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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나무'에 해당되는 글 285건
2020. 3. 2. 21:08

Dani Rodrik. 2018. Straight Talk on Trade: Idea for Sane World Economy. Princeton University Press. 274 pages.

저자는 하버드 대학교의 경제학 교수로 이 책은 그가 근래에 쓴 몇개의 글을 모아 편집한 것이다. 이 책은 그가 수년전에 Globalization Paradox의 논지와 연결되는데, 세계화의 문제점에 대해 논의하며 그러한 문제에 대응하는 현실적 방안을 제시한다. 

세계화는 승자와 패자를 낳는다. 교육수준과 기술 수준이 높은 사람은 세계화로 큰 이익을 얻지만, 교육수준이 낮은 사람은 피해를 본다. 세계화는 불평등을 높인다. 이러한 세계화가 초래한 문제에 대한 반발로 근래에 서구사회에서 대중영합주의 정치가 득세하고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조짐을 보인다.

이러한 세계화의 부작용을 막으려면 각 국가 고유의 제도와 독립성이 존중되는 방식으로 세계 경제가 연결되어야 한다. 각 나라의 국민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제도와 경제 구조가 온존될 때에만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운영될 수있다. 현재와 같이 세계화의 패배자들을 배제하고 그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방식으로 세계화가 전개된다면, 정치적인 혼란과 세계화의 후퇴를 피할 수 없다.

세계화 낙관론자들은 앞으로 국가의 경계가 사라지리라고 예상하지만, 국가의 역할은 강건하며 미래에도 그러할 것이다. 사람들의 삶은 국가 내에서 이루어지며, 사람들의 어려움에 국가가 대응하며, 국가가 제도를 만들고 관리한다. 민주주의는 국가가 국민의 요구에 맞추어 제도를 만들 것을 요구하므로, 민주주의가 지배하는 한, 국가의 주권을 국외의 기구에 완전히 위임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 유일한 예외는 유럽 연합인데, 그곳에서도 국가가 주요 경제 정책을 좌지우지하며 각 국가가 국민에게 책임을 지는 시스템이 자리잡고 있다. 

세계화, 민주주의, 국가의 주권, 이 세가지를 모두 만족시킬 수는 없다. 이 셋 중에 두개만 조합할 수있으며, 나머지 하나는 희생되어야 한다. 이 세가지가 모두 동시에 만족될 수없는 이유는, 각 국가는 그 나라의 지리와 역사를 통해 그 나라 고유의 선호와 제도가 구축되어 있기때문이다. 예컨대 미국인은 북유럽 국가의 높은 세금, 높은 평등, 높은 복지를 선호하지 않으며, 반대로 북유럽 사람은 미국의 높은 불평등, 높은 위험부담을 선호하지 않는다.

세계화와 민주주의가 조합된다면, 즉 구성원의 요구에 답하면서 세계적으로 단일체제를 이루려고 한다면, 각 국가 고유의 선호와 각 국가의 주권은 포기해야 한다. 민주주의와 국가의 주권이 결합된다면, 각 국가는 그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는 방식으로 정치 경제를 운영하므로 세계적인 단일 체제는 허용될 수 없다. 세계화와 국가의 주권이 결합된다면, 즉 각 국가의 주권을 인정하면서 세계적 단일체제를 구축한다면, 각 국가의 구성원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는 민주주의가 성립할 수 없다. 유럽연합은 어느 정도 경제 단일체제를 이루기는 했으나 그에 걸맞게 국가의 주권을 포기하는 것이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에 계속 덜컹 거리며 위기에 취약하다.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의 가난한 나라들이 동아시아의 경제발전 경로를 따라 발전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동아시아는 제조업을 중심으로 생산성을 높여나갔는데, 가난한 나라들은 제조업이 성장하기 전에 서비스업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제조업은 생산성 향상이 빠르나, 서비스업은 생산성 향상이 더디다. 생산성 향상이 없다면 사람들의 소득이 높아지지 못하므로 가난에서 탈피할 수 없다. 선진국에서 자동화로 제조업의 노동수요가 감소한데다, 중국이라는 거대 제조업 국가가 버티고 있기때문에, 아프리카와 같은 가난한 나라들이 노동집약적 제조업으로 경제 성장을 이루기가 어렵다.

경제는 정치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경제적으로 효율적인 방식이 채택되지 않는 이유, 경제발전에 유리한 정책을 시행하지 않는 이유는 정치적 안정, 특히 기득권 집단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 경제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보다 우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적 기득권 집단의 이익에 위협이 되지 않으면서 경제적 효율성을 높이는 경제발전 전략을 채택한 예가 많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 영국의 산업화 과정, 독일의 지주계층이 산업화에 뛰어든 것 등이 대표적이다. 개발도상국에서도 적절한 전략과 환경이 마련된다면 정치와 충돌하지 않고 경제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다. 기득이권 구조가 경제발전을 가로막기도 하지만 좋은 아이디어는 경제발전을 이끈다. 예컨대 중국에서 제한된 지역을 수출자유지역으로 설정하고 이곳에서 시장경제가 운용되도록 한 것이 경제발전의 동력이 되었다.

가난한 사람들이나 중류층이 자신의 계급 이익에 반대되는 정책을 지지하는 이유는, 지배집단이 정체성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조작하기 때문이다. 계급 정치(class politics)가 지배한다면 각 계급은 자신의 경제적 이익에 따라 투표를 할 것이지만,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가 지배한다면 사람들은 자신이 중요시하는 정체성, 즉 인종 민족, 종교, 지역 등에 따라 자신의 경제적 이익에 반하는 정책을 주창하는 정치인도 지지한다. 부자들은 사람들의 정체성을 환기시킴으로서 경제적 불이익을 잊도록 하는 식으로 자신의 이익을 보호한다. 

선진국에서 세계화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어떻게 포용할 것인가? 세계화의 피해를 보상하는 방식의 정책은 미국에서 지지 받지 못했다. 1980년에 레이건 대통령은 산업전환보상법의 예산을 삭감하여 무력화시켰다. 공장이 개발도상국으로 이전하면서 직장을 잃고 소득이 낮아진 사람들에게 기술훈련을 시키고 보상을 주는 방법은 유럽에서는 어느 정도 정치적 안정에 기여했으나, 그곳에서도 대중영합주의 정치인이 부상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대안은 각 나라가 자신의 규제와 제도 환경을 보호하도록 하면서, 공정무역을 하는 방식으로 세계화를 조정하는 길이다. 개발도상국에서도 선진국에서와 유사한 수준의 사회적 보호를 제공하면서 생산하도록 하여 선진국과 개발도상국간에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노동자의 기본권을 존중하고, 유아노동이나 착취적 노동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기본 규칙을 모두 준수한다면, 선진국 사람들도 자신의 일이 개발도상국으로 옮아가는 것에 분노하지 않을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교육수준이 낮은 사람이 배제되지 않도록, 즉 포용적 경제 성장을 위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세계화의 패자에게 갈곳이 없도록 하는 현재의 방식은 위험하다. 좌파는 이들을 포용할 수있는 대안적 경제 모델을 제시하지 못하므로, 결국 이들의 분노를 이용한 대중영합주의적 민족주의적 우파의 목소리만 높아졌다. 이는 세계화를 좌초시키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다.

