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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나무'에 해당되는 글 285건
2019. 9. 1. 11:02

Judea Pearl and Dana Mackenzie. 2018. The Book of Why: the new science of cause and effect. Basic Books. 370 pages.

컴퓨터 과학자이며 과학철학자인 저자는 과학 활동에서 인과관계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탐색할지에 대해 설명한다. 그런가, 혹은 어떤 요인이 그런 결과를 초래하는가하는 문제는 질문하기는 쉽지만 답을 하기는 어렵다. 그에 답하는 첫번째 과정은 해당 사건과 관계가 있는 사건을 찾는 일이다. 그러나 상관관계가 있는 요인을 발견했다고 하여 그것을 원인으로 지목할 수는 없다. 예컨대 아이들의 신발 치수와 아이들의 문자 해득력은 높은 상관관계를 보이지만, 신발치수가 문자해득력을 초래한다고 추리하는 것은 오류이다. 숨은 제 3의 변수, 이 경우에 아이의 연령이 신발치수와 문자 해득력에 영향을 미친다.

상관도를 보이는 요인이 원인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원인은 결과 이전에 발생해야 한다거나, 원인 사건이 발생하지 않으면 결과 사건이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거나, 특정 사건이 일어나면 반드시 특정 결과가 일어나야 한다거나, 등의 판별 기준이 있지만 이 모든 요건을 만족시키지 않는 경우에도 우리는 원인으로 특정하기도 한다.

저자는 과학활동은 인과 모델을 가지고 데이터를 접근해야지, 데이터 자체를 분석한다고 하여 인과관계를 추출해 낼 수없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빅데이터를 분석하고 통계 방법을 적용하는 것은 상관관계를 파악하는 것이지, 인과모델 자체는 통계 방법이 제시할 수없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인과 모델로 세상을 파악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지만, 컴퓨터는 인과관계에 대한 아이디어가 없다. 원인을 특정하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인과관계를 밝히는 것은 과학활동의 핵심이다. 흡연이 폐암의 원인이라는 것을 밝히는 과정을 통해 원인을 특정하기 위한 작업에서 부딛치는 어려움을 상세히 설명한다. 인과모델을 효율적으로 적용하기 위해, 인과 관계를 그림으로 표시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역설한다. 패스 분석이나 구조방정식 모델이 바로 그것이다.

인과 모델을 탐색하는 데에는 반드시 원인에서 결과쪽으로 검증하는 방법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원인이 될 요인이 발생할 확률을 계산하는 방식, 즉 인과의 흐름을 거꾸로 되짚어가는 방식은 매우 유용하다. 베이즈의 조건부 확율론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가 설정한 인과모델에서 결과에 해당하는 정보를 알면 알수록 원인을 더 정확히 특정할 확률을 높일 수있다. 우리의 사고 체계는 인과의 흐름에 따라 생각하는 데 익숙해 있기 때문에, 이렇게 인과의 흐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원인으로 의심되는 요인들의 확율을 특정하는 것은 생각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인과의 흐름에 따라서 통제된 실험을 하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미 일어난 사건을 관찰하여 분석함으로서 원인을 특정하는 방식은 매우 유용하다.

이 책은 과학 방법론 책으로 가볍게 읽히지 않는다. 일반 교양서라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읽다보니 전문 학술서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구체적으로 다양한 인과모델을 제시하고 어떻게 각각의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 논의한다. 내용이 어렵기에 논의를 쫒아가기 힘들고 이해 안되는 부분도 많지만, 책 내용의 십분의 일만 이해했음에도 나의 연구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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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e Wilson. 2019. The Way We Eat Now: How the food revolution has transformed our lives, our bodies, and our world. Basic books. 306 pages.

저자는 푸드 저널리스트로 서구 사회에서 음식 섭취와 관련해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최신 유행까지 다양하게 건드린다.  저자는 '음식 혁명'(food revolution)이라고 부르는 근래의 변화에 대해 비판적이다. 음식혁명이란 이차대전 이후 서구 사회가 풍요로워지면서 필요 이상으로 영양분을 많이 섭취하고 가공식품 중심으로 식생활이 바뀌는 현상을 지칭한다. 미국에서는 20세기 초반까지, 유럽에서는 1950년대까지 전통적인 식생활이 지속되었다. 전통적인 식생활이란 자연 재료를 구입하여 집에서 직접 요리하여 먹으며, 아침 점심 저녁 세끼 식사를 중심으로 하며, 기본적으로 적정한 영양분의 식사를 하며, 지금과 달리 영양 과잉에 기인한 질병으로 고생한 사람은 드물었다. 

현재 서구인의 식생활은 저자가 '세계적으로 표준화된 식생활'(Global Standard Diet)'라고 지칭하는 유형을 보인다. '세계적으로 표준화된 식생활'이란, 다국적 회사인 식품 가공 대기업이 생산하는 가공식품을 중심으로 식생활이 이루어지며, 당분과 나트륨과 지방이 많은 자극적인 음식 위주이며, 세끼의 정규 식사가 불규칙해지는 대신 간식을 많이 하며, 과거에 비해 음식 재료가 소수로 제한되는 편중된 식생활이다. 콜라나 쥬스와 같은 당분이 과다한 음료나, 케이크나 쵸콜렛과 같이 당분이 과다한 음식이나, 햄버거, 피자, 프랜치 프라이, 닭 튀김과 같이 지방이 과다한 식품은 과영양상태를 초래하여 고혈압과 당뇨를 유발하는 주범이다. 인류는 먹을 것이 부족한 환경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당분과 지방을 적극적으로 선호하도록 진화했다. 우리 몸의 영양 상태와 무관하게 단 것과 기름진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인간의 본능은 음식이 넘쳐흐르는 현대 사회에서 독으로 작용한다. 

