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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5. 12. 22:25

Martin Daly and Margo Wilson. 1988. Homicide. Aldine de Gruyter. 297 pages

저자는 진화심리학자이며, 이 책은 사람들이 살인을 저지르는 원인을 과학적으로 분석한다. 저자는 인간의 모든 행동은 진화적 관점에서 파악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살인을 저지르는 이유는 사람들이 자신의 유전자를 후손에게 퍼뜨리는 데서 유리함을 획득하기 위한 (raising fitness) 것이다. 살인을 범주별로 구분하여 역사적 기록, 인류학적 자료, 범죄 자료를 분석하여 살인을 설명한다.

살인의 빈도로 보면 가족이나 친족간 살인이 많지만, 접촉의 빈도를 고려할 때 가족이나 친족이 가장 위험한 대상은 결코 아니다. 자신과 유전자를 공유하지 않는 지인이나 이방인을 살해하는 경우가 가족이나 친족을 살해하는 경우보다 사실상 더 많다. 부모 자식간 살인보다 부부간 살인이 더 많은 것이나, 부모가 친자보다 의붓자식을 살해하는 사례가 많은 것도 진화적 관점에서 설명할 수있다.

아버지는 자식의 친자관계를 확신할 수 없는 경우 유아를 살해한다. 반면 어머니는 자식을 기를 환경이 되지 못하거나, 혹은 새로운 아이를 가지면 기존의 자식을 제대로 기를 수 없으리라는 합리적인 계산이 유아 살해의 원인이다. 어머니는 나이가 든 아이를 살리는 대신 어린 아이를 죽이는 것이 제한적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후손을 퍼뜨리는데 사용한다고 계산한다.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이유는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린다는 관점에서 볼 때 자식의 이익과 부모의 이익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모는 자식 모두가 잘 자라서 자신의 유전자를 많이 퍼뜨리는 데 관심이 있는 반면, 자식은 자신의 유전자에게만 최고의 환경을 만드는데 관심이 있다. 부모의 제한된 자원을 자신이 독점하고자 하는 동기가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는 원인이다. 

자신과 피를 나눈 사이가 아닌 타인을 살해하는 것은 사회적 지위와 자원을 경쟁하는 가운데 발생한다. 젊은 남성들 간에 타툼이 많으며 이중 일부가 살인으로 귀결된다. 일견 사소한 이유로 싸우고 살인에 이른 것으로 보이지만, 핵심은 사회적 경쟁에서 자신의 지위를 위협당한 것에 대한 반발이다. 사회적 지위가 낮을수록 상대가 자신의 지위를 위협하는 말이나 행위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싸움을 벌이기에 살인의 가능성이 높다.

남성이 남성을 살해하는 경우가 남성이 여성을 살해하거나 여성이 남성 혹은 여성을 살해하는 경우보다 훨씬 많다. 이는 동물의 세계에서 수컷이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기 위해 암컷을 놓고 경쟁하는 것과 같다. 일부다처의 정도가 심할 수록 수컷 간에 짝짓기의 기회를 둘러싼 경쟁이 치열한데, 인간은 어느 정도 일부다처의 동물이므로 수컷 간에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남성은 자신이 만드는 후손의 숫자에 생물학적으로 제한이 없으나, 여성은 열명을 넘어서기 어렵다. 따라서 남성은 더 많은 여성을 차지하고 자신의 여자를 뺏기지 않기 위한 경쟁에 전적으로 몰두하나, 여성은 자신의 자식을 잘 성장시키기 위한 자원을 풍부히 제공하는 남성을 찾고 지키는데 관심이 많다. 이것이 남성이 여성보다 배우자의 정조를 훨씬 더 엄격히 규제하며 배우자를 자신이 배타적으로 소유하는 것으로 여기는 이유이다. 남성은 바람난 배우자나 그녀의 정부를 살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여성은 바람난 배우자나 그의 정부를 살해하는 경우가 드물다. 남성이 여성을 살해하거나 반대로 여성이 남성을 살해하는 경우 모두 성적인 질투가 원인이며 거의 대부분 남성 쪽에서 먼저 도발을 한다.

성적 능력이 왕성한 젊은 여성이 배우자에 의해 살해당하는 빈도가 나이가 든 혹은 폐경기를 넘어선 여성이 배우자에게 살해당하는 빈도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남성 살해자의 젊은 나이를 고려한다고 하여도 전자가 후자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이유는 자신의 배우자의 성적 능력에 대한 남성의 배타적 소유 의식 때문이다.

농경사회 이전에는 피살인자의 친족이 살인자 혹은 그 친족에게 피로서 복수하는 관행이 일반화되어 있었다. 집단주의 사회에서 집단의 이익을 구성원이 공동으로 보호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회에서 집단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사람은 주위로부터 업수이여겨지고 살해당할 위험이 높다. 집단이 그들 보호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게임이론의 실험이 입증하듯 눈에는 눈으로 보복하는 것이 폭력을 예방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살인에 대한 피살해자의 친족의 복수의 감정과 관행은 진화의 산물이다.

국가가 형성되면서 개인의 사적인 복수을 제한하고 국가의 공권력을 동원하여 살인자를 처벌하는 제도가 만들어졌다.  개인의 충성심을 친족이 아니라 국가에 모으려고 한다면, 국가가 친족을 대신하여 개인이 살해될 위험을 막아주고 질서를 확립해야 한다. 피살해자의 친족의 일원으로서 피살해자의 원한을 값아야 할 의무를 국가의 사법제도가 대신해 주기때문에, 개인으로서도 짐을 더는 셈이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변화를 선선히 수용하였다. 그러나 복수의 감정까지 완전히 제거한 것은 아니기에, 개인의 복수의 감정이 재판 결과에 반영되어 있다. 자신의 가족을 살해한 사람은 죄값을 치러야 한다고 사람들은 여전히 생각한다.

현대인들은 자유의지로 타인을 살해한 경우에만 처벌할 수 있다고 믿는다. 자신이 자신을 제어할 수 없는 정신 상태에서 저지러진 행위에 대해서는 책임을 면해준다. 그러나 자유의지, 즉 자신이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가 여부는 과학적으로 판명하기 어렵다. 그보다는 살인의 결과 살인자에게 이익이 돌아가는지 여부에 따라 살인의 책임을 묻는 것이 합리적이다. 살인자 본인에게 이익이 돌아가지 않는 살인이라면, 사람들은 그를 처벌하려 하기보다 동정하는 경향이 있다. 원시 시대 사람들은 자신이 자신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살인을 저질렀다면 복수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피살해자의 가족 혹은 친족에게 보상을 하였다.

국가에 따라 또 시기에 따라 살인율에 차이가 크다. 미국은 예외적으로 살인율이 높으며, 모든 사회에서 전쟁을 치른 직후 살인율이 높다. 왜 특정 사회, 특정 시기에 살인율이 높은지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한 사회의 살인율이 높은 이유를 문화적 특성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실제로 설명을 한게 아니다. 왜 특정 사회에서는 다수가 그러한 문화적 특성을 보이는지 설명을 해야 한다. 일부 폭력적인 젊은이들 사이에서 살인율이 높은 것을 폭력적 하위문화의 탓으로 돌리는 것 또한 설명이 아니다. 왜 그들이 폭력적인 행위를 많이 하는지 설명해야 한다. 주위의 사람들의 폭력적 행위를 모방하는 것이 이유라면, 왜 폭력적 행위의 모방이 그 사회, 그 집단에서 많이 일어나는지 설명해야 한다. 

이 책은 놀라운 통찰력을 제공한다. 인간의 행위에 대해 객관적인 증거를 들이대면서 이렇게 이론적으로 진지하게 설명하는 책을 찾기는 쉽지 않다. 이 책을 통해 남자와 여자의 차이에 대해 눈을 뜨는 계기가 되었으며, 사회학적 혹은 문화인류학적 설명의 약점에 새로이 눈뜨게 되었으며, 진화심리학의 설명력에 감탄하였다. 문체가 난삽하여 잘 읽어지지 않는 부분이 가끔씩 나타나는게 흠이다. 다시 읽어볼 만한 훌륭한 책이다.

2021. 4. 21. 17:12

Daron Acemoglu and James Robinson. 2006. Economic Origins of dictatorship and democracy. Cambridge. 379 pages.

저자는 경제학자와 정치학자이다. 이 책은 어떤 경우에 민주주의로 이행하고, 어떤 경우에 민주주의로 이행하지 않는지, 어떤 경우에 민주주의가 공고해지는지에 대한 이론을 제시한다. 전반은 저자가 제시하는 이론에 관해 개념적으로 설명을 하고, 중반 이후는 수리모델을 적용해서 이 이론을 검증한다. 