세계화와 경제성장의 다양한 쟁점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책이다. 각 국가가 자신의 제도적 주권을 유지하면서 세계화를 조절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는 타당성이 있다. 세계화에서 패배자를 포용하는 방식으로 국가가 경제성장을 조정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대등한 수준의 사회적 보호를 제공하도록 하여 공정하게 경쟁한다면 선진국 사람의 분노가 가라앉을 것이라는 그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빈곤한 나라에 선진국 수준의 사회적 보호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이다. 당장 빵이 없는 사람들에게 사회적 보호는 뒷전일 수밖에 없고, 그것이 그 사람들이 원하는 바이다. 설사 공정무역을 한다고 해도, 선진국에 교육 수준이 낮은 사람의 일자리가 개발도상국의 저임금 노동자에게로 이전한다면 그들이 여전히 분노하지 않을까? 같은 나라에서 기술 발전으로 자신의 비효율적인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에 사람들이 분노하지 않는 것처럼, 공정경쟁으로 자신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에 분노하지 않는다는 그의 주장은 틀리다.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건 경쟁력이 떨어져서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된다면 그러한 현실에 좌절하고 분노할 것이다. 그들이 그러한 처지에 떨어지지 않도록 기술 수준을 높이거나, 그것이 안된다면 사회적 지원을 후하게 해주어 분노를 완화시키는 것만이 그들을 달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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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n Fisher. 2008. Rock, Paper, Scissors: Game theory in everyday life. Basic Books. 199 pages.

저자는 대중 과학 저술가로 게임이론을 통해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의 근본적 딜레마를 설명하고 해결 방법을 모색한다. 내가 선한 행위를 한다고 하여 상대도 반드시 선한 행위로 대응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모두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하여 악한 행위를 한다면 사회의 질서는 무너질 것이다. 구성원들이 서로 협동하는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생존 가능성이 높지만, 집단 내에서 다른 사람들은 협동을 할 때 내가 이기적으로 행동하면 나에게는 남보다 이익이 더 많이 돌아간다. 이러한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게임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이 모인 사회에는 일곱 가지의 딜레마가 존재한다. 첫째는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 둘 다 죄를 고백하지 않고 버티면 둘 다 이익을 보지만, 어느 한쪽은 버티고 다른 한 쪽은 고백을 하면 고백을 한쪽은 이익을 보지만 버틴쪽은 손해를 보는 상황. 둘째는 공유지의 비극(the tragedy of commons). 공동소유하는 것에서 각자가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하려 하면 공유지는 망하게 됨. 셋째는 무임승차자(free rider). 나는 기여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노력한 댓가를 향유함. 넷째는 치킨(chicken). 둘다 양보하지 않고 버티면 모두 망하지만 어느 누구도 먼저 양보하려 하지 않음. 다섯째는 자원자의 딜레마(volunteer's dilemma). 누군가 희생하면 전체가 이익을 보지만 아무도 스스로 희생하려 하지 않음. 여섯째는 양성의 갈등(the battle of the sexes). 각자가 선호가 다른 데 어느 한쪽도 자신의 선호를 상대를 위해 포기하려 하지 않음. 일곱째는 사슴사냥(stag hunt). 공동으로 사슴을 샤냥하는 데 어느 한 사람이라도 자기 앞에 지나가는 토끼를 잡는데 눈이 팔리면 자신은 이익을 보지만 다른 모두는 사슴 사냥에 실패하는 상황. 

이 모든 딜레마는 개인의 이익과 공동체의 이익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하는 문제를 낳는다. 단 한번으로 끝나는 관계라면 일탈자를 막는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 남보다 먼저 일탈하는 사람이 이익을 보고 끝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관계는 한번으로 끝나는 관계가 아니며 다양한 통제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질서를 따르도록 하는 사회적 압력이 일탈을 막는 장치이다. 집단에서 규범을 어기는 사람은 왕따를 당하거나, 평판을 잃거나, 벌을 받는다. 사람들은 어릴 때 사회화 과정을 통해 규범을 지키도록 내면화된다. 규범을 어기면 외부로부터의 제제 이전에, 스스로 마음이 불편해진다.

인간은 공정성(fairness)을 지키려는 강한 욕구를 가지고 태어났다. 자신에게 손해가 된다고 해도 공정한 관계를 선호하며, 불공정하게 이익을 보는 사람을 처벌하는 데에서 쾌감을 느낀다. 공정성을 추구하는 욕구는 동물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관찰된다. 이러한 욕구는 공정성을 유지하는 집단이 그렇지 못한 집단보다 생존의 가능성이 더 높기때문에 선택된 진화의 산물이다. 그러나 진화는 개인 단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볼 때 공정성을 유지하는 집단 속에서도 항시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일탈자가 생기게 마련이다.

두 사람사이에 가장 공정한 분배 방식은, 한 사람이 나누고 다른 사람이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다(I cut and You choose). 여러 사람이라면 나눈 사람이 가장 나중에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다. 혹은 각자 자신은 선호하지만 다른 사람은 선호하지 않는 것을 먼저 챙기도록 한 다음, 공동으로 선호하는 것을 번갈아가며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다.

관계가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반복될 때, 협동을 만들어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tit for tat), 즉 상대가 나에게 대하는 대로 상대에게 값는 방식이다. 이 방식을 긍정적 보상이나 부정적 처벌 모두에 적용한다. 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과거 철학자와 현자들이 모두 권한 방식이다. 이 방식이 모두에게 가장 큰 이익을 가져다 준다. 그러나 이 방식의 문제는 만일 실수나 우연한 상황때문에 한쪽이 이탈을 했을 때 그 이후 보복이 계속이어지며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제시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이익을 볼 때는 현재의 행위를 지속하지만 손해를 보면 지금까지와 반대로 행위하는 것이다(stay if you win, shift if you lose). 이러면 만일 상대가 이탈했을 때 나도 이탈하여 상대에게 손해를 끼치지만 상대가 만일 또 이탈한다면 내가 협조를 하는 선순환을 시작할 수 있다.  

저자는 게임이론을 주변의 예를 통해 상식적으로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게임이론이라는 부제에 맞게 저자가 드는 예가 대체로 저자의 개인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소한 것들이다. 그것도 나름 가치는 있지만 설득력이 크지 못하다. 사회에서 발생하는 보다 다양한 예들을 게임이론을 이용해 설명한다면 사회를 이해하는데 보다 풍부한 통찰력을 주었을텐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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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2. 26. 21:03

W. Brian Arthur. 2009. The Nature of Technology: What it is and How it evolves. Free Press. 216 pages.

저자는 기술과 경제의 관계를 연구한 경제학자로 기술은 무엇인지 어떻게 기술이 발전하는지 설명한다. 기술은 인간의 필요에 부응하는 수단으로서, 자연 현상을 인간의 필요에 맞도록 조작하는 방법과 그러도록 만들어진 장치를 통칭한다. 기술은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기존에 있던 기술들을 조합하는 과정을 통해 발전한다. 단순한 기술들은 조합을 거듭하면서 복잡한 기술로 거듭난다. 기술은 자연현상, 예컨대 물리적 인력, 유체현상, 광학현상, 자기현상, 전자현상, 화학현상 등을 당면 목적에 맞게끔 끌어다 쓴다. 만일 자연현상이 다른 세계로 가면, 우리가 만들어낸 기술은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복잡한 기술은 모듈(module)이라 부르는 기술 뭉치들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모듈은 다시 조금더 단순한 구성 모듈로 구성되며, 이러한 과정은 거듭된다(recursive). 저자는 전투기의 제트엔진을 예로 들어 이것이 어떻게 모듈로 구성되는지 설명한다. 

