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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2. 9. 13:26

Warren Bennis and Patricia Ward Biederman. 1997. Organizing Genius: The Secrets of creative collaboration. Basic Books. 218 pages.

주저자는 경영학계의 구루라고 지칭되는 학자이며, 이 책은 각자의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들이 함께 모여 획기적인 업적을 이뤄낸 사례들을 통해 어떻게 그러한 것이 가능했는지 설명한다. 다음 여섯개의 사례가 집중적으로 거론된다. 디즈니사에서 백설공주를 극장판 만화영화로 제작한 것, 제록스사의 PARC 연구소에서 퍼스널 컴퓨터의 신기술을 개발한 것, 1992년 클린턴 대통령의 선거운동 지원조직, 록히드사에서 스텔스 전투기를 개발한 것, 블랙마운틴 실험 대학을 만든 것, 핵무기를 개발한 맨하탄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이 모든 사례는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작업이었으며, 이렇게 하여 만들어진 것은 이후 각 분야에서 중요한 변화를 불러 왔다. 이 책은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하는 질문에 답한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작업에는 인재가 핵심이다. 이러한 집단을 이끈 지도자 본인이 각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성을 갖추어서 구성원이 그를 전폭적으로 신뢰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각 프로젝트를 이끈 지도자는 당면 과업의 참여자로 각 분야에서 최고로 뛰어난 사람만을 선발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럼으로서 각 프로젝트에 선발된 사람들은 선발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자신만큼이나 뛰어나다는 확신을 가지고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헌신한다.  각 프로젝트의 지도자는 본인 자신이 뛰어난 전문가이므로 각 분야에 최고의 사람을 찾아내서 끌어올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지도자의 프로젝트에 함께 일하자고 권유 받았을 때, 각 분야에 뛰어난 사람들은 이 프로젝트가 얼마나 중요한지 단박에 알아차리고 자발적으로 적극 참여하였다.

프로젝트 참여자들은 각 분야에 뛰어난 전문가이며 프로젝트의 달성에 헌신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세세히 통제할 필요가 없다. 지도자는 그들의 능력과 관심에 맞게 적재적소에 일을 배치하고, 그들의 일이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필요한 자원을 조달하고 조정하고 조언을 주는 역할을 한다. 이 조직들의 공통점은 참여자들 서로간에 진솔하게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발전시키도록 함으로서 참여자들의 능력이 모아져 시너지를 만들어 내도록 한 것이다. 참여자들은 매주 모여서 아이디어를 발표하고 기탄 없이 서로 의견을 구하고 토론하는 것을 중요시 여겼다. 참여자들은 서로의 아이디어가 불꽃튀게 타오르며, 당면 문제들이 하나씩 해결되고, 프로젝트의 목표를 향해 한걸음씩 진전해가는 것을 체감하면서 집단의 목표에 한층 더 매진하게 되었다.

그들은 자신의 능력의 모든 것을 바쳐 집단 목표를 달성하는데 전력을 다한다. 프로젝트가 종료될 때까지 집단 흥분 상태에 쌓여 있다. 개인의 가족과 사생활을 희생하고 자신의 커리어 개발을 일시 정지하면서까지 집단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헌신한다. 그들은 행정상의 잡일이나 외부로부터의 간섭에서 완전히 벗어나 주어진 과업에 전적으로 집중하는 환경 속에서 일한다. 프로젝트 팀은 주변 환경과 단절된 별도의 공간에서 일하며, 다른 조직과 복잡하게 연결되지 않은 별동대로 일한다. 지도자는 외부와 연결하는 유일한 연결점이며, 그는 외부의 간섭이 조직원에게 가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조직을 방어한다. 

그들이 프로젝트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이유는 일 자체가 가져다주는 의미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프로젝트가 실현되면 사회적으로 큰 의미를 갖게 될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있다는 사명감 속에서 자부심을 가지고 일한다. 그들은 대부분 매우 젊고 실패의 쓴맛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기에, 과거의 고정관념에서 보면 불가능해보이는 목표를 향해 저돌적으로 일할 수있다. 그들이 하는 프로젝트는 과거에는 없던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작업이므로 숫한 난관과 좌절에 부닫치는데, 이를 함께 이겨내면서 조금씩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혼자서라면 아무리 해도 이렇게 복잡한 일을 해낼 수 없다. 그들은 뛰어난 사람들과 함께 일하면서 자신이 성장하는 것을 느낀다. 혼자라면 도저히 해낼 수 없는 것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며 일한다. 그들은 훗날 이러한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을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때로 기억한다. 참여자들이 이렇게 집단 흥분 상태에서 자신을 소진시키기에 프로젝트를 완수하고 나면 이러한 조직은 해체되거나, 보다 안정적인 다른 조직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다.

이책을 읽으면서 이러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은 정말 매력적인 경험일거라는 느낌이 든다. 저자는 실패의 쓴맛을 보고 인생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저돌적으로 헌신을 할 수없다고 지적한다. 문제에 부딛치고 좌절할 때 불가능하다는 생각,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아이디어, 결국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회의 등이 머리를 스치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완전히 소진하면서 일할 수없다. 여기에서 소개한 사례들은 성공한 사례들이지만, 그렇게 우수한 사람들이 모여서 헌신적으로 몰두했음에도 실패한 사례들도 많을 것이다. 여기서 소개한 블랙마운틴 실험대학은 어찌 보면 실패한 사례이다. 그럼에도 실패를 떠나서 인생에 한번쯤은 자신을 모두 바쳐 헌신해보는 것은 정말 행운이다. 뛰어난 사람들과 함께 하며 자신이 매일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고 일에 완전히 빠져 사는 사람이 부럽다. 나는 특별히 좋아하는 것도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는 99%의 평범한 사람들(mediocre)에 속하는 것이 안타깝다.

2020. 12. 4. 17:46

Hohn H. Lienhard. 2006. How Invention begins: Echoes of old voices in the rise of new machines. Oxford University Press. 242 pages.

저자는 기계공학과 역사를 전공한 교수다. 이 책은 인류 문명에 큰 영향을 미친 비행기, 증기기관, 금속활자라는 세가지 발명의 역사를 더듬으면서 발명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서술한다. 

저자는 발명의 과정을 gestation, cradle, maturation이라는 세단계로 파악한다. gestation 즉 태아가 발생되는 단계에 오랜 기간 동안 아이디어가 조금씩 쌓이며, 이렇게 무르익은 아이디어가 마침내 구체적인 시도로 실현되는 요람 cradle 의 단계에 이른다. 발명의 초기단계는 아직 결함이 많은데, 점차 다듬어져서 완성도가 높아지는 성숙 maturation 의 단계에 도달하며 이후에는 큰 변화없이 유지된다.  

발명은 오랜 기간 동안 서서히 전개되는 과정의 산물이므로 특정 발명가에게 발명의 공을 독점적으로 부여하는 것은 그롯되다. 라이트 형제가 독자적으로 비행기를 발명한 것이 아니며, 스티븐슨이 증기기관을 독자적으로 발명한 것이 아니며, 구텐베르크가 금속 인쇄술을 독자적으로 발명한 것이 아니다. 아이디어가 무르익은 단계에 도달하면 (그는 이를 '시대정신' Zeitgeist 이라고 표현하는데), 특정 발명가가 아니라도 다른 사람이 유사한 발명을 할 것이다. 한 가지 발명은 그와 연관된 다른 발명으로 이어지며 아이디어의 축적은 연속적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특정 인물이나 특정 발명을 아이디어 발전의 연속선으로부터 콕 집어내는 것은 어느 정도는 자의적이다.

20세기 이전까지 과학적 이론과 설명은 발명품이 출현한 후에 이를 이해하기 위한 후속 과정이었다.  20세기에 들어서는 특정 발명가가 이리저리 두드려보면서 (tinkering) 홀로 독립적으로 발명하던 시대는 지났다. 대신 집단적으로 연구소에서 과학적 이론을 적용하면서 과학자와 공학자가 협업하여 발명을 하는 시대가 되었다. 반도체, 집적회로, 컴퓨터가 대표적 사례이며, 제트기나 화학약품의 발명도 그러하다. 이렇게 집단적으로 연구 개발을 하면서 발명과 개량의 주기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18세기에 증기기관 발명의 연원은 그리스시대에 공기는 물질이라는 인식과, 이후 증기가 일을 할 수있다는 아이디어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증기의 힘을 어떻게 그 시대의 당면한 필요에 부합하게 사용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시도한 결과 증기기관이 발명되었다. 18세기에 영국은 심각한 에너지 위기를 겪고 있었다. 서구에서 첫번째 에너지 위기는 13세기 초반에 왔는데, 철을 녹이기 위해 그당시까지 나무를 썼는데 유럽의 나무 자원이 고갈되었다. 이 에너지 위기는 나무 대신 석탄을 사용하면서 해결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석탄을 500년가까이 사용하자, 석탄을 채굴하는 갱도의 깊이가 해수면에 도달하게 되어 더이상 석탄을 채굴할 수 없게 되었다. 해수면 아래로 파들어가 석탄을 채굴하려면 물을 퍼내야 하는데 그당시 기술로는 가능하지 않았던 것이다. 18세기 중반 증기기관의 발명 덕분에 광산에서 물을 퍼내는 문제가 해결됨으로서 당면한 에너지 위기가 해결되었다.