식품 대기업은 이러한 인간의 본능을 이용하여 더 많은 자극적인 음식, 즉 당분, 지방, 나트륨이 많은 음식을 구입하도록 갖은 방법을 동원한다.  서구에서 이러한 식품 대기업의 꾀임에 그래도 덜 넘어간 사람들은 중상류층에 한정된다. 가난할 수록 야채와 같은 일차 식품을 구입해 요리할 환경이 안되고 여유가 없기에 패스트푸드와 싸구려 스낵을 주식으로 삼는다. 반면 상류층은 건강을 신경써 야채를 먹으려고 노력하며, 당분과 나트륨과 지방이 덜 들어간 음식을 요리해 먹는다. 기업의 힘이 세고 소득 불평등이 높으며 자본주의가 극단적으로 발달한 미국에서 비만한 사람이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당연하다. 

1990년대 이래 전개된 세계화로 인해 다국적 대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노력은 서구를 넘어 전세계로 확장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표준화된 식생활'은 개발도상국까지 침투되었다. 남미 국가들에서 다국적 식품 대기업의 세력은 엄청나며, 아프리카와 인도에서도 서구 대기업의 가공식품이 전통적으로 일차 식품을 요리하는 관습을 대체해 가고 있다. 햄버거, 피자, 프랜치 프라이, 케이크, 콜라와 같은 서구 대기업의 가공 식품은 전통 음식보다 고급으로 대접받고 부유한 서구 사회를 선망하기에 개발도상국에서는 가난한 사람들까지 없는 돈을 짜내서 콜라를 사 마시고 전통식품보다 햄버거를 선호한다.  

이 책에서 한국을 이러한 세계적으로 표준화된 식생활이 세계를 휩쓰는 경향에 예외적인 국가로 소개한다. 김치를 주식으로 하고 채소를 많이 먹는 한국인의 식습관은 소득이 높아지면서 식생활이 서구화되는 개발도상국의 변화에서 예외적인 존재라고 지적한다. 과연 그럴까? 한국인의 육류 소비양은 엄청난데. 이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영국사람인 것을 반영하여 주로 영국과 미국의 식생활을 염두에 두고 서술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반면 한국, 중국, 일본과 같은 비서구 사회 사람들의 식생활에 대해서는 피상적으로 언급하며, 저자가 잘 모르고 쓴다는 것을 느낀다.  

저자는 결론으로 육류를 적게 먹고, 야채를 많이 먹고, 가공 식품을 멀리하고, 당분과 지방이 많은 음식을 피하고, 세끼 식사를 충실히 하는 대신 간식을 피할 것을 권고한다. 무엇을 먹을 것인가는 개인의 문제지만, 영국이나 미국과 같이 비만이 큰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고혈압과 당뇨병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이 다수를 차지하는 사회에서는 정부가 국민들의 식습관을 개선하도록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설탕세가 대표적인 예이다.  

이 책을 읽으므로서 건전한 상식에 입각해 서구의 식생활을 점검하는 계기를 갖게 된다.  저자의 지적에 특별한 것은 없지만 근래에 주변에서 벌어지는 음식에 관한 유행에 대해 비판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된다. 예컨대 인스타그램에 예쁘게 나오는 요리를 찾아다닌다거나, 몸에 좋다는 다이어트 음식이나 음료 등에 대해 냉정하게 평가하게 된다. 저자가 저널리스트이기에 읽기에 편하게 글을 쓴 것도 이 책의 강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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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e Silver. 2012. The Signal and The Noise. Penguin Books. 454 pages. 

저자는 선거예측 사이트인 FiveThirtyEight.com의 운영자로, 2012년 오바마가 선출된 대통령 선거에서 미국 50개 주의 선거결과를 모두 정확하게 예측해 냄으로서 하루 아침에 유명해진 사람이다. 이 책은 그가 어떻게 예측의 달인으로 성장하게 되었는지, 그의 예측의 기술은 무엇인지 설명한다. 그의 예측 기술의 핵심은 베이즈 공리, 즉 조건부 확률 이론에 입각한 통계적 예측이다. 기존에 알고 있는 정보에 입각하여 확률적 예측을 한 후, 새로운 유용한 정보가 나타날때마다 예측 확률을 업데이트하는 방식이다.  

저자는 청소년 시절 야구를 매우 좋아 하였으며 야구 결과를 예측하는 데 관심을 가졌다. 이러한 관심을 체계적으로 발전시켜 야구 결과 예측모델을 개발하여 프로야구단에 판매하기까지 하였다. 미국 프로야구는 극도로 정량화된 세계이다. 선수 개개인의 타율, 출루율, 방어율, 투수의 삼진, 사구 비율 등과 같은 기초적인 지표에서부터 개개 선수가 어떤 위치에서 어떠한 행위를 하였는지에 대해 상세한 지표가 개발되어 수십년간 자료가 축적되어 있다. 이러한 자료는 선수 개개인의 평가와 선발에 사용되며, 팀의 승패를 예측하는데 이용된다. 스포츠 선수 트레이드 시장이나 스포츠 게임의 승패를 두고 내기를 하는 시장 또한 규모가 크다. 이 책에서는 야구의 선수의 업적과 게임의 승패를 예측하는데 관한 설명이 다양한 사례를 사용하여 자세히 제시된다.  