기존의 기술이 안은 문제를 해결하는, 혹은 개선하는 과정을 통해 기술은 발전한다. 때로는 기존의 기술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것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예컨대 프로펠라 비행기에서 제트 비행기로 바뀌는 과정은 기존의 것의 문제를 개선하는 식으로 탄생되지 않았다. 자연 현상을 새로이 가져다 쓰는 원리를 생각해 내면서 새로운 기술이 만들어진다. 이 경우에도 새로운 원리는 다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용된 원리를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용해본다든가 하는 식으로 발전한다. 기존에 가용한 기술이나 원리가 많을 수록 새로운 기술을 개발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왜냐하면 가용한 기술들이 많으면 새로이 조합하는 경우의 수가 비약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전문가는 기존의 기술과 원리에 통달한 상태에서, 새로운 문제를 풀 방법을 궁리하면서 기존의 것을 선택적으로 가져다가 새로이 조합한다. 많은 실험과 시행착오를 거쳐서 문제를 해결하는 조합을 만들어 내면, 이러한 새로운 조합이 안고 있는 문제를 개선하는 후속 과정을 통해 기술이 정교화된다.

기술이 정교화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늘어나지만, 기존의 기술로는 도저히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에 부닫쳤을 때, 전혀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기술이 나타난다. 이렇게 새로운 기술로 바뀌는 과정은 토마스쿤의 패러다임의 변화와 비슷하다.

기술은 기술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발전의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기술이 정형화되기 이전 단계에서는 잡다한 장인적인 지식이 많은데, 이는 이 기술에 통달한 전문가들의 경험과 지식 속에 체화되어 있다. 전문가들은 당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서로 경험과 지식을 교환하고 공유하는데, 이러한 전문가 사이에 교환과 공유는 가용 기술을 조합하여 새로운 기술로 만들어 내는 효율성을 높인다. 다른 지역에서보다 실리콘 밸리에서 기술의 발전이 빠른 이유이다.

중요한 기술은 그 기술을 활용하여 생산하고 삶의 방식을 조직하는 경제를 낳는다. 19세기가 스팀 엔진의 시기였으며, 20세기는 내연기관과 전기의 시기, 1980년대 이후는 컴퓨터의 시기이다. 근래에는 인터넷과 컴퓨터가 결합하면서 정보산업의 시기가 시작되고 있다. 시대 전반을 관통하는 기술은 해당 기술이 도입되는 초기에는 이것이 앞으로 어떻게 생산과 생활에 적용될지 알 수없다. 

기술이 발전하는 과정은 생물체의 진화와 유사하다. 적자생존이라는 원칙이 기술의 선택에도 적용된다. 기술은 경로의존적으로 복잡성을 더하면서 진화한다. 먼 미래에 어떤 기술이 나타날지 미리 알 수 없다. 생물체의 진화와 다른 점은 생물체의 진화는 서로 다른 종간에 유전자의 조합이 이루어지기 매우 어려우나, 기술의 진화는 다양한 기술의 조합을 통해 새로운 기술로 탄생한다는 점이다. 

어떤 기술이건 항시 풀어야 할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며, 이를 문제를 푸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기술이 발전한다. 외적인 충격에 의해서가 아니라 기술 자체가 새로운 기술을 낳는 것이다.  물론 인간이 제시하는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색하면서 새로운 기술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기술이, 새로이 발생하는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책을 스스로 모색하는 과정을 아직은 인간의 개입 없이는 못하지만, 어떤 기술이나 해결해야 할 새로운 문제를 안고 있으므로 기술은 정체되지 않고 계속 발전할 수밖에 없다. 과거에 간단한 기술밖에 없을 때에는 조합할 수있는 가용 기술이 많지 않았으므로 기술의 변화 속도가 느렸지만, 가용 기술의 가짓수가 많아 조합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엄청나게 늘어난 요즈음, 기술 변화의 속도는 무척 빠르며 앞으로 더욱 빨라질 것이다.

이 책은 기술의 변화에 대해 풍부한 예를 곁들여 이론적인 설명을 제시한다. 저자의 강연에 근거하여 책을 썼으므로 글이 술술 넘어간다. 기술 발전과 관련하여 특별히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

2020. 2. 25. 12:46

Nassim Nicholas Taleb. 2018. Skin in the Game: Hidden asymmetries in daily life. Random House. 236 pages.

저자는 유가증권 딜러의 경험을 바탕으로 위험의 속성을 세상사에 적용하여 이야기를 풀어낸다. 일에 간여하는 사람이 그 일의 결과, 즉 성패의 위험을 지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자신의 일의 결과를 자신이 책임져야 할 때 사람들은 상황을 잘 이해하며, 자신의 역량을 최고도로 발휘하며, 사회 정의가 바로 서게 된다. 반면 일의 결과를 자신이 책임지지 않는, 일의 결과가 만들어내는 이익은 자신이 챙기지만 손해는 다른 사람이 지게 하는 그런 구조는 현실을 외곡하고 결국 망하게 되는 길이다.

금융가, 학자, 저널리스트, 분석가, 정책 입안자들은 말로만 일을 할뿐 그 일이 초래하는 실제의 위험을 지지 않거나, 이익만을 선택적으로 챙기고 손실은 남에게 떠넘기기 때문에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지식인은 현상을 복잡하게 설명함으로서 먹고사는 무리이다. 그들은 자신의 말이 맞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동료 지식인들에게 받아들여지는가가 중요한데, 지식인들은 복잡하게 보여야만 마치 중요한 것을 하는 듯이 보여서 먹고살수 있기 때문에 단순한 것을 복잡하게 외곡하는 일에 공모하고 있다. 단적인 예로 헬스장에서 근육의 힘을 키운다는 목적으로 복잡한 기구를 잔뜩 들여 놓지만 막상 바벨은 없다. 가장 단순한 바벨이 근육의 힘을 키우는 데 가장 효과적이다. 헬스장에 있는 복잡한 기구는 특정 결함이 있는 사람에게 특정 부위를 재활시키는 목적의 것이다.

그의 말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근육의 힘을 단련시키는데 바벨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지적은 맞지만, 복잡한 기구는 근육의 힘을 단련시키는 목적만은 아니다. 단순한 반복과 권태를 싫어하는 인간의 속성에 대응한 수단이다.  전문가가 복잡한 설명을 만들어내는 것도 이야기를 좋아하는 인간의 속성을 만족시키기 위한 수단이다. 인간은 '냉혹한 사실'(brute fact)을 원하지 않는다. 설사 복잡한 설명이 맞지 않더라도 냉혹한 사실의 냉혹함을 감추어주는 이야기꾼의 복잡한 이야기에서 사람들은 냉혹한 현실과 실패의 쓴맛을 잊고 위무받는다. randomness 의 냉혹함을 똑바로 바라보고 견딜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왜 나에게 이런일이?'(why me?)라는 질문은 정확한 답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 위무를 원하는 것이다. 전문가와 종교인이 이러한 인간의 기본적 욕구에 부응해 위무를 제공한다.

지식인보다는 상인, 사업가, 장인이 더 가치있는 일을 하고 있다. 상인, 사업가, 장인은 일의 실패 위험을 본인이 지며 실제 가치있는 무엇을 만들어내는 반면, 지식인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위험을 지지 않으며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기에 가치있는 것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말이나 생각보다는 행위와 결과가 중요하다. 사람들은 자신이 실제 무엇을 하는지, 세상이 정말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지 못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 것은 현실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혹은 전문가가 어떻게 진단하는지가 아니라, 세상이 작동한 결과에 주목해야만 세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있다. 시간의 시험을 통과하여 살아남은 것만이 합리적인 것이다. 합리적이지 못한 것은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 탈락하기 때문이다. 생존의 시험만이 일의 타당성을 증명하는 유일한 길이다. 세월의 시험을 통과한 할머니의 지혜가 사회과학자의 분석 결과보다 더 값지다.