증기의 힘을 활용하는 다음 단계는 속도를 갈망하는 인간의 본원적 욕구를 만족시켰다. 인간의 갈망(desire)은 필요(needs)와는 다른 행위 동기이다. 빨리 이동하지 않아도 인간은 생존할 수있지만, 빨리 움직이고 싶은, 속도감을 느끼고 싶은 갈망은 일단 이를 충족시키는 발명품이 나타났을 때 사람들에게 필수적인 것이 된다. 비행기 역시 인간의 날고 싶어하는 본원적 갈망의 소산이다.

금속 활자 인쇄술의 발명은 인류에게 증기기관 못지 않게 큰 영향을 미쳤다. 1450년경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이용하여 성경을 인쇄함으로서 보통 사람들이 지식을 쉽게 습득하는 길을 열었다. 1500년대에 종교개혁이 일어난 것이나, 이후 과학기술의 발전 또한 효율적인 인쇄술 덕분에 저렴한 비용으로 엄청나게 많은 책이 생산되고 그 결과 보통 사람의 지식 수준이 높아졌기에 가능했다. 미국인들은 인쇄물을 읽는 열의가 대단하였고 문자 해독률이 높았다. 미국은 일찍부터 교육이 널리 보급되었고 벽지에서는 통신 교육을 통해 배움을 얻으려는 열의가 높았는데, 이는 모두 저렴한 비용으로 인쇄물을 쉽게 획득할 수 있었던 덕분이다.

발명가는 돈을 벌려는 욕심때문에 발명에 매진하는 것은 아니다. 돈을 벌려는 생각도 있지만, 그보다는 자신이 몰두하는 것에서 의미있는 결과를 성취하고자 하는 욕구때문에 밤낮으로 매진한다. 새로운 것을 만들었을 때 맛보는 희열이 그를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다.

이 책은 발명의 근원을 체계적으로 파헤치기보다는 저자 본인이 기계 공학자로서 오랜 경험에서 나온 깨달음을 서술하려 한다. 사례와 에피소드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아가며, 때때로 유명 문호의 시를 인용하면서 감정적 접근을 시도한다. 서구의 사례만 인용하기 때문에 발명의 역사를 균형있게 다룬 책은 전혀 아니다. 이야기와 함께 삽화가 많이 나온다. 재미로 읽을 거리 수준이다. 

2020. 12. 1. 18:19

Walter Isaacson. 2014. The Innovators: how a group of hackers, geniuses, and geeks created the digital revolution. Simon & Schuster. 488 pages.

저자는 과거에 시사주간지 타임즈의 편집장을 지내고 전기작가로 몇권의 베스트 셀러를 냈다. 이 책은 컴퓨터와 연관된 처음부터 최근까지의 역사를 사람 중심으로 풀어쓴 글이다. 이야기는 19세기 중반 바이런 시인의 딸인 아다 러브레이스로 부터 시작한다. 그녀는 시적인 감성과 과학에 대한 열정이 결합된 여성으로, 그당시 화제를 모았던 찰스 베비지의 계산기에 관심을 가졌다. 이후 19세기 말에 자카드기 방적기에서 아이디어를 딴 펀치카드 시스템을 적용한 계산기가 인구센서스를 집계하였다.

컴퓨터의 발명은 2차세계대전의 소산이다. 전쟁중에 적군의 암호를 풀 목적으로 미국과 영국은 독자적으로 컴퓨터를 발명했다. 필요와 능력과 자원이라는 삼요소가 결합되었을 때 발명이 이루어진다. 관련 아이디어가 이미 돌아다니고 있을 때, 발명가는 이를 구체화시킨다. 어떤 발명에나 공을 이룬 인물은 있지만, 대부분의 발명은 집단적 노력의 소산이다. 특히 두 사람이 결합하여 효율적인 팀을 만들었을 때 좋은 발명품이 나온다. 반도체, 집적회로, 소프트 웨어, 퍼스널 컴퓨터가 그러한 두명의 뛰어난 팀들의 소산이다.

1940년대에 컴퓨터가 발명되었으며, 1950년대에 반도체가 발명되고, 1960년대에 집적회로가 발명되고, 1970년대에 퍼스널 컴퓨터가 발명되고, 1980년대에 일상 업무에 컴퓨터가 널리 활용되기 시작했으며, 1990년대에 웹과 검색엔진이 발명되었으며, 21세기에 들어 인공지능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디지털 혁명의 공통점은 엔지니어가 변화를 주도했다는 사실이다. 세일즈맨이나 금융맨이 주도했다면 이러한 비약적인 발명은 가능하지 않았다. 상상력이 풍부한 엔지니어가 미래를 예상하고 열정적으로 만들어냈다. 정부의 지원, 시장의 이윤 동기, 자원봉사자의 헌신이라는 세가지의 상이한 방식이 모두 적용되면서 발명을 이끌어 냈다. 어느 한 방식만 지배했다면 이러한 변화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 책은 컴퓨터와 관련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커버하려고 하였기 때문에 서술이 산만하고 지루했다. 무척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였으며, 등장인물의 성격과 에피소드 중심으로 서술한 점에서 전기 작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디지털 혁명 자체에 촛점을 맞추었으면 더 좋은 책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매우 다른 책이 되었겠지만.

2020. 11. 22. 13:33

Reed Hastings and Erin Meyer. 2020. No rules rules: Netflix and the culture of reinvention. Pneguin Press. 272 pages.

이 책은 넷플릭스 회장과 경영학 교수의 공동 작업으로서 넷플릭스의 인사관리 체계를 상세히 분석한다. 이 책은 넷플릭스의 사내 프로젝트로 기획된 것 같다. 회장이 지명한 경영학 교수가 회장 본인은 물론 넷플릭스 사람들을 광범위하게 인터뷰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다. 빠르게 바뀌는 환경에 신속히 적응해야 하며 지적인 산물을 생산하는 일을 주로 하는 넷플릭스와 같은 회사는 개인의 아이디어 생산을 극대화하는 인사관리 체계를 필요로 한다.

넷플릭스의 초창기에 주위 경제사정이 악화되어 직원의 일부를 잘라내는 구조조정을 하고서 나타난 변화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중간 수준의 업무 성과를 내는 사람들을 잘라내고 최상의 능력을 보이는 사람들만 남겨졌을 때, 회사의 분위기가 과거보다 더 좋아졌고 생산성이 눈에 띠게 향상되었다. 이러한 경험으로부터 저자는 최고의 능력자들로 조직을 운용하는 것이 중간 수준의 사람을 많이 고용하는 것보다  낫다는 결론을 내린다. 창의적인 일에서는 최고의 능력자가 중간 수준의 능력자보다 열 배이상 더 생산적이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업계 최고의 임금을 제공함으로서 최고의 인재를 확보하는 것을 최우선 순위에 둔다. 창의적인 일을 요구하는 직책에 관한 한, 이 일에 최고의 능력자가 아니라면 언제라도 그를 내보내고 그 자리에 다른 더 적합한 사람을 들이는 것이 낫다. 쫒겨나는 사람에게는 4~9개월치 급여라는 후한 퇴직금을 줌으로서 이러한 냉혹한 정책이 비인간적이지 않도록 한다. 