예측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것이 유용한 정보이고 어느 것이 랜덤한 요소인지를 구분해내는 일이다. 그는 이를 신호와 소음이라고 지칭한다. 지금까지 발생한 사건들로부터 유용한 패턴을 추출하는 작업은 단번에 완성되는 작업이 아니라 점차로 정확도를 높여가는 과정이다.  지금까지의 가용 정보를 기반으로 가능성이 높은 패턴, 혹은 가설을 만들고, 전개되는 사건이 이 패턴에 얼마나 맞아 떨어지는지에 따라 점차적으로 조정을 해가는 작업. 이는 다름아닌 과학적 연구방법이다. 발생한 일 중 많은 부분은 랜덤한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데, 사람들은 이렇게 랜덤하게 발생한 것을 패턴으로 혼동하기 쉽다. 무엇이 랜덤한 요인이고 무엇이 유의미한 패턴에 의해 발생하는지 사전에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저자의 두번째 직업은 포커 도박사였다. 포커 게임은 게임이 진행되면서 상대의 패의 범위를 읽어내고, 자신이 가진 패의 승률을 면밀하게 계산하여 콜을 할것인지, 상대의 콜을 받을 것인지, 아니면 죽을 것인지를 판단해 낸다. 저자는 한 때 상당한 돈을 따기도 했으나, 프로 도박사의 세계에서 자신의 역량의 한계를 깨닫고 손을 떼었다. 이 책에서 포커 게임의 원리와 전문 도박사들이 어떻게 승율을 따지는지에 대해 매우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사실 저자를 유명하게 한 것은 선거 결과를 정확히 예측한 것이다. 그는 뉴욕타임즈에 그의 예측 결과를 보고하는 칼럼을 쓰게 되었는데, 그것의 정확도가 어느 다른 선거 예측전문가 보다 높게 나타나 단번에 눈에 띠었다. 그는 선거를 앞두고 벌어지는 모든 여론 조사를 반영하고, 지난 수십년간 벌어진 모든 선거 결과와 여론조사의 기록을 면밀히 분석하여, 체계적으로 선거 결과를 예측하는 모델을 만들었다. 선거 시점으로 다가갈수록 유용한 정보의 비중이 높아지는 반면 랜덤한 요인의 작용은 줄어들기 때문에, 예측의 정확도는 얼마나 선거에서 멀어져 있냐에 따라 달라진다. 이 책에서는 선거 예측 모델은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아마도 저자는 선거 결과 예측에 관해 별도의 책을 쓰려고 계획하고 있거나, 혹은 현재 잘 나가가고 있는 사업의 비밀을 지나치게 구체적으로 밝히고 싶지 않은 것 같다. 

이책에서 상세하게 설명하는 또다른 예측 사례는 기상예측, 지진 예측, 기후변화, 이다. 저자는 이 주제에 관해 쓰기 위해 많은 사람을 인터뷰하고 관련 자료를 풍부히 검토한 것으로 보인다. 주식 시장의 예측 또한 제법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높은 승률을 기록했다고 하는 펀드들이 얼마나 시장 평균에서 벗어나는지, 모든 가용한 정보가 가격에 반영되어 있다고 하는 완전시장가설이 얼마나 타당한지, 주가의 변동에서 유용한 패턴과 랜덤한 요소를 어떻게 구별할 것인지에 대하여 저자 나름의 설명이 제시된다. 이외 테러 발생 예측에 대한 설명도 별도의 장에서 전개한다. 

야구 승률 예측에서 시작하여 포커 도박사를 거쳐 선거 결과 예측으로 성공한 저자가 자신이 생각하고 실천하는 예측의 기술에 대해 솔직히 설명한 이 글은 제법 흥미롭다. 확률 이론서나 통계 교과서처럼 수식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설명이 체계적이며 관련 이론에 대해 풍부한 지식을 보유하고 실전에 적용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사례를 설명하는 서술에서 읽을 수있다. 그가 예측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읽다보면 예측이란 매우 현실적이고 냉정한 이성을 필요로 하는데, 예측의 정확도가 어느 정도 기본적인 수준에 도달한뒤 조금 더 나아가려고 하면 엄청나게 많은 노력을 투입해야 약간의 향상을 이룰 수있는 지난한 작업임을 깨닫게 된다.  저자는 그렇게 엄청나게 노력하여 성과를 거둔 사람임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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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rt M. Sapolsky. 2004. Why Zebras don't get ulcers: the acclained guide to stress, stress-related diseases, and coping. 3rd ed. St. Martins Griffin. 419 pages.

생물학자이며 신경생리학자인 저자가 스트레스의 작동기제와 관련한 거의 모든 주제를 다룬 과학서이다. 일반 독자를 상대로 쓴 교양서라고 하지만 스트레스와 관련된 다양한 주제에 대해 모든 기존 논의를 상세히 비교 검토하기 때문에 학술서에 가깝다. 책 뒤에 주석만 100쪽에 달하며, 이 책에서 언급하는 실험과 연구와 주장의 강점과 약점, 한계에 대한 논의가 끝 없이 이어지기 때문에, 이 분야에 전문지식이 없는 저자는 계속 이어지는 전문 용어를 쫒아가기 바빴으며 때때로 나무 더미에 파뭍혀 숲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이 책에 소개되는 많은 논의는 동물 연구를 바탕으로 인간에 대해 탐구하는 전형적인 생리학적 방법을 쫒아 이야기를 진행한다. 동물은 생존이 달린 위기의 상황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지만 이것은 그 위기가 지나면 사라지는 성격의 것이므로 그 위기로 인한 부정적인 영향은 없다, 그 위기 때문에 죽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반면 인간이 처한 스트레스 환경은 동물의 그것과 전혀 다르다. 생존이 달린 극심한 위기에 처하는 경우는 드물며, 물리적 결핍보다는 심리적 및 사회적 긴장을 유발하는 상황에 처하며, 충격의 성격이 단 시간에 높은 강도로 발생하다 곧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낮은 강도의 긴장이 지속된다.