평균으로 계산한 위험의 확률은, 드물지만 한번 닥치면 큰 피해를 주는 위험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일상의 위험 중 후자의 것이 많은데, 우리는 이러한 위험을 직관적으로 알기에 피한다. 이는 손실 회피(loss aversion)의 성향으로 나타나는 데, 이러한 인식의 편향성(bias)은 생존을 위하여 꼭 필요하다. 진화의 결과 이런 성향을 가진 생물만 살아남았다.

저자는 간접 경험의 지혜를 인정하지 않는데, 인간의 지식의 발전은 사람들의 직접경험이 간접경험으로 축적되어서 오늘에 이르렀다. 자연과학이나 기술의 세계만이 아니라 사회과학에서도 위대한 발견과 지식의 가치를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스 시대보다 오늘날 사회에 대한 이해가 더 높으며, 덜 폭력적이며, 비참이 덜 하고, 더 잘살게 되지 않았는가? 물론 말로 먹고 사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지적처럼 필요없이 현상을 복잡하게 외곡하며, 결과를 책임지지 않는 비겁자라는 지적은 맞다. 그러나 지식 행위 전반을 부정하는 저자의 반지성주의에는 동의할 수없다.

이 책은 잠언집의 성격이다. 권력자와 전문가 집단의 권위와 위선에 대해 도전하며, 냉소적인 에피소드와 경구적인 발언으로 채워져 있다. 그가 쓴 기존의 책의 메시지를 반복한다. 그가 제시하는 메시지는 가치있지만, 책 전체에서 동일한 메시지를 별 상상력없이 반복한다. 그는 겸손하고 독자에게 친절하게 다가가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독자가 이해하지 못할 라틴어와 수사를 계속 나열하는 것은 기존의 권위를 부정하는 저자 자신이 권위를 탐하는 행위이다. 그가 조금더 친절하고 겸손했다면, 사람들이 그의 지혜에 눈을 떠서 덜 어리석게 살아갈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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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2. 21. 12:02

Leslie R. Crutchfield. 2018. How Change happens: why some social movements succeed while others don't. Wiley. 183 pages.

이 책은 조지타운 대학에 Global Social Enterprise Initiative 라는 연구 집단이 3년동안 연구한 결과를 요약한 책이다. 왜 어떤 사회운동은 성공하는 반면 다른 사회운동은 실패하는지 답하는 것이 이 연구 프로젝트의 과제였다. 저자는 부록에서 연구 대상을 선정하는 기준을 몇가지 제시한다. 1980년대 이후의 것, 성공과 실패를 판별할 구체적 목표가 있는 것, 연구 시점에 사회운동의 성과가 나온 것, 정치적인 운동이 아닐 것 등이다. 몇 개의 사회운동에 논의를 집중하는데, 음주운전 금지 운동, 동성애자 혼인 인정 운동, 총기 소지권리 운동을 대표적으로 성공한 운동으로 보는 반면, 총기소지 제한 운동을 실패한 운동으로 비교한다. 이외 금연운동, 소아마비 퇴치 운동, Occupy Wall Street 운동, Black Lives matter 운동은 간단히 서술한다.

성공한 사회운동은 공통점이 있다. grassroots 즉 밑바닥 평회원을 적극적으로 참여시키는데 주력했다는 점이다. 운동의 대의를 체험하고 공감을 하는 사람들이 운동 활동을 통해 서로 연대감을 맺을 때, 운동에 열성적으로 매진하는 참여자가 된다. 지역의 지부 활동이 활발하고, 지역과 주 단위에서 추진하는 동력이 뒷받침되어야 중앙에서 추진하는 노력도 힘을 받는다. 실패한 사회 운동은 중앙 조직에서 정치와 여론 조작을 통해 변화를 만들어 내려 하는데, 이는 성공할 수 없다. 지역의 활동에 주력하는 것은 자원이 많이 필요하고 가시적인 성과가 빨리 나지 않기에 이를 건너 뛰려 하는데, 중앙에서부터 전국적인 변화를 도모하는 것은 성공하기 힘들다.

음주운전 금지 운동의 리더였던 캔디 라이트너는 자신의 딸이 음주운전자에 의해 죽고 가해자가 법원에서 방면되는 것을 지켜보고 분개하여 운동을 시작했다. 그녀가 조직한 Mothers Against Drunk Driving 은 음주운전에 희생된 유가족이 회원이 되어 이들에게 정서적, 실질적 도움을 주는 조직을 지역 단위로 만들면서 점차 전국적으로 운동을 확대하였다. 회원들의 열성적인 헌신과 중앙에서 지도자의 효과적 활동 덕분에, 1980년대 이전까지 사회적으로 관용되던 음주운전이 범죄로 인식이 바뀌었고 일반인의 행위의 변화를 가져왔다.

동성애자 혼인 인정 운동 역시 1980년대까지 동성애에 대해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을 이 운동의 노력으로 짧은 시기에 바꾸어 놓았다. 동성애자와 동성애 커플에 관련된 사람을 회원으로 하였기에 이들은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 퇴치 운동에 감정적으로 헌신할 수있었다. 동성애자 혼인 인정 운동은 2000년대에 들어 운동의 전략을 동성애자의 혼인권을 주장하는 쪽에서, 동성애자도 보통사람과 다름없이 서로 사랑하고 아이를 키운다는 감정적 호소 전략으로 전환하면서 일반인의 공감을 얻었다. 이런 일반인의 공감이 정치적 노력과 결합하였을 때 구체적인 제도 변화로 귀결될 수 있었다.

총기 소지권리 운동 역시 총기를 소지한 회원과 가족이 지부 활동에서 서로 관계를 돈독히 하는 꾸준한 참여 덕분에, 이들이 총기 소지 권리를 제한하려는 사회적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반발하고 동원되는 효과적 세력이 될 수 있었다. 반면 총기 제한 운동은 중앙 조직에서 정치인과 미디어를 상대로 한 활동에 주력하였기에 힘을 받을 수 없었다. 정치인은 자신의 지역구의 유권자 중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에 반응하기 때문이다. 지역에서부터 변화를 추진하는 활동이 쌓여서 압력을 가할 때, 중앙의 정치와 제도를 변화시킬 수있는 것이지, 중앙의 법과 정치를 바꾸어서 전국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는 없다. 성공한 사회운동은 운동의 자원을 지역의 회원조직과 그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데 주력한다.

사회운동의 조직 역시 상의하달 방식의 위계 조직은 성공할 수 없다. 성공하는 사회운동 조직에서 중앙의 지도자는 지역 조직을 조정하는coordinate 역할을 하며, 지역의 지도자들을 서로 묶는 네트워크의 중심에 있다. 자원과 결정은 지역의 조직 지도자에게 위임되며, 유능한 사회운동의 지도자는 지역에서부터 올라오는 의견을 수렴하고 조직 외부의 환경에 적응하여 전략을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성공하는 사회운동은 법과 제도를 바꾸려 하기 전에 사람들의 인식, 감정, 규범을 바꾸려는 노력을 먼저 한다. 동성애자에 대한 사람들의 감정과 인식이 바뀌었을 때, 동성애자의 혼인을 인정하는 법률이 의회를 통과할 수있었다. 총기 소지권리 운동이 미국인들의 자유와 자기 책임이라는 전통적 가치를 절대적으로 옹호하도록 부추기고, 중앙으로부터의 규제와 절제라는 가치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도록 하는 한, 총기 규제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기는 어렵다. 총기 규제 운동이 성공하려면 총기 사고로 희생된 사람들의 감정과 헌신을 바탕으로 하는 지역 활동이 활성화되어서 정치인이 이들의 적극적인 참여에 신경을 쓰게 될 때에만 성공할 수 있다.