유능한 사람들이 모인 조직에서 각자의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려면, 일의 담당자에게 절대적인 자율성이 부여되어야 한다. 휴가 규정이나 출장 비용 규정을 없애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각 사안의 담당자가 각자의 책임으로 최종적인 의사결정을 하도록 허용하였다. 다만 상사를 포함하여 주위 사람들이 해당 사안의 결정에 도움이 되는 모든 정보와 피드백을 제공함으로서, 일의 담당자가 주어진 상황에서 최고로 현명하게 의사결정을 할 수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주변 사람들이 담당자가 일의 맥락(context)을 잘 파악하도록 도움을 주어야 하지만, 최종 의사결정은 담당자가 독립적으로 하도록 보장한다. 만일 그가 한 결정이 잘못된 결정으로 판명난다면, 그 결정이 왜 잘못됬는지를 공개적으로 사후에 분석함으로서 추후 회사에 도움이 되는 교훈을 얻도록 한다. 창의적인 일이라는 것은 무수한 시도와 실패를 통해 사정을 보다 더 정확히 알아가는 과정이 필수이므로, 주어진 맥락에서 최선의 결정을 한 이상 담당자에게 부정적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은 불합리하다. 그러한 실패를 통해 사정을 더 잘 알게 되었다면, 즉 미래에 연관된 일을 추진하는 데 가치있는 교훈을 얻었다면 그것으로 소득이 있는 것이다. 담당자에게 완전한 자율성을 부여함으로서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서 경쟁자보다 훨씬 신속히 대응할 수있다.

넷플릭스에서는 완전히 투명한 일처리와 서로에게 철저히 솔직한 자세를 요구한다. 회사의 돌아가는 사정을 직원 모두에게 공개하여 회사에 대한 소속감을 높이며 각자가 독립된 의사결정을 잘 할 수 있도록 한다. 회사는 매 분기마다 전체 매니저급 직원이 참여하는 평가회의에서 회사 사정을 모두 공개하며 어떤 문제라도 투명하게 공개적으로 논의한다. 회사의 비밀을 직원 모두에게 공개하면 결국 외부로 새나가는 경우를 각오해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그런 상황을 맞지 않았다. 비밀이 외부로 새나갈 상황을 예상하여 사내에 비밀을 만듦으로서 손해보는 것을 고려할 때, 완전히 투명한 경영 전략이 실보다 득이 많다. 회사의 사정을 철저히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지 않다면, 일의 담당자가 독립적으로 최종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넷플릭스에서는 어떤 사안에 대해서건 직원들 간에 솔직한 피드백을 주고받는 것을 장려한다. 솔직한 피드백은 상대와 회사에 도움이 되고 실행할 수있는 내용을 담은 지적이어야 한다. 감정적 비판이어서는 안된다. 일이 발생할 때마다 주위사람들이 일의 담당자에게 솔직한 피드백을 주면, 담당자가 앞으로 향상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 솔직한 피드백을 주는 관행은 상사와 부하를 가리지 않으며, 일상에서는 물론 일년에 한두번씩 정기적으로 피드백을 교환하는 공식 모임을 통해서도 이루어진다. 공식적으로 피드백을 교환하는 회의를 360도 회의라 하는 데, 6~8명이 참석하여 식사를 하면서 짧게는 세시간에서 길게는 다섯시간에 걸쳐 참석자 모두가 돌아가면서 한명씩에 대해 생산적인 피드백을 준다. 넷플릭스에 입사한 사람들은 모두 넷플릭스의 솔직한 피드백 문화에 처음에는 충격을 받지만, 점차 이것이 자신과 회사의 향상에 크게 도움이 됨을 깨닫고 동화하게 된다. 능력자가 모인 조직에서 각자가 성의를 다해 수시로 상대와 그의 일에 대해 자신이 생각한 바를 솔직히 밝히는 관행은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여 일의 개선에 가속도를 더해준다.

넷플릭스가 전세계로 사업을 넓히면서 넷플릭스의 독립적인 의사결정과 서로에게 솔직 투명한 태도는 진출한 지역의 문화와 충돌하곤 한다. 아시아와 남미에서는 상대의 일에 대해 직접적으로 지적을 하는 것을 꺼린다. 간접적인 의사표출을 선호하는 문화에서는 일상에서 상대의 일 처리에 대해 피드백을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공식적인 피드백 모임을 갖고 각자 준비하도록 했을 때, 이러한 모임에서 참여자가 서로에게 매우 생산적인 피드백을 주고받았다. 지역 문화에 따라 약간의 변화를 줄 필요는 있지만, 넷플릭스의 솔직 투명함의 문화는 어디에서나 효력을 발휘한다.

넷플릭스에는 keeper test 라는 관행이 있다. 상사의 관점에서 어떤 부하가 회사를 떠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적극적으로 그를 붙잡을 것인지를 항시 자신에게 물어봐야 한다. 만일 그가 조직에 꼭 필요한 최선의 선택이 아니며, 자신보다 일을 더 잘하는 사람으로 대치하는 것이 낫다면, 그는 넷플릭스를 떠나야 한다. 회사는 가족이 아니라 프로 스포츠 팀과 같다. 넷플릭스에서는 모자라는 사람을 보듬을 것이 아니라, 항시 최선의 성과를 내는 사람으로 구성해야 한다. 어떤 이유로건 능력이 떨어지면 나가야 한다. 왜 이렇게 냉혹한 원칙을 옹호하는걸까? 저자는 넷플릭스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항시 생산해야 하며,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신속히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반면, 한번의 실수로 안전이 치명적으로 위협받거나, 동일한 제품을 착오없이 대량으로 생산해야 하는 조직에서는 개인의 창의가 그리 중요치 않다. 이러한 조직에서는 엄격한 규칙을 세우고 그를 준수하도록 통제하고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넷플릭스에서와 같이 전례없는 상황이 계속해서 출현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항시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에서는 엄격한 규칙이나 통제는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생산되는 것을 방해할 뿐이다. 설사 잘못된 것으로 판명된 아이디어나 결정이라도 치명적 위험을 안고 있지 않으며, 대신 앞으로 나가는 데 도움되는 소중한 정보를 얻게 해주는 넷플릭스와 같은 회사에서는 규칙이나 윗 사람의 명령을 성실히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 창의적 아이디어를 내는 능력자가 꼭 필요하다. 이런 조직의 창의적 직책에 관한 한 중간 수준의 능력자가 있을 자리는 없다.

넛플릭스는 무정형의 지적 재산을 만드는 회사이며, 특히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는 것을 만드는 회사이다. 저자가 왜 그렇게 아이디어를 만드는 최고의 능력자와 그러한 능력이 최고도로 발휘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을 거듭 강조하는지 이해할만하다. 그러나 이러한 회사에서 일하는 것은 한 사람의 일생에서 자신의 능력이 최고도로 발휘되는 기간 동안 만이지, 능력이 떨어져도 오랫도록 함께 할 수있는 직장은 아니다. 넷플릭스는 이책에서 서술한 원칙을 충실히 구현해 냄으로서 전례가 없던 비디오 스트리밍이라는 산업을 열었으며 거듭하여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 냄으로서 놀랄만한 성장을 이루었다. 사업을 시작한지 불과 십년만에 새로운 산업을 창조하고, 그 산업을 전세계로 확장하여 1억명 이상의 구독자를 확보했으며, 수준이 높은 창작 비디오를 제작하는 강자로 올라섰다. 이러한 업적은 전통적 경영으로는 도저히 구현할 수없는 성과이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이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대로 적용될 수있을지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넷플릭스의 경영 원칙은 회사의 니즈에서 볼 때에는 최상이지만,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의 인간적 니즈로 볼 때는 최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안정을 원하고, 인간의 능력은 부침이 있으며, 상대에게 항시 솔직하라는 넷플릭스의 원칙은 상대에게 잘보이기 위해 적극적 및 소극적 기만 전략을 밥먹듯 구사하는 인간의 습성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단기간, 비교적 소규모의 인원으로 구성된 넷플릭스에서는 이 책에서 서술한 넷플릭스의 경영 원칙을 구현할 수있겠지만, 장기적으로 수만명이 일하는 조직에서 이러한 원칙은 사람에 따라 자신의 이익에 맞게 외곡시켜 반영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능력이 좋은 사람이라도 인간성에 좋지 않은 면이 항시 있기때문이다. 그가 말하듯이 넷플릭스가 프로 스포츠 팀과 같은 것이라면, 승리를 계속하는 한 문제가 없지만, 연속하여 승리를 놓치게 될 때 넷플릭스의 약한 고리가 문제를 발생시킬 것이다.

그럼에도, 이책에서 서술한 원칙을 구현하여 대단한 일을 이룬 넷플릭스와 그의 회장은 정말 놀랍다. 넷플릭스의 회장이 엔지니어임에도 어느 경영학 구루보다 더 훌륭하고 생산적인 조직을 만들어 냈다는 것은 감탄할 일이다. 이 책은 그의 원칙과 실제 운용 상황을 잘 서술한 훌륭한 책이다.

2020. 11. 14. 20:12

 

James C, Scott. 2020(1998). Seeing Like a State: How certain schemes to improve the human condition have failed. Yale University Press. 357 pages.