정치는 집단간에 경제적 이익이 충돌하는 장으로서, 부를 가진 소수의 엘리트 집단과 가난한 다수의 대중들 간의 투쟁이 정치과정의 핵심이다. 비민주적 정치체제는 엘리트의 부를 지키는 데 기여하며 다수의 대중에게 돌아가는 부의 몫은 적은 반면, 반대로 민주적 정치체제는 다수의 대중에게 부가 재분배되는 정책을 구사하므로 엘리트의 이익에 반하나 대중에게는 이익이 된다.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들어서면 재분배 정책을 채택하기 때문에 소득의 불평등 수준은 완화된다. 엘리트가 대중의 위협이 없는 데도 자발적으로 참정권을 확대하여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경우는 생각할 수 없다. 

소수의 엘리트와 다수의 대중사이에 밀고 당기는 관계로부터 민주주의가 출현하는데, 저자는 이를 게임 이론을 적용하여 이론화한다. 다수의 대중으로부터의 참정권 요구, 부를 나누라는 요구가 커지면 엘리트들은 이러한 요구를 물리적으로 억압할 것인가, 아니면 그들에 요구에 굴복하여 참정권을 확대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밑으로부터의 요구가 매우 큰 데, 엘리트들이 무리하게 힘으로 억압한다면 혁명이 일어나게 되며, 이 경우 엘리트들은 밑으로부터의 요구에 타협하는 결정을 한 경우보다 더 큰 피해를 입는다. 밑으로부터의 요구에 대해 엘리트들은 일시적으로 당근책을 제시하지만, 민중은 일시적 당근을 넘어서 미래에도 자신들에게 계속 유리하게 분배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장받기 위해 의사결정 제도를 민주주의로 바꾸려고 한다. 민주주의 제도는 대중이 엘리트로부터 미래의 분배를 보장받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저자는 민주주의로 이행하거나, 혹은 이행하지 않는 유형을 네가지로 단순화한다. 첫째는 영국의 모델이다. 영국은 17세기에 명예혁명을 통해 귀족과 지주로 구성된 의회가 왕권을 견제하는데서부터 시작해, 19세기에 들어 수 차례의 정치 개혁으로 참정권을 점차 확대하여, 1870년대에는 남성 모두에게 참정권이 부여되는 민주주의를 확립했다.

엘리트가 참정권 확대를 양보하는 이유는, 밑으로부터의 요구가 거셀 때 이를 물리적으로 억압하여 초래하는 혼란의 비용이, 참정권을 확대하여 민중의 요구에 타협하는 비용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영국은 상공인 계층이 확대되면서 과거에 엘리트가 토지에만 의존하던 때보다 물리적 억압의 비용이 더 들게 된 반면, 참정권을 확대한다고 해도 민주주의 정권의 재분배 정책으로 인해 엘리트가 떠앉아야 하는 비용이 적어지게 되었다. 엘리트가 토지에만 부를 의존하면, 대중을 물리적으로 억압하면서 초래하는 혼란의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다. 반면, 상공업이 확대되어 엘리트의 부가 무역, 상공업, 인적자본에 의존하는 비중이 커지면, 대중의 억압이 초래하는 물리적 혼란의 비용이 매우 크다. 엘리트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무역과 상공업의 비중이 클 경우 민주주의 체제가 들어선다고 해도 부의 재분배 조치로 인한 희생은 엘리트가 토지에만 의존하던 때보다 훨씬 적다. 상공업의 부는 토지의 부보다 해외로 부를 이전하거나 조세를 회피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용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국의 엘리트들은 민주주의로 양보하는 것을 쉽게 허락할 수 있었다.

영국에서 민중의 요구가 특히 19세기에 거세졌을까? 이는 18세기의 계몽주의 운동, 프랑스 혁명, 미국 혁명 등으로 민중의 정치 의식이 높아졌으며, 산업화, 도시화로 민중의 조직력이 커졌기 때문이다. 반면 농업이 주인 경제에서는 민중이 농촌에 흩어져 있어 조직화하기 어렵기에 밑으로부터의 요구가 약할 수 밖에 없다.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 산업화, 도시화가 본격화된 19세기 후반에 들어 민주주의 체제가 들어선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중간계층의 존재는 다수의 민중과 소수의 엘리트 사이에서 양쪽의 요구를 절충하는 선택을 용이하게 한다. 따라서 중간계층이 성장하면 민주주의가 탄생하고 공고화되기 유리한 조건이 조성된다. 엘리트들은 밑으로부터의 요구에 대해, 먼저 중간계층을 포섭하여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밑으로부터의 압력을 약화시킨다. 다음 단계에서 밑으로부터의 요구가 다시 높아지면 참정권을 조금 더 허용하면서 점진적으로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경로를 밟는다.

영국은 민주주의제도가 도입된 이후, 지속적으로 민주주의 제도가 공고해지는 과정을 밟았다. 엘리트의 입장에서 볼 때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민주주의의 틀을 조작하여 계속 유지하면서 민중의 재분배 요구에 조금씩 양보하는 것이, 판을 뒤집어 업는 것보다 엘리트들이 부담해야 하는 피해가 덜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두번째 유형은 중남미 모델이다. 이 모델은 일단 형식적 민주주의가 들어서기는 하나, 민주주의가 공고화되지 못한다. 아르헨티나 등은 19세기 초반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후 독재의 길을 걸어 오다가 19세기 중후반부터 형식적 민주주의를 만들기는 했으나, 쿠데타로 엎어지고, 다시 민주주의 정부가 들어서기를 1980년대말까지 반복해왔다. 대농장 소유에 의존하는 중남미의 엘리트들은 대중의 분배 압력에 못이겨 형식적으로 민주주의를 허용했다가, 이러한 민주 정부의 혼란으로 쿠데타가 발생하여 군부가 집권하면, 민주정부때 도입했던 재분배 정책이 취소되면서 엘리트의 이익에 우호적인 환경이 만들어지고, 이어서 다시 민주주의의 압력이 높아지는 악순환을 거듭하였다. 중남미는 부의 불평등 수준이 높기 때문에, 민주주의 체제가 들어서 재분배 정책을 추진하면 엘리트들이 감당해야 하는 희생이 매우 크다. 부의 불평등 수준이 높아 밑으로부터의 압력이 혁명으로 비화될 위험도 크기 때문에, 엘리트들은 형식적 민주주의에 동의하기는 하나, 민주주의를 공고화하는 것에는 한사코 소극적이다. 민주주의 정부가 혼란에 빠져서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면 엘리트들은 쉽게 이들을 지지하는 편에 서게 된다.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계기, 및 민주주의가 퇴행하는 계기는 모두 경제적 위기 상태에 빠질 때 발생한다. 외부적 요인 등으로 경제가 어려움을 격게 되면 밑으로부터의 요구가 거세져서 엘리트가 양보하는 사태로 발전한다. 일단 민주주의 체제가 들어섰어도 경제적 혼란에 처할 경우 이 정부는 군부 쿠데타에 쉽게 허물어진다. 쿠데타로 집권한 정부는 민중의 분배와 정의의 요구보다는 질서와 경제 안정을 우선시 하기에, 이들은 엘리트와 쉽게 결탁하며 기득권 집단에 유리한 정책으로 선회한다.

세번째 모델은 국민들이 참정권 확대를 강하게 요구하지 않는 비민주주의 체제로 싱가포르가 이에 해당한다. 싱가포르는 부의 분배가 상대적으로 평등하며 정부가 능력에 따라 움직이도록 투명하게 개방되어 있다. 국민은 국가의 주요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데에서는 배제되어 있지만, 현재의 부의 분배와 삶의 수준에 어느 정도 만족하므로 엘리트의 독점적 권력에 반대하지 않는다.  민중들은 민주주의를 강하게 요구함으로서 엘리트와 충돌하여 피해가 발생하면서까지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것의 보상이 크지 않다고 판단하기에 현상황에 안주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소득과 교육 수준이 높으므로 언제라도 민주주의 요구가 커질 수 있고, 엘리트의 입장에서 볼 때 민주주의 체제로 양보하는 것의 희생 역시 크지 않으므로, 장기적으로 볼 때 싱가포르에는 국민의 참여가 확대되는 민주주의가 들어설 것으로 예상한다.

네번째 모델은 민주주의로 이행할 가능성이 차단된 경우로, 인종차별이 철폐되기 이전의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이에 해당한다. 남아프리카에서는 백인과 유색인사이에 부와 이념의 격차가 매우 크므로, 백인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유색인의 요구를 억압하려 하였다. 유색인들의 참정권 요구는 백인의 노골적인 폭력에 부딛쳐 좌절되었다. 북미 대륙에서는 인디안 원주민들이 질병과 살육으로 오래전에 제거된 반면,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흑인 원주민들이 제거되지 않고 백인 지배자의 착취 대상으로 복속되어 20세기까지도 이러한 상태를 계속 유지해 왔다. 