성공하는 사회운동은 운동의 대의에 대해 다양한 의견의 구성원을 표용할 수 있을 때에만 성공한다. 모든 사회운동에는 극단적 의견과 전략을 주장하는 분파와 중도파가 뒤섞여 있다. 이들은 자원, 권한, 명예, 등을 두고 서로 알력을 벌인다. 사회운동의 중심적 지도자와 조직이 큰 대의의 관철을 위해 자신이 속한 조직의 권리를 뒤로 하고 다른 분파 의견과 조직에 양보하고 타협할 때에만 사회운동은 성공하였다.

이 책은 연구 보고서 성격의 책이다. 성공한 사회운동과 실패한 사회운동을 비교하여 요인을 분석하는 건조한 서술로 채워져 있다. 단일 저자가 쓰기보다는 각 찹터를 나누어서 쓴 것 같은 느낌이다. 왜 그러한 운동이 발생했을까, 사회운동을 발생시킨 사회적 역사적 배경은 어떠한가, 성공과 실패가 조직과 전략의 차이일까, 조직의 자원은 어떻게 전개되었으며, 지도력은 어떻게 발휘되었으며, 갈등은 어떻게 조정되었나, 등 보다 심층적인 질문에 답하지는 않는다. 사회운동을 전반적으로 이해하는 데 크게 통찰력을 주지는 않지만, 사회운동 활동가에게 실용적인 메시지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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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2. 19. 15:12

Brad Stone. 2017. The Upstarts: Uber, Airbnb, and the battle for the new silicon valley. Back Bay Books. 347 pages.

저자는 블룸버그 뉴스의 기자로 우버와 에어비앤비가 기존 업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어떻게 성장했을까에 관해 서술한다. 택시와 숙박업계는 규제가 심하고 진입장벽이 높은 분야이다. 이 두 회사는 '공유경제'(sharing economy)의 대표적 성공사례이다. 자신의 차를 남고 공유하는 것과 집에 비는 방을 관광객에게 제공한다는 유사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2010년을 전후한 시기에 사업을 시작하여 크게 성공했다. 모르는 사람을 자신의 차에 태우거나 집에 묵게하는 것은 이들의 사업이 성공하기 전에는 낯선 아이디어였다.

우버Uber와 리프트Lyft는 2008년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GPS 위치추적이 가능해지면서 사업의 가능성이 열렸다. 차를 함께 사용하는 것, 스마트폰으로 차를 부르는 것, 지도 상에서 위치를 추적하는 것 등의 기술과 아이디어는 이미 다른 회사들이 개발하였다. 우버는 샌프랜시스코에서 기사 딸린 고급 승용차(리무진)를 스마트폰으로 부르는(우버 블랙이라고 후에 이름붙임) 사업을 2010년에 출범하여 샌프란시스코에서 제법 크게 성공하였다. 리프트의 전신인 짐라이드Zimride 는 대학 캠퍼스를 중심으로 카풀링을 중개하는 서비스를 2008년에 시작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플랫폼을 통해서 일반인이 자신의 승용차로 고객을 운송하는 서비스는 리프트가 샌프란시스코에서 먼저 시작하였으며, 우버가 바로 뒤이어 뛰어들었다.

일반인이 자신의 승용차로 고객을 운송하도록 하는 플랫폼 사업을 이들이 시작하자 지역 택시 업계의 반발이 엄청났으며, 택시 업계의 반발에 부응해 정부 또한 이들의 사업을 금지하려 하였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시장과 규제기관장이 파괴적 기술혁신에 대해 호의적이고 기존 택시업계의 보수적 변화 거부 태도에 부정적이었던 덕분에, 결국 우버의 사업은 기존의 택시와는 다른 업종으로 정의되면서  'Transportation networking companies' 라는 새로운 범주로 허가를 획득하였다.

우버의 공유 운송 플랫폼 사업이 다른 도시에서도 샌프란시스코에서 같이 쉬운 합법화의 길을 걷지는 않았다. 뉴욕시에서는 드블라시오 시장이 택시 업계에 대해 동정적이었으며, 시의 규제기관이 우버의 법을 무시하는 공격적 행태에 부정적이어서 마지못해 제한적으로만 허가를 내주었다.  이러한 허가를 얻기위해 우버는 시민들의 정치적 압력을 동원하였다.

에어비앤비의 사업 역시 순탄한 길을 걷지 못했다. 호텔 허가 없이 숙박업을 하는 것에 대해 호텔 업계는 물론 지역 주민의 반발 또한 매우 컸다. 에어비앤비의 사업이 확대되면서 이 플랫폼을 악용해 본격적으로 숙박업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이들에 대해 주민의 반발이 거세졌기 때문이다. 에어비앤비 역시 순수한 동기에서 자신의 집을 빌려주는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압력을 행사한 덕분에 제한적이나마 합법화가 이루어졌다.

두 회사 모두 인터넷 덕분에 유휴 자산과 노동력을 이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빌려주는 공유 중개 플랫폼이 기술적, 경제적으로 가능하게 되면서 성공하였다. 공유 플랫폼을 통해 부업의 기회를 얻고, 이를 통해 편리하고 저렴한 서비스를 누리게 된 소비자가 늘면서 지금까지 관련 산업을 지배하던 규제의 틀을 깨는 것이 가능했다. 기존 산업은 높은 규제의 틀 속에서 높은 진입장벽을 치고 있었으므로, 우버와 에어비앤비가 이러한 체제를 완전히 무시하는 서비스를 선보였을 때, 기존 업자들은 불공정 거래라고 반발하고, 안전을 구실삼아 격렬하게 반대했다. 정치권은 처음에는 업자의 편이 었지만, 시민의 요구가 높아졌 때 변화를 수용하는 쪽으로 움직였다. 우버와 에어비앤비가 가져온 서비스가 기존 업자의 서비스보다 편리하고 저렴했기에 결국 그들에게 유리하게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이 책은 실리콘 밸리 업계를 오랫동안 취재한 기자의 경험이 밴 심층 탐사기사의 성격이다. 중요한 맥락을 놓치지 않고 잘 취재했으며, 이야기의 흐름을 무리없이 전개하였다. 회사의 성장을 피상적으로 잡다하게 기술하기보다는, 이들의 사업이 어떻게 기존 업계의 규제를 극복했을까라는 특정 주제에 촛점을 맞추었기에 더 흥미있다. 그러나 분석적이기보다는 사건과 인터뷰 중심의 서술이라,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드는 '왜 그렇게 되었을까'하는 의문에 대해 심층적 설명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그래도 기업관련 책으로 이만하면 매우 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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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2. 10. 22:38

Jeremias Prassl. 2019. Humans as a Service: The Promise and Perils of Work in the Gig Economy. Oxford Univ.Press. 140 pages.