저자는 예일대학의 정치학 교수로, 세계 여러 국가들이 추진한 대대적 개혁 사업이 왜 모두 실패로 끝났는지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이론적 설명을 제시한다. 자연상태로 울창한 숲과 계획 조림을 통해 인위적으로 조성한 숲을 비교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자연상태로 울창한 숲은 말끔한 인상을 주지는 않지만 다양한 종류의 식물과 동물이 공존하며, 가뭄, 홍수, 화재, 병충해 등의 외부적 충격에 강하다. 반면 계획 조림을 한 숲은 외양은 깨끗하지만 외부 충격에 취약하여 지속가능하지 않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무의 성장이 정체되고 병충해의 공격으로 완전히 전멸하기도 하므로, 이러한 계획 조림 숲을 계속 유지하려면 인위적으로 다양한 환경을 만들어 주면서 관리를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자연상태의 숲을 밀어내고 그자리에 단일한 종의 나무를 심어 인위적으로 숲을 조성하는 이유는, 외부인이 그 안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 쉽게 파악하고(legibility), 통제하기 위함이다. 자연상태의 숲은 목재를 생산한다는 상업적 목적에서 보면 부적합하기 때문에 상업적 목적의 계산이 가능한 단일 종의 숲을 만들어 낸 것이다. 

국가가 대대적으로 추진한 개혁 사례로, 17세기 프랑스의 토지 등록 작업, 소련의 공산주의 혁명 이후 농장 집단화 사업, 브라질의 브라질리아 행정수도 건설, 탄자니아의 독립 이후 추진된 농촌 집단 정주촌 건설 사업을 분석된다. 프랑스의 토지 등록 작업은 전통적인 복잡한 토지 사용 관행을 무시하고 소유여부라는 단일 척도로 단순화하려는 시도였다. 인간의 합리적인 계획으로 효율성을 극대화시킨다는 근대화(mordernism)이념으로 무장하고, 전통적 공동체와 농업 방식을 철저히 파괴하고 그자리에 완전히 계획된 집단 농장과 도시를 만들었다. 이러한 시도는 모두 완전한 실패로 끝났다. 프랑스의 토지 등록작업은 주민의 실제 토지 사용관행을 반영하지 못했기에, 서류상의 소유관계와 실제의 사용관계가 유리된 결과를 낳았다. 소련의 집단 농장과 탄자니아의 농촌 집단 정주촌 사업은 농업 생산성이 추락하여 농민이 먹을 것 조차 제대로 생산하지 못하는 비참한 결과를 낳았다. 브라질리아는 주민간 인간관계가 메마르고, 활력이 없고,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도시가 되었다.

실패한 이유를 검토하기 앞서 왜 이러한 무모한 시도를 했을까 생각해 보자. 전통적 농촌 마을과 전통적 생산방식은 오랫동안의 인간관계와 삶이 누적되어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이러한 복잡한 관계는 외부자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으며, 외부자가 전통적 생산방식을 이해하고 통제하기는 힘들다. 전쟁이나 정치적 투쟁을 통해 권력을 장악한 엘리트 집단은 기존의 전통 관계를 파괴하여 외부로부터의 통제가 가능하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 비록 이러한 무자비한 정책이 생산성의 저하를 낳는다 해도, 세금을 더 거두고 잠재적 반발 세력을 무력화하기 때문에 엘리트 집단에게는 득이 된다. 반면 외부의 엘리트로부터 통제 당하는 주민들에게 이러한 정책은 엄청난 고통을 가져다준다.

중앙의 일관된 계획에 따른 실험, 소위 '사회적 공학'(social engineering)이 실패하는 근본적 이유는 인간 관계와 삶의 방식을 몇개의 원칙으로 단순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삶과 일하는 방식은 오랜 시간 동안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축적해온 지혜를 반영한다. 이러한 현장의 지혜를 무시할 때 일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중앙 관료의 지시에 따라 일을 추진하면 주민은 강압에 못이겨 수동적으로 따를지 몰라도 일은 제대로 될리가 없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창의(innitiative)와 오랜 시행착오로 축적된 실용적 지혜(practical know-how)를 무시한다면 생산성을 올리는 것은 고사하고 일 자체가 진행되지 않는다. 소련의 집단 농장이나, 브라질리아나, 탄자니아의 집단 정착촌이 그나마 오랜 시간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은 주민들이 정부의 공식적 지시와 원칙을 어기고 비공식적으로 생존하는 방식을 만들어 내었기 때문이다.

책의 후반부에서, 아프리카의 개발도상국에서 전통적 농법을 폐하고 과학적 영농 방식으로 자연을 개조하려는 시도들이 왜 실패했는지 분석한다. 전통적 농법은 여러 작물을 섞어서 재배하고 윤작을 하는 데, 이는 상업적인 생산의 관점에서는 매우 비효율적으로 보인다. 과학 영농이라 하여 비료와 살충제를 많이 써서 단일 작물을 재배하는 방식은 처음에는 생산성이 있는듯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생산성이 추락한다. 전통적 농법은 지역의 구체적 사정에 맞추어 적응된 방식이며 오랫동안의 시행착오를 거쳐 가장 효율적으로 판명된 것이 살아남은 결과이다. 단순히 실험실에서만 성공한 표준화된 과학적 영농방식을 다양한 현지 사정에 일괄 적용하면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전통적 농법은 자연의 실험장에서 오랜 시행착오를 통해 선택된 종자와 재배 기술인 반면, 과학적 영농은 먼저 특정 종자와 재배 방식을 실험실에서 개발하고 자연을 실험실의 상황으로 개조하여 적용하는 방식이다. 자본을 많이 투입하고 자연 환경을 실험실의 상황과 유사하게 만들 수 있는 미국 중서부나 유럽의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이러한 방식이 성공할 수없다.

복잡한 현상을 소수의 몇개 변수로 단순화하여 파악하는 것은 과학적 인식의 기본이다. 소수의 몇개의 변수로 단순화해야만 자연 현상에 대한 통제와 조작이 가능하다. 관심의 촛점이 되는 소수의 변수를 제외하고 다른 모든 요인들의 영향을 배제하는 것이 과학적 실험이다. 인류는 이러한 과학적 실험을 통해 자연 현상에 대한 지식을 축적해 왔다. 사회 현상은 자연 현상보다 훨씬 복잡하고, 변수의 영향을 통제하는 것이 훨씬 힘들기 때문에 인간의 삶에 관해 모르는 부분이 훨씬 많다. 특정 지역, 특정 집단, 특정 인간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은데, 소수의 원칙을 적용하여 계획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려 하면 반드시 실패한다.

저자는 소수의 사례들에 관해 흥미롭게 서술하며, 이론적 설명도 설득력이 있다. 다만 저자의 설명이 실패한 사례들에는 잘 적용되지만, 거시적으로 볼 때 인류 역사상 큰 변화를 가져온 사례에도 설득력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짧은 시간에 큰 변화를 추진한 시도는 원래 의도한 대로의 효과를 가져오기 어렵다. 그러나 그러한 시도는 기득이권의 구조를 파괴하고 변화를 위한 장을 마련한다는 면에서 의의가 있다. 원래의 실험이 실패한 바탕 위에 원래보다 덜 과격하지만 변화를 추구하는 또 다른 실험이 전개되거나, 최소한, 실험 이전과는 다른 모습의 사회가 전개되는 경우는 적지 않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안정을 추구하며, 사회의 기득이권 구조는 변화를 거부하기 때문에, 인간 사회의 변화란 어찌보면 무모한 실험의 연속을 통해 조금씩 만들어져 온 것이다. 학술적으로 단단한 연구에 바탕을 둔 흥미로운 책이다.

2020. 11. 3. 21:55

Deirdre McCloskey. 2010. Bourgeois Dignity: Why Economics can't explain the modern world. University of Chicago Press. 450 pages.