사느냐 죽느냐의 위기에서 동물은 이 상황을 타개 하기 위해 몸이 최고의 효율을 내도록 신진대사가 이루어진다. 근육의 힘을 최고로 내기 위해 근육 조직에 혈액이 집중적으로 공급되고, 혈압이 높아고 맥박이 빨라지며,  에너지의 원천인 당분을 혈액에 풍부하게 공급한다. 반면 일상적인 신진대사 작용은 억제된다. 소화기관의 기능은 정지하고, 성기능은 중단되고, 면역체계는 작동을 멈추며, 몸에 손상된 조직을 고치고 조직을 성장시키는 기능은 일시적으로 차단된다. 두뇌의 뇌하수체에서 분비되는 글루코코르티코이드라는 호르몬이 심장, 간, 신장 등 몸의 구석 구석에 이렇게 신진대사가 일어나도록 신호를 내린다. 이러한 비상 상황이 단기간 발생하다가 위기가 끝나면 글루코르티코이드 호르몬의 분비는 억제되며, 신진대사 작용은 평소 상태로 복귀한다. 반면 인간의 경우 낮은 강도로 지속되는 스트레스는 이렇게 단기간의 비상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작동하는 신진대사가 오랜 시간 지속되고 글루코코르티코이드 호르몬 레벨이 높은 수준에 머물면서 몸 전체에 무리를 가한다. 동물은 단시간에 발생하는 엄청난 충격의 스트레스 때문에 고혈압이나 위궤양과 같은 지병에 걸리지 않지만, 인간은 오랫동안 지속되는 스트레스가 면역 체계를 훼손하고 나아가 자기 자신을 공격하는 형태로 발전한다. 오랫동안 지속되는 스트레스는 현대인이 당면한 모든 신체적 및 심리적 문제의 근원이다. 스트레스는 고혈압, 당뇨를 유발함은 물론 성기능을 감퇴시키고, 성장을 억제하며, 면역력을 저하시키고, 기억력을 저하시키며, 우울증을 유발하며, 궁극적으로 수명을 단축시킨다.  

이 책에서 언급하는 스트레스의 영향에 관한 언급은 사실 별로 새롭지 않다. 저자는 유인원과 쥐를 대상으로 스트레스의 생리적 및 심리적 기제에 대해 많은 연구를 수행하였기 때문에, 논의의 상당부분을 자신의 동물 연구에서 부터 이야기를 풀어간다.  스트레스가 어떻게 동물과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그 기제를 생리학적으로 상세히 밝히고, 기존의 주장이 인과적으로 타당한지 면밀히 검토하는 작업을 지치지 않고 수행한다. 이 분야에 막연한 관심을 가진 일반 독자보다, 이분야에 어느 정도 사전 지식이 있으면서 좀더 세밀히 논의를 살펴보려고 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듯 하다. 

책의 전반부에서 스트레스의 생리적 기제에 대한 전문적 논의를 전개한 다음, 책의 후반부에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신체적 변화와 스트레스의 인과관계에 대해 논의한다. 스트레스와 통증, 스트레스와 기억력, 스트레스와 노화, 스트레스와 우울증, 스트레스와 성격, 스트레스와 사회경제적 지위 등이 주요 주제이다. 이 책에서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 중 하나는 빈곤과 불평등은 스트레스를 크게 유발하는 요인이며, 어린 시절의 성장 환경, 심지어 엄마 배 속에서 경험한 것이 수십년 뒤 성인기와 노년기에 경험하는 스트레스 정도와 대응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스트레스를 적게 받고, 스트레스를 받아도 잘 대응하려면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아서는 절대 안되며 좋은 성장 환경에서 자라야 한다는 사실이 과학적 연구 결과 확인된 가장 확실한 진리라고 지적한다.  저자는 이를 우울한 진리라고 누차 인정하지만, 여하간 진리는 냉혹한 것이다. 

맨 마지막 장에서 이러한 모든 연구 결과를 종합할 때 그렇다면 어떻게 스트레스를 줄이고, 어떻게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것이 좋겠는가 조언을 한다. 상황에 대한 통제력이 높을수록, 예상할 수있을수록, 스트레스를 풀 출구가 있을수록, 사회적 지지를 확보할수록, 적절한 운동을 할수록, 스트레스를 낮출 수있다고 조언한다. 그러면서 맨 마지막 말은, 상황에 따라 이러한 조건을 만들기 힘들거나 혹은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경우가 왕왕 발생하므로, 유연하게 사고하면서 너무 걱정하지 않도록 노력하라, 모든 것이 지나치면 해가되므로 적당히 하도록 하라고 조언한다. 엄청난 연구를 한 결과 내리는 조언 치고는 너무나 평범하다. 그러나 평범한 것에 진리가 있다.   

몇 달 전 티브이를 보다가 홍혜걸 의학전문 기자가 이 책을 엄청나게 치켜세우는 것을 듣고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을 끝까지 읽는 것은 나에게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중단해서는 안된다는 일념으로 거의 한달에 걸쳐 틈틈이 시간을 내어 다 읽었다. 중간에 이 책을 계속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 다른 책을 읽으며 동시에 조금씩 읽어 나갔다. 수없이 나오는 전문 용어와 실험과 연구 결과와 세밀한 논쟁을 쫒아가는 것이 머리 아파, 후반에 이백 쪽 가량은 소리내서 읽다가 목이 쉬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으면서 인과적 관계를 엄밀히 검증하는 것, 의학적 찬반 논쟁, 객관적 학술 검증 논리에 익숙해 진 것이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책 한 권을 마침내 끝냈다는 성취감이 가장 크기는 하지만.  

2019. 7. 11. 10:53

Leonard Mlodinow. 2008. The Drunkard's Walk: How randomness rules our lives. 219 pages. Vintage Books.

인간은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서 항시 패턴을 찾으려 한다. 패턴을 파악하여 일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예상할 수 있다면 생존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세상에 모든 일은 패턴, 즉 규칙에 따라 전개된다는 믿음은 결정론적 세계관이다. 과학이 발달하기 이전에는 세상의 모든 일이 신의 뜻에 따라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이러한 세계관에서 사는 사람은 체계적인 관찰을 통해 자연 현상의 규칙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으므로 과학이 발달하지 못했다. 체계적이며 경험적인 관찰이 타당한 탐구 방법으로 수용되면서 자연 현상의 규칙을 발견함과 함께, 세상은 랜덤한 요소, 즉 우연적 혹은 임의적인 요소를 품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확률적인 규칙성을 발견한 것이다. 