노동법 학자인 저자가 주문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 서비스 회사와 '긱 노동' (gig work)의 문제점을 분석한 학술적인 성격의 책. 플랫폼 서비스 회사로 Uber, TaskRabit, MTurk, AirB&B 를 주요 사례로 하여 설명한다. 플랫폼을 통해 제공되는 긱 노동은 전통적인 고용 관계의 노동과 다르지만 노사 관계와 노동의 성격에 관한한 핵심에서는 차이가 없다. 플랫폼 회사를 전통적인 노사관계에서의 고용자로 취급하고, 이를 통해 통제받는 노동자에게 전통적인 노동자에 준하는 책임과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타당하다.

우버를 예로 들 때, 플랫폼 회사는 그를 통해 일을 구하는 노동자를 전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일의 할당, 일의 방법, 일의 과정의 통제, 보상, 등 모든 면에서 우버는 전통적인 고용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우버의 운전자는 전통적인 노동자와 다르지 않다. 우버의 노동자들이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만 일하는 자영업자라는 주장은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우버는 노동자들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다. 우버는 자신을 단순히 소비자와 자영업자를 중계하는 플랫폼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고용자로서 노동자 및 고객에게 지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구실에 불과하다.

플랫폼 회사는 과거에 산업혁명 초기에 선대제도(putting-out system)의 현대판이다. 인터넷 기술 덕분에 시장과 회사의 중간 형태의 조직과 거래가 가능케 되었으며, 노동을 원격에서 통제할 수있게 되었다. 그러나 플랫폼 회사에 속한 노동자에 대한 보상은 미흡하며, 노동의 질은 열악하며,  산출된 서비스의 질 역시 그리 좋지 않다. 이는 과거에 선대제도와 또 다른 공통점이다.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지력을 요하는 덜 복잡한 일이 긱 노동의 대상이며, 과거 선대제도와 마찬가지로 긱 노동을 하는 사람은 사회적으로 열악한 지위와 환경에 처한 노동자이다. 

긱 노동을 하는 노동자는 전통적인 노사관계에 속한 노동자에 비해 착취당하고 있다. 법에서 정하는 근로자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며, 모든 책임을 자신이 지고 혜택은 별로 없는 불이익 속에서 일한다. 플랫폼 회사는 전통적인 노사관계의 책임을 질 때 발생하는 비용을 회피함으로서 전통적 회사와 불공정 경쟁을 하고 있다. 소비자는 현재는 대폭의 할인혜택 덕분에 싼 가격에 서비스를 구입하지만, 플랫폼 회사의 시장 지배력이 높아지면 가격을 올리므로 소비자 혜택은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없다.

플랫폼 서비스는 새로운 노동 형태로서, 전통적인 노사 관계의 비용을 수반하지 않으므로 그전에는 가능하지 않던 노동을 싼 값에 시장으로 끌어낼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플랫폼 회사가 노동자에 대한 고용주의 책임을 회피한다면 결국 그 노동자에 대한 비용은 사회가 부담해야 한다. 플랫폼 회사에 투자한 자본가가 거두는 수익은 불공정 경쟁의 과실을 챙기면서 책임은 일반 시민에게 떠 넘기는 것에 불과하다. 플랫폼 노동에도 전통적인 노사관계와 대등한 조건을 부과하므로서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게 해야 한다. 새로운 기술의 덕에 높아지는 생산성 만큼만 수익을 거두도록 해야지, 전통적인 고용주로서의 책임을 회피함으로서 거두는 수익은 부당하다.

저자는 법학자 답게 꼼꼼히 조건을 분석하면서 플랫폼 업계를 비판한다. 플랫폼 사업의 기술적인 성취를 크게 인정하지 않는다. 긱 노동은 새로운 성격의 노동이 아니며, 플랫폼 회사가 거두는 이익은 부당 이익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새로운 기술의 출현은 항시 부당이익이라는 당근을 두고 확대되었다. 현재의 택시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의 불만이 높은 반면, 우버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들이 거두는 수익이 전통적인 택시 업자의 책임을 회피한 데서 나온 부당 이익인 부분도 분명 있지만, 그럼에도 기술 혁신이며, 소비자 이익을 높이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없다. 정치 경제적 접근보다는, 법적인 조건의 분석과 논증이 이어지기 때문에 읽기 딱딱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해 플랫폼 서비스 회사와 긱 노동의 성격을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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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2. 5. 21:53

Daniel Kahneman. 2011. Thinking, Fast and Slow. Farrar,Straus & Giroux. 418 pages.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인지심리학자인 저자의 대표작. 심리학의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인간의 생각의 규칙을 밝힌다. 특히 생각의 오류에 빠지는 유형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후반부에는 행동경제학에 큰 영향을 미친 의사결정이론을 중심으로 설명한다.

인간의 사고는 두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첫번째 방식은 그가 system 1 이라 지칭하는 것으로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사고이며, 두번째 방식은 system 2 라고 지칭하는 것인데 의식적으로 노력을 투입하여야만 하게 되는 사고이다. 외부세계를 지각한다거나, 특이한 차이를 감지한다거나, 유사한 것을 비교하는 등, 다양한 사고 유형이 이에 해당되는데, 인간의 생존에 유리한 기술로서 고도로 발전되었다. 이러한 방식의 사고는 의식적인 노력없이 이루어지며, 하지 않으려 해도 자동적으로 하게 되는 사고 작용이다. 두번째 방식의 사고는 복잡한 계산을 하거나 논리적으로 따지고 분석하는 등의 사고 작용이다. 이는 의식적 노력이 들어가야 하기에 우리는 가급적 이러한 사고를 회피한다.

system 1 의 사고는 다양한 오류 혹은 bias 를 낳는다. priming, anchoring, availabilty bias, halo effect, 등 다양한 bias 들이 논의된다. 깊이 따져보기보다는 일견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선호하는 system 1 사고의 속성 때문에, 논리적인 오류를 간파하지 못하며 부실한 근거로 쉽게 결론을 도출하는 오류를 범한다. 인간의 사고는 통계적 속성이나 확률적 관계, 특히 random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세계를 인과적 질서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인과적 관계가 아니라 통계적 결과에 인과적 설명을 부가한다. 단적인 예가 regression to the mean을 인과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인간은 사건이 일어나고 난 후에 원인을 파악했다는 환상에 빠진다. 실제는 많은 우연이 개입하여 그리 된 것인데, 원인에 과도한 비중을 두어 해석한다. 인간은 자신이 이해하는 방식이 타당하다는 환상을 가지며, 이러한 환상에서 벗어나는 증거들은 무시한다. 단적인 사례로 주식 투자 선택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을 예로 든다. 객관적 분석결과 전문 주식 투자자의 선택이 더 승률이 높다는 증거가 없는데 그들은 그러한 증거를 무시한다. 인간 bias가 들어간 직관적인 결정(intuition) 보다는 독립적인 기여 요인에 대해 측정한 결과를 합산한 공식(fomula)에 의존하여 평가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예측을 하는 가장 정확한 방법은, 먼저 그 사건이 속하는 범주의 다른 사례들의 분포를 확인하여 기본값(base rate)를 파악한후, 그 사건이 그 범주의 평균 사례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와 벗어나는 정도를 검토한 후, 기본 수치를 그에 합당하게 조정하는 방식이다. 많은 경우 자신이 간여한 사건에 매몰되어 과도하게 낙관적으로 예측한다. 그 사건이 속한 범주의 기본수치를 확인하는 길의 하나로 외부 의견을 구하는 것이 좋다.이러한 과도한 낙관이 자본주의 경제의 역동성을 높이는 요인이기는 하다. 위험이 높으며, 기대값이 매우 낮음에도 사람들이 투자를 하고 경제활동을 하기에 경제가 돌아가는 것이다.

