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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2. 22. 20:28

Sonia Sotomayor. 2013. My Beloved World. Vintage Books. 385 pages.

미국의 연방 대법관인 저자가 자신의 성장과정을 이야기 한 자서전이다. 버락 오바마 정부 때 히스패닉으로는 최초로 연방 대법관에 임명된 저자가 자신이 어떻게 성장하여 오늘의 자리에 이르게 됬는지 이야기한다. 뒤에 오는 사람에게 꿈을 주기 위한 목적에서, 어떻게 나라는 사람이 만들어지고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솔직히 기술한다고 서문에서 쓴다.

첫번째 장면은 8살에 당뇨병 진단을 받고 인슐린 주사를 스스로에게 놓는 소동에서부터 시작한다. 선천성 소아 당뇨라는 드문 병으로 몸 속에서 인슐린이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에, 그녀는 일생동안 매일 그날분의 인슐린 주사를 스스로에게 놓는 행위를  하루를 시작하는 첫번째 일로 한다. 이는 그녀의 일생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일찍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항시 함께 하기에, 인생의 순간들을 최대한 살아야 한다는 강박적 의식을 갖게 되며, 주위의 영향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를 챙기는 독립성을 일찍부터 체득한다.

그녀는 뉴욕 브롱스의 푸에르토리코 이민자의 대가족 환경에서 성장한다. 그녀의 아버지는 어릴 때 알콜중독으로 죽고, 어머니와 할머니가 그녀의 삶의 기둥이며 일생 정신적 지주가 된다. 할머니의 사랑 속에서 인간의 온정을 배우며, 독립적인 어머니에게서 강인함을 물려받는다. 그녀의 어머니는 푸에르토리코에서 어릴 때 부모를 여의고 언니의 보호로 성장했다. 이차대전 때 여성 군사활동단에 자원하여 뉴욕에 발을 디디고, 이후 간호조무사로 취직하여 홀로 두자녀를 키우며 일생 일을 놓지 않았다. 저자가 초등학교 때인가 남편이 죽은 후 뒤늦게 대학을 다니며 간호사 자격을 땄다. 홀로 자녀를 키우며 먹고 살기 위해서는 간호조무사의 수입으로 안된다는 것을 깨닫고 간호사가 되기로 결심하여 이를 실현한 강인한 여성이다.

저자가 법조인이 되겠다는 꿈의 시작은 어릴 때 티브이에서 페리메이슨 변호사가 나오는 탐정 드라마에 혹해서였다. 미래에 정의를 구현하는 법조인을 꿈꾸었다. 고등학교 때 교내 탐정 동아리 활동으로 한 논쟁적 토론 연습에서 두각을 보였다. 대학에 입학해서는 푸에르토리코인의 법적 권리를 옹호하는 단체에 열성 멤버로 참여하며, 법학 대학원을 졸업하고는 모두들 돈 잘버는 법률회사에 들어갈 때, 그녀는 특이하게도 검사로 법의 최전선에서 좌충우돌하는 경력을 택했다. 판사가 되기 위한 자질을 갖추기 위해 상행위 분야와 민사 사건에 대한 경험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뉴욕의 조그만 법률회사에 들어갔고, 마침내 뉴욕주 상원의원 모이니핸의 지명을 받아 뉴욕의 연방 판사가 되었다. 그녀는 의식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일생 꿈인 판사가 되는 길을 어렸을 때부터 치밀하게 준비하며 한걸음씩 다져간 것이다. 중간에 만난 사람들을 모두 그녀의 판사로 가는 길을 응원하는 우군으로 만들어서, 연방 판사로, 이후 대법관으로 지명되는데 힘이 되어주었다.

그녀는 여장부의 기질을 타고 났다. 어렸을 때부터 여성스럽게 꾸미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대신 사람들과 어울리고 함께 일을 도모하는 것을 좋아했다. 책의 여러곳에서 몇번이나, 그녀는 자신이 주위의 사람으로부터, 또 새로운 환경으로부터 배우는 것을 쉬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자신보다 더 똑똑한 사람을 만나기도 했고, 자신의 배경을 넘어서는 새로운 환경과 도전에 여러번 처하였지만, 그녀는 한번 마음먹은 것은 끝까지 파고들어 이해하려고 하는 강인함을 보였다. 새로운 도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무언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새로 만나는 사람과 환경으로부터 배움으로서 자신을 한단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드는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사람의 말을 귀기울여 듣고 상대의 입장에 서볼 수있는 능력은 그녀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녀는 이러한 자질을 한편으로는 할머니가 주변 사람들에게 보인 포용력과 이해심으로부터 물려받았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고등학교 시절 동아리의 토론 활동에서 익혔다고 말한다. 

그녀는 자신이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다. 한단계씩 성공의 계단을 올라가면서 잘사는 사람들의 삶을 엿볼 기회를 가졌을 때, 한편은 자신의 성장 배경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세련된 생활에 흥미있어 했지만, 다른 한편 그녀는 자신이 중류층의 물질적 안락함에 인생의 목표를 두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사명감과 남에 대한 깊은 이해는 그녀가 자신의 삶을 성실성(integrity), 공정성(fairness), 남의 인격을 존중하는 자세라는 기본 가치에 따라 살도록 하는 바탕이 되었다. 그녀는 원칙주의자이기 보다는 상황에 맞게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는 실용주의자이다. 

그녀는 브롱스의 가난한 동네의 고등학교에서 프린스턴 대학의 입학 통지서를 받았다. 예일대 법학대학원에 들어가고 이후 공직으로 진출하는데에서, 히스패닉계 소수자로서 선구자의 길을 걷는다. 그녀는 민권운동의 성과로 만들어진 소수자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 program)의 수혜자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하여 자신의 자질을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받았으며, 이는 그녀가 한단계 올라가서 좀 지나면 두각을 보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녀는 학부를 최우수 학생의 영예를 안고 졸업하며, 검사로 빠른 시일에 두각을 보이며, 삼십대에 연방법원판사가 되고, 마침내 미국의 권력 서열의 정점인 연방대법권으로 지명되는 놀라운 성과로 나타난다.

그녀는 고등학교 때 만난 아일랜드계 남학생과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한다. 그녀의 남편은 뉴욕대를 졸업하고 프린스턴대 대학원에 들어와 함께 지냈으며 의사가 되었다. 소토마이어가 검사로 일하며 일에 전적으로 몰두하고, 주말부부 생활을 하면서 감정이 소원해져 결국 이혼에 이르게 된다. 그녀의 남편은 그녀가 누구의 도움도 필요로 하지 않는 독립성의 소유자라는 것에 소외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녀가 자신보다 잘나가고 강인한 것에 위축된 것이다. 소토마이어는 서로에게 의지하는 존재이기보다 각자 자신의 길을 꾿꾿이 가면서 함께 사는 부부관계를 기대한다고 말하며 그녀의 남편과 생각을 달리한다. 그녀가 당뇨병 때문에 아이를 낳기 힘들다는 것도 부부관계에 틈을 만들었을 것이다. 자신의 삶의 유한성에 대한 의식이 그녀를 남에게 감정적 틈을 보이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녀는 적극적으로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을 즐기지만, 책의 후반부에서 자신은 자신의 감정을 자신이 오로지 보듬고 남에게 드러내지 않는 성질을 고쳐야 한다고 고백하며, 이를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녀의 성공 요인은 강인성, 끊임없는 노력, 주위로부터 항시 배우려고 하는 겸허함이다. 그녀의 할머니의 사랑이 일생 그녀에게 보이지 않는 보호막으로 작용한다. 자신의 성장과정을 솔직하게 이야기 하면서 독자에게 어떻게 오늘날의 내가 되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 책을 읽으면 남의 일생을 엿본다는 호기심과, 사람은 이렇게 만들어지는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는다. 사회적 신체적 약자가 엄청난 장애를 극복하고 승리한다는 인간승리의 이야기이다. 일생동안 매일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하는 선천적 장애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든 사람이다.

전문 작가의 도움을 받아서 그런지, 문장이 좋고 적절한 어휘를 구사하여 읽는 것 자체가 즐겁다. 이야기가 다음에 어떻게 전개되는지 궁금하여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마력이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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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2. 17. 16:16

Branko Milanovic. 2019. Capitalism, Alone: The Future of the System that Rules the World. Belknap Press. 235 pages.

소득 불평등 문제의 전문가인 저자가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자본주의의 문제점과 미래를 조망한 책이다. 1991년 소련의 몰락으로 공산주의 실험은 실패로 끝났으며, 자본주의 체제만이 유일한 대안으로 남았다. 저자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크게 두 범주로 구분한다. 하나는 서구의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이며, 다른 하나는 중국과 기타 권위주의 국가들에서 보이는 정치적 자본주의이다.

