면서 신의 존재는 과거와 같은 중요성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 과학 기술 문명이 발전하고 인간의 권능이 높아지면서 신에 의지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대신 인간 자신을 모든 가치의 중심으로 놓는 인본주의 Humanism 가 지배하게 되었다. 인본주의는 모든 옳고 그름, 좋고 나쁨, 해야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 판단의 중심에 인간의 생존과 감정과 체험과 행복을 두는 세계관이다.

인간의 능력이 점점 더 발전하면서 영생과 행복과 자연과 세계에 대해 더 큰 영향력 혹은 권력을 추구한다. 저자는 유전자 조작 기술이 발전하고 기계적 능력과 생물학적 기능을 결합하는 기술이 발전하면, 결국 인간의 능력이 업그레이드된 초능력 인간이 나타날 것이라고 예측한다. 더 에너지 넘치고, 더 건강하고, 더 오래살고, 더 지능이 높고, 더 집중을 잘하고, 환경으로부터 새로운 종류의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더 많은 복잡한 정보를 신속히 처리하고, 더 추상화된 생각을 할 수있는 사람이 나타나는 것이다.

유기체란 진화의 과정을 통해 점차 고도화된 알고리즘의 덩어리이며, 삶이란 정보처리 과정이다. 우리의 삶이란 정보를 처리하고 판단하는 과정이다. 더 많은 정보를 더 효율적으로 처리할수록 고등동물이 되는 것이고, 인간의 두뇌는 생물계에서 정보처리를 가장 잘 하는, 다른 말로 하면 지능이 높은 존재이다. 생물체의 감정이란 것은 매우 효율적인 알고리즘이다. 예컨대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은 생존에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반응하도록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이다.

컴퓨터와 인공지능이 발달하면서 정보처리에서 컴퓨터가 인간을 능가하는 분야가 확대되고 있다. 컴퓨터가 더 많은 정보를 더 정확히 처리하게 된다면 인간은 자신의 의사결정을 컴퓨터에게 점점 더 맡기게 될 것이다. 인간의 정보처리 능력에는 한계가 있고, 인간은 모순된 욕구와 그릇된 판단을 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컴퓨터로 구축된 정보처리 시스템이 더 정확히 나에 대해 알고 나의 복리를 위해 판단을 하는 경향이 높아질 것이다.

엄청난 양과 복잡한 정보를 처리하는 컴퓨더 시스템이 인간의 삶을 지배하게 되면 인본주의는 붕괴하게 된다. 그 시스템이 여전히 인간의 복리를 위해 일한다는 점에서 인본주의 이념에 따르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은 모순된 존재이므로 컴퓨터의 판단이 인간의 어떤 부분에 봉사하는가가 불분명할 것이고, 시스템의 판단과 결정과 실행이 개별 인간의 복리에 반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컴퓨터에 기반한 정보처리 시스템은 알고리즘이라는 점에서  유기체보다 한단계 앞서 나간 존재로 등극할 수있다. 인간을 포함한 생물체는 결국 알고리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생물체가 가진 의식(consciousness)은 없지만 지능(intelligence)은 있는 무생물체의 알고리즘이 생물체의 알고리즘을 능가하는 세상이 올 수있다.

인간 사이에서 초능력을 가진 인간과 그렇지 못한 보통 인간으로 구분된 위계가 형성된다면, 보통 인간은 가치를 잃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정보처리 시스템이 과거에 보통 인간이 하던 일을 모두 맡아서 처리할 것이고, 소수의 초능력 인간들만이 시스템에 의해 대체 되지 않는 존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산업사회에서는 생산과 전쟁에 보통 사람들의 기여가 중요하였기에 보통사람의 가치를 존중하는 민주주의나 인간중심의 자유주의 이념이 자리잡았다. 그런데 생산과 전쟁를 정보처리 시스템이 관장하게 되고 보통사람들은 쓸모없는 존재가 된다면 이들을 존중하는 자유주의 이념은 더이상 정당성을 확보할 수없다. 생산에는 기여하지 않고 단순히 소비만 하는 존재라면 그들이 있어야 할 이유를 설득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인권, 자유라는 개념이 내동댕이 쳐질 것이다. 초능력을 가진 인간은 보통 인간을 자신과 같은 존재로 취급하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젊은 나이임에도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준다.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책, Sapiens 를 읽고 감탄했던 만큼 이 책이 놀라운 책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마음껏 상상력을 동원하여 생각의 끝까지 가보고, 이를 용감하게 쓸 수있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 내용만이 아니라 문체 또한 부드럽게 그러나 논리적으로 명징하게 전개하는 솜씨가 돋보이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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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9. 13. 10:50

Wilber Zelinsky. 2001. The Enigma of Ethnicity: Another American Dilemma. University of Iowa Press.