그러나 1990년대에 남아프리카에서도 민주주의가 도입되었다. 20세기 중반 이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경제가 다원화되고, 국제적 압력이 높아지면서, 백인 권위주의 정권에 가해지는 내외의 압력은 점차 높아졌다. 경제 다원화에 따라 흑인들의 소득이 점차 상승하면서 백인과 흑인간에 불평등의 정도도 완화되었다. 1980년대 이래 백인들은 흑인들에 대한 억압의 고삐를 점차 늦추면서 흑인들과의 공생관계를 모색하였다. 넬슨 만델라라는 흑인 지도자가 백인들에게 보복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백인과 권력을 분점하는 방안을 제도화하면서, 마침내 1990년대에 민주주의가 도입되었다. 그러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는 중간층이 얇으며 소득 격차가 매우 크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공고화되기 어려운 취약한 상태이다.

20세기 후반에 들어 전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확대되고 있다. 이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하였다. 전반적으로 민중들의 소득 수준과 교육 수준이 높아진 것, 세계화가 확대되면서 민주주의 정권의 재분배 정책으로 인한 엘리트의 희생이 감소한 것, 국제적 압력의 확대와 전염효과 등을 들 수있다. 20세기 중반까지도 민주주의가 공고화되지 못하던 아르헨티나, 칠레, 콜럼비아 등에서도 앞으로 민주주의가 공고화될 것으로 예상한다.  경제의 다변화, 대중의 소득과 교육 수준 상승 등의 요인이 중남미 민주주의의 공고화에 기여하는 요인이다.

배링턴 무어가 "민주주의와 독재의 사회적 기원"이라는 책에서 민주주의의 이행을 사회계급 사이의 구조적 관계로 설명함에 비해, 이 책의 저자는 "민주주의와 독재의 경제적 기원"이라는 유사한 책 제목을 달고 경제적 이해의 갈등 관계로 민주주의의 이행 여부를 설명한다. 두개의 논의는 모두 경제결정론이라는 유사점이 있다. 무어는 사회학자답게 보다 사회구조적인 배경에 설명의 촛점을 맞추는 반면, 이 책은 경제적 결정론을 바탕으로 하면서 정치학의 행위자 모델을 접목하는 설명을 한다. 경제 이외의 요인, 예컨대 인종이나 민족 등에 따른 정치적 갈등도 깊이 들여다 보면 경제적 이익의 분배와 관련된 것이므로 경제결정론적인 설명이 보편적으로 타당하다고 주장한다. 정치를 철저하게 경제적 이익의 분배를 둘러싼 갈등의 장으로 보는 접근 역시 독특하다. 모든 정치과정은 경제적 이익을 둘러싸고 전개된다는 시각이다. 

이 책은 저자들이 제시하는 이론에 대해 개념적 설명을 하는 부분은 이해할 수 있지만, 수리 모델을 제시하는 중반 이후부터는 이해하기 어렵다. 저자들의 다른 책이 그렇듯이 통찰력이 크며 감탄할만하다. 수리모델이 얼마나 타당하고 유용한지는 까막눈인 필자로서는 전혀 알 수 없지만, 개념적으로 설명하는 부분은 명쾌하다.

2021. 4. 18. 21:46

Cesar Hidalgo. 2016. Why Information grows: The Evolution of order, from atoms to economies. Basic Books. 181 pages.

저자는 MIT 대학의 Media Lab 교수이며 경제학자로, 정보이론을 적용하여 인간의 행위와 경제 현상을 설명한다.

우주는 에너지, 물질, 정보라는 세가지 요소로 만들어져 있다. 물질은 에너지를 이용하여 질서 혹은 정보를 만들어 낸다. 평형 상태로 부터 벗어날 때 out of equilibrium 정보가 만들어진다. 정보 혹은 질서는 항시 정보가 소실되는, 혹은 무질서로 돌아가려는 경향, 즉 엔트로피가 높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우주의 대부분은 높은 엔트로피의 평형 상태에 있는 반면, 지구는 우주에서 예외적으로 정보 즉 질서가 높은, 평형에서 벗어난 지역이다.

정보를 증가시키려면, 시간이 흐르면서 정보가 소실되는 자연의 힘을 거슬러야 한다. 정보의 증가란 질서의 증가, 복잡성의 증가를 의미한다. 고체 상태로 만들어 이것에 정보 혹은 질서를 체화 embeded 시킴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정보가 소실하는 자연의 힘을 막는다. 물질이 스스로 계산하는 compute 능력을 가질 때 정보를 만들어 낸다. 생명체란 계산하는 능력을 가진, 질서를 만들어내는 물질이다. 우리의 세포는 끊임없이 정보를 처리 process 한다. 생명체가 죽는다는 것은 계산하는 능력을 상실하고, 질서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상실하고, 우주의 무질서, 즉 정보가 없는 상태로 돌아감을 의미한다. 생명 활동이란, 이러한 자연의 힘에 거슬러서, 질서를 계속 유지하고 새로이 만들어 내는 활동이다.  

인간이란 끊임없이 계산하는, 즉 정보를 처리하는 물질이다. 인간은 계산하여 새로운 정보를 만들어 낸다. 이렇게 만들어낸 새로운 정보의 뭉치는 바로 인간이 만들어낸 물건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물건에 인간이 생성한 정보가 체화 embeded 되어 있다. 인간은 이렇게 만들어낸 물건, 즉 정보의 뭉치를 이용하여 더 복잡한 즉 더 많은 양의 정보를 담은 물질을 만들어 낸다. 인간은 머리속에서 상상한 것을 구체화시켜 자연에는 존재하지 않는 물건, 즉 새로운 정보의 뭉치를 창조한다. 인간의 경제활동이란 정보를 증가시키는 활동, 새로운 정보를 만들어내는 활동, 이렇게 만드는 정보를 물건에 체화시키는 행위이다.

정보는 물건에 체화되기도 하지만, 또한 인간의 지식과 기술 knowledge and knowhow 로 체화된다. 그런데 한 개인이 담을 수 있는 정보의 양에는 제한이 있다. 한 개인이 담을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양의 지식과 기술은 사람들의 네트워크, 즉 사회 네트워크를 통해 집합적으로 담는다. 회사란 여러 명이 분업으로, 즉 종류를 분담하여 다양한 많은 정보를 담은 집합체이다. 회사는 한 개인이 담을 수 있는 양보다 많은 양의 정보, 즉 복잡한 정보를 담을 수 있다. 개별 회사의 조직으로 담을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양의 정보, 매우 복잡한 정보는 시장기구 등의 사회 네트워크를 통해 담는다. 

한 개인이 담을 수 있는 정보의 양은 동일하지 않다. 지식과 기술 수준이 높은 사람은 더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으며, 따라서 더 많은 양, 더 복잡한 정보 처리를 하고 새로 만들어 낼 수있다. 사람들 사이에 신뢰의 수준이 높으면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데 드는 거래 비용이 적은 반면, 사람들 사이에 신뢰의 수준이 낮으면 사회 네트워크 내의 거래 비용이 많이 든다. 거래 비용이 적은 사회 네트워크는 새로운 정보를 만드는 데에서 훨씬 더 효율적이다. 즉 많은 양의 정보를 처리하는 것, 즉 매우 복잡한 정보를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

적은 양의 정보를 처리하는, 즉 단순한 정보를 처리하여 체화시킨 물건은 많은 나라에서 만들 수 있다. 반면 많은 양의 정보, 즉 복잡한 정보 처리를 통하여 체화시킨 물건은 소수의 나라에서만 만들 수 있다.  많은 양의 정보, 복잡한 정보 처리는 한 개인의 수준을 넘어서며, 회사 단위의 정보, 혹은 그보다 더 큰 범위인 산업 생태계 단위의 정보 담지력을 요구한다. 매우 복잡한 정보 처리는 단순히 한 개인 혹은 한 회사를 이식한다고 하여도 수행할 수 없다. 

우주는 엔트로피가 계속 높아지는 방향인데, 우리 인간은 이러한 자연의 힘에 거슬러 새로운 정보를 만들어 내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내려고 한다. 이를 위하여 회사를 만들고, 산업 생태계를 만들고, 사회 체계를 만들어 냈다. 경제 발전이란 더 많은 정보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다. 

이 책은 '인간의 경제활동은 정보 생성이다'라는 명제를 통해, 인간 사회를 물리학 이론을 적용하여 설명하는 데 성공하였다. 논지는 간단하지만 통찰력을 준다.

 

 

 

 

2021. 4. 16. 18:02

Ronald Inglehart. 2018. Cultural Evolution: People's motivations are changing, and reshaping the world. Cambridge. 216 pages. 

저자는 정치학자로 "세계가치관조사" World Value Survey 의 주관자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책은 저자의 가치관 변화 이론을 조사 자료를 이용하여 검증한 그간의 연구 결과들을 요약하여 제시한다. 저자는 근대화이론 modernization theory 를 약간 변형하여,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 사회의 가치관이 물질주의 materialistic values 에서 비물질주의 non-materialistic values 로 바뀐다고 주장하였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그의 주장을 한단계 더 발전시켜 생존을 중심으로 하는 가치관 survival values 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가치관 Expression values 로 바뀐다고 주장한다.