 

저자는 영국의 산업혁명을 연구한 경제사학자로, 이 책은 어떤 요인이 영국의 산업혁명을 낳고 이후 200년간 16배 이상의 실질 소득 상승을 이끌었는지 설명하는 저자의 삼부작 중 두번째 책이다. 저자는 부르주와(bourgeois), 즉 상공업자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생각, 태도, 윤리, 아이디어, 담화의 변화가 이러한 비약적인 경제 발전을 가져온 핵심 요인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일반적으로 경제학에서 경제발전을 설명하는 데 동원하는 물질주의적 인과론을 배격한다. 물질적 조건이 생산성의 비약적 향상을 이끈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신선한 아이디어와 그것을 실제에 적용한 파괴적 혁신이 비약적 발전의 사이클을 돌게 하였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상공업(business)을 존중하는 태도가 출현했다. 과거 동서양의 모든 사회는 지주, 귀족, 관료, 무인, 문필가, 예술인을 숭상한 반면, 물건을 만들고 팔고 사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천대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용적 목적에 활용하여 돈을 벌며, 기존의 방법을 개혁하여 효율을 높이는 상공인들은 기존의 지배질서를 어지럽힐 위험이 있는 사람으로 경원시하였다. 이러한 구질서에서는 기존의 방법을 답습하여 비즈니스에서 부를 축적하면 어떻게든 이를 벗어나 지주, 관료, 귀족 계층으로 올라서려고 할 뿐, 더 좋은 방법을 고안하여 생산성과 효율을 높이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유럽의 봉건체제에서 지주 계층을 우대하고 상공업을 천시한 것이나, 중국의 유교 질서, 인도의 카스트제도, 이슬람 세계에서 상공업을 천시한 것은 같은 맥락이다.

상공인들이 자신의 일에 대해 자긍심(dignity)을 갖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현할 자유(Liberty)를 갖게 됨으로서, 그들은 새로운 방법을 개발하여 파괴적 혁신(distruptive innovation), 파괴적 창조(distruptive creation)을 계속해 나갔으며, 그 결과 엄청난 생산성의 향상을 가져왔다. 일반인이 상공업을 비하하지 않고 존중하는 태도로 변화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16세기 계몽주의(Enlighment), 과학혁명(Scientific Revolution), 종교혁명(Reformation), 인쇄술의 발전, 17세기에 부르주아로 구성된 의회가 왕을 견제하게 된 명예혁명(Glorious Revolution), 도시의 발전, 무역의 발전, 등 여러 요인이 오랜 시간 동안 중첩되어 작용하면서 네덜란드에서 점차로 비즈니스를 존중하는 태도가 출현하였으며, 이것이 영국으로 바로 이전되었다.

저자는 기존에 경제학자들이 산업혁명과 경제발전의 원인으로 주장한 것들을 각개격파 방식으로 반박하면서 왜 그것이 진정한 원인이 될 수 없는지 설명한다. 40여개 장에 걸쳐 기존의 주장을 반박하는 학술 논쟁을 계속 전개한다. 물적 자본이나 인적 자본이 축적되어 산업혁명이 출현하고 이후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며, 투자를 더 많이 한다고 하여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증가하는 것도 아니다. 노예제, 식민지, 제삼세계의 착취나 노동자가 생산한 잉여의 착취로 부터 얻은 이익 덕분에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은 아니다. 식민지와 제삼세계의 착취는 그들에게 큰 고통과 피해를 안겨 주었지만, 그로부터 얻은 이익은 대단치 않으며 결코 비약적 생산성 증가를 이끌 수없다. 지리적 이점이나 풍부한 자연자원이 산업혁명과 경제발전을 이끌지도 않았다. 경제학자들이 흔히 주장하는 경제적 탐욕의 동기나 절제와 합리적인 생활태도, 막스베버가 주장하는 개신교 윤리 또한 비약적인 생산성 증가를 가져온 원인이 아니다. 무역의 증대가 생산성의 비약적 향상을 이끌지 않았으며, 노벨경제학자 올리버 노스가 주장하듯 사유재산을 보호하는 제도 및 법에 따른 지배(rule of law)와 같이 인센티브를 보장하고 부정과 부패를 막는 합리적 제도가 생산성의 비약적 향상을 가져오지 않았다. 그의 주장은 이러한 요인들이 과거 로마제국, 중국, 인도, 이슬람세계에서 한때 존재했으나 산업혁명과 비약적인 생산성 향상을 이끌지 않았던 사실에서 입증된다. 

저자는 산업혁명과 이후의 비약적 생산성 향상을 가져온 경제발전은 오로지 파괴적 혁신에 의해서만 가능했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아이디어로 기존의 방식을 개혁한 사람들(tinkerer)은 이윤동기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노력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혁신 자체에서 삶의 목적과 의미를 찾았으며, 이는 상공인의 자긍심(dignity)과 자유롭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펼칠 수있는 환경(liberty)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일반인들이 비즈니스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고 사회가 이들의 자유를 구속한다면 새로운 아이디어와 파괴적 혁신은 만들어질 수없으며, 산업혁명과 이후의 비약적 생산성 향상은 인류 사회에 도래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도 서구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회에서는 상공인을 낮추어보는 경향이 있다. 비즈니스를 장사꾼과 공돌이가 하는 것이라고 천시하면서 인문학, 예술을 숭상한다. 그들은 돈버는 비즈니스에 종사하기보다는 학자나 관료가 되거나 비영리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고상하게 생각한다. 동서양의 지식인들은 시장의 효율성에 맡기기보다는 중앙에서 조정하고 통제하는 것이 더 큰 선을 가져온다고 믿는다. 사회주의 체제가 비효율로 인해 붕괴했음에도 여전히 시장보다 규제를 문제해결의 방식으로 선호한다. 갖은 수단을 동원하여 비즈니스를 통제하려 한다. 근래에 사회주의가 붕괴한 자리에 환경주의(environmentalism)가 들어서 규제를 좌지우지한다. 그러나 부를 창출하고, 가난을 척결하고, 자연파괴와 환경오염을 줄이는 데에는 시장과 파괴적 혁신을 통한 생산성 향상이 답이다. 섯불리 가난한 사람을 위하는 규제 정책이나 비영리 활동은 오히려 정체와 후퇴를 낳을 뿐이다. 의도가 선하다고 해서 무능한 결과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지난 200년 동안 엄청난 부의 창출과 빈곤으로부터의 탈출은, 인문학이나 관료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파괴적 창조를 지속한 상공업, 비즈니스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

저자는 경제역사학자로서 학술적으로 뛰어나며,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수술을 한 특이한 지식인이다. 그는 시장 규제에 반대하는 자유방임주의(libertarian)의 입장에서 기존의 학계와 지성계를 통렬히 비판한다. 이 책은 그의 박식한 배경을 종횡무진 발휘하여 기존의 연구들을 샅샅이 꿰뚫으면서 비판하기에 논의를 제대로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그의 학술적으로 엄격하면서 탈권위주의적인 태도에서 나온 돈키호테식의 솔직함은 기존의 권위적인 사고의 틀을 파괴하면서 새로운 관점과 통찰력을 제공한다.

2020. 9. 7. 18:05

Claude S. Fischer. 2014. Lurching toward happiness in America. MIT Press. 129 pages.

저자는 저명한 미국의 사회학자로, 이 책은 그가 Boston Review 라는 지성지에 쓴 글을 모은 것이다. 현재의 미국 사회에서 관찰되는 다양한 소재를 열개의 글에서 다루고 있다. 각각의 글이 묻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미국인의 행복도에 변화가 있는가, 온라인을 통한 이성 소개는 바람직한가, 인터넷이 사람들을 과거보다 더 외롭게 만들었나, 미국인은 왜 유럽사람들보다 더 오랜 시간 일을 하는가, 극심한 빈곤의 원인은 무엇인가, 미국인은 왜 지역 자치에 집착하는가, UNDP의 인간개발지수를 통해 미국인의 삶의 질을 측정하는 데서 문제점은 무엇인가, 성공이란 환경과 운의 결과인가 아니면 개인의 능력과 노력의 결과인가,  소득 불평등이 나쁜 이유는 심리적 스트레스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 갈등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사회학적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하여 현재 미국 사회와 사회변화에 관한 질문에 답한다.

글의 바탕에 흐르는 전반적 기조는 미국 사회는 유럽과 다르며, 문제의 인식이나 접근 방식또한 다르다는 점이다. 사회 제도이나 삶의 질로 비교할 때, 저자는 미국 사회가 북유럽 사회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미국의 부유함은 풍요로운 자연과 이민자의 유입이 궁극적인 원인이며, 공공 영역이 작은 미국의 자본주의 모델은 명암이 뚜렷하다. 학자가 자신의 전문지식을 배경으로 잡지에 쓴 글답게 비논쟁적이며 평이하다. 뚜렷한 주장을 제시하지 않으며 논의의 심도가 깊지 않다.

2020. 9. 1. 21:18

Robert B. Marks. 2015. The Origins of the Modern World: A Global and environtal narrative from the fifteenth To the twenty first century. 3rd ed. Roman & Littlefiels. 218 pages.