이 책은 랜덤, 즉 임의성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확률 이론과 통계학의 발전 과정을 짚어 본 과학사 책이다. 확률론은 수학에서도 가장 기초가 되지만 일반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논리를 담고 있다. 저자는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사례를 다양하게 인용하면서 확률론을 알기 쉽게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도박사의 승률 계산에서부터 시작된 확률에 대한 인류의 관심은, 복권의 구조, 스포츠의 승률, 증권 가격의 움직임, 재판에서 평가되는 증거의 타당성, 사업 성공의 확률, 측정의 오차, 속성의 분포, 등등. 우리 삶에서 확률의 원리가 적용되지 않는 곳이 없으므로 저자는 삶의 거의 전 영역에 걸쳐 확률의 원리를 적용하면서 통찰력을 제공하려고 한다. 

세상의 일은 개인의 능력, 환경적 요인, 랜덤한 요소, 이렇게 세가지가 결합되어 전개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랜덤한 요소를 과소평하하는 반면, 개인의 능력을 과대평가한다. 뮤츄얼 펀드의 성과를 분석한 결과, 지난 이십년간 두드러지는 성과를 기록한 회사가 사실은 랜덤한 요소가 작용하여 그렇게 되었음을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수년 동안 뛰어난 사업 성과를 낸 회사가 CEO의 특출난 능력 때문이 아니라 랜덤한 요소 때문에 그리 될 수 있음을 입증힌다. 반대의 경우, 즉 수년 동안 부진한 성과를 기록한 회사 또한 CEO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랜덤한 요소 때문에 그리 될 수 있다. 세상일은 랜덤한 요소가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지나고 나서 보면 필연인 것 같고 규칙성을 추출해내지만, 그러한 사후적으로 추출한 규칙을 적용하여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를 예측하면 거의 빗나간다.  

우리의 삶에서 우연한 계기 때문에 인생의 진로가 바뀐 경우가 많은 것을 볼 때, 인생사에서 랜덤한 요소의 비중이 적지 않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랜덤한 요소를 거부, 내지 과소평가하는 반면 개인의 통제 가능성을 과대평가 하기 때문에, 일의 진정한 전개 원리를 외곡하여 인식한다. 저자는 다양한 사례와 학술적인 연구 결과를 동원하여 우리의 현실 인식이 크게 외곡되어 있음을 깨닫게 한다. 

세상사의 전개에서 랜덤한 요소의 비중이 그렇게 크다면 우리가 노력하는 것은 허사가 아닌가 하고 질문할지 모르지만, 저자는 단호하게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랜덤한 요인 때문에 실패할 수 있고, 랜덤한 요인 때문에 성공할 수있지만, 꾸준히 노력하고 여러번 시도한다면 결국 자신의 능력에 상응하는 성공의 확률을 실현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은 조금만 더 노력하였다면 거듭된 실패 끝에 성공이 찾아올 수 있었을텐데 안타깝게 중도에 중단하여 자신의 능력에 상응하는 확률적인 승률을 실현하지 못한다. 반면 억세게 운 좋은 사람은 단 한번의 시도에서도 자신의 능력에 벗어나는 예외적인 성공을 랜덤한 요인 때문에 거두기도 한다. 개별 사례가 랜덤하게 발생하는 것은 인간이 어찌할 수 없지만, 많은 수가 모일 때, 즉 여러번 반복될 때 확률적인 규칙성이 적용되므로, 이는 인간사에 희망을 준다. 여러번 실패한 사람이, 여러번 시도해본 사람이 결국 성공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은 통찰력을 주는 흥미있는 읽을 거리이다. 

2019. 6. 26. 11:36

Keith Payne. 2017. The Broken Ladder: How inequality affects the way we think, live and die. Penguin Books. 219 pages.

사람들은 불평등을 각자 어떻게 체험할까. 이러한 개인적 체험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저자는 자신이 어릴 때 마음 속에 각인된 불평등에 대한 체험을 토대로 심리학 연구 결과를 엮으면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불평등에 대한 기존 논의가 대부분 객관적인 불평등 수준에 집중해 있음에 반해, 이 책은 불평등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감정, 행동, 사고에 촛점을 맞추어 심리학적으로 접근한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 성질을 타고난다. 극단적 결핍 수준을 넘어서면, 사람들은 항시 자신과 남을 비교하여 자신의 상대 가치를 평가한다. 이러한 비교는 의식의 수준에서는 물론 무의식 수준에서 항시 작동되는 심리적 기제이다.  사람들은 남과 비교한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데, 광고는 이러한 사람들의 성질을 교묘히 이용한다. 자신의 비교 대상은 지리적으로 및 지위 면에서 자신과 근접한 사람들이다. 이들과 자신 간에 격차가 클 수록 사람들은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더 많은 위험을 무릅쓰는 행위를 주저하지 않는다. 

동물의 세계에서 삶의 상황이 열악할 때  위험을 무릅쓰는 행위를 감행하면서 진하게 살다가 일찍 죽는데, 이는 진화의 과정에서 종을 유지하기에 유리한 생존 전략이다. 반면 삶의 상황이 양호할 때에는 가급적 위험을 회피하며 긴 안목에서 계획을 세워 일을 추진하며 오래사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 같은 맥락에서 인간 또한 불평등이 높은 사회일수록 최상위를 제외한 모두가 상대적으로 상황이 열악한 상황에서 삶을 영위해야 함으로 위험을 회피하지 않고 미래를 고려하기 보다는 현재의 만족을 우선시하는 충동적인 삶을 선택하게 된다.  