인간은 경제학의 인간형 처럼 합리적이지 않다. 재화와 서비스의 효용은 정태적인 절대 규모만이 아니라 준거기준의 영향을 받는다. 준거 기준에 따라 효용이 다르기 때문이다. 가진 것이 적으면 효용이 높으며, 반대로 가진것이 많으면 효용이 작다. 과거의 상태와 비교하여 더 좋아졌는지 혹은 더 나빠졌는지에 따라 효용에 차이가 난다. 또한 손실을 회피하려는 성향이 매우 강하며, 확실함을 선호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실제의 인간은 이러한 효용의 편향성을 보이기 때문에 경제인처럼 단순한 확률적인 기대치를 따라 합리적으로 선택하지는 않는다.

이 책은 무수한 실험과 풍부하고 엄청난 이론을 포함하고 있다. 두번째 읽는 것임에도 역시 첫번째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후반부에 의사결정이론의 논의를 끈질기게 쫒아가기 힘들었다. 이번에도 이부분은 결국 대충 읽고 말았다. 놀라운 사실은 그의 연구의 많은 부분이 공동연구자인 Amos Tversky와 대화를 통해 발전시켰다는 사실이다. 두명의 연구자가 오랫동안 함께 사고를 굴리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계속 꾸준히 발전해 간다는 것은 정말 힘들지만, 이들이 엄청난 성과를 내는데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후반부는 나중에 다시 읽어 보아야 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인간의 사고의 한계를 인식하며, 그가 지적하는 주위의 오류 bias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를 담은 설명은 유용하다. 3~4권의 책의 분량에 해당하는 풍부한 내용을 담은 귀중한 책이다. 

 

2020. 2. 2. 10:43

Randolph M. Nesse. 2019. Good Reasons for Bad Feelings: Insights from the fronter of evolutionary psychology. Dutton. 269 pages.

저자는 'Why we get sick' 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정신 의학자로 이 책에서는 진화론을 적용하여 인간의 다양한 정신적 문제를 설명한다. 정신 질환의 원인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의 정신 작용이 왜 그렇게 발달하였는지 이해해야 한다. 인간의 감정이란 사람들이 당면한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예컨대 고통과 불안은 그러한 상황이나 대상을 피하는 것이 생존에 도움을 줄 때 이를 피하도록 우리를 효과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기제이다. 인간의 감정은 생존의 가능성을 높이도록 작용하는 진화적 적응의 산물이다.

진화적 자연 선택은 인간의 건강이나 행복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후대로 유전자의 번식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우리의 건강이나 행복 추구와 유전자의 번식을 추구하는 것은 불일치 하기에, 많은 사람들이 비싼 대가를 치르면서 바람을 피며, 인간의 높은 두뇌작용과 욕망은 불안과 고통을 낳는다. 욕망은 유전자의 번식을 위해 우리를 몰아가지만, 그러한 욕망에 따를 때 우리는 마음이 평온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것이다. 불교에서 욕망을 없애면 번뇌가 사라진다는 가르침은 진화를 통해 선택되온 인간이기를 부정하는 것이다.   

고통, 불안, 걱정은 정상적인 정신의 작용이다. 화재감지기와 유사하게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상황에 대해 예비적으로 우리를 조심하게 만든다. 이러한 감정이 없다면 위험 상황에 무모하게 처신하다가 사라졌을 것이기에, 진화적 선택은 이러한 감정을 가진 유전자를 우리에게 남겼다. 우울증 또한 정상적인 것이다. 상황이 긍정적이면 기분이 뻗쳐서 더 열심히 일하도록 하고, 상황이 부정적이면 기분이 침잠하여 노력을 줄이도록 만든다. 의식상으로는 이러한 실패와 좌절의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라도, 우울한 감정이 그를 이러한 상황에 대처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헛되게 우리의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는 것이 생존에 도움이 되므로, 상황이 나쁠 때 우울한 감정이 들고 뒤로 물러나 에너지를 아끼는 것이 낫다. 세상에는 아무리 열심히 한다 해도 달성하지 못할 상황이나 목표가 많으므로 우울증은 이에 대처하도록 하는 현실적인 기제이다. 불가능한 역경에 처해 우울증을 느끼며 물러서지 않고 계속 열심히 밀고나간 사람은 결국 쇠해서 퇴출되었을 것이기에, 그러한 유전자는 우리에게 남겨지지 않았다.

많은 정신적인 문제는 두뇌나 유전자의 특정한 결함이나 병원균과 같은 특정 요인 때문이 아니다. 삶을 힘들게 만드는 상황이 정신적 문제를 낳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가족이 학대를 한다거나, 직장 일이 좌절된다거나, 배우자가 바람을 핀다거나, 가까운 사람이 죽었다거나, 신뢰하던 사람으로부터 배반을 당했다거나, 피할 수없는 곤경에 빠진 경우, 우울증, 집착, 질투, 슬픔, 분노 등이 심하게 나타난다. 원인이 되는 상황이 해결되면 정신적 문제가 사라진다. 약으로 이런 정신적 문제가 치료되지 않는다. 이러한 부정적 감정은 심리적인 적응의 전략으로 진화적 선택이 만들어낸 것이다.

인간의 사회생활은 나의 의도를 숨기고 가장하고, 상대의 의도를 간파하고, 일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예상하여 대응하는 복잡한 두뇌작용을 필요로 한다. 나의 의도를 상대에게 숨기는 효과적인 방법은 나 자신에게 나의 실제 의도를 숨기는 자기 기만이다. 진화적 선택은 인간이 자기기만을 능숙하게 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자기 기만은 완벽치 않기 때문에 비싼 비용을 유발한다. 자기 기만은 무의식을 억압하는데, 무의식의 감정과 생각이 외곡된 형태로 나타나 심리적 문제를 야기시킨다.

인간의 성적인 행위는 유전자의 번식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하기에 종종 부적절한 성관계와 성욕구로 당사자를 불행하게 만든다. 인간의 강력한 질투심은 자신의 유전자를 번식시키려는 진화적 선택이 만들어낸 감정이다. 거식증은 상대에게 육체적으로 매력적으로 보이게끔 하려는 욕망이 지나쳐서 발생하는 문제이다. 인간의 감정이 어느 정도에 이를 때까지는 진화적 생존을 높이는 순기능을 초래하나, 감정이 지나칠 경우 당사자를 해치는 역기능을 가져온다. 왜 어떤 사람은 감정이 지나치게 흐르는 반면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은지 설명하기는 어려운데, 유전적 요인과 상황적 요인이 결합하여 그러한 변이를 낳는다.

다이어트를 할 수록 우리의 몸은 기아 상황에 대처하기 위하여 생리작용의 강도를 늦추고 영양소를 더 갈구하도록 만든다. 주위에 먹을 것이 널려 있는 지금의 상황은 다이어트를 실패하도록 만드는 환경이다. 비만이란 우리의 조상이 살던 환경에 맞추어 만들어진 우리의 몸이 현대에 물질적으로 풍요한 상황과 맞지 않는 데서 발생한 문제이다.

정신분열증이나 자폐증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를 찾는데 실패했다. 정신분열증과 자폐증은 복잡한 사고와 감정의 작용을 처리하도록 우리의 두뇌가 진화하면서 나타난 문제로 보인다. 우리의 두뇌를 창의적이고 똑똑하고 복잡한 것을 처리하도록 만들수록 소수에게지만 그것이 잘못될 위험성도 높아진다.