저자는 중국사를 전공한 역사학자로 기존 역사학계의 유럽중심주의를 배격한다. 1800년대초 유럽이 산업혁명에 진입할 때까지 중국과 아시아가 세계를 주도했다. 기술 수준, 생산성, 산업과 교역 규모 등 모든 면에서 중국과 인도는 유럽을 능가했다. 그당시 유럽은 세계의 변방에 위치한 낙후한 지역이었다. 유럽이 1500년대에 대항해의 시대를 열게 된 계기는 그당시 선진 지역인 중국에 가는 길을 찾기 위해서였다. 13세기에 몽골 제국이 중앙아시아에서 중동, 헝가리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면서 동서간 교역이 활발했는데, 14세기에 중동 지역에 이슬람 제국이 들어서면서 유럽에서 아시아로 가는 통로가 막혀버려 중국으로 가는 새로운 길을 찾을 필요가 절실해졌다. 유럽 사람들이 중국으로 가는 길을 찾으려고 그렇게 노력한 이유는 중국의 선진 문물과 교역하려는 욕구 때문이다. 반면 중국은 세계의 첨단을 달리던 나라로 유럽으로 부터 얻을 것이 별로 없었다. 중국은 유럽 나라들과 달리 바다를 통한 외부와 교역이나 정복에 힘을 기울이지 않았으며, 외부와의 관계는 내륙에 유목민의 침략을 방어하는 데 제한되었다.

유럽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엄청난 양의 은을 확보하였다. 이는 중국이 명나라 시대에 화폐제도를 지폐에서 은으로 바꾼 것과 맞물려서, 아메리카 대륙의 은은 유럽을 거쳐 대량으로 중국에 흘러들어갔다. 유럽은 중국에 은을 지불하고 비단, 도자기, 차 등의 선진문물을 수입하였다. 아메리카 대륙으로부터 은의 유입이 줄어든 반면, 유럽인의 중국 문물에 대한 욕구는 줄어들지 않으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유럽의 생산품 중 중국에 수출할만한 것이 없었으므로, 영국은 인도에서 아편을 재배하여 중국으로 수출하여 거둔 돈으로 중국의 문물을 수입하는 방향으로 전환하였다. 아편 무역은 중국의 반발에 부딛쳤으며, 결국 1840-50년대에 두차례의 아편전쟁을 거치면서 영국은 중국을 굴복시켰다.

유럽은 대양을 항해하는 기술을 발전시키고, 유럽 국가들 간 치열한 경쟁을 통해 무기 제조 기술을 발전시키면서, 점차 무력으로 세계를 정복하는 노선을 밟았다.  유럽에 정복된 아메리카, 인도, 아프리카, 동남아시아의 식민지들은 유럽의 산업화 과정에서 천연자원과 원자료를 공급하고 완제품을 수입하여 소비하는 시장의 역할을 하였다. 비유럽 지역의 식민지화는 유럽이 산업화를 통해 부흥하게 만들고, 식민지의 기존 산업을 몰락시켜 가난하게 만드는 양극화의 길을 열었다.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가장 먼저 시작된 것은 영국 중부지방에 철광석과 양질의 석탄이 인접해 매장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천혜의 조건 덕분에 수증기의 힘을 이용해 석탄을 채굴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증기 기관차를 이용한 철도 건설, 섬유 산업의 기계화로 이어졌다. 과거 인류의 역사는 환경 조건의 한계에 가로막혀 경제 발전과 인구 성장이 제한되었는데, 산업 혁명은 이러한 환경 조건의 한계를 뛰어 넘는 수단을 제공함으로서 지속적인 경제발전과 인구 성장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영국에서는 산업혁명 이전까지 인도의 면직물을 대량으로 수입하여 소비하였는데, 인도를 식민지화하면서 인도의 면직물 수입을 금지하는 대신 면화 원재료를 수입하고 국내에서 가공하여 국내 소비와 수출을 하는 방향으로 전환하였다. 이는 과거에 융성하던 인도의 면화 산업을 몰락시켰다.

1800년대초까지 유럽을 앞서있던 중국은 산업혁명으로 유럽에 뒤쳐지면서 격차가 점점 더 벌어졌다. 환경 조건의 한계를 뛰어 넘지 못하고 정체된 사회와 이를 뛰어 넘어 성장하는 사회간의 간격은 기술 수준이 발전하면서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중국은 1980년대에 개방적인 자본주의로 전환하여 본격적으로 경제발전에 착수하면서 빠른 속도로 서구와의 격차를 좁혀왔다. 인도와 기타 개발도상국들 역시 20세기 후반 식민지 상태로부터 독립하고 산업화하면서 서구와의 격차를 줄이고 있다.

저자는 유럽이 중국보다 먼저 산업혁명에 착수한 것이 유럽 문화의 내재적 우수함 때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영국에서 철광석과 양질의 석탄이 근접해 매장되 있는 것, 유럽 대륙이 여러 국가로 쪼개져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군사 기술이 발달하게 된 것, 유럽이 중국으로 가는 길을 찾다가 우연히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우월한 군사기술을 활용하여 전세계에 식민지를 정복하게 된 것, 등이 산업혁명과 이후 경제 발전의 근본적인 원인인데, 이들은 모두 우연의 산물이다. 유럽이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중국보다 특별히 더 합리적이라거나, 유럽이 중국보다 과학기술이 더 우수하거나, 상공업이 더 활발한 문화였던 것은 아니다. 합리적인 사고나 우수한 과학 기술 덕택에 스팀 엔진을 개발하고 섬유 산업의 기계화를 이룬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서구의 학자이면서 중국과 아시아의 편에서 세계 역사의 전개를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을 가졌다. 서구의 발전이 우연의 산물이라는 그의 주장이 맞을 것이다. 세상의 일은 많은 부분 우연적 조건이 맞물려 만들어낸 결과이기 때문이다. 내재적인 우수함이라고 하는 것도 결국 원인을 거술러 올라가면 자연 조건의 차이나 우연한 상황의 조합이 만들어 낸 것이다. 특정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근본적으로 우수하다는 인종주의를 용인하지 않는한 모든 인간사는 우연한 외부 환경과 인간 사이에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결과이다. 서구가 중국과 아시아보다 앞선 것은 근본적인 원인이 여하하건 부정할 수 없다. 역사는 경로 의존적(path-dependent)이기 때문에, 일단 서구가 아시아보다 앞서게 되면 그 이후의 길이 달라진다. 물론 20세기 초반까지 유럽이 미국을 앞섰지만, 두차례에 걸쳐 유럽인들이 그들끼리 벌인 전쟁을 통해 폐허가 되면서, 미국이 유럽을 앞서는 새로운 경로가 만들어지게 됬듯이, 미국의 제도적 비효율과 내부 갈등 때문에 국력이 약해지는 대신, 중국이 꾸준히 노력하여 결국 미국을 따라잡고 서구를 다시 앞서게 되는 역사의 경로에 들어설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중국의 일인당 소득은 1만불에 불과한 반면 미국은 6만불에 달하므로, 중국이 미국을 앞서는 것은 가능하다고 해도 먼 미래의 일이다. 중국의 소득이 높아지고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발전의 속도가 떨어지고 내부 갈등이 커질 것이기 때문에 중국의 미래를 예단할 수 없다.   

이 책은 대학교의 교재로 집필된 듯하다. 세계 역사 전반을 빠른 속도로 훑으면서, 기존 연구를 바탕으로 전반적 흐름을 이해하는 데 주력한다. 아시아를 세계의 중심에 놓는 독특한 시각이 눈에 띠지만, 저자의 주장에 대해 치밀한 증거를 인용한 논의가 제시되지는 않는다. 개별 지역이나 국가에 촛점을 두기보다 지구 전체적으로 근대 세계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한눈에 조망하게 한다. 

 

2020. 8. 23. 18:17

Walter Scheidel. 2019. Escape from Rome: The Failure of Empire and the Road to Prosperity. Princeton University Press. 527 pages.

저자는 하버드 대학의 역사학자로 역사학계의 핵심 화두인, "서구는 왜 중국보다 앞서게 되었는가"에 대해 인과론적인 답을 제시한다. 서구가 중국을 앞서게 된 사실의 원인을 사후적으로 발견하기는 어렵다. 저자는 사후적 설명의 함정을 벗어나기 위해 사회과학적 비교 연구 방법을 차용한다. 서구가 중국과 다른 길을 가는데 어떤 요인이 핵심이었는지 찾기 위해, 만일 특정 요인의 값이 실재와 달랐다면, 다시 말하면 특정 요인과 관련하여 일이 다르게 전개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를 생각해본다. 한편으로 추론의 방법을 쓰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특정 요인과 관련하여 다양한 사례를 비교함으로서 그 요인의 인과적 중요성을 평가한다. 기본적으로는 유럽과 중국을 비교하는 것이 핵심이지만, 비교의 목적으로 중동과 남아시아의 사례를 검토한다.