미국 내에서 지역간 사람들의 행동 양식을 비교하던 혹은 미국과 북유럽 사회를 비교하건 유사한 결과를 얻는다. 불평등이 높은 지역이나 나라일수록 삶이 긴장되고, 사람들은 위험을 회피하지 않으며, 단기적 시간 계획으로 살아간다. 그 결과는 미국이 다른 선진국보다 폭력적이며, 범죄율이 높으며, 건강 수준과 평균 수명이 낮으며, 갈등이 심하다. 또한 불평등이 클수록 사람들은 종교에 몰입하며, 음모론과 같은 비합리적인 주장에 동조한다. 반면, 불평등이 낮을수록 사람들은 합리적이고 세속적이며 정치적으로 중도적인 성향이 강하다. 불평등한 보상은 사람들로 하여금 열심히 일하게 하는 자극제가 되지만, 현재의 불평등 수준은 이러한 긍정적인 수준을 훨씬 넘어서 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불평등한 사회를 살아가는 지혜를 제시한다. 남과 비교하려 하기 보다 자신이 설정한 기준에 따라 자신의 가치를 평가하는 훈련을 하면, 상대적 비교가 낳는 비참한 느낌을 완화할 수있다고 조언한다. 이 책은 어떻게 불평등을 줄일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불평등에 대한 논의가 대부분 건조한 반면, 이 책은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과 함께 심리학 실험과 연구 결과를 동원하여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 흥미롭다. 

2019. 6. 19. 13:36

Michael Marmot. 2004. The Status Syndrome: How social standing affects our health and longevity. Henry Holt & Co. 271 pages.

가난한 사람이 부자보다 건강 수준이 안좋다거나 수명이 짧다는 사실은 가끔씩 신문에 보도된다. 사실 사람들은 주변 경험으로부터 이를 잘 알고 있지만 이러한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되면 마음이 불편하다. 수명의 차이는 인간의 도덕성에 위배되는 느낌이 든다. 이 책은 사람들간 건강 불평등이라는 주제와 관련된 논의에서 가장 기본이 된다.  이 책은 저자가 1960년대 후반부터 시작하여 최근까지 반세기 동안 계속하여 진행한 연구인  '화이트홀 연구'(Whitehall study) 결과를 바탕으로 한다.  '화이트홀'이란 영국 런던에 정부 청사가 밀집한 지역의 이름인데, 정부 관료를 대상으로 왜 건강 수준이 직급에 따라 차이가 나는지 밝히는 것이 이 연구의 핵심이다. 

생존을 위한 기본적 욕구를 충족할 수없을 정도로 결핍한 상태라면 물질적 수준이 향상되면 건강 수준이 향상된다. 그러나 기본적 욕구가 충족된 단계를 넘어서 사람들의 건강 수준에 차이가 나는 원인은 무엇일까? 유전자의 차이나 음식이나 생활습관의 차이를 원인으로 흔히 거론하는데, 저자는 조직에서 차지하는 지위에 따라 건강 수준에 차이가 나는 현상에 주목한다. 하위 집단은 바로 위의 상급 집단보다 건강 수준이 낮으며, 중간 지위 집단은 그보다 바로 상위의 집단보다 건강 수준이 낮으며 일찍 죽는다. 즉 위계 조직에서 상대 지위에 따라 건강 수준과 수명이 정확히 비례관계이다. 일반적으로 건강 수준이나 수명을 따질 때에는 건강이 안좋은 사람과 오래 사는 사람, 즉 건강 수준에서 양극단의 사례를 거론하는데, 저자는 그 중간에 있는 사람들, 즉 위계적 조직이나 사회에서 사는 사람들 모두에게 해당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영국 정부의 관료라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물질적인 기본 욕구는 모두 충족했다.  그에 따르면 위계 내에서의 상대적 지위가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원인이다.  상대적 지위가 낮을 수록 일의 자율성 및 결정에 참여하는 정도는 떨어지는 반면, 지위가 올라갈수록 자율성과 참여 정도는 높아진다.  명령에 따라 수동적으로 단순한 일을 반복하는 것은 사람의 정신을 피폐하게 하여 건강을 해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이에 더하여 자율성과 참여의 정도에 따라 건강이 영향을 받는 관계가 단순히 최하위 노동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계층의 관료에게 해당된다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인간은 사회생활을 하는 이상 위계적 관계 속에서 살아야 한다. 직접 명령을 받지 않더라도 자신의 삶을 자신이 조정할 수있는 정도는 사회적 지위에 좌우된다. 지위가 높을수록 자신의 삶과 주변을 자신의 의지 대로 조정할 수있는 능력이 커지는 반면, 지위가 낮을 수록 자신의 삶이 자신의 의지가 아닌 힘에 의해 휘둘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사회의 불평등 정도가 높을 수록, 조직의 위계적 성격이 뚜렷할수록 지위에 따라 건강이 좌우되는 정도도 커진다. 북유럽 국가들이 그들보다 소득이 높은 미국보다 건강수준이 높은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이 책은 과학적인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건강 수준의 차이에 대해 체계적인 설명을 제시한 책이므로 아무리 일반 독자에게 다가가도록 쉽게 썼다고 해도 평이하게 읽히지는 않는다. 그러나 저자가 자신의 평생의 연구 결과 얻은 핵심을 일반인에게 전달하겠다는, 그래서 사회 변화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겠다는 사명감이 느껴진다. 건강 수준의 격차에 관한 다양한 사례와 다양한 이론과 연구 결과를 풍부하게 소개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한걸음씩 펼쳐가는 노력이 엿보인다. 저자가 젊은 연구자였을 때 화이트홀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접한 뜻밖에 발견이 그의 이후의 일생을 결정하게 되었다는 말이 다가온다. 마치 퀴리부인이 우연히 방사능을 발견한 것이 그녀의 이후의 일생을 결정했던 사례가 사회과학에서도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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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6. 16. 22:17

Philip E. Tetlock and Dan Gardner. 2015. Superforcasting: the art and science of prediction. Crown Publishers. 285 pages. 