자본주의는 사적으로 소유하는 생산수단에 의해 대부분의 생산이 이루어지며, 자본은 형식적으로 자유로운 임금노동자를 고용하혀 생산하며, 시장기구라는 분권화된 장치에 의해 생산과 소비가 조정되는 경제체제이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대부분의 투자 결정은 사기업 혹은 개인 사업가에 의해 이루어진다.  

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다시 세개의 유형으로 구분되는데, 고전적 자본주의, 사회민주주의적 자본주의(social-democratic capitalism), 자유주의적 성과주의적 자본주의(liberal meritocratic capitalism)가 그것이다. 고전적 자본주의는 1차 세계대전 이전에 서구를 지배하던 자본주의로, 총생산에서 자본가가 가져가는 몫이 매우 크며, 자본가는 소득의 대부분을 자본의 이식에서부터 얻으며, 자본가의 지위가 세대간 세습되던 체제이다. 한편 사회민주주의적 자본주의는 20세기 후반 서구의 복지국가 모델로, 고율의 세금을 통해 복지와 소득 재분배 정책을 추진하여 소득 집중도가 덜하고, 총생산에서 노동 소득의 몫이 제법 크며, 세대간 계급이동의 가능성을 어느 정도 허용하는 체제이다. 

자유주의적 성과주의 자본주의는 자본가와 고급 기술 전문가가 결합된 형태로 존재한다. 이 체제에서 고급 전문가는 노동 소득도 높지만 또한 상당한 규모의 자본 소득을 누린다. 세대간 자본이전 못지 않게 고급 교육을 통한 능력의 이전으로 지위를 계승한다. 고전적 자본주의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폐쇄된 자본가/전문가 집단 내에서만 결혼하고 지위를 독점한다. 이 체제에서 자본가/전문가들은 돈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포섭하여 자신의 지위가 위협받지 않고 계속 유지되도록 정치적 통제를 행사한다. 이 체제는 미국에서 가장 뚜렷하며, 서구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도 유사한 모습이 발견된다.

정치적 자본주의(political capitalism)는 시장 기구의 자원배분 역할을 기본적으로 허용하지만, 정부의 유능한 관료들이 주도하여 경제를 중앙집중적으로 통제하며, 정치가 자본에 복속되지 않고 독립을 유지하며, 법에 의한 공정한 지배보다는 재량적으로 법을 적용하여 이권을 차등적으로 나누어준다. 중앙의 유능한 관료에 의해 신속하게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므로 경제가 성숙하기 이전 단계에는 높은 경영 효율을 보인다. 재량적으로 법을 적용하므로 부패를 피할 수없으며, 경제가 성장하면서 새로운 기술과 창의가 필요한 단계에서는 중앙집중식 경영이 효율적이지 않다. 이 체제는 국민의 요구에 반응하는 정치 과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대신 경제성장의 성과를 통해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방식으로 체제의 정당성을 획득한다. 만일 이 체제에서 경제 성장이 부진할 경우 정권의 정당성을 상실하여 정치적으로 혼란해질 수 있다.  이 체제는 중국에서 가장 뚜렷한데, 과거 한국이나 대만, 싱가포르가 이러한 단계를 거쳤으며, 전세계 개발도상국의 권위주의 정권에서도 흔히 보인다.

1980년대 이래 세계화와 정보통신기술의 발전 및, 사유재산을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가 제삼세계에 도입되면서 global value chaine 즉 국제분업 생산 체제가 들어섰다. 국제분업 생산체제는 제삼세계 사람들에게 엄청난 고용과 소득을 가져다주면서 세계의 빈곤과 국제적 소득 불평등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결과를 낳았다. 1차대전 전에도 국제적인 생산분업이 전개되었는데, 그때에는 제국주의의 총칼로 식민지에 진출한 선진국 자본을 보호하였다. 제국주의적 국제분업은 식민지 사람들에게 이익을 가져다 주기보다 그들을 착취하는 형태로 이루어졌으므로, 그당시 세계화는 식민지의 빈곤이나 국제적 불평등 수준을 완화시키지 못했다.  

저자는 자유주의적 업적주의적 자본주의의 미래를 낙관하지 않는다. 엘리트가 경제와 정치를 독점하면서 소득 불평등이 높아지고 일반 대중의 불만이 높아지며, 대중의 정치적 소외와 고용 불안정은 근래에 서구 세계 전반에 대중영합주의 정치인의 등장을 낳았다. 이러한 체제는 20세기 초반 식민지의 이권을 둘러싸고 서구 유럽 국가들간에 전쟁이 일어났듯이 앞으로 선진 국가들간에 자본의 이익율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갈등 나아가 전쟁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없다. 과거 두차례의 전쟁을 통해 유럽이 몰락하고 미국으로 지배권이 넘어갔듯이, 앞으로 핵전쟁이 일어 난다면 서구의 지배가 종식하고 현재의 개발도상국이 부상할 가능성도 있다.

저자는 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중국의 정치적 자본주의보다 크게 나을게 없다고 보는 듯하다. 정치적 자본주의는 국민의 소리에 반응하지 않는 비민주적 체제이지만, 국민을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고 부유하게 만드는 일에서 효율성을 발휘한다면, 사실상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서 엘리트가 부와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현 상황보다 도덕적으로 열등하다고 볼 수없기 때문이다. 정치적 자본주의가 재량적으로 법을 집행하기에 부패가 상존하지만,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시각에서 보듯이 부패를 부정적으로만 보아서는 안된다. 시장기구와 중앙 관료의 통제가 병존하는 체제에서는 부패란 재량적인 자원의 배분 행위에 수반되는 요소이다.

후반부에는 세계화의 미래, 사회의 개인화(atomization), 상품화(commodification), 자동화와 고용, 보편 소득(universal income)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언급하는데, 논의가 깊지 않다.

저자가 수년전에 내 놓은 책인 global inequality 는 세계의 불평등 수준을 측정하면서 불평등의 변화상과 미래를 근거와 함께 흥미롭게 보여주었으나, 이 책은 그에 비해 설익은 논의를 전개한다. 저자는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지만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며, 중국의 정치적 자본주의의 효율성을 지적하지만 내재적인 한계 때문에 미래의 대안이 되기 어렵다. 그가 제시한 정치적 자본주의 유형은 개념이 불분명하며 그리 새롭지 않다. 그럼에도 단편적이지만 흥미로운 정치경제학적 통찰력을 곳곳에서 찾는 재미가 있다.

 

2019. 12. 14. 21:09

Carl Sagan. 1980. Cosmos. Ballantine Books. (2013, trade paperback edition). 365 pages.

천문물리학자 칼 사강의 동명의 TV 도큐멘터리와 함께 만들어진 대중 과학서. 고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에라토스테네스가 지구의 둘레를 계산하는 과정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다음으로 지구에서 인간이 출현하게 된 과정에 대해 이야기 하고, 우주에 대한 인간의 지식의 발전 과정을 이야기한다. 프톨레미,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뉴톤의 발견에 관한 이야기가 뒤따른다. 다음으로 달, 금성, 화성, 목성, 토성, 등 태양계의 주요 혹성과 보이저 2 우주 탐사선이 발견한 것을 차례로 이야기한다.

눈을 태양계 밖으로 돌려 우리가 속한 은하계와 은하계를 넘어선 다른 은하계들, 그리고 우주의 생성과 전체 모습을 설명한다. 작은 수소 입자들이 인력이 작용하여 뭉치는데서부터 출발하여 핵 융합이 일어나 별이 되고, 궁극적으로 핵융합의 원료를 다 소진한 다음 수퍼노바의 단계에 이르러 폭발이 일어나 죽을 때까지 별의 일생을 설명한다. 우주 공간에는 수소와 헬륨이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핵융합으로 이보다 무거운 원소들이 별의 내부에서 만들어지고, 이것이 폭발하면서 우주 공간에 수소와 헬륨보다 무거운 원소들이 떠다니게 되었다. 지구와 우리의 몸을 구성하는 원소들은 이러한 별의 재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인력이 작용하여 뭉쳐지는 별의 무게가 태양보다 훨씬 클 경우 별이 폭발하여 우주 공간에 흩어지는 대신 함몰하여 블랙홀이 된다. 지구는 별의 일생에서 중년기를 지나고 있으며, 다른 별들을 통해 지구의 미래를 예상해 본다.

지구 이외의 별에서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지구에서 핵전쟁으로 인류가 멸망할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근래로 오면서 폭력이 줄어들고 다른 문화에 대한 관용이 높아지는 경향은 핵전쟁을 통한 멸망의 가능성을 낮추는 긍정적 신호이다. 우리에게는 오래전 파충류 조상으로 물려받은 감정에 충실하며 공격 본능이 내재하며, 이성적인 사고의 영역은 비교적 최근에 진화한 것이라 우리의 삶을 장악하고 있지 않다.