물질적인 생존이 위협을 받는 단계에서 사람들은 권위주의적 지도자를 추종하며, 집단주의 collectivism 가치관을 지지하며, 외부인을 배격하며, 다양성을 허용하지 않으며, 종교를 중시하며, 위계적 질서와 전통을 옹호한다. 그러나 물질적 결핍으로부터 해방되어 물질적 안정을 당연시하는 단계에 이르면 사람들의 삶의 우선순위는 바뀐다.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중시하고, 자유를 중시하며, 개인주의 individualism 가치관을 지지하며, 자율성을 중시하며, 다양성을 허용하며, 세속적 합리적 가치관을 가지며, 외부에 대해 개방적이 된다. 이러한 변화는, 생물학적 진화와 유사하게, 풍요로운 사회에서는 자신을 표현하는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삶과 사회발전에 더 유리하기 때문에 나타난다. 서구 사회가 20세기 후반 지식중심의 경제 knowldege economy 로 이전하면서, 자유, 자율성, 다양성을 중시하는 사람이 획일적 질서를 중시하는 사람보다 생산성이 더 높아진다.

가치관의 변화는 세대의 이전을 통해 이루어진다. 성장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형성된 가치관이 이후 일생동안 변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장기에 물질적 결핍을 겪은 사람은 생존을 중심으로 하는 가치관을 일생 유지하게 되는 반면, 성장기에 물질적 안정을 당연시하며 자라난 세대는 자신의 표현을 중시하는 가치관을 일생 유지한다. 서구 사회에서 2차대전 이전에 성장기를 겪은 세대는 생존을 중심으로 한 가치관을 가진 반면, 전후의 풍요 시기에 성장한 세대는 자신의 표현을 중시하는 가치관을 가진다. 이들이 바로 1960년대의 반문화운동, 베트남전 반대 운동, 여성운동, 동성애 인정을 가져온 세대이다. 

개별 사회 내에서 볼 때는 종교적인 사람이 덜 종교적인 사람보다 삶의 질이 높지만, 사회전체를 단위로 보면 종교를 중시하는 사회는 세속적인 사회보다 구성원들의 삶의 질이 높지 않다. 서구 산업사회는 모두 세속주의 secularism가 확대되어 왔는데, 이러한 추세 예외라고 하던 미국 조차도 근래에 종교의 영향력은 약화되고 있다.

개인주의가 강하고 개인의 선택을 중시하게 되면 여성의 지위는 향상된다. 물질적 생존이 위협을 받을 때에는 권위주의적 남성 우위의 가치관이 지배하지만, 물질적 위협으로 부터 벗어나면 여성의 지위, 성적 자유, 성적 다양성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사회가 발전한다.

물질적 위협으로 부터 벗어나면 집단에 대한 충성도는 약화된다. 이는 자신의 나라를 위해 기꺼이 전장에 나가겠다는 의지의 약화로 나타난다. 즉 물질적 위협에서 벗어나면 사람들의 의식은 평화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변한다.

경제발전이 왜 민주주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저자는 경제발전이 사람들의 가치관의 변화를 가져오고, 이것이 민주주의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기 때문이라는 인과관계를 제시한다. 사람들이 생존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면, 자신을 표현하고 자유를 중시하는 가치관이 지배하게 되고, 이는 자신의 목소리를 정치에 반영시키려는 노력으로 이어진다. 사람들의 의식에서 민주적 욕구, 즉 자신의 의견이 반영되기를 원하는 욕구가 높아지면, 사회적 동원으로 이어지며, 이는 민주적 제도의 발전을 낳는다. 사람들의 민주적 욕구의 정도와 민주적 제도화의 정도가 불일치 할 경우 정치가 불안정해진다. 만일 사람들의 민주적 욕구가 높지 않다면, 아무리 외부로부터 민주적 제도를 도입하여도 이것이 정착하기 어렵다. 대표적인 예가 이라크이다. 중국을 민주화하려면 결국 그들의 경제발전을 도와서 중국인들이 자신의 표현을 중시하는 가치관으로 변화하도록 만드는 것이 정답이다. 중국은 아직도 일인당 소득이 낮아 사람들이 생존의 위협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므로 권위주의 가치관과 권위주의 정치가 지배하고 있다.

경제가 발전하여 소득이 높아지면 사람들의 행복도도 높아진다. 소득이 낮은 수준에서는, 소득이 증가하면서 행복도가 높아지는 속도도 높다. 그러나 소득 수준이 어느 정도에 도달하면, 소득의 증가가 행복도의 증가에 미치는 영향은 약화된다. 그럼에도 소득의 증가가 행복도의 증가를 이끈다는 명제는 어느 소득 수준에서나 항시 옳다. 행복도는 시대나 사회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거나, 행복도는 소득과 무관한 것이라는 기존의 주장은 경험적으로 그릇되다.

1990년 동구권이 몰락하면서 동구권 사람의 주관적 삶의 질은 현저히 하락하였다. 이는 경제적인 후퇴에도 원인이 있지만, 그 못지 않게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공산주의 이념이 몰락하면서 삶의 의지처를 잃은 때문이다. 그 결과 동구권은 공산주의의 몰락 이후 종교의 영향이 높아졌다. 종교가 공산주의의 빈자리를 메운 것이다.

근래에 서구 산업국의 노동계층 사람들은 소득이 정체하고 실업률이 높아지면서 물질적 위협을 느끼게 되었으며, 생존을 중시하는 가치관이 높아졌다. 그 결과 이들은 권위주의와 인종주의를 옹호하며, 대중영합주의 정치인에 지지를 보낸다. 이민자가 20세기 후반 이래 급격히 증가하면서 자신의 삶의 방식이 위협을 당한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자신의 계급적 이익을 벗어나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문화적 가치에 따라 투표하는 성향이 높아졌다. 종교와 전통적 가치를 강조하는 노동계층의 투표 성향은 계급적 이익과는 별개의 독립 차원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서비스 노동자가 늘어나고, 인공지능의 확대로 사무직 노동자의 지위까지 위협받고, 승자독식 winner-takes-all 체제가 뚜렷해지면서, 생존을 중시하는 가치관이 확대되며, 민주주의가 후퇴할 위험이 크다.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하여, 1930년대에 대공황시대에 뉴딜정책과 유사하게,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분배를 바로잡는 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 

저자는 근대화이론의 옹호자로 이 책에서 그의 일생의 연구결과를 집약한다. 그의 주장은 비교적 분명하며, 데이타 분석 결과를 통해 그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이 책의 초반은 자신의 이론을 잘 정리하여 읽을만 하다. 그러나 이책의 중반 이후는 그가 과거에 쓴 논문을 짜깁기하여 덧붙이기 때문에 중복이 많으며 읽기에 지루하다. 여하간 한 학자의 일생의 연구를 요약하여 제시한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2021. 4. 14. 09:07

Mauro Guillen. 2020. 2030, How today's biggest trends will collide and reshape the future of everything. St.Martin's Press. 242 page.

저자는 펜실베니아 대학 경영학 교수이다. 이 책은 현재의 추세를 점검하면서 십년 후의 미래를 예측한다. 인구, 여성, 환경, 기술 분야에 집중하여 논의한다. 

선진국의 인구 노령화가 지속되면서 베이비 붐 세대의 영향력이 커질 것이다. 이들은 재산을 많이 가지고 있으며, 교육 수준이 높으며, 기술에 대한 개방성이 높은 사람들이다. 아직은 기업들이 이들의 구매력에 제대로 어필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많은 경험을 했기 때문에 얄팍한 유행이나 광고에 현혹되지 않는다. 이들은 소비재를 자주 바꾸지 않으며, 이들이 소비하는 분야는 젊은이와 다르다. 이들의 건강이 약화되는 것을 보충하는 장치나 의료기기가 이들의 지갑을 열게 할 것이다.

세계 경제에서 아시아의 중요성이 커지는 반면, 유럽과 미국의 비중은 줄어들 것이다. 세계의 구매력이 있는 중산층은 앞으로 중국과 남아시아에서 주로 나올 것이다. 선진국의 인구는 점차 감소할 것이다. 

세계 인구에서 아프리카가 차지하는 비중이 증가할 것이다. 아프리카는 면적이 매우 넓으므로 선진 농업 기술이 이들에게 보급된다면 인구 증가의 압력은 크지 않을 것이다. 아프리카에서도 제조업이 커지고, 점차 소득이 높아질 것이다. 

여성의 지위는 지속적으로 향상될 것이다. 상위직에 오르는 여성이 많아질 것이며, 특히 여성이 보유한 자산의 비중이 크게 증가할 것이다.

물 부족 문제가 심화될 것이다.

자동화와 사람들 사이에 네트워킹의 정도가 높아질 것이다. 공유경제의 비중이 커질 것이다. 블록체인 기술이 다방면으로 활용될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의 내용을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오랫동안 강의했다고 하고, 여러 경제지가 추천하는 베스트 셀러인데, 내용이 피상적이고 진부하여 의아한 느낌이 든다. 통찰력이 보이지 않는다. 억지로 읽었다.

2021. 3. 31. 17:30

Martin Seligman. 1990. Learned Optimism: How to change your mind and your life. Vintage. 292 pages.