심리학자인 저자가 수 년동안 진행한 연구 성과를 요약한 책이다. 그가 주도한 연구 프로젝트는 일 군의 일반 사람들에게 가까운 미래에 특정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을 구체적 확률치로 예측하도록 하여, 이 가능성 예측 게임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할 수있었는가를 분석한다. 미래 예측 게임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사람들이 사용한 방법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다양한 출처의 자료들을 체계적으로 조사하며, 자신이 예측이 실패하였을 때 그 원인을 면밀히 검토하여 자신의 분석 방법을 점진적으로 개량하며, 직관에 의지하기보다는 객관적 사실에 의지하여 긍정적 요인과 부정적 요인을 면밀히 비교한다.  사람들은 다양한 요인에 대해 복잡하게 계산적으로 검토하는 것을 싫어한다. 반면 예측의 달인은 끈질기게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검토하고 비교 분석하고, 자신의 판단을 재검토하여 개선해 나간다. 이는 소위 전문가라 하는 사람들이 사실에 입각하여 자신의 견해를 수정하려하지 않는 독단적 태도와 대조된다. 소위 전문가라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예측과 어긋나는 사실이 나타나도 자신의 견해를 애매한 표현으로 정당화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문제에 대해 체계적으로 접근하려 하지 않으며, 다양한 관련 자료를 모으는 노력을 거부하며, 자신의 판단을 재검토하고 오류로부터 배우는 것을 싫어한다. 요컨대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을 싫어한다. 저자는 바로 이러한 사람들의 성향이 엉터리 예측을 반복하는 이유라고 진단한다. 이러한 사람들의 성향에 대한 그의 지적은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다니엘 칸네만의 주장과 맥을 같이 한다.  저자는 예측의 정확도를 높이는 것이 훈련을 통해 점진적으로 향상될 수있는 기술이라고 주장한다.   

학문적인 연구의 성과를 배경으로 쓴 책 답게 논의가 체계적이며 메시지가 분명하다. 그가 언급한 것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을 지적하자면, 우연을 인정하는 태도에 관한 언급이다. 세상의 일들은 다양한 가능성 중에서 하나가 발생한 것이다. 따라서 어떤 일이 왜 그렇게 전개되었는가를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여러 가능한 시나리오 중 하나가 발생한 것은 우연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우연이 거듭되면서 여러 일이 여러 일을 낳은 것이므로, 미래란 기본적으로 불확실하다. 예측을 할 수있는 사안을 예측해야 하며, 예측을 할 수없는 사안을 예측하려고 하는 것은 허사이다.  분명한 것은 현재에서 먼 미래일수록 예측은 허사라는 사실이다. 예컨대 5년 내의 예측은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으나, 10년 후의 예측은 전혀 가능하지 않다.  이 책에는 근래에 발생한 정치 경제 사례를 풍부하게 들면서 이야기를 전개하므로 세상 돌아가는 것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2019. 6. 16. 10:42

Kwame Anthony Appiah. 2018. The Lies Than Bind: Rethinking Identity, creed, country, color, class, culture. Liveright publishing co. 219 pages.

저자는 영국 출신의 철학자로 미국의 뉴욕대 교수로 있다. 이 책은 그가 BBC 라디오 강좌를 위해 쓴 원고를 보완한 것이다. 일반 독자를 상대하므로 전문용어나 이론적 논의를 최소화 하면서 정체성의 다양한 측면에 대해 설명한다.  

그는 가나 출신의 아버지와 영국의 전통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하여 영국에서 성장하면서 정체성의 어려움을 겪었다. 사람들의 정체성, 즉 '그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그리 간단히 답할 수없다. 이 책의 핵심 주장은, 사람들은 정체성을 본질적 특성의 반영으로 생각하지만 실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이다. 성, 종교, 민족, 인종, 계급, 문화 등 이 모든 정체성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다. 이 책의 제목  '사람들을 묶어주는 거짓말' 은 바로 이러한 사람들이 정체성에 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이 잘 못된 것일뿐 아니라 해악적인 요소를 포함한다는 그의 주장을 반영한다. 

첫번째 장에서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 정체성을 예로 하여 이것이 본질적(essential) 특성의 반영인지 사회에 의해 만들어진(construct) 것인지에 관한 이론적 논의를 소개한다. 사람들은 구분되는 범주에 대해 이름을 붙이며 이 이름은 본질적인 무엇을 지칭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남성은 여성과 본질적으로 구분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생물학적 성(sex)과 사회적인 성(gender)을 구분해야 한다.  사람들이 남성 여성에 대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의 대부분은 '성 역할'이라 지칭하는 사회적 성에 해당한다. 사회적 성 정체성은 인간의 생물학적 본질을 지칭하기보다 사회가 만들어 낸 것으로 사회에 따라 다양하다. 인종 또한 사회가 만들어 낸 것이다. 백인과 흑인의 구분은 생물학적 측면에서 피부색의 차이를 반영하지만, 그 핵심은 서구의 세계 지배의 산물이다.  흑인을 백인보다 열등한 종으로 인식하고 흑인을 노예로 지배한 역사를 통해 인종은 서구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정체성 항목이 되었다.  

종교적 정체성은 인종과 엮여 있다. 역사적으로 기독교도라는 정체성은 백인이라는 정체성과 함께 하며 서구 문명의 핵심이다. 민족 구분은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는지 여부가 핵심이지만, 서구에서도 19세기에야 비로서 형성된 구분이다. 그 전에는 한 나라에 다양한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함께 살았으며, 언어의 구분 또한 애매하다. 따라서 민족은 매우 자의적인 구분이다. 가족이나 소규모의 부족 혹은 마을을 넘어선 큰 집단, 즉 서로 대면할 일이 없는 큰 집단을 하나의 민족이라는 단일 정체성 집단으로 만든 것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정치적 과정의 소산이다. 계급은 경제적 자산의 다과에 따라 만들어진 범주인데 과거에는 귀족, 지주, 평민 이라는 신분으로 구분되었으며, 근대로 오면서는 교육 수준, 소득, 직업 으로 구성되는 사회경제적 지위로 대표된다. 사회경제적 지위는 지위 집단간 뚜렷이 구분되는 경계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중시하는 경계 구분은 여전히 존재한다. 예컨대 대학을 졸업했는지, 몸을 쓰지 않는 사무직에 종사하는지, 등에 따라 사람들의 생활 방식이나 사고방식이 구분된다.  아무리 개인의 성취를 중시하는 업적주의 사회가 도래한다고 해도 능력이나 업적 자체가 세대간에 세습되는 경향이 있으므로 특정 계급 집단의 정체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 책은 교과서적 사실을 다양한 예를 들어 알기 쉽게 풀어 쓴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 정체성에 대해 일반적인 지식을 일목요연하게 확인하게 된다. 대립되는 논쟁을 소개하거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므로 평이하게 읽을 수 있다. 그것이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2019. 6. 5. 21:51