이 책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인간은 우주의 변두리 구석에서 사는 미미한 존재이며, 인간 문명의 탄생과 사멸은 우주의 전 과정에서 볼 때 짧은 시간에 벌어지는 에피소드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우주가 그렇게 엄청나지만 지구에서 작용하는 물리적 원리를 통해 우주 전체가 움직인다. 저자는 과학적인 사실만이 아니라 문학적인 표현이나 이야기를 지어내는 데에도 많은 노력을 할애한다. 저자의 일생의 작업이 녹아있는 작품이다.  포괄하는 내용이 워낙 방대하고 스케일이 크기 때문에 중후반으로 가면서 피로감이 든다. 우주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는 사정과 완전히 동떨어진 것이기에 현실 적합성을 찾는데 어려움을 느꼈다. 우주에 대한 이야기는 인간의 상상의 범위를 넘어서는 서사이다.

2019. 12. 7. 10:57

Zbigniew Brzezinski. 2012. Strategic Vision: America and the Crisis of Global Power. Basic Books. 202 pages.

카터 대통령의 안보 보좌관을 지낸 저자가 미국과 국제질서의 변화에 대해 조망한 책이다. 크게 세 부문으로 논의를 전개한다. 첫째 세계사의 흐름을 요약하면서 서구 유럽의 영향력이 쇠퇴하는 것을 지적하며, 둘째 1990년 냉전체제가 끝난 이래 미국의 세계 지배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미국이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논의하며, 셋째 미국이 세계를 이끌던 권좌에서 물러나면 앞으로 국제 질서가 어떻게 변화할지 예측한다.

서유럽은 16세기 이래 기술 발전, 산업혁명, 세계 정복의 길을 밟으며 세계를 주도하는 주체가 되었다. 그러나 20세기에 두차례의 전쟁으로 함몰하였으며 미국에게 권좌를 이양하고 물러났다. 현재 서유럽은 국내의 복지에 주력하며 인구 노령화로 힘이 빠진 상태이다. 서유럽 국가들은 EU라는 연합체를 결성했지만 서로 간에 격차와 이견을 좁히지 못하여 일관된 정치 세력이 되지 못하며 일을 추진할 동력을 갖고 있지 않다. 저자는 현재의 서유럽을 도전에 대응하고 변화를 주도할 역동성이 결핍된 맥빠진 존재로 인식하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한편 세계는 20세기 후반에 들어 세계화와 통신기술 미디어의 발달로 물자와 정보와 사람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된 상태로 발전하였다. 과거와 달리 고립된 국가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어느 한 곳에서 일어난 일이나 상황은 세계의 다른 나라에 영향을 끼친다. 그 결과 세계 각국의 국민들은 정치적 의식이 높아지며, 자국 정치의 모순에 반발하는 빈도가 커졌다. 제삼세계에서 교육받은 젊은이들이 늘어나면서 이들 나라의 권위적인 정치체제는 지속적으로 도전을 받고 있다.

미국은 이상주의와 물질적 풍요가 절묘하게 결합하며 크게 성공하였다. 미국은 20세기 중반 이래 유럽을 포함해 세계 사람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부강한 국가로 부상했다. 이차대전 이래 유럽을 보호하는 입장에서 국제 질서를 관리하는 세계의 경찰로 군림했으며, 1991년 공산주의 소련이 붕괴하면서 냉전의 승리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 미국은 내적인 문제와 외적인 도전 속에서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였다. 내적인 문제를 잘 해결하고, 외적으로 변화하는 상황에 적절히 대응한다면 미국의 지도적 위치, 미국의 매력은 앞으로도 한동안 지속될 것이다. 미국의 내적인 문제로는 국가 채무의 증가, 소득 불평등의 확대, 물질주의와 소비지상주의, 탐욕적인 투기에 매몰된 금융시스템,  정치의 극한대립을 든다. 외적인 변화로는 중국과 아시아의 부상, 러시아의 사회적 퇴행과 군사외교적 공격성을 든다. 저자는 미국의 미래에 대해 희망섞인 발언을 하지만, 본인도 미국이 그리 잘 대응할 것이라고 자신하는 것 같지 않다.

미국이 내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자신의 국제적 지위 하락에 대해 반발하게 될 것이다. 중국의 부상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며, 국제무대에서 중국은 미국과 양강 구도를 형성할 것이다. 미국은 중국의 부상하는 환경에 잘 대응하면서 자신의 역할을 조정해 가야 한다. 미국이 세계 질서를 관리하는 역할을 계속 맡는 것이 미국이나 중국 모두에게 득이 된다. 부상하는 중국을 적으로 인식한다면 세계 질서는 약화될 것이며 세계 경제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인도는 인구는 많지만 사회경제적으로 중국보다 훨씬 낙후되어 있으므로, 당분간 세계 질서의 주도자가 되기는 어렵다. 러시아는 내적으로 사회경제적 문제가 큰 것을 외부로 투사하면서, 세계 특히 서유럽에 큰 위협이다.

미국이 세계 질서를 관리하는 역할을 방기한다면 이후 전개될 상황은 무정부 상태, 혼돈 상황이 올 것이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각 지역의 맹주가 이웃나라를 호령하고 굴복시키는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아시아 권에서는 중국과 인도가 그러한 맹주가 될 것이며, 유럽에서는 러시아가 호시탐탐 동유럽과 중앙아시아를 위협하며 복속시키는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서유럽은 자신의 안위만을 챙기며 몇개의 강국이 서로 분열된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미국이 주변 나라를 호령하고, 남미에서는 브라질이 부분적으로 맹주가 될 것이다. 그러한 세계 질서는 결코 평화롭지 않으며, 보호무역주의가 지배하면서 세계 경제도 퇴행하는 상태를 맞을 것이다.

아시아는 문화와 민족이 서로 크게 다르기 때문에 유럽과 같은 경제나 안보 단일체가 되기 어렵다. 아시아의 위상이 커지면서 구성원 간 갈등의 소지도 커진다. 중국과 인도, 중국과 일본, 중국과 타이완, 남한과 북한,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 갈등이 악화될 위험성이 크다. 미국은 아시아권 내의 갈등에 편을 들어서는 안된다. 중도적 위치에서 갈등이 악화되지 않도록 조정하고, 중국의 전횡을 견제하는 균형자로 처신해야 한다. 근래에 미국이 인도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중국을 포위하는 전략을 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 책이 나온지 십년도 안됬지만 미국의 정세는 그가 부정적으로 예측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도날드 트럼프와 미국 인들은 그가 그래서는 안된다고 경고한 바로 그런 것을 하고 있다. 내부의 문제는 계속 악화되며, 미국이 중국을 노골적으로 적대시하는 태도는 악화일로를 걷는다. 그의 예측에 따르면 이러한 미래는 불안정하고 경제적으로 후퇴하는 세계가 될 것이다. 다분히 미국 중심의 세계관을 반영한 시각이다. 중국의 시각에서는 세계의 변화를 다르게 볼 것이다. 미국의 독자를 염두에 두고 미국의 힘이 약화되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미국의 의식있는 지식인의 시각에서 쓴 글이기 때문에, 세계의 변화를 해석하고 예측하는 데에 객관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러나 책의 초반부에서 보이는 그의 역사를 읽는 지혜를 감안한다면, 그의 예측에서 살만한 부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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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hijit V. Banerjee and Esther Duflo. 2011. Poor Economics: a radical rethinking of the way to fighr global poverty. Public Affairs. 273 pages.

올해에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저자가 자신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제삼세계의 빈곤의 실태를 진단하면서 빈곤 퇴치를 향한 새로운 접근을 제안한 혁신적인 책이다. 저자는 경험적인 관찰과 무작위 추출 방식을 사용한 통제된 실험 (Randomized Controlled Trials) 방식을 적용하여 빈곤에 대한 다양한 가설과 정책 방안의 타당성을 검증한다. 연구 결과 유효한 것으로 검증된 방법을 실천한다면 빈곤이 점진적으로 개선될 것이라는 철학을 제시한다. 이는 빈곤 퇴치 문제에 대해 거시경제학적 접근이나 정치경제학적 접근과 같이 거대 담론을 위주로 하는 기존의 경제학 조류와 배치되는 발상이다. 