저자는 긍정 심리학 positive psychology 의 주창자로 유명하다. 이책은 긍정 심리학의 대표적인 저작으로서, 생각하는 바가 감정에 영향을 미치고, 이것이 행동에 영향을 미치며, 결국 삶에서 성공과 실패, 궁극적으로는 행복에 영향을 미친다는 명제를 제시한다. 낙관적 사고방식 optimism 을 가진 사람은 역경에 처해도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반면, 비관적 사고방식 pessimism 을 가진 사람은 역경에 처할 때 크게 좌절하고 우울에 빠져 오래도록 다시 일어서지 못한다. 

동물 실험 결과 반복 학습을 통해 무기력한 상태에 빠질 수 있음을 (learned helplessness) 확인했다. 자신이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고 인식하면, 역경에 처할 때 대응하려는 의욕을 상실하고 무기력에 빠져 헤어나지 못한다. 반면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역경에 부딪쳤을 때 이를 극복하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하며, 결국 역경에서 벗어난다.

누구나 살다보면 크고 작은 역경을 경험하게 되는데, 자신에게 닥쳐온 역경을 스스로에게 설명하는 방식이 비관적일수록 무기력 상태를 낳는다. 역경을 자신에게 설명하는 방식에서 세가지 차원을 구분한다. 역경의 원인이 얼마나 영속적인지 permenance, 역경의 범위가 얼마나 포괄적인지 pervasiveness, 역경의 책임을 얼마나 자신에게 귀속시키는지 personal 가 그것이다. 역경의 원인이 특정 시간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영속적이라고 생각할 때, 역경의 원인과 결과가 특정 사건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모든 사안에 광범위하게 해당된다고 생각할 때, 역경을 더 힘들게 느끼며 역경을 극복하는 데에 무력해진다. 역경을 초래한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면 책임이 타인과 환경에 있다고 생각할 때보다 역경을 더 힘들게 받아들인다. 역경을 이렇게 비관적으로 받아들이면, 감정적으로 좌절하고 주저앉게 되어, 역경을 극복하려는 행동으로 나서기 힘들기 때문에 실패의 가능성이 높다.

반면, 낙관주의자는 자신에게 닥쳐온 역경이 시간이 흐르면 지나가 버릴 것이라고 생각하고, 역경이 특정한 상황에 한정된 것이므로 다른 상황에는 적용되지 않으며, 역경을 발생시킨 원인이 환경과 타인에게 있다고 생각하기에 상대적으로 마음의 부담이 덜하다. 따라서 낙관주의자는 역경에 부딛쳐 오래동안 좌절하거나 침체하지 않고, 빠른 시일 내에 툭툭 털고 역경을 극복하려고 대응 방안을 찾으며, 쉽게 일상으로 복귀하므로 성공의 가능성이 높다.

낙관적 사고방식이 비관적 사고방식보다 더 성공적인 결과를 낳는다는 증거는 많다. 일과 직장, 어린이의 성장, 학교, 스포츠, 건강, 정치의 영역에서 긍정적 심리학을 검증하는 연구를 진행하였으며, 실제로 이 명제가 타당함을 증명하였다. 닥쳐온 역경을 낙관적으로 설명하는 사람은 비관적으로 설명하는 사람보다 일에서 더 성공하며, 학업에서 더 높이 성취하며, 운동경기에서 더 많이 승리하며, 더 건강하며, 선거에서 더 많이 당선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자는 긍정적 심리학이 역경을 극복하고 성공으로 이끄는 유일한 원인은 아니며, 비관주의적 사고방식이 진화적 측면에서 볼 때 유용한 측면도 있다고 인정한다. 인간의 삶에서 부딪치는 어려움에 대해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항시 효율적이지는 않다. 비관적 사고방식은 상황의 심각성을 보다 더 정확히 파악하도록 한다. 따라서 위험을 실제보다 가볍게 평가할 경우 희생이 큰 상황에서는 낙관적 사고방식보다 비관적 사고방식이 생존에 더 도움이 된다. 상황을 정확히 인식해야 하는 과학자에게도 긍정적 측면을 과대평가하는 낙관적 사고방식보다는 심하지 않은 정도의 비관적 사고방식이 더 도움이 된다.

저자는 비관주의적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을 낙관주의적 사고방식으로 훈련을 통해 개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ABCDE 모델이라고 명명하였다. Adversity - Beliefs - Consequences - Dispute - Energize 의 머리 글자를 딴 것이다. 역경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믿음을, 스스로에게 반박함으로서, 무기력해지려는 감정을 막을 수 있고, 이는 극복을 위한 힘을 얻게 된다. 이러한 사고 훈련을 거듭하게 되면, 사고의 습관이 바뀌게 되어, 결국 역경을 설명하는 방식이 낙관적으로 변한다. 닥쳐온 역경에 대해 자신의 믿음을 반박하는 방식은 세 가지이다. 첫째는, 자신의 생각의 근거가 박약함을 객관적 증거 evidence 를 대면서 반박한다. 둘째는, 그 역경이 내가 생각한 것이 아닌 다른 원인 때문에 발생한 것일 수도 있다고 대안적인 설명 alternatives 을 제시하면서 반박한다. 세째는, 설사 자신이 생각한 원인이 맞다고 해도 큰 맥락에서 보았을 때 내가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큰 일이 아니라고 역경의 함의 implications 를 축소하는 방식으로 반박한다.

역경을 설명하는 방식에서 문화와 종교간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같은 사건을 두고 동독 사람은 서독 사람보다 훨씬 더 비관적으로 해석한다. 저자는 역경을 비관적으로 해석함으로서 무기력한 감정을 낳는 것이 서구의 개인주의 가치관의 소산일 수있다고 지적한다. 다른 문화에서는 역경을 해석하는데에서 신중한 접근을 하는 것이 부정적 감정을 낳지 않을 수도 있다. 문화적 차이에 대해서는 가능성만 매우 간단히 언급한다.

근래에 미국인은 과거보다 우울증의 정도가 두 배 이상 심하다. 이는 미국 사회에서 근래로 올수록 개인주의가 심화된 반면 공동체 의식은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개인을 세상의 중심에 두고, 모든 성취와 실패의 원인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때, 개인은 역경에 취약해지게 된다. 의미있는 삶 meaningful life 이란 자신보다 더 큰 것, 즉 가족, 공동체, 조직, 국가에 자신의 삶의 근거를 둘 때에 찾아온다. 단독의 개인이 삶을 모두 책임져야 하지는 현재 미국인의 삶은 개인에게 너무 큰 부담을 지우며 결국 우울과 삶의 공허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저자는 긍정 심리학의 전도사로 유명하다. 그런데 그의 주장, 즉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면 감정이 바뀌고, 그에따라 행동 방식이 바뀐다는 명제는 논란 거리이다. 사람의 감정은 자신의 생각과 의식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 근래 심리학에 핫 이슈이다. 반복 훈련을 통해서 생각하는 방식을 바꿀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이 얼마나 타당할까? 생각을 바꾸는 훈련을 거듭하면 비관적 성향이 낙관적 성향으로 바뀔까? 이 책은 그의 연구가 단계적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서술하므로, 외관상으로 볼 때 그의 주장은 객관적 연구의 성과로 뒷받침된다. 그러나 많은 심리학의 연구가 그렇듯이, 일부 사례를 통한 검증이 보편적 타당성을 입증하지는 않는다.

나에게 닥친 역경이 구조적 원인 때문이라면, 아무리 나의 역경을 낙관적으로 해석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하려 한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다. 이 책에서 반복해서 드는 예 중에는 보험을 판매하기 위하여 매일 낯선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고 수없이 거절 당해야 하는 보험회사 판매원이 있다. 반복적으로 거절을 당하는 상황에 굴하지 않고 계속 전화를 걸어 스무번 전화를 걸어 한 번의 대면 약속을 받아내고, 대면 약속을 한 예비 고객을 만나서도 최종적으로 보험을 팔기까지 또 숫한 거절을 경험해야 한다. 만일 구조적으로 보험 판매의 환경이 매우 열악하여 스무 번 중 한번이 아니라 백번 중 한번의 대면 약속을 받아내는 확율이라도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좌절하지 않고 계속 전화로 보험 영업을 해야 하는 것일까? 그러한 구조적 상황이라면 전화로 보험 영업하는 것은 노력 낭비라고 비관적이지만 정확한 판단을 내리고 포기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긍정 심리학이 개인의 주체성 initiative 를 강조하는 반면 구조적인 문제에 소홀하게 하고, 상황을 긍정적으로 과대평가하도록 한다는 점은 강점이면서 동시에 약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관적 사고습관이 역경을 부정적으로 해석하여 무기력을 낳고 극복을 어렵게 한다는 그의 발견은 값진 것이다.

2021. 3. 27. 11:50

Kevin Simler and Robin Hanson. 2018. The Elephant in the Brain: Hidden Motives in Everyday Life. Oxford University Press. 313 pages.