Michael Booth. 2014. The Almost Nearly Perfect People. New York: Picador. 374 pages

이 책의 저자는 영국에서 성장하여 덴마크 부인을 만나 그곳에서 오랜동안 살면서 그곳 사람들의 생활과 사고방식을 웬만큼 이해하였다. 그 바탕위에 모든 세계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주제인 "북유럽 사회는 어떻게 그렇게 모범적인가?" 하는 질문을 다각적으로 천착한다. 덴마크에서 시작하여, 아이슬랜드, 핀란드, 스웨덴으로 나아가면서 각각의 나라에 대해 서술한다. 북유럽 사회를 오랫동안 관찰하고 글을 써온 기자의 통찰력과 풍부한 유머가 녹아있어 읽는 즐거움을 더한다. 물론 영미 사정에 능통하지 않은 필자에게는 이해되지 않는 고유명사와 구절이 많지만. 

저자는 북유럽 사회야 말로 지금까지 인류가 건설한 사회 중 가장 완벽하다고 인정한다. 완벽한 사회는 어떤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높은 신뢰, 사회적 통합, 경제적 평등, 성평등, 합리주의, 겸손, 잘 균형잡힌 정치경제 시스템, 높은 삶의 질이 저자가 칭송하는 북유럽 사회의 공통된 특징이다. 북유럽 국가 사람들은 풍요롭고, 안정되고, 합리적이고, 평등하고, 부당한 경우를 당하지 않는 삶을 살며, 그 들은 이러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정말 합리적으로 방안을 찾아 조정하고 실천해 왔다. 그야말로 모범적인 사회와 사람들이 아닌가? 그들은 이러한 자신의 사회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며 이를 구현하기 위해 각자가 자신의 의무를 지고 필요한 희생과 타협을 회피하지 않는다.  북유럽과 비교할 때 미국이나 영국의 불평등하고 엉망인 모습은 뚜렷이 대조된다. 

어떻게 북유럽 사람들은 이러한 사회를 건설할 수있었을까? 그는 여러가지로 원인을 분석한다. 봉건제가 발달하지 않았으며, 오래전부터 상대적으로 평등한 사회였다는 역사적 배경, 사람이 살아가기 힘든 자연환경은 불평등을 억제하며 협동을 장려한다는 점, 오랫동안 인종 민족적으로 동질적이었으므로 사람들 사이에 신뢰와 이해의 정도가 깊다는 점, 헌신적이며 유능한 정치 지도자가 계속 나타났다는 점 등을 원인으로 제시한다. 

저자는 북유럽 사회의 강점을 인정하면서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님을 곳곳에서 언급한다. 현재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두가지이다.  첫째는 매우 이질적인 배경의 이민자가 늘면서 본토인과의 통합에 어려움이 크며, 이들 사이에 격차가 크기 때문에 북유럽 사회의 근간인 사람들의 동질성과 신뢰에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 근래에 이민을 반대하는 극우 집단이 세력을 확장해가는 것은 우려할만하다. 둘째는 출산율이 낮고 인구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복지사회의 재정적 미래가 위협에 처해 있다. 덴마크는 가계의 빚이 우려할만한 수준으로 높으며, 스웨덴은 1990년대 경제위기 때 복지제도를 과감히 축소하였음에도 복지재정 부담이 높다. 이미 개인의 조세 부담율이 50%에 달하여 더 이상 높일 여지가 없으므로 앞으로 복지재정이 불안해 질 수있다.  

저자는 북유럽 사회가 안정되고 신뢰수준이 높지만,  다른 면에서 보면, 규율에 순응하는 북유럽 사람들의 삶은 따분하고 역동성이 부족하다고 꼬집는다.  맞는 말이기는 하다. 개발도상국이나 심지어 미국 만해도 언제 무슨일이 일어날지 모르지 않는가?  그렇지만 세대간 지위 이동의 가능성은 북유럽 사회가 미국을 포함한 다른 어느 나라보다 높다. 북유럽에서도 여전히 부모를 잘 만나야 성공 가능성이 높지만, 그 정도가 다른 사회보다 훨씬 덜하다. 미국은 아메리칸 드림이라고 말만 요란할 뿐 세대한 지위이동은 상대적으로 낮다. 또한 북유럽 사회는 미국을 포함한 다른 어떤 사회보다 개인의 다양성과 선택의 자유를 존중한다.  종교의 자유, 성의 자유, 낙태의 자유, 전통의 구속으로부터의 자유, 심지어 가족 배경으로부터의 자유, 등 모든 면에서 북유럽은 개인을 가장 존중하는 나라이다.   

저자는 북유럽의 미래를 낙관하며 끝맺는다.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유럽 사회는 여전히 인류가 건설한 가장 완벽한 사회이며, 현재 당면한 문제는 지금까지 그들이 문제를 해결한 과정을 고려할 때 낙관적으로 전망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일전에 스웨덴의 연구소에서 지낼 때, 그들과 이야기하며 느꼈던 그들의 자신의 사회에 대한 자긍심을 떠올렸다. 우리 나라의 신문에는 늘상 정치인의 소아적이며 얄팍한 술수가 판치고, 미국에는 트럼프라는 어리석은 사람이 분탕질을 치고 있는 것과 대조된다. 북유럽이 계속 앞서 나가서 세계인의 등대가 되기를 기원한다.  흥미있게 그러면서도 진지하게 읽었다.