책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1부에서는 빈곤자의 사적인 생활에 촛점을 맞추어,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으며 왜 그렇게 사는지를 영양 섭취, 건강, 교육, 가족계획의 네 주제에 관해 논의한다. 2부에서는 빈곤자를 대상으로 한 제도 내지는 외부 세계와의 관계 맺기에 관한 내용이다. 위기 관리, 소액 대출제도, 저축 활동, 소규모 자영업, 정부 정책 개입의 다섯 주제에 대해 설명한다. 각 장은 독립적으로 구분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전체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마지막 결론의 장에서 저자의 빈곤퇴치 방법에 대한 철학을 명시적으로 밝히면서 끝낸다.

가난한 사람들은 영양상태가 나쁘다. 그러나 그것은 기본적인 식량을 살 돈이 부족해서만은 아니다. 그들은 돈이 생긴다고 해도 먹을 것을 풍부히하는데 쓰기 보다는 행사 비용이나 조금 더 맛있는 비싼 식품이나 기호품을 사는 데 써버린다. 사회적인 압력 때문에 식품 이외의 것에 적지 않은 돈을 지출하며, 삶의 재미를 위해서 비용이 더 들지만 조금 더 맛있는 식품을 구입한다. 가난한 사람은 영양 상태가 불량하여 노동 생산성이 낮지만, 영양분 풍부하며 값싼 식품을 구입하는 것이 그들의 삶의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영양상태가 좋으면 생산성이 높고 빈곤에서 탈출할 가능성이 높지만, 가난한 사람은 그러한 방안이 실현 가능하다고 보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들의 건강을 개선하는 데에는 안전한 물, 위생시설, 모기장과 같은 예방적인 수단이 효과가 크다. 가난한 사람들은 아플 때 의사를 찾는 것 이외에 전통적인 주술사나 지역의 돌팔이 의사를 찾는 경우가 많다. 의사는 접근하기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들며, 서구의 의술이 작용하는 원리에 무지하며, 서구의 의술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다.  반면 전통적인 주술사나 지역의 돌팔이 의사는 접근이 쉬우며 비용이 적게 먹힌다. 그들은 막연히 치유를 희망하는 마음에 다양한 전통적인 수단에 의지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것들에 대해 신뢰가 큰 것은 아니다. 선진국에서와 달리 시민의 건강을 보호하는 사회의 기반 시설이 부족한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은 자신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기본적인 조치를 각자가 챙겨야 하기 때문에 이것이 제대로 실행되기 어렵다.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건강에 도움이 되는 선택을 유도하는 사회적 넛지(Nudge)가 필요하다.

가난한 나라의 학교에서는 선생이 결근을 자주 하며 가르치는 임무를 소홀히 하여 교육의 질이 형편 없다. 이렇게 교육이 부실한 것은 선생이나 학교의 시설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서일까, 혹은 주민들이 좋은 교육에 대한 필요를 깨닫지 못하여 요구를 하지 않기 때문일까? 자녀가 학교를 제대로 다니면 현물로 보상을 주는 프로그램은 효과가 있는 듯하다. 교육에 대한 필요를 이렇게 물질적인 유인으로라도 만들 필요가 있다. 가난한 나라에서는 공립학교보다 사립학교의 질이 훨씬 좋다. 사립학교에서 엘리트 계층에 대한 교육은 학부모의 기대와 선생들의 관심에 힘입어 웬만큼 이루어진다. 반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공립 학교 교육은 학부모와 선생 양쪽의 부정적인 자기 완성적 예언때문에 실패로 끝난다.  가난한 나라의 학부모들은 자녀가 웬만큼 학교를 오래 다니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난할 수록 자녀를 학교에 열심히 보내려 하지 않는다. 자녀들 또한 자신이 학교 교육을 따라가리라는 자신이 없고 교육이 자신의 미래를 바꾸어 주리라는 믿음이 없기에 학업에 관심을 두지 않고 일찌 감치 학교를 중단한다. 선생들 또한 가난한 집의 자녀에게는 일찌감치 포기하고 가르치는데 성의를 기울이지 않기에 학생들은 쉽게 학업에 관심을 잃어 버리고 중도탈락한다. 학교는 엘리트에 대한 교육만 관심을 갖는데, 이는 과거 식민지 시대에 식민지 관료를 키워내던 교육의 잔재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개선안으로, 저자는 엘리트 교육과 가난한 사람들의 교육이 이원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엘리트에게는 어려운 내용을 가르치더라도 그들이 따라 오지만, 가난한 사람에게는 그들의 장래에 맞는 기본적인 내용을 교육시킨다면 그들도 따라올 것이다.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애를 많이 낳는 것은 여러 자녀 중 누군가가 자신의 노후를 뒷바라지 해주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노후 보장 문제를 가족 내에서가 아니라 사회에서 맡는다면 자녀의 경제적인 효용을 염두에 두고 많이 낳지는 않을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도 피임의 효능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지 않다, 다만 선택을 하지 않을 뿐이다. 여성에게 피임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상황을 만들면, 자녀를 덜 낳는다. 여성은 자녀의 뒷바라지를 온전히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남성보다 작은 수의 애를 낳으려 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삶에서 다양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이들은 펀드 매니저와 흡사하게 다양한 부문에 투자함으로서 위험을 줄이는 전략을 구사한다. 작게 농사를 짓고, 조그만 자영업을 하고, 때때로 임노동자로 일하는 등으로 다양하게 간여한다. 농사에서도 생산성이 높은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거나 특정 작물로 전문화하는 길을 택하지 않는다. 이는 어느 한 분야에 전문화함으로서 축적하는 효율을 포기하는 것인데,  반면 어느 한 부문에 문제가 생겨도 다른 부문을 통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삶에서 심각한 어려움에 봉착하면 이웃에게 도움을 구하는데, 이는 추후에 이웃에게 도움을 되값기 때문에 서로에게 이익이 되고 위험을 피하는 한가지 방책이다.

마이크로 크레딧 운동(소액 대출 운동)은 가난한 나라에서 널리 활성화되어 있다. 이것이 가난한 사람들의 기업가 정신을 자극하고 빈곤에서 벗어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저자의 경험 연구 결과, 이는 가난한 사람들이 소규모의 자영업을 통해 근근히 생계를 유지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만, 큰 사업으로 발전하는 데에는 별반 도움울 주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마이크로 크레딧은 집단 소속원들 상호간 신뢰와 사회적 압력을 이용하여 소액 대출 받은 돈울 정한 일정에 따라 규칙적으로 값는 안정된 시스템을 확립했기 때문에 계속 지속될 수 있는 사업이 되었다. 그러나 큰 사업을 하려면 실패할 가능성을 열어 놓아야 하고 사정에 따라 빌린 돈을 값는 일정이나 조건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있어야 한다. 마이크로 크레딧은 개인 사정에 따라 값지 않는 사례가 나타나면 사업 모델 자체가 붕괴하므로 큰 사업을 지원하는 금융시스템으로는 부적합 하다. 

가난한 사람들도 소액이지만 수시로 저축을 하며 계 등의 방식을 이용해 집단적으로 저축한다. 그러나 큰 돈을 저축하려고 하지 않는다. 저축을 한다는 것은 미래의 계획을 위해 현재의 만족을 포기하는 것인데,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미래에 실현 가능한 계획에 대한 희망이 없기 때문에 엄격하게 자기 통제를 하면서 절약하여 저축을 하려 하지 않는다. 돈이 좀 모이면 써야 할 곳이 나타나 사라지는 과정을 반복하며, 저축이나 보험을 통해 질병이나 사고와 같은 큰 충격에 대비하지 못하기에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구멍가게와 같은 자영업을 많이 하지만, 이러한 사업이 크게 성장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러한 사업은 자본을 더 투입한다고 하여도 생산성이 오르기 힘들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여러 개의 소규모 자영업에 동시에 종사하기도 하는 데, 각 사업의 생산성은 매우 낮다. 따라서 가난한 사람이 영위하는 사업은 아무리 오래 해도 기술이 쌓이거나 전문화의 이익을 거두지 못하며, 사업에 대한 열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들은 자녀가 안정된 공무원이 되는 것을 가장 열망하는 데, 안정된 직업은 삶에 계획성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제공하기때문이다. 안정된 직업에 대한 기대가 있을 때 그들은 자녀 교육에 투자를 하고 생활을 절제하여 저축을 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정부가 부패하기 때문에 가난한 나라에 원조하는 것은 소용이 없다는 주장이나, 국민들은 개선하려는 열망이나 욕구가 없기 때문에 좋은 제도를 도입하여도 무용지물이 되어 버린다는 비관론이 경제개발관련 이론가들 사이에 지배해 있다. 저자는 이러한 거대 담론보다는 비록 규모가 작지만 구체적으로 설계된 제도로 개선을 도모하는 것이 효과가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 이러한 조그만 변화가 쌓인다면 정부도 개선되고 국민들의 의식도 높아지면서 궁극적으로 빈곤에서 탈피할 수있으리라는 조심스런 낙관론을 제시한다. 실제 그들이 실험을 통해 효과가 있다고 검증한 아이디어들이 실행되고 이것이 축적된다면 점진적으로 변화가 나타나리라는 것이다. 