이 책은 주석만 70쪽이 넘으며 다양한 사례와 이론들이 제시된다. 대강의 줄거리는 분명하지만 상세한 이론과 설명을 따라가기는 쉽지 않다. 지금까지 정신 의학이 '왜 그렇게 되었나'라는 질문을 외면하고, -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의 타당성이 부정된 상황에서- 증상에 대응하는데만 주력했던 관행에 경종을 울린다. 인간의 정신 질환은 다른 질병과 달리 원인을 파악하기 매우 어렵다는 것에 새삼 눈뜨며, 인간의 정신 작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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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un Sundararajan. 2017(2016). The Sharing Economy: the end of employment and the rise of crowd-based capitalism. MIT Press. 205 pages.

뉴욕대 경제학과 교수인 저자가 공유경제의 이론적 배경을 서술한 개론서. 공유경제의 사례는 2000년대에 들어 인터넷 기반의 중계 플랫폼이 속속 사업을 개시하면서 서서히 확대되었다. Airbnb, Couchsurfing, Lyft, Uber, BlaBlaCar, Getaround, Kikstarter, Kiva, TaskRabbit, Etsy, 등의 사례가 소개된다.  숙박, 운송, 금융, 개인 서비스, 소매 유통, 등의 영역에서 공유경제의 사례가 확대되고 있다. 이 책의 전반부에서는 공유경제가 발생하는 원인을 설명하며, 후반부에서는 공유경제가 미치는 사회경제적 영향을 서술한다.

공유경제는 시장경제의 속성과 선물 교환의 속성을 함께 가진다. 순수하게 시장적 원리, 즉 가격기구와 이윤 창출 목적만으로는 공유경제 사례를 설명할 수 없다. 비경제적 공동체적 관계 맺기가 공유 경제의 거래에 포함되어 있다.

정보기술의 발달로 상품과 서비스가 디지탈화 되면서 공유경제가 가능해졌다. 디지탈화된 서비스는 재화를 소유하는 대신 함께 사용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든다. 인터넷은 분권화된 개인들간 거래(peer-to-peer transaction)을 수월하게 한다. 음악파일을 공유하는 Nepster가 대표적인 예이다. 인터넷 상에서 구축되는 평판과 공동체를 통해 거래의 필수요소인 신뢰가 형성될 수있다.

거래의 비용이 클수록 조직 내에서 일을 처리하는 것이 효율적인 반면, 거래의 비용이 작을수록 시장이 효율성을 발휘한다. 경제학의 고전적인 markets vs. hierarchy의 문제이다. 디지탈 기술은 거래의 비용을 줄이기때문에, 조직 내에서보다 시장을 통한 조달을 효율적이게 만든다. 시장에서 거래를 통해 조달하는 것의 비용을 고려할 때, 재화와 서비스의 가치가 클 수록, 일상적인 활용도가 낮을수록, 특정 상황에 특화된 정도가 적을수록, 운송비용이 적게 먹힐수록, 공유 플랫폼 사업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부동산과 자동차가 이러한 조건을 가장 잘 만족시키기에 Airbnb나 Lyft, Uber 등이 공유경제를 가장 잘 구현하고 있다.

공유경제 사례는 유휴 재화와 서비스의 활용도를 높임으로서 경제 전체의 총생산을 증대시킨다. 그러나 이러한 효과는 기존의 GDP 추계 방식으로는 포착하기 어렵다. 공유 플랫폼은 시장에서 제공되는 재화와 서비스의 다양성을 높인다. 공유 플랫폼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못했을 다양한 재화와 서비스가 거래의 대상이 되었다. 공유 플랫폼은 대기업이 아닌 일반인도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에 참여할 수 있게 함으로서 경제 기회의 민주화를 촉진시킨다.

기존의 산업생산 체제에 적용되는 규제를 공유경제 거래에 적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예컨대 호텔 사업에 적용하는 엄격한 품질과 안전 규제를 소규모의 민박인 Airbnb에 적용하는 것은 많은 Airbnb 공급자의 선의의 참여를 막는 결과를 초래한다. 규제는 거래에 필요한 신뢰를 제공하며 거래의 안정성을 높이나, 규제의 문턱이 높으면 거래를 어렵게 만든다. 경제 제도와 브랜드가 전통적으로 신뢰를 만들어 내는 장치인데, 인터넷은 참여자들간 상호 평가와 감시를 통해 자발적 규제 생태계를 만들어 낸다. 인터넷 상에서 부정 행위를 하면 그의 평판이 낮아지고 참여가 제한되는 결과를 가져오기에 사람들은 올바르게 행동하려는 동기를 품게 된다.

공유 플랫폼을 통해 일을 구하는 주문형 서비스(on-demand service) 혹은 gig economy 에서 일하는 사람은 피고용 노동자인가 혹은 자유 계약의 프리랜서인가 하는 문제는, 2013년 우버의 노동자가 우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쟁점화되었다. 일의 과정을 누가 통제하는지, 일에 관해 누가 주요 의사결정을 하는지, 일의 도구는 누가 마련하는지, 일의 기간은 어떻게 되는지, 보상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의료보험이나 기타 수당이 있는지, 일과 관련된 훈련이나 교육을 제공하는지, 등의 판별 척도를 적용하는데, 경우에 따라 적용 기준이 다르다. 분명한 것은 산업생산 체제에 적용하는 기준을 공유 플랫폼 거래에 적용하려하면 잘 맞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제삼의 노동자 기준과 이들을 지원하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예컨대 의료보험이나 실업보험 등 노동자를 보호하는 장치가 어디에서 일하냐에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보장되며, 경력과 개인적 데이터를 개인 각자가 관리하면서 플랫폼간에 이전하는 것이 가능해야 한다. 

공유플랫폼 노동자는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는 긍정적 성격의 노동인가 혹은 정규직의 부담을 피하고 저임금으로 노동을 갈취하는 착취적 고용 형태인가. 공유경제를 긍정적으로 보는 저자와 같은 사람들은 전자의 편에 서있는 반면, 로버트 라이시 등의 경제학자들은 후자의 편에 서있다. 공유플랫폼 노동자 중 일부는 거의 전업으로 매달리며 장시간을 노동하면서 생계 임금에 못미치는 소득을 얻기는 하지만, 이는 일부이다. 공유 경제에 참여하는 대다수는 별도의 전업이 있고 공유 플랫폼 노동에는 일부 시간만을 쓰며, 소득의 일부를 보충하고, 공동체적 관계를 맺는 동기도 있으므로 공유경제 노동자를 피고용 노동자로 규정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저자는 공유플랫폼 사업이 앞으로 더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될 것이며, 이러한 플랫폼에 참여하면서 기업가 (entrepreneurial) 훈련을 하여 기업가로 성장하는 기회가 넓어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현재는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벤쳐 자본의 투자를 받아 공유 플랫폼 사업을 하기 때문에 참여자가 아닌 자본가에게 책임을 지는 구조이다. 그러나 노동자소유기업제도(ESOP)와 유사하게 플랫폼 참여자가 공유경제 플랫폼을 공유하는 형태가 등장할 것을 기대한다. 데이터를 통해 우량한 참여자만 걸러지고 불량한 참여자는 도태되는 데이터 다원주의(Data Darwinism) 경향이 확대될 것이다.

이 책은 공유경제가 아직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그런지 논의에 체계가 부족하고 나열식으로 제시되며 분석의 깊이가 얕다. 충분한 객관적 근거 없이 저자 개인의 인상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서술을 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럼에도 공유경제와 관련하여 학술적 논의를 시작하는 단초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가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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