저자 중 한명은 컴퓨터 프로그래머고 다른 한명은 경제학자이다. 이들은 자신의 전문분야는 아니지만 일상에서 떠오른 의문에 답을 찾으려고 관련된 연구를 뒤지다가 결국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의 행위에는 왜 그렇게 하는지 이해할 수 없으며 그들이 말하는 목적과 부합하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이는 외적으로 밝히는 목적과 실제로 추구하는 목적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책의 전반부는 사람들이 행위의 실제 동기를 숨기는 이유에 대해 이론적 설명이 제시되며, 후반부는 일상의 다양한 행위들에 대해 숨겨진 실제 동기를 구체적으로 탐색하는 작업이 전개된다. 

인간은 동물 세계의 일부인데, 각자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경쟁을 한다. 제로섬 게임의 이기적 경쟁은 집단의 존속에 해가 되기 때문에, 사회는 규범을 통해 개인의 행위를 통제한다. 한편 개인은 기회가 생길 때마다 이러한 규범을 교묘히 위반하면서 사익을 추구한다. 이기적 의도에서 규범을 위반하는 것을 남에게 들키지 않기 위하여 사람들은 속임수를 쓴다. 남을 속이는 데에서 가장 고도의 수법은 행위하는 당사자 자신에게까지 진실한 의도를 속이는 것이다 (self-deception). 행위하는 당사자에게 무의식 수준에서 추구하는 진실한 의도와 의식의 수준에서 인식하는 행위의 동기가 어긋난다. 무의식의 수준에서 추구하는 행위의 진실한 목적은 물론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행위자 본인은 자신의 행위가 자신의 노골적 이익 추구가 아닌 다른 동기에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자신 및 타인에 대해 자신의 행위를 떳떳하게 정당화할 수 있다. 

개인의 행위는 물론, 사회적 제도에 대해서 숨겨진 동기를 찾는 작업을 전개한다. 신체 행위, 웃음, 대화, 소비, 예술, 자선 행위, 교육, 의료, 종교, 정치의 각각에 대해 장을 달리하여 설명한다.

신체 행위가 발산하는 메시지는 화자가 말하는 메시지보다 진실되다. 사람들은 사회 생활에서 섹스, 지위, 권력을 추구하는데, 신체 행위는 사람들의 실제 의도를 더 잘 드러낸다.

웃음은 사회적으로 위험할 수있는 상황에 대해 그것이 위험하지 않다는 신호를 상대에게 주는 행위이다.

대화는 서로간 유용한 정보를 전달하는 목적 이외에, 대화 상대에 대해 지위를 얻으려 하고 자신의 지위를 과시하는 목적을 품고 있다.

소비는 실용적 목적 이외에 남에게 자신의 지위를 과시하는 목적에 기여한다. conspicuous consumption. 상품 자체에 대한 정보가 아니라 상품을 동반한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 이미지 광고는 lifestyle advertisement or image advertisement 사람들의 지위 과시 욕구를 자극한다.

예술은 예술 자체의 본질적 가치 이외에, 예술가나 예술 작품을 소유한 사람이 비실용적 희생을 감수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비실용적 희생을 감수하는 행위는 그러한 희생을 치를 능력이 있음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사회적 지위 추구 행위이다.

익명의 자선 행위가 전체의 1%에 불과한데서 알 수 있듯이, 자선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지위를 과시하는 행위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자선 행위가 외적으로 표명하는 목적에 실제 얼마나 기여하는지에는 큰 관심이 없다.

교육은 유용한 지식을 전달하는 목적 이외에, 사람들을 선별하는 screening 목적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지식의 습득보다는 자격증을 획득하는 데 관심이 더 크다. 교육은 창의성을 개발하는 제도가 아니다. 교육을 통해 잘 길들여진 순종적인 노동자를 만드는데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

의료 행위는 치료보다는 돌봄을 받는다는 메시지에 더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 미국인이 과잉진료를 하는 이유는 충분히 돌봄을 받았다는 확인을 사회적으로 요구하기 때문이다. 권위있는 여러 연구에 따르면, 비싼 과잉 진료를 받는 경우와 기본적인 진료를 받는 경우간에 건강 수준에 차이가 없다. 미국에서는 돈을 아껴서 가용한 비싼 진료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비난을 사지 않기 위해 높은 비용을 지불하는 데, 이러한 관행은 의료계의 높은 수익에 의해 부추겨지고 있다.

종교의 진실한 목적은 사회적 통합이다. 사람들은 신을 믿기 때문에 종교행위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종교행위에 참여하면서 그 집단이 공유하는 믿음을 받아들이게 된다. 사람들은 종교행위에 참여하면서 우리 집단의 소속을 확인한다. 믿음의 구체적 내용은 중요치 않다. 단지 믿음은 우리 집단과 타 집단을 구분하는 징표로 사용될 뿐이다.

정치는 집단들 간의 경쟁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한 충성을 선거나 기타 정치 참여를 통해 표명한다. 자신이 지지하는 집단이 어떤 정강, 어떤 이념을 추구하는지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관심은 우리 집단과 타집단을 구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개인 이익과 배치되거나, 사회 전체에 위해가 되는  경우에도, 사람들은 자신의 집단에 지지를 표한다. 이는 사람들의 부족주의 tribalism 본능, 즉 소집단에 속하고 싶어하며 타집단을 배제하려는 성향에 기인한다.

이 책은 분석에서 약간 아마추어 냄세가 난다. 흥미 있는 논의도 곳곳에서 보이나, 많은 논의는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저자도 지적하지만, 사람들의 행위의 동기는 복합적이어서, 사적 이익 추구 동기도 있지만 동시에 다른 동기도 섞여있다. 문제는 이러한 상이한 동기가 어떤 비중으로 섞여있느냐는 것일텐에,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동기의 비중은 상이할 것이다. 가볍게 읽어 내릴 수 있는 책이다.

 

 

2021. 3. 7. 21:24

Robert Bates. 2010. Prosperty and Violence: the political economy of development. Norton. 98 pages.

저자는 아프리카 사회를 연구한 인류학자이다. 국가는 기본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기구인데, 국가의 폭력이 서구의 역사에서는 제어될 수 있었던 반면,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에서는 제어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한다. 국가의 폭력이 제어될 때 경제 발전이 가능한 반면, 그렇지 못할 때 빈곤과 비참이 지속된다.

국가가 출현하기 이전에는 가족과 친족이 폭력을 행사하는 단위였다. 가족과 친족의 구성원이 폭력을 당했을 때 사적으로 폭력을 행사하여 복수하고 이는 다시 폭력을 부르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이러한 사회에서 평화는 잠정적 과도기적 현상으로, 때때로 폭력이 분출되는 사이클을 보인다. 마치 화산이 분출과 휴지를 반복하는 사이클을 그리듯이. 이러한 사회에서는 사유재산권이 언제라도 침탈당할 수 있으므로, 사람들은 자본을 투자하고 새로운 기술을 시도하여 생산성을 높이려 하지 않으므로 경제발전이 이루어질 수없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새로운 재배 기술이나 새로운 종자을 시도하려하지 않으며, 상업작물을 재배하는 것을 꺼린다. 왜냐하면 조금 더 높은 생산성을 바라면서 새로운 종자나 재배 기술을 시도했다가 만일 실패하면 생존의 위기에 봉착하기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 검증된 생산성은 낮지만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상업작물을 재배했다가 시장 상황이 악화되어 가격이 폭락하면 생존의 위협에 처하므로 돈은 안되지만 자급자족할 수있는 생산성이 낮은 전통적 농업을 고집한다.

아프리카 부족사회에서 친족이란 예기치 못하는 위험에 대비하는 보험적 성격을 지닌다. 작황이 나쁘거나 외부로부터 공격을 받을 때 친족과 부족은 의지할 수 있는 언턱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지처는 높은 비용을 요구한다.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 없는 친족과 부족 구성원을 위해 나의 노동을 바치고 폭력의 행사에 동원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친족과 부족을 단위로 폭력의 행사가 이루어지는 전통 사회는 외면에서 보이는 것과 달리 실상은 평화롭지 않으며 구성원에게 높은 비용을 요구한다.

집단의 규모가 커지면서 친족과 부족의 범위를 넘어서는 단위인 국가에 폭력의 행사를 위임하는 관행이 출현했다. 국가의 지배자가 중앙에서 폭력을 독점하는 대신에 구성원간 사적인 폭력을 제한함으로서 평화를 가져올 수있다. 지역 엘리뜨에게 사적인 폭력 수단을 포기하는 댓가로 지역의 세금을 징수하는 권한을 나누어 준다거나, 국가의 고위직을 부여하여 국가나 지역의 통치에 동참하게 하는 등의 방법으로 사적인 폭력을 중앙으로 집중시켰다.