대단히 설득력이 있는 책이다. 상아탑에 앉아 거대담론을 제시하는 경제학자들에 비할 때, 그들은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관찰 하고 실제적인 아이디어를 개발해서 효과를 검증해보고, 왜 기대한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는지를 분석해서 다시 검증하는 작업을 반복하는 끈기를 보인다. 빈곤에 대해 논의는 많이 하지만 무작위로 선정한 표본에 대해 실험집단과 통제 집단으로 나누어 가설의 타당성이나 정책의 효과성을 엄밀히 검증하는 것은 지금까지 본 일이 없다. 이렇게 엄밀하게 유효성을 검증한 결과를 가지고 빈곤 문제의 개선을 시도해야 한다는 발상은 신선하다. 이런 접근법은 느리지만 유효한 개입이며 이것이 쌓이면 빈곤문제가 점차 해결되리라는 낙관론 또한 대단하다. 이는 기존의 경제학 방법론에서 벗어난 혁신적인 접근이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없다면 미국의 유명 사립대의 교수가 이런 작업을 도저히 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과거에 빈곤운동을 하던 경력을 살려 현장에 운동가들의 협조를 등에 업고 이러한 실험을 할 수있었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고, 대단한 책이다. 단숨에 읽고 감동받았다. 그들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을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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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1. 30. 22:36

Randolf M. Nesse and George C. Williams. 1996. Why We Get Sick? Vintage Press. 249 pages.

의학에 진화생물학을 결합한 진화의학 (Evolutionary Medicine) 분야를 전반적으로 소개하는 책으로 의학자와 생물학자가 공동으로 저술하였다. 책의 첫 두 장은 진화와 진화의학 이론을 소개하며, 이후에는 구체적 질병이나 인간의 몸과 기능을 예로 들며 이 이론을 적용하여 설명한다. 진화 의학이 자칫 현재의 질병과 대응 상태를 정당화 하는, 즉 진화의 결과 선택된 것으로 합리화될 것을 우려하여, 저자는 진화의학의 가설의 검증 가능성에 관해 먼저 논의하면서 진화 의학의 과학성을 역설한다. 

인간이 겪는 질병과 이에 대한 대응은 진화적 선택 과정을 통해 전개된다. 감염성 질환, 부상, 독성 물질, 유전적 질환, 노화, 알러지, 암, 성인병, 정신병 등 거의 모든 질병에 대해 설명을 제시한다. 건강한 상태에 대해서도 왜 그러한지를 설명한다. 성과 출산 양육, 장기의 구조와 기능 등이 그것이다.

인간과 병원균의 진화는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확산시키는 것이다. 병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진화론은 유용하다. 예컨대 병원균과 숙주의 관계는 유전자를 확산시키는 병원균의 전략에 따라 다양하다. 모기와 같은 매개체에 의해 감염되는 말라리아와 같은 전염병은 숙주의 생명을 치명적으로 위협하는 증세를 유발하나, 사람들간에 직접 접촉을 통해 감염되는 병원균은 숙주가 활동할 수 있을 정도로만 공격하는 전략을 취한다. 숙주가 죽어도 병원균의 유전자를 퍼뜨리는 데 지장이 없는 전파 경로를 갖는 병원균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숙주에 훨씬 심한 해를 가한다. 병원균이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숙주를 조정하는 것이다. 

우리 몸에 병이 날 때 열이 높아지는 이유는 높은 온도가 병원균의 증식을 억제하기 때문이다. 감염성 병원균과 우리 몸의 방어 체계는 서로 간에 창과 방패와 같은 경쟁을 한다. 방어 체계가 높아지면 그것을 뛰어넘는 병원균 돌연변이가 나타나고, 우리 몸은 다시 이것을 뛰어넘는 변화를 만들어 내면서 우리의 방어 체계는 다중으로 복잡하게 되었다.

어떤 유전 형질은 우리가 젊을 때에는 생존에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작용하나 나이가 들면 생존에 해가 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요산 과다가 그것으로 젊은 나이에는 과다한 요산 분비가 방어력을 높이는 작용을 하나, 나이가 들면 통풍과 같은 부작용을 낳는다. 구석기 시대에는 인간의 수명이 30~40이었으므로 요산의 부작용이 발현될 기회가 거의 없으므로, 이러한 유전적 형질이 진화적으로 선택된 것이다. 기타 유전 병들 또한 과거 수명이 짧을 때에는 해를 끼치지 않고 이익을 주던 형질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생식이 종료되기 이전 젊은 나이에 생존에 도움이 되는 기능이 진화적으로 선택된 반면, 종료된 이후에 해를 끼치건 말건 유전자의 입장에서는 고려할 필요가 없다. 자원과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으므로 생존에 도움이 되는 기능은 후에 댓가를 치러야 하는 경우가 많다. 작용 기제가 복잡할 수록 시간이 지나면 오류가 발생하고 오류가 쌓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도모한 일이 잘 안되었을 때나 사회 위계에서 억압된 위치에 있을 때 우울증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우울증은 그 사람을 무기력하게 하는데, 이는 주위 환경에 대해 수동적으로 적응하는 과정이다. 일이 잘 안되는 상황이고 무조건 수그려야 하는 상황에서 정신적으로 에너지가 넘쳐서 날뛰는 것은 헛되게 에너지를 낭비하는 길일 것이다. 일이 잘 풀리고 지위가 높아질 경우 우울증은 저절로 사라진다.

자연 세계의 생물체는 다양한 종류의 독성물질을 분비하여 자신을 방어한다. 식물은 동물과 달리 포식자로부터 도망 칠 수없으므로 먹히지 않는 수단으로 독성 물질을 분비하는 경우가 많다. 임산부가 임신 초기에 입덧을 하는 이유는 독성물질로부터 태아를 보호하기 위한 방법으로 선택되었을 수 있다. 배아 발달의 초기에 독성 물질에 특히 취약하기 때문에 음식을 가려 먹어야 할 필요성이 매우 크다.

우리 몸의 기관이 오래 사용하면 망가지는 경향이 모든 기관에 고르게 전개되며 이를 노화 현상이라 한다. 즉 노화 현상은 특정한 질병이 아니며, 어느 특정 기관을 고친다고 하여 수명이 획기적으로 연장되기를 기대할 수 없다. 유전자의 입장에서 볼 때 생식활동이 지난 몸체는 버리고 다음 세대의 몸에서 유전자를 이어가는 전략을 택하는 것이 이익이다. 우리 개체의 이익과 유전자의 이익은 일치하지 않는다. 오래 살면서 생식 기능을 오래 유지하는 것과 짧게 살면서 생식 하는 두가지의 전략이 있다. 전자의 경우 자손을 많이 낳지 않는 반면, 후자의 경우 자손을 많이 낳는 전략을 취한다. 어느전략을 취하건 유전자의 생존 이익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한 것이다.

암이란 우리 몸 세포의 자가 복제 기능이 통제를 벗어나 무자비하게 전개되는 현상이다. 우리 몸의 다양한 기관의 수많은 세포를 각 기능에 맞게 계속 자가 복제하여 갱신해야 일이 매우 복잡하기에 나타난 부작용이다. 나이가 먹을 수록 유전자의 복제 기능에 오류가 나타난 것이 쌓이기 때문에 암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우리 몸의 어느 부분에서라도 암이 발생할 수 있다. 여성의 생식 기관, 즉 자궁, 유방, 난소에서 암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구석기 시대와 달리 오늘날의 여성은 아이를 자주 낳지 않고 수유 기간도 짧기 때문에 과거에 비해 월경을 훨씬 더 많이 하는 결과 발생한 문제이다. 즉 과거의 환경에 적합하도록 진화한 몸이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오류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특정 물질에 대해 알러지가 왜 일어나는지, 자신의 몸을 공격하는 면역활동이 왜 전개되는지는 확실치 않다. 특정 물질이 우리 몸에서 독성으로 잘못 인식되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다. 그 물질이 특정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의 몸에 해로운 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런지 모른다.  그 물질에 대해 거부 반응을 하는 쪽으로 진화한 것이다.

성인병은 과거 구석기 시대에 환경에 적응하도록 진화한 우리 몸이 주위의 환경이 바뀌었음에도 과거의 욕구에 따라 마구 먹고 운동을 하지 않은 결과 나타난 것이다.