문화지리학자인 저자가 미국의 인종민족의 다양성에 관한 문제를 분석한 학술서이다. ethnicity 는 우리말로는 번역이 안되는는데, 특징이 구별되는 집단을 ethnic group 민족 집단이라 하고, 그렇게 스스로 구별하고 주변 타자들이 구별을 짓는 특성을 ethnicity라 한다. ethnicity 는 주류 집단이 타자를 구분짓는 방식이다. 미국에서 주류 집단인 영국계는 유럽의 다른 지역으로부터 온 이민자들을 민족 집단으로 구별짓고 편견과 차별을 가하였다. 독일계, 북유럽계, 아일랜드계, 이탈리아계, 폴랜드계, 유대인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영국계 자신에 대해서는 이 개념이 적용되지 않는다. 즉 ethnicity는 집단간에 권력의 차이, 위계적인 질서를 반영한다. 유럽의 영국이외 지역 출신의 이민자 후손은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에스닉 집단이라는 오명이 붙었으나 20세기 후반 들어 백인 미국인이라는 개념으로 통합되어 가고 있다. 즉 ethnicity 가 탈색되고 주류 집단으로 편입되고 있다.

그렇다면 1970년대 이래 ethnicity에 관심이 높아지고 유럽의 다양한 민족 출신, 특히 이탈리아계나 아일랜드계 후손들이 자신의 민족성에 다시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이는 symbolic ethnicity 상징적 민족성일 뿐이다. 이는 삶의 조건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문화적 취향을 취사선택하는 것, 즉 개인의 편의에 따라 선택적으로 입었다 벗었다 하는 옷에 불과하다. ethnicity 와 함께 따라다니던 열등함이 사라졌기 때문에 마음편히 택할 수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것의 구속력은 미약하다.

중남미계, 아시아계, 특히 흑인들의 경우 ethnicity 의 구속은 가까운 시일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설사 사회경제적으로 백인 주류에 동화한다고 하여도, 외모로 구별되는 인종적 특성 때문에 '우리와는 다르다'는 명찰이 쉽게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백인 주류사회는 인종주의를 쉽게 버리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인종주의는 백인에게 권력관계에서 우위를 부여하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백인이기 때문에 여러 상황에서 우위를 점하고 이익을 취하는 것이 가까운 시일내에 바뀌지 않을 것이다.

1980년대 이래 소수자의 권리를 짓밟아서는 안되며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사회분위기가 퍼지면서 민족 문화의 다양성을 긍정적으로 여기는 풍조가 자리잡았다. 그러나 저자는 다양한 문화를 진정 존중하고 동등하게 대하는 다문화주의 multiculturalism 가 정착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한다. 특정 집단의 문화는 그 집단의 권력관계에서의 위치를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사회에나 권력을 주도하는 집단과 이에 대응하는 하급의 집단이 존재하며 이는 문화적 다양성에도 투영된다. 어느 사회에서나 주류와는 다른 소수자의 문화가 특이하고 호기심을 유발하는 것은 그것이 주류가 아니고 열등한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1980년대 이래 특정 지역과 연관되지 않고 여러 문화가 혼합된 형태로 존재하는 새로운 다문화 개체가 출현했다고 주장한다. 이민족, 이인종간에 결혼이 증가하고, 이민자들이 본국과 미국의 양쪽에 발을 디디고, 이민초기부터 지위가 높은 직업에 종사하고, 이민자 밀집 거주지를 형성하지 않고 흩어져 살면서, 서로간에 사회문화적 교류를 하는 집단은 미국의 백인주류와는 다르지만 그렇다고 과거에 소수자 민족집단의 전형에도 맞지 않는다.이들은 분명 주류와는 다른 ethnic group이지만 그렇다고 열등한 성격의 ethnicity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들이다.

미국은 앞으로도 다양한 민족들이 이민을 오고 서로 섞이면서도 변형되고 약화된 형태로 자신들의 다양성을 지속해 가는 다양성이 풍부한 사회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왜냐하면 미국은 특정 주류 집단과 피로 연결된 이념적 구심점이 없기 때문이다. 영어라는 구심점은 계속 유지될 것이지만 관습, 가치관, 음식문화 등은 다양한 민족 문화가 섞이면서 변형을 지속할 것이다. 그것이 미국의 강점이었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물론 유색인의 비율이 증가하면서 미국 문화의 구성은 달라질 것이고, 이러한 변화를 두려워하고 반발하는 백인들의 움직임 역시 강해해지고 있지만, 이들이 미국 문화의 변화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저자는 낙관주의자이면서 미국을 사랑하는 감정이 연구에 녹아있다. 이 책은 학술적 분석서이기는 하지만, 미국문화의 다양성에 대한 저자의 풍부한 학식이 녹아 있다. 저자는 정말 많은 사례를 구구절절 나열하면서 문화적 다양성의 미학을 표현한다. 물론 그의 낙관적인 예상이 단기적으로는 맞지 않을 수있다. 도날드 트럼프의 예에서 보듯이. 장기적으로도 미국이 다양성이 주는 체제의 강점을 계속 살려나갈까? 저자는 다양성을 긍정적으로보지만, 유색인의 입장에서 볼 때 그리 달가운 명찰이 아니다. 백인의 반발이 큰 폭력 없이 다양성의 확대라는 흐름으로 흡수될까? 나는 이 질문에 대해 회의적이다. 근래에 미국과 중국의 패권 싸움에서 보듯이, 권력 다툼의 장에서는 평화적 타협과 조화라는 결과는 역사상 예가 없다.  미국의 백인이 ethnic group의 일원으로 바뀌는 것은 평화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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