저자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서구에서는 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 다른 제국이 다시는 들어서지 못한 반면, 중국에서는 제국이 연이어 지배하였는데, 바로 이 점이 서구와 중국의 역사를 다르게 만든 핵심 요인이다. 강력한 중앙 권력이 지배하는 제국은 기본적으로 변화보다 안정과 질서를 추구한다. 제국에서는 기존 체제와 기득이권에 도전하는 파괴적 발전(creative destruction)이 전개되기 어렵다. 로마가 멸망한 이후 서유럽은 여러 국가로 쪼개지고, 각 국가 내에서도 다양한 정치세력이 공존하는 다원적 체제가 들어섰다. 이러한 다원적 체제에서는 국가와 세력들이 서로 끊임없이 경쟁하는 가운데, 실력과 효율을 중시하고, 서로를 모방하고 개량하는 발전의 동력이 계속 작동하였다. 

로마 제국이 서기 450년 경에 멸망한 후 동로마에는 비잔틴 제국이 들어선 반면, 서로마에는 프랑스, 독일,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등 여러 주권국가로 나누어졌다. 이 나라들은 서로를 견제하고 합종연횡하면서, 한 나라가 전체를 장악하는 제국이 다시 만들어지지 못하는 구도를 형성하였다. 중세 봉건 시대에는 각 나라 내에서 왕과 영주들이 권력을 나누어 가졌으며, 교회와 세속 정치가 서로 견제하는 구도가 형성되었다. 중세 후반에 들어 도시가 세력을 키웠고, 왕과 귀족에 대항해 상공인들이 세력을 키웠다. 서유럽은 왕, 귀족, 성직자, 상공인 사이에 권력이 분점되고, 세속 권력과 종교 권력이 나누어지고,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와 구교가 나누어지는 등, 다원적 경쟁체제가 지속되었다. 그 결과 국가와 국가간, 세력과 세력간 전쟁과 갈등이 끊임없이 이어졌지만, 이러한 경쟁은 발전을 만들어 낸 동력이 되었다. 여러 국가들이 서로 경쟁했기 때문에, 한 국가에서 반대 세력은 다른 국가로 피신하여 자신의 뜻을 펼 수 있었다. 다른 경쟁 국가로 넘어가는 선택지가 열려있기 때문에 어떤 국가의 지배자도 반대 세력이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절대적으로 통제할 수 없었다.

유럽과는 대조적으로 중국은 전지역에 절대적 권력을 행사하는 제국이 계속 지배했기 때문에, 유럽의 다원주의 체제가  만든 발전의 동력을 갖지 못했다. 지배 세력을 위협할 새로운 세력이나 아이디어는 초기에 싹을 잘라버리는 정치 문화가 자리잡았다. 유교 사상은 왕을 정점으로 하는 위계체계를 정당화하고 사람들을 이에 순응하도록 설득한다. 상공업은 기존의 위계 체계를 넘어서 부와 세력을 만들어낼 위험성을 지니므로 일찍부터 억압하였다. 반면 농업은 사람들이 토지에 붙박여 있고, 혁신적인 발전이 일어날 수 없어서 기존의 지배체제를 위협할 가능성이 없으므로 농업을 우대하였다. 중국에서도 춘추전국시대에는 서구와 같이 다양한 세력간에 경쟁체제가 조성되었으나, 한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이후 제국이 계속 지배하면서 발전을 질식시켰다.

왜 유럽은 로마의 멸망 이후 여러 작은 나라로 쪼개진 반면, 중국에서는 제국이 이어질 수 있었을까 하는 질문에 대해, 저자는 자연 조건의 차이에서 원인을 찾는다. 두가지 차이를 지적한다. 첫째, 서유럽에서는 산, 강, 바다가 장애물을 많이 만들어서 여러 독립적 정치체제가 들어설 수 있었던 반면, 중국에서는 황허와 양자강 사이에 대평원이 단일 정치체제를 가능케하였다. 둘째, 중앙아시아의 대평원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에 차이가 있다. 서유럽은 중앙아시아의 대평원에서 매우 멀리 떨어져 있으며, 카르파티아나 알프스와 같은 산맥으로 차단되어 있다. 반면 중국은 몽고와 중앙아시아의 대평원에 인접해 있다. 대평원의 기마민족은 유목을 생계로 하면서 때때로 주변의 농경민족을 침탈하여 필요한 것을 조달하였다. 이들은 기동성과 전투력이 뛰어나기에, 이들에 인접한 지역은 이들의 침탈에 방어하기 위해 강력한 국가 권력을 만들어 냈다. 반면 유럽에서는 몽고나 터키족 등 중앙아시아의 유목 민족의 침입이 헝가리에서 멈추었다. 서유럽은 상대적으로 중앙아시아의 기마민족의 침탈로 부터 안전한 환경에 놓여 있었기에, 잘게 쪼개지고 서로 경쟁하는 체제를 형성할 수 있었다.

저자는 로마가 멸망한 시점을 첫번째 역사 분기점 (First Great Divergence), 16세기 유럽에서 종교개혁, 대탐험, 합리적 세계관과 과학기술의 발달이 중첩되면서 이후 비약적으로 앞서나가게 된 사건을 두번째 역사 분기점(Second Great Divergence)라고 칭한다. 첫번째 역사 분기점 사건이 발생한 것이 두번째 역사 분기점을 발생하게 된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로마 제국이 유럽 전역에 공통의 문화적 토양을 제공해 줌으로서, 이후 다양한 나라들 사이에 경쟁이 공통의 기초 위에 전개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그러나 로마가 멸망한 후 또다른 제국이 들어섰다면 중국과 유사한 길을 가게 됬을 것이라고 유추한다.  저자는 책의 맨 마지막 문구에서, 유럽의 여러 국가들 간에 갈등과 경쟁은 끊임없는 전쟁을 낳았고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이것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유럽의 발전은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권력과 기득 이권은 외부로부터의 경쟁과 위협 없이는 변화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3년전에 역사적으로 불평등의 추이를 분석한 Great Leveler 라는 대단한 화제를 불러일으킨 책을 썼다. 불과 3년만에 또다시 대단한 작품을 썼다는 것은 정말 놀랍다. 이책을 통해 역사는 경쟁과 전쟁을 통해 전개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까지 중국의 역사는 농경민이 주축이 되었다고 배웠는데, 저자는 북방 유목민을 중국 역사를 추동시킨 핵심으로 제시한다. 책의 후반 4부에서 지금까지 나온 이론들을 정리하여 서구가 앞서나가게 된 과정을 문화, 제도, 해외 식민지, 지식과 가치관의 측면에서 체계적으로 설명한 부분은 여러번 읽을 가치가 있다. 대단한 책이다.  

2020. 7. 31. 21:58

Douglas C. North, John Joseph Wallis, and Barry R. Weingast. 2009(2013). Violence and Social Orders: A Conceptual Framework for Interpreting Recorded Human History. Cambridge University Press. 282.

저자는 노벨상을 받은 경제학자와 정치학자들이다. 이 책은 사회가 폭력을 통제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방식을 이론적으로 설명한 전문 학술서이다. 제한된 자원을 둘러싼 경쟁은 폭력을 내포한다. '사회가 어떻게 사람들의 폭력을 제한하고 질서를 유지하는가' 하는 문제는 사회과학의 핵심적인 질문이다. 토마스 홉스는 만인이 만인에 대한 폭력을 자연상태로 상정하고, 사람들이 강력한 군주에게 통제를 맡김으로서 질서가 가능해졌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대부분의 정치학의 이론이 국가를 단일체로 보는 오류를 범하는데, 사실 대부분의 국가란 단일체아니라 엘리트 간에 연합체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국가는 경제적 및 정치적 자원에 대하여 제한된 접근만을 허락함으로서 특권 혹은 이권을 만들어 낸다. '자연상태의 국가'(the natural state)에서 엘리트들은 각자 폭력을 동원할 수 있는 능력에 비례하는 만큼 이 특권을 나누어 가진다. 특권을 나누어 가지는 연합이 바로 질서를 유지하는 기제이다. 자연 상태의 국가 체제에서 폭력의 동원 능력은 중앙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엘리트들에게 분산되어 있다. 중세 봉건 시대에 귀족들이 각자 군사력을 보유하며, 왕을 정점으로 한 이들의 연합이 바로 국가였다. 민주주의가 제도화되지 않은 개발도상국도 마찬가지이다. 폭력을 동원할 수 있는 엘리트가 핵심에 있고, 이러한 체제를 유지하는데 기여하는 정치, 경제, 종교, 교육 엘리트의 연합을 통해 질서가 유지된다.