이 책은 엄청나게 다양한 질병과 임상 사례를 들어 진화론에 바탕을 둔 이론적 설명을 제시한다. 진화 의학이 최근에 나타난 의학 분야로서 연구가 미흡하지만 이론적 설명력은 높다고 주장한다. 이론보다는 치료에 치중하는 의학의 경향 때문에 진화 의학은 발전이 더디다. 저자들은 이 책을 통해 인간의 몸과 질병에 대해 이해를 깊이 하도록 유도하면서 진화 의학의 발전을 촉구한다. 흥미로우면서 내용이 풍부하다. 두번 읽을만한 대단한 책이다.

2019. 11. 24. 22:00

George A. Akerlof and Robert J. Shiller. 2009. Animal Spirits: How human psychology drives the economy, and why it matters for global capitalism. Princeton University Press. 176 pages.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저자가 쓴 경제학 이론에 관한 학술적 성격의 고급 교양서이다. 저자는 사람들이 경제적 동기에 따라 합리적으로 움직인다는 고전 경제학의 가정을 비판하면서, 그들이 동물적 감성(animal spirits)라 지칭하는 경제 행위에 비합리적 심리적 요인이 개입되 있다는 점을 역설한다. 그들은 다섯가지의 비합리적 심리적 요인을 지적하는 데, 신뢰(confidence), 공정함(fairness), 부패와 그릇된 믿음(corruption and bad faith), 화폐에 대한 환상(money illusion), 이야기(stories)가 그것이다.

책의 전반부에서 이 다섯개의 요인에 대해 간단히 설명한 후, 후반부에서 이 요인들을 동원하여 경제학의 핵심 질문에 답한다. '왜 경제가 공황에 빠지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이는 사람들이 경제에 대해 신뢰가 허물어지고 이것이 사람들 서로간 상승작용을 일으켜 확대 재생산되기 때문이다. 2008년의 금융위기가 발생한 이유는, 부정하게 돈을 벌려는 욕심에서 금융기관은 모기지를 재가공하여 위험도가 높은 증권을 만들어 낸 한편, 사람들은 부동산이 계속 오르리라는 그릇된 믿음에서 자신의 가득 능력을 초과하는 부동산을 마구 샀기 때문이다. 가격 상승은 언젠가는 꺽이게 마련인데, 그러면 사람들은 빚을 값지 못하고, 위험도가 높은 증권은 부도가 나고, 금융기관이 망하고, 경제 전반에 신용이 경색되면서 심각한 불황을 맞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저자는 정부가 나서서 위험한 금융 행위를 규제하는 규칙을 세우고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사람이 나오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사람들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결정되는 시장가격이 아니라 공정한 댓가라고 생각되는 선에서 임금을 정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실업이 넘쳐도 사람들은 어느 선 이하의 임금에는 일하려고 하지 않으며, 만일 이보다 낮은 임금에 일하면 속으로 불공정하다고 화를 내기 때문에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 경기가 하강하고 디플레이션이 발생하면 그에 맞추어 임금을 낮추는 것이 합리적이지만, 사람들은 구매력이 아니라 화폐로 표시된 금액에 대한 환상 때문에 임금을 낮추는 것을 거부한다. 고용주의 입장에서 볼 때 노동 시장에서 결정되는 가격보다 종업원에게 높은 임금을 제시함으로서 그가 회사에서 열심히 일할 동기를 갖게 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에 시장 가격보다 높은 수준에서 임금이 정해진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실업은 항시 존재할 수밖에 없다.

'왜 미래를 대비한 저축은 그렇게 들쑥날쑥한가?' 하는 질문에 대해, 사람들은 미래의 필요를 미리 고려하여 저축 수준을 결정하는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들은 미래 특히 은퇴 후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으며, 현재 자신의 지위에 걸맞는 소비에 관해 주위의 영향을 받아 소비 하는 경향을 보인다. 즉 합리적 계산이 아닌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아이디어에 따라 소비를 결정한다.

'왜 주식의 가격이나 기업의 투자가 변동이 큰가?' 하는 질문에 대해, 주식은 기업의 내재 가치를 반영하여 오르내리기보다 사람들의 비합리적인 투기 심리에 따라 가격이 좌우된다. 기업의 투자 결정 역시 경제의 펀더멘탈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직관적인 감성에 따라 내려진다. 두가지 다 미래에 대한 희망적인 이야기와 잘못된 믿음에 의해 좌우된다. 부동산 가격이 부침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합리적으로 판단한다면 부동산 가격이 그렇게 올라야 할 이유가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부동산 불패 신화를 믿으며 투자를 하고, 이러한 믿음이 꺼질 때 두려움에 휩싸여 팔아치우기에 폭락한다.

' 왜 흑인은 특별히 가난하게 사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흑인과 백인 사이에 감정적인 단절이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백인은 현 체제가 공정하다고 생각하기에 흑인의 빈곤을 그들의 잘못으로 돌린다. 반면 흑인은 백인이 주도하는 사회의 불공정에 분노하기 때문에 자신의 향상을 위해 헌신하지 않으며 자신에게 해로운 행위도 마다하지 않는다. 백인과 흑인 사이에 '그들 대 우리'라는 대립적인 생각이 바로 이러한 단절을 만든다. 적극적 차별 개선 정책(Affirmative Action Program)은 바로 이러한 대립적인 생각을 바꾸는 가장 효과적인 조치이다. 흑인들은 이 정책을 통해 백인들이 흑인의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신호를 접하게 되면서 두 집단 사이에 감정적 단절이 점차 허물어질 수 있다.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는 시장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만으로 경제를 설명하려고 한다면 불황, 실업, 극심한 가격 변동, 낮은 저축율, 극심한 빈곤, 등 흔히 발생하는 경제 현상은 설명이 불가능하다. 심리적인 요인을 추가하여 설명할 때 이러한 경제 현상이 더 명쾌하게 이해 된다. 합리적 행위자 모델에 근거한 고전 경제학 이론에서는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하지만, 비합리적 감정적인 요인에 의해 경제가 움직인다면 이러한 요인이 경제를 불안정하게 하지 못하도록 정부가 개입하여 규제하고 감독하는 것이 필수이다. 

이 책은 경제학 이론 수업에서 참고 교재로 쓰는데 적합하다. 대부분의 논의는 상식적으로 당연한 것처럼 들리지만, 경제학계에서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하는 것이기에 저자는 이점을 거듭 강조한다. 이 책은 경제 상식을 넓히는데 도움이 되지만, 전문적 논의를 전개하기 때문에 그리 흥미롭게 읽히지는 않는다.

 

2019. 11. 22. 20:54

Daron Acemoglu and James A. Robinson. 2019. The Narrow Corridor: States, Societies, and the Fate of Liberty. Penguin Press. 496 pages.

Why Nations Fail 책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저자의 후속작. 이전의 책이 국가가 실패하는 원인에 촛점을 맞춘 것이라면 이 책은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데 성공하는 원인을 분석한다. 고대부터 최근까지 시대를 망라하며 서구에서 아시아 남미 중동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엄청나게 다양한 사례를 검토한다.

저자는 책 초반에 자신들이 개발한 국가 발전이론을 소개한다. 밑으로 부터의 사회 참여가 활발하고, 위로부터 국가의 조직과 행정력이 굳건하여, 이 두개의 힘이 균형을 이루며 서로 견제할 때에만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적 정치체제가 발전한다. 이 두세력이 균형을 이룰 때 '견제된 국가' (shackled leviathan)이라 칭한다.  국가의 힘이 강력한 반면 사회의 힘이 약하다면 '독재적 국가'(despotic leviathan)로 흐르며, 반대로 사회의 관습과 조직은 강한 반면 국가의 힘이 약하다면 '무정부 상태'(absent leviathan)가 된다.  견제된 국가 체제에서만 국민의 자유는 보장된다. 반면 관습과 부족의 힘이 강한 무정부 상태에는 전통에 포획된 구속 상태에서 살기에 자유가 없으며, 독재적 국가에서는 독재자 집단의 권력 횡포에 눌려 국민의 자유가 존재할 여지가 없다. 견제된 국가로 나아가는 과정은 이 두개의 세력이 어떻게 상호 타협을 잘 해가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동태적인 과정이다. 