문제는 국가의 지배자가 폭력을 중앙에 집중하여 독점적으로 행사하기 위해서는 큰 군대가 필요한데, 이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높은 비용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이다. 지배자는 자신의 영지에서 나오는 소득에 더하여 지주와 상공인에게 세금을 징수하여 이 비용을 충당하려 하는데, 지주에 대한 세금은 지역 엘리트와의 관계 때문에 고율로 착취하기 어렵다. 상공인에게 높은 세금을 징수하기도 어려운데, 왜냐하면 상공인에게 높은 세금을 요구하면 그들은 자신의 자본과 기술을 가지고 다른 나라로 떠날 것이기 때문이다.

영국은 이 딜레마를 가장 먼저 해결한 나라이다. 왕이 자신의 통치권한의 일부를 지주와 상공인에게 위임하는 대신에, 그들로부터 재정적 협조를 이끌어 낸 것이다. 영국의 의회는 국가의 재정을 통제하는 권한을 가짐으로, 왕이 함부로 세금을 부과하거나 돈을 쓰는 것을 제어한다. 왕의 행위를 의회가 통제하기 때문에 국민의 사유재산권은 왕의 침탈로 부터 보호된다. 자신의 재산과 노력의 성과가 보호된다는 보장이 있기에, 영국은 유럽의 다른 나라보다 먼저 상공업이 발달했으며, 영국은 이웃나라와의 군사적 경쟁에 필요한 군비를 민간 자본으로부터 장기 저리로 조달할 수 있었다.

제 3세계의 개발도상국들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이 힘이 빠진 것을 기화로 독립을 얻었다. 이들 나라에서 폭력은 부족의 휘하에 장악되어 있으며, 국가가 폭력을 중앙에서 독점하지 못하기 때문에, 부족들 사이에 폭력을 주고 받는 악순환이 지속되었다. 이들 나라의 지배자는 폭력을 행사하기 위한 군대를 유지하고 지역 엘리트를 제어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국민으로부터 조달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의 원조 자금과 이권으로 융통한다. 이들은 유럽과 달리 지배자가 자신의 통치권한의 일부를 국민의 대표나 지역 엘리트에게 위임하는 댓가로 재정적 협조를 이끌어내지 않으므로, 국민과 지역 엘리트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으며 일방적 권위주의적으로 권력을 행사한다.

이들 나라에서는 지배자가 언제 자신의 재산과 노력의 성과를 뺏을지 알 수 없으므로 사람들은 생산성 향상을 위하여 노력을 투입하지 않으며 경제발전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요컨대 개발도상국의 발전에 도움이 되라고 주는 선진국의 경제원조는 개발도상국에게 독이 되는 것이다. 정치 민주화나 경제개발은 국가의 지배자가 국민에게 자신의 통치 권한을 위임하고, 지배자의 뜻에 따른 자의적 폭력을 제한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었을 때에만 가능한데, 선진국의 경제원조는 바로 이러한 제도가 발전할 수있는 기반을 없애 버리기 때문이다.

저자는 아프리카 사회의 현재의 정치경제 상황과 선진국의 정치경제의 역사를 대비함으로서, 국가의 정치경제에 대한 통찰력을 제시한다. 국가는 폭력을 행사하는 기구이며, 통치자의 자의적 폭력을 대의 기구를 통해 제어하는 것이 경제성장의 열쇄라는 점을 강조한다. 물론 국가의 폭력으로부터 사유재산이 보호된다고 해도, 왜 어떤 나라에서는 기술 혁신과 생산성 향상이 더 활발한지에 대해서는 답을 주지 않지만, 경제성장에 필요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을 확인시켜준다. 평이하게 이야기를 술술 풀어 쓴 것 같지만 많은 자료를 소화하여 만들어 낸 좋은 에세이이다.

2021. 3. 3. 17:21

Joel Mokyr. 2002. The Gifts of Athena: Historical orgins of the knowledge economy. Princeton University Press. 297 pages.

저자는 영국의 산업혁명을 연구한 경제사학자이다. 이 책은 이론적 지식이 서구의 산업혁명과 이후의 경제발전에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연구한 학술서이다. 이론적 지식과 실용적 기술의 관계,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성공하는데 기여한 지식의 역할, 공장제 생산의 발전, 보건 지식이 19세기 말 여성의 가사노동에 미친 영향, 기술 혁신에 대한 정치사회적 반발, 경제 성장에 기여하는 지식과 제도, 등을 각 장에서 독립적으로 다룬다.

서구 유럽 그 중에서도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성공한 원인은 새로운 기술을 뒷받침하는 이론적 지식이 따랐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이 왜 작동하는지에 대한 이론적 이해가 뒤따르지 않으면, 그 기술은 연관 분야의 기술 개발로 확산되지 않으며, 관련 업계나 일반 사람들의 호응을 얻기 어렵다. 새로운 기술이 나타나면 항시 이에 대한 반발이 있는데, 이론적 이해가 없는 새로운 기술은 이러한 반발을 극복하고 확장되기 어렵다. 중국이나 이슬람과 달리 유럽에서 새로운 기술이 계속 연이어 발전할 수있었던 것은 수학, 물리학, 화학 등의 자연과학 지식이 기술 개발과 앞서거나 뒷서거니 하며 발전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과 지식은 개발 못지 않게 접근이 얼마나 용이한지가 관건이다. 서구 유럽은 새로운 지식에 접근을 용이하게 하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기술과 지식은 책으로 정리되어 광범위하게 유통되었으며, 기술자와 지식인들이 참여하는 모임과 협회가 무수히 많아서 서로 밀접히 소통하였다. 18~19세기에 기술과 지식을 요약한 백과사전이 많이 발간되고 유통되었다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지식에 대해서는 비밀주의보다 자신의 발견을 공개하여 명예를 얻는 관행이 유럽 전역에 널리 퍼져 있었다. 기술의 특허제도는 새로운 기술을 널리 확산시키는데 기여했다.

기술과 지식의 관계에 따라 산업혁명을 세 시기로 구분한다. 첫번째는 1770년에서 1850년까지로 이 시기에는 기술자의 시행착오가 기술 개발을 주도하던 시기이다. 1860년에서 1910년까지는 이론적 지식과 실용적 기술이 밀접히 서로 연관되어 기술 개발이 이루어지던 시기이다. 1910년대 이후에는 이론적 지식이 선도하여 실용적 기술 개발을 견인한 시기이다.  근래로 올수록 이론적 지식이 기술 개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 높아진다. 예컨대 핵 기술이나 화학물의 개발은 이론적 지식 없이 기술자의 시행착오만으로는 성공하기 어렵다.

산업 혁명이 공장제 생산을 발달시킨 원인 중에는 생산에 필요한 기술과 지식의 폭과 깊이가 깊어진 것도 있다. 생산에 필요한 자본의 규모가 높아진 것, 노동자와 노동의 질을 관리해야 할 필요성, 규모의 경제, 등을 대표적인 공장제 생산의 원인으로 든다. 이에 더하여, 개인이나 가정과 같은 소규모 생산단위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생산에 필요한 기술과 지식의 양이 증가했을 때 공장제 생산은 필연적이다. 대규모 공장에서는 기술과 지식의 분업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한다.

19세기 중반에 들어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현저히 떨어지며 대부분이 전업주부가 되었다. 이는 이 시기에 보건 지식이 발전하면서 가정에서 청결과 위생 활동에 관심이 높아진 것이 원인이다. 병원균에 대한 지식이 보급되면서 건강을 지키기 위해 가정에서 청결과 위생을 과도할 정도로 강조하였기에, 여성들이 가사 노동에 전념하게 된 것이다. 20세기 중반에 들어 병의 기제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고 질병의 위험이 현저히 낮아지면서, 가정에서 청결과 위생에 대한 집착이 완화되었고, 기혼 여성들이 경제활동 참여를 늘리게 되었다.

 혁신에 대한 사회적 반발은 어느 사회에나 일반적 현상이다. 혁신은 기존 기술과 체제에 바탕을 둔 기득이권을 뒤집어 엎기 때문이다. 혁신으로 인해 이익을 얻는 사람들은 시간적 사회적으로 넓게 퍼져 있어 조직화가 어려운 반면, 혁신으로 인해 손해를 보는 사람은 소수에게 집중해 있으므로 이들은 혁신에 반발하여 조직적으로 저항한다. 혁신의 수용이 시장에 맡겨지는지 아니면 정치적으로 해결되는지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 영국의 산업혁명 시기에 정부가 혁신의 편에서 반발을 진압하는데 앞장섰으며, 지주계급도 혁신의 이익을 나누어가질 수 있었기에 사회적으로 혁신이 빠르게 수용될 수 있었다.