자연 상태의 국가에서 엘리트는 각자 세력의 규모에 따라서 특권을 나누어 갖는다. 엘리트간 세력 배분에 변화가 생기면 그에 맞추어 특권의 배분도 바뀌어야 한다. 만일 이 둘이 어긋날 경우 갈등이 폭발하며, 새로운 질서를 만들 때까지 투쟁이 지속된다. 토지가 부의 원천이었을 때에는 지주계층이 통치 엘리트의 근간이었는데, 상업 및 산업자본가가 성장하면서 이들 새로운 엘리트가 자신의 능력에 맞는 특권 지위를 요구했을 때, 기존 엘리트와 신흥 엘리트 간에 갈등과 투쟁이 벌어졌다. 질서, 즉 폭력이 없는 상태란, 엘리트간 폭력 행사 능력과 이권간에 균형이 맞아 엘리트 들이 무기를 내려놓고 이 체제에 동참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엘리트 간에는 상호간 견제와 감시를 통해 폭력의 행사를 통제한다. 

자연 상태의 국가, 즉 '자원에 대한 제한된 접근만을 허락하는 질서'(limited acess order)에서는 모든 관계와 거래가 개인적(personal)이다. 각 사람의 능력과 특성과 변덕에 따라 관계와 거래가 좌우된다. 특정인이 죽거나 변화가 있을 경우, 그와 관계된 모든 거래는 무효화되거나 다시 조정되어야 한다. 이러한 질서에서 정치와 경제는 한 몸이다. 경제적 이권은 정치적 지위를 뒷받침하는 수단이며, 정치적인 지위는 경제적 이권을 수반한다. 이러한 질서에서는 정치적 지위와 독립된 경제 활동이란 있을 수 없다. 정치행위란 이권, 특권을 나누어 주는 것이다.

자연 상태의 국가를 제도화의 정도에 따라 세개로 구분할 수있다. 가장 취약한 국가에서는 엘리트에게 특권이 배분되는 데 아무런 제도적 장치가 없다. 모든 엘리트의 특권은 개인적 관계에 따라 임의로 결정된다. 이러한 질서에서는 특정 엘리트가 죽거나 변화가 생기면 엘리트들 사이에 특권의 재조정을 향한 갈등이 발생하므로, 매우 취약한 질서이다. 둘째는 기본적인 제도, 어느 정도 안정된 조직이 형성된 상태이다. 그러나 그 제도와 조직이란 여전히 특권을 차지하는 개인에 궁극적으로 좌우되므로 불안정하다. 세번째는 성숙한 단계로, 국가의 통치 조직이나 경제활동의 조직만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다양한 조직이 형성되어 있는 단계이다. 그러나 여전히 이러한 조직에의 접근이 모든 사람에게 공정하게 개방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자원에 대한 개방된 접근을 허용하는 질서'(open acess order)는 19세기 중반에 영국, 프랑스, 미국에서 처음으로 출현하였다. 이 질서는 '법에 의한 지배',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과 독립되어 존재하는 '제도의 영속성', '누구에게나 개방된 익명적인 거래' 등을 특징으로 한다. 누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누구를 아는지, 출신 배경이 어떠한지, 성, 인종, 민족, 종교 등과 상관없이 능력과 자격이 되는 사람은 누구라도 조직 자원에 접근할 수있다.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투명하게 지위와 자원이 배분된다.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며, 모든 사람은 법을 만드는 데, 즉 정치과정에 동등하게 참여할 수있다. 폭력은 국가에 의하여 독점되어 관리되며, 폭력을 통제하는 사람은 선거와 의회 등 정치과정을 통해 국민의 감시와 통제를 받는다. 폭력을 통제하는 기구와 그 기구에서 역할을 맡은 사람은 분리되어 있다. 그 사람은 정해진 규칙에 따라업무를 수행해야 하며 임기가 끝나면 물러난다. 이 질서에서 국가의 역할은 소극적인 폭력의 통제를 넘어서, 적극적으로 구성원 모두가 자원에 접근할 수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데까지 미친다. 보통 교육, 사회보장제도, 공정한 시장의 관리 등이 그것이다.   

'개방된 접근을 허용하는 질서'는 '제한된 접근만을 허용하는 질서'보다 자원을 훨씬 효율적으로 활용하므로 경제성장율이 높으며, 위기에 대한 대응 능력이 크다.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이 문제를 보다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있는 아이디어와 능력을 가진 사람과 조직이 경쟁을 통해 선발되기때문이다. '개방된 접근을 허용하는 질서'는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을 통해 발전할 수있다. 반면 '제한된 접근만을 허용하는 질서'에서는 기존에 특권을 누리는 엘리트 개인의 역량에 따라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제한되며, 위기에 대한 대응과 함께 엘리트들 사이에 세력의 재조정이 진행되어야 하기 때문에 비효율적이다.  '개방된 접근을 허용하는 질서'는 '제한된 접근만을 허용하는 질서'보다 훨씬 안정되며, 실제 폭력이 발생할 가능성이 낮다. 지위를 차지한 사람과 조직과 그들의 행위에 대한 정보가 공개되어 있고, 이들에 도전하는 것이 상시적인 기구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정치에서는 야당이, 경제에서는 경쟁 기업이 항시 감시하고 경쟁하므로, 특권이나 이권이 생겨난다고 해도 오래 유지될 수 없다.

'제한된 접근만을 허용하는 질서'에서 '개방된 접근을 허용하는 질서'로 어떻게 이전할 수 있을까? 자연 상태의 국가의 엘리트가 '법에 의한 지배'와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과 독립되어 영속적으로 존재하는 조직'을 인정하는 것이 개인적 지배나 특정 개인에 좌우되어 조직이 운영되는 것보다 자신들에게 더 이익이 되는 경우에만 이러한 새로운 질서가 생겨나게 된다. '법에 의한 지배'를 허용한다는 것은 법에 의해 자신을 구속하는 상태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엘리트들 간에 관계가 안정적일 때는,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매번 밀고당기기를 하는 것보다, 예측 가능한 규칙을 만들어 서로간에 이 규칙을 지키도록 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더 이익이 될 수있다. 개인으로부터 독립되어 존재하는 조직을 통해 정치와 경제적 거래를 하는 것이 더 효율적으로 이견을 조정하고 더 많은 부를 창출해내는 상황에서만 엘리트들은 개인과 독립된 조직을 인정한다. 폭력 행사력 즉, 군사력이 엘리트들에게 분산되지 않고 중앙에 집중되어 있을 때, 엘리트들은 폭력을 행사하여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려는 성향을 내려놓는다. 엘리트들이 자신의 이익에 따라 자유롭게 조직을 만들 수있고, 엘리트들과 그들의 조직간에 경쟁에서 패한다고 하여도, 폭력의 위험을 느끼지 않고 완전히 게임에서 배제되지 않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될 때에만 엘리트들은 그러한 경쟁에 참여한다.

이러한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것은 급격하게 일시적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정도를 높여 발전해 가는 과정이다. 모든 사회가 반드시 이러한 발전과정을 밟는 것은 아니다. 인류 역사상 대부분의 사회는 자연상태의 국가의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그 단계 내에서도 제도화의 정도가 다양하고 퇴행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엘리트들이 자신의 특권을 내려 놓고 공정한 경쟁의 룰에 따르도록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며, 자신에게 폭력이 행사될 위험을 느끼지 않으면서 반대를 할 수 있는 제도와 믿음을 정착시키는 일은 형식적인 선거나 의회의 존재만으로 되지 않는다. 

저자는 자연상태의 국가에서 자원에 대한 접근이 제한된 질서를 설명하는 예로 중세시대 영국의 토지소유제도를 분석하며, 자연상태의 국가 중에서도 성숙한 제도화의 단계에 도달한 영국이 그렇지 못한 프랑스에 비해 전쟁을 위한 동원을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었기에 영국이 프랑스를 제압할 수 있었다고 분석한다. '자원에 대한 접근이 개방된 질서'가 '접근이 제한된 질서'보다 자원을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기에 서구가 세계의 다른 지역을 제압할 수 있었다고 분석한다. 

이 책은 매우 독창적인 이론과 분석을 제시한다. 기존의 정치학의 이론을 뛰어 넘어 눈을 확 뜨게 하는 통찰력을 제공한다. 사회과학의 핵심 질문에 대해 가장 설득력있는 설명을 제시한다. 여러번 읽으며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