국가와 사회간의 세력 관계는 자유만이아니라 경제발전에도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국민의 자유가 보장될 때에만 시장이 활성화되며 개인의 창의, 기업가 정신, 새로운 발명이 촉진되므로 경제성장으로 이어진다. 영국에서 가장 먼저 산업혁명이 일어난 것은 바로 영국에서 가장 먼저 이러한 견제된 국가 체제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반면 독재적 국가나 무정부 상태에서는 변화로 인하여 기존 질서와 기득권이 위협받을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경제발전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견제된 국가 체제에서는 사회의 요구와 국가의 권력이 균형을 이루므로 서로 상승 작용을 일으키며 서로 힘이 확대되는 경로를 밟는다. 사회로부터의 요구가 증가하고, 이에 대응하여 국가의 권력과 행정력이 확대되고, 이에 대하여 사회의 견제 장치가 치밀해지는 선순환을 거친다. 이러한 대표적인 예로 북구의 복지국가를 예로 든다. 그 나라들은 국가의 역할이 큰 대신 민간의 참여가 높아 서로 균형을 이룬다. 반대의 예로는 아프리카나 남미의 일부 나라들 처럼 국가의 행정력이 미약하고 사회가 분열되어 있어서 국가에 대한 요구나 국가에 대한 효율적인 견제가 가능하지 않는 나라들이다.  이 나라들에서는 국가가 제공하는 공공 서비스랄 만한 것이 없고, 사회의 조직도 미약하여 국가에 대해 어떤 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이는 '유명무실한 국가'(Paper Leviathan) 이다.  

저자는 이러한 이론에 따라 세계 각국의 사례를 인용하면서 왜 정치경제 상황이 그렇게 전개되었는지 설명한다. 서유럽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었을까 하는 질문에 대해, 그는 게르만족이 민의를 반영하여 결정을 내리던 전통이 서유럽 사회문화 밑바닥에 흐르고 있으며, 영국의 경우 이러한 바탕에 기반하여 상인과 산업자본가의 상승하는 세력이 왕권을 견제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견제된 국가 체제를 낳았다.

반면 중국은 춘추시대를 거치면서 국가의 권력과 질서를 강조하는 법가 사상이나, 혹은 위정자의 도덕적인 정치를 강조하는 유교사상이 전 역사 시기를 관통하였다. 중국에서는 밑으로부터의 참여는 간헐적인 폭동을 제외하고는 전무하다. , 다만 관습의 구속을 지지하고 정당화하는 것이 독재적 국가 권력과 결합되면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지배 집단의 기득권을 보호할 뿐이다. 이러한 중국 체제에서는 기존의 관습이나 기존 지배층의 권위에 균열을 가져올 어떻한 변화도 거부한다. 근래 중국에서 급속한 경제발전이 일어난 것은 독재적 국가도 어느 정도까지는 경제성장을 견인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경제발전이 한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창의와 변화에 대한 개방이 확보되어야 하는데 중국은 그것이 없으므로 앞으로 갈수록 경제 발전이 지체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인도 역시 카스트의 관습이 정치경제를 지배하는 상태이므로 국가의 역할이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결과 개인의 자유가 억압되며 경제발전에 장애로 작용한다.

저자는 미국의 사례를 자세히 분석한다. 건국의 과정에서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도입될 수있었던 이유는 남부의 세력을 포섭하기 위한 타협에서 나온 것이다. 대공황 이후에 정부의 역할이 확대될 수있던 것은 진보주의 시기를 거치면서 밑으로부터의 참여가 높아진 덕분이다. 근래에 세계화와 자동화로 미국 노동자들의 생활이 어려워지고 불만이 높아지면서 사회와 국가의 균형에 틈이 생겼으며 그 틈으로 대중영합주의 정치가 머리를 들었다. 이들은 기존의 국가 제도를 비하하며 밑으로부터의 참여를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포섭하는 정치인이다. 과거에 히틀러가 1치대전 이후 독일이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을 때 민족주의를 표방하면서 의회민주주의를 유린하고 권력을 잡았던 상황과 유사하다.

국가와 사회간의 관계가 윈윈의 관계로 설정될 경우 민주주의가 전개되고 자유가 보장되지만, 둘간에 제로섬의 관계로 싸우게 될 때에 견제된 국가의 경로로부터 이탈할 수 있다. 과거에 그리스의 사례나 오늘날의 대중영합주의의 사례에서 보듯이 견제된 국가의 경로에 있던 나라들도 이 경로에서 이탈하여 독재적 국가의 상황으로 퇴행할 수있다.

이 책은 거의 전세계 주요 지역과 나라들의 역사를 망라하여 종횡무진하면서 논의를 전개한다. 자신들의 이론이 분명하므로, 그렇게 다양한 사례와 시기를 예로 들고 있음에도 설명이 명쾌하다. 대단한 책이다. 몰입해서 단숨에 읽었다. 두번 읽을만하다.  

 

 

2019. 11. 16. 06:21

Robert Levine. 1997. A Geography of Time: the temporal misadventures of a social psychologist. Basic Books. 224 pages.

사회심리학자인 저자가 세계 여러나라 사람들의 시간관념에 대해 연구하고 장기간의 여행을 통해 개인적으로 느낀 생각을 서술한 책이다. 미국인인 저자가 브라질의 대학에 취직하여 갔을 때 그곳 사람들과 접하면서 받은 충격에서 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미국인의 시간관념은 엄격한 반면, 브라질 사람들은 느슨한 시간관념을 갖고 있다. 과거에 코리안 타임을 연상케 한다. 브라질 사람들의 삶의 속도는 미국인의 비해 느리다.

엄격한 시간관념을 가진 사회는 산업화되었으며, 개인주의적 가치관이 지배하며, 평균적으로 잘 살며, 서구 문화권에 속한다. 반면 느슨한 시간관념을 가진 사회는 산업화 정도가 덜하며, 집단주의 가치관이 지배하며, 소득 수준이 낮으며, 비서구 문화권이다. 전통 사회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와 감정적인 화합을 효율성보다 중시한다. 전통 사회에서는 시간은 돈이라는 가치관을 경멸하며, 효율을 희생하더라도, 비합리적인 방식으로 행동한다고 해도, 일이 계획한대로 성사되지 않는다고 해도 괜찮다는 묵시적 합의가 있다.  시계에 따라 시간과 일의 흐름을 적극적으로 계획하고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일(event)이 벌어지는 대로 따라간다. 물론 그런 사회에서는 설사 성사된다고 해도 일이 느리게 전개되며, 많은 경우 성사되지 않고 용두사미로 끝나거나 삼천포로 빠지는 경우가 흔하다.

삶의 템포가 빠른 사회와 템포가 느린 사회 중 어느곳의 삶이 더 질이 높을까? 저자는 일견 느린 템포의 삶이 더 바람직하다는 뉘앙스의 서술을 한다. 그러나 그런 사회에서는 많은 일을 할 수 없고, 그 결과 사람들이 풍요롭게 살지 못한다는 점을 의도적으로 외면한다. 삶의 템포가 빠르고 스트레스가 많은 삶은 건강에 좋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그가 여행하고 경험한 비서구 전통사회 사람들의 삶을 긍정적으로 보는 그의 입장은 순진한 낭만으로 보인다.

저자는 일본 사회를 이상적으로 본다. 일에 중독된듯 보이지만 서구와 달리 장시간 노동의 스트레스가 건강 악화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를 집단주의 문화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서로 챙겨주기 때문에, 열심히 일하는 것이 내가 속한 집단의 발전에 기여한다고 생각하며 보람을 느끼고, 열심히 일하는 것이 견딜수 없는 스트레스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구의 개인주의 사회에서 장시간 노동은 개인을 파괴하는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반면,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나를 보살피고 내가 보살펴주는 나의 확대된 가족을 위해 일하기 때문에 장시간 노동이 개인을 파괴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물론 그는 일본의 과로사 문제를 언급하기는 한다.

긴장도가 높고 템포가 빠르게 살아가는 소위 A 형 인간이 반드시 건강이 나쁜 것은 아니다. 개인의 시간관념과 그가 속한 사회의 시간관념이 맞지 않을 때가 문제이다. 예컨대 삶의 템포가 느린 사회 출신의 사람이 서구의 빠른 템포의 사회에서 살려면 힘들며, 반대로 서구의 빠른 템포에 익숙한 사람 혹은 A 형 인간이 느린 템포의 사회에서 살려고 한다면 속터져서 살수 없다. 서구에서도 지역에 따라 삶의 템포가 다르기 때문에, 개인의 성격과 그 사회의 관행이 부합하는 사회에서 살 때 행복할 수 있다.

저자는 문화적 상대주의의 입장이다. 각 사회와 문화의 고유한 시간관념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세계화가 진전된 요즈음 별로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 아니다. 개인적인 일화나 여러 책으로부터 인용을 많이 하나, 서술이 산만하며, 피상적인 주장에 머물고 있다.

 

2019. 11. 9. 22:28

Richard Dawkins. 1995. River out of Eden: A Darwinian vies of life. Basic Books. 161 pages.