어느 나라도 혁신의 선두에 오래 있을 수없다. 기존의 기술과 체제를 새로운 혁신이 대체하면 새로운 기득권 집단이 만들어지고, 이들이 이후의 혁신을 반대하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19세기 중반 이후 기술발전의 동력이 약화된 이유는, 산업혁명에 일찌기 성공하면서 19세기 후반의 기술발전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가 사회적으로 지배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구 사회 전체로 볼 때 혁신의 동력이 꺼지지 않고 계속 지속되었다. 서구 사회는 여러 나라로 쪼개져 있으므로, 한 나라에서 혁신이 거부되면 경쟁하는 이웃 나라에서 혁신을 수용했기 때문이다. 19세기 중반 이후에는 혁신의 동력이 독일과 미국으로 이전하였다.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생산성을 높여야 하고, 이는 기술혁신으로만 가능하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거나 아니면 다른 나라에서 발전한 기술을 도입해야 한다. 기술혁신을 촉진하는 제도적 문화적 환경을 키워야 한다. 다양성을 허용하며, 개방적이며, 혁신에 대한 사회적 보상 장치가 마련되며, 기술혁신으로 발생하는 패자를 포용하는 사회보장 제도 등이 그것이다. 새로운 기술이란 다양한 것의 재조합 recombination 을 통해 탄생하기 때문에, 다양성과 개방성이 중요하다.

이 책은 단일 주제로 관통하지만 엄청나게 다양한 사례들을 인용하기에 논의를 따라가는 것이 쉽지 않다. 장을 좀더 잘게 구분하여 논의를 정리한다면 독자에게 훨씬 친절했을텐데. 여하간 내용이 풍부한 대단한 책이다.

2021. 2. 26. 17:37

Charles Goodhart and Manoj Pradhan. 2020. The Great Demographic Reversal: Ageing societies, waning inequality, and inflation revival. Palgrave Macmillan. 218 pages. 

저자는 영국의 경제학자들로, 이 책은 선진국에서 인구구조의 변화로 인해 미래의 경제가 지금까지와 크게 다를 것이라고 예측한다. 미국은 제2차 대전이래 1970년대까지 경제활동연령이 증가하면서 경제가 비약적으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 베이붐 세대가 은퇴 연령에 접어들고 저축과 투자가 감소하며 경제성장이 둔화하는 시기에 접어들었다.

경제활동인구가 젊은 시기에는 생산을 소비보다 많이 하므로 경제 전체로 볼 때 저축이 많으며 이는 투자로 이어져 경제성장을 견인한다. 반면 노령화할수록 생산은 줄고 내구재 소비도 줄지만 의료 소비가 늘어난다. 고령층의 치매는 보살피는 비용은 많이 들지만 일찍 죽지 않는 병이므로 수명이 증가할 수록 사회적 부담은 크게 높아진다.

세계화로 중국의 인구가 노동력에 편입되면서 선진국은 그동안 노동비용을 높이지 않고 인플레를 유발하지 않으면서 경제성장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 중국에서 새로이 창출되는 노동력 자원이 줄어들면, 선진국의 인구 노령화는 노동력 부족현상을 수반하고, 이는 임금을 높일 것이며 전반적으로 인플레를 야기할 것이다. 경제 전체로 볼 때 생산은 감소하는데 수명 상승으로 노인의 소비는 증가하기 때문에 인플레는 피할 수 없다.

소비보다 저축이 많았던 지난 수십년 동안 낮은 이자율이 유지되었다. 이러한 높은 저축률은 중국에서 가능했으며, 선진국에서도 노동인구가 젊어서 소비보다 생산을 많이 하였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중국에서 인구 노령화가 빠르게 전개되고 있기에 과거와 같은 높은 저축률은 기대하기 어렵다. 선진국의 인구 노령화는 저축률을 떨어뜨리므로, 결국 전 세계로 볼 때 과거와 같이 자본이 남아도는 현상은 사라지고 이자율이 상승할 것이다. 

은퇴자에게 매우 후하게 설계되어있는 현재의 연금 구조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결국 노동자들의 은퇴연령을 높여야 하며, 연금의 지급률을 낮추어야 한다. 정부가 재정적자로 연금의 부족을 메우는데에는 한계가 있으며, 특히 앞으로 이자율이 올라갈 것이기 때문에, 지금과 같이 큰 규모의 재정적자를 매년 이어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일본은 지난 수십년간 인구 노령화가 심하게 진행되었지만 이자율은 낮았으며 디플레를 경험하였다. 이는 저자가 선진국의 인구 노령화가 가져올 변화와 반대로 전개된 것이다. 그 이유는 일본은 노령화에도 불구하고 고령인구의 경제활동참가율이 높고 높은 저축율을 계속 유지했으며, 일본의 자본이 중국 등 개발도상국으로 진출하여 생산한 물건을 수입하면서 물가를 낮추었다. 일본은 인구 노령화로 노동력 부족현상에 직면했음에도 임금 상승을 억제하는 정책이 유효했는데, 이는 그동안 비경제활동인구로 잠자고 있던 여성과 고령층의 노동력을 노동시장으로 끌어내었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일본과 같이 고령층의 높은 경제활동참가율에 도달하기 어려우며 전반적으로 저축율이 낮기때문에, 인구가 고령화하면 일본과 달리 이자율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중국에서 앞으로 새로 창출되는 저임금 노동력 자원이 고갈된다면, 과거에 중국이 그랬듯이 인도나 아프리카의 잠재 노동력을 활용하여 선진국의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면 되지 않겠는가 하는 반론에 대해 저자는 회의적이다. 인도는 민주주의 체제의 행정적 비효율이 매우 높기에 중국과 달리 효율적으로 노동력을 동원하는 것이 어려우며, 아프리카는 많은 나라로 쪼개어져 있는데다 인적 자원의 수준이 매우 낮기 때문에 효율적인 노동력으로 동원하기 어렵다.

선진국은 정치적 부담때문에 개발도상국 사람의 이민을 받아들여 노동력 부족 현상을 해소하는 것이 어려우며, 세계화로 인해 피해를 보는 내국인 노동자들의 반발이 거세기 때문에, 개발도상국에서 생산한 완제품을 수입하는 것이 과거와 같이 활발하기 어렵다. 노인 돌봄 서비스의 생산성 향상 속도는 매우 느리며, 로보트로 대체하기 힘든 감정노동이기 때문에, 노인 돌봄 서비스의 수요가 증가하는데 일할 사람이 부족하면 가격이 올라갈 수 밖에 없다.

요약하자면, 저자는 선진국이 앞으로 이자율 상승, 임금 상승, 물가 상승, 투자와 생산 감소, 경제 침체 내지 후퇴의 길을 걸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러한 길을 피하려면 정치적으로 어려운 결정이겠지만, 이민자를 받아들여 노인의 간병을 맡게 하며, 연금 개시 연령을 높여서 고령층의 경제활동참여율을 높여야 한다. 가장 기본적인 해결책은 물론, 기술개발을 통해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생산성이 향상되지 않는다면 노동과 자본의 투입이 줄어드는만큼 경제가 축소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들의 예측에 의문이 들었다. 하나는, 앞으로 선진국에서 노동력 부족이 심화될 것이라는 예측에 의심이 든다. 치매 노인의 인구가 증가하여 노인의 간병 수요가 획기적으로 늘면, 이를 담당할 외국인 노동력이 대규모로 수입될 것으로 예측된다. 또한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대인서비스를 제외한 다양한 서비스들이 디지털화되면서 효율성이 높아지고 서비스 업무의 일부는 개발도상국으로 이전할 것이기에 앞으로 선진국에서 노동력 부족현상이 심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선진국에서 노동력 부족 때문에 임금이 크게 오르지는 않겠지만, 세계화의 피해를 본 노동계층의 반발이 심각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보상이 더 돌아가도록 하는 정책이 추진될 것이다. 최근 바이든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시간당 최저 임금을 15달러로 올리고 아동수당을 지급하는 정책이 추진되고 있는데, 이는 노동력 부족 때문이 아니라 노동계층의 반발을 완화하기 위한 정치적인 조치이다. 

두번째는, 선진국의 인구가 고령화하여 저축율이 떨어진다고 해도, 중국 등의 후발국의 저축율은 상당기간 동안 높게 유지될 것이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자본이 부족해져 이자율이 올라가지는 않을 것이다. 선진국은 저축이 떨어지지만 투자도 함께 감소할 것이며, 연금을 받는 노인 인구가 늘어나면 어쩔 수 없이 연금 급여 수준을 낮출 것이기 때문에 선진국은 물론 전세계적으로 볼 때 자본의 심각한 부족현상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셋째는 인도나 아프리카는 각자 나름의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에 세계 노동시장에 새로운 노동을 공급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저자의 진단에 문제가 있다. 중국이 1980년에 개방할 때에 사회주의 체제로 인한 문제가 많았음에도 세계 경제에 빠른 속도로 편입했듯이, 중국이 국내 경제로 중심축을 이동하면, 인도가 바톤을 이어받아 내부의 문제를 빠른 속도로 개선하면서 세계 경제에 저임금 노동력을 공급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중국은 했는데 인도는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중국이건 인도건 그들은 나름의 문제가 발목을 잡았기에 지금까지 개발도상국에 머물렀던 것이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대부분 틀리지만, 생각할 수있는 거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경제연구소의 보고서와 비슷하게 표와 그래프가 많으며, 반복이 심하고 전문용어를 쓰면서 서술이 매우 건조하다. 별로 통찰력을 제공하는 책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