'이기적인 유전자'로 유명한 저자가 유전자를 중심으로 한 진화론을 보다 흥미있게 해설한 책이다. 생명의 진화란 유전자의 증식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우리의 육체는 유전자를 담는 그릇에 불과하며, 유전자의 생존과 후대에 증식이 생명 활동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유전자의 입장에서 볼 때 생물체가 고통을 느끼는지, 도덕적으로 올바른지, 공정한지, 건강하고 오래사는지 여부는 중요치 않다. 생물체의 어떤 기관의 목적이 무엇일까를 탐구할 때 고려해야 할 것은 한가지, 그 생물체가 담고 있는 유전자의 생존과 증식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유전자는 오로지 자신의 생존과 증식의 가능성을 높이는 쪽으로만 진화의 방향을 몰고간다. 생명이란 정보의 덩어리 즉, 유전자 혹은 알고리즘이외에 다른 어떤 것도 아니다. 육체는 이 정보를 담는 수단에 불과하다.

유전자는 세대를 거쳐 복제 되며, 지리적인 격리 등 환경적 요인으로 유전자가 서로 다른 종으로 갈리는 과정을 거친다. 우리와 유전자가 근접할수록 보다 최근에 이 갈리는 과정에서 나누어졌다. 미토콘드리아의 유전자는 성염색체와 달리 어머니의 계통을 통해서만 다음 세대로 복제되는 특성을 가진다. 인간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거슬러 추적한 결과 소위 African Eve 라고 부르는 아프리카에 살던 한 여성이 현대인 모두의 여자쪽 조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녀와 동시대에 살았던 여성들의 후손은 현재 살고 있는 사람에게까지 유전자가 이어지지 않은 것이다. 그녀가 현생 인류의 최초의 조상은 아니다. 최초의 조상은 아마도 남성일 가능성이 크다. 동물의 세계에서 보면 수컷이 암컷보다 자신의 유전자를 더 많은 후손 속으로 증식시키기 때문이다. 현재 살고 있는 사람의 유전자는 오랜 세월 동안 진화적 선택에서 가장 생존가능성이 높은 것이 살아남은 결과이다. 우리의 유전자보다 생존 가능성이 낮은 것은 그간의 생존 경쟁에서 패배하여 후손을 남기지 못했다.

생물체가 놀랍도록 정교하게 짜여진 것을 보고, 이렇게 정교하고 완벽한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신뿐이라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오류이다. 진화의 과정은 유전자의 증식의 가능성을 높이도록 생물체의 시스템을 정교화시키는데, 현재 관찰되는 어떤 생물체의 정교함에 못미치는 전 단계를 다양한 생물체에서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벌꿀이 자신의 동료에게 먹이의 위치를 알리는 특징적인 춤은 처음부터 완벽하게 설계되어 만들어진 듯이 보이지만, 진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조금씩 신호 체계의 복잡성을 더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특정 생물체의 유전자 증식의 목적에만 부합하도록 정교화된 경우를 흔히 본다. 특정 곤충의 감각 능력은 그들의 생존 욕구에 맞도록 진화되면서, 인간의 감각과 지능으로 볼 때에는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유전자의 효용함수, utility function 이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개별 생물체의 유전자의 입장에서 볼 때 생존과 증식의 가능성을 가장 높이는 선택을 말한다. 개별 생물체의 유전자에게 이익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그 종 전체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물개는 소수의 수컷이 많은 암컷을 거느리기 때문에, 많은 수컷은 교미할 기회가 없이 죽는다. 종 전체의 유전자의 증식으로 볼 때 가장 효율적인 방안은 수컷대 암컷의 비율을 1:9로 하여 낭비되는 수컷이 없도록 하는 것이 다. 그러나 개별 생물체의 유전자의 입장에서 볼 때, 수컷대 암컷의 비율이 5:5로 될 때에만 진화적 평형상태를 유지한다. 만일 성비가 1:9라면 모든 부모는 자식이 수컷이되도록 할 때 자신의 유전자의 증식이 최대화되므로, 암컷대비 수컷이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화가 전개될 것이다. 5:5가 되면 자식이 수컷이건 암컷이건 유전자의 후대 증식 가능성이 동일하므로 평형상태에 도달한다.  이 경우 만일 수컷을 낳으면 다수의 수컷은 교미를 하지 못하여 유전자의 증식이 제로이지만, 소수의 수컷은 많은 암컷을 거느리므로 유전자의 증식 비율이 크다. 따라서 수컷을 낳을 때 유전자 증식의 기대값은 암컷을 나을 때와 동일하게 된다. 

태평양의 연어는 강 상류에서 태어나 바다로 나가 성장하여 원래 태어난 강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 생식을 하고 나서는 바로 죽는 것으로 일생을 마감한다. 반면 대서양의 언어는 이러한 생식 과정을 한 생애 동안 여러번 반복한다. 왜 이렇게 다르게 진화하였을까? 태평양 연어의 서식지인 강은 험하여 이를 거슬러 오르는데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마지막 에너지를 다하여 강을 거슬러 오르고 생식을 한 다음 바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 에너지를 아끼면서 강을 오르고 생식 이후에도 다시 살아가도록 하는 선택보다 유전자의 후대 증식의 관점에서 보다 합리적인 선택이다. 반면 대서양의 연어가 서식하는 유럽의 강은 그리 험하지 않으므로 한 생애 동안 여러차례 강을 오르고 생식을 하도록 하는 것이 유전자의 증식에 합리적이다. 유전자의 입장에서 볼 때 생물체가 어떻게 고통을 받고 얼마나 살고 어떻게 죽는가 하는 것은 고려사항이 아니다. 고통없이 오래 사는 것보다 고통을 받으면서 짧게 살다 다음 세대를 낳고 죽는 것이 제한된 자원을 사용하면서 유전자의 증식에 더효율적이라면 당연히 후자 쪽으로 진화한다.

우주에서 신성 supernova 은 몇 주라는 짧은 시간 동안 에너지를 폭발적으로 방출하고 재로 변하는 별을 이른다. 에너지의 폭발과 유사하게 우주에서 정보의 폭발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한 정보의 폭발은 지구에서만 발견된다. 지구에서 일어난 정보의 폭발의 시작은 미미하다. 정보를 자기복제하는 기제, 즉 생명체가 시작되면서부터이다. 정보의 자기 복제는 광물질의 결정이 만들어지는 것과 유사하게, 화학적 결합체인 분자가 자신을 복제틀로 하여 자신과 대칭적인 동일한 존재를 생성하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이것을 저자는 복제 폭탄 replicator bomb라고 부른다. 우리의 DNA를 구성하는 네가지 종류의 분자 A,T,C,G는 A가 T에 대칭적인 존재이며, C가 G에 대칭적인 존재이다. 이 네 종류의 분자가 무수히 엮어지면서 정보의 복잡성을 높여갔다. 이 분자들은 복제를 기하급수적으로, 즉 2, 4, 8, 16, 이런 식으로 하면서 수를 늘렸으며 분자들이 덩어리를 구성하여 세포가 되고, 세포가 덩어리를 구성하여 개별 생물체가 된다. 이 분자들은 복제를 하면서 ATCG의 조합을 조금씩 달리하게 되는 데, 이것이 종의 다양성을 확대하는 기제이다. 다양한 종들은 서로 경쟁을 하면서 복제의 효율성을 높여간다.

정보의 복제 속도가 높아지고 복잡성이 증가하는 과정은 인간에 이르러, 지난 이삼백년간에 걸쳐 가속화되며 마침내 지구 행성 밖으로 정보를 보내는 단계에 도달하였다. 이렇게 정보의 절대 규모가 커지고 복잡성이 증가하는 끝은 어딘지 알지 못한다. 슈퍼노바의 경우처럼 지수적인 팽창을 하다가 결국 가용 자원의 극에 도달하여 폭발로 끝날 수있다. 혹은 정보가 행성 밖으로 이동하면서 우주의 다른 곳에서 새로운 복제의 사이클을 만들 수도 있다. 우주로 나간 정보가 지구의 인간과 교신이 끊어진다면, 환경이 바뀌면서 생물체가 다른 종으로 정보의 강이 갈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주의 다른 곳에서 새로운 종으로 만들어 질 수도 있다.

이 책을 두번째 읽었다. 과거에 이해되지 않던 부분이 조금더 이해되는 듯하다. 리차드 도킨스는 엄청난 사람이다. 냉정한 학자이면서 천재적인 명석함이 번득인다. 그의 책을 읽으면 경외감이 슬금슬금 올라온다. 그가 서술하는 것의 요지는 일견 단순한 듯 하면서 우주의 진리를 관통한다는 느낌이 든다. 도킨스는 진화론에서도 특히 삶의 중심을 유전자에 두는 정말로 냉혹한 골수 진화론자이다. 그의 확신